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21, 2011

"예비하는 자"

"예비하는 자"

무성영화가 상영되던 시절에는 '변사'라는 직업이 있었다. 화면으로는 움직임만 보일 뿐, 소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변사'가 극의 장면들을 설명하거나 등장인물들의 대사내용을 흉내 내어 외침으로써 관람자들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한다거나 무슨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에는 의례 '사회자'가 있게 마련이다. '사회자'의 역할 중에 하나는 진행에 따라 등장하는 사람들을 무리들에게 소개하는 일이다. '사회자'가 없으면 모인 사람들은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거나 흥미를 잃게 되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된다.

예수의 육화(肉化), 즉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사건도 그러하다.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아닌지를 전혀 스스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자가 그를 소개하고 무대에 등장시키는 선구자 역할을 해주어야만 한다. 그 역할에 제사장들 중 하나었던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선택되었다.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직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은 약 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들은 20개의 반열로 나뉘어 매년 돌아가면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였으므로, 숫자적으로 볼 때 소수의 무리만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굉장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자녀를 고대하였지만 나이가 많이 될 때까지도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였고, 결국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자식이 없다는 사실은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데 나이 많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러면,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노년에 아들을 얻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전부가 되었을까?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삶 속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긴다. 어떤 때에는 좌절할 수밖에 없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은 그러한 때에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기도에 응답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그러면, 그렇게 해결된 결과가 전부인가?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을 대단하게 칭찬하셨다. 마태복음 11장 11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어떻게 보면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일 것이다. 그러면, 세례요한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임무가 주어지지 않았어도 주님 앞에 위대한 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 복을 받아 그저 잘 먹고 잘 살다 그의 인생을 끝냈다면 그래도 주님이 그를 이렇게 최고의 칭찬으로 칭찬하셨을까? 천국의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세례요한이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은, 그가 기적적으로 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브리엘이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라, 굉장한 가문 또는 큰 능력과 권세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임무(task)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바로 말라기 3장 1절에서 예언으로 말씀을 주신 "예비하는 자"로서의 임무였다.("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에게 맡겨진 임무가 누가복음 1장 16-17절에 4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첫째로,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인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을 환영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둘째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하는 일인데, 이것은 "아버지-아들"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함이며, 셋째로,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는 일인데, 이것은 죄인들이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며, 넷째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는 인인데, 이것은 요한의 제자들 중에서 사도들이 나오게 하고 또한 주를 따라가는 제자들을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모세가 위대한 종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그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임무(task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라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에게 독특한 임무를 주신다. 그 임무를 찾으면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찾은 '복된 자'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찾지 못하면 무의미한 인생을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불쌍한 영혼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모세는 그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처가살이하는 가운데 '준비된 자'로 성숙될 수 있었다. 셋째로, 모세는 그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함으로써 이스라엘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다.

세례요한도 그러하였다.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께 넘겨줄 때에도 그는 기쁨으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였다. 아마 보통 사람 같았으면 억지로 순종하더라도 속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하였을 것이다. 자신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예수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았으면 섭섭한 마음으로 불평불만하면서 예수를 괘씸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헤롯에게 목베임을 당하였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아마 보통 사람 같았으면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절규하였을 것이다.

세례요한이 지금 천국에서 누리고 있을 영광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예비한 자였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최고의 기쁨을 드린 인간이었다. 그러니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둘째로, 예수의 입장에서 보면, 목숨을 걸고 예수를 소개하고 등장시킨 공로자였다. 그러니 예수께서 그에게 얼마나 고마워하실까? 그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할지 추측할 수 있지 않은가? 셋째로, 세례요한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주님의 일에 부름 받은 영광을 가진 자였다. 그러니 세상에서의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볼 때마다 얼마나 보람된 마음이 들까? 그러니, 그는 위대한 세례요한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신은 신앙으로 구원받은 천국시민으로서 그가 받고 있을 이 영광이 부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세례요한처럼 "예비하는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임무가 있어야 하고(반드시 있다!) 그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누가복음 1장 15절에서 증거하듯이, 세례요한이 위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3가지 선결조건이 만족되었기 때문이다. 첫째로 "주 앞에 큰 자" 즉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자였기 때문이고, 둘째로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않는 자" 즉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며, 셋째로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한" 즉 하나님과의 동질성을 소유하게 된 자였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위대한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슨 기적을 경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천상의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세를 가져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세례요한처럼, 주님 앞에서 점점 더 커지는 성도,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거룩한 성도, 성령충만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는 성도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되고자 최선을 다하여 노력할 때, 천국에서 세례요한이 누리는 복을 당신도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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