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편 예루살렘에서 예수 ∥ 제127편 청년 시절▶
혹독한 시련의 2년
126:0.1 예수가 세상_생애에서 겪은 모든 체험 가운데, 열네 살과 열다섯 살 때가 가장 힘들었다. 자신의 신성과 운명을 비로소 의식하기 시작한 후, 그리고 내주하는 조율사와 상당히 많이 소통하기 전에, 이 2년은 다사{多事}했던 유란시아 생애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이 2년은, 큰 시험, 즉 실제적인 유혹의 기간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청년기의 혼란과 적응하는 문제를 거치면서 어떤 젊은이도, 예수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 내내 겪었던 것보다 더 쓰라린 시험을 겪지는 않았다.
126:0.2 예수가 젊은이로 성장하는 이 중요한 기간은,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마리아는, 처음에는 아들을 다시 찾은 것, 즉 --그렇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예수가 의무에 충실한 아들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자신이 그의 인생에 대해 세운 계획에, 그가 이제부터는 더 순종하리라고 생각하면서 무척 행복했다. 그러나 마리아의 이런 물질적 망상, 그리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 가족 자부심은, 곧 빛이 바래게 됐으며; 마리아는 이내 더 완전하게 환상에서 깨어나게 돼있었다. 소년은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으며; 자기 문제를 어머니와 상의하는 일은 점점 줄었으며, 한편 부모는, 그가 아버지의 일에 대한 관계를 숙고하는 것과, 이 세상 직무 사이에서 자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점점 더 납득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그의 부모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다.
126:0.3 나이가 들면서, 유대 민족에 대한 예수의 연민의 정과 사랑이 깊어졌지만, 정치적으로 임명된 제사장들이 아버지의 성전에 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의분{義憤}은, 그의 정신 속에서 점점 더 커졌다. 예수는, 진지한 바리새인과 정직한 서기관들을 매우 존경했으나, 위선적인 바리새인이나 정직하지 못한 신학자들은 심히 혐오했으며; 진실하지 못한 모든 종교 지도자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봤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세밀히 관찰한 후에, 유대인이 기대하고 있는 메시야가 될 수도 있다는 쪽으로 유혹을 받은 때도 더러 있었으나, 그는 그런 유혹에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126:0.4 예루살렘 성전의 현자{賢者}들 가운데서 보였던, 그의 훌륭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온 나사렛 사람, 특히 그를 가르쳤던 회당 학교 선생들을 기쁘게 했다. 한동안 모든 사람의 입에서 그의 칭찬이 자자했다. 온 동네 사람은, 그의 어린 시절의 지혜와 칭찬받을 만한 행동에 호의를 가졌고, 장차 그가 이스라엘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되도록 운명이 정해졌으며; 드디어 갈릴리의 나사렛에서도 진정 위대한 선생이 나오게 됐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예수가 열다섯 살이 되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정기적으로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허락될 날을 고대했다.
1. 열네 살 되던 해 (서기 8년)
126:1.1 그가 열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해가 됐다. 그는 멍에를 잘 만드는 기술자가 됐고, 천과 가죽 취급에도 능숙했다. 또한 노련한 목수와 가구 제작자가 되기까지 급속도로 숙련돼갔다. 이 여름에, 그는 기도하고 묵상하려고, 나사렛 북서쪽 언덕 꼭대기에 자주 올라갔다. 그는 자신의 이 세상 증여의 본질을 점점 더 자각하기 시작했다.
126:1.2 100년 조금 더 전에, 이 언덕은 “바알을 숭배하는 곳”이었고, 지금은 이스라엘의 저명한 성자{聖者}인 시므온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예수는 이 시므온 언덕 꼭대기에서 나사렛과 그 주변 지방을 바라봤다. 므깃도를 보면서, 이집트 군대가 아시아에서 첫 번째 대승을 거뒀던 이야기; 그리고 후대에는 다른 군대가 어떻게 유대지방의 왕 요시아를 참패시켰는지를 회상하곤 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를 쳐부쉈다는 장소인 타낙을 바라볼 수 있었다. 멀리,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이집트의 노예로 팔아버렸다고 배워온 도단의 언덕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에발산과 그리심산으로 눈을 돌리고, 아브라함과 야곱과 아비멜렉에 대한 전설을 혼자 회상해 봤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아버지 요셉의 민족과 관계된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사건들을 마음 속에 회상했다.
126:1.3 그는 회당 교사들의 지도하에, 상급 독해{上級 讀解} 과정을 계속 밟았고, 또한 남동생들과 여동생들이 알맞은 나이가 되는 대로 그들의 가정 교육도 계속 맡았다.
126:1.4 다음 해 8월에 15세가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교육 받기로 예정돼있었으므로, 요셉은 예수가 오랜 기간 예루살렘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이 해 초기에, 나사렛과 가버나움의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입을 따로 저축해 두기로 했다.
126:1.5 이 해가 시작될 때, 요셉과 마리아는 똑같이, 맏아들의 숙명에 대해 자주 의심을 품었다. 진정으로 총명하고 사랑스런 아이였으나, 몹시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의 속을 헤아리기가 너무 힘들었으며, 게다가 그에게서 어떤 특출하거나 기적적인 사건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 자존심 강한 어머니는, 아들이 어떤 초인적이거나 기적적인 솜씨를 보여 주기를 오랫동안 숨죽이고 기다려왔지만, 어머니의 기대는 늘 비참할 정도의 실망으로 끝나곤 했다. 이 모든 것이 용기를 잃게 했고, 심지어 낙담하게 했다. 당시의 독실한 신자들은, 선지자와 약속의 사람은 반드시 기적을 베풀고, 놀라운 일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소명을 나타내고 신성한 권위를 세워야한다는 말을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것을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 부모는 그의 장래를 깊이 생각할수록 더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126:1.6 나사렛 가정의 개선된 경제 조건이 가정생활에 여러 모로 반영됐고, 특히 목탄으로 그 위에 글씨를 쓸 수 있는, 필기 석판으로 사용되는 흰 색 칠판의 숫자가 증가했다. 또한 예수는 음악 교습을 다시 받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으며; 하프 연주하기를 매우 좋아했다.
126:1.7 이 해 내내, 예수는 “자라가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졌다”고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가족의 전망은 좋아보였고 장래는 밝았다.
2. 요셉의 죽음
126:2.1 9월 25일, 운명적인 그 화요일에, 세포리로부터 한 사람이 달려와서, 요셉이 총독의 관사에서 일하던 도중에 기중기{起重機}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쳤다는 비참한 소식을 이 나사렛 가정에 전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세포리에서 온 심부름꾼은, 요셉의 집으로 오는 길에 목공소에 들려서 예수에게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알렸고, 그들은 마리아에게 그 슬픈 소식을 전하려고 함께 집으로 달려갔다. 예수는 즉시 아버지에게 가고 싶어 했으나, 마리아는 자신이 남편 곁으로 가는 것이 급해서 아무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리아는, 그때 열 살이던 야고보에게 세포리까지 같이 가자고 지시했고, 예수에게는 그동안 집에 남아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어린 동생들을 돌보라고 지시했는데, 요셉이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가 도착하기 전에 부상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그를 나사렛으로 옮겼고, 이튿날 선조들이 묻힌 곳에 장사지냈다.
126:2.2 전망이 좋았고 장래가 밝았던 바로 그때, 겉으로 보기에 무자비한 어떤 작용이 이 나사렛 가정의 가장{家長}을 넘어뜨렸고, 이 가정의 관심사는 혼란에 빠졌으며, 예수를 위한 모든 계획과 장래의 교육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막 열네 살이 된 이 목수 소년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면서 신성한 본성을 계시하라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위탁임무를 완수해야 할 책임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아직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어머니와 일곱 동생--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다른 동생--을 보살펴야 할 책임도 떠맡게 됐음을 깨닫게 됐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유족이 된 가족에게는, 나사렛의 이 소년만이 유일한 버팀목이자 위안이었다. 그리하여, 유란시아의 자연 질서에 따라서 일어난 이 사고로 인해, 어린 나이에 이렇게 무거운, 그러나 매우 교육적이고 책임감을 길러 줄 수 있는 일이, 운명이 정해진 이 젊은이에게 너무 일찍 맡겨지는 듯 보였으며, 이로써 예수는 한 인간 가족의 가장이 됐고, 동생들의 아버지가 됐으며, 어머니를 부양하고 보호하면서, 아버지 집, 즉 자신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체험하게 되는, 그 가정의 유일한 보호자가 됐다.
126:2.3 예수는 이렇게 갑자기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그 일을 끝까지 성실하게 잘 수행했다. 적어도 그의 생애에서 난국이 예상되는 하나의 큰 문제가 비극적으로 해결됐는데, --그는 이제 랍비들 밑에서 공부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아도 됐다. 예수가 “어떤 사람의 제자도 아니라”는 말은 언제나 변함없는 사실이다. 가장 보잘것없는 어린아이들로부터도 항상 기꺼이 배우고자 했으나, 진리를 가르치는 권위를 인간적 출처에서 획득한 경우는 결코 없었다.
126:2.4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가브리엘이 어머니를 방문했던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으며; 공중 직무를 시작하면서, 세례 받던 날에야 요한에게서 이것을 듣게 됐다.
126:2.5 해가 지나면서, 나사렛의 이 젊은 목수는, 사회의 모든 제도와 모든 종교적 관습을 일정한 평가기준에 따라서 더욱 깊이 분석했다: 그것은 인간의 혼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가?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는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가? 이 젊은이는 오락 및 사교적 면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더 두 가지 목적: 즉 가족을 돌보는 것과, 아버지의 하늘의 뜻을 이 세상에서 행하려고 준비하는 것에만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126:2.6 동네 사람들에게는 이 해의 겨울 내내, 예수가 타는 하프 소리를 즐기고, (굉장한 이야기꾼이었던 그 소년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읽어주는 그리스어 성서를 듣기 위하여, 매일 밤 그의 집에 들르는 것이 습관처럼 됐다.
126:2.7 요셉이 죽었을 당시에는 상당한 돈이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가족의 경제 사정은 꽤 순탄한 편이었다. 예수는 예리한 사업상 판단력과 재정적 총명함이 있음을 일찍부터 나타냈다. 그는 자유로웠지만 검소했으며; 절약하면서도 너그러웠다. 아버지의 재산을 현명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경영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126:2.8 그러나 예수와 나사렛 마을 사람들이 그 가정의 사기를 북돋아 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마리아는, 그리고 어린아이들까지도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다. 요셉은 가버렸다. 요셉은 보통 찾아보기 힘든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며, 그들 모두 그를 그리워했다. 더욱이 그들은,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의 마지막 축복의 말도 듣지 못한 채 그가 죽었다는 생각에, 더욱 애처로워하는 듯했다.
126:3.1 열다섯 살이 되던 이 해 중순에, 예수는 가정의 경영을 완전히 떠맡게 됐다--우리는 유대인의 달력이 아니라, 20세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달력으로 계산하고 있다. 저축했던 돈은 이 해가 다 가기도 전에 거의 바닥났고, 요셉과 이웃사람 야곱이 공동으로 소유했던, 나사렛에 있는 집들 가운데 하나를 처분할 처지에 놓였다.
126:3.2 서기 9년 4월 17일 수요일 밤에, 그 가정의 마지막 아기인 룻이 태어났고, 예수는 최선을 다하여, 이렇게 힘들고 특히 슬퍼하는 호된 시련의 기간에 처한 어머니를, 아버지를 대신해서 위로하고 돌보느라 애썼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할 때까지) 거의 20여 년 동안 예수가 룻을 돌본 것보다, 더 자기 딸을 귀하고 충실하게 사랑하고 양육한 아버지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가족의 식구들 모두에게도 똑같이 좋은 아버지였다.
126:3.3 이 해 동안, 예수는 처음으로 기도를 구체화시켰는데, 나중에 제자들에게도 가르쳤고,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기도문”으로 알려지게 됐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가족 제단이 진화된 것이었으며; 그들에게는 여러 찬미 형식과 공식 기도문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예수는,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매우 즐겼던 것처럼-- 각자 자신의 표현 방법에 따라서 기도하도록, 나이 든 동생들에게 가르쳤지만, 그들은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고, 암기하고 있는 자기들의 기도 형식으로 늘 돌아가곤 했다. 예수는 나이 든 남동생과 여동생들이 각자 나름대로 기도를 드리도록 수고스럽게 격려하면서, 제시된 문구를 그들이 따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곧 자신의 역할 없이도, 자신이 그들을 가르쳤던 함축성 있는 이 구절들로 주로 만들어진 기도 형식을, 모두가 사용하게 되도록 애썼다.
126:3.4 마침내 예수는, 식구들 각자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리도록 하려던 생각을 포기했고, 10월 어느 날 저녁에, 돌로 만든 낮은 탁자 위 작은 등잔 옆에 앉아서, 약 18인치 되는 매끄러운 정사각형 나무판 위에 목탄으로 기도문을 썼는데, 그때부터 이것이 규격화된 가족 청원기도가 됐다.
126:3.5 이 해에 예수는 혼란스런 생각들로 무척 괴로워했다.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의 일에 임하라”는 지시에 응답하여, 어떤 계획이든지 즉시 실행에 옮기려던 모든 생각은,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으로 인해 사실상 거의 제거됐다. 예수는 이 세상 아버지의 가족을 돌보는 것이 모든 다른 의무보다 선행돼야 한다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자신의 첫째 책무라고, 올바르게 추론했다.
126:3.6 이 해를 지내면서, 예수는 소위 에녹서에서 한 구절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자신의 유란시아 증여 사명을 표현하는 호칭으로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따오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는 유대인의 메시야 관념을 면밀히 검토했고, 자신은 결코 그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확신했다. 아버지의 민족을 돕기를 갈망했지만, 유대인 군대를 이끌고, 팔레스틴을 점령한 다른 나라들을 멸망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예루살렘에서 다윗 왕좌에 앉지 않을 것을 알았다. 또한, 자신의 사명이 유대 민족의 영적 구원자나 도덕적 선생으로 국한 된다고 믿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명은 어떤 면에서도, 애타게 기다리던, 히브리 성서 가운데 가상의 메시야 예언들을 성취하는 데 있지 않았으며; 적어도 유대인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해했던 것과는 달랐다. 마찬가지로, 그는 선지자 다니엘이 묘사한 그런 사람의 아들로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126:3.7 그러나 자신이 세상의 선생으로 나아갈 때가 오면, 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인가? 자신의 사명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어떤 명칭으로 부르게 하는 것이 좋을까?
126:3.8 그는 이와 같은 모든 문제를 마음 속에서 숙고하는 가운데, 나사렛 회당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묵시록들 가운데 “에녹서”라고 불리는 이 책을 발견했으며; 옛 에녹이 쓴 것이 아님을 확신했지만, 그의 흥미를 매우 끌었고, 그래서 그것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특히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구절이었다. 소위 이 에녹서의 저자는 이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을 이어서 묘사했는데, 이 사람의 아들은, 인류에게 구원을 주기 위하여 이 세상으로 내려오기 전에, 만유의 아버지인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하늘의 영광스런 뜰을 거닐었으며; 불쌍한 필사자들에게 구원을 선포할 목적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려고, 이런 모든 권세와 영광을 버렸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절들을 읽었을 때, 예수는 (동방의 여러 신비주의가 이 교훈에 섞여 들어가게 된 것이 큰 잘못이었음을 잘 이해하면서) 히브리 성서 가운데 메시야를 예언하는 모든 부분과, 유대인 구원자에 관한 모든 이론 중에서 유일하게 부분적으로 인정받은, 이 에녹서에 감춰진 바로 이 이야기만큼 진리에 가까운 것은 없다는 것을, 심정으로 응답하고 정신으로 인정했으며; 그는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취임 직함으로서 “사람의 아들”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중에 공적 업무를 시작했을 때 이것을 실행했다. 예수는 진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역량을 갖고 있었고, 외견상 어떤 출처에서 나왔든지 상관없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진리를 받아들였다.
126:2.8 그러나 예수와 나사렛 마을 사람들이 그 가정의 사기를 북돋아 주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마리아는, 그리고 어린아이들까지도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다. 요셉은 가버렸다. 요셉은 보통 찾아보기 힘든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며, 그들 모두 그를 그리워했다. 더욱이 그들은,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의 마지막 축복의 말도 듣지 못한 채 그가 죽었다는 생각에, 더욱 애처로워하는 듯했다.
3. 열다섯 살 되던 해 (서기 9년)
126:3.1 열다섯 살이 되던 이 해 중순에, 예수는 가정의 경영을 완전히 떠맡게 됐다--우리는 유대인의 달력이 아니라, 20세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달력으로 계산하고 있다. 저축했던 돈은 이 해가 다 가기도 전에 거의 바닥났고, 요셉과 이웃사람 야곱이 공동으로 소유했던, 나사렛에 있는 집들 가운데 하나를 처분할 처지에 놓였다.
126:3.2 서기 9년 4월 17일 수요일 밤에, 그 가정의 마지막 아기인 룻이 태어났고, 예수는 최선을 다하여, 이렇게 힘들고 특히 슬퍼하는 호된 시련의 기간에 처한 어머니를, 아버지를 대신해서 위로하고 돌보느라 애썼다. (그가 공생애를 시작할 때까지) 거의 20여 년 동안 예수가 룻을 돌본 것보다, 더 자기 딸을 귀하고 충실하게 사랑하고 양육한 아버지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가족의 식구들 모두에게도 똑같이 좋은 아버지였다.
126:3.3 이 해 동안, 예수는 처음으로 기도를 구체화시켰는데, 나중에 제자들에게도 가르쳤고,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기도문”으로 알려지게 됐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가족 제단이 진화된 것이었으며; 그들에게는 여러 찬미 형식과 공식 기도문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예수는,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매우 즐겼던 것처럼-- 각자 자신의 표현 방법에 따라서 기도하도록, 나이 든 동생들에게 가르쳤지만, 그들은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고, 암기하고 있는 자기들의 기도 형식으로 늘 돌아가곤 했다. 예수는 나이 든 남동생과 여동생들이 각자 나름대로 기도를 드리도록 수고스럽게 격려하면서, 제시된 문구를 그들이 따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곧 자신의 역할 없이도, 자신이 그들을 가르쳤던 함축성 있는 이 구절들로 주로 만들어진 기도 형식을, 모두가 사용하게 되도록 애썼다.
126:3.4 마침내 예수는, 식구들 각자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리도록 하려던 생각을 포기했고, 10월 어느 날 저녁에, 돌로 만든 낮은 탁자 위 작은 등잔 옆에 앉아서, 약 18인치 되는 매끄러운 정사각형 나무판 위에 목탄으로 기도문을 썼는데, 그때부터 이것이 규격화된 가족 청원기도가 됐다.
126:3.5 이 해에 예수는 혼란스런 생각들로 무척 괴로워했다.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의 일에 임하라”는 지시에 응답하여, 어떤 계획이든지 즉시 실행에 옮기려던 모든 생각은,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으로 인해 사실상 거의 제거됐다. 예수는 이 세상 아버지의 가족을 돌보는 것이 모든 다른 의무보다 선행돼야 한다고;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자신의 첫째 책무라고, 올바르게 추론했다.
126:3.6 이 해를 지내면서, 예수는 소위 에녹서에서 한 구절을 발견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자신의 유란시아 증여 사명을 표현하는 호칭으로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따오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는 유대인의 메시야 관념을 면밀히 검토했고, 자신은 결코 그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굳게 확신했다. 아버지의 민족을 돕기를 갈망했지만, 유대인 군대를 이끌고, 팔레스틴을 점령한 다른 나라들을 멸망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자신이 결코 예루살렘에서 다윗 왕좌에 앉지 않을 것을 알았다. 또한, 자신의 사명이 유대 민족의 영적 구원자나 도덕적 선생으로 국한 된다고 믿지도 않았다. 따라서 그의 사명은 어떤 면에서도, 애타게 기다리던, 히브리 성서 가운데 가상의 메시야 예언들을 성취하는 데 있지 않았으며; 적어도 유대인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해했던 것과는 달랐다. 마찬가지로, 그는 선지자 다니엘이 묘사한 그런 사람의 아들로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126:3.7 그러나 자신이 세상의 선생으로 나아갈 때가 오면, 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인가? 자신의 사명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어떤 명칭으로 부르게 하는 것이 좋을까?
126:3.8 그는 이와 같은 모든 문제를 마음 속에서 숙고하는 가운데, 나사렛 회당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묵시록들 가운데 “에녹서”라고 불리는 이 책을 발견했으며; 옛 에녹이 쓴 것이 아님을 확신했지만, 그의 흥미를 매우 끌었고, 그래서 그것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특히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구절이었다. 소위 이 에녹서의 저자는 이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을 이어서 묘사했는데, 이 사람의 아들은, 인류에게 구원을 주기 위하여 이 세상으로 내려오기 전에, 만유의 아버지인 그의 아버지와 함께 하늘의 영광스런 뜰을 거닐었으며; 불쌍한 필사자들에게 구원을 선포할 목적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려고, 이런 모든 권세와 영광을 버렸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절들을 읽었을 때, 예수는 (동방의 여러 신비주의가 이 교훈에 섞여 들어가게 된 것이 큰 잘못이었음을 잘 이해하면서) 히브리 성서 가운데 메시야를 예언하는 모든 부분과, 유대인 구원자에 관한 모든 이론 중에서 유일하게 부분적으로 인정받은, 이 에녹서에 감춰진 바로 이 이야기만큼 진리에 가까운 것은 없다는 것을, 심정으로 응답하고 정신으로 인정했으며; 그는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취임 직함으로서 “사람의 아들”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중에 공적 업무를 시작했을 때 이것을 실행했다. 예수는 진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역량을 갖고 있었고, 외견상 어떤 출처에서 나왔든지 상관없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진리를 받아들였다.
126:3.9 이 무렵에, 그는 앞으로 세상을 위하여 해야 할 많은 일에 관해서 이미 철저히 정리해 뒀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유대인의 메시야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었다.
126:3.10 이제 예수의 젊은 시절의 큰 혼란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일에 임하는”--곧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본성을 온 인류에게 설명하는--, 자신의 이 세상 사명의 본질에 관한 어떤 것을 확정하면서, 그는 민족적 구원자, 즉 유대인의 선생 혹은 왕의 출현에 관해 기록한 성서 가운데 여러 구절을 다시 숙고하기 시작했다. 이 예언들은 어떤 사건을 가리키는가? 그는 비 유대인인가? 아니면 유대인인가? 다윗 가문 출신인가, 아닌가? 어머니는 그렇다고 단언했고; 아버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예수도 아니라고 단정했다. 아니면 그 선지자들이 메시야의 본성과 사명을 혼동했던 것일까?
126:3.11 결국, 어머니의 말이 맞을 가능성도 있을까? 과거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어머니가 옳다고 판명됐었다. 그가 새 선생이고 메시야가 아니라면, 그가 이 세상에서 사명을 행하는 동안에 혹시 그런 유대인의 메시야가 예루살렘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그를 알아볼까?; 그리고 더욱이, 이 유대인 메시야와 자신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하는가? 그가 사명을 착수한 후에는, 가족과, 유대 민족 및 종교와, 로마 제국과, 이방인들 및 그들의 종교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다른 여덟 명의 배고픈 식구를 부양하려고 열심히 일하면서, 목공소에서 계속 작업하는 동안, 이 젊은 갈릴리인은 이런 중대한 문제 하나하나를 마음 속에 떠올리면서 진지하게 숙고했다.
126:3.12 이 해가 끝나기 전에, 마리아는 가족 기금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았다. 마리아는 비둘기 파는 일을 야고보에게 넘겼다. 이윽고 그들은 두 번째 암소를 구입했고, 미리암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사렛의 이웃에게 우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126:3.13 예수의 긴 기간의 묵상, 기도하려고 언덕 꼭대기로 자주 가는 여행, 그리고 때때로 그가 제시하는 이상스러운 많은 착상 등으로 인해, 어머니는 몹시 불안해했다. 어머니는 때로는 아들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그럴 때마다, 아이가 약속의 자녀로서 결국 다른 소년들과는 어떤 면에서든지 다를 것임을 기억해냄으로써, 두려움을 안정시키곤 했다.
126:3.14 그러나 예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자기 생각을 전부 말하고 자기 이상{理想}을 전부 제시하는 것을 삼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 해부터 계속, 예수는 마음 속에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으며; 다시 말해서, 보통사람들이 파악할 수 없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거나 특별나다고 간주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고대했음에도, 겉으로는 모든 면에서 평범하고 통상적인 모습이 됐다. 믿을 수 있고 비밀을 지켜주는 친구를 갈망했지만, 그의 문제는 인간 동료들이 납득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이렇게 유별난 상황의 독특성 때문에, 그는 자기 짐을 홀로 질 수밖에 없었다.
126:4.1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예수는 안식일에 정식으로 회당의 설교단에 설 수 있게 됐다. 연설자가 없을 경우에 성서를 읽어달라는 청을 전에도 여러 번 받았었지만, 예수는 이제 율법에 따라 직접 예배를 인도할 수 있는 날이 됐다. 따라서 열다섯 번째 생일이 지난 후 첫 안식일에, 카잔은 그날 아침 회당 예배 순서를 예수가 담당하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나사렛의 모든 신자가 모였을 때, 이 젊은이는 다음과 같은 성서 구절을 선택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읽기 시작했다:
126:3.10 이제 예수의 젊은 시절의 큰 혼란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일에 임하는”--곧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본성을 온 인류에게 설명하는--, 자신의 이 세상 사명의 본질에 관한 어떤 것을 확정하면서, 그는 민족적 구원자, 즉 유대인의 선생 혹은 왕의 출현에 관해 기록한 성서 가운데 여러 구절을 다시 숙고하기 시작했다. 이 예언들은 어떤 사건을 가리키는가? 그는 비 유대인인가? 아니면 유대인인가? 다윗 가문 출신인가, 아닌가? 어머니는 그렇다고 단언했고; 아버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예수도 아니라고 단정했다. 아니면 그 선지자들이 메시야의 본성과 사명을 혼동했던 것일까?
126:3.11 결국, 어머니의 말이 맞을 가능성도 있을까? 과거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어머니가 옳다고 판명됐었다. 그가 새 선생이고 메시야가 아니라면, 그가 이 세상에서 사명을 행하는 동안에 혹시 그런 유대인의 메시야가 예루살렘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그를 알아볼까?; 그리고 더욱이, 이 유대인 메시야와 자신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하는가? 그가 사명을 착수한 후에는, 가족과, 유대 민족 및 종교와, 로마 제국과, 이방인들 및 그들의 종교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다른 여덟 명의 배고픈 식구를 부양하려고 열심히 일하면서, 목공소에서 계속 작업하는 동안, 이 젊은 갈릴리인은 이런 중대한 문제 하나하나를 마음 속에 떠올리면서 진지하게 숙고했다.
126:3.12 이 해가 끝나기 전에, 마리아는 가족 기금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았다. 마리아는 비둘기 파는 일을 야고보에게 넘겼다. 이윽고 그들은 두 번째 암소를 구입했고, 미리암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사렛의 이웃에게 우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126:3.13 예수의 긴 기간의 묵상, 기도하려고 언덕 꼭대기로 자주 가는 여행, 그리고 때때로 그가 제시하는 이상스러운 많은 착상 등으로 인해, 어머니는 몹시 불안해했다. 어머니는 때로는 아들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그럴 때마다, 아이가 약속의 자녀로서 결국 다른 소년들과는 어떤 면에서든지 다를 것임을 기억해냄으로써, 두려움을 안정시키곤 했다.
126:3.14 그러나 예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자기 생각을 전부 말하고 자기 이상{理想}을 전부 제시하는 것을 삼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 해부터 계속, 예수는 마음 속에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으며; 다시 말해서, 보통사람들이 파악할 수 없고,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거나 특별나다고 간주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고대했음에도, 겉으로는 모든 면에서 평범하고 통상적인 모습이 됐다. 믿을 수 있고 비밀을 지켜주는 친구를 갈망했지만, 그의 문제는 인간 동료들이 납득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이렇게 유별난 상황의 독특성 때문에, 그는 자기 짐을 홀로 질 수밖에 없었다.
126:4.1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예수는 안식일에 정식으로 회당의 설교단에 설 수 있게 됐다. 연설자가 없을 경우에 성서를 읽어달라는 청을 전에도 여러 번 받았었지만, 예수는 이제 율법에 따라 직접 예배를 인도할 수 있는 날이 됐다. 따라서 열다섯 번째 생일이 지난 후 첫 안식일에, 카잔은 그날 아침 회당 예배 순서를 예수가 담당하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나사렛의 모든 신자가 모였을 때, 이 젊은이는 다음과 같은 성서 구절을 선택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읽기 시작했다:
126:4.2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에게 기름 부으시기 위함이며; 그가 나를 보내심은,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고,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영적으로 갇힌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응보의 날을 전파하기 위함이며; 모든 슬픈 자들을 위로하되, 재 대신 아름다움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근심의 영 대신 찬송의 노래를 그들에게 주어, 주께서 영광 받으시게 될 곳에, 그가 심으신 의의 나무들이라고 일컬음을 얻게 하려하심이다.”
126:4.3 “너희는 살고 싶으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 만군의 하나님이신 주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고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라. 주 하나님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126:4.4 “너희는 스스로 씻고,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눈 앞에서 너희 행함의 악을 멀리하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풀어줘라. 아비 없는 자들을 보호하고 과부를 변호하라.
126:4.5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 앞에 나아가며 세상 만물의 주 앞에 경배할까? 내가 일 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갖고 그 앞에 나아갈까? 주께서 수천 마리의 수양이나 수만 마리의 양, 아니면 강 같이 흐르는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혼의 죄를 인해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아니다! 오, 사람들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우리에게 보이셨도다. 그리고 주께서 너에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함이 아니겠느냐?”
126:4.6 “그런즉 너희가 지구의 궤도 위에 앉으신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느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분, 그 무리를 세어서 낳으시고 그 이름을 각각 부르시는 분을 보라. 자신의 크신 권세로 이 모든 일을 행하셨고,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이루지 못하신 것이 없느니라. 약한 자들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피곤한 자들에게는 힘을 더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니,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할 것이고 너를 도와 줄 것이며;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 것이니, 이는 내가 주 너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너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이다.
126:4.3 “너희는 살고 싶으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 만군의 하나님이신 주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고 성문에서 공의를 세우라. 주 하나님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126:4.4 “너희는 스스로 씻고,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눈 앞에서 너희 행함의 악을 멀리하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풀어줘라. 아비 없는 자들을 보호하고 과부를 변호하라.
126:4.5 “내가 무엇을 가지고 주 앞에 나아가며 세상 만물의 주 앞에 경배할까? 내가 일 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갖고 그 앞에 나아갈까? 주께서 수천 마리의 수양이나 수만 마리의 양, 아니면 강 같이 흐르는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혼의 죄를 인해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아니다! 오, 사람들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우리에게 보이셨도다. 그리고 주께서 너에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함이 아니겠느냐?”
126:4.6 “그런즉 너희가 지구의 궤도 위에 앉으신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느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분, 그 무리를 세어서 낳으시고 그 이름을 각각 부르시는 분을 보라. 자신의 크신 권세로 이 모든 일을 행하셨고,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이루지 못하신 것이 없느니라. 약한 자들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피곤한 자들에게는 힘을 더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니,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할 것이고 너를 도와 줄 것이며;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 것이니, 이는 내가 주 너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너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이다.
126:4.7 “그리고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 증인이요, 내가 너희를 내 종으로 택했으니, 이는 너희 모두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영원자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다. 내가 주이고,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126:4.8 그렇게 읽은 다음 자리에 앉았고, 사람들은 예수가 그토록 우아하게 읽어줬던 문구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렇게 엄숙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며; 그토록 열성적이고 진지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며; 그토록 어른스럽고 단호하고 권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126:4.9 이 안식일 오후에 예수는 야고보를 데리고 나사렛 언덕으로 올라갔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두 장의 매끈한 나무판에 목탄을 사용해서 그리스어로 십계명을 썼다. 마르다는 나중에 이 두 판에 색칠하고 장식했으며, 이것들은 야고보의 작은 작업대 위 벽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126:5.1 예수와 그 가족은 점차 초기의 단순한 생활로 돌아갔다. 그들의 옷과 음식까지도 간소해졌다. 우유와 버터 그리고 치즈는 풍부했다. 제 철이 되면, 집에 있는 밭에서 나오는 소산물을 먹을 수 있었지만, 달이 거듭될수록 더 많은 절약이 필요해졌다. 그들의 아침 식사는 매우 간단했으며; 가장 좋은 음식은 저녁을 위하여 남겨뒀다. 그러나 유대인 사이에서 이런 가난은, 사회적으로도 열등함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았다.
126:5.2 이 소년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미 잘 납득했다. 가정과 들판과 작업장에서 얼마나 생활을 잘 이해했는지를, 나중에 그의 교훈이 보여주는데, 그 교훈은 인간 체험의 모든 국면에 대하여 그가 얼마나 조예가 깊었는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126:5.3 나사렛의 카잔은, 예수가 위대한 선생이 되어,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저명한 가말리엘의 후계자가 되리라는 믿음을 계속 고수했다.
126:5.4 겉으로 보기에 예수의 모든 진행 계획은 좌절되는 듯했다. 이때 벌어지는 사태로 볼 때 미래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비틀거리지 않았으며; 낙심하지 않았다. 현재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자기 생활 속에서 당면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예수의 생애는, 낙담한 모든 이상주의자들에게 끝없는 위안을 준다.
126:5.5 평범한 일용직{日傭職}_노동자 목수의 임금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 해 말쯤에 예수는 아침 일찍부터 늦게 까지 일해서, 하루에 25센트에 해당하는 금액{1935년 당시 화폐 가치를 2023년 가치로 환산하면 $10 정도 되는 금액}을 벌 수 있을 뿐이었다. 다음 해가 되자, 그들에게는 회당 헌금과 반 세겔의 성전 세금은 그만 두고라도, 정부에 세금을 내는 일 조차 힘겨워졌다. 이 해에, 세금 징수원은 예수에게서 돈을 더 거두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의 하프를 뺏어가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126:5.6 예수는, 그리스어 성서 사본이 세금 징수원에게 발각되어 압수당할까 염려하여, 열다섯 번째 생일에, 주께 바치는 성인식 헌물로서 나사렛 회당 도서관에 기증했다.
126:5.7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사고로 사망했을 당시에 요셉이 받았어야 할 돈의 액수에 대해 항의하려고 헤롯에게 제출했던 문제에 관한 판결을 받으려고 세포리로 갔을 때, 예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예수와 마리아는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세포리의 재정 담당자는 쥐꼬리만한 금액을 제시했다. 요셉의 형제들이 헤롯에게 직접 진정서를 냈었고, 이제 예수는 궁전 안에 서서, 아버지가 죽었을 당시에 그가 받아야 할 돈이 하나도 없었다는 헤롯의 판결을 듣게 됐다. 그런 부당한 결정 때문에, 예수는 그 후로 헤롯 안티파스를 두 번 다시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헤롯을 “저 여우”라고 언급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26:5.8 이 해와 다음 해 동안에 목공소 작업대를 떠날 수 없었던 관계로, 예수는 대상{隊商} 여행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던 작업장은 이미 삼촌에게 넘어갔으므로, 예수는 집에 있는 작업장에서 다 같이 일하면서, 가족을 떠맡은 마리아를 도우려고 가까이 있었다. 이 무렵에 그는, 세계정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야고보를 낙타들이 쉬는 곳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이렇게 당시의 소식과 계속 접촉하려고 애썼다.
126:5.9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서, 그는 그 나이 또래의 보통 젊은이들이 겪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갈등과 혼란을 체험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을 부양하는 혹독한 체험은, 나태한 명상이나 신비적 경향에 빠질 만큼 여유가 넘치지 않도록 그를 지켜줬다.
126:5.10 예수가 자기 집 바로 북쪽에 꽤 넓은 땅을 빌려서, 채소밭을 가꾸도록 가족에게 나눠준 일도 이 해에 있었다. 나이 든 동생들은 각자 자기 몫의 밭을 갖게 했고, 농사를 잘 지으려고 열심히 경쟁했다. 채소를 기르는 시기에는, 맏형이 매일 얼마간의 시간을 밭에서 함께 보냈다. 밭에서 동생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방해받지 않고 해방감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골에서, 모두가 농장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꿈을 예수는 여러 번 마음에 품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골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는 갖지 못했으며;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완전한 실용주의자였던 젊은 예수는, 문제가 일어나는 대로 지혜롭게 열정적으로 대처했고, 자신과 가족이 처한 현실 상황에 맞춰나가는 일에, 그리고 개개인과 가족 전체의 소원이 가능한 한 최고의 만족감을 얻도록 자신들의 상황을 적응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
126:5.11 예수는 한때, 헤롯의 궁전에서 일한 대가로 아버지가 받을 상당한 돈을 수금하게 되면, 작은 농장을 사기에 충분한 보증금이 되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졌었다. 그는 가족을 시골로 이사시키는 계획을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뒀었다. 그러나 헤롯이 요셉에게 줘야할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자, 시골에서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희망을 포기했다. 있는 상태 그대로, 그들은 이제 비둘기 외에, 세 마리의 소, 네 마리의 양, 닭 몇 마리, 한 마리의 당나귀, 그리고 한 마리의 개를 키우면서, 농장 생활의 체험을 즐기고자 궁리했다. 규율이 잘 잡힌 관리 요강에 따라서, 작은 아이들에게도 일정한 의무가 주어졌는데, 이것은 이 나사렛 가족의 가정생활의 특징이었다.
126:5.12 열다섯 살이 되던 이 해가 끝날 때, 예수는 인간 체험에서 그토록 위험스럽고 어려웠던 기간을 마무리했는데, 이 기간은 비교적 만족스럽게 보낸 어린 시절과, 다가오는 성년기에 대한 의식 사이의 과도기였으며, 성년기에는 고상한 성품을 발달시키는 진보된 체험을 획득하기 위한 책임과 기회가 늘어나게 된다. 정신과 육체의 성장기가 끝났고, 이제 이 나사렛 젊은이의 진짜 생애가 시작됐다.
126:4.8 그렇게 읽은 다음 자리에 앉았고, 사람들은 예수가 그토록 우아하게 읽어줬던 문구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서 그렇게 엄숙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며; 그토록 열성적이고 진지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으며; 그토록 어른스럽고 단호하고 권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126:4.9 이 안식일 오후에 예수는 야고보를 데리고 나사렛 언덕으로 올라갔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두 장의 매끈한 나무판에 목탄을 사용해서 그리스어로 십계명을 썼다. 마르다는 나중에 이 두 판에 색칠하고 장식했으며, 이것들은 야고보의 작은 작업대 위 벽에 오랫동안 걸려 있었다.
5. 재정압박을 헤쳐나감
126:5.1 예수와 그 가족은 점차 초기의 단순한 생활로 돌아갔다. 그들의 옷과 음식까지도 간소해졌다. 우유와 버터 그리고 치즈는 풍부했다. 제 철이 되면, 집에 있는 밭에서 나오는 소산물을 먹을 수 있었지만, 달이 거듭될수록 더 많은 절약이 필요해졌다. 그들의 아침 식사는 매우 간단했으며; 가장 좋은 음식은 저녁을 위하여 남겨뒀다. 그러나 유대인 사이에서 이런 가난은, 사회적으로도 열등함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았다.
126:5.2 이 소년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이미 잘 납득했다. 가정과 들판과 작업장에서 얼마나 생활을 잘 이해했는지를, 나중에 그의 교훈이 보여주는데, 그 교훈은 인간 체험의 모든 국면에 대하여 그가 얼마나 조예가 깊었는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126:5.3 나사렛의 카잔은, 예수가 위대한 선생이 되어,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저명한 가말리엘의 후계자가 되리라는 믿음을 계속 고수했다.
126:5.4 겉으로 보기에 예수의 모든 진행 계획은 좌절되는 듯했다. 이때 벌어지는 사태로 볼 때 미래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비틀거리지 않았으며; 낙심하지 않았다. 현재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자기 생활 속에서 당면한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예수의 생애는, 낙담한 모든 이상주의자들에게 끝없는 위안을 준다.
126:5.5 평범한 일용직{日傭職}_노동자 목수의 임금은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 해 말쯤에 예수는 아침 일찍부터 늦게 까지 일해서, 하루에 25센트에 해당하는 금액{1935년 당시 화폐 가치를 2023년 가치로 환산하면 $10 정도 되는 금액}을 벌 수 있을 뿐이었다. 다음 해가 되자, 그들에게는 회당 헌금과 반 세겔의 성전 세금은 그만 두고라도, 정부에 세금을 내는 일 조차 힘겨워졌다. 이 해에, 세금 징수원은 예수에게서 돈을 더 거두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의 하프를 뺏어가겠다고 협박하기까지 했다.
126:5.6 예수는, 그리스어 성서 사본이 세금 징수원에게 발각되어 압수당할까 염려하여, 열다섯 번째 생일에, 주께 바치는 성인식 헌물로서 나사렛 회당 도서관에 기증했다.
126:5.7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사고로 사망했을 당시에 요셉이 받았어야 할 돈의 액수에 대해 항의하려고 헤롯에게 제출했던 문제에 관한 판결을 받으려고 세포리로 갔을 때, 예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예수와 마리아는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세포리의 재정 담당자는 쥐꼬리만한 금액을 제시했다. 요셉의 형제들이 헤롯에게 직접 진정서를 냈었고, 이제 예수는 궁전 안에 서서, 아버지가 죽었을 당시에 그가 받아야 할 돈이 하나도 없었다는 헤롯의 판결을 듣게 됐다. 그런 부당한 결정 때문에, 예수는 그 후로 헤롯 안티파스를 두 번 다시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헤롯을 “저 여우”라고 언급했던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26:5.8 이 해와 다음 해 동안에 목공소 작업대를 떠날 수 없었던 관계로, 예수는 대상{隊商} 여행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가족이 함께 운영하던 작업장은 이미 삼촌에게 넘어갔으므로, 예수는 집에 있는 작업장에서 다 같이 일하면서, 가족을 떠맡은 마리아를 도우려고 가까이 있었다. 이 무렵에 그는, 세계정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도록 야고보를 낙타들이 쉬는 곳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이렇게 당시의 소식과 계속 접촉하려고 애썼다.
126:5.9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서, 그는 그 나이 또래의 보통 젊은이들이 겪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갈등과 혼란을 체험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족을 부양하는 혹독한 체험은, 나태한 명상이나 신비적 경향에 빠질 만큼 여유가 넘치지 않도록 그를 지켜줬다.
126:5.10 예수가 자기 집 바로 북쪽에 꽤 넓은 땅을 빌려서, 채소밭을 가꾸도록 가족에게 나눠준 일도 이 해에 있었다. 나이 든 동생들은 각자 자기 몫의 밭을 갖게 했고, 농사를 잘 지으려고 열심히 경쟁했다. 채소를 기르는 시기에는, 맏형이 매일 얼마간의 시간을 밭에서 함께 보냈다. 밭에서 동생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방해받지 않고 해방감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골에서, 모두가 농장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꿈을 예수는 여러 번 마음에 품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골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는 갖지 못했으며;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완전한 실용주의자였던 젊은 예수는, 문제가 일어나는 대로 지혜롭게 열정적으로 대처했고, 자신과 가족이 처한 현실 상황에 맞춰나가는 일에, 그리고 개개인과 가족 전체의 소원이 가능한 한 최고의 만족감을 얻도록 자신들의 상황을 적응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
126:5.11 예수는 한때, 헤롯의 궁전에서 일한 대가로 아버지가 받을 상당한 돈을 수금하게 되면, 작은 농장을 사기에 충분한 보증금이 되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졌었다. 그는 가족을 시골로 이사시키는 계획을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뒀었다. 그러나 헤롯이 요셉에게 줘야할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자, 시골에서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희망을 포기했다. 있는 상태 그대로, 그들은 이제 비둘기 외에, 세 마리의 소, 네 마리의 양, 닭 몇 마리, 한 마리의 당나귀, 그리고 한 마리의 개를 키우면서, 농장 생활의 체험을 즐기고자 궁리했다. 규율이 잘 잡힌 관리 요강에 따라서, 작은 아이들에게도 일정한 의무가 주어졌는데, 이것은 이 나사렛 가족의 가정생활의 특징이었다.
126:5.12 열다섯 살이 되던 이 해가 끝날 때, 예수는 인간 체험에서 그토록 위험스럽고 어려웠던 기간을 마무리했는데, 이 기간은 비교적 만족스럽게 보낸 어린 시절과, 다가오는 성년기에 대한 의식 사이의 과도기였으며, 성년기에는 고상한 성품을 발달시키는 진보된 체험을 획득하기 위한 책임과 기회가 늘어나게 된다. 정신과 육체의 성장기가 끝났고, 이제 이 나사렛 젊은이의 진짜 생애가 시작됐다.
◀제125편 예루살렘에서 예수 ∥ 제127편 청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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