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21, 2011

아버지 중심적 신앙과 예수 중심적 신앙

아버지 중심적 신앙과 예수 중심적 신앙

구원은 "믿음"으로만 획득할 수 있다. 좀 더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하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을 의미하는 "신앙"으로만 획득한다. 그것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러므로 이 구원을 가능케 하는 "신앙" 또는 "참된 믿음"(이하 "믿음")이야말로 최고로 관심을 두어야만 할 단어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 믿음과 구원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많은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예수를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외친다. 또한 성도들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고백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의문들을 마음 속에 갖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인가?" "복음을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무조건 다 지옥으로 가는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복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구약시대에 열심히 제사드리면서 하나님을 믿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지옥으로 갔을까? 그렇다면 예수님 부활시에 잠자던 성도들이 깨어나 거룩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들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무조건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이고, 사랑의 하나님이 될 수 없으므로, 그러한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극과 극이다.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없는 것인가? "없다"고 하는 견해에도 문제가 있지만, "가능해야 한다"고 하는 견해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잘못하면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에 빠져들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를 부인하는 이교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러한 혼란의 근원일까? 예수께로 돌아가 보자. 예수는 공생애 동안 "하나님의 아들"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아들"로서 사셨다. 이 둘을 자신의 삶 속에서 완전하게 일치시켰다. 그러면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셨다는 점이다. "인간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완전한 믿음(신앙)의 중심에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할 때, 이 "구원 얻는 믿음"의 핵심은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그것을 완전하게 보여주는 "진리"이며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생명"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의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그 진리를 예수가 이 세상에 와서 완전하게 증거해 주었고 직접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진리를 사도들과 제자들이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오해하였다. 하나님 아버지께 초점을 맞추도록 성도들을 인도한 것이 아니라, 공생애를 사신 예수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도록 함으로써 "하나님 아버지"를 무의식중에 옆으로 밀어내게 하였다.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신약시대의 성도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구약시대에는 율법과 제사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었다. 그것은 마치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이, 당연히 희미하고 애매모호한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믿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 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인하여, 이제는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를 보고 그 실체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원 얻는 믿음의 길이 확실하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가 그 믿음의 핵심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그 믿음의 핵심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증거한 것이 바로 그것이고, 예수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를 핵심으로 하는 믿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라, 율법을 신실하게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였던 "진실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율법을 모르지만 "하늘에 계신 완전하신 어떤 분, 두렵고 떨리는 경외 받으셔야만 마땅한 어떤 존재"를 믿으면서 선하고 착하게 살고자 한 사람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와 대등한 믿음을 가졌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반면에, 신약시대의 성도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을 가지면서 "입으로만 예수를 믿는다고 시인"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요 오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의 고백의 중심에 과연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가? 예수를 닮아가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있다면 구원받을 것이요, 없다면 구원을 의심해 보아야만 한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예수 중심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중심의 믿음, 예수를 본받아 성품과 삶의 태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로 변화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