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3, 2011

'하나님 나라' 실현의 다중성(多重性)

'하나님 나라' 실현의 다중성(多重性)

인간이 알지 못하였던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가 전하였을 때, 비록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그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 중 상당한 부분을 들은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주님이 승천하시기 직전까지도 여전히 물질적 개념의 메시야관과 하나님 나라 임재 개념을 사도들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인간은 대부분 1차원적인 사고 체계 즉 이원론적 판단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예를 들자면 가치를 판단함에 있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단순하게 정리해 버리는 습관이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생각할 때에도 많은 오해를 낳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인 권세를 갖고 올 메시야를 고대하였고, 그 메시야를 통한 물질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갈망하였다. 제자들 역시 그러한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이원론과 영지주의 영향 아래에서는 그것이 더욱 심화되었다. 중세시대에는 이러한 오해가 세상 세력과의 야합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물질적인 부분을 무시한 완전히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여 신비주의에 빠져버리는 조류가 면면히 흘러왔다.
그러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에 근거해 보면, 예수가 전한 복음의 내용인 그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되어지는 1차원적 임재 세계가 아니었다.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에서도 보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한 동시에 이 세상에서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도 언급한 것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그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적 개념에서 이중(二重) 이상의 언어로 설명되었으며, 시간 개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고, 물질과 정신의 상태적 차원에서도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예수의 의도 그대로 발견하고자 노력하려면 이러한 다중적(多重的)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논문은 앞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방향 전환을 제안하고 그 개념에 따라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추구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1) 하나님 나라의 도래
하나님의 나라는 자연발생적으로 이곳에 생겨나는 어떤 단순한 상태 변화가 아니다. 예수는 공생애 초두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이르렀다”고 외침으로써, 이미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 확장하고 있음을 시사하였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이곳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저곳으로부터 도래하였다는 것이다. 가까이 이르렀다는 말이 원어에서는 έγγιζω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말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실체가 가깝게 다가옴을 가리킨다. 이 말이 타동사로 사용될 때는 어떤 것을 가까이 가져왔다는 의미이고 자동사로 쓰일 때에는 공간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는 의미이다. 만약에 하나님의 나라가 단순히 하나님의 통치권을 의미한다면 시간적 의미로 해석하여 하나님 통치의 시대가 곧 임박하였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저곳에서 이루어진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에서도 앞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예수의 말씀으로 미루어볼 때 그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시간적 개념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공간적인 개념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공간적 개념, 시간적 개념, 차원적 개념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관련될 수 있다고 보는데, 여기서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상태에 있어서 단순한 이원론적 개념이 아닌 3차원적 개념을 도입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2) 시간적 다중성과 하나님 나라
우리는 시간을 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구분하여 생각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과거와 미래는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현재 속에서 하나의 흔적으로서 또는 가능성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곳으로 임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그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신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앞으로 실현될 종말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완성 지점을 향하여 이루어져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주인인 하나님의 존재를 이미 거부한 것이며, 그 실현은 미래 속에 있는, 비실체에 불과할 뿐이다. 역으로 그 하나님의 나라가 과거에 완성되었다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앞으로 임하게 될 것이라는 미래형으로 설명한 예수의 말씀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판넨베르그가 하나님의 나라를 다중적 현재 즉 현재 속에서의 과거와 현재 속에서의 미래 그리고 현재 그 자체가 한꺼번에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해 본다면,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속에 원초적 하나님 나라의 어떤 실체로 그대로 있고, 그와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물질 세계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소망으로서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현재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가고 완성되어져 가는 창조의 현장이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전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단순한 한 시점에서의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원의 하나님 나라를 구분하여 즉, 미래적 가능성까지도 하나님의 영원 시간 속에서 하나의 실체로 봄으로써 현재라는 측정 불가능의 순간 속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 가지 시간들을 함께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비로소, 이미 이루어진 원초적 하나님 나라도 현재 속에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요, 순간적 창조 역사의 현장으로서의 이루어져 가는 하나님 나라도 현재 속에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요, 섭리 가운데 예정되어(목적적 예정)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도 잠재력으로 현재 속에 실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다중적 시간 개념의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즉 물질 세계 속에도 임하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히 엄청난 시대 구분의 전환점이었다.

(3) 공간적 다중성과 하나님 나라
우리는 물질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어떤 공간적인 구분선을 가지고 갈라놓으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그곳으로 생각하고 물질적인 인간 세계를 이곳으로 생각하면서 이곳과 그곳은 하늘 저편에 있는 어떤 구분선 또는 구분 면을 통하여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성경에 의하면 물질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가 공간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 물질 세계 속에 영적인 존재들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세계 속에 물질적인 존재들이 있는 것인지 또 아니면 그 두 세계의 완전한 두 극단이 있으면서 어떤 중간적 공간에서는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단언하는 것도 역시 솔직한 태도가 아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때 공간적인 개념을 사용하였다는 점은 이미 살펴보았다.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태초 이전에 함께 있었던 그곳이 만약에 완전한 영적인 세계라고 한다면, 예수가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는 이 세상은 완전한 물질 세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이름으로써 즉 물질적 공간 속으로 영적 공간이 들어옴으로써 이제는 물질적 공간과 영적인 공간이 함께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이 형성된 것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정에서 보면 하나님이 계신 그곳도 하나의 공간으로서 실존하고 있고,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도 공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완전한 물질만의 세계도 공간으로 실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 가지 공간들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수가 저 멀리 있는 어떤 원초적 하나님 나라로부터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였을 때, 그 곳은 반드시 물질 세계와 이원론적으로 구분된, 공간이 없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바울이 세 번째 하늘에 올라갔다고 하였을 때, 그 하늘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히 그 하늘도 공간적인 개념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면 두 번째 하늘은 어떤 곳이며 첫 번째 하늘은 어떤 곳인가?
현대 물리학에서, 공간과 시간이 무시되는 어떤 알 수 없는 공간이 이 우주 안에 있음을 증명하고 있듯이,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이 공간은 균질한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여러 특성의 공간들의 공존 체계일 가능성도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부활 이후의 예수가 공간 또는 물질을 초월하여 물질계 안에 나타내 보일 수 있었던 사건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예수 재림 시에 하늘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도 좀 더 접근된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 그곳이 중간적 상태이든 아니면 완전히 영적인 상태이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수가 함께 공존하는 다중적 개념의 공간 속에서 다중적 개념의 시간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고자 하였다면, 복음서에 복합적으로 나타난 난해한 하나님 나라 개념들의 실체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4) 상태적 다중성과 하나님 나라
이제는 물질적인 상태와 영적인 상태 그리고 중간적인 상태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공간도 시간도 차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는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음을 과학적 상식으로 잘 알고 있다. 빛이 파동과 입자의 이중적 현상임은 과학에 의해 여러 가지로 실험되고 증명되었고, 빛은 상당히 광범위한 파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의 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파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넓은 범위의 빛들이 우주 안에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물체가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영적인 것도 아니다. 빛은 파장의 성격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서의 특성(굴절 등)도 동시에 갖고 있다. 빛은 물질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물질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였을 때 그 나라는 분명히 어떤 보여지는 물질적 세계가 아니었으나 또한 그 나라는 물질 세계 속에 엄연히 있다고 말씀 한 것이었다.
부활한 주님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도 하고 아니 보이기도 하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적 존재였다. 신학자들은 이러한 상태를 중간적 상태라고 설명하는데, 그것은 물질과 영의 중간에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여 그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중간적 상태는 분명히 있었고, 또 영원히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가신 모습 그대로 올 것이고, 우리도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는 것을 물질 세계에만 적용하든지 아니면 영적인 상태의 세계에만 적용한다면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의 실체로 이해될 수 없다. 만약에 하나님의 나라가 영적인 상태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하면 그 나라는 결코 이 세상 속으로 도래할 수 없을 것이며, 만일 그 나라가 물질 세계 속에서 보여지는 어떤 곳으로서만 완성된다고 하면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한낱 거짓에 불과하고, 예수가 전한 복음은 실체가 아닌 개념에 불과하다. 개념에 불과하다면 예수가 “나는 그곳으로부터 왔고 그곳으로 간다”고 이야기한 것도 도저히 이해될 수 없다. 개념이라는 것은 실재하는 실체의 세계가 아니요 오직 인간의 사고 체계 속에 허상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다중적 상태의 개념에 적용해 보자. 원초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완전한 세계이고, 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여 확장된 개념의 하나님의 나라 속에 물질적 상태와 중간적 상태의 세계가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이 세 가지(또는 더 많이 구분된 상태의 개수) 하나님 나라들은 각각 하나의 실체로서 현재 존재하고 있는 세계들이다. 물질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니, 물질 세계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중간적 상태들과 영적인 상태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세 가지를 공간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어떤 확실한 구분선으로 두부 모를 자르듯이 구분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그리고 공동 공간적으로 생각하는 다중적 개념에서 설명한다면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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