◀제132편 로마에 머무는 동안 ∥ 제134편 과도기 시절▶
로마에서 돌아옴
133:0.1 로마에서 떠나려고 준비할 때, 예수는 친구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마스커스 서기관은 예고 없이 로마에 나타났다가, 같은 방법으로 사라졌다. 그를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를 다시 만나려는 희망을 포기한 것은 거의 1년이 지났을 때였다. 이 둘째 해가 끝나기 전에, 예수를 알고 지냈던 작은 무리의 사람들은, 예수의 교훈에 대한 공통 관심 때문에, 그리고 그와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서로의 기억으로 인하여 함께 모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스토아학파, 견유학파, 신비주의자로 구성된 이 작은 집단은, 그리스도교 초기 전도자들이 로마에 출현할 때까지, 불규칙gks 이 비공식 모임을 계속했다.
133:0.2 고노드와 가니드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 물건을 매우 많이 구입했으므로, 소유물을 짐꾼 행렬 편으로 미리 타렌툼까지 보냈고, 그동안 세 여행자는, 유명한 아피아 도로를 따라 이태리를 가로질러서 한가히 걸어갔다. 그들은 이 여행에서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났다. 많은 고귀한 로마 시민과 그리스 식민지 주민이 이 길을 따라서 살았지만, 열등한 노예들의 수많은 자손도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33:0.3 어느 날 타렌툼에 거의 절반 정도 와서 점심시간에 휴식을 취할 때, 가니드는 예수에게 인도의 신분계층 체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놓고 질문했다. 예수가 대답했다: “인간이 여러 방면에서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서로 다르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영적 세계에서는, 모든 필사자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 하나님의 눈에는 단지 두 무리만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다. 우주가 인간거주 세계들을 내려다볼 때, 마찬가지로 크게 두 부류로 식별하는데: 하나님을 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다.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자는, 주어진 어느 영역에서든지 동물로 간주된다. 인류는 여러 다른 자격조건에 의거해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직업적, 또는 도덕적 면으로 저희를 관찰하는 대로 여러 계층으로 적절하게 분류될 수 있지만, 이렇게 다른 계층의 필사자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갈 때에는, 모두 동등한 신분으로 서게 되며; 하나님은 진정으로 인격체들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지적, 사회적, 도덕적 면에서, 인간의 역량과 재능에 차이가 있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모였을 때에는, 사람의 영적 형제관계에서 어떤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
133:1.1 타렌툼에 가까이 갔을 때, 길가에서 어느 오후에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약자를 괴롭히는 난폭한 소년이,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예수는 폭행당하는 아이를 돕기 위하여 급히 달려갔고, 그를 구해낸 후에는, 어린 아이가 멀리 도망갈 때까지 가해자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예수가 어린 깡패를 놓아주는 순간, 가니드가 그 소년에게 달려들어 호되게 때려주기 시작했고, 예수가 재빨리 제지하자, 가니드는 몹시 놀랐다. 가니드를 말리면서 겁먹은 소년이 도망가도록 만들었을 때, 젊은이는 숨을 돌리자마자 흥분하면서 외쳤다: “선생님,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자비가 당신에게 어린 아이를 구하라고 요구한다면, 응보는 왜, 그보다 몸집이 크고 공격적인 소년에게 벌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까?” 예수가 대답했다:
133:1.2 “가니드야, 네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항상 개인의 활동인 반면, 응보로 벌은 주는 것은, 사회나 정부 또는 우주 경영 집단의 역할이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자비를 베풀 권한이 있고; 곤경에 처한 아이를 구해야했으며, 가해자를 말리기 위하여 필요한 만큼의 완력을 사용하는 것도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방금 내가 한 일이었다. 나는 폭행당하는 아이를 구했으며; 그것이 내가 베푼 자비의 최종 목표였다. 그리고 나서, 약한 자가 도망하기에 충분한 시간만큼 가해자를 강제로 붙잡아 뒀고, 그다음에는 그 일에서 물러났다. 더 나아가 가해자를 심판하고, 그렇게 그의 동기를 평가하려고--곧 동료를 공격하도록 만든 모든 것에 대해 심판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런 후에 그의 잘못에 대한 공정한 벌이라고 내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처벌을 집행하지도 않았다. 가니드야, 자비는 아낌없이 베풀어도 좋지만, 응보는 엄밀한 것이다. 어떻게 징벌해야 응보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두 사람조차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공정한 형벌로, 한 사람은 40대의 매를, 다른 사람은 20대의 매를 때리라고, 또 어떤 이는 격리시켜서 감금하라고 권고하려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책임이 집단에게 맡겨지거나, 혹은 그 집단이 뽑은 대표자들이 관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우주에서 심판은, 그 동기뿐 아니라 범죄의 모든 전례를 완전히 알고 있는 존재들에게 맡겨진다. 모든 문명화된 사회와 잘 조직된 우주에서는, 응보의 집행은 정당하게 심판한 결과로 공평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전제로 하며, 그런 특권은 여러 세계에 속한 사법집단들에게, 그리고 전체 창조계의 상급{上級} 우주를 다스리는 전지{全知}한 경영자들에게 부여된다.”
133:1.3 그들은 자비를 나타내고 응보를 집행하는 이 문제에 관해서 여러 날 토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니드는, 예수가 개인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으려했던 이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가니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질문했고, 완전히 만족스런 답변은 결코 듣지 못했는데; 그 질문은 이랬다: “그렇지만 선생님, 만약 힘이 더 세고 고약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당신을 공격하면서 죽이겠다고 위협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실 것입니까?” 예수는, 주시하고 있는 우주를 향한 낙원 아버지의 사랑의 본보기로서 자신이(곧 예수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의 질문에 완전하고 만족스럽게 대답할 수 없었지만, 이정도로 이야기했다:
133:1.4 “가니드야, 이 문제들 가운데 어떤 것이 너를 얼마나 혼란시키는지 알 수 있으니, 너의 질문에 대답이 되도록 애써보겠다. 우선, 내가 어떤 공격을 당하더라고, 그 가해자가 하나님의 아들--곧 육신을 입은 내 형제--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것이며, 그가 도덕적 판단과 영적 이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면, 나는 가해자에게 발생될 결과에 상관없이, 주저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나 자신을 방어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나는 아들신분을 지닌 동료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를 공격했다고 해서 판결도 받기 전에 그를 응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그런 공격을 미리 예방하고 공격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혹시 실패할 경우에도 그것을 완화시키려고 애쓸 것이다. 가니드야,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철저한 보살핌을 절대 신뢰하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을 행하기로 헌신했다. 진정한 해{害}가 나에게 미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으며; 적들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려고 해도, 그 때문에 내 필생과업이 정말로 위태롭게 될 수 있다고는 믿지 않고, 두려워할 만한 어떤 폭행도 친구들로부터 당하지 않는다. 나는 우주 전체가 나에게 호의적임을 절대로 확신한다--곧 겉모양이 전부 반대로 보인다 해도, 전심{全心}에서 우러나는 확신을 가지고, 전능한 이 진리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133:1.5 그러나 가니드는 충분히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했고, 예수는 그에게 자신의 소년시절 체험과, 석공의 아들 야곱에 대한 이야기도 해줬다. 가니드는 야곱이 예수를 지키는 일을 어떻게 스스로 맡았는지 알고 난 후에 말했다: “아, 이제야 알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당신 같은 친절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 생각이 모자라서 그렇게 하더라도, 마치 당신이 언제나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것처럼, 당신을 재빨리 도와 줄 어떤 사람이 틀림없이 가까이에 있게 된다는 것이군요. 선생님, 마음으로는 당신의 말씀에 동의하지만, 내가 야곱이었다면, 당신이 방어하지 않는 것을 미끼로 삼아 주제넘게 공격하는 무례한 친구들에게 기꺼이 응징했으리라는 생각이, 여전히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곤경에 빠진 친구들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시기 때문에--곧 당신에게는 언제든지 방어해 줄 어떤 사람이 항상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인생 여정이 상당히 안전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가니드야, 그 시험은 아직 임하지 않았는데, 그때가 오면, 우리는 아버지 뜻에 따라야 할 것이다.” 자기_방어와 무저항에 관한 어려운 이 주제에 대해, 소년은 선생님으로부터 더 이상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다른 기회에, 조직된 사회는 올바른 명령을 집행할 때 무력을 사용할 모든 권한을 갖는다는 예수의 견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133:2.1 화물을 내릴 작은 배를 기다리면서 선착장{船着場}에 머무는 동안, 그 여행자들은 자기 아내를 학대하는 어떤 남자를 목격했다. 예수는 평상시 습관대로, 공격당하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중재에 나섰다. 성난 남편 뒤로 걸어가서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며 말했다: “친구여, 나와 잠깐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겠나?” 화내던 남자는 그런 접근에 어쩔 줄 몰랐고, 잠시 당황하여 망설이다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저,--왜,--예,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예수는 그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친구여, 내가 보기에는 아주 끔찍한 어떤 일이 너에게 일어난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너처럼 건장한 남자가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아내, 즉 자기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쓰게 됐는지 나에게 말해주기 바란다. 확신하건대, 이렇게 폭행할 만한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네가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자기 남편에게서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저 여자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를 살펴보니, 자비를 베풀 의향은 아니라도, 부당한 처사는 혐오한다고 얼굴에 씌어있는 것 같다. 감히 말하겠는데, 길가에서 내가 도적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너는 나를 구하려고 재빨리 달려왔을 것이다. 일생을 살면서 그런 용감한 일을 여러 번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자, 친구여, 말해보라, 무엇이 문제인가? 저 여자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아니면 네가 어리석게 이성을 잃고 생각 없이 아내에게 폭행했느냐?” 이 남자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말한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가 말을 마치면서 그에게 보여준, 친절한 표정과 인정 어린 미소였다. 그 남자가 말했다: “당신은 견유학파 사제인 것 같은데, 나를 말려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내 아내는,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으며; 착한 여자입니다만, 공개적으로 나를 비난해서 흥분시켰고, 내가 이성을 잃었습니다. 내가 자제력을 잃은 것에 대해 사과하며, 여러 해 전에 더 나은 길을 가르쳐준 당신의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예전에 서약했던 것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로 약속합니다. 당신에게 약속합니다.”
133:2.2 그리고 나서, 작별을 고하면서 예수가 말했다: “형제여, 여자가 기꺼이 자발적으로 남자에게 그런 권위를 주지 않는 한, 남자가 그 여자에게 어떤 정당한 권위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너의 아내는 너와 일생을 같이 보내고, 함께 도와서 고난을 헤쳐나가고, 너의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서 더 힘든 몫을 담당하기로 약속했으며; 이 여자는, 이런 특별한 봉사에 대한 대가로, 자기 아이를 낳아주고 길러줘야 하는 동반자로서, 한 남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보호를, 너에게서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아이들에게 기꺼이 주는 사랑스런 보호와 배려는, 더 높은 수준의 창조적이고 영적인 자아_의식을 그 사람이 달성했는가를 재는 척도다. 불멸하는 혼 잠재성을 성인이 되어 소유하게 될 존재들을 창조하려고 협동한다는 의미에서, 남녀가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주의 자녀들의 영 어머니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하신다. 자녀들의 생명 속에서 너희 대를 잇게 하는 신성한 체험을 그토록 온전히 너와 공유하는 어머니 동역자와, 너의 일생과 그에 관련된 모든 것을 동등하게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어울린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네가 자녀들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무한한 영, 즉 방대한 우주의 모든 영 자녀의 어머니를 예우하고 높여주시는 것처럼, 너도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133:2.3 배에 올랐을 때, 그들은 눈물에 젖은 채 말없이 껴안고 서 있는 부부의 모습을 뒤돌아봤다. 예수가 그 사람에게 한 말씀의 후반부를 주의해서 들었기 때문에, 고노드는 거기에 대한 묵상에 하루 종일 잠겨 있었고, 인도에 돌아가면, 자기 가정을 개혁하겠다고 결심했다.
133:2.4 니코폴리스로 가는 여정은 순탄했으나, 바람이 좋지 않아서 속도가 느렸다. 세 사람은 로마에서 했던 체험에 대해 여러 시간 이야기했고, 예루살렘에서 처음 만난 후로 일어났던 모든 일을 회상했다. 몸소 봉사하고 싶은 기운이 가니드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그 배의 승무원 역할에 착수했지만, 둘째 날에 깊은 종교적 곤경에 빠지게 되자, 예슈아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133:2.5 그들은 니코폴리스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는데, 이 도시는, 아우구스투스가 50년 전에 악티움 전투를 기념하려고 “승리의 도시”로 세운 곳이었고,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군대를 이끌고 야영했던 장소였다. 그들은 배의 갑판에서 만난 제라미의 집에 머물렀는데, 그는 유대인 신앙으로 개종한 그리스인이었다. 사도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도중에, 바로 이 집에서 제라미의 아들과 함께 겨울 내내 지내기도 했다. 그들은 같은 배를 타고 니코폴리스를 떠나서 고린도로 항해했으며, 그곳은 로마의 아가야 지방 수도였다.
133:3.1 고린도에 도착할 즈음, 가니드는 유대 종교에 많은 흥미를 갖게 됐으며, 그래서 어느 날 유대 회당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됐을 때, 예수에게 예배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날 그들은 어느 박식한 랍비가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해 강론하는 것을 들었고, 예배가 끝난 뒤에 그리스보라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이 회당의 회당장{會堂長}이었다. 그 후에도 그들은 그 회당 예배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주로 그리스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가니드는 그리스보와 그 아내 그리고 다섯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또한 유대인이 어떻게 가족생활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133:3.2 가니드가 가족생활을 공부하는 동안, 예수는 종교 생활을 더 유익하게 하는 방법을 그리스보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예수는 진취적인 이 유대인과 20번 이상 만났으며; 여러 해 지난 후에, 바울이 바로 이 회당에서 전도하자, 유대인이 그의 복음을 배척하고 더 이상 회당에서 전도하지 못하도록 투표로 결정했으며, 그래서 그가 이방인에게로 갔을 때, 그리스보가 온 가족과 함께 새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과, 바울이 나중에 고린도에서 조직한 그리스도교 교회의 주요 지지자 가운데 하나가 됐음은,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
133:3.3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전도했고, 실라와 디모데가 나중에 합세했을 때, “어느 인도 상인의 아들의 유대인 가정교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133:3.4 고린도에서 그들은 세 대륙{大陸}으로부터 온 모든 인종의 사람을 만났다.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다음으로 고린도가 지중해 제국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였다. 이 도시에는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이 많았고, 가니드는 거의 해발 2,000피트 위에 서 있는 성을 방문하기에 한 번도 싫증내지 않았다. 또한 여가시간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부분을 유대 회당과 그리스보의 집에서 보냈다. 그는 유대 가정에서 여자의 위치를 알고 나서,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고 나중에는 매료됐는데; 이 젊은 인도인에게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133:3.5 예수와 가니드는 또 다른 유대인, 유스도의 집으로 자주 초대받았는데, 그는 회당 옆에서 살던 경건한 상인이었다. 그리고 훗날에 사도 바울이 여러 번 이 집에 머물게 됐는데, 거기서도 인도 청년과 그의 유대인 가정교사가 이렇게 여러 번 방문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한편 바울과 유스도는 그토록 현명하고 뛰어난 히브리인 선생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133:3.6 로마에 있을 때, 가니드는 예수가 그들과 함께 공중목욕탕에 가기를 거절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후에 이 젊은이는, 성{性}관계에 대해 예수가 좀 더 자기 의견을 표현하도록 여러 번 유도하려고 애썼다. 소년의 질문에 대답하려했지만, 그는 이런 주제에 대해 길게 토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듯 했다. 어느 날 저녁, 고린도에서 산보하다가 성벽이 바다로 이어지는 곳 가까이 갔을 때, 두 매춘부가 말을 걸어왔다. 당연히, 가니드는 예수가 높은 이상{理想}을 가진 사람이요, 부정하거나 악의 기미가 있는 모든 것을 혐오한다는 인식에 젖어있었으며; 따라서 이 여자들에게 호되게 소리치면서, 비키라고 거칠게 손짓했다. 이것을 본 예수가 가니드에게 말했다; “너는 좋은 뜻으로 말했겠지만, 저희가 어쩌다가 잘못을 저지른 자녀가 됐다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렇게 주제넘게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 여자들을 판단하겠느냐?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수단에 의지하도록 저희를 몰아붙인 모든 상황을, 네가 과연 알 수 있느냐? 우리가 이런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 여기 잠시 멈추자꾸나.” 매춘부들은 가니드의 말보다 오히려 예수의 말에 더 놀랐다.
133:3.7 달빛 아래 서 있는 동안, 예수는 말씀을 계속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선물인 신성한 영이, 모든 인간 정신 속에 거하고 있다. 이 선한 영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분을 알도록 도와주려고 늘 애쓰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필사자 안에는 타고난 육체적 성향도 많이 있는데, 개인과 종족의 안녕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창조주가 넣어줬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들이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그리고 이기심과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야하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쓸 때, 종종 혼란을 겪는다. 가니드야, 나는 이 두 여자 가운데 아무도 의도적으로 사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표정으로 짐작하건대, 저희는 많은 슬픔을 체험했으며; 외견상 잔인한 운명의 손에 많은 고통을 겪었으며; 이런 종류의 삶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으며;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낙망하여 당시 상황에 굴복했고, 저희에게 절망적으로 보이는 어떤 환경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으로, 어쩔 수 없는 이런 생계 수단에 의지해왔다. 가니드야, 어떤 자들은 진심으로 사악하며; 비열한 일을 고의로 선택하지만, 지금 이렇게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쁘거나 사악한 무엇을 발견하는지 나에게 말해보겠느냐?” 예수가 대답을 들으려고 말을 멈추자, 가니드는 목이 메어 더듬거리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아니요, 선생님,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저희에게 무례했음을 사과드립니다--저희에게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저희를 용서하셨음을 내가 아버지 대신 말하는 것처럼, 저희가 너를 용서했음을 저희를 대신해서 내가 말하겠다. 자, 너희 모두 나와 함께 친구 집으로 가서, 간단한 음식을 청한 후에, 앞으로의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자.” 깜짝 놀란 여자들은 이때까지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서로 쳐다보다가 남자들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133:0.2 고노드와 가니드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 물건을 매우 많이 구입했으므로, 소유물을 짐꾼 행렬 편으로 미리 타렌툼까지 보냈고, 그동안 세 여행자는, 유명한 아피아 도로를 따라 이태리를 가로질러서 한가히 걸어갔다. 그들은 이 여행에서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났다. 많은 고귀한 로마 시민과 그리스 식민지 주민이 이 길을 따라서 살았지만, 열등한 노예들의 수많은 자손도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133:0.3 어느 날 타렌툼에 거의 절반 정도 와서 점심시간에 휴식을 취할 때, 가니드는 예수에게 인도의 신분계층 체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놓고 질문했다. 예수가 대답했다: “인간이 여러 방면에서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서로 다르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영적 세계에서는, 모든 필사자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 하나님의 눈에는 단지 두 무리만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다. 우주가 인간거주 세계들을 내려다볼 때, 마찬가지로 크게 두 부류로 식별하는데: 하나님을 아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다.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자는, 주어진 어느 영역에서든지 동물로 간주된다. 인류는 여러 다른 자격조건에 의거해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직업적, 또는 도덕적 면으로 저희를 관찰하는 대로 여러 계층으로 적절하게 분류될 수 있지만, 이렇게 다른 계층의 필사자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갈 때에는, 모두 동등한 신분으로 서게 되며; 하나님은 진정으로 인격체들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지적, 사회적, 도덕적 면에서, 인간의 역량과 재능에 차이가 있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모였을 때에는, 사람의 영적 형제관계에서 어떤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
1. 자비와 응보
133:1.1 타렌툼에 가까이 갔을 때, 길가에서 어느 오후에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약자를 괴롭히는 난폭한 소년이, 자기보다 어린 아이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예수는 폭행당하는 아이를 돕기 위하여 급히 달려갔고, 그를 구해낸 후에는, 어린 아이가 멀리 도망갈 때까지 가해자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예수가 어린 깡패를 놓아주는 순간, 가니드가 그 소년에게 달려들어 호되게 때려주기 시작했고, 예수가 재빨리 제지하자, 가니드는 몹시 놀랐다. 가니드를 말리면서 겁먹은 소년이 도망가도록 만들었을 때, 젊은이는 숨을 돌리자마자 흥분하면서 외쳤다: “선생님,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자비가 당신에게 어린 아이를 구하라고 요구한다면, 응보는 왜, 그보다 몸집이 크고 공격적인 소년에게 벌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까?” 예수가 대답했다:
133:1.2 “가니드야, 네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항상 개인의 활동인 반면, 응보로 벌은 주는 것은, 사회나 정부 또는 우주 경영 집단의 역할이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자비를 베풀 권한이 있고; 곤경에 처한 아이를 구해야했으며, 가해자를 말리기 위하여 필요한 만큼의 완력을 사용하는 것도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방금 내가 한 일이었다. 나는 폭행당하는 아이를 구했으며; 그것이 내가 베푼 자비의 최종 목표였다. 그리고 나서, 약한 자가 도망하기에 충분한 시간만큼 가해자를 강제로 붙잡아 뒀고, 그다음에는 그 일에서 물러났다. 더 나아가 가해자를 심판하고, 그렇게 그의 동기를 평가하려고--곧 동료를 공격하도록 만든 모든 것에 대해 심판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런 후에 그의 잘못에 대한 공정한 벌이라고 내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처벌을 집행하지도 않았다. 가니드야, 자비는 아낌없이 베풀어도 좋지만, 응보는 엄밀한 것이다. 어떻게 징벌해야 응보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두 사람조차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공정한 형벌로, 한 사람은 40대의 매를, 다른 사람은 20대의 매를 때리라고, 또 어떤 이는 격리시켜서 감금하라고 권고하려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런 책임이 집단에게 맡겨지거나, 혹은 그 집단이 뽑은 대표자들이 관리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우주에서 심판은, 그 동기뿐 아니라 범죄의 모든 전례를 완전히 알고 있는 존재들에게 맡겨진다. 모든 문명화된 사회와 잘 조직된 우주에서는, 응보의 집행은 정당하게 심판한 결과로 공평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전제로 하며, 그런 특권은 여러 세계에 속한 사법집단들에게, 그리고 전체 창조계의 상급{上級} 우주를 다스리는 전지{全知}한 경영자들에게 부여된다.”
133:1.3 그들은 자비를 나타내고 응보를 집행하는 이 문제에 관해서 여러 날 토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니드는, 예수가 개인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으려했던 이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가니드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질문했고, 완전히 만족스런 답변은 결코 듣지 못했는데; 그 질문은 이랬다: “그렇지만 선생님, 만약 힘이 더 세고 고약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당신을 공격하면서 죽이겠다고 위협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실 것입니까?” 예수는, 주시하고 있는 우주를 향한 낙원 아버지의 사랑의 본보기로서 자신이(곧 예수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의 질문에 완전하고 만족스럽게 대답할 수 없었지만, 이정도로 이야기했다:
133:1.4 “가니드야, 이 문제들 가운데 어떤 것이 너를 얼마나 혼란시키는지 알 수 있으니, 너의 질문에 대답이 되도록 애써보겠다. 우선, 내가 어떤 공격을 당하더라고, 그 가해자가 하나님의 아들--곧 육신을 입은 내 형제--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것이며, 그가 도덕적 판단과 영적 이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면, 나는 가해자에게 발생될 결과에 상관없이, 주저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나 자신을 방어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나는 아들신분을 지닌 동료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를 공격했다고 해서 판결도 받기 전에 그를 응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서 그런 공격을 미리 예방하고 공격하지 않도록 설득하고, 혹시 실패할 경우에도 그것을 완화시키려고 애쓸 것이다. 가니드야,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철저한 보살핌을 절대 신뢰하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을 행하기로 헌신했다. 진정한 해{害}가 나에게 미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으며; 적들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려고 해도, 그 때문에 내 필생과업이 정말로 위태롭게 될 수 있다고는 믿지 않고, 두려워할 만한 어떤 폭행도 친구들로부터 당하지 않는다. 나는 우주 전체가 나에게 호의적임을 절대로 확신한다--곧 겉모양이 전부 반대로 보인다 해도, 전심{全心}에서 우러나는 확신을 가지고, 전능한 이 진리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133:1.5 그러나 가니드는 충분히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했고, 예수는 그에게 자신의 소년시절 체험과, 석공의 아들 야곱에 대한 이야기도 해줬다. 가니드는 야곱이 예수를 지키는 일을 어떻게 스스로 맡았는지 알고 난 후에 말했다: “아, 이제야 알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당신 같은 친절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 생각이 모자라서 그렇게 하더라도, 마치 당신이 언제나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것처럼, 당신을 재빨리 도와 줄 어떤 사람이 틀림없이 가까이에 있게 된다는 것이군요. 선생님, 마음으로는 당신의 말씀에 동의하지만, 내가 야곱이었다면, 당신이 방어하지 않는 것을 미끼로 삼아 주제넘게 공격하는 무례한 친구들에게 기꺼이 응징했으리라는 생각이, 여전히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곤경에 빠진 친구들을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쓰시기 때문에--곧 당신에게는 언제든지 방어해 줄 어떤 사람이 항상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인생 여정이 상당히 안전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가니드야, 그 시험은 아직 임하지 않았는데, 그때가 오면, 우리는 아버지 뜻에 따라야 할 것이다.” 자기_방어와 무저항에 관한 어려운 이 주제에 대해, 소년은 선생님으로부터 더 이상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다른 기회에, 조직된 사회는 올바른 명령을 집행할 때 무력을 사용할 모든 권한을 갖는다는 예수의 견해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2. 타렌툼에서 배를 탐
133:2.1 화물을 내릴 작은 배를 기다리면서 선착장{船着場}에 머무는 동안, 그 여행자들은 자기 아내를 학대하는 어떤 남자를 목격했다. 예수는 평상시 습관대로, 공격당하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중재에 나섰다. 성난 남편 뒤로 걸어가서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며 말했다: “친구여, 나와 잠깐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겠나?” 화내던 남자는 그런 접근에 어쩔 줄 몰랐고, 잠시 당황하여 망설이다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저,--왜,--예,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예수는 그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친구여, 내가 보기에는 아주 끔찍한 어떤 일이 너에게 일어난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너처럼 건장한 남자가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아내, 즉 자기 아이들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쓰게 됐는지 나에게 말해주기 바란다. 확신하건대, 이렇게 폭행할 만한 어떤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네가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자기 남편에게서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저 여자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를 살펴보니, 자비를 베풀 의향은 아니라도, 부당한 처사는 혐오한다고 얼굴에 씌어있는 것 같다. 감히 말하겠는데, 길가에서 내가 도적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 너는 나를 구하려고 재빨리 달려왔을 것이다. 일생을 살면서 그런 용감한 일을 여러 번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자, 친구여, 말해보라, 무엇이 문제인가? 저 여자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아니면 네가 어리석게 이성을 잃고 생각 없이 아내에게 폭행했느냐?” 이 남자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말한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가 말을 마치면서 그에게 보여준, 친절한 표정과 인정 어린 미소였다. 그 남자가 말했다: “당신은 견유학파 사제인 것 같은데, 나를 말려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내 아내는,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으며; 착한 여자입니다만, 공개적으로 나를 비난해서 흥분시켰고, 내가 이성을 잃었습니다. 내가 자제력을 잃은 것에 대해 사과하며, 여러 해 전에 더 나은 길을 가르쳐준 당신의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예전에 서약했던 것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로 약속합니다. 당신에게 약속합니다.”
133:2.2 그리고 나서, 작별을 고하면서 예수가 말했다: “형제여, 여자가 기꺼이 자발적으로 남자에게 그런 권위를 주지 않는 한, 남자가 그 여자에게 어떤 정당한 권위도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기 바란다. 너의 아내는 너와 일생을 같이 보내고, 함께 도와서 고난을 헤쳐나가고, 너의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서 더 힘든 몫을 담당하기로 약속했으며; 이 여자는, 이런 특별한 봉사에 대한 대가로, 자기 아이를 낳아주고 길러줘야 하는 동반자로서, 한 남자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보호를, 너에게서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아이들에게 기꺼이 주는 사랑스런 보호와 배려는, 더 높은 수준의 창조적이고 영적인 자아_의식을 그 사람이 달성했는가를 재는 척도다. 불멸하는 혼 잠재성을 성인이 되어 소유하게 될 존재들을 창조하려고 협동한다는 의미에서, 남녀가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주의 자녀들의 영 어머니를,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하신다. 자녀들의 생명 속에서 너희 대를 잇게 하는 신성한 체험을 그토록 온전히 너와 공유하는 어머니 동역자와, 너의 일생과 그에 관련된 모든 것을 동등하게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어울린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네가 자녀들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무한한 영, 즉 방대한 우주의 모든 영 자녀의 어머니를 예우하고 높여주시는 것처럼, 너도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133:2.3 배에 올랐을 때, 그들은 눈물에 젖은 채 말없이 껴안고 서 있는 부부의 모습을 뒤돌아봤다. 예수가 그 사람에게 한 말씀의 후반부를 주의해서 들었기 때문에, 고노드는 거기에 대한 묵상에 하루 종일 잠겨 있었고, 인도에 돌아가면, 자기 가정을 개혁하겠다고 결심했다.
133:2.4 니코폴리스로 가는 여정은 순탄했으나, 바람이 좋지 않아서 속도가 느렸다. 세 사람은 로마에서 했던 체험에 대해 여러 시간 이야기했고, 예루살렘에서 처음 만난 후로 일어났던 모든 일을 회상했다. 몸소 봉사하고 싶은 기운이 가니드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는 그 배의 승무원 역할에 착수했지만, 둘째 날에 깊은 종교적 곤경에 빠지게 되자, 예슈아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133:2.5 그들은 니코폴리스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는데, 이 도시는, 아우구스투스가 50년 전에 악티움 전투를 기념하려고 “승리의 도시”로 세운 곳이었고,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군대를 이끌고 야영했던 장소였다. 그들은 배의 갑판에서 만난 제라미의 집에 머물렀는데, 그는 유대인 신앙으로 개종한 그리스인이었다. 사도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도중에, 바로 이 집에서 제라미의 아들과 함께 겨울 내내 지내기도 했다. 그들은 같은 배를 타고 니코폴리스를 떠나서 고린도로 항해했으며, 그곳은 로마의 아가야 지방 수도였다.
3. 고린도에서
133:3.1 고린도에 도착할 즈음, 가니드는 유대 종교에 많은 흥미를 갖게 됐으며, 그래서 어느 날 유대 회당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됐을 때, 예수에게 예배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날 그들은 어느 박식한 랍비가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해 강론하는 것을 들었고, 예배가 끝난 뒤에 그리스보라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이 회당의 회당장{會堂長}이었다. 그 후에도 그들은 그 회당 예배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주로 그리스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가니드는 그리스보와 그 아내 그리고 다섯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또한 유대인이 어떻게 가족생활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133:3.2 가니드가 가족생활을 공부하는 동안, 예수는 종교 생활을 더 유익하게 하는 방법을 그리스보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예수는 진취적인 이 유대인과 20번 이상 만났으며; 여러 해 지난 후에, 바울이 바로 이 회당에서 전도하자, 유대인이 그의 복음을 배척하고 더 이상 회당에서 전도하지 못하도록 투표로 결정했으며, 그래서 그가 이방인에게로 갔을 때, 그리스보가 온 가족과 함께 새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과, 바울이 나중에 고린도에서 조직한 그리스도교 교회의 주요 지지자 가운데 하나가 됐음은, 뜻밖의 일이 아니었다.
133:3.3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전도했고, 실라와 디모데가 나중에 합세했을 때, “어느 인도 상인의 아들의 유대인 가정교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133:3.4 고린도에서 그들은 세 대륙{大陸}으로부터 온 모든 인종의 사람을 만났다.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다음으로 고린도가 지중해 제국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였다. 이 도시에는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이 많았고, 가니드는 거의 해발 2,000피트 위에 서 있는 성을 방문하기에 한 번도 싫증내지 않았다. 또한 여가시간 가운데 상당히 많은 부분을 유대 회당과 그리스보의 집에서 보냈다. 그는 유대 가정에서 여자의 위치를 알고 나서,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고 나중에는 매료됐는데; 이 젊은 인도인에게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133:3.5 예수와 가니드는 또 다른 유대인, 유스도의 집으로 자주 초대받았는데, 그는 회당 옆에서 살던 경건한 상인이었다. 그리고 훗날에 사도 바울이 여러 번 이 집에 머물게 됐는데, 거기서도 인도 청년과 그의 유대인 가정교사가 이렇게 여러 번 방문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한편 바울과 유스도는 그토록 현명하고 뛰어난 히브리인 선생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133:3.6 로마에 있을 때, 가니드는 예수가 그들과 함께 공중목욕탕에 가기를 거절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 후에 이 젊은이는, 성{性}관계에 대해 예수가 좀 더 자기 의견을 표현하도록 여러 번 유도하려고 애썼다. 소년의 질문에 대답하려했지만, 그는 이런 주제에 대해 길게 토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듯 했다. 어느 날 저녁, 고린도에서 산보하다가 성벽이 바다로 이어지는 곳 가까이 갔을 때, 두 매춘부가 말을 걸어왔다. 당연히, 가니드는 예수가 높은 이상{理想}을 가진 사람이요, 부정하거나 악의 기미가 있는 모든 것을 혐오한다는 인식에 젖어있었으며; 따라서 이 여자들에게 호되게 소리치면서, 비키라고 거칠게 손짓했다. 이것을 본 예수가 가니드에게 말했다; “너는 좋은 뜻으로 말했겠지만, 저희가 어쩌다가 잘못을 저지른 자녀가 됐다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렇게 주제넘게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이 여자들을 판단하겠느냐?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수단에 의지하도록 저희를 몰아붙인 모든 상황을, 네가 과연 알 수 있느냐? 우리가 이런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 여기 잠시 멈추자꾸나.” 매춘부들은 가니드의 말보다 오히려 예수의 말에 더 놀랐다.
133:3.7 달빛 아래 서 있는 동안, 예수는 말씀을 계속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선물인 신성한 영이, 모든 인간 정신 속에 거하고 있다. 이 선한 영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분을 알도록 도와주려고 늘 애쓰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필사자 안에는 타고난 육체적 성향도 많이 있는데, 개인과 종족의 안녕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창조주가 넣어줬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들이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그리고 이기심과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야하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쓸 때, 종종 혼란을 겪는다. 가니드야, 나는 이 두 여자 가운데 아무도 의도적으로 사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표정으로 짐작하건대, 저희는 많은 슬픔을 체험했으며; 외견상 잔인한 운명의 손에 많은 고통을 겪었으며; 이런 종류의 삶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으며;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낙망하여 당시 상황에 굴복했고, 저희에게 절망적으로 보이는 어떤 환경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으로, 어쩔 수 없는 이런 생계 수단에 의지해왔다. 가니드야, 어떤 자들은 진심으로 사악하며; 비열한 일을 고의로 선택하지만, 지금 이렇게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나쁘거나 사악한 무엇을 발견하는지 나에게 말해보겠느냐?” 예수가 대답을 들으려고 말을 멈추자, 가니드는 목이 메어 더듬거리면서 간신히 대답했다: “아니요, 선생님,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저희에게 무례했음을 사과드립니다--저희에게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저희를 용서하셨음을 내가 아버지 대신 말하는 것처럼, 저희가 너를 용서했음을 저희를 대신해서 내가 말하겠다. 자, 너희 모두 나와 함께 친구 집으로 가서, 간단한 음식을 청한 후에, 앞으로의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자.” 깜짝 놀란 여자들은 이때까지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서로 쳐다보다가 남자들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133:3.8 예수가 가니드와 낯선 두 사람을 데리고 이런 늦은 시간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을 때, 유스도의 아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보라: “이 시간에 온 우리를 용서하고, 가니드와 나에게 음식을 조금 주기 바라며, 새로 만난 이 친구들과 나눠먹으려고 하는데, 저들도 아마 배가 고플 것이며; 이 모든 것 외에도, 이 여자들이 새 삶을 시작하도록 돕는 최선의 방법을 우리가 함께 의논하는 일에, 너희도 관심을 가지리라 생각해서 너희에게 왔다. 저들이 너희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저들이 많은 곤경을 겪었다는 것과, 여기 너희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저들이 얼마나 열렬하게 선한 사람을 알고 싶어 하는지 입증한다는 것을, 그리고 저들이 얼마만큼 용감하며 고상한 여자가 될 수 있는지를, 온 세상에 --하늘에서 천사들에게까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일지, 나는 짐작한다.”
133:3.9 유스도의 아내인 마르다가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자, 예수는 뜻밖에 작별을 고하면서 말했다: “시간이 늦었고, 또한 이 젊은이의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지고자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인 너희--곧 세 여자를-- 여기에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이 세상에서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그리고 저 높은 곳의 영원한 생애를 위하여 계획하는 동안, 너희가 영적 안내를 받도록 기도하겠다.”
133:3.10 이렇게 해서 예수와 가니드는 여자들로부터 떠났다. 이때까지 두 매춘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가니드 역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마르다도 그랬지만, 곧 그 상황에 대처했고, 예수가 기대했던 모든 일을, 이 낯선 사람들을 위하여 이행했다. 이 두 여자 중에서 연장자는 그 후에 곧 영원한 생존에 대한 밝은 희망을 안고 세상을 떠났고, 어린 여자는 유스도의 일터에서 일했고, 나중에는 고린도의 첫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일평생 봉사했다.
133:3.11 예수와 가니드는 그리스보의 집에서 가이우스라는 사람을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는 나중에 바울의 충실한 후원자가 됐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두 달 동안 수십 명의 훌륭한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눴고,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접촉의 결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반 이상은, 훗날 그리스도교인 공동체의 일원이 됐다.
133:3.12 처음 고린도에 갔을 때, 바울은 장기간 방문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책무를 위해, 유대인 개인교사가 얼마나 길을 잘 준비해 놓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더욱이,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이미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아굴라는 로마에 있을 때 예수와 접촉했던 견유학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부부는 로마에서 온 유대인 피난민이었고, 바울의 교훈을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그들 역시 천막 짓는 자였으므로, 바울은 그들과 함께 살면서 같이 일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 체류 기간을 연장하게 됐다.
133:4.1 예수와 가니드는 고린도에서 재미있는 체험을 더 많이 했다. 수많은 사람과 친밀한 대화를 나눴고, 이들은 예수에게서 받은 훈육으로 큰 유익을 얻었다.
133:4.2 제분업자에게, 삶의 체험이라는 제분기에 진리의 알곡을 제분하는 것에 관해서 가르침으로써, 동료 필사자들 가운데 약하고 힘없는 사람도 신성한 삶에서 어려운 사항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예수가 말했다: “영적 깨달음이 젖먹이 수준에 있는 자에게는 진리의 젖을 줘라. 활기차게 사랑으로 봉사를 할 때 너에게 질문하는 각 사람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맞춰서 영적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제공해라.”
133:4.3 로마 백부장에게 말했다: “가이사에게 속한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오직 신격만이 요구할 수 있는 공경을, 가이사가 스스로 취하려고 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 진지하게 예배드리는 것과 황제를 충실히 섬기는 것은 충돌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자격 있는 황제에게 바치는 너의 헌신을 더욱 충성되고 신실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133:4.4 미드라교의 진지한 지도자에게 말했다: “영원한 구원의 종교를 찾는 일에는 네가 잘 하고 있지만, 사람이_만든 신비와 인간 철학에서 그런 영광스런 진리를 찾으러 다니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영원한 구원의 신비가, 바로 너의 혼 속에 거하고 있음을 모르느냐?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이 네 안에 거하도록 보내셨다는 것과, 진리를_사랑하고 하나님께_봉사하는 모든 필사자를, 이 생애로부터 죽음의 문턱을 지나서, 자녀들을 맞이하려고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영원한 빛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 영이 인도할 것을 모르겠느냐? 결코 잊지 말라: 너희가 그분처럼 되기를 진정으로 열망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다.”
133:4.5 에피쿠로스학파 선생에게 말했다: “최선을 선택하고 선을 존중하는 일에는 네가 잘 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인식함에서 유래되고 영 영역에 구현된, 필사자 생애에서 더 중요한 것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네가 현명할 수 있겠느냐? 인간의 모든 체험 중에서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실현함이요, 그의 영은 네 안에 거하면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 모든 창조의 하나님, 우주들의 주{主}를 직접 만나기까지 길고 거의 끝없는 여정에서, 너를 인도하고자 애쓰고 있다.”
133:4.6 청부업자요 건축가인 그리스인에게 말했다: “친구여, 사람들의 물질 건물을 짓는 것처럼, 너의 혼 속에 있는 신성한 영을 닮도록 영적 성품을 성장시켜라. 이 세상에서 건축가로서 성공하는 것이, 하늘 나라의 영적 아들이 되는 것보다 앞서지 않도록 해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시간세계에서 저택을 짓는 동안, 너 자신을 위한 영원한 맨션의 소유권을 확보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 의로움과 진리가 기초를 이루는 도성{都城}, 하나님이 설립하고 건설하신 도성이 있음을 항상 명심해라.”
133:4.7 로마 재판관에게 말했다: “네가 사람들을 재판하듯이, 너 자신도 언젠가 우주 통치자들의 피고석에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라. 너도 언젠가 지존하신 중재자의 손에서 자비로운 배려를 간청하게 될 것이니, 공정하게, 아니 자비롭게 판결하라. 글자 그대로의 법으로만 아니라, 법의 정신에 안내를 받아서, 너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서 재판받듯이 판결하도록 해라. 그리고 너의 앞에 불려온 자들의 어려운 입장을 고려하여 공정함으로 조절된 공의를 베푼 것만큼, 너도 언젠가 온 세상의 재판관 앞에 서서, 자비로 완화된 응보를 기대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133:4.8 그리스 여인숙{旅人宿}의 여주인에게 말했다: “지고자의 자녀들을 대접하는 자로서 친절을 베풀도록 해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려고 내려온 영이 내주하는 사람들 안에 계신 하나님께 네가 봉사하고 있음을 더욱 깊이 깨달음으로써, 일상적인 단조롭고 힘든 일을 예술적인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며, 그리하여 저희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혼을 인도하여, 이 모든 선물, 즉 신성한 영을 증여하신 낙원 아버지를 알게 하라.”
133:4.9 예수는 어느 중국인 상인과 여러 차례 만났다. 작별을 고하면서 권고했다: “너의 진정한 영 조상이신 하나님만 경배해라. 아버지의 영이 네 안에 항상 거하시고, 너의 혼의_방향을 하늘 쪽으로 늘 가리키고 있음을 잊지 말라.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불멸하는 이 영의 인도를 따른다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향상된 길을 계속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도달한다면, 그것은 네가 그를 찾음으로써 점점 더 그분처럼 됐기 때문이다. 챙아, 잘 가거라, 하지만 오직 잠시뿐이니, 영혼들의 아버지께서, 낙원으로_가는 자들을 위하여 매혹적인 여러 정류장을 마련해 놓으신 빛의 세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133:4.10 영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말했다: “형제여, 보아하니 너는 진리를 찾고 있고, 모든 진리의 아버지의 영이 지금 네 안에 거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다. 너는 자신의 혼 안에 있는 그 영과 이야기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한 적이 있느냐? 그런 일은 정말로 어렵고, 성공했음을 의식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런 놀라운 인간 체험 대부분은,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혼 속에 초의식적으로 등록된 채로 반드시 오랫동안 남아있을지라도, 내주하는 영과 교통하려는 물질 정신의 진실한 모든 시도는 확실히 성공한다.”
133:4.11 가출한 소년에게 예수가 말했다: “너는 두 가지로부터--곧 하나님과 너 자신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라. 어디로 가든지, 너는 너 자신 그리고 네 마음 속에 거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과 함께 있다. 얘야, 자신을 속이는 일을 멈추고; 삶의 실상에 용감하게 직면하기에 익숙해지도록 정진하며; 내가 가르친 대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신분이고 확실히 영생할 것이라는 확신을 굳게 가져라. 오늘부터 진정한 남자, 용감하고 총명하게 인생에 대처하기로 각오한 남자가 되겠다고 결심해라.”
133:4.12 그는 죄가 확정된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형제여, 너는 불운을 당했다. 길을 잃었고; 범죄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너와 이야기한 결과, 이 세상 목숨으로 갚아야 할 만한 짓을 네가 계획적으로 행하지 않았음을 잘 알게 됐다. 그러나 너는 이 악행을 저질렀고, 동료들은 너를 죄인으로 심판했으며; 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너나 나나, 국가가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자체를_방어할 이 권리를 가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적으로는 너의 잘못에 대한 벌을 피할 길이 없는 것 같다. 동료들은 너의 행위에 따라 판단했지만, 네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심판관이 있는데, 그는 너의 진짜 동기 그리고 더 나은 의도에 의거해서 심판할 것이다. 너의 참회가 순수하고 너의 신앙이 진지하다면, 너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너의 실수로 인해 사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은, 하늘 법정에서 너의 혼이 온당한 상벌을 받고 자비를 누릴 기회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133:4.13 예수는 여기에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굶주린 혼과 여러 차례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세 여행자는 고린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교육 중심지로서 더 많이 알려진 아테네를 제외하면, 고린도는 이런 로마 통치 시대에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고, 번성하는 이 상업 도시에서 두 달 머무는 동안에, 세 사람 모두 값진 체험을 할 기회를 많이 가졌다. 이 도시에 머문 것은, 로마로부터 돌아가는 길에 이뤄진 가장 흥미로운 체류들 가운데 하나였다.
133:3.9 유스도의 아내인 마르다가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자, 예수는 뜻밖에 작별을 고하면서 말했다: “시간이 늦었고, 또한 이 젊은이의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지고자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인 너희--곧 세 여자를-- 여기에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이 세상에서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그리고 저 높은 곳의 영원한 생애를 위하여 계획하는 동안, 너희가 영적 안내를 받도록 기도하겠다.”
133:3.10 이렇게 해서 예수와 가니드는 여자들로부터 떠났다. 이때까지 두 매춘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가니드 역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마르다도 그랬지만, 곧 그 상황에 대처했고, 예수가 기대했던 모든 일을, 이 낯선 사람들을 위하여 이행했다. 이 두 여자 중에서 연장자는 그 후에 곧 영원한 생존에 대한 밝은 희망을 안고 세상을 떠났고, 어린 여자는 유스도의 일터에서 일했고, 나중에는 고린도의 첫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일평생 봉사했다.
133:3.11 예수와 가니드는 그리스보의 집에서 가이우스라는 사람을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는 나중에 바울의 충실한 후원자가 됐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두 달 동안 수십 명의 훌륭한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눴고,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접촉의 결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반 이상은, 훗날 그리스도교인 공동체의 일원이 됐다.
133:3.12 처음 고린도에 갔을 때, 바울은 장기간 방문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책무를 위해, 유대인 개인교사가 얼마나 길을 잘 준비해 놓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더욱이,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이미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아굴라는 로마에 있을 때 예수와 접촉했던 견유학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 부부는 로마에서 온 유대인 피난민이었고, 바울의 교훈을 신속하게 받아들였다. 그들 역시 천막 짓는 자였으므로, 바울은 그들과 함께 살면서 같이 일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바울은 고린도 체류 기간을 연장하게 됐다.
4. 고린도에서 개인 업무
133:4.1 예수와 가니드는 고린도에서 재미있는 체험을 더 많이 했다. 수많은 사람과 친밀한 대화를 나눴고, 이들은 예수에게서 받은 훈육으로 큰 유익을 얻었다.
133:4.2 제분업자에게, 삶의 체험이라는 제분기에 진리의 알곡을 제분하는 것에 관해서 가르침으로써, 동료 필사자들 가운데 약하고 힘없는 사람도 신성한 삶에서 어려운 사항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예수가 말했다: “영적 깨달음이 젖먹이 수준에 있는 자에게는 진리의 젖을 줘라. 활기차게 사랑으로 봉사를 할 때 너에게 질문하는 각 사람에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맞춰서 영적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제공해라.”
133:4.3 로마 백부장에게 말했다: “가이사에게 속한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께 속한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오직 신격만이 요구할 수 있는 공경을, 가이사가 스스로 취하려고 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 진지하게 예배드리는 것과 황제를 충실히 섬기는 것은 충돌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자격 있는 황제에게 바치는 너의 헌신을 더욱 충성되고 신실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133:4.4 미드라교의 진지한 지도자에게 말했다: “영원한 구원의 종교를 찾는 일에는 네가 잘 하고 있지만, 사람이_만든 신비와 인간 철학에서 그런 영광스런 진리를 찾으러 다니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영원한 구원의 신비가, 바로 너의 혼 속에 거하고 있음을 모르느냐?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이 네 안에 거하도록 보내셨다는 것과, 진리를_사랑하고 하나님께_봉사하는 모든 필사자를, 이 생애로부터 죽음의 문턱을 지나서, 자녀들을 맞이하려고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영원한 빛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이 영이 인도할 것을 모르겠느냐? 결코 잊지 말라: 너희가 그분처럼 되기를 진정으로 열망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다.”
133:4.5 에피쿠로스학파 선생에게 말했다: “최선을 선택하고 선을 존중하는 일에는 네가 잘 하고 있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인식함에서 유래되고 영 영역에 구현된, 필사자 생애에서 더 중요한 것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네가 현명할 수 있겠느냐? 인간의 모든 체험 중에서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실현함이요, 그의 영은 네 안에 거하면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 모든 창조의 하나님, 우주들의 주{主}를 직접 만나기까지 길고 거의 끝없는 여정에서, 너를 인도하고자 애쓰고 있다.”
133:4.6 청부업자요 건축가인 그리스인에게 말했다: “친구여, 사람들의 물질 건물을 짓는 것처럼, 너의 혼 속에 있는 신성한 영을 닮도록 영적 성품을 성장시켜라. 이 세상에서 건축가로서 성공하는 것이, 하늘 나라의 영적 아들이 되는 것보다 앞서지 않도록 해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시간세계에서 저택을 짓는 동안, 너 자신을 위한 영원한 맨션의 소유권을 확보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 의로움과 진리가 기초를 이루는 도성{都城}, 하나님이 설립하고 건설하신 도성이 있음을 항상 명심해라.”
133:4.7 로마 재판관에게 말했다: “네가 사람들을 재판하듯이, 너 자신도 언젠가 우주 통치자들의 피고석에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라. 너도 언젠가 지존하신 중재자의 손에서 자비로운 배려를 간청하게 될 것이니, 공정하게, 아니 자비롭게 판결하라. 글자 그대로의 법으로만 아니라, 법의 정신에 안내를 받아서, 너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서 재판받듯이 판결하도록 해라. 그리고 너의 앞에 불려온 자들의 어려운 입장을 고려하여 공정함으로 조절된 공의를 베푼 것만큼, 너도 언젠가 온 세상의 재판관 앞에 서서, 자비로 완화된 응보를 기대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133:4.8 그리스 여인숙{旅人宿}의 여주인에게 말했다: “지고자의 자녀들을 대접하는 자로서 친절을 베풀도록 해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려고 내려온 영이 내주하는 사람들 안에 계신 하나님께 네가 봉사하고 있음을 더욱 깊이 깨달음으로써, 일상적인 단조롭고 힘든 일을 예술적인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며, 그리하여 저희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혼을 인도하여, 이 모든 선물, 즉 신성한 영을 증여하신 낙원 아버지를 알게 하라.”
133:4.9 예수는 어느 중국인 상인과 여러 차례 만났다. 작별을 고하면서 권고했다: “너의 진정한 영 조상이신 하나님만 경배해라. 아버지의 영이 네 안에 항상 거하시고, 너의 혼의_방향을 하늘 쪽으로 늘 가리키고 있음을 잊지 말라.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불멸하는 이 영의 인도를 따른다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향상된 길을 계속 걷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도달한다면, 그것은 네가 그를 찾음으로써 점점 더 그분처럼 됐기 때문이다. 챙아, 잘 가거라, 하지만 오직 잠시뿐이니, 영혼들의 아버지께서, 낙원으로_가는 자들을 위하여 매혹적인 여러 정류장을 마련해 놓으신 빛의 세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133:4.10 영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말했다: “형제여, 보아하니 너는 진리를 찾고 있고, 모든 진리의 아버지의 영이 지금 네 안에 거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다. 너는 자신의 혼 안에 있는 그 영과 이야기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한 적이 있느냐? 그런 일은 정말로 어렵고, 성공했음을 의식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런 놀라운 인간 체험 대부분은,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혼 속에 초의식적으로 등록된 채로 반드시 오랫동안 남아있을지라도, 내주하는 영과 교통하려는 물질 정신의 진실한 모든 시도는 확실히 성공한다.”
133:4.11 가출한 소년에게 예수가 말했다: “너는 두 가지로부터--곧 하나님과 너 자신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라. 어디로 가든지, 너는 너 자신 그리고 네 마음 속에 거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과 함께 있다. 얘야, 자신을 속이는 일을 멈추고; 삶의 실상에 용감하게 직면하기에 익숙해지도록 정진하며; 내가 가르친 대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신분이고 확실히 영생할 것이라는 확신을 굳게 가져라. 오늘부터 진정한 남자, 용감하고 총명하게 인생에 대처하기로 각오한 남자가 되겠다고 결심해라.”
133:4.12 그는 죄가 확정된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형제여, 너는 불운을 당했다. 길을 잃었고; 범죄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너와 이야기한 결과, 이 세상 목숨으로 갚아야 할 만한 짓을 네가 계획적으로 행하지 않았음을 잘 알게 됐다. 그러나 너는 이 악행을 저질렀고, 동료들은 너를 죄인으로 심판했으며; 너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너나 나나, 국가가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자체를_방어할 이 권리를 가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인간적으로는 너의 잘못에 대한 벌을 피할 길이 없는 것 같다. 동료들은 너의 행위에 따라 판단했지만, 네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심판관이 있는데, 그는 너의 진짜 동기 그리고 더 나은 의도에 의거해서 심판할 것이다. 너의 참회가 순수하고 너의 신앙이 진지하다면, 너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너의 실수로 인해 사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은, 하늘 법정에서 너의 혼이 온당한 상벌을 받고 자비를 누릴 기회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다.”
133:4.13 예수는 여기에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굶주린 혼과 여러 차례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세 여행자는 고린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교육 중심지로서 더 많이 알려진 아테네를 제외하면, 고린도는 이런 로마 통치 시대에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고, 번성하는 이 상업 도시에서 두 달 머무는 동안에, 세 사람 모두 값진 체험을 할 기회를 많이 가졌다. 이 도시에 머문 것은, 로마로부터 돌아가는 길에 이뤄진 가장 흥미로운 체류들 가운데 하나였다.
133:4.14 고노드는 고린도에서 이해관계{利害關係}가 많이 있었지만, 마침내 용무를 모두 마쳤으며, 그들은 아테네로 항해할 준비를 했다. 작은 배로 여행했는데, 그 배는 고린도의 한 항구에서 10마일 정도 떨어진 다른 항구까지, 육로로 옮겨질 수 있었다.
133:5.1 그들은 곧 그리스의 과학과 학문의 옛 중심지에 도착했고, 가니드는 아테네{아덴}에, 그리스에 와있다는 생각으로 흥분했는데, 그리스는 한때 알렉산더 제국의 문화 중심지였으며, 그 제국의 경계는 그의 나라인 인도까지 뻗어있었다. 거래할 용무는 거의 없었으며; 그래서 고노드는, 흥미 있는 여러 장소를 방문하고, 소년과 다재다능한 선생의 흥미로운 토의에 귀 기울이면서, 예수와 가니드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33:5.2 한 큰 대학이 아테네에서 여전히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세 사람은 그 배움의 전당을 자주 방문했다.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에서 여러 강의에 참석했을 때, 예수와 가니드는 플라톤의 가르침에 대해 면밀히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 예술작품을 감상했는데, 그 견본들을 여전히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133:5.3 그 아버지와 아들은, 어느 날 저녁에 숙소에서 예수가 어느 그리스 철학자와 과학에 대하여 토의하는 것을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이 현학자가 거의 세 시간 이야기한 후에 강의를 마치자 예수가 말했는데, 현대 사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133:5.4 과학자들이 언젠가, 인력{引力}, 빛, 그리고 전류가 에너지 또는 힘으로 형태화되는 것을 측정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과학자들은 이런 우주 현상이 무엇인지 결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물리적_에너지 활동을 다루며; 종교는 영원한 가치를 다룬다. 진정한 철학은 지혜로부터 생기며, 지혜는 이런 양적 관찰과 질적 관찰을 연관시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순전히 자연법칙을 따르는 과학자는, 영적으로 눈 먼 것은 그만 두고라도, 수학적 자만과 자기중심의 통계라는 병에 걸리게 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133:5.5 논리는 물질 세상에서 유효하고, 수학은 물질적인 것에 제한적으로 적용될 경우에만 확실하지만; 생명의 문제에 적용될 경우에는 두 가지 모두, 전적으로 신뢰할 만 하다거나 절대로 확실하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생명은 전혀 물질적이지 않은 현상을 포함한다. 한 사람이 양 한 마리의 털을 10분 만에 깎는다면, 수학은 열 사람이 그 양 털을 1분 만에 깎을 수 있다고 말한다. 수학적으로는 맞지만 사실이 아닌데, 열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들이 서로 방해가 되어 일이 매우 지연될 것이기 때문이다.
5. 아테네에서--과학에 관한 강론
133:5.1 그들은 곧 그리스의 과학과 학문의 옛 중심지에 도착했고, 가니드는 아테네{아덴}에, 그리스에 와있다는 생각으로 흥분했는데, 그리스는 한때 알렉산더 제국의 문화 중심지였으며, 그 제국의 경계는 그의 나라인 인도까지 뻗어있었다. 거래할 용무는 거의 없었으며; 그래서 고노드는, 흥미 있는 여러 장소를 방문하고, 소년과 다재다능한 선생의 흥미로운 토의에 귀 기울이면서, 예수와 가니드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33:5.2 한 큰 대학이 아테네에서 여전히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세 사람은 그 배움의 전당을 자주 방문했다.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에서 여러 강의에 참석했을 때, 예수와 가니드는 플라톤의 가르침에 대해 면밀히 토론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 예술작품을 감상했는데, 그 견본들을 여전히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133:5.3 그 아버지와 아들은, 어느 날 저녁에 숙소에서 예수가 어느 그리스 철학자와 과학에 대하여 토의하는 것을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이 현학자가 거의 세 시간 이야기한 후에 강의를 마치자 예수가 말했는데, 현대 사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133:5.4 과학자들이 언젠가, 인력{引力}, 빛, 그리고 전류가 에너지 또는 힘으로 형태화되는 것을 측정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과학자들은 이런 우주 현상이 무엇인지 결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물리적_에너지 활동을 다루며; 종교는 영원한 가치를 다룬다. 진정한 철학은 지혜로부터 생기며, 지혜는 이런 양적 관찰과 질적 관찰을 연관시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순전히 자연법칙을 따르는 과학자는, 영적으로 눈 먼 것은 그만 두고라도, 수학적 자만과 자기중심의 통계라는 병에 걸리게 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133:5.5 논리는 물질 세상에서 유효하고, 수학은 물질적인 것에 제한적으로 적용될 경우에만 확실하지만; 생명의 문제에 적용될 경우에는 두 가지 모두, 전적으로 신뢰할 만 하다거나 절대로 확실하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생명은 전혀 물질적이지 않은 현상을 포함한다. 한 사람이 양 한 마리의 털을 10분 만에 깎는다면, 수학은 열 사람이 그 양 털을 1분 만에 깎을 수 있다고 말한다. 수학적으로는 맞지만 사실이 아닌데, 열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들이 서로 방해가 되어 일이 매우 지연될 것이기 때문이다.
133:5.6 한 사람이 어떤 한 단위의 지적 및 도덕적 가치를 나타낸다면, 수학은 열 사람이 열 배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격체를 다룰 때에는, 그런 인격체 협동은 단순한 산술{算術}
합계라기보다, 오히려 관련된 인격체들의 수를 제곱한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협조하여 조화롭게 일하는 인간들의 사회집단은, 그 부분들의 단순 합계보다 훨씬 큰 힘을 나타낸다.
133:5.7 양{量}은 사실로 증명될 수 있고, 그래서 과학적 균일성을 갖추게 된다. 질{質}은 정신 해석의 문제이므로 가치에 대한 평가를 나타내며, 따라서 개인의 체험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과학과 종교가 모두 독단을 줄이고 비평을 더 너그럽게 대할 때, 철학은 비로소 통일되어 우주를 지성적으로 파악할 것이다.
133:5.8 네가 광대무변한 우주 작용을 실제로 식별할 수만 있다면, 그 우주에 통일성이 있음을 알리라. 실재하는 우주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우호적이다. 진짜 문제는: 사람의 유한한 정신이, 논리적이고 진실하고 일치하는 사고{思考}의 통일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양적인 사실과 질적인 가치가 낙원 아버지 안에서 공통의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우주를_아는 이 정신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실체에 대한 그런 생각은, 우주 현상에 목적 있는 통일성이 있음을 더 폭넓게 통찰할 수 있게 하며; 인격이 점진적으로 성취하는 영적 목표까지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 변하는 비인격적 관계와 진화하는 인격적 관계로 이뤄진, 생생한 우주의 변하지 않는 배경을 감지할 수 있는 통일성 개념이다.
133:5.7 양{量}은 사실로 증명될 수 있고, 그래서 과학적 균일성을 갖추게 된다. 질{質}은 정신 해석의 문제이므로 가치에 대한 평가를 나타내며, 따라서 개인의 체험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과학과 종교가 모두 독단을 줄이고 비평을 더 너그럽게 대할 때, 철학은 비로소 통일되어 우주를 지성적으로 파악할 것이다.
133:5.8 네가 광대무변한 우주 작용을 실제로 식별할 수만 있다면, 그 우주에 통일성이 있음을 알리라. 실재하는 우주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우호적이다. 진짜 문제는: 사람의 유한한 정신이, 논리적이고 진실하고 일치하는 사고{思考}의 통일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양적인 사실과 질적인 가치가 낙원 아버지 안에서 공통의 인과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우주를_아는 이 정신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실체에 대한 그런 생각은, 우주 현상에 목적 있는 통일성이 있음을 더 폭넓게 통찰할 수 있게 하며; 인격이 점진적으로 성취하는 영적 목표까지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 변하는 비인격적 관계와 진화하는 인격적 관계로 이뤄진, 생생한 우주의 변하지 않는 배경을 감지할 수 있는 통일성 개념이다.
133:5.9 물질과 영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상태는, 실재하는 우주가 진정으로 통일되는, 서로 관계되고 서로 어울리는 세 수준이다. 사실과 가치라는 우주 현상이 얼마나 확산돼있는가에 상관없이, 이것들은 결국 지존자 안에서 통합된다.
133:5.10 물질 존재의 실체성은, 눈에 보이는 사물뿐 아니라, 인식되지 않는 에너지에도 부여된다. 우주 에너지의 속도가 매우 느려져서 필수 운동량만 갖게 되면, 바로 이 에너지는, 적당한 조건 아래서 물체가 된다. 그리고 명백한 실체의 현존을 독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정신 자체도 역시 실제임을 잊지 말라. 에너지_물체와 정신과 영으로 구성된 이 우주의 근본적인 근원은 영원하다--만유의 아버지 그리고 그와 절대로 동등한 자들의 본성과 반응 안에 실존하고, 또한 그런 것으로 구성돼있다.
133:5.11 그들은 모두 예수의 말에 몹시 경탄했으며, 그리스인이 떠나면서 말했다: “인종적 우월감과 상관없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종교 외에 무언가 이야기하는 유대인을 마침내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133:5.12 아테네에 체류한 것은 즐겁고 유익했으나, 사람들과 가진 접촉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허다한 아테네인이, 지난 시절의 명성에 관해 지적 자만심을 가졌든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어리석고 무지했는데, 그리스가 영광을 누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지혜가 있었던 초기 시절의 열등한 노예들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아테네 시민 가운데 명민한 지성인이 여전히 많이 있었다.
133:6.1 아테네를 떠난 여행자들은 드로아를 경유하여,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 수도인 에베소로 갔다. 도시에서 2마일 가량 떨어져있는, 에베소인의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전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아르테미스는 소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여신{女神}이었고, 고대 아나톨리아 시대의 초기 어머니 여신이 존속되어 내려온 것이었다. 그 여신을 숭배하려고 바친 거대한 사원에 전시된 조잡한 우상들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가니드는 일찍부터 형상들을 신성{神性}의 상징으로 존중하도록 훈련받았고, 이것을 모두 버리지는 못했으며, 소아시아의 이 다산{多産}의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은으로 만든 작은 성물함{聖物函}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그들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물건을 숭배하는 것에 대해 밤늦도록 이야기했다.
133:6.2 거기 머물던 셋째 날에, 그들은 항만 입구를 준설{浚渫}하는 것을 보려고 강을 따라서 걸어 내려갔다. 한낮에,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매우 낙심된 한 젊은 페니키아인과 이야기했으나;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상사로 승진을 임명받은 어떤 젊은이를 시기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하면서, 히브리의 옛 속담을 인용했다: “재능이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존귀한 자들 앞으로 그를 인도한다.”
133:6.3 이 지중해 여행 동안 방문했던 모든 큰 도시 중에서 그들이 여기서 얻은 성과는, 훗날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업적에 가장 가치가 적었다. 그리스도교가 에베소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바울의 노력을 통해서였는데, 그는 여기서 2년 이상 살았고,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종교와 철학에 관하여, 두란노 학파의 주요 접견실에서 매일 밤 강의했다.
133:6.4 이 지역의 철학 학파와 관련된 한 진취적 사상가가 있었고, 예수는 그와 몇 차례 유익한 회합을 가졌다. 이런 대화 도중에, 예수는 “혼”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이 박식한 그리스인은 마침내 그에게, 무슨 의미로 “혼”이라는 말을 쓰는지 물었고, 대답은 이랬다:
133:6.5 “혼은 사람이 자아를_돌아보고, 진리를_분별하고, 영을_인식하는 부분인데, 이것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동물 세계의 수준보다 높이 올려놓는다. 자아_의식 그 자체는 혼이 아니다. 도덕적 자아_의식은, 인간의 참된 자아_실현이고 인간 혼의 기초를 이루며, 혼은, 인간의 체험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가치를 나타내는, 사람의 그 부분이다. 도덕적 선택과 영적 달성, 즉 하나님을 아는 역량과 그와 같이 되고자하는 충동이 혼의 특질이다. 사람의 혼은 도덕적 사고{思考}와 영적 활동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침체된 혼은 죽어가는 혼이다. 그러나 사람의 혼은 정신에 내주하고 있는 신성한 영과는 구별된다. 신성한 영은, 인간 정신의 첫 도덕적 활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도착하며, 바로 그때 혼이 탄생된다.
133:6.6 “혼의 구원 또는 소멸은, 도덕적 의식이, 그와 관련된 불멸하는 영 재능과 영원히 연합하여, 생존하는 자격을 달성 했는가 못했는가에 달려 있다. 구원은 도덕적 의식의 자아_실현이 영성화{靈性化}되는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 생존 가치를 소유하게 된다. 혼이 겪는 온갖 형태의 갈등은, 도덕적이거나 영적인 자아_의식과, 순수하게 지적인 자아_의식 사이에 조화가 부족해서 생긴다.
133:6.7 “인간의 혼은, 성숙하고 고상해지고 영성화됐을 때,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즉 물질 자아와 신성한 영 사이에 개재{介在}하는 실재라 해도 좋을 정도라는 의미에서, 천상{天上}의 신분에 가깝다. 인간의 진화하는 혼은, 물질을 연구하거나 영적 증명 방법으로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보여주기는 더 어렵다. 물질 과학은 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순수한 영_실험도 그럴 수 없다. 물질 과학과 영적 기준이 인간 혼의 실재{實在}를 발견할 수 없음에도, 도덕 의식을 지닌 필사자는 누구든지, 실재하고 실제로 몸소 겪는 체험, 즉 자신의 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133:7.1 여행자들은 곧 키프로스{구브로}를 향해서 항해했고, 로데에 잠시 들렸다. 긴 해상{海上} 여행은 즐거웠으며, 그들은 육신을 충분히 쉬게 하고 기분을 새롭게 한 상태에서, 목적지인 그 섬에 도착했다.
133:7.2 지중해 여행이 거의 끝 무렵에 가까웠으므로, 키프로스 방문에서는 단지 휴식하면서 즐길 계획이었다. 그들은 바보에 상륙했고, 가까운 산에서 몇 주간 지내려고 곧바로 생필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도착한 지 3일 만에, 물건을 적당하게_실은 동물들과 함께 산으로 떠났다.
133:7.3 세 사람은 두 주 동안 매우 즐겁게 보냈는데, 어린 가니드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몹시 앓게 됐다. 두 주 동안 심한 열로 고생했고, 가끔 헛소리도 했으며; 예수와 고노드는 병자를 간호하기에 바빴다. 예수는 솜씨 있으면서도 친절하게 소년을 돌봤고, 아버지는 괴로워하는 소년을 돌보는 모든 일에서 예수의 관대함과 능숙함에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인가{人家}에서 멀리 있었고, 소년의 병이 너무 심해서 옮길 수도 없었으므로; 산 속에서 소년이 회복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돌보려고 준비했다.
133:7.4 가니드의 건강이 회복되던 3주 동안, 예수는 그에게 자연과 그 여러 변화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산을 거닐면서 소년이 여러 질문을 던지고 예수가 대답하는 동안, 소년의 아버지는 이 모든 과정에 감탄했으며, 그들이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133:7.5 산에 머물던 마지막 주간에, 예수와 가니드는 인간 정신의 기능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시간의 토의가 있은 후에 소년이 질문했다: “그렇지만 선생님, 사람이 고등동물보다 더 고귀한 형태의 자아_의식을 체험한다고 말씀했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고 예수의 대답을 현대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133:7.6 얘야, 사람의 정신과 그 안에 거하는 신성한 영에 대하여, 이미 너에게 많이 말해줬지만, 지금은 자아_의식이 하나의 실체임을 강조하려고 한다. 어떤 동물이든지, 자아를_의식하게 되면 원시인이 된다. 그런 달성은 인격아닌 에너지, 그리고 영을_느끼는 정신, 이 둘 사이의 작용을 조정함으로 이뤄지고, 바로 이 현상이, 한 절대 초점{焦點},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을, 인간의 인격에게 증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133:7.7 관념은 단순히 감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관념은 인격있는 자아가 사려 깊은 해석을 감각에 덧붙인 것이며; 자아는 사람이 가진 감각의 전체 합계보다 더 큰 것이다. 진화하는 자아성 안에는 통일로 접근하는 무엇이 비로소 생기고, 그 통일은 절대 통일의 일부분인 내주하는 현존으로부터 파생되는데, 동물에서_기원된 그런 자아를_의식하는 정신을 영적으로 활성화시킨다.
133:7.8 동물에 불과한 존재는 시간을 스스로_의식할 수 없다. 동물은 관련된 지각_인식과 그 기억을 생리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인간이 지성적으로 돌이켜보고 해석하여 내린 결론에 나타나는 것처럼, 감지한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거나, 이 통합된 육체적 체험들을 의도적으로 연결하는 성향을 보여주는 동물은 전혀 없다. 그리고 자아_의식이 존재한다는 이런 사실은, 나중에 영적 체험의 실체와 결합하여, 사람이 우주에서 잠재적 아들이 되게 하고 결국 그가 우주의 최상의 통일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을 예시{例示}한다.
133:7.9 그뿐 아니라, 인간의 자아는 단지 연속된 의식 상태들의 합계도 아니다. 의식을 분류하고 연결하는 기능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자아성이라는 명칭을 정당화시킬 만큼 충분한 통일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통합되지 않은 그런 정신은, 인간 신분의 의식 수준을 거의 달성할 수 없다. 의식한 것들을 연결시키는 작용이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면, 모든 사람의 정신은, 정신적 광란의 어떤 국면들이, 통제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연결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133:7.10 오직 육체 감각을 의식{意識함에서 형성된 인간 정신은, 영적 수준을 결코 달성할 수 없으며; 이런 종류의 물질 정신은, 도덕 가치를 직감하는 면에서 상당히 부족할 것이고, 사람을 영적으로 지배하는 안내 감각도 결여될 것인데, 이 안내 감각은, 시간세계에서 조화를 이루는 통일된 인격을 성취하는 데 필수이며, 영원 세계에서 생존하는 인격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133:7.11 인간 정신은 물질을 초월하는 특성을 일찍부터 나타내기 시작하며; 확실히 사려 깊은 인간 지능은 시간 제약에 완전히 묶여있지는 않다. 개인들이 인생살이에서 이룩한 업적이 무척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유전적 자질과 상이한 환경의 영향뿐 아니라, 자아가 성취한, 내주하는 아버지의 영과 얼마나 통합됐는가를 가리키며, 이것은 자아가 아버지의 영과 얼마나 일치됐는가를 재는 척도다.
133:7.12 인간 정신은 이중적 충성의 모순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 선과 악, 둘 다 섬기려고 애쓰는 체험은, 그 혼에게 심각한 부담을 안겨준다. 한없이 행복하고 효과적으로 통합된 정신이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전심으로 헌신된 정신이다. 해결되지 않은 모순은 통일을 파괴시키고 정신 분열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애쓰고, 고상한 열망을 포기하고, 영적 이상{理想}과 타협한다고 해서, 혼의 살아남는 성품이 육성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런 평화는, 참된 것이 승리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주장함으로써 달성되고, 이런 승리는, 선{善}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악{惡}을 극복함으로써 성취된다.
133:7.13 그들은 이튿날 살라미스를 향하여 떠났고, 거기서 시리아 해변의 안디옥으로 출항했다.
133:8.1 안디옥은 로마의 시리아 지방 수도였고, 제국의 총독공관이 여기에 있었다. 안디옥은 50만 인구의 도시였으며; 크기로는 제국에서 셋째였고, 사악함과 지독한 부도덕으로는 첫째였다. 고노드가 사업상 거래를 상당히 많이 했으며; 따라서 예수와 가니드는 둘이서만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다프네의 작은 숲을 제외하고, 그들은 여러 나라 말을 사용하는 이 도시 근처를 모두 둘러봤다. 고노드와 가니드는, 음란하기로 악명 높은 신전{神殿}을 방문했지만, 예수는 그들과 함께 가기를 사양했다. 그런 장면들이 인도인에게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으나, 이상을 추구하는 히브리인에게는 불쾌했다.
133:8.2 팔레스틴에 가까이 다가가고 여행이 끝나감에 따라, 예수는 차분해지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됐다. 안디옥에서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일도 거의 없었다. 왜 안디옥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느냐고 선생님에게 여러 번 질문한 끝에, 가니드는 마침내 예수에게서 이런 대답을 듣게 됐다: “이 도시는 팔레스틴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내가 여기로 언젠가 다시 올 지도 모르겠다.”
133:8.3 가니드는 안디옥에서 매우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이 젊은이는 영민한 학생임을 스스로 증명해왔고, 예수의 교훈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미 실천하기 시작했다. 안디옥에는 아버지의 사업에 관여하는 한 인도인이 살았는데, 그가 너무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불평까지 심하게 하자, 그를 내쫓는 것을 고려하게 됐다. 이 소식을 듣자, 가니드는 아버지 사업장으로 가서, 동족인 그 사람과 길게 논의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부당한 일을 시켰다고 느꼈다. 가니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여러 방면으로 그의 종교적 견해를 넓혀줬다. 그러나 가니드가 말한 모든 것 가운데, 히브리 속담을 인용한 것이 가장 효과 있었는데, 그 지혜의 말씀은 이러했다: “무엇이든지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나거든, 온 힘을 다해서 그 일을 해라.”
133:8.4 낙타 대상{隊商}에 실을 짐을 준비한 후에 시돈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다시 다마스커스를 지나, 사흘 뒤에는 모래사막을 가로지르는 긴 여행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133:9.1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隊商}여행은, 여행에_익숙한 이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낙타 20마리에 짐 싣는 일을 도와주는 것과, 짐승을 손수 이끌려고 자원하는 것을 본 후에 가니드가 외쳤다. “선생님, 당신이 하실 수 없는 일도 있을까요?” 예수는 단지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부지런한 학생 앞에서 존경받지 못할 선생은 없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고대 도시 우르를 향해 출발했다.
133:9.2 예수는 아브라함의 출생지인 우르의 초기 역사에 무척 관심을 보였고, 수싸의 유적과 전통에 대해서도 똑같이 매료됐으므로, 고노드와 가니드는, 예수가 연구하기에 좀 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또한 그들과 함께 인도로 돌아가자고 예수를 설득할 기회를 좀 더 갖기 위해, 거기서 3주 더 머물렀다.
133:9.3 지식, 지혜, 진리 사이의 차이점에 대하여 가니드가 예수와 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우르에서였다. 그는 히브리 현자{賢者}의 다음과 같은 말에 매우 매료됐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어라. 네가 탐구한 모든 지식으로 명철을 얻어라. 지혜를 높이면, 지혜가 너를 높여줄 것이다. 지혜를 품고자 하면,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133:9.4 마침내 이별할 날이 됐다. 모두 담대했고, 특히 젊은이가 그랬으나, 참기 힘든 괴로운 체험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였지만 마음으로는 용감했다. 가니드는 선생에게 작별인사하면서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 그러나 영원히는 아닙니다. 다시 다마스커스에 오면, 당신을 찾아가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무언가 당신 같은 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적어도 아버지에 관하여 당신이 나에게 이야기해주신 것과 당신이 무척 닮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의 교훈을 기억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준 위대한 선생님에게 작별을 고합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는, “평화가 여러분 위에 임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복주심이 항상 함께 하시기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예수는 해변에 서서, 정박해있는 배를 향해 작은 배가 그들을 태우고 나가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하여 주님은 인도에서 온 친구들을 카락스에서 작별했는데, 이 세상에서는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으며; 그들은 나중에 나사렛 예수로 나타난 그가, 자신들이 방금 작별한 바로 이 친구--곧 그들의 선생 예슈아--였음을 이 세상에서는 전혀 몰랐다.
133:9.5 가니드는 인도에서 성장하여 영향력 있는 사람, 유능한 아버지의 훌륭한 계승자가 됐으며, 사랑하는 선생님, 예수에게서 배운 많은 고귀한 진리를 널리 전했다. 팔레스틴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이상한 선생에 대한 소문을 가니드가 말년에 들었을 때, 그 사람의 아들의 복음과 자신의 유대인 선생님의 교훈에서 유사성을 발견했지만, 이 두 사람이 실제로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다.
133:9.6 이렇게 하여, 사람의 아들의 생애에서: 선생님 예슈아의 선교라고 불러도 좋을 장{章}이 끝나게 됐다.
133:5.10 물질 존재의 실체성은, 눈에 보이는 사물뿐 아니라, 인식되지 않는 에너지에도 부여된다. 우주 에너지의 속도가 매우 느려져서 필수 운동량만 갖게 되면, 바로 이 에너지는, 적당한 조건 아래서 물체가 된다. 그리고 명백한 실체의 현존을 독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정신 자체도 역시 실제임을 잊지 말라. 에너지_물체와 정신과 영으로 구성된 이 우주의 근본적인 근원은 영원하다--만유의 아버지 그리고 그와 절대로 동등한 자들의 본성과 반응 안에 실존하고, 또한 그런 것으로 구성돼있다.
133:5.11 그들은 모두 예수의 말에 몹시 경탄했으며, 그리스인이 떠나면서 말했다: “인종적 우월감과 상관없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종교 외에 무언가 이야기하는 유대인을 마침내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잠자리에 들었다.
133:5.12 아테네에 체류한 것은 즐겁고 유익했으나, 사람들과 가진 접촉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허다한 아테네인이, 지난 시절의 명성에 관해 지적 자만심을 가졌든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어리석고 무지했는데, 그리스가 영광을 누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지혜가 있었던 초기 시절의 열등한 노예들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아테네 시민 가운데 명민한 지성인이 여전히 많이 있었다.
6. 에베소에서--혼에 관한 강론
133:6.1 아테네를 떠난 여행자들은 드로아를 경유하여,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 수도인 에베소로 갔다. 도시에서 2마일 가량 떨어져있는, 에베소인의 유명한 아르테미스 신전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아르테미스는 소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여신{女神}이었고, 고대 아나톨리아 시대의 초기 어머니 여신이 존속되어 내려온 것이었다. 그 여신을 숭배하려고 바친 거대한 사원에 전시된 조잡한 우상들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알려져 있었다. 가니드는 일찍부터 형상들을 신성{神性}의 상징으로 존중하도록 훈련받았고, 이것을 모두 버리지는 못했으며, 소아시아의 이 다산{多産}의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은으로 만든 작은 성물함{聖物函}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그들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물건을 숭배하는 것에 대해 밤늦도록 이야기했다.
133:6.2 거기 머물던 셋째 날에, 그들은 항만 입구를 준설{浚渫}하는 것을 보려고 강을 따라서 걸어 내려갔다. 한낮에,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매우 낙심된 한 젊은 페니키아인과 이야기했으나;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상사로 승진을 임명받은 어떤 젊은이를 시기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하면서, 히브리의 옛 속담을 인용했다: “재능이 사람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고, 존귀한 자들 앞으로 그를 인도한다.”
133:6.3 이 지중해 여행 동안 방문했던 모든 큰 도시 중에서 그들이 여기서 얻은 성과는, 훗날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업적에 가장 가치가 적었다. 그리스도교가 에베소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바울의 노력을 통해서였는데, 그는 여기서 2년 이상 살았고,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 종교와 철학에 관하여, 두란노 학파의 주요 접견실에서 매일 밤 강의했다.
133:6.4 이 지역의 철학 학파와 관련된 한 진취적 사상가가 있었고, 예수는 그와 몇 차례 유익한 회합을 가졌다. 이런 대화 도중에, 예수는 “혼”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이 박식한 그리스인은 마침내 그에게, 무슨 의미로 “혼”이라는 말을 쓰는지 물었고, 대답은 이랬다:
133:6.5 “혼은 사람이 자아를_돌아보고, 진리를_분별하고, 영을_인식하는 부분인데, 이것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동물 세계의 수준보다 높이 올려놓는다. 자아_의식 그 자체는 혼이 아니다. 도덕적 자아_의식은, 인간의 참된 자아_실현이고 인간 혼의 기초를 이루며, 혼은, 인간의 체험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가치를 나타내는, 사람의 그 부분이다. 도덕적 선택과 영적 달성, 즉 하나님을 아는 역량과 그와 같이 되고자하는 충동이 혼의 특질이다. 사람의 혼은 도덕적 사고{思考}와 영적 활동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침체된 혼은 죽어가는 혼이다. 그러나 사람의 혼은 정신에 내주하고 있는 신성한 영과는 구별된다. 신성한 영은, 인간 정신의 첫 도덕적 활동이 일어남과 동시에 도착하며, 바로 그때 혼이 탄생된다.
133:6.6 “혼의 구원 또는 소멸은, 도덕적 의식이, 그와 관련된 불멸하는 영 재능과 영원히 연합하여, 생존하는 자격을 달성 했는가 못했는가에 달려 있다. 구원은 도덕적 의식의 자아_실현이 영성화{靈性化}되는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 생존 가치를 소유하게 된다. 혼이 겪는 온갖 형태의 갈등은, 도덕적이거나 영적인 자아_의식과, 순수하게 지적인 자아_의식 사이에 조화가 부족해서 생긴다.
133:6.7 “인간의 혼은, 성숙하고 고상해지고 영성화됐을 때,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즉 물질 자아와 신성한 영 사이에 개재{介在}하는 실재라 해도 좋을 정도라는 의미에서, 천상{天上}의 신분에 가깝다. 인간의 진화하는 혼은, 물질을 연구하거나 영적 증명 방법으로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보여주기는 더 어렵다. 물질 과학은 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고, 순수한 영_실험도 그럴 수 없다. 물질 과학과 영적 기준이 인간 혼의 실재{實在}를 발견할 수 없음에도, 도덕 의식을 지닌 필사자는 누구든지, 실재하고 실제로 몸소 겪는 체험, 즉 자신의 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7. 키프로스에 체류함--정신에
관한 강론
133:7.1 여행자들은 곧 키프로스{구브로}를 향해서 항해했고, 로데에 잠시 들렸다. 긴 해상{海上} 여행은 즐거웠으며, 그들은 육신을 충분히 쉬게 하고 기분을 새롭게 한 상태에서, 목적지인 그 섬에 도착했다.
133:7.2 지중해 여행이 거의 끝 무렵에 가까웠으므로, 키프로스 방문에서는 단지 휴식하면서 즐길 계획이었다. 그들은 바보에 상륙했고, 가까운 산에서 몇 주간 지내려고 곧바로 생필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도착한 지 3일 만에, 물건을 적당하게_실은 동물들과 함께 산으로 떠났다.
133:7.3 세 사람은 두 주 동안 매우 즐겁게 보냈는데, 어린 가니드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몹시 앓게 됐다. 두 주 동안 심한 열로 고생했고, 가끔 헛소리도 했으며; 예수와 고노드는 병자를 간호하기에 바빴다. 예수는 솜씨 있으면서도 친절하게 소년을 돌봤고, 아버지는 괴로워하는 소년을 돌보는 모든 일에서 예수의 관대함과 능숙함에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인가{人家}에서 멀리 있었고, 소년의 병이 너무 심해서 옮길 수도 없었으므로; 산 속에서 소년이 회복되도록 최선을 다하여 돌보려고 준비했다.
133:7.4 가니드의 건강이 회복되던 3주 동안, 예수는 그에게 자연과 그 여러 변화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산을 거닐면서 소년이 여러 질문을 던지고 예수가 대답하는 동안, 소년의 아버지는 이 모든 과정에 감탄했으며, 그들이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133:7.5 산에 머물던 마지막 주간에, 예수와 가니드는 인간 정신의 기능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여러 시간의 토의가 있은 후에 소년이 질문했다: “그렇지만 선생님, 사람이 고등동물보다 더 고귀한 형태의 자아_의식을 체험한다고 말씀했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고 예수의 대답을 현대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133:7.6 얘야, 사람의 정신과 그 안에 거하는 신성한 영에 대하여, 이미 너에게 많이 말해줬지만, 지금은 자아_의식이 하나의 실체임을 강조하려고 한다. 어떤 동물이든지, 자아를_의식하게 되면 원시인이 된다. 그런 달성은 인격아닌 에너지, 그리고 영을_느끼는 정신, 이 둘 사이의 작용을 조정함으로 이뤄지고, 바로 이 현상이, 한 절대 초점{焦點},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을, 인간의 인격에게 증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133:7.7 관념은 단순히 감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관념은 인격있는 자아가 사려 깊은 해석을 감각에 덧붙인 것이며; 자아는 사람이 가진 감각의 전체 합계보다 더 큰 것이다. 진화하는 자아성 안에는 통일로 접근하는 무엇이 비로소 생기고, 그 통일은 절대 통일의 일부분인 내주하는 현존으로부터 파생되는데, 동물에서_기원된 그런 자아를_의식하는 정신을 영적으로 활성화시킨다.
133:7.8 동물에 불과한 존재는 시간을 스스로_의식할 수 없다. 동물은 관련된 지각_인식과 그 기억을 생리적으로 조정하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인간이 지성적으로 돌이켜보고 해석하여 내린 결론에 나타나는 것처럼, 감지한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거나, 이 통합된 육체적 체험들을 의도적으로 연결하는 성향을 보여주는 동물은 전혀 없다. 그리고 자아_의식이 존재한다는 이런 사실은, 나중에 영적 체험의 실체와 결합하여, 사람이 우주에서 잠재적 아들이 되게 하고 결국 그가 우주의 최상의 통일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을 예시{例示}한다.
133:7.9 그뿐 아니라, 인간의 자아는 단지 연속된 의식 상태들의 합계도 아니다. 의식을 분류하고 연결하는 기능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자아성이라는 명칭을 정당화시킬 만큼 충분한 통일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통합되지 않은 그런 정신은, 인간 신분의 의식 수준을 거의 달성할 수 없다. 의식한 것들을 연결시키는 작용이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면, 모든 사람의 정신은, 정신적 광란의 어떤 국면들이, 통제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연결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133:7.10 오직 육체 감각을 의식{意識함에서 형성된 인간 정신은, 영적 수준을 결코 달성할 수 없으며; 이런 종류의 물질 정신은, 도덕 가치를 직감하는 면에서 상당히 부족할 것이고, 사람을 영적으로 지배하는 안내 감각도 결여될 것인데, 이 안내 감각은, 시간세계에서 조화를 이루는 통일된 인격을 성취하는 데 필수이며, 영원 세계에서 생존하는 인격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133:7.11 인간 정신은 물질을 초월하는 특성을 일찍부터 나타내기 시작하며; 확실히 사려 깊은 인간 지능은 시간 제약에 완전히 묶여있지는 않다. 개인들이 인생살이에서 이룩한 업적이 무척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른 유전적 자질과 상이한 환경의 영향뿐 아니라, 자아가 성취한, 내주하는 아버지의 영과 얼마나 통합됐는가를 가리키며, 이것은 자아가 아버지의 영과 얼마나 일치됐는가를 재는 척도다.
133:7.12 인간 정신은 이중적 충성의 모순을 잘 이겨내지 못한다. 선과 악, 둘 다 섬기려고 애쓰는 체험은, 그 혼에게 심각한 부담을 안겨준다. 한없이 행복하고 효과적으로 통합된 정신이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전심으로 헌신된 정신이다. 해결되지 않은 모순은 통일을 파괴시키고 정신 분열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애쓰고, 고상한 열망을 포기하고, 영적 이상{理想}과 타협한다고 해서, 혼의 살아남는 성품이 육성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런 평화는, 참된 것이 승리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주장함으로써 달성되고, 이런 승리는, 선{善}이라는 강력한 힘으로 악{惡}을 극복함으로써 성취된다.
133:7.13 그들은 이튿날 살라미스를 향하여 떠났고, 거기서 시리아 해변의 안디옥으로 출항했다.
8. 안디옥에서
133:8.1 안디옥은 로마의 시리아 지방 수도였고, 제국의 총독공관이 여기에 있었다. 안디옥은 50만 인구의 도시였으며; 크기로는 제국에서 셋째였고, 사악함과 지독한 부도덕으로는 첫째였다. 고노드가 사업상 거래를 상당히 많이 했으며; 따라서 예수와 가니드는 둘이서만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다프네의 작은 숲을 제외하고, 그들은 여러 나라 말을 사용하는 이 도시 근처를 모두 둘러봤다. 고노드와 가니드는, 음란하기로 악명 높은 신전{神殿}을 방문했지만, 예수는 그들과 함께 가기를 사양했다. 그런 장면들이 인도인에게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으나, 이상을 추구하는 히브리인에게는 불쾌했다.
133:8.2 팔레스틴에 가까이 다가가고 여행이 끝나감에 따라, 예수는 차분해지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됐다. 안디옥에서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일도 거의 없었다. 왜 안디옥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느냐고 선생님에게 여러 번 질문한 끝에, 가니드는 마침내 예수에게서 이런 대답을 듣게 됐다: “이 도시는 팔레스틴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내가 여기로 언젠가 다시 올 지도 모르겠다.”
133:8.3 가니드는 안디옥에서 매우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이 젊은이는 영민한 학생임을 스스로 증명해왔고, 예수의 교훈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미 실천하기 시작했다. 안디옥에는 아버지의 사업에 관여하는 한 인도인이 살았는데, 그가 너무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불평까지 심하게 하자, 그를 내쫓는 것을 고려하게 됐다. 이 소식을 듣자, 가니드는 아버지 사업장으로 가서, 동족인 그 사람과 길게 논의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부당한 일을 시켰다고 느꼈다. 가니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여러 방면으로 그의 종교적 견해를 넓혀줬다. 그러나 가니드가 말한 모든 것 가운데, 히브리 속담을 인용한 것이 가장 효과 있었는데, 그 지혜의 말씀은 이러했다: “무엇이든지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나거든, 온 힘을 다해서 그 일을 해라.”
133:8.4 낙타 대상{隊商}에 실을 짐을 준비한 후에 시돈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다시 다마스커스를 지나, 사흘 뒤에는 모래사막을 가로지르는 긴 여행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9. 메소포타미아에서
133:9.1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隊商}여행은, 여행에_익숙한 이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낙타 20마리에 짐 싣는 일을 도와주는 것과, 짐승을 손수 이끌려고 자원하는 것을 본 후에 가니드가 외쳤다. “선생님, 당신이 하실 수 없는 일도 있을까요?” 예수는 단지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부지런한 학생 앞에서 존경받지 못할 선생은 없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고대 도시 우르를 향해 출발했다.
133:9.2 예수는 아브라함의 출생지인 우르의 초기 역사에 무척 관심을 보였고, 수싸의 유적과 전통에 대해서도 똑같이 매료됐으므로, 고노드와 가니드는, 예수가 연구하기에 좀 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또한 그들과 함께 인도로 돌아가자고 예수를 설득할 기회를 좀 더 갖기 위해, 거기서 3주 더 머물렀다.
133:9.3 지식, 지혜, 진리 사이의 차이점에 대하여 가니드가 예수와 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우르에서였다. 그는 히브리 현자{賢者}의 다음과 같은 말에 매우 매료됐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어라. 네가 탐구한 모든 지식으로 명철을 얻어라. 지혜를 높이면, 지혜가 너를 높여줄 것이다. 지혜를 품고자 하면,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133:9.4 마침내 이별할 날이 됐다. 모두 담대했고, 특히 젊은이가 그랬으나, 참기 힘든 괴로운 체험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였지만 마음으로는 용감했다. 가니드는 선생에게 작별인사하면서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 그러나 영원히는 아닙니다. 다시 다마스커스에 오면, 당신을 찾아가겠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무언가 당신 같은 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적어도 아버지에 관하여 당신이 나에게 이야기해주신 것과 당신이 무척 닮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의 교훈을 기억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준 위대한 선생님에게 작별을 고합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는, “평화가 여러분 위에 임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복주심이 항상 함께 하시기 바란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예수는 해변에 서서, 정박해있는 배를 향해 작은 배가 그들을 태우고 나가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하여 주님은 인도에서 온 친구들을 카락스에서 작별했는데, 이 세상에서는 그들을 다시 만나지 못했으며; 그들은 나중에 나사렛 예수로 나타난 그가, 자신들이 방금 작별한 바로 이 친구--곧 그들의 선생 예슈아--였음을 이 세상에서는 전혀 몰랐다.
133:9.5 가니드는 인도에서 성장하여 영향력 있는 사람, 유능한 아버지의 훌륭한 계승자가 됐으며, 사랑하는 선생님, 예수에게서 배운 많은 고귀한 진리를 널리 전했다. 팔레스틴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이상한 선생에 대한 소문을 가니드가 말년에 들었을 때, 그 사람의 아들의 복음과 자신의 유대인 선생님의 교훈에서 유사성을 발견했지만, 이 두 사람이 실제로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다.
133:9.6 이렇게 하여, 사람의 아들의 생애에서: 선생님 예슈아의 선교라고 불러도 좋을 장{章}이 끝나게 됐다.
◀제132편 로마에 머무는 동안 ∥ 제134편 과도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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