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편 세계의 종교 ∥ 제133편 로마에서 돌아옴▶
로마에 머무는 동안
132:0.1 인도의 왕자들이 보내는 인사장을 고노드가 로마의 통치자 티베리우스에게 가져왔으므로, 이 두 인도인과 예수는 로마에 도착한지 3일 후에 티베리우스를 만났다. 성미가 까다로운 이 황제는 그날따라 평소와 달리 매우 명랑했고, 세 사람과 오래 이야기했다. 그들이 앞에서 물러가자, 이 황제는 오른 쪽에 서 있던 측근에게 예수에 대해 언급하면서, “저 사람의 왕다운 자태와 점잖은 예의범절을 갖춘다면, 나도 진짜 황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32:0.2 로마에 있는 동안, 가니드는 공부하는 것과 도시의 관심거리가 되는 곳들을 방문하는 것에 규칙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아버지는 많은 사업상 거래가 있었고, 아들이 자라서 거대한 무역 이익을 관리하는 훌륭한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으므로, 소년에게 사업 분야를 처음으로 경험시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로마에는 많은 인도 시민이 있었고, 고노드가 직접 채용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자주 통역을 맡아 줬으므로, 그럴 때마다 예수는 하루 종일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것은 200만 인구의 이 도시에 대하여 정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그는 공공 광장을 자주 방문했는데, 이곳은 정치와 사법과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다. 그는 캐피토리움에 종종 올라갔고, 주피터와 쥬노와 미네르바를 모시는 이 웅장한 신전을 보면서, 이 로마인들이 무지의 속박에 붙잡혀있는 것에 대해 깊이 묵상했다. 또한 팔라틴 언덕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황제의 저택과 아폴로 신전 그리고 그리스와 라틴 도서관들이 거기에 있었다.
132:0.2 로마에 있는 동안, 가니드는 공부하는 것과 도시의 관심거리가 되는 곳들을 방문하는 것에 규칙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아버지는 많은 사업상 거래가 있었고, 아들이 자라서 거대한 무역 이익을 관리하는 훌륭한 후계자가 되기를 원했으므로, 소년에게 사업 분야를 처음으로 경험시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로마에는 많은 인도 시민이 있었고, 고노드가 직접 채용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자주 통역을 맡아 줬으므로, 그럴 때마다 예수는 하루 종일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것은 200만 인구의 이 도시에 대하여 정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그는 공공 광장을 자주 방문했는데, 이곳은 정치와 사법과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다. 그는 캐피토리움에 종종 올라갔고, 주피터와 쥬노와 미네르바를 모시는 이 웅장한 신전을 보면서, 이 로마인들이 무지의 속박에 붙잡혀있는 것에 대해 깊이 묵상했다. 또한 팔라틴 언덕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황제의 저택과 아폴로 신전 그리고 그리스와 라틴 도서관들이 거기에 있었다.
132:0.3 이때 로마 제국은, 남부 유럽,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북서 아프리카를 모두 포함했으며; 그 거주민 중에는 모든 동반구{東半球} 나라의 시민도 포함됐다. 이런 국제적 유란시아 필사자 집단을 공부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던 것이, 예수가 이 여행에 동참하기로 승낙한 주된 이유였다.
132:0.4 예수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사람에 대해 많이 배웠지만, 이 도시에서 6개월의 체류기간에 가졌던 다양한 모든 체험 중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것은, 제국의 수도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만난 것과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로마에서 첫 주간{週間}이 지나가기 전에, 예수는 견유학파, 스토아학파, 신비 종파들, 그리고 특히 미드라 숭배 집단에서 훌륭한 지도자들을 찾아냈고, 그들과 친해졌다. 자신의 사명을 유대인들이 거부하리라는 것을 예수가 훤히 알 수 있었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예수는 자기 사자{使者}들이 하늘 나라를 선포하려고 곧 로마로 오게 될 것을 아주 확실히 예견했으며; 그래서 가장 경탄할 만한 방법으로, 그들의 복음이 좀 더 수월하고 확실히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미리 길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토아학파에서 뛰어난 5명, 견유학파에서 11명, 그리고 신비_종파의 지도자 중에서 열여섯 명을 선택했고, 이 종교 교사들과 가깝게 교제하면서, 거의 6개월 동안 여가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가르쳤다: 그들의 실책을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고, 그들의 교훈이 내포하는 결점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각 경우마다, 그들의 가르침 속에서 진리를 분리해 낸 후에, 이 진리가 그들의 정신 속에서 조정되고 밝게 빛나도록 유도함으로써, 짧은 시간 내에 이런 진리가 강화되어, 관련된 오류를 효과적으로 몰아내게 만들었으며; 그리하여 예수가_가르쳤던 이 남녀들은, 나중에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교훈에서, 좀 더 첨부된 비슷한 진리를 알아볼 수 있도록 준비됐다. 복음 전파자들의 교훈이 이런 식으로 일찍부터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급속도로 퍼지고, 거기서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도록, 강력한 촉진제가 제공됐다.
132:0.5 우리가 기록하려는 두 가지 사실, 즉 예수가 로마에서 가르쳤던 32명의 종교 지도자 가운데 오직 두 명만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것과; 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설립될 때 30명이 중심인물이 됐고, 또한 그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으뜸가는 미드라교 신전을 그 도시의 첫 그리스도교 교회로 바꾸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는 것에서, 주목할 만한 이 업적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뒤에서 인간 활동을 지켜보고 있던 우리로서는, 그리고 19세기 시간의 관점에서 고려할 때, 유럽 전역에 그리스도교가 빨리 퍼지도록 하는 무대를 일찍부터 설치함에서, 탁월한 가치를 갖는 꼭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하게 됐는데, 다음과 같다:
132:0.6 1. 시몬 베드로를 사도{使徒}로 선택하고 유지시킨 것.
132:0.7 2. 예루살렘에서 스데반과 대화한 것, 그의 죽음은 다소의 사울을 얻도록 이끌었다.
132:0.8 3. 로마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제국 전역에서 새 종교 지도자가 되도록, 30명의 이 로마인을 미리 준비시킨 것.
132:0.9 스데반도, 그리고 선택받은 30명의 로마인도, 그들의 모든 체험 전반에 걸쳐서, 자기들이 한때 이야기 나눴던 그 사람의 이름이 자신의 종교 교육의 주제가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원래의 이 32명을 위한 예수의 활동은 모두 직접 만나서 한 것이었다. 이들을 준비시키려고 수고하는 동안, 다마스커스 서기관은 한 번에 세 명 넘게 만나지 않았고, 두 명 넘게 만난 적도 드물었으며, 그들을 한 사람씩 가르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이 위대한 종교 훈련 작업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남녀들이 전통에 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은, 미래의 모든 종교 발전에 관하여, 고정된 선입견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었다.
132:0.10 곧 뒤따르는 여러 해 동안,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로마에 온 다른 그리스도교 선생들은 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듣게 됐는데, 그 서기관은 그들보다 먼저 왔고, (눈치 채지 못하고 상상했던 바와 같이) 그들이 새 복음을 갖고 올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한 것이 아주 분명했다. 바울은 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의 정체를 한 번도 실제로 추측한 적이 없었으나, 죽기 얼마 전에, 인물 묘사가 비슷했으므로, “안디옥의 천막 짓는 이”가 바로 “다마스커스 서기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전도하는 동안에 한 번은 다마스커스 서기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어쩌면 이 사람이 바로 예수였는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으나, 주님이 로마에 온 적이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즉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 생각을 곧 지워버렸다.
132:1.1 로마 체류기간 초기에, 예수는 스토아학파의 지도자 안가몬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은 나중에 바울의 절친한 친구가 됐고, 로마에서 그리스도교 교회를 강력하게 지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예수가 안가몬에게 가르쳤던 내용을 현대 언어로 다시 요약하여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32:1.2 참된 가치관의 기준은, 영적 세계에서, 그리고 영원한 실체의 신성한 수준에서 찾아야한다. 상승하는 필사자에게, 이보다 낮은 물질적 표준은 모두 일시적이고 부분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인식돼야한다. 과학자는, 과학자로서 여러 물질적 사실의 연관성을 알아내는 데 국한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자신이 유물론자나 이상주의자라고 주장할 아무 권리가 없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태도가 온통 철학의 바로 그 본질이므로, 그렇게 주장하면서 감히 진정한 과학자의 태도를 저버리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132:1.3 인류의 도덕적 통찰력과 영적 달성이 균형 잡힌 비례로 증가되지 않는다면, 순전히 물질적인 문화가 무제한으로 발전하는 것은 결국 문명을 위협할 수 있다. 순전히 물질적인 과학은, 모든 과학적 노력을 파괴하는 잠재된 씨앗을 그 속에 품고 있는데, 바로 이런 태도가,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감각을 포기하고 영적{靈的} 목적 달성을 거부한 문명이 궁극에 붕괴한다는 것을 예시하기 때문이다.
132:1.4 유물론적 과학자와 극단적 이상주의자는 언제나 다투게 돼있다. 그러나 높은 도덕적 가치관과 영적 시험 수준에 대한 공통 기준을 지니고 있는 그런 과학자와 이상주의자는 그렇지 않다. 각 시대마다, 과학자와 종교인은 인간의 필요성이라는 심판대 앞에서 재판받고 있음을 인식해야한다. 인간의 진보를 이루는 봉사에 더 헌신함으로써, 그들의 계속적인 생존을 정당화하려고 용감하게 싸우는 한편, 자기들끼리 어떤 투쟁도 삼가야한다. 어떤 시대든지 소위 과학이나 종교가 잘못됐다면, 그것은 그 활동을 정화{淨化}하든지, 아니면 더 진실하고 더 가치 있는 체계의 물질과학 또는 영적 종교가 출현하기 전에 사라져야한다.
132:2.1 마르더스는 로마에서 정평 있는 견유학파 지도자였고, 다마스커스 서기관과 훌륭한 친구가 됐다. 그는 예수와 매일 이야기를 나눴고, 그의 숭고한 가르침에 밤마다 귀를 기울였다. 마르더스와 가진 비교적 중요한 토론 중에는, 선과 악에 관한 이 진지한 견유학자의 질문에 답변하려고 계획된 것이 있었다. 대체로, 20세기 문체로 표현하면,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132:2.2 형제여, 선과 악은, 관측 가능한 우주에 대하여 인간이 납득하는 상대적 수준을 상징하는 단어에 불과하다. 네가 윤리적으로 나태하고 사회적으로 무감각하다면, 통용되고 있는 사회 관례를 선에 대한 너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네가 영적으로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진취적이지 않다면, 동시대 사람들의 종교 풍습이나 전통을 선의 기준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세계에서 생존하여 영원 속으로 떠오르는 혼은, 그런 선과 악 사이에서 선명하게 몸소 선택해야하며, 선과 악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람의 마음 속에 거하도록 보내신 신성한 영이 설립한, 영적 기준의 진정한 가치관에 따라서 결정된다. 내주하는 이 영이, 인격의 생존을 정하는 표준이다.
132:2.3 진리와 마찬가지로, 선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반드시 악과_대조된다. 선과 진리의 이런 특성을 감지하는 것이, 사람의 진화하는 혼으로 하여금, 영원한 생존에 필수인 그런 몸소 선택하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132:2.4 과학의 지시, 사회의 관례, 그리고 종교의 교의{敎義}를 논리적으로 따르는, 영적으로 눈이 먼 개인은, 자신의 도덕적 자유를 희생하고 영적 해방을 잃어버릴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다. 그런 혼은, 지적 앵무새, 사회의 자동인형, 그리고 종교 권위의 노예가 될 운명이다.
132:2.5 도덕적 자아_실현과 영적 인격 달성이라는--즉 내주하는 조율사를 발견하고 그와 함께 하나가 되는--, 자유가 늘어나는 새로운 수준을 향해서 선은 항상 자라간다. 체험이 아름다움을 깊이 음미하게 하고, 도덕적 의지를 강화하고,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향상시키고, 동료를 사랑하면서 섬길 수 있는 능력을 확장시키고, 영적 이상을 높여주고, 시간세계에서 최상의 인간적 동기를 내주하는 조율사의 영원한 계획과 하나 되게 할 때 그 체험은 선하며, 이 모든 것은 아버지 뜻을 행하려는 염원이 증가되도록 직접 인도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발견하고 더욱 그를 닮아가려는 신성한 열정을 증진시킨다.
132:2.6 우주에서 피조물이 성장하는 계단을 올라감에 따라서, 선을_체험하고 진리를_헤아릴 수 있는 능력에 완전히 일치되도록, 선이 커지고 악이 줄어드는 것을 너는 발견할 것이다. 상승하는 인간의 혼이 마지막영 수준을 성취하기 전에는, 오류를 수용하거나 악을 체험할 수 있는 역량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32:2.7 선{善}은, 생생하고, 상대적이고, 항상 진보하고, 변함없이 개인적인 체험이며, 진리와 아름다움을 분별하는 것에 영구히 연관돼있다. 선은 영적 수준의 긍정적 진리_가치를 인식하는 데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체험에서 부정적 상대물과--곧 잠재적 악의 그림자와-- 대조해서 뚜렷이 드러나야한다.
132:2.8 너희가 낙원 수준을 달성할 때까지, 선은 항상, 소유 대상이라기보다 탐구 대상이요, 달성하는 체험이라기보다 하나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의{義}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동안에도, 너는 선을 부분적으로 달성하는 데 더욱 만족하는 것을 체험한다. 이 세상에 선과 악이 현존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사람의 도덕적 의지, 즉 인격이 실체인 동시에 실존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인데, 인격은 이런 선악의 가치를 알아보고, 또한 그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132:2.9 낙원에 도달할 때가 되면, 상승하는 필사자가 진정한 영 가치를 자아{自我}와 일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커져서, 생명의 빛을 완전히 소유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완전하게 된 그런 영 인격은, 긍정적이고 절정에 이른 양질의 선, 아름다움, 및 진리와 아주 완전하고 신성하게 영적으로 통합되기 때문에, 무한하신 낙원 통치자들의, 구석구석까지 살피는 신성한 발광체의 빛에 노출될 때, 그런 의로운 영이 잠재적인 악의 어떤 부정적 그림자든지 만들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 모든 영 인격 안에서, 선은 더 이상 부분적이거나, 대조적이거나, 상대적이지 않으며; 선은 신성하게 완성됐고 영적으로 충만하게 됐으며; 지존자의 순수함과 완전함에 가까워진다.
132:2.10 악의 가능성은, 도덕적 선택을 위하여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체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림자는 단지 상대적으로 실재할 뿐이다. 실제 악은 개인 체험으로서 필연적이지 않다. 잠재적 악은, 영적 발전이 낮은 수준에 있는 동안, 도덕적으로 진보하는 범위 안에서 결단하게 하는 자극제로서, 똑같이 효력이 있다. 도덕적인 정신이 악을 선택했을 때에만, 악은 몸소 체험하는 실체가 된다.
132:3.1 나본은 그리스 유대인이었고, 로마에서 주류{主流} 신비 종파였던 미드라교의 지도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였다. 이 미드라 신교 대사제{大司祭}는, 다마스커스 서기관과 여러 차례 회담하는 가운데, 특히 어느 날 저녁에 나눴던 진리와 신앙에 관한 토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본은 예수를 개종시키려 생각했고, 심지어 미드라교 선생이 되어 팔레스틴으로 돌아가라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예수가 천국 복음에 대한 초기 개종자 가운데 하나로서 자신을 준비시키고 있음을, 그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현대 용어로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32:3.2 진리는 말이 아니라, 오직 실천함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진리는 반드시 지식 이상{以上}이다. 지식은 관찰되는 사물에 관한 것이지만, 진리는 그런 순전히 물질적인 수준을 초월하는데, 지혜와 조화를 이루고, 인간의 체험처럼, 심지어 영적이고 생생한 실체들처럼,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진리가 포함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과학에서; 지혜는 진정한 철학에서; 진리는 영적인 삶의 종교 체험에서 비롯된다. 지식은 사실을; 지혜는 관계를; 진리는 실체 가치관을 다룬다.
132:3.3 사람은 과학을 구체화하고, 철학을 공식화하고, 진리를 교리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발전적 생활 투쟁에 적응하는 데 정신적으로 나태한 동시에, 미지{未知}의 세계를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연인{自然人}은, 생각하는 습관이나 살아가는 방법에 변화를 시도하기에 둔하다.
132:3.4 계시된 진리, 즉 몸소 발견한 진리는, 인간 혼에게 최상의 기쁨이며; 물질 정신과 내주하는 영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이다. 진리를_분별하고 아름다움을_사랑하는 혼이 영원히 구원받는 것은, 선에 굶주리고 목말라함으로 보장되며, 이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찾아내고 그분처럼 되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개발하도록 이 필사자를 인도한다. 참된 지식과 진리 사이에는 결코 충돌이 없다. 인간의 믿음, 즉 편견으로 채색되고, 두려움 때문에 왜곡되고, 물질적 발견이나 영적 진보 같은 새로운 사실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함으로 꼼짝도 못하는 믿음, 그리고 지식, 이 둘 사이에서는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132:0.6 1. 시몬 베드로를 사도{使徒}로 선택하고 유지시킨 것.
132:0.7 2. 예루살렘에서 스데반과 대화한 것, 그의 죽음은 다소의 사울을 얻도록 이끌었다.
132:0.8 3. 로마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제국 전역에서 새 종교 지도자가 되도록, 30명의 이 로마인을 미리 준비시킨 것.
132:0.9 스데반도, 그리고 선택받은 30명의 로마인도, 그들의 모든 체험 전반에 걸쳐서, 자기들이 한때 이야기 나눴던 그 사람의 이름이 자신의 종교 교육의 주제가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원래의 이 32명을 위한 예수의 활동은 모두 직접 만나서 한 것이었다. 이들을 준비시키려고 수고하는 동안, 다마스커스 서기관은 한 번에 세 명 넘게 만나지 않았고, 두 명 넘게 만난 적도 드물었으며, 그들을 한 사람씩 가르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이 위대한 종교 훈련 작업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남녀들이 전통에 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은, 미래의 모든 종교 발전에 관하여, 고정된 선입견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었다.
132:0.10 곧 뒤따르는 여러 해 동안,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로마에 온 다른 그리스도교 선생들은 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듣게 됐는데, 그 서기관은 그들보다 먼저 왔고, (눈치 채지 못하고 상상했던 바와 같이) 그들이 새 복음을 갖고 올 수 있도록 길을 준비한 것이 아주 분명했다. 바울은 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의 정체를 한 번도 실제로 추측한 적이 없었으나, 죽기 얼마 전에, 인물 묘사가 비슷했으므로, “안디옥의 천막 짓는 이”가 바로 “다마스커스 서기관”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전도하는 동안에 한 번은 다마스커스 서기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어쩌면 이 사람이 바로 예수였는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으나, 주님이 로마에 온 적이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즉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 생각을 곧 지워버렸다.
1. 참된 가치관
132:1.1 로마 체류기간 초기에, 예수는 스토아학파의 지도자 안가몬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은 나중에 바울의 절친한 친구가 됐고, 로마에서 그리스도교 교회를 강력하게 지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됐다. 예수가 안가몬에게 가르쳤던 내용을 현대 언어로 다시 요약하여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132:1.2 참된 가치관의 기준은, 영적 세계에서, 그리고 영원한 실체의 신성한 수준에서 찾아야한다. 상승하는 필사자에게, 이보다 낮은 물질적 표준은 모두 일시적이고 부분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인식돼야한다. 과학자는, 과학자로서 여러 물질적 사실의 연관성을 알아내는 데 국한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는 자신이 유물론자나 이상주의자라고 주장할 아무 권리가 없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태도가 온통 철학의 바로 그 본질이므로, 그렇게 주장하면서 감히 진정한 과학자의 태도를 저버리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132:1.3 인류의 도덕적 통찰력과 영적 달성이 균형 잡힌 비례로 증가되지 않는다면, 순전히 물질적인 문화가 무제한으로 발전하는 것은 결국 문명을 위협할 수 있다. 순전히 물질적인 과학은, 모든 과학적 노력을 파괴하는 잠재된 씨앗을 그 속에 품고 있는데, 바로 이런 태도가,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감각을 포기하고 영적{靈的} 목적 달성을 거부한 문명이 궁극에 붕괴한다는 것을 예시하기 때문이다.
132:1.4 유물론적 과학자와 극단적 이상주의자는 언제나 다투게 돼있다. 그러나 높은 도덕적 가치관과 영적 시험 수준에 대한 공통 기준을 지니고 있는 그런 과학자와 이상주의자는 그렇지 않다. 각 시대마다, 과학자와 종교인은 인간의 필요성이라는 심판대 앞에서 재판받고 있음을 인식해야한다. 인간의 진보를 이루는 봉사에 더 헌신함으로써, 그들의 계속적인 생존을 정당화하려고 용감하게 싸우는 한편, 자기들끼리 어떤 투쟁도 삼가야한다. 어떤 시대든지 소위 과학이나 종교가 잘못됐다면, 그것은 그 활동을 정화{淨化}하든지, 아니면 더 진실하고 더 가치 있는 체계의 물질과학 또는 영적 종교가 출현하기 전에 사라져야한다.
2. 선과 악
132:2.1 마르더스는 로마에서 정평 있는 견유학파 지도자였고, 다마스커스 서기관과 훌륭한 친구가 됐다. 그는 예수와 매일 이야기를 나눴고, 그의 숭고한 가르침에 밤마다 귀를 기울였다. 마르더스와 가진 비교적 중요한 토론 중에는, 선과 악에 관한 이 진지한 견유학자의 질문에 답변하려고 계획된 것이 있었다. 대체로, 20세기 문체로 표현하면,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132:2.2 형제여, 선과 악은, 관측 가능한 우주에 대하여 인간이 납득하는 상대적 수준을 상징하는 단어에 불과하다. 네가 윤리적으로 나태하고 사회적으로 무감각하다면, 통용되고 있는 사회 관례를 선에 대한 너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네가 영적으로 게으르고 도덕적으로 진취적이지 않다면, 동시대 사람들의 종교 풍습이나 전통을 선의 기준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세계에서 생존하여 영원 속으로 떠오르는 혼은, 그런 선과 악 사이에서 선명하게 몸소 선택해야하며, 선과 악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람의 마음 속에 거하도록 보내신 신성한 영이 설립한, 영적 기준의 진정한 가치관에 따라서 결정된다. 내주하는 이 영이, 인격의 생존을 정하는 표준이다.
132:2.3 진리와 마찬가지로, 선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반드시 악과_대조된다. 선과 진리의 이런 특성을 감지하는 것이, 사람의 진화하는 혼으로 하여금, 영원한 생존에 필수인 그런 몸소 선택하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132:2.4 과학의 지시, 사회의 관례, 그리고 종교의 교의{敎義}를 논리적으로 따르는, 영적으로 눈이 먼 개인은, 자신의 도덕적 자유를 희생하고 영적 해방을 잃어버릴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다. 그런 혼은, 지적 앵무새, 사회의 자동인형, 그리고 종교 권위의 노예가 될 운명이다.
132:2.5 도덕적 자아_실현과 영적 인격 달성이라는--즉 내주하는 조율사를 발견하고 그와 함께 하나가 되는--, 자유가 늘어나는 새로운 수준을 향해서 선은 항상 자라간다. 체험이 아름다움을 깊이 음미하게 하고, 도덕적 의지를 강화하고,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향상시키고, 동료를 사랑하면서 섬길 수 있는 능력을 확장시키고, 영적 이상을 높여주고, 시간세계에서 최상의 인간적 동기를 내주하는 조율사의 영원한 계획과 하나 되게 할 때 그 체험은 선하며, 이 모든 것은 아버지 뜻을 행하려는 염원이 증가되도록 직접 인도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발견하고 더욱 그를 닮아가려는 신성한 열정을 증진시킨다.
132:2.6 우주에서 피조물이 성장하는 계단을 올라감에 따라서, 선을_체험하고 진리를_헤아릴 수 있는 능력에 완전히 일치되도록, 선이 커지고 악이 줄어드는 것을 너는 발견할 것이다. 상승하는 인간의 혼이 마지막영 수준을 성취하기 전에는, 오류를 수용하거나 악을 체험할 수 있는 역량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32:2.7 선{善}은, 생생하고, 상대적이고, 항상 진보하고, 변함없이 개인적인 체험이며, 진리와 아름다움을 분별하는 것에 영구히 연관돼있다. 선은 영적 수준의 긍정적 진리_가치를 인식하는 데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체험에서 부정적 상대물과--곧 잠재적 악의 그림자와-- 대조해서 뚜렷이 드러나야한다.
132:2.8 너희가 낙원 수준을 달성할 때까지, 선은 항상, 소유 대상이라기보다 탐구 대상이요, 달성하는 체험이라기보다 하나의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의{義}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동안에도, 너는 선을 부분적으로 달성하는 데 더욱 만족하는 것을 체험한다. 이 세상에 선과 악이 현존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사람의 도덕적 의지, 즉 인격이 실체인 동시에 실존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인데, 인격은 이런 선악의 가치를 알아보고, 또한 그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132:2.9 낙원에 도달할 때가 되면, 상승하는 필사자가 진정한 영 가치를 자아{自我}와 일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커져서, 생명의 빛을 완전히 소유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완전하게 된 그런 영 인격은, 긍정적이고 절정에 이른 양질의 선, 아름다움, 및 진리와 아주 완전하고 신성하게 영적으로 통합되기 때문에, 무한하신 낙원 통치자들의, 구석구석까지 살피는 신성한 발광체의 빛에 노출될 때, 그런 의로운 영이 잠재적인 악의 어떤 부정적 그림자든지 만들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 모든 영 인격 안에서, 선은 더 이상 부분적이거나, 대조적이거나, 상대적이지 않으며; 선은 신성하게 완성됐고 영적으로 충만하게 됐으며; 지존자의 순수함과 완전함에 가까워진다.
132:2.10 악의 가능성은, 도덕적 선택을 위하여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체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림자는 단지 상대적으로 실재할 뿐이다. 실제 악은 개인 체험으로서 필연적이지 않다. 잠재적 악은, 영적 발전이 낮은 수준에 있는 동안, 도덕적으로 진보하는 범위 안에서 결단하게 하는 자극제로서, 똑같이 효력이 있다. 도덕적인 정신이 악을 선택했을 때에만, 악은 몸소 체험하는 실체가 된다.
3. 진리와 신앙
132:3.1 나본은 그리스 유대인이었고, 로마에서 주류{主流} 신비 종파였던 미드라교의 지도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였다. 이 미드라 신교 대사제{大司祭}는, 다마스커스 서기관과 여러 차례 회담하는 가운데, 특히 어느 날 저녁에 나눴던 진리와 신앙에 관한 토론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본은 예수를 개종시키려 생각했고, 심지어 미드라교 선생이 되어 팔레스틴으로 돌아가라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예수가 천국 복음에 대한 초기 개종자 가운데 하나로서 자신을 준비시키고 있음을, 그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현대 용어로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32:3.2 진리는 말이 아니라, 오직 실천함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진리는 반드시 지식 이상{以上}이다. 지식은 관찰되는 사물에 관한 것이지만, 진리는 그런 순전히 물질적인 수준을 초월하는데, 지혜와 조화를 이루고, 인간의 체험처럼, 심지어 영적이고 생생한 실체들처럼,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진리가 포함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과학에서; 지혜는 진정한 철학에서; 진리는 영적인 삶의 종교 체험에서 비롯된다. 지식은 사실을; 지혜는 관계를; 진리는 실체 가치관을 다룬다.
132:3.3 사람은 과학을 구체화하고, 철학을 공식화하고, 진리를 교리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발전적 생활 투쟁에 적응하는 데 정신적으로 나태한 동시에, 미지{未知}의 세계를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연인{自然人}은, 생각하는 습관이나 살아가는 방법에 변화를 시도하기에 둔하다.
132:3.4 계시된 진리, 즉 몸소 발견한 진리는, 인간 혼에게 최상의 기쁨이며; 물질 정신과 내주하는 영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이다. 진리를_분별하고 아름다움을_사랑하는 혼이 영원히 구원받는 것은, 선에 굶주리고 목말라함으로 보장되며, 이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찾아내고 그분처럼 되려는 단 한 가지 목적을 개발하도록 이 필사자를 인도한다. 참된 지식과 진리 사이에는 결코 충돌이 없다. 인간의 믿음, 즉 편견으로 채색되고, 두려움 때문에 왜곡되고, 물질적 발견이나 영적 진보 같은 새로운 사실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함으로 꼼짝도 못하는 믿음, 그리고 지식, 이 둘 사이에서는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132:3.5 그러나 진리는 신앙의 실천 없이는 결코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이것이 참말인 것은, 사람의 사고와 지혜와 윤리와 이상이 그의 신앙, 즉 그의 최고 소망보다 결코 더 높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참된 신앙은, 깊은 반성, 진지한 자아_비평,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 도덕의식 위에 세워진다. 신앙은, 영성화{靈性化}된 창조적 상상력이 주는 영감{靈感}이다.
132:3.6 신앙은, 불멸의 씨앗인 신성한 불꽃이 초인적으로 활동하도록 풀어주는 작용을 하는데, 이 씨앗은 사람의 정신 속에 살아있으며, 영원히 생존할 잠재력이다. 식물이나 동물은, 자체와 동일한 분자들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자동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통해 시간세계에서 생존한다. 사람의 인간 혼(곧 인격)은, 내주하는 이 신성{神性}의 불꽃과 정체성을 결합함으로써 필사자의 죽음에서 생존하는데, 그 불꽃은 불멸하며, 계속되는 더 높은 수준의 진취적 우주 실존으로서 인간의 인격이 영존하도록 작용한다. 인간의 혼에 감춰진 씨앗은 불멸하는 영이다. 혼의 둘째 세대는, 진보하는 영적 실존의 인격이 형태화되는 계통에서 첫째인데, 이 순서는 오직 이런 신성한 실재가, 그 실존의 근원, 즉 모든 실존의 인격적 근원이신 하나님 곧 만유의 아버지께 이르렀을 때에야 끝난다.
132:3.7 인간의 생명이 지속되는 것--곧 생존하는 것--은, 우주 기능, 즉 하나님을 찾아내는 과제를 그 생명이 지녔기 때문이다. 신앙으로_활성화된 사람의 혼은, 이런 운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멈출 수 없으며; 일단 이런 신성한 목표를 성취하게 되면 절대로 끝날 수 없는데, 그 혼이 하나님처럼 --영원하게-- 됐기 때문이다.
132:3.6 신앙은, 불멸의 씨앗인 신성한 불꽃이 초인적으로 활동하도록 풀어주는 작용을 하는데, 이 씨앗은 사람의 정신 속에 살아있으며, 영원히 생존할 잠재력이다. 식물이나 동물은, 자체와 동일한 분자들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자동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통해 시간세계에서 생존한다. 사람의 인간 혼(곧 인격)은, 내주하는 이 신성{神性}의 불꽃과 정체성을 결합함으로써 필사자의 죽음에서 생존하는데, 그 불꽃은 불멸하며, 계속되는 더 높은 수준의 진취적 우주 실존으로서 인간의 인격이 영존하도록 작용한다. 인간의 혼에 감춰진 씨앗은 불멸하는 영이다. 혼의 둘째 세대는, 진보하는 영적 실존의 인격이 형태화되는 계통에서 첫째인데, 이 순서는 오직 이런 신성한 실재가, 그 실존의 근원, 즉 모든 실존의 인격적 근원이신 하나님 곧 만유의 아버지께 이르렀을 때에야 끝난다.
132:3.7 인간의 생명이 지속되는 것--곧 생존하는 것--은, 우주 기능, 즉 하나님을 찾아내는 과제를 그 생명이 지녔기 때문이다. 신앙으로_활성화된 사람의 혼은, 이런 운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전에 멈출 수 없으며; 일단 이런 신성한 목표를 성취하게 되면 절대로 끝날 수 없는데, 그 혼이 하나님처럼 --영원하게-- 됐기 때문이다.
132:3.8 영적 진화는 점점 더 자진해서 선을 선택하는 체험이며, 악하게 될 가능성이 똑같이 점진적으로 감소되는 일이 뒤따른다. 선을 선택하는 것이 완결되고,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완성되면,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완전하게 되며, 이 두 가지의 의{義}는, 심지어 잠재적 악 개념이 솟아날 가능성조차 영원히 금지시킨다. 하나님을_아는 그런 혼은, 신성한 선이라는 그런 높은 영 수준에서 작용할 때, 의심하는 어떤 악의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다.
132:3.9 사람의 정신 속에 낙원 영이 현존하심은, 만유의 아버지의 불멸하면서 내주하는 이 영 단편{斷片}과 아주 흡사하게 되려고 애쓰는 모든 혼에게, 신성하게 진보함으로 영원히 실존하는 것을 계시하는 약속이요 신앙의 서약이다.
132:3.10 우주에서 진보하는 것은 인격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특징이 있는데, 그 진보가 점점 높아지는 수준에서 자아를_이해하고, 이로 인해 자발적으로 자아_억제를 점진적으로 달성하는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완전한 영적 자아_억제에 도달하는 것은, 우주에서 해방됨과 인격의 자유로움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그런 광활한 우주에서 사람이 초기에 적응하는 혼란 속에서, 신앙은 혼을 양육하고 유지하며, 한편 기도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말미암은 다양한 영감{靈感}, 그리고 내주하는 관련된 신성한 현존의 영적 이상에 자신을 일치시키려고 애쓰는 혼의 신앙 충동, 이 두 가지를 통합시키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
132:3.11 예수와 대화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나본은 이 말씀에 무척 감명 받았다. 이 진리는 그의 마음 속에서 계속 타올랐고, 나중에 도착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4. 개인적인 사역
132:4.1 로마에 있는 동안, 예수는 도래할 천국에서 훗날에 제자가 되도록 남녀들을 준비시키는 일에만 여가시간 전체를 소비하지는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국제적인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인종과 계층의 사람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수집하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런 수많은 인간과 접촉할 때마다, 예수는 두 가지 목적을 가졌는데: 즉, 육신 속에서 사는 인생에 대하여 인간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었고, 또한 그 인생을 더 풍성하고 가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말하거나 행하려고 애썼다. 이 몇 주 동안의 종교적 가르침은, 열두 사도의 선생으로서, 그리고 대중{大衆}의 설교자로서 그의 후반기 생애의 특징을 이룬 교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132:4.2 그의 메시지의 요지는 항상: 하늘 아버지의 사랑이 사실이요, 그의 자비가 진리라는 것과 함께, 사람은 바로 이 사랑의 하나님의 신앙_아들이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사회적으로 접촉할 때 예수의 통상적 방식은, 질문함으로써 사람들을 이끌어 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 면담은 흔히, 그가 질문함으로 시작됐고, 그들이 그에게 질문함으로 끝나곤 했다. 그는 질문하거나 질문에 대답함으로 가르치는 데 똑같이 노련했다. 대체로, 가장 많이 가르친 사람에게 가장 적게 말했다. 그의 개인 사역{使役}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걱정하면서 낙심하는 필사자들이었는데, 그들은 자기 말을 들어주는 동정심 많고 이해심 많은 이 사람에게, 자기 혼의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또한 그는 이것보다 훨씬 많은 역할을 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 사람들이 예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그들의 실제 어려움을 앞으로 풀어 나가는 방향으로, 실질적이고 즉시 도움이 될 제안을 언제든지 해 줄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예수는 당장 기운을 북돋우는 말과 즉시 위안이 되는 말을 해주는 것도 간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난 받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들이 하늘에 계신 이 애정 어린 아버지의 자녀라는 소식을, 다양한 여러 방법으로 전하곤 했다.
132:4.3 예수는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이런 식으로, 애정이 넘치고 정신을 향상시키는 개인적 만남을, 이 영역에서 거의 500명 이상의 필사자와 갖게 됐다.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심지어 알렉산드리아에서도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다른 여러 인종에 대한 지식을 획득했다. 그는 자신의 지상 생애 가운데 비슷한 어떤 기간 중에서도, 이 6개월을 가장 귀중하고 견문을 넓힌 시기 가운데 하나로 늘 간주했다.
132:4.4 예상했을지 모르지만, 그토록 재능이 많고 적극적인 사람이, 세계의 중심지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않은 채, 6개월 동안이나 그렇게 활동할 수는 없었는데, 이들은 어떤 사업과 관련하여, 또는 더 흔히 어떤 교육 계획사업이나 사회 개혁 또는 종교 운동을 위하여 그가 도와주겠다는 보장을 얻으려고 했다. 그런 제안이 열두 번 이상 들어왔고, 각각의 경우마다, 적절한 말로 또는 친절한 봉사를 통해서, 영적 고결함에 대한 어떤 사상을 나눠주는 기회로 활용했다. 예수는 온갖 종류의 사람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기를 무척 좋아했다.
132:4.5 그는 정치와 정치가의 수완에 관해서 어떤 로마 원로원 의원과 이야기했고, 이 입법부 의원은 이렇게 예수와 한 번 만남으로 크게 감명 받았으며, 그는 정부가 국민을 후원하고 부양하는 관념으로부터, 국민이 정부를 후원하는 개념으로 통치 제도 방침을 바꾸도록 동료들을 설득하려고, 헛되게 애쓰면서 여생을 보냈다. 예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주제에 대해 어느 부유한 노예 소유자와 이야기하면서 하루 저녁을 보냈는데, 클라우디우스라는 이 사람은, 이튿날 자기 노예 117명에게 자유를 줬다. 저녁 식사 때 어느 그리스인 의사를 만난 자리에서, 예수는 환자들이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혼을 지녔음을 말해줬고, 그리하여 이 유능한 의사가 더 광범한 봉사를 동료에게 베풀려고 애쓰도록 만들었다. 그는 모든 계층에 속하는 온갖 종류의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그가 로마에서 방문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는 공중목욕탕이었다. 난잡한 성{性} 행위가 거기서 유행했으므로, 그는 친구들과 목욕탕에 동행하기를 거절했다.
132:4.6 티베르 강변을 걸으면서, 그는 어느 로마 군인에게 말했다: “손뿐만 아니라 마음도 용감해라. 담대하게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베풀 만큼 성장해라. 네가 상관들에게 복종하듯이, 너의 낮은 본성으로 하여금 더 높은 본성에 복종하게 해라. 선을 존중하고 진리를 찬양하기 바란다. 추한 것 대신 아름다운 것을 택하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 네 동료를 사랑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해라.”
132:4.7 그는 공개토론회에서 연사{演士}에게 말했다: “너의 웅변술은 만족스럽고, 논리는 감탄할만하고, 목소리는 호감이 가지만, 너의 가르침은 조금도 진실하지 못하다. 하나님이 너의 영적 아버지이심을 아는 영감 어린 만족감을 네가 즐길 수만 있다면, 어둠의 속박과 무지의 노예 상태에서 동료들을 해방시키는 데 너의 말솜씨를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이 사람은, 로마에서 베드로의 전도를 듣고 후계자가 된 마르코스였다. 그들이 시몬 베드로를 십자가에 매달았을 때, 로마의 박해자들에게 도전하면서 담대하게 새 복음을 계속 전파한 이가 바로 이 사람이다.
132:4.8 억울하게 고발당한 어느 가난한 사람을 만났을 때, 예수는 그와 함께 치안판사에게 가서, 그를 위하여 변론하도록 특별 허락을 얻은 후에 놀라운 연설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의가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며, 그래서 나라가 위대해질수록, 가장 미천한 시민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더욱 애써야한다. 단지 돈과 세력 있는 자에게만 법정에서 공의를 보장하려는 나라에는 재앙이 있으리라! 죄지은 자를 벌하는 것뿐 아니라, 죄 없는 자를 풀어주는 것도 치안판사의 신성시되는 의무다. 법정의 공명정대, 공평함, 및 진실성에, 한 나라의 존망{存亡}이 달려 있다. 참된 종교가 자비 위에 세워지듯이, 시민 정부는 공의 위에 세워진다.” 그 재판관은 사건을 다시 심리{審理}했고, 증거를 면밀히 검사한 후에 그 죄수를 석방했다. 개인으로서 사역한 이 기간에, 예수의 전체 활동 중에서 이 사건이 공개적 양상에 가장 가까웠다.
5. 부자에게 충고함
132:5.1 금욕주의자이고 로마 시민인 어떤 부자가, 안가몬의 소개로, 예수의 가르침에 무척 흥미를 갖게 됐다. 여러 번 친밀한 회담을 가진 후에, 이 부자는 재산을 가졌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예수에게 물었으며, 예수가 대답했다: “지적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사회생활을 고상하게 만들거나, 영적 삶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내가 지식과 지혜와 영적 봉사를 베풀고자하듯이, 물질 생애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물질 재산을 사용할 것이다. 한 세대의 자원을 맡은 현명하고 효율적인 신탁인{信託人}으로서, 다음에 이어지는 세대들에게 유익이 되고 그들의 품위를 높여주도록 물질 재산을 관리할 것이다.”
132:5.2 그러나 이 부자는 예수의 대답에 충분히 만족할 수 없었다. 대담하게 다시 물었다: “그러나 나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은, 자기 재산으로 무엇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까? 재산을 보존해야 합니까? 아니면 나눠줘야 합니까?”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과 사람에 대한 의무에 관한 진리를, 그가 정말로 더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을 감지한 예수는 추가해서 대답했다: “선량한 친구여, 네가 진지하게 지혜를 찾고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자임을 나는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재산을 책임지는 데 관련되는 너의 문제 해결에 대하여 내 견해를 제시해보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 조언을 요청했기 때문이고, 이 충고를 주면서, 다른 부자들의 재산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너에게, 그리고 너의 개인적 지침이 되도록 조언한다. 진정으로 너의 재산을 신탁물{信託物}로 여기기 원한다면, 즉 축적된 재산의 현명하고 유능한 청지기가 되기를 정말로 원한다면, 그 재물의 근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라고 조언하고자 한다: 이 재산이 어디서 왔는지 너 자신에게 물어보고, 최선을 다하여 정직한 대답을 찾아라. 너의 많은 재산의 출처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다음과 같은 열 가지 물질 재산 축적 방법을 마음에 새기라고 제안한다:
132:5.3 “ 1. 상속받은 재산 --부모나 다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물.
132:5.4 “ 2. 발견한 재산 --본래의 땅에 있는 개발되지 않은 자원으로부터 얻은 재물.
132:5.5 “ 3. 거래한 재산 --물질 상품의 거래와 물물교환에서 정당한 이익으로 얻은 재물.
132:5.6 “ 4. 부당한 재산 --동료들을 부당하게 착취하거나 노예처럼 부려서 얻은 재물.
132:5.7 “ 5. 이자로 얻은 재산 --투자한 자본의 공정하고 정당한 수익 가능성에서 생기는 소득.
132:5.8 “ 6. 특별재능으로 얻은 재산 --사람의 정신에 타고난 창조적 재능과 발명하는 재능에 대한 보상으로 얻은 재물.
132:5.9 “ 7. 우연히 얻은 재산 --동료의 관대함에서 도출되거나 삶의 환경에서 기원된 재물.
132:5.10 “ 8. 훔친 재산 --불공평, 부정직, 도둑질, 또는 사기{詐欺}로 확보한 재물.
132:5.11 “ 9. 신탁 기금 --현재 또는 미래에 어떤 특정한 용도를 위해, 동료들이 너에게 맡긴 재산.
132:5.12 “ 10. 벌어서 모은 재산 --몸소 직접 노동하여 얻은 재물, 즉 정신과 육체를 사용하여 네가 매일 수고한 것에 대한 공정하고 정당한 보상.
132:5.13 “그러므로 친구여,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너의 많은 재산을 충실하고 올바르게 돌보는 청지기가 되고자한다면, 재산을 대략 이런 열 가지 부문으로 나누고, 그다음에, 공의, 공평함, 공정함, 그리고 진정한 효율성의 법칙을 현명하고 정직하게 해석하고, 그에 따라 각 부분을 처리하도록 진행해야하며; 그럼에도 필사자 인생의 불행한 환경에서 고통 받는 희생자의 괴로움을 자비롭게 이타적으로 배려하는 중에, 앞날이 불분명한 상황에 처하여 이따금 실수를 범한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너를 책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물질적 상황이 공평하고 정당한가에 대하여 솔직히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궁핍한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부당한 고난으로 역경에 처한 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해라.”
132:5.14 이런 문제에 대해 여러 시간 토의한 후,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달라는 그 부자의 간청에 응답하여, 예수는 부연해서 충고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산을 다루는 태도에 관하여 좀 더 상세히 제안하지만, 오직 너에게 해당되는 것으로서, 그리고 너 개인을 위한 지침으로서 내 조언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질문하는 친구인 너에게 오직 내 생각을 말할 뿐이다. 다른 부자들이 자기 재산을 어떻게 관리해야하는가에 대해 명령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간청한다. 나는 너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132:5.15 “ 1. 너는 상속받은 재산의 청지기로서 그 근원을 살펴야한다. 현 세대의 이득을 위한 공정한 몫을 제한 후에 정당한 재산을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할 때, 너에게는 지난 세대를 대표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 그러나 조상이 부당하게 재산을 축적하면서 발생한 어떤 부정행위나 권리침해든지 계속할 의무는 없다. 네가 상속받은 재산 가운데 사기나 부당함을 통해서 얻은 것으로 밝혀진 재산이 있다면, 공정하고 관대하고 보상이 될 만하다고 네가 확신하는 대로 지불할 수 있다. 정당하게 상속받은 나머지 재산은 공정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한 세대의 신탁자로서 다음 세대를 위하여 안전하게 전달해도 좋다. 너의 후손들에게 재물을 물려줄 때, 현명하게 구별하고 건전하게 판단함으로 결정해야한다.
132:5.16 “ 2. 발견한 결과로 부를 누리는 자는 누구든지, 한 개인이 이 땅에 살 수 있는 것은 아주 짧은 기간뿐임을 기억해야하며,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숫자의 동료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이런 발견물을 나누기 위하여 적절한 준비를 해야 한다. 발견한 자의 수고에 대한 대가{代價}가 무시돼서도 안 되지만, 자연이 저장해 놓은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얻은 모든 혜택과 축복의 권리를 주제넘게 이기적으로 주장해서도 안 된다.
132:5.17 “ 3. 사람들이 거래와 물물교환으로 세상의 사업을 운영하는 한, 저희는 공평하고 정당한 이익을 취할 권리가 있다. 거래하는 사람마다 자신이 수고한 것에 대해 임금을 받아 마땅하며; 상인{商人}은 그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세상의 조직화된 사업에서, 공정하게 거래하고 동료들을 정직하게 적절히 대우하는 것은 이익이 남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재산을 창출하며, 이런 재산의 모든 근원은, 가장 높은 공의와 정직과 공정성이라는 원칙으로 판별해야한다. 정직한 상인은, 비슷하게 거래하는 동료 상인들에게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이익을 남기기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종류의 재산은, 큰 규모로 사업을 운영했을 때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과 동일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정직하게 축적된 그런 재산은, 나중에 그것을 분배할 때 적지 않은 소유권한을 그 소유자에게 부여한다.
132:5.18 “ 4. 하나님을 알고 신성한 뜻을 행하려는 필사자라면 누구든지, 돈으로 남을 억압할 만큼 품위를 떨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고귀한 사람이라면, 육신의 형제를 노예화하거나 부당하게 착취함으로써 재물을 축적하거나 재력{財力}을 키우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억압받는 필사적 사람을 혹사하여 얻은 재산은 도덕적 저주요 영적 오점이다. 그런 모든 재산은, 그런 식으로 빼앗긴 자에게 또는 저희의 자식과 그 후손에게 돌려줘야한다. 지속되는 문명은, 고용된 노동자를 착취하는 풍습 위에서는 세워질 수 없다.
132:5.19 “ 5. 정당하게 얻은 재산은 이자를 받아 마땅하다. 사람들이 빌리고 빌려주는 한, 빌려준 원금이 합법적인 재산이라면 공정한 이자를 받아도 된다. 이자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기 전에, 먼저 너의 자본을 정화{淨化}시켜라. 습관적으로 폭리를 취할 만큼 너무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자가 되지 말라. 재력을 이용해서, 쪼들리고 있는 동료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할 만큼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말라.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한 너의 형제로부터 고리대금{高利貸金}을 받아내려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
132:5.20 “ 6. 네가 일련의 특별재능으로 어쩌다가 재산을 확보했다면, 즉 발명하는 재능에 대한 보상으로 너의 재산이 생겼다면, 그런 보상에서 부당한 몫을 주장하지 말라. 특별재능은 조상과 후손 양쪽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민족과 국가 그리고 그 독창적 발견을 가능하게 한 환경에 신세를 지고 있으며; 또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수고하여 발명품을 만들어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별재능을 지닌 자로부터 그의 재산 증가분 전부를 빼앗는 것도 똑같이 불공정할 것이다. 그리고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이런 모든 문제에서,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원칙과 규정을 세우기란, 인간에게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먼저 사람들이 형제임을 인식하고, 너에게 해줬으면 하고 네가 바라는 대로, 너도 형제에게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모든 되풀이되는 경제적 보상과 사회정의의 문제를 정당하게 그리고 치우치지 않게 해결하도록, 공의와 정직함과 공정성이라는 평범한 명령이 너를 안내할 것이다.
132:5.21 “ 7. 경영을 통해서 벌어들인 정당하고 합법적인 보수를 제외하고, 우연한 기회에 굴러들어온 재산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자기만의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우연히 얻은 재산은, 자신이 소속된 사회 또는 경제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써야 할 신탁물이라는 관점에서 어느 정도 고려돼야한다. 그런 재산을 소유한 자는, 노력 없이 얻은 자원이 현명하게 효과적으로 분배되도록 결정할 때,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한다. 문명화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이 관리하는 모든 것을 자신만의 사유재산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다.
132:5.22 “ 8. 자산{資産} 가운데 얼마가 됐든지 고의로 조작해서 취득한 것이 있거나; 재산 중에서 조금이라도 정직하지 못한 영업 또는 불공정한 방식으로 축적된 것이 있거나; 재산이 동료들을 부당하게 대우함으로 말미암은 산물이라면, 그릇되게 얻은 이런 모든 이익금을, 당연히 받아야 할 주인에게 서둘러 돌려줘라. 넉넉하게 보상{報償}하고, 이와 같이 너의 자산 중에서 정직하지 않은 재산 전부를 깨끗이 없애라.
132:5.23 “ 9.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한 사람의 재산을 신탁 관리하는 일에는, 엄연하고 신성시되는 책임이 따른다. 그런 신탁 재산을 위태롭게 하거나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 어떤 신탁 재산에서든지, 모든 정직한 자들이 허용할 만큼의 양{量}만 네 몫으로 취하라.
132:5.24 “ 10. 너의 재산 중에서, --네가 공평하고 공정하게 수고했다면-- 정신적 또는 육체적 노력으로 얻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부분이 진정으로 너의 것이다. 그런 재산을 간직하고 사용할 권리를 네가 행사하면서, 네가 보기에 그것이 동료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권리를 반박할 수 없다.”
132:5.25 예수가 충고를 마치자, 이 부유한 로마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려고 작별 인사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선량한 친구여, 당신이 대단히 지혜롭고 선한 분임을 내가 깨달았으니, 내일부터는 내 모든 재산의 경영을 당신이 조언한 대로 하겠습니다.”
6. 사회적인 사역
132:6.1 아이를 잃어버리고 마음 졸이던 어머니에게 되찾아주느라, 한 우주의 창조주가 여러 시간 소비하는 감동스런 사건이, 이곳 로마에서 발생되기도 했다. 이 아이는 돌아다니다가 집으로부터 멀어졌는데,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를 예수가 발견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예수와 가니드는 아이의 집을 찾아 주는 데 전념했다. 가니드는 예수의 말을 결코 잊지 못했다: “가니드야, 너도 알다시피, 대부분의 인간은 길 잃은 아이와 같단다. 이 아이가 집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듯이, 사람들은 안전하고 무너지지 않는 곳을 바로 지척에 두고도, 두려워서 울부짖고 슬픔으로 괴로워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진리의 길을 알고 하나님을 안다는 확신을 누리는 자는 누구든지, 삶의 만족감을 찾으려고 애쓰는 동료에게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를 의무가 아니라 특권으로 여겨야한다. 이 아이에게 어머니를 찾아주는 일을 하면서, 우리가 최고의 기쁨을 누리지 않았느냐? 마찬가지로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는, 인간에게 봉사하는 최고의 만족감을 체험하게 된다.” 그날 이후로 여생 동안, 가니드는 길 잃은 아이를 찾아서 집으로 돌려보낼까 하여, 줄곧 아이들을 주의하여 관찰했다.
132:6.2 사고로 남편을 잃고, 다섯 아이와 함께 사는 과부가 있었다. 예수는 자기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것에 대해 가니드에게 이야기했고, 그들은 이 어머니와 아이들을 위로하려고 여러 번 갔으며, 한편 가니드는 음식과 옷을 제공하려고 아버지에게 돈을 요청했다. 그들은 그 맏아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줌으로써 그가 가족을 돌볼 수 있을 때까지 수고를 멈추지 않았다.
132:6.3 그날 밤, 고노드는 이 체험담을 듣다가, 예수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아들을 학자나 사업가로 키우려고 궁리하는데, 당신은 이제 그를 철학자나 자선가로 만들려고 하는군요.” 그러자 예수가 미소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마 우리는 당신이 말한 그 네 가지 전부를 그가 성취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곡조를 알아듣는 인간의 귀가 한 가지 음정 대신 네 가지 음정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삶 속에서 네 배의 만족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고노드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철학자임에 틀림없소. 당신은 후손을 위하여 책을 써야 되겠구려.” 그러자 예수가: “책이 아니라--내 사명은 이 세대와 다른 모든 세대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나는--”이라고 대답하다가, 가니드에게, “얘야, 이제 잘 시간이라”고 하면서 말을 중단했다.
7. 로마 주변을 방문함
132:7.1 예수와 고노드와 가니드는 로마를 벗어나서, 근방에서 흥미로운 곳들로 다섯 차례 여행했다. 북부 이태리에 있는 호수를 방문했을 때,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하여 그 사람에게 가르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관해, 예수는 가니드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호수로 올라가는 길에, 그들은 경솔한 한 이방인을 우연히 만났는데, 평소와는 달리, 예수가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 자연스럽게 영적인 질문을 끌어내는 토의를 시도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니드는 의아해 했다. 가니드가 선생에게 왜 이 이방인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느냐고 묻자, 예수가 대답했다:
132:7.2 “가니드야, 그 사람은 진리를 갈망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고 있다. 도움을 청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고, 마음의 눈은 혼을 위한 빛을 받으려고 열려있지 않았다. 저 사람은 구원의 추수에 해당될 만큼 무르익지 않았으며; 지혜와 더 높은 깨달음을 받아들이도록 그를 준비시키려면, 인생의 시험과 어려움을 겪는 데 필요한 더 많은 시간이 그에게 주어져야한다. 또는, 우리와 함께 살도록 만들 수 있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우리의 삶을 통해서 그에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우리 삶에 매료되어, 우리 아버지에 대해 부득이 우리에게 질문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에게는 네가 그분을 보여 줄 수 없으며; 원치 않는 혼을 구원의 기쁨으로 인도할 수 없다. 사람은 삶을 체험한 결과로 진리에 굶주려 있거나, 신성한 아버지를 아는 자들의 삶과 접촉한 결과로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해야, 다른 인간이 그런 동료 필사자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수단으로서 활동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삶 속에서 아버지가 드러나게 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며, 그리하여 하나님을_찾는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보고, 이런 방식으로 우리 삶 속에 자신을 표현하시는 하나님을 더 알려고,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다.”
132:7.3 스위스를 방문했을 때 산 위에서, 예수는 그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루 종일 불교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가니드는 예수에게 부다에 관해 여러 번 직접 질문했지만, 다소 회피적인 대답만 늘 들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아들 앞에서, 예수에게 부다에 대해 솔직하게 질문했는데, 바로 대답을 듣게 됐다. 고노드가, “나는 당신이 부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심으로 알고 싶소”라고 말하자, 예수가 대답했다:
132:7.4 “당신이 아는 부다는 불교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부다는 위대한 사람이었고, 그 민족에게는 선지자 같았지만, 고아{孤兒}
선지자였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영적 아버지,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그가 일찍부터 잃어버렸음을 의미합니다. 그의 체험은 비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使者}로서 살면서 가르치려고 애썼지만, 하나님 없이 그리했습니다. 부다는 안전한 항구의 문턱, 즉 필사자를 구원하는 안식처 입구까지 구원의 배를 안내했으나, 바로 거기서, 그 훌륭한 배는 잘못된 항해지도 때문에 좌초됐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여러 세대 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거의 희망을 잃고 거기에 묶여있었지요. 그리고 당신의 민족 중에서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그 배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쉴만한 안전한 바다에서 소리쳐 부를 만큼 가까이 살고 있지만, 훌륭한 부다의 고상한 배가 항구 바로 바깥에서 좌초되는 불행을 당했기 때문에, 저희는 항구로 들어가기를 거절했습니다. 또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 선지자에 관한 철학을 연구하는 배를 포기하고, 그의 고귀한 영성{靈性}을 붙잡지 않는 한, 이 항구에 결코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민족이 부다의 영성에 여전히 충실했다면, 당신은 영의 고요함과 혼의 안식과 구원의 확신이라는 피난처에 오래 전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132:7.5 “고노드여, 아시다시피, 부다는 영으로 하나님을 알았지만, 정신 속에서 그를 분명히 발견하기에는 실패했으며; 유대인은 정신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했지만, 영으로 그를 알기에는 크게 실패했습니다. 오늘날, 불교신자는 하나님 없는 철학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반면, 내 민족은 가련하게도 생명과 자유라는 구원하는 철학 없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돼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 없는 철학을 가졌으며; 유대인은 하나님을 가졌지만, 주로 그와 관련된 생활철학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심과 아버지이심을 상상하지 못한 부다는, 종교가 인류를 변화시키고 한 나라를 높여주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소유해야하는 도덕적 에너지와 영적 추진력을, 그의 가르침 속에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132:7.6 그러자 가니드가 외쳤다: “선생님, 인도를 위하여 충분히 훌륭하고 로마를 위해서도 충분히 거창한 새 종교를 우리가 만들지요, 그러면 아마 야훼를 대신하도록 우리가 그것을 유대인에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가니드야, 종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종교는 오랜 세월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을 동료에게 드러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 세상에 갑자기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예언적 말씀의 의미를 납득하지 못했다.
132:7.7 그날 밤, 그들이 잠자리에 들어간 후에, 가니드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 오래 이야기했고,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나는 가끔 예슈아가 선지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지 졸음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아들아, 다른 사람들도 있느니라--.”
132:7.8 그날 이후로 남은 생애 동안, 가니드는 자신의 종교를 계속 발전시켰다. 예수의 편견 없는 마음과 공정함과 아량에, 그는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철학과 종교에 관하여 그들이 어떤 토론을 하더라도, 이 소년은 분노하는 감정이나 적대하는 반응을 한 번도 체험하지 않았다.
132:7.9 이 인도인 청년이 우주의 창조주에게 새 종교를 만들자고 제의하는 광경이, 주시하던 천상의 지성체들에게는 얼마나 굉장한 구경거리였는지! 그리고 비록 이 젊은이는 모르고 있었더라도, 하나의 새롭고 영존하는 종교를--곧 예수를 통해서 그리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계시하는, 이 새 구원의 길을-- 그때 거기서 만들고 있었다. 그 청년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실제로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와 현재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영적{靈的}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아 깨우치고 심사숙고하는 인간이 상상하여, 온 마음으로 사심 없이 하고 싶어 하는 그것, 그리고 되고 싶은 그것은, 아버지 뜻을 신성하게 행하려는 필사자가 헌신하는 정도에 따라서, 눈에 띌 정도로 창조력을 갖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대단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또한 일어난다.
132:7.6 그러자 가니드가 외쳤다: “선생님, 인도를 위하여 충분히 훌륭하고 로마를 위해서도 충분히 거창한 새 종교를 우리가 만들지요, 그러면 아마 야훼를 대신하도록 우리가 그것을 유대인에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가니드야, 종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종교는 오랜 세월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을 동료에게 드러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 세상에 갑자기 나타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예언적 말씀의 의미를 납득하지 못했다.
132:7.7 그날 밤, 그들이 잠자리에 들어간 후에, 가니드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와 오래 이야기했고,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나는 가끔 예슈아가 선지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지 졸음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아들아, 다른 사람들도 있느니라--.”
132:7.8 그날 이후로 남은 생애 동안, 가니드는 자신의 종교를 계속 발전시켰다. 예수의 편견 없는 마음과 공정함과 아량에, 그는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철학과 종교에 관하여 그들이 어떤 토론을 하더라도, 이 소년은 분노하는 감정이나 적대하는 반응을 한 번도 체험하지 않았다.
132:7.9 이 인도인 청년이 우주의 창조주에게 새 종교를 만들자고 제의하는 광경이, 주시하던 천상의 지성체들에게는 얼마나 굉장한 구경거리였는지! 그리고 비록 이 젊은이는 모르고 있었더라도, 하나의 새롭고 영존하는 종교를--곧 예수를 통해서 그리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계시하는, 이 새 구원의 길을-- 그때 거기서 만들고 있었다. 그 청년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실제로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와 현재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영적{靈的}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받아 깨우치고 심사숙고하는 인간이 상상하여, 온 마음으로 사심 없이 하고 싶어 하는 그것, 그리고 되고 싶은 그것은, 아버지 뜻을 신성하게 행하려는 필사자가 헌신하는 정도에 따라서, 눈에 띌 정도로 창조력을 갖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대단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고, 또한 일어난다.
◀제131편 세계의 종교 ∥ 제133편 로마에서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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