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3, 2011

'하나님 나라'와 신앙

'하나님 나라'와 신앙

예수의 말씀으로 보나 우리의 신앙으로 보나 그리고 이제는 과학적인 발견과 증거들로 보나,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한 실체요 실재하는 나라이다. 그 나라는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먼 미래에 이루어질 환상적인 세계만도 아니며, 현재 이 순간에 우리들과 인접된 어떤 공간 속에 실재하는 나라인 동시에 현재의 순간 속에 이루어져가고 있는 분명한 실체로서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다중적으로 이루어지며(현재적 과거, 현재, 현재적 미래) 예수를 통하여 비로소 종합적으로 열려졌고 완성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동적인 나라이다. 하나님의 왕적 위엄의 실행으로서의 통치 개념이 복음서의 하나님 나라 개념 속에 들어 있다.(참조: 헤르만 리델보스, 하나님 나라, 오광만 역, (서울: 도서출판 엠마오, 1993), p.62.)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실재하는 실체 개념으로서의 나라이기도 하다. 많은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왕적 통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무시 또는 제외시켜 버렸지만, 그것은 하나님 나라 개념을 반 쪽으로 제한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널리 알려진 본문인 마태복음 11장 12절과 그 병행구들은, 하나님 나라가 도달한 것을 “능력 있는 침입과 그 길을 밀고 나가는 것”으로 말하고 있고, 마가복음 9장 1절은 하나님 나라를 “능력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헬라어 단어 바실레이아(“나라”)의 의미에 근거하여, 천국이라는 표현 속에 인격적인 암시가 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단지 형이상학적인 나라가 아니라, 왕으로서의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 임재임을 밝힌 것에는 상당한 의미가 있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단순한 하나님 통치권의 개념적 임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존으로 “있음”에 접근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들어갈 그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한 실체이며, 우리는 그 속에 들어가 인격체로서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죽음 너머에서 막연하게 우리를 기다리는 곳이 아니고 우리의 현재적 삶 속에서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며, 다만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상태적으로, 다중적으로 전환되어 계속 살아가야 할 실체이다. 예수의 천국에 관한 비유들 역시 이러한 다중적 실체들의 개념에서 이해해야 하며, 부족한 인간 언어 설명 속에서 그 실체를 발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과거에 완성된 상태로 끝나버린 나라가 아니며, 그렇다고 기약도 없는 먼 미래에 이루어질 환상적인 나라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라는 실체 속에서 이미 완성된 나라로서, 그리고 동시에 완성되어져 가는 과정의 나라로서, 그리고 또한 미래에 완성될(영원 속에서) 잠재적 가능성으로서의 나라로서 실재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 과정 역시 실재하는 나라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동역자들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현재 속에서 통합되고 종합된다.

사도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경으로부터 그 내용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일은 매우 어렵겠지만,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에서 그의 우주관을 충분히 연구 검토하기 위하여 성서 원어 본문 비평에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의미 없는 순수 과학 이론이나 우주 기원의 논쟁보다는,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이 현대적인 의미에서 재해석되고 분석되는 일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신학적 시도에 더 깊이 적용해 보는 일도 남겨진 과제이다. 과연 그 시도가 신학적으로 또는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께로의 접근에 타당한 일인지를 충분히 논의해 보아야만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인간의 사고 속에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로서 접근해 보고자 시도할 때, 천국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 정립을 21세기 신학의 과제로 제기하여 폭 넓은 연구 과제로 삼아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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