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23, 2011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나라 임재를 선포하는 복음을 증거하였다.(참조: 마태복음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4: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는 특별히 그것을 “천국 복음”이라고 지칭하였으며 누가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고 부름으로써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연관성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복음은 헬라어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인데, 동일한 이 단어가 바울이 복음을 지칭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예수에 의해 직접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복음서에 기록된 “유앙겔리온”과 바울이 사용한 “유앙겔리온”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아니면 다르게 사용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김세윤 박사는 이 문제를 “예수와 바울”이라는 저서 속에 수록된 여러 논문들을 통하여 예수의 복음과 바울의 복음을 통합시킴으로써 해결해 보고자 시도하였는데, 결국에는 개념적인 복음 즉 실체적인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있는 결론에 도달하였다고 본다. 본 연구에서는 이 두 가지를 분리하고, 오히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자신의 말씀 즉 임박한 하나님 나라 실체에 중점을 두어 살펴보고자 한다.

(1) 복음의 문자적 의미
신약성경에서 우리말로 “복음”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유앙겔리온(εΰαγγελιον)’이다. 이 단어는 ‘유앙겔로스(εΰαγγελος)’에서 파생된 것으로, ‘좋은 소식’ 또는 ‘좋은 소식에 대한 보상’ 등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전적 헬라어에서 이 말은 종종 적군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승리의 소식’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 기자들은 이 단어를 헬라 사상적 배경에서보다는 구약의 배경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신학사전(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93), pp.201-203.)
헬라어 ‘유앙겔리온’에 대응하는 히브리어는 ‘베소라(ה��שׂ��)’인데, 이 단어는 구약에서 모두 6번 사용되었고, 이 단어 역시 일반적으로 ‘좋은 소식’ 또는 ‘좋은 소식에 대한 보상’ 등 이중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단어에 점차 종교적 의미가 첨가되어 시편과 이사야서 후반부에서는 장차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리키게 되었다.(참조: 시 40:10, 96:2, 40:9, 사 41:27, 52장, 61:1) 신약의 기본 개념은 바로 이러한 구약의 의미에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즉, 신약의 ‘유앙겔리온’의 일반적인 의미는 구약이 예언한 그 메시야 곧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2) 예수의 복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세례 요한도 예수와 마찬가지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외쳤지만,(참조: 마태복음 3:1-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복음’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과 결부시켜 기록된 것은 예수에게 처음으로 적용되었다(마태복음 4:23). 마가복음 1장 15절에 의하면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후 예수는 갈릴리에 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언하였다. 이 선언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성육(成肉)과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역사가 바로 복음의 핵심이었으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누가복음에서 예수 자신이 이사야 61장 1절을 친히 인용하면서 오늘날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하신 증거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복음서에서 보면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였으며, 복음은 곧 하나님 나라 임재에 대한 소식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친히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 4:43)라고 하였다. 예수가 전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요약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주권을 인간 가운데 확립하기 위하여 능력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인데, 역사의 마지막에 비로소 종말적으로 완전하게 이룩될 이 나라는 악을 무찌르고, 인간을 죄와 사탄의 지배에서 해방시켜서, 하나님의 통치의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이미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양면성을 가지는데, 역사 안에서 성취되는 현재성과 역사 마지막에 완성될 미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예수 자신이 구약의 예언 그대로의 그 메시야요, 인자(人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의 인격성과,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그의 소식과, 소경을 보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문둥이를 깨끗케 하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그의 모든 기적적(奇蹟的) 사역에 관련되어 있다.(참조: 눅 7:22, 마 12:28, 눅 11:20, 17:20-21) 이에 반하여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그의 수난과 그의 희생적, 자발적, 및 대속적 죽음과 3일 후 무덤에서 다시 일어난 그의 승리적 부활과 인자로서의 능력과 영광 가운데 나타날 그의 재림과 특히 관련되어 있다.(참조: 마 26:26-28, 요 10:11,18, 19:10,11, 15:13, 눅 22:37, 막 10:45, 마 22:28, 24:30-31, 25:31-46, 막 13:36-43, 눅 13:28-29)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이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에 국한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인간으로 오신 예수의 생애와 더불어 임한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는 물질 세계 속으로 들어온 물질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통치권의 임재라고 볼 수 있으며, 예수의 십자가로부터 부활 및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더불어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세계(물질적 세계를 떠난 이후에 대한 통칭)에서 이루어질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이며,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현재적으로 이미 임하였거나 또는 미래적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단일화 될 수 없다.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거하였던 그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은 예수가 이 세상에 오기 이전에도 이미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하였고, 또한 그 나라는 영원히 존재하는 실체로서 그대로 있을 것이다. 예수는 부활 후 그 나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분명히 현재의 이 순간에도 예수가 계신 그 나라는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해야만 한다. 그리고 예수가 다시 오시는 날 물질 세계 속에서의 아직 불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한 그 원초적 하나님의 나라와 통합되어 통일된 전체성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것이다.
예수는 분명히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였으며, 그것이 인간들의 세계 즉 물질적인 세계 안에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전하였고, 복음서 기자들은 그것을 고대하던 구원주로서의 메시야적 ‘복음’이라고 기록하였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기 훨씬 이전의 사건들을 기록하면서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예수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어떤 분명하고도 확실한 개념을 증거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제한된 우주관과 개념의 틀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계속하여 물질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예수가 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개념적인 정의, 인간 세계 속에 임할 정치적인 현상, 또는 인간을 완전하게 통치하는 하나님 권세의 임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적 개념과 시간적 개념의 여러 차원들을 동원하여 소개한 그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한 실체였다.

(3) 바울의 복음
사도 바울은 신약 기자들 중에서 복음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복음을 가장 구체적으로 밝히고 해석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해석하고, 적용하고, 체계화시킴으로써 구원 계시사에 있어서 모든 사도들 중에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 없이 자연스럽게 여러 각도에서 사용하였다.(참조: Ibid, p.203) 그 이유는 그가 구태여 복음의 정의를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이미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사용한 복음을 구체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서신서를 분석하면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복음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행위 자체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의 내용에 관련된 것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그의 서신서에서 한결같이 주장되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서 구약이 예언한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라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인자라는 것과, 구주라는 것과, 십자가의 죽음 및 부활이 포함된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것과 ‘복음을 전한다’는 말을 동일하게 사용하였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의 죽음, 부활 등을 통하여 만세 전부터 감추어 왔던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과 심판이 이제 역사 안에 제시되고 시작되었음을 강조한다.(참조: 롬 16:25-26, 골 1:26, 2:2-3, 엡 3:4-5, 고전 2:7, 딤후 1:9-10) 그리스도를 통한 이 구원의 역사의 계시가 바로 복음의 실제적인 내용이며 그의 선교의 목적이었고, 자기가 전하는 복음을 ‘그리스도의 복음’ 또는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목적은 구원과 심판에 있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이 구원은 복음을 통해서 오고,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고 보았다. 예수의 공생애 서두 천국복음의 내용과는 달리, 오히려 바울은 복음의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강조하였으며, 그것이 개인에게 전파될 때 구원과 심판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만약에 바울의 이러한 복음 개념과 예수의 복음 개념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예수의 수난 이전에 천국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전달된 내용과, 사도 시대 이후에 전달된 복음의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실체로서의 하나님의 나라 즉, 원초적인 하나님의 나라, 죽음 이후에 성도들이 들어가게 될 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개념이 크게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4)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어야 마땅한데, 하나는 이미 존재하고 이루어져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적인 세계 속으로 도래하게 된 하나님의 통치 영역 확대의 대상인 이 세상에 이루어지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이다. 바울의 복음 개념은 후자가 이루어지게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가 전하고자 하였던 하나님의 나라는 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의 원래 내용물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그 자리를 대신하여 차지하고 강조된다면 예수가 전하고자 하였던 실체로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 그 실체를 인간의 언어로 소개하였고 또한 그 실체 속으로 인간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열어놓았다.(참조: 요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는 복음의 내용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 나라는 인간의 사고 속에 또는 정치적인 체계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분명한 실체로서 현재 이 순간에 그리고 영원토록 존재하는 나라이며, 그 나라는 바로 이 세상의 물질적인 체제 속에서도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며, 그 일을 이루는 역할이 바로 구원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이 세상에서의 사명인 것이다. 우리는 실체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동시에 이 세상에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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