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편 로마에서 돌아옴 ∥ 제135편 세례 요한▶
과도기 시절
134:0.1 지중해를 여행하는 동안, 예수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 및 거쳐 간 나라들을 면밀히 연구했고, 이 무렵에, 이 세상에서 보낼 나머지 생애에 관한 최종 결정에 도달했다. 팔레스틴에서 유대인 부모에게 태어나도록 마련됐던 계획을 전에 충분히 고려했었고, 이제 최종적으로 인정했으며, 따라서 대중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필생과업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갈릴리로 돌아갔으며; 아버지 요셉의 민족이 사는 땅에서 공생애를 펼치기 위한 계획을 비로소 수립했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렇게 했다.
134:0.2 예수는 몸소 겪은 인간 체험을 통해서, 이 세상 생애를 마무리하는 무대를 설치하고 마지막 장면을 상연하기에, 온 로마 세계에서 팔레스틴이 가장 적합한 곳임을 알아냈다. 자신이 태어난 팔레스틴의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서,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고 신성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계획표에, 그는 처음으로 충분히 만족하게 됐다. 무력한 아기로서 인간의 체험을 시작한 바로 그 땅에서, 이 세상의 생애를 끝내고 필사자로서 실존하는 생애를 마무리하기로, 명확하게 결정했다. 유란시아에서 그의 생애는 팔레스틴에 있는 유대인 가운데서 시작됐고, 그는 일생을 팔레스틴 유대인 가운데서 끝내기로 선택했다.
134:1.1 예수는 카락스에서 (서기 23년 12월에) 고노드 및 가니드와 헤어진 후, 우르를 경유해서 바빌론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사막 대상{隊商}과 합세했다. 다마스커스에서 나사렛으로 가는 도중에, 겨우 몇 시간 가버나움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잠시 쉰 것은 세베대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동생 야고보를 만났으며, 그는 세베대의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예수 대신 일하려고 얼마 전부터 와있었다. 야고보와 (또한 우연히 가버나움에 왔던) 유다와 함께 이야기하고 나서, 요한 세베대가 그럭저럭 구입한 작은 집을 동생 야고보에게 넘겨준 다음, 예수는 나사렛으로 갔다.
134:1.2 지중해 여행을 마쳤을 때, 예수는 공적{公的} 직무를 시작할 때까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돈을 받았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 도중에 만났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세상은 그가 이렇게 여행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가족은 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면서 이 시절을 보냈다고 항상 믿었다. 예수는 이런 믿음을 한 번도 확인해주지 않았고, 그런 오해를 공개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134:1.3 예수는 나사렛에 머물던 몇 주 동안, 가족과 친구들을 방문하거나 동생 요셉과 수리소에 함께 있으면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기는 했어도, 대체로 마리아와 룻에게 관심을 쏟았다. 룻은 그때 거의 열다섯 살이었고, 소녀가 된 이래, 예수와 긴 대화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134:1.4 시몬과 유다는 한참 동안 결혼할 마음을 먹었으나, 예수의 허락 없이는 하고 싶지 않았으며; 따라서 맏형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대부분의 문제에서 야고보를 가장{家長}으로 여기기는 했지만, 결혼하는 문제에 관한 한, 예수의 축복을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서기 24년 3월 초순에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든 아이들은 이제 모두 결혼하게 됐으며; 오직 막내 룻이 마리아와 함께 집에 남았다.
134:1.5 예수는 가족 개개인과는 평상시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으나, 모두 함께 있을 때에는 거의 할 말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것에 관해 언급했다. 마리아는 특히 맏아들이 보통 때와는 다른 이런 태도 때문에 당황했다.
134:1.6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이 도시를 지나가던 큰 대상{隊商} 안내자가 심한 병에 걸리게 됐고, 예수는 언어에 능통했으므로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자원했다. 예수는 이 여행으로 인해 1년간 집을 비워야했고, 남동생들이 모두 결혼해서 집에는 어머니와 룻뿐이었으므로, 가족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최근에 야고보에게 넘겨줬던 집에서 살도록 어머니와 룻이 가버나움으로 이사할 것을 제안했다. 따라서 예수가 대상과 함께 떠난 며칠 뒤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했고, 마리아의 여생 동안 내내, 예수가 제공한 집에서 살았다. 요셉이 자기 가족과 함께 옛 나사렛 집으로 들어왔다.
134:1.7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내적 체험에서 더욱 특이한 몇 해 가운데 하나였으며; 인간 정신과 내주하는 조율사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데 큰 진전이 있었다. 당시에 멀지 않은 장래에 있을 중대한 사건들을 위하여, 조율사는 생각을 재조직하고 정신을 연습시키기에 적극 관여해왔었다. 예수의 인격은, 세상을 향한 그의 태도에 굉장한 변화가 있을 것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기간은 중간에_낀 시기, 즉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으로서 일생을 시작하고,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 생애를 마치려고 이제 준비하는, 그 존재가 거치는 과도기 단계였다.
134:2.1 예수가 나사렛을 출발하여 대상{隊商}과 함께 카스피 해{海}로 여행을 떠난 것은 서기 24년 4월 1일이었다. 예수가 안내자로서 합세했던 그 대상은 예루살렘을 출발해서 다마스커스와 우르미아 호수를 경유하고, 앗수르, 메디아, 파르티아를 거쳐서 남부 카스피 해 지역으로 갔다. 이 여행에서 돌아오기까지 꼬박 1년 걸렸다.
134:2.2 예수에게 이 대상{隊商}여행은 탐구하고 몸소 섬기는 또 다른 모험이었다. 대상 일행--곧 승객, 경비원, 및 낙타부리는 자들--과 그는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대상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살고 있던 수십 명의 남녀 어른과 아이들은, 예수와 접촉한 결과로 풍요한 삶을 살게 됐는데, 이들에게 예수는 그저 평범한 대상치고는 이례적인 안내자였다. 그가 몸소 섬기는 이 기회를 포착했던 사람들 전부가 덕을 본 것은 아니었으나만, 그와 만나서 이야기 했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더 나은 자연스런 여생{餘生}을 보냈다.
134:2.3 전체 세계여행 가운데 이 카스피 해 여행이 예수를 동양에 가장 가깝게 이끌었고, 극동지방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게 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유란시아에 살던 모든 종족과 친밀하고 개인적인 접촉을 가졌다. 그는, 이런 여러 다른 인종은 물론, 혼합된 각 인종들에게 개인적인 보살핌을 똑같이 베풀었고, 이들은 모두, 예수가 가져다 준 생명의 진리를 쉽게 받아들였다. 극서지방에서 온 유럽인이나 극동지방에서 온 아시아인은, 희망과 영생을 전하는 그의 말에 똑같이 주의를 기울였고, 그들 가운데서 아주 품위 있게 실천한 사랑의 봉사와 영적 보살핌으로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134:0.2 예수는 몸소 겪은 인간 체험을 통해서, 이 세상 생애를 마무리하는 무대를 설치하고 마지막 장면을 상연하기에, 온 로마 세계에서 팔레스틴이 가장 적합한 곳임을 알아냈다. 자신이 태어난 팔레스틴의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서,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공개적으로 나타내고 신성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계획표에, 그는 처음으로 충분히 만족하게 됐다. 무력한 아기로서 인간의 체험을 시작한 바로 그 땅에서, 이 세상의 생애를 끝내고 필사자로서 실존하는 생애를 마무리하기로, 명확하게 결정했다. 유란시아에서 그의 생애는 팔레스틴에 있는 유대인 가운데서 시작됐고, 그는 일생을 팔레스틴 유대인 가운데서 끝내기로 선택했다.
1. 서른 살 되던 해 (서기 24년)
134:1.1 예수는 카락스에서 (서기 23년 12월에) 고노드 및 가니드와 헤어진 후, 우르를 경유해서 바빌론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사막 대상{隊商}과 합세했다. 다마스커스에서 나사렛으로 가는 도중에, 겨우 몇 시간 가버나움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잠시 쉰 것은 세베대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동생 야고보를 만났으며, 그는 세베대의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예수 대신 일하려고 얼마 전부터 와있었다. 야고보와 (또한 우연히 가버나움에 왔던) 유다와 함께 이야기하고 나서, 요한 세베대가 그럭저럭 구입한 작은 집을 동생 야고보에게 넘겨준 다음, 예수는 나사렛으로 갔다.
134:1.2 지중해 여행을 마쳤을 때, 예수는 공적{公的} 직무를 시작할 때까지 생활비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돈을 받았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 도중에 만났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세상은 그가 이렇게 여행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가족은 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면서 이 시절을 보냈다고 항상 믿었다. 예수는 이런 믿음을 한 번도 확인해주지 않았고, 그런 오해를 공개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다.
134:1.3 예수는 나사렛에 머물던 몇 주 동안, 가족과 친구들을 방문하거나 동생 요셉과 수리소에 함께 있으면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기는 했어도, 대체로 마리아와 룻에게 관심을 쏟았다. 룻은 그때 거의 열다섯 살이었고, 소녀가 된 이래, 예수와 긴 대화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134:1.4 시몬과 유다는 한참 동안 결혼할 마음을 먹었으나, 예수의 허락 없이는 하고 싶지 않았으며; 따라서 맏형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결혼을 미루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대부분의 문제에서 야고보를 가장{家長}으로 여기기는 했지만, 결혼하는 문제에 관한 한, 예수의 축복을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서기 24년 3월 초순에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든 아이들은 이제 모두 결혼하게 됐으며; 오직 막내 룻이 마리아와 함께 집에 남았다.
134:1.5 예수는 가족 개개인과는 평상시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으나, 모두 함께 있을 때에는 거의 할 말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것에 관해 언급했다. 마리아는 특히 맏아들이 보통 때와는 다른 이런 태도 때문에 당황했다.
134:1.6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이 도시를 지나가던 큰 대상{隊商} 안내자가 심한 병에 걸리게 됐고, 예수는 언어에 능통했으므로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자원했다. 예수는 이 여행으로 인해 1년간 집을 비워야했고, 남동생들이 모두 결혼해서 집에는 어머니와 룻뿐이었으므로, 가족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최근에 야고보에게 넘겨줬던 집에서 살도록 어머니와 룻이 가버나움으로 이사할 것을 제안했다. 따라서 예수가 대상과 함께 떠난 며칠 뒤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했고, 마리아의 여생 동안 내내, 예수가 제공한 집에서 살았다. 요셉이 자기 가족과 함께 옛 나사렛 집으로 들어왔다.
134:1.7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내적 체험에서 더욱 특이한 몇 해 가운데 하나였으며; 인간 정신과 내주하는 조율사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데 큰 진전이 있었다. 당시에 멀지 않은 장래에 있을 중대한 사건들을 위하여, 조율사는 생각을 재조직하고 정신을 연습시키기에 적극 관여해왔었다. 예수의 인격은, 세상을 향한 그의 태도에 굉장한 변화가 있을 것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기간은 중간에_낀 시기, 즉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으로서 일생을 시작하고,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 생애를 마치려고 이제 준비하는, 그 존재가 거치는 과도기 단계였다.
2. 카스피로 가는 대상 여행
134:2.1 예수가 나사렛을 출발하여 대상{隊商}과 함께 카스피 해{海}로 여행을 떠난 것은 서기 24년 4월 1일이었다. 예수가 안내자로서 합세했던 그 대상은 예루살렘을 출발해서 다마스커스와 우르미아 호수를 경유하고, 앗수르, 메디아, 파르티아를 거쳐서 남부 카스피 해 지역으로 갔다. 이 여행에서 돌아오기까지 꼬박 1년 걸렸다.
134:2.2 예수에게 이 대상{隊商}여행은 탐구하고 몸소 섬기는 또 다른 모험이었다. 대상 일행--곧 승객, 경비원, 및 낙타부리는 자들--과 그는 재미있는 체험을 했다. 대상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살고 있던 수십 명의 남녀 어른과 아이들은, 예수와 접촉한 결과로 풍요한 삶을 살게 됐는데, 이들에게 예수는 그저 평범한 대상치고는 이례적인 안내자였다. 그가 몸소 섬기는 이 기회를 포착했던 사람들 전부가 덕을 본 것은 아니었으나만, 그와 만나서 이야기 했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더 나은 자연스런 여생{餘生}을 보냈다.
134:2.3 전체 세계여행 가운데 이 카스피 해 여행이 예수를 동양에 가장 가깝게 이끌었고, 극동지방 사람들을 좀 더 이해하게 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유란시아에 살던 모든 종족과 친밀하고 개인적인 접촉을 가졌다. 그는, 이런 여러 다른 인종은 물론, 혼합된 각 인종들에게 개인적인 보살핌을 똑같이 베풀었고, 이들은 모두, 예수가 가져다 준 생명의 진리를 쉽게 받아들였다. 극서지방에서 온 유럽인이나 극동지방에서 온 아시아인은, 희망과 영생을 전하는 그의 말에 똑같이 주의를 기울였고, 그들 가운데서 아주 품위 있게 실천한 사랑의 봉사와 영적 보살핌으로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134:2.4 대상 여행은 모든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이것은 예수의 인간 생애에서 가장 흥미 있는 사건이었는데, 그가 이 해에 행정가 자격으로 활동했고, 자신에게 맡겨진 물질과 대상 무리를 이루고 있던 여행자들의 안전한 인도를 책임졌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신실하게, 능률적으로, 그리고 현명하게 여러 임무를 수행했다.
134:2.5 카스피 지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수는 우르미아 호수에서 안내자 자리를 그만두고, 거기서 2주 조금 넘게 머물렀다. 나중에 다마스커스로 가는 대상 대열에 승객으로서 합세하여 돌아갔는데, 거기서 낙타 주인들은 그에게 남아서 계속 일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가버나움으로 가는 대상과 함께 여행하여, 서기 25년 4월 1일에 도착했다. 그는 나사렛을 더 이상 고향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버나움이, 예수와 야고보와 마리아 및 룻의 고향이 됐다. 그러나 예수는, 결코 다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으며; 가버나움에 있을 때에는 세베대의 집에서 지냈다.
3. 우르미아 강연
134:3.1 카스피 해로 가는 길에, 예수는 쉬면서 기운을 회복하려고, 우르미아 호수 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오래된 페르시아 도시 우르미아에 며칠 머물렀다. 우르미아 근처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섬들 가운데 가장 큰 섬에, “종교의 영”에게 봉헌된 어떤 큰 건물--곧 강연하는 원형극장--이 있었다. 사실 이 건물은 종교에 관한 철학을 다루는 사원{寺院}이었다.
134:3.2 우르미아 시민인 어느 부유한 상인과 세 아들이 이 종교 사원을 지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씸보이톤이었고, 그의 조상 중에는 가지각색 민족이 많이 섞여있었다.
134:3.3 이 종교 학교에서 강의와 토의는, 주 중에 매일 오전 열 시부터 시작됐다. 오후 수업은 세 시에 시작됐고, 저녁 토론회는 여덟 시에 열렸다. 씸보이톤 또는 세 아들 중에서 하나가, 가르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이런 수업의 사회를 항상 맡았다. 이렇게 독특한 종교 학교를 설립한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인 종교 신념을 결코 드러내지 않으면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134:3.4 예수는 이 토론회에 여러 번 참여했고, 그가 우르미아를 떠나기 전에, 씸보이톤은 예수가 돌아가는 길에 2주간 그들과 함께 머물러서, “사람들의 형제관계”라는 주제로 스물네 번의 강의를 하고, 특히 그의 강의에 대하여, 그리고 사람들의 일반적인 형제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고 토의하고 논쟁하는 저녁 수업을 열두 번 진행하도록 조처했다.
134:3.5 이렇게 조처함에 따라서, 예수는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이 강의를 했다. 이것은 유란시아에서 있었던 주님의 모든 교훈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었고 형식을 갖췄다. 사람들의 형제관계에 대한 이 강의와 토의에 포함된 것만큼, 그 이전이나 이후에 한 주제에 대하여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이 강의는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들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134:3.6 이 종교 철학 사원의 교수진은, 30개 이상의 종교와 종파를 대표했다. 각 종교 집단이 이 선생들을 뽑고, 지원하고, 전적으로 승인했다. 이 무렵에는 75명의 선생이 교수진으로 활동했고, 그들은 각 집마다 열두 명이 함께 사는 작은 주택에서 생활했다. 이 집단은 새 달{月}이 시작될 때마다 제비뽑기로 교체됐다. 편협하거나,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기질이거나, 공동체를 순조롭게 운영하기에 방해되는 다른 어떤 경향이든지 나타내는 경우에, 불쾌감을 주는 그 선생은 즉시 간단하게 해임되곤 했다. 아무 예식 없이 조용히 물러났고, 대기해있던 다른 사람이 곧 그 자리에 임명되곤 했다.
134:3.7 다양한 종교에 속한 이 선생들은, 이 생애와 다음 생애에 대한 근본 사항들에 관하여, 각자의 종교가 서로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 찾으려고 많이 애썼다. 이 교수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꼭 한 가지 신조{信條}를 인정해야했는데, 선생은 누구든지, 하나님--곧 어떤 종류의 최고 신격--을 인식하는 한 종교를 대표해야했다. 교수진 가운데는, 어떤 조직화된 종교도 대표하지 않는 독립된 다섯 선생이 있었는데, 예수는 그런 독립된 선생 자격으로 그들 앞에 서게 됐다.
134:3.8 [우르미아에서 예수가 주신 교훈의 요지를 우리 중도자들이 처음 준비했을 때, 이런 교훈을 유란시아 계시에 포함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지에 대해, 교회 스라빔과 진보{進步} 스라빔 사이에 의견 차이가 발생했다. 20세기의 종교와 인간 정부에 만연된 상황이, 예수 당시에 지배적이던 그런 상황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와 사람의 나라들에 관한 주님의 우르미아 교훈을, 20세기에 존재하는 이런 여러 세상 기능에 적용하기란 정말로 어려웠다. 행성정부를 담당하는 이 두 스라빔 집단을 만족시킬만한, 주님의 교훈에 대한 서술문{敍述文}을 우리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마침내, 유란시아의 20세기 종교적 상황과 정치적 상황에 맞도록, 주님의 우르미아 교훈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준비하라고, 계시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議長}이 우리 가운데 세 명을 지명하여 위원회를 구성했다. 따라서 2차 중도자인 우리 세 명은, 예수의 교훈을 그렇게 각색하는 일을 마무리했는데, 현 시대의 세상 상황에 맞도록 우리가 적용하고 싶은 대로, 그가 발표한 말씀을 고쳐 썼으며, 계시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이 감수{監修}한 결과 그대로, 이제 이 서술문을 발표한다.]
4. 주권--신의 주권과 인간의 주권
134:4.1 사람이 형제관계인 것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것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유래한다--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 전부를 신성하게 사랑하신다.
134:4.2 하늘 나라, 즉 신{神}의 정부는 신이 주권을 가졌다는 그 사실에 기초한다--하나님은 영{靈}이시다.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이 하늘 나라는 영적인 나라다. 하늘 나라는, 물질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단순히 지적인 것도 아니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 관계다.
134:4.3 서로 다른 종교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 주권{主權}을 인정한다면, 그런 모든 종교는 평화를 누린다. 한 종교가, 어떤 면에서 모든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그리고 다른 종교들에게 독점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에만, 그런 종교가 주제넘게 다른 종교들을 용납하지 않거나, 다른 종교 신자들을 감히 박해할 것이다.
134:4.4 모든 종교가 성직{聖職}의 모든 권위를 기꺼이 완전히 버리고, 모든 영적 주권 개념을 전부 양도하지 않는 한, 종교적 평화--곧 형제관계--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홀로 영 주권자시다.
134:4.5 모든 종교가 모든 종교적 주권{主權}을, 어떤 초인적 수준, 즉 바로 하나님께 맡기기로 동의하지 않으면, 종교 전쟁 없이 종교들 가운데 평등을(곧 종교적 자유를) 유지할 수 없다.
134:4.6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하늘 나라는, (반드시 획일적일 필요는 없지만) 종교적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데, 그런 종교 신자{信者}들로 구성된 모든 종교 집단이, 성직{聖職}의 권위--곧 종교적 주권--에 대한 모든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134:4.7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은 자신의 영 자아 단편을 사람의 마음 속에 거하도록 주신다. 영적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하늘 나라에는, 계급제도나 계층이나 사회 계급 또는 경제 집단 등이 전혀 없다. 너희는 모두 형제다.
134:4.8 그러나 너희가 아버지 하나님의 영 주권{主權}을 잊어버리는 순간, 어떤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평화가 이뤄지고 사람들 가운데 선한 뜻이 이뤄지는 대신 불화와 반목이 시작될 것이고, 적어도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종교 전쟁까지도 시작될 것이다.
134:4.9 자신들이 동등하다고 간주하는 자유의지 존재들은, 어떤 초월주권, 즉 자신보다 위에 있는 더 높은 권위에 자신들이 종속된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집단을 지배하는 권력과 권위를 갖기 위하여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보고 싶은 유혹을 조만간 받게 된다. 초월주권의 어떤 총괄하는 영향력을 서로 인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평등 개념은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134:4.10 우르미아 종교인들은 비교적 평화스럽고 편안하게 함께 살았는데, 종교의 주권에 대한 자신의 모든 관념을 완전히 양도해왔기 때문이었다. 영적으로는, 유일한 주권자인 하나님을 그들 모두 믿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완전하고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그들의 최고 사회자--곧 씸보이톤--에게 맡겼다. 누구든지 동료 선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마다 어떤 조치를 당하게 될지, 그들은 모두 잘 알았다. 신의 편애{偏愛}, 선택받은 민족, 그리고 종교적 주권에 대한 자신의 모든 허황된 생각을 모든 종교 집단이 아낌없이 양도하기 전에는, 지속되는 종교적 평화를 유란시아에서 기대할 수 없다. 아버지 하나님만이 최상의 뜻이 될 때, 사람은 종교적으로 형제가 되고 이 세상에서 종교적 평화를 함께 누리게 된다.
134:5.1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이 진리지만--곧 오직 그 후에 세상 종교들 가운데 하나로서 출현된 그에 관한 종교로 인해 복잡해졌을 뿐이지만--, 정치적 주권에 관해서 그가 제시한 것들은, 지난 1,900여 년 동안 정치적인 국가 생존기간이 변화됨으로 인해 대단히 복잡해졌다. 예수 시절에는 단지 두 개의 세계적 강국--곧 서방의 로마 제국과 동방의 한 제국--이 있었고, 이 두 제국은, 파르티아 왕국, 그리고 카스피 지역과 투르키스탄 지역의 다른 땅들이 사이에 끼어있음으로써 매우 멀리 분리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래에 소개하는 내용에서는, 정치적 주권에 관한 주님의 교훈의 취지로부터 더 광범하게 벗어나게 되기는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교훈이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에 정치적 주권이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는, 특히 위급한 단계에 적용되는 대로, 그런 교훈의 의미를 서술해보려고 시도했다.]
134:4.6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하늘 나라는, (반드시 획일적일 필요는 없지만) 종교적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데, 그런 종교 신자{信者}들로 구성된 모든 종교 집단이, 성직{聖職}의 권위--곧 종교적 주권--에 대한 모든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134:4.7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은 자신의 영 자아 단편을 사람의 마음 속에 거하도록 주신다. 영적으로 볼 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하늘 나라에는, 계급제도나 계층이나 사회 계급 또는 경제 집단 등이 전혀 없다. 너희는 모두 형제다.
134:4.8 그러나 너희가 아버지 하나님의 영 주권{主權}을 잊어버리는 순간, 어떤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평화가 이뤄지고 사람들 가운데 선한 뜻이 이뤄지는 대신 불화와 반목이 시작될 것이고, 적어도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종교 전쟁까지도 시작될 것이다.
134:4.9 자신들이 동등하다고 간주하는 자유의지 존재들은, 어떤 초월주권, 즉 자신보다 위에 있는 더 높은 권위에 자신들이 종속된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집단을 지배하는 권력과 권위를 갖기 위하여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보고 싶은 유혹을 조만간 받게 된다. 초월주권의 어떤 총괄하는 영향력을 서로 인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평등 개념은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134:4.10 우르미아 종교인들은 비교적 평화스럽고 편안하게 함께 살았는데, 종교의 주권에 대한 자신의 모든 관념을 완전히 양도해왔기 때문이었다. 영적으로는, 유일한 주권자인 하나님을 그들 모두 믿었으며; 사회적으로는, 완전하고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그들의 최고 사회자--곧 씸보이톤--에게 맡겼다. 누구든지 동료 선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마다 어떤 조치를 당하게 될지, 그들은 모두 잘 알았다. 신의 편애{偏愛}, 선택받은 민족, 그리고 종교적 주권에 대한 자신의 모든 허황된 생각을 모든 종교 집단이 아낌없이 양도하기 전에는, 지속되는 종교적 평화를 유란시아에서 기대할 수 없다. 아버지 하나님만이 최상의 뜻이 될 때, 사람은 종교적으로 형제가 되고 이 세상에서 종교적 평화를 함께 누리게 된다.
5. 정치적 주권
134:5.1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이 진리지만--곧 오직 그 후에 세상 종교들 가운데 하나로서 출현된 그에 관한 종교로 인해 복잡해졌을 뿐이지만--, 정치적 주권에 관해서 그가 제시한 것들은, 지난 1,900여 년 동안 정치적인 국가 생존기간이 변화됨으로 인해 대단히 복잡해졌다. 예수 시절에는 단지 두 개의 세계적 강국--곧 서방의 로마 제국과 동방의 한 제국--이 있었고, 이 두 제국은, 파르티아 왕국, 그리고 카스피 지역과 투르키스탄 지역의 다른 땅들이 사이에 끼어있음으로써 매우 멀리 분리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래에 소개하는 내용에서는, 정치적 주권에 관한 주님의 교훈의 취지로부터 더 광범하게 벗어나게 되기는 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교훈이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에 정치적 주권이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는, 특히 위급한 단계에 적용되는 대로, 그런 교훈의 의미를 서술해보려고 시도했다.]
134:5.2 국가가 무제한 주권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허황된 생각에 국가들이 집착하는 한, 유란시아에서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거주 세계에는 오직 두 수준의 상대적 주권만 있는데: 필사자 개인의 영적 자유의지와, 인류 전체의 집단적 주권이다. 개별 인간 수준과 전체 인류 수준 사이에 있는 어떤 집단이나 연합도, 상대적이고, 일시적이고, 오직 개인과 행성 전체 합계--곧 사람과 인류--의 복지와 안녕과 진보를 향상{向上}시키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다.
134:5.3 끼어있거나 중간에 있는 모든 영적 충성심보다 하나님의 영적 주권이 우선한다는 것을, 종교 교사들은 늘 기억해야한다. 국가 통치자들은, 사람의 나라에서 지고자들이 통치한다는 것을 언젠가 깨달을 것이다.
134:5.4 사람의 나라에서 이뤄지는 지고자의 이런 통치는, 특별 혜택을 받는 어떤 필사자 집단의 특별한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선택받은 민족” 같은 그런 것은 없다. 지고자, 즉 정치적 변화를 총괄하는 존재들의 통치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많은 자에게, 가장 오랜 기간에, 가장 위대한 선을 증진하도록 고안된 통치다.
134:5.5 주권은 권력이고, 권력은 조직함으로 자란다. 정치권력을 가진 조직이 이렇게 성장하는 것은 유익하고 바람직한데, 인류 전체의 계속_확장되는 부분들을 그런 조직이 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정치 조직들의 성장은, 자연스런 정치권력의 초기 조직--곧 가족--과, --온 인류의, 온 인류에 의한,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한-- 정치적 성장의 최종 완성사이에 있는 어떤 단계에서든지 문제를 만들어낸다.
134:5.6 가족을 한 무리로 만드는 부모의 권력으로부터 출발하여, 같은 혈족의 가족들이 씨족으로 뭉침에 따라서 정치적 주권은 진화하여 조직체가 되는데, 이 씨족들은 다시 여러 이유로 부족{部族} 단위로--곧 혈연관계를 초월하는 정치 집단으로-- 뭉치게 된다. 그다음에, 무역과 상업과 정복을 통해서, 부족들은 한 나라로 통합되며, 한편 바로 그 나라들이 때때로 통합되어 제국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134:5.7 작은 집단에서 더 큰 집단으로 주권이 양도되면서, 전쟁은 점점 줄어든다. 다시 말해서, 작은 나라들 사이의 사소한 전쟁은 줄어드는 반면, 주권을 휘두르는 나라들이 커질수록 더 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증가한다. 이윽고, 온 세상이 탐험되고 차지되면, 나라의 수가 몇 개 되지 않으면서 강하고 힘이 있게 되면, 주권을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이런 큰 나라들의 국경이 서로 이웃하게 되면, 단지 대양{大洋}이 그들을 나눠 놓게 되면, 그때 세계대전{世界大戰}이 일어날 무대가 꾸며질 것이다. 소위 주권을 가진 나라들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전쟁을 하지 않고는 서로 사귈 수 없다.
134:5.8 정치적 주권이 가족으로부터 온 인류로 진화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거쳐야 할 단계마다 나타나는 타성과_저항 때문이다. 가족들은 때때로 씨족에 도전했고, 한편 씨족과 부족들은 그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의 주권을 종종 전복시켰다. 정치 조직에서 전에 개발된 “임시 발판 단계들”은, 정치적 주권이 새롭게 진취적으로 진화할 때마다 곤경에 빠뜨리고 방해한다(그리고 항상 그래 왔다). 이것이 사실인데, 인간의 충성심은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족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충성심이, 부족_초월체--곧 지역 국가--의 진화를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의 진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동일한 그 충성심(곧 애국심)이, 온 인류의 정부가 진화로 발생되는 것을 대단히 복잡하게 만든다.
134:5.9 정치적 주권은, 먼저 가족 안에서 개인이, 다음에는 부족 및 더 큰 집단과 갖는 관계에서 가족과 씨족들이, 자결주의{自決主義}를 포기함으로 창출된다. 작은 데서부터 언제나 더 큰 정치 집단으로 자결을 이렇게 점진적으로 양도하는 것은, 명 왕조와 몽골 왕조가 세워진 뒤로, 동방에서 대체로 줄어들지 않고 진행돼왔다. 이것이 서방에서는 1,000년이 넘도록, 바로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진행됐는데, 이때 유럽에서 사라졌던 정치적 주권을 수많은 작은 집단이 다시_수립함으로써, 유감스런 역행 운동이 이 정상적인 경향을 일시 거꾸로 뒤집어놓았다.
134:5.10 소위 주권 국가들이 자체의 주권 능력을 사람의 형제관계--곧 인류의 정부--의 권력에 총명하게 완전히 양도하기까지, 유란시아는 지속되는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국제주의는--곧 나라들의 연맹은-- 영구적인 평화를 인류에게 결코 가져올 수 없다. 나라들의 세계 연합은, 소규모 전쟁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작은 나라들을 만족스럽게 통제하겠지만, 세계전쟁을 예방하지 않을 것이며, 3개, 4개, 또는 5개의 초강대국을 통제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분쟁이 일어나면, 이 강대국들 가운데 하나가 연맹에서 탈퇴하고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나라에 주권이 있다는 망상적 병균에 감염돼있는 한, 나라들이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국제주의는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딘 것이다. 국제경찰기구는 작은 전쟁들을 예방하겠으나, 세계대전, 즉 세상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정부들 사이의 충돌을 막는 데는 효력이 없을 것이다.
134:5.11 진정한 주권을 가진 나라들(곧 강대국)의 숫자가 줄어듦에 따라서, 인류 정부가 생길 기회와 필요성이 증가한다. 진정한 주권을 가진 (거대) 열강들이 겨우 몇 개만 있게 되면, 그들은 나라(곧 제국)의 우월성을 차지하려고 생사를 건 투쟁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통치하는 어떤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온 인류를 다스리는 진정한 주권의 시작으로 작용하게 될, 초국가적 권력의 필수 핵심을 만들어내야 한다.
134:5.12 소위 주권을 가진 모든 나라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권력을 온 인류의 대표 정부에 양도하기 전에는, 유란시아에 평화가 오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주권은 세상의 민족들에게 본래부터 있다. 유란시아의 모든 민족이 하나의 세계정부를 창립할 때, 그들은 그런 정부를 주권자로 만들 권리와 힘을 지닐 것이며; 그런 대의{代議} 세계기관 또는 민주 세계기관이, 지구에서 세계의 육군과 공군과 해군을 통제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이뤄지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친선이 도모될 것이다--그러나 그전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134:5.13 19세기와 20세기의 중요한 예를 하나 든다면: 48개의 주로 구성된 아메리카 합중국은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다. 자기들끼리는 전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권을 연방정부에 양도했고, 무력충돌에 대한 중재재판을 겪음으로써, 자결권이라는 망상에 젖은 주장을 모두 포기해왔다. 각 주정부{州政府}는 자체의 내부 업무를 규제하지만, 외교 관계, 관세, 이민, 군사 문제, 각 주 상호간의 통상 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각 주정부는 시민권의 문제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연방정부의 주권이 어떤 문제로 위태롭게 됐을 경우에만, 48개 주가 전쟁으로 인한 참화{慘禍}를 겪게 된다.
134:5.14 이 48개 주는, 주권과 자결권이라는 두 가지 궤변을 포기해왔기 때문에, 주들 사이에 평화와 평정을 누린다. 이와 같이 유란시아의 나라들도 각자의 주권을 범세계 정부--곧 사람의 형제단체의 주권--의 권력에 기꺼이 양도할 때, 그런 평화를 비로소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세계적 국가에서는, 작은 나라들도 큰 나라만큼 힘을 갖게 되는데, 마치 인구가 많은 뉴욕 주나 거대한 텍사스 주와 똑같이, 작은 로드 아일랜드 주{州}가 미국 의회에서 두 개의 상원의석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
134:5.15 이런 48개 주의 한정된 (주) 주권은,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었다. 주를 관할하는 아메리카 합중국의 (국가) 통치권은, 이 여러 주 가운데 최초의 13개 주가, 그들 자체의 이익과 주민{州民}의 이익을 위하여 창설했다. 언젠가는 여러 나라가, 자체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행성의 인류 정부라는 초국가적 주권을 비슷하게 창설할 것이다.
134:5.16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시민이 태어난 것이 아니며; 정부는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고안된 조직이다. 모든 사람이 주권을 갖는 정부가 나타날 때까지,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 끝이 있을 수 없다. 모든 다른 주권에는, 상대적 가치, 중간 정도의 의미, 그리고 하위의 지위가 있다.
134:5.17 과학의 발달과 함께, 거의 인종적 자살 행위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세상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인류의 정부를 기꺼이 세우고, 비로소 영구한 평화의 복을 누리면서 사람들 사이에 친선--곧 세계적 친선--으로 얻은 평정을 토대로 번영하기까지, 얼마나 여러 번 세계 전쟁을 치러야하고, 얼마나 많은 국가 동맹이 깨져야 할 것인가?
134:5.11 진정한 주권을 가진 나라들(곧 강대국)의 숫자가 줄어듦에 따라서, 인류 정부가 생길 기회와 필요성이 증가한다. 진정한 주권을 가진 (거대) 열강들이 겨우 몇 개만 있게 되면, 그들은 나라(곧 제국)의 우월성을 차지하려고 생사를 건 투쟁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통치하는 어떤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온 인류를 다스리는 진정한 주권의 시작으로 작용하게 될, 초국가적 권력의 필수 핵심을 만들어내야 한다.
134:5.12 소위 주권을 가진 모든 나라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권력을 온 인류의 대표 정부에 양도하기 전에는, 유란시아에 평화가 오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주권은 세상의 민족들에게 본래부터 있다. 유란시아의 모든 민족이 하나의 세계정부를 창립할 때, 그들은 그런 정부를 주권자로 만들 권리와 힘을 지닐 것이며; 그런 대의{代議} 세계기관 또는 민주 세계기관이, 지구에서 세계의 육군과 공군과 해군을 통제할 때, 이 세상에 평화가 이뤄지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친선이 도모될 것이다--그러나 그전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134:5.13 19세기와 20세기의 중요한 예를 하나 든다면: 48개의 주로 구성된 아메리카 합중국은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다. 자기들끼리는 전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권을 연방정부에 양도했고, 무력충돌에 대한 중재재판을 겪음으로써, 자결권이라는 망상에 젖은 주장을 모두 포기해왔다. 각 주정부{州政府}는 자체의 내부 업무를 규제하지만, 외교 관계, 관세, 이민, 군사 문제, 각 주 상호간의 통상 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각 주정부는 시민권의 문제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연방정부의 주권이 어떤 문제로 위태롭게 됐을 경우에만, 48개 주가 전쟁으로 인한 참화{慘禍}를 겪게 된다.
134:5.14 이 48개 주는, 주권과 자결권이라는 두 가지 궤변을 포기해왔기 때문에, 주들 사이에 평화와 평정을 누린다. 이와 같이 유란시아의 나라들도 각자의 주권을 범세계 정부--곧 사람의 형제단체의 주권--의 권력에 기꺼이 양도할 때, 그런 평화를 비로소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세계적 국가에서는, 작은 나라들도 큰 나라만큼 힘을 갖게 되는데, 마치 인구가 많은 뉴욕 주나 거대한 텍사스 주와 똑같이, 작은 로드 아일랜드 주{州}가 미국 의회에서 두 개의 상원의석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
134:5.15 이런 48개 주의 한정된 (주) 주권은,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었다. 주를 관할하는 아메리카 합중국의 (국가) 통치권은, 이 여러 주 가운데 최초의 13개 주가, 그들 자체의 이익과 주민{州民}의 이익을 위하여 창설했다. 언젠가는 여러 나라가, 자체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행성의 인류 정부라는 초국가적 주권을 비슷하게 창설할 것이다.
134:5.16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시민이 태어난 것이 아니며; 정부는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고안된 조직이다. 모든 사람이 주권을 갖는 정부가 나타날 때까지,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 끝이 있을 수 없다. 모든 다른 주권에는, 상대적 가치, 중간 정도의 의미, 그리고 하위의 지위가 있다.
134:5.17 과학의 발달과 함께, 거의 인종적 자살 행위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세상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인류의 정부를 기꺼이 세우고, 비로소 영구한 평화의 복을 누리면서 사람들 사이에 친선--곧 세계적 친선--으로 얻은 평정을 토대로 번영하기까지, 얼마나 여러 번 세계 전쟁을 치러야하고, 얼마나 많은 국가 동맹이 깨져야 할 것인가?
6. 법, 자유, 주권
134:6.1 어떤 한 사람이 해방을--곧 자유를-- 열망한다면, 그는 모든 다른 사람도 역시 자기와 똑같은 해방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자유를_사랑하는 그런 필사자 집단은, 각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해방을 허락하는 동시에, 모든 동료 필사자에게도 동일한 정도의 해방을 보장해줄, 그런 법과 규칙과 규제에 복종하지 않고서는 평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없다. 한 사람이 절대로 자유로워지려면, 다른 사람은 절대로 노예가 돼야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자유는 상대적 본성을 지녔음이 사실이다. 자유는 법을 집행함으로써 가능하게 된, 문명의 선물이다.
134:6.2 사람이 형제지간임을 인식하는 것을 종교가 영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지만, 인간의 행복이나 효율성 같은 그런 목표와 관련하여, 사회 문제와 경제 문제 및 정치 문제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정부가 필요하다.
134:6.3 세계의 정치 주권이 나뉘어있고 한 집단의 국가_주정부가 불공정하게 장악하는 한, --국가와 국가 간에 서로 반목하는-- 전쟁과 전쟁에 대한 소문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는, 그들이 각자의 주권을 영연방{英聯邦}에게 위임하기 전까지 항상 서로 싸우고 있었다.
134:6.4 소위 주권 국가들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연맹을 만들고, 그리하여 소규모 전쟁, 즉 작은 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예방하는 기구를 창설하도록, 또 하나의 세계전쟁이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전쟁은 인류 정부가 생길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세계적 주권이 세계 전쟁을 막을 것이다--그밖에 아무것도 그러지 못한다.
134:6.5 아메리카의 독립된 48개 주는 평화를 유지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 이 48개 주의 시민 중에는, 항상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 국가들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국민과 종족 모두가 섞여있다. 이 미국인들은 전 세계 모든 종교와 교파와 종파를 대표하며, 그럼에도 이 북 아메리카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이 48개 주{州}가 자체의 주권을 포기하고, 자결권에 대한 모든 관념을 버렸기 때문이다.
134:6.6 무장{武裝}과 비무장의 문제가 아니다. 징병인가 혹은 지원병인가 하는 것도, 전_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이런 문제와 상관없다. 현대의 기계화된 무기와 모든 유형의 폭탄을 강대국들로부터 다 빼앗는다 해도, 국가의 주권이 신성한 권리라는 망상에 빠져있는 한, 주먹과 돌과 몽둥이를 갖고서라도 싸울 것이다.
134:6.7 사람이 대단하고 끔찍한 질병에 걸리도록 만드는 것은 전쟁이 아니며; 전쟁은 증상이자 결과다. 질병의 진짜 원인은 국가의 주권이라는 병균이다.
134:6.8 유란시아의 나라들은 진정한 주권을 소유해 본 적이 없으며; 세계 전쟁의 참상과 황폐함을 겪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주권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인류의 범세계 정부를 창설하는 것은, 국가들이 주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진실하고 지속적인 세계 주권을 창설하는 것이며, 그때부터 그들을 온갖 전쟁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지역의 직무는 지방정부가; 나라의 직무는 국가 정부가 처리하며; 국제적 직무는 범세계 정부가 경영할 것이다.
134:6.9 조약으로, 외교로, 대외 정책으로, 연맹으로, 힘의 균형으로, 또는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주권국가들을 속이는 어떤 다른 유형의 임시변통으로든지, 세계평화는 유지될 수 없다. 세계에 통용되는 법률을 만들고, 이를 세계정부가--곧 온 인류의 통치권이-- 집행해야한다.
134:6.10 세계정부 아래서 개인은 훨씬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오늘날, 강대국의 시민은 거의 강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제약과 통제를 받고 있으며, 현재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이런 간섭 대부분은, 국가 정부들이 국제적 문제에 관한 그들의 주권을 범세계 정부에게 기꺼이 맡길 때 사라질 것이다.
134:6.11 범세계 정부 아래서 국가 집단들은, 진짜 민주주의의 개인적 자유를 실현하고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가질 것이다. 자결권이라는 그릇된 생각은 사라질 것이다. 돈과 무역에 대한 범세계적 규제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적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곧 범세계적 언어가 생길지도 모르며, 적어도 언젠가는 범세계적 종교--또는 범세계적 견해를 지닌 종교--를 갖게 된다는 희망이 어느 정도 생길 것이다.
134:6.12 집단의 안전은, 그 집합체가 온 인류를 포함하기 전에는 절대로 평화를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134:6.13 인류를 대표하는 정부의 정치적 주권이 이 세상에 지속되는 평화를 가져오고, 사람의 영적 형제관계가 모든 사람 가운데 친선을 영원히 보장할 것이다. 이 세상에 평화,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친선을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전혀 없다.
134:6.14 씸보이톤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들은 평화로운 교수진을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르미아 교수진에 합세했던 후대의 그리스도교 선생들이 좀 더 지혜롭고 좀 더 아량이 있었더라면, 예수의 교훈의 영향은 훨씬 컸을 것이다.
134:6.15 씸보이톤의 맏아들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브넬에게 도움을 청했었지만, 아브넬이 선택한 선생들이 고집스럽고 완고하게 바뀌는 바람에, 무척 유감스럽게 됐다. 이 선생들은, 자신의 종교가 다른 믿음들을 지배하도록 만들려고 애썼다. 대상{隊商} 안내자가 했다고 종종_언급되던 강의를 바로 예수가 하셨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짐작하지 못했다.
134:6.16 교수진에서 혼란이 커지자 세 형제는 경제 지원을 끊었고, 학교는 5년 후에 문을 닫았다. 이 학교는 나중에 미드라 사원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나, 결국 어느 주신제{酒神祭} 축제와 관련해서 불타버렸다.
134:7.1 카스피 해로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예수는 자신의 세상 여행이 거의 끝났음을 알았다. 팔레스틴 밖으로 한 번만 더 여행했는데, 시리아로 갔었다. 가버나움을 잠시 방문한 후에 나사렛으로 갔고, 거기서 며칠 머물렀다. 4월 중순에 나사렛을 떠나서 두로로 향했다. 거기서 북쪽으로 여행하여 시돈에 며칠 머물렀지만, 그의 목적지는 안디옥이었다.
134:7.2 이 해에 예수는 홀로 팔레스틴과 시리아를 두루 다녔다. 이 여행 기간 내내, 다른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나사렛 목수, 가버나움 조선공, 다마스커스 서기관, 알렉산드리아 교사 등이었다.
134:7.3 사람의 아들은, 안디옥에서 두 달 동안 살면서, 일하고, 관찰하고, 연구하고, 방문하고, 보살폈으며, 그동안 내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곧 그들이 인간 실존의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지를 배웠다. 그는 이 기간 중에 3주 동안 천막 짓는 일을 했다. 이 여행 중에 방문했던 어떤 도시보다 안디옥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10년 후에, 안디옥에서 전도하다가 거기서 추종자들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의 교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듣게 됐을 때, 사도 바울은 자기 제자들이 바로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의 교훈을 새겨들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134:7.4 예수는 안디옥으로부터 해변을 따라서 가이사랴를 향해 남쪽으로 여행했고, 거기서 몇 주 지내다가 해변을 따라서 욥바로 내려갔다. 욥바에서 내륙 쪽으로, 얌니아, 애쉬돗, 가자를 향해 여행했다. 가자에서는 내륙의 도로를 이용하여 브엘세바로 갔고, 거기서 한 주간 머물렀다.
134:7.5 그리고 나서 예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마지막 여행을 떠났는데, 팔레스틴 중심부를 통과하여, 남쪽의 브엘세바로부터 북쪽의 단으로 갔다. 북쪽으로 가는 여행 도중에, 헤브론과 베들레헴(여기서 자신의 출생지를 봤다), 예루살렘(베다니는 방문하지 않았다), 베롯, 레보나, 싸이카, 세겜, 사마리아, 게바, 엔_가님, 엔도르, 마돈을 들렸고; 막달라와 가버나움을 지나서 북쪽으로 여행했으며; 메롬의 우물 동쪽을 통과한 후, 카라타를 지나서, 단, 즉 가이사랴 빌립보로 갔다.
134:7.6 내주하는 사고 조율사는, 이제 사람이 사는 곳을 떠나서 헤르몬 산으로 올라가도록 예수를 이끌었는데, 거기서 인간 정신을 정복하는 업무를 마치고, 이 세상에서 남은 필생과업에 온전히 헌신하는 과제를 완성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134:7.7 이때는 유란시아에서 주님의 이 세상 생애 가운데 이례적이고 특이한 시기들 가운데 하나였다. 아주 비슷한 또 하나의 체험은, 세례 받은 직후에, 홀로 펠라 근처 언덕에 있을 때 겪은 체험이었다. 헤르몬 산에서 홀로 지낸 이 기간은, 그의 순전히 인간적인 생애의 종료, 다시 말해서, 필사자 증여가 절차상 종료됐음을 표시했던 반면, 나중에 홀로 있던 기간은, 증여에서 좀 더 신성한 국면이 시작됐음을 표시했다. 그리고 예수는 헤르몬 산 기슭에서 6주 동안 홀로 하나님과 함께 지냈다.
134:8.1 예수는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에서 얼마 동안 지낸 후에 양식을 준비했으며, 짐을 운반할 짐승과 티그랏이라는 소년을 확보하고 나서, 다마스커스 길을 따라가다가, 헤르몬 산 기슭에 있는 베이트 젠이라고 알려진 마을로 들어갔다. 서기 25년 8월 중순 경, 그는 여기에 본거지를 정하고 양식을 티그랏에게 맡긴 후에, 인적이 드문 산비탈을 올라갔다. 이 첫날에, 티그랏은 약 해발 6,000피트 되는 지점까지 예수와 동행했고, 그들은 거기에 돌로 저장고{貯藏庫}를 지었는데, 티그랏이 매주 두 번씩 음식을 거기에 넣어두기로 했다.
134:8.2 첫날 티그랏을 보낸 후에, 예수는 산을 약간 더 올라가서 기도하려고 멈췄다. 무엇보다도, “티그랏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수호 스라빔을 돌려보내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했다. 그는 필사자 실존으로서 현실과 씨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홀로 감당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실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요청은 허락됐다. 그가 시험에 들어갈 때, 내주하면서 안내하고 북돋우는 조율사만이 그와 함께 했다.
134:8.3 예수는 산에 있을 동안 음식을 간소하게 먹었으며; 한 번에 하루나 이틀씩만 금식{禁食}했다. 이 산에서 그가 대면하고 영으로 씨름을 했던, 그리고 권능으로 물리쳤던 초인간 존재들은 실재했으며; 그들은 사타니아 체계에서 그의 우두머리 적{敵}들이었으며; 정신 착란을 일으켜서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허약하고 굶주린 필사자의 지적{知的} 변덕스러움에서 연유된 망상적 환상이 아니었다.
134:8.4 예수는 8월 마지막 세 주와 9월의 첫 세 주를 헤르몬 산에서 지냈다. 이 몇 주 동안에, 예수는 필사자로서 정신을_이해하는 범위와 인격을_통제하는 범위에 도달하는 과제를 마쳤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친교하는 이 기간 내내, 내주하는 조율사 역시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완료했다. 이 세상 피조물의 현세{現世} 목표가 거기서 달성됐다. 다만 정신을 조율사에 동조{同調}시키는 마지막 국면을 완성하는 일만 남았다.
134:8.5 5주 넘도록 낙원 아버지와 끊임없는 친교를 나눈 후에, 예수는 자신의 본성뿐만 아니라, 시_공간에서 인격이 형태화되는 물질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었다는 것을, 절대로 확신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본성이 인간 본성을 지배하게 됐음을 온전히 믿었고, 이를 서슴없이 단언했다.
134:8.6 산에서 체류하던 기간이 끝날 무렵에,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서, 즉 요셉의 아들 예슈아로서, 사타니아에 있는 적들과 회담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아버지께 요청했다. 이 요청은 허락됐다. 헤르몬 산에서 마지막 주간에, 큰 유혹, 즉 우주 재판이 벌어졌다. (루시퍼를 대변하는) 사탄, 그리고 반역한 행성 왕자 캘리개스챠가 예수와 함께 참석했고, 그의 눈에 온전히 보이도록 마련됐다. 이 “유혹”, 즉 반역한 인격체들의 잘못된 주장에 직면하여 인간적 충성심을 판단하는 이 마지막 시련은, 음식이나 성전 꼭대기 또는 주제넘은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막강하고 영광스런 우주 주권과 상관이 있었다. 너희의 기록에 나타나는 그 상징은, 유치하게 생각하던 진부한 시대의 세상 사람을 위하여 의도된 것이었다. 그리고 후일의 세대들은, 그 획기적인 날에 헤르몬 산에서 사람의 아들이 겪어야했던 투쟁이 얼마나 위대했었는지 이해해야한다.
134:8.7 루시퍼의 밀사{密使}들이 제시한 여러 제안과 반대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단지: “내 낙원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기 바라며, 너, 반역의 아들아, 태고 항존자가 너를 신의 권능으로 재판하시기 바란다. 나는 너의 창조주이자_아버지이며; 내가 너를 도저히 공정하게 재판할 수 없고, 너는 이미 나의 자비를 거절해왔다. 나는 너를 더 높은 우주 재판관들의 판결에 회부한다”고 대답했다.
134:8.8 루시퍼가_제시한 모든 절충안과 임시변통에 대하여, 즉 육신화된 증여에 관하여 내놓은 그럴듯한 모든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오직, “낙원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이뤄질 지어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호된 시련이 끝나자, 떨어져있던 수호 스라빔이 예수 곁으로 돌아와서 섬겼다.
134:8.9 늦은 여름 어느 날 오후에, 나무로 둘러싸인 고요한 자연 속에서,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신의 우주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주권을 획득했다. 시간과 공간의 진화 세계에서 필사 육신의 모습을 입고 육신화된 생애를 최대한으로 살아야하는, 창조주 아들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그는 바로 이날 완료했다. 이 중대한 업적은, 그로부터 몇 달 후에 있었던 그의 세례의 날까지 우주에서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날 산에서 정말로 발생했다. 그리고 예수가 헤르몬 산에 머물다가 내려왔을 때, 사타니아에서 일어났던 루시퍼 반역과 유란시아에서 캘리개스챠가 탈퇴한 일은 실질적으로 처리됐다. 예수는 자신이 지은 우주의 주권을 획득하는 데 요구되는 마지막 값을 다 치렀는데, 이 주권은, 그 자체로, 모든 반역자의 지위를 통제하고, 미래의 그런 모든 격변{激變}이 (언제라도 발생한다면) 즉석에서 효과적으로 처리해도 좋다고 확정한다. 따라서, 소위 예수의 “큰 시험”은, 그가 세례 받은 직후가 아니라, 세례 받기 얼마 전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134:8.10 산에서 지내던 일을 마치고 하산할 때, 예수는 음식을 갖고 약속 장소로 올라오던 티그랏을 만났다. 그를 돌려보내면서 단지 이렇게 말했다: “쉬는 시간이 끝났으며;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하러 돌아가야한다”. 단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고 매우 달라진 사람이었으며, 거기서 소년에게 당나귀를 주고 작별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이 왔던 같은 길을 따라서 가버나움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134:9.1 이제는 여름이 끝날 때가 됐는데, 속죄의 날과 장막절이 가까운 시기였다. 예수는 안식일에 가버나움에서 가족회의를 열었고, 이튿날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떠났고, 호수 동쪽으로 갔고, 거라사를 지나 요단 계곡으로 내려갔다. 가는 도중에 동무와 얼마큼 이야기하는 동안, 요한은 예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134:9.2 예수와 요한은 베다니에서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과 함께 그날 밤을 지냈고, 이튿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들은 거의 3주 동안 그 도성{都城} 안과 주변에서 보냈는데, 적어도 요한은 그랬다. 요한은 예루살렘에 여러 날 혼자 갔고, 한편 예수는 근처에 있는 언덕을 거닐거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적으로 교류하면서 지냈다.
134:9.3 두 사람은 엄숙한 속죄{贖罪}의 날 예배에 참석했다. 요한은 유대인의 모든 종교 제례식 날들 중에서 이날 예식에 무척 감명 받았으나, 예수는 생각에 잠긴 채, 조용한 구경꾼으로 남아있었다. 사람의 아들에게 이 행사는 불쌍하고 애처롭게 보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속성들을 모두가 잘못 묘사한다고 봤다. 신{神}이 응보한다는 사실과 무한히 자비를 베푼다는 진리를, 이날의 여러 행사가 우스꽝스럽게 흉내만 낸다고 여겼다. 아버지의 애정 어린 성품과, 우주에서 자비롭게 처리하시는 것에 관한 참된 진리를 선포하고 싶어서 속이 탔지만, 충실한 감시자가 그에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날 밤 베다니에서, 예수는 많은 의견을 제시했고, 이것이 요한을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요한은, 그날 밤 그들이 듣는 앞에서 예수가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결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134:9.4 예수는 장막절 주간 내내 요한과 함께 남아있기로 계획했다. 이 축제는 팔레스틴 전체의 연중 공휴일이었으며; 유대인의 휴가철이었다. 예수는 비록 이 행사의 흥겨운 잔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쾌활하고 즐겁게 거리낌 없이 노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만족했음이 분명하다.
134:9.5 축하하는 주간이 한창이고, 축제가 아직 끝나기 전에, 예수는 낙원 아버지와 소통하기에 더 좋을 듯한 언덕으로 물러나 있고 싶다는 말을 하고 요한에게서 떠났다. 요한은 그와 함께 갔으면 했으나, 예수는 그에게 축제가 끝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한다고 고집하면서 말했다: “네가 사람의 아들의 짐을 같이 져야 할 필요는 없으며; 도시가 평화 속에 잠들어있는 동안, 파수꾼만 깨어있으면 된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베다니 근처 언덕에서 거의 한 주간 홀로 지낸 후에, 가버나움으로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길보아산 기슭에서 하루 낮과 밤을 홀로 지냈는데, 그곳은 사울이 생애를 마친 곳에서 가까웠으며;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에는, 예루살렘에 요한을 남겨놓고 떠났을 때보다 더욱 쾌활해보였다.
134:9.6 이튿날 아침에, 예수는 세베대의 작업장에 남아있던 개인 소지품 상자로 가서 작업복을 꺼내 입고, 몸소 작업에 참여하면서: “나의 때를 기다리는 동안, 바쁘게 지내는 것이 나에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동생 야고보와 함께 다음 해 1월까지 수개월간 일했다. 예수와 함께 일하던 이 기간이 끝난 뒤에, 어떤 의심이 생겨서 사람의 아들의 필생과업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든지 상관없이, 야고보가 예수의 사명에 대한 신앙을 실제로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은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134:9.7 배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이 마지막 기간에, 예수는 좀 더 큰 일부 배들의 내부를 마무리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보냈다. 모든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훌륭한 그 배를 완성시켰을 때, 인간적 성취의 만족감을 체험하는 듯 했다. 그는 사소한 일에는 거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나, 어떤 과업이 맡겨지든지 그 핵심적인 일에 부닥치게 되면 공을 많이 들이는 일꾼이었다.
134:9.8 시간이 지나자, 요단강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전도하던 요한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소문이 가버나움까지 퍼졌는데, 요한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다. 요한이 예루살렘에 가장 가까운 강의 개울에서부터 요단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예수는 이렇게 전달되는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다음 해, 서기 26년 1월에, 요한이 펠라 근처 지점으로 강을 따라서 올라올 때까지, 예수는 배를 만들면서 일을 계속했으며, 그때 연장을 내려놓고, “나의 때가 이르렀다”고 선언하면서, 세례 받으러 즉시 요한에게로 갔다.
134:9.9 그러나 엄청난 변화가 이미 예수에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 지역 땅들을 오가면서 그가 방문하고 보살폈던 사람들 가운데, 대중을 가르치는 그 선생이, 예전에 사사로이 한 개인으로서 알고 사랑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후일에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초기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대중을 가르치는 권위 있는 선생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를 이렇게 알아보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정신과 영의 변화가 여러 해 진행돼왔고, 이것은 헤르몬 산에서 그 중대한 체류기간에 마무리됐다.
134:6.4 소위 주권 국가들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연맹을 만들고, 그리하여 소규모 전쟁, 즉 작은 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예방하는 기구를 창설하도록, 또 하나의 세계전쟁이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전쟁은 인류 정부가 생길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세계적 주권이 세계 전쟁을 막을 것이다--그밖에 아무것도 그러지 못한다.
134:6.5 아메리카의 독립된 48개 주는 평화를 유지하면서 함께 살고 있다. 이 48개 주의 시민 중에는, 항상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 국가들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국민과 종족 모두가 섞여있다. 이 미국인들은 전 세계 모든 종교와 교파와 종파를 대표하며, 그럼에도 이 북 아메리카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이 48개 주{州}가 자체의 주권을 포기하고, 자결권에 대한 모든 관념을 버렸기 때문이다.
134:6.6 무장{武裝}과 비무장의 문제가 아니다. 징병인가 혹은 지원병인가 하는 것도, 전_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이런 문제와 상관없다. 현대의 기계화된 무기와 모든 유형의 폭탄을 강대국들로부터 다 빼앗는다 해도, 국가의 주권이 신성한 권리라는 망상에 빠져있는 한, 주먹과 돌과 몽둥이를 갖고서라도 싸울 것이다.
134:6.7 사람이 대단하고 끔찍한 질병에 걸리도록 만드는 것은 전쟁이 아니며; 전쟁은 증상이자 결과다. 질병의 진짜 원인은 국가의 주권이라는 병균이다.
134:6.8 유란시아의 나라들은 진정한 주권을 소유해 본 적이 없으며; 세계 전쟁의 참상과 황폐함을 겪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주권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인류의 범세계 정부를 창설하는 것은, 국가들이 주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진실하고 지속적인 세계 주권을 창설하는 것이며, 그때부터 그들을 온갖 전쟁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지역의 직무는 지방정부가; 나라의 직무는 국가 정부가 처리하며; 국제적 직무는 범세계 정부가 경영할 것이다.
134:6.9 조약으로, 외교로, 대외 정책으로, 연맹으로, 힘의 균형으로, 또는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주권국가들을 속이는 어떤 다른 유형의 임시변통으로든지, 세계평화는 유지될 수 없다. 세계에 통용되는 법률을 만들고, 이를 세계정부가--곧 온 인류의 통치권이-- 집행해야한다.
134:6.10 세계정부 아래서 개인은 훨씬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오늘날, 강대국의 시민은 거의 강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제약과 통제를 받고 있으며, 현재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이런 간섭 대부분은, 국가 정부들이 국제적 문제에 관한 그들의 주권을 범세계 정부에게 기꺼이 맡길 때 사라질 것이다.
134:6.11 범세계 정부 아래서 국가 집단들은, 진짜 민주주의의 개인적 자유를 실현하고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기회를 가질 것이다. 자결권이라는 그릇된 생각은 사라질 것이다. 돈과 무역에 대한 범세계적 규제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적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곧 범세계적 언어가 생길지도 모르며, 적어도 언젠가는 범세계적 종교--또는 범세계적 견해를 지닌 종교--를 갖게 된다는 희망이 어느 정도 생길 것이다.
134:6.12 집단의 안전은, 그 집합체가 온 인류를 포함하기 전에는 절대로 평화를 이룩할 수 없을 것이다.
134:6.13 인류를 대표하는 정부의 정치적 주권이 이 세상에 지속되는 평화를 가져오고, 사람의 영적 형제관계가 모든 사람 가운데 친선을 영원히 보장할 것이다. 이 세상에 평화,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 친선을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전혀 없다.
* * *
134:6.14 씸보이톤이 죽은 후에, 그의 아들들은 평화로운 교수진을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르미아 교수진에 합세했던 후대의 그리스도교 선생들이 좀 더 지혜롭고 좀 더 아량이 있었더라면, 예수의 교훈의 영향은 훨씬 컸을 것이다.
134:6.15 씸보이톤의 맏아들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브넬에게 도움을 청했었지만, 아브넬이 선택한 선생들이 고집스럽고 완고하게 바뀌는 바람에, 무척 유감스럽게 됐다. 이 선생들은, 자신의 종교가 다른 믿음들을 지배하도록 만들려고 애썼다. 대상{隊商} 안내자가 했다고 종종_언급되던 강의를 바로 예수가 하셨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짐작하지 못했다.
134:6.16 교수진에서 혼란이 커지자 세 형제는 경제 지원을 끊었고, 학교는 5년 후에 문을 닫았다. 이 학교는 나중에 미드라 사원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나, 결국 어느 주신제{酒神祭} 축제와 관련해서 불타버렸다.
134:7.1 카스피 해로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예수는 자신의 세상 여행이 거의 끝났음을 알았다. 팔레스틴 밖으로 한 번만 더 여행했는데, 시리아로 갔었다. 가버나움을 잠시 방문한 후에 나사렛으로 갔고, 거기서 며칠 머물렀다. 4월 중순에 나사렛을 떠나서 두로로 향했다. 거기서 북쪽으로 여행하여 시돈에 며칠 머물렀지만, 그의 목적지는 안디옥이었다.
134:7.2 이 해에 예수는 홀로 팔레스틴과 시리아를 두루 다녔다. 이 여행 기간 내내, 다른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나사렛 목수, 가버나움 조선공, 다마스커스 서기관, 알렉산드리아 교사 등이었다.
134:7.3 사람의 아들은, 안디옥에서 두 달 동안 살면서, 일하고, 관찰하고, 연구하고, 방문하고, 보살폈으며, 그동안 내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곧 그들이 인간 실존의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는지를 배웠다. 그는 이 기간 중에 3주 동안 천막 짓는 일을 했다. 이 여행 중에 방문했던 어떤 도시보다 안디옥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10년 후에, 안디옥에서 전도하다가 거기서 추종자들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의 교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듣게 됐을 때, 사도 바울은 자기 제자들이 바로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의 교훈을 새겨들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134:7.4 예수는 안디옥으로부터 해변을 따라서 가이사랴를 향해 남쪽으로 여행했고, 거기서 몇 주 지내다가 해변을 따라서 욥바로 내려갔다. 욥바에서 내륙 쪽으로, 얌니아, 애쉬돗, 가자를 향해 여행했다. 가자에서는 내륙의 도로를 이용하여 브엘세바로 갔고, 거기서 한 주간 머물렀다.
134:7.5 그리고 나서 예수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마지막 여행을 떠났는데, 팔레스틴 중심부를 통과하여, 남쪽의 브엘세바로부터 북쪽의 단으로 갔다. 북쪽으로 가는 여행 도중에, 헤브론과 베들레헴(여기서 자신의 출생지를 봤다), 예루살렘(베다니는 방문하지 않았다), 베롯, 레보나, 싸이카, 세겜, 사마리아, 게바, 엔_가님, 엔도르, 마돈을 들렸고; 막달라와 가버나움을 지나서 북쪽으로 여행했으며; 메롬의 우물 동쪽을 통과한 후, 카라타를 지나서, 단, 즉 가이사랴 빌립보로 갔다.
134:7.6 내주하는 사고 조율사는, 이제 사람이 사는 곳을 떠나서 헤르몬 산으로 올라가도록 예수를 이끌었는데, 거기서 인간 정신을 정복하는 업무를 마치고, 이 세상에서 남은 필생과업에 온전히 헌신하는 과제를 완성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134:7.7 이때는 유란시아에서 주님의 이 세상 생애 가운데 이례적이고 특이한 시기들 가운데 하나였다. 아주 비슷한 또 하나의 체험은, 세례 받은 직후에, 홀로 펠라 근처 언덕에 있을 때 겪은 체험이었다. 헤르몬 산에서 홀로 지낸 이 기간은, 그의 순전히 인간적인 생애의 종료, 다시 말해서, 필사자 증여가 절차상 종료됐음을 표시했던 반면, 나중에 홀로 있던 기간은, 증여에서 좀 더 신성한 국면이 시작됐음을 표시했다. 그리고 예수는 헤르몬 산 기슭에서 6주 동안 홀로 하나님과 함께 지냈다.
134:8.1 예수는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에서 얼마 동안 지낸 후에 양식을 준비했으며, 짐을 운반할 짐승과 티그랏이라는 소년을 확보하고 나서, 다마스커스 길을 따라가다가, 헤르몬 산 기슭에 있는 베이트 젠이라고 알려진 마을로 들어갔다. 서기 25년 8월 중순 경, 그는 여기에 본거지를 정하고 양식을 티그랏에게 맡긴 후에, 인적이 드문 산비탈을 올라갔다. 이 첫날에, 티그랏은 약 해발 6,000피트 되는 지점까지 예수와 동행했고, 그들은 거기에 돌로 저장고{貯藏庫}를 지었는데, 티그랏이 매주 두 번씩 음식을 거기에 넣어두기로 했다.
134:8.2 첫날 티그랏을 보낸 후에, 예수는 산을 약간 더 올라가서 기도하려고 멈췄다. 무엇보다도, “티그랏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수호 스라빔을 돌려보내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했다. 그는 필사자 실존으로서 현실과 씨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홀로 감당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실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요청은 허락됐다. 그가 시험에 들어갈 때, 내주하면서 안내하고 북돋우는 조율사만이 그와 함께 했다.
134:8.3 예수는 산에 있을 동안 음식을 간소하게 먹었으며; 한 번에 하루나 이틀씩만 금식{禁食}했다. 이 산에서 그가 대면하고 영으로 씨름을 했던, 그리고 권능으로 물리쳤던 초인간 존재들은 실재했으며; 그들은 사타니아 체계에서 그의 우두머리 적{敵}들이었으며; 정신 착란을 일으켜서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허약하고 굶주린 필사자의 지적{知的} 변덕스러움에서 연유된 망상적 환상이 아니었다.
134:8.4 예수는 8월 마지막 세 주와 9월의 첫 세 주를 헤르몬 산에서 지냈다. 이 몇 주 동안에, 예수는 필사자로서 정신을_이해하는 범위와 인격을_통제하는 범위에 도달하는 과제를 마쳤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친교하는 이 기간 내내, 내주하는 조율사 역시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완료했다. 이 세상 피조물의 현세{現世} 목표가 거기서 달성됐다. 다만 정신을 조율사에 동조{同調}시키는 마지막 국면을 완성하는 일만 남았다.
134:8.5 5주 넘도록 낙원 아버지와 끊임없는 친교를 나눈 후에, 예수는 자신의 본성뿐만 아니라, 시_공간에서 인격이 형태화되는 물질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었다는 것을, 절대로 확신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본성이 인간 본성을 지배하게 됐음을 온전히 믿었고, 이를 서슴없이 단언했다.
134:8.6 산에서 체류하던 기간이 끝날 무렵에,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서, 즉 요셉의 아들 예슈아로서, 사타니아에 있는 적들과 회담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아버지께 요청했다. 이 요청은 허락됐다. 헤르몬 산에서 마지막 주간에, 큰 유혹, 즉 우주 재판이 벌어졌다. (루시퍼를 대변하는) 사탄, 그리고 반역한 행성 왕자 캘리개스챠가 예수와 함께 참석했고, 그의 눈에 온전히 보이도록 마련됐다. 이 “유혹”, 즉 반역한 인격체들의 잘못된 주장에 직면하여 인간적 충성심을 판단하는 이 마지막 시련은, 음식이나 성전 꼭대기 또는 주제넘은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막강하고 영광스런 우주 주권과 상관이 있었다. 너희의 기록에 나타나는 그 상징은, 유치하게 생각하던 진부한 시대의 세상 사람을 위하여 의도된 것이었다. 그리고 후일의 세대들은, 그 획기적인 날에 헤르몬 산에서 사람의 아들이 겪어야했던 투쟁이 얼마나 위대했었는지 이해해야한다.
134:8.7 루시퍼의 밀사{密使}들이 제시한 여러 제안과 반대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단지: “내 낙원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기 바라며, 너, 반역의 아들아, 태고 항존자가 너를 신의 권능으로 재판하시기 바란다. 나는 너의 창조주이자_아버지이며; 내가 너를 도저히 공정하게 재판할 수 없고, 너는 이미 나의 자비를 거절해왔다. 나는 너를 더 높은 우주 재판관들의 판결에 회부한다”고 대답했다.
134:8.8 루시퍼가_제시한 모든 절충안과 임시변통에 대하여, 즉 육신화된 증여에 관하여 내놓은 그럴듯한 모든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오직, “낙원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이뤄질 지어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호된 시련이 끝나자, 떨어져있던 수호 스라빔이 예수 곁으로 돌아와서 섬겼다.
134:8.9 늦은 여름 어느 날 오후에, 나무로 둘러싸인 고요한 자연 속에서,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신의 우주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주권을 획득했다. 시간과 공간의 진화 세계에서 필사 육신의 모습을 입고 육신화된 생애를 최대한으로 살아야하는, 창조주 아들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그는 바로 이날 완료했다. 이 중대한 업적은, 그로부터 몇 달 후에 있었던 그의 세례의 날까지 우주에서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날 산에서 정말로 발생했다. 그리고 예수가 헤르몬 산에 머물다가 내려왔을 때, 사타니아에서 일어났던 루시퍼 반역과 유란시아에서 캘리개스챠가 탈퇴한 일은 실질적으로 처리됐다. 예수는 자신이 지은 우주의 주권을 획득하는 데 요구되는 마지막 값을 다 치렀는데, 이 주권은, 그 자체로, 모든 반역자의 지위를 통제하고, 미래의 그런 모든 격변{激變}이 (언제라도 발생한다면) 즉석에서 효과적으로 처리해도 좋다고 확정한다. 따라서, 소위 예수의 “큰 시험”은, 그가 세례 받은 직후가 아니라, 세례 받기 얼마 전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134:8.10 산에서 지내던 일을 마치고 하산할 때, 예수는 음식을 갖고 약속 장소로 올라오던 티그랏을 만났다. 그를 돌려보내면서 단지 이렇게 말했다: “쉬는 시간이 끝났으며;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하러 돌아가야한다”. 단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고 매우 달라진 사람이었으며, 거기서 소년에게 당나귀를 주고 작별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이 왔던 같은 길을 따라서 가버나움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9. 기다리던 시절
134:9.1 이제는 여름이 끝날 때가 됐는데, 속죄의 날과 장막절이 가까운 시기였다. 예수는 안식일에 가버나움에서 가족회의를 열었고, 이튿날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떠났고, 호수 동쪽으로 갔고, 거라사를 지나 요단 계곡으로 내려갔다. 가는 도중에 동무와 얼마큼 이야기하는 동안, 요한은 예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134:9.2 예수와 요한은 베다니에서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과 함께 그날 밤을 지냈고, 이튿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들은 거의 3주 동안 그 도성{都城} 안과 주변에서 보냈는데, 적어도 요한은 그랬다. 요한은 예루살렘에 여러 날 혼자 갔고, 한편 예수는 근처에 있는 언덕을 거닐거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적으로 교류하면서 지냈다.
134:9.3 두 사람은 엄숙한 속죄{贖罪}의 날 예배에 참석했다. 요한은 유대인의 모든 종교 제례식 날들 중에서 이날 예식에 무척 감명 받았으나, 예수는 생각에 잠긴 채, 조용한 구경꾼으로 남아있었다. 사람의 아들에게 이 행사는 불쌍하고 애처롭게 보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속성들을 모두가 잘못 묘사한다고 봤다. 신{神}이 응보한다는 사실과 무한히 자비를 베푼다는 진리를, 이날의 여러 행사가 우스꽝스럽게 흉내만 낸다고 여겼다. 아버지의 애정 어린 성품과, 우주에서 자비롭게 처리하시는 것에 관한 참된 진리를 선포하고 싶어서 속이 탔지만, 충실한 감시자가 그에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날 밤 베다니에서, 예수는 많은 의견을 제시했고, 이것이 요한을 몹시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요한은, 그날 밤 그들이 듣는 앞에서 예수가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결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134:9.4 예수는 장막절 주간 내내 요한과 함께 남아있기로 계획했다. 이 축제는 팔레스틴 전체의 연중 공휴일이었으며; 유대인의 휴가철이었다. 예수는 비록 이 행사의 흥겨운 잔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쾌활하고 즐겁게 거리낌 없이 노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고 만족했음이 분명하다.
134:9.5 축하하는 주간이 한창이고, 축제가 아직 끝나기 전에, 예수는 낙원 아버지와 소통하기에 더 좋을 듯한 언덕으로 물러나 있고 싶다는 말을 하고 요한에게서 떠났다. 요한은 그와 함께 갔으면 했으나, 예수는 그에게 축제가 끝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한다고 고집하면서 말했다: “네가 사람의 아들의 짐을 같이 져야 할 필요는 없으며; 도시가 평화 속에 잠들어있는 동안, 파수꾼만 깨어있으면 된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베다니 근처 언덕에서 거의 한 주간 홀로 지낸 후에, 가버나움으로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길보아산 기슭에서 하루 낮과 밤을 홀로 지냈는데, 그곳은 사울이 생애를 마친 곳에서 가까웠으며;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에는, 예루살렘에 요한을 남겨놓고 떠났을 때보다 더욱 쾌활해보였다.
134:9.6 이튿날 아침에, 예수는 세베대의 작업장에 남아있던 개인 소지품 상자로 가서 작업복을 꺼내 입고, 몸소 작업에 참여하면서: “나의 때를 기다리는 동안, 바쁘게 지내는 것이 나에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동생 야고보와 함께 다음 해 1월까지 수개월간 일했다. 예수와 함께 일하던 이 기간이 끝난 뒤에, 어떤 의심이 생겨서 사람의 아들의 필생과업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든지 상관없이, 야고보가 예수의 사명에 대한 신앙을 실제로 송두리째 포기하는 일은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134:9.7 배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이 마지막 기간에, 예수는 좀 더 큰 일부 배들의 내부를 마무리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보냈다. 모든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훌륭한 그 배를 완성시켰을 때, 인간적 성취의 만족감을 체험하는 듯 했다. 그는 사소한 일에는 거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나, 어떤 과업이 맡겨지든지 그 핵심적인 일에 부닥치게 되면 공을 많이 들이는 일꾼이었다.
134:9.8 시간이 지나자, 요단강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전도하던 요한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소문이 가버나움까지 퍼졌는데, 요한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다. 요한이 예루살렘에 가장 가까운 강의 개울에서부터 요단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예수는 이렇게 전달되는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다음 해, 서기 26년 1월에, 요한이 펠라 근처 지점으로 강을 따라서 올라올 때까지, 예수는 배를 만들면서 일을 계속했으며, 그때 연장을 내려놓고, “나의 때가 이르렀다”고 선언하면서, 세례 받으러 즉시 요한에게로 갔다.
134:9.9 그러나 엄청난 변화가 이미 예수에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 지역 땅들을 오가면서 그가 방문하고 보살폈던 사람들 가운데, 대중을 가르치는 그 선생이, 예전에 사사로이 한 개인으로서 알고 사랑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후일에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초기에 은혜를 입었던 사람들이, 나중에 대중을 가르치는 권위 있는 선생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를 이렇게 알아보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정신과 영의 변화가 여러 해 진행돼왔고, 이것은 헤르몬 산에서 그 중대한 체류기간에 마무리됐다.
◀제133편 로마에서 돌아옴 ∥ 제135편 세례 요한▶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