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족보"
동양 문화에서는 '족보(族譜)'를 상당히 중요시한다. 이 점에서는 유대인들도 비슷할 것이며, 제사장 무리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소위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랑거리로 여길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콤플렉스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족보를 보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다르다. 마태복음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을 거쳐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 이르기까지 위로부터 아래로 기록한 반면, 누가복음은 요셉으로부터 시작하여 위로, 마태복음과는 다른 경로를 거쳐 다윗에게로 그리고 아브라함을 거쳐 마지막에는 하나님께로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두 복음서의 기록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엉터리이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1장 1절부터 4절에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에 누가는 의사 또는 과학자로서 매우 이성적이고 주도면밀한 성품의 사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이 보여주는 족보와 현저히 다른 족보를 기록하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들만 본다면, 첫째로 마태복음은 왕족 중심으로 누가복음은 제사장족 중심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로 마태복음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족보를 중심으로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족보 중심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이며, 셋째는 예수의 아버지가 가까운 친척 집에 입양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목적으로 법적 혈통 중시하였으므로 유대인의 뿌리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족보를 시작한 반면, 누가복음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실제 자료를 중시하면서 "위로" 추적해 가면서 결국 하나님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역대상 5장 1절과 2절을 보면, 주권자의 계보와 장자의 명분의 계보가 다르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그리고 율법서에 의하면 형제들 중에 아들을 낳지 못한 형제가 있을 때 그 대를 잇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처를 취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 사회에서는 접근 방법에 따라 족보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족보 서두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유대인을 위한 저자의 배려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구절로 인하여 여러 가지 상황들이 배제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그토록 배려하며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애썼던 그 유대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배척하는 길로 가버렸다. 또한 이 구절에 대해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종교"라고 배척하거나 인종 콤플렉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종차별하는 분으로 오해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결국 사람이 중요시하는 족보에 착념한 결과가 아닌가? 디모데전서 1장 3절과 4절에서 바울은 "사람의 교훈이나 산화 또는 족보에 연연하지 말라"고 권면한다.("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그러므로 만약에 예수를 영접한 후에도 여전히 출신과 족보를 자랑하거나 중요시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이 그렇게 기록되도록 허락하실 정도로 각별하였던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이해하고 마태복음의 족보를 바라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족보와는 다른 누가복음의 족보가 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누가복음은 "그 위는"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결국 예수의 족보를 하나님께로 귀결시키고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근원적 조상은 하나님"이라는 메시지의 선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동일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위대한 진리의 발견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족보는 하나님께 연결된 족보를 가지고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 형상으로서 아담의 피의 일반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진리의 결과인 것이다.(참조: 출12:49, 대하6:33, 사56:6-7, 눅17:18-19)
결과적으로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는 존엄성이다. 인간은 누구나 대단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엄청나게 긴 준비기간의 결과(조상들)로 그가 지금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그 족보에서 한 사람이라도 빠졌다면 그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든지 그 위로 추적해 갈 때 반드시 하나님께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해야만 하며,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보편성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이다. 셋째는 역사성이다. 예수는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육화하여 인간의 아들로 사람들 눈앞에 나타나셨던 역사적 인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에 대한 모든 불신앙과 이단사설을 던져버려야만 한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라. 당신의 족보도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연결됨을 깨달으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매일매일 살아가야만 한다. 그리하여 자녀에게 약속된 천국에서의 복과 세상에서의 복 받아 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녀로서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K)
동양 문화에서는 '족보(族譜)'를 상당히 중요시한다. 이 점에서는 유대인들도 비슷할 것이며, 제사장 무리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소위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랑거리로 여길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콤플렉스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족보를 보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다르다. 마태복음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을 거쳐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에 이르기까지 위로부터 아래로 기록한 반면, 누가복음은 요셉으로부터 시작하여 위로, 마태복음과는 다른 경로를 거쳐 다윗에게로 그리고 아브라함을 거쳐 마지막에는 하나님께로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두 복음서의 기록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엉터리이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1장 1절부터 4절에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당시에 누가는 의사 또는 과학자로서 매우 이성적이고 주도면밀한 성품의 사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이 보여주는 족보와 현저히 다른 족보를 기록하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들만 본다면, 첫째로 마태복음은 왕족 중심으로 누가복음은 제사장족 중심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로 마태복음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의 족보를 중심으로 누가복음은 마리아의 족보 중심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이며, 셋째는 예수의 아버지가 가까운 친척 집에 입양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렸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목적으로 법적 혈통 중시하였으므로 유대인의 뿌리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족보를 시작한 반면, 누가복음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실제 자료를 중시하면서 "위로" 추적해 가면서 결국 하나님에게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역대상 5장 1절과 2절을 보면, 주권자의 계보와 장자의 명분의 계보가 다르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1.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2.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그리고 율법서에 의하면 형제들 중에 아들을 낳지 못한 형제가 있을 때 그 대를 잇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처를 취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 사회에서는 접근 방법에 따라 족보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족보 서두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유대인을 위한 저자의 배려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구절로 인하여 여러 가지 상황들이 배제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그토록 배려하며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애썼던 그 유대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배척하는 길로 가버렸다. 또한 이 구절에 대해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종교"라고 배척하거나 인종 콤플렉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종차별하는 분으로 오해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결국 사람이 중요시하는 족보에 착념한 결과가 아닌가? 디모데전서 1장 3절과 4절에서 바울은 "사람의 교훈이나 산화 또는 족보에 연연하지 말라"고 권면한다.("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그러므로 만약에 예수를 영접한 후에도 여전히 출신과 족보를 자랑하거나 중요시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이 그렇게 기록되도록 허락하실 정도로 각별하였던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이해하고 마태복음의 족보를 바라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족보와는 다른 누가복음의 족보가 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누가복음은 "그 위는"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결국 예수의 족보를 하나님께로 귀결시키고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근원적 조상은 하나님"이라는 메시지의 선포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동일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위대한 진리의 발견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족보는 하나님께 연결된 족보를 가지고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 형상으로서 아담의 피의 일반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진리의 결과인 것이다.(참조: 출12:49, 대하6:33, 사56:6-7, 눅17:18-19)
결과적으로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는 존엄성이다. 인간은 누구나 대단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엄청나게 긴 준비기간의 결과(조상들)로 그가 지금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그 족보에서 한 사람이라도 빠졌다면 그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든지 그 위로 추적해 갈 때 반드시 하나님께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하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순종해야만 하며, 용서와 사랑을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보편성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이다. 셋째는 역사성이다. 예수는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육화하여 인간의 아들로 사람들 눈앞에 나타나셨던 역사적 인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하나님에 대한 모든 불신앙과 이단사설을 던져버려야만 한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라. 당신의 족보도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연결됨을 깨달으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고 부끄럽지 않게 매일매일 살아가야만 한다. 그리하여 자녀에게 약속된 천국에서의 복과 세상에서의 복 받아 누려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녀로서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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