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21, 2011

이제는 '참 진리' 발견과 실행에 '올인'할 때

이제는 '참 진리' 발견과 실행에 '올인'할 때

서양 문명의 발전과 확산과 병행된 기독교 신학의 발달 역사는 서양의 사상 또는 철학과 관계가 깊다. 그러므로, 교회 정치와 활동 역시, 신학의 발달보다는 변화의 역동성에서 한참 뒤떨어져 따라 오기는 하였지만, 서양 철학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사상이나 철학이나 종교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된다. 지식의 발달과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는 인류 생존 본능에 충실하지 않으면, 아무리 획기적인 바탕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오래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현재의 어떤 압력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될 때, 인류의 요구에 반응하고 해석을 제공하면서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사상이나 철학이나 종교이다. 기독교 신학과 교회 역시 이러한 외부적 영향과 무관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인류의 역사가, 헤겔 철학의 해석처럼, 정/반/합의 끊임없는 반복과정을 통해 발전되어 온 것처럼 보이듯이, 교회의 역사 역시 어떤 패턴의 반복 과정이 계속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직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곧 재림하실, 수일 내에 또는 수개월 내에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수년 내에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핍박과 고난을 견뎌내었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세상 자식이나 물질 또는 사상이나 철학 심지어 종교 형태 조차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지 모른다. 그저 재림하실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고,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이나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조차 별로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오직 '그 날'만을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뜨겁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기도와 성령의 능력과 체험만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날'은 그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빨리 도래하지 않았고, 무의미하게 생각되었던 '예수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 또는 그의 가르침들에 대한 지식들'은 빠른 속도로 잊혀져 가고 있었다. 초대교회 성도들과 지도자들은 당면한 심각한 문제에 도달하게 되었다. 후손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와 복음을 전해줄 것인가?'의 문제였다. 예수께서 어떤 문서도 남기시기를 거부하셨기에(아마도 인간들의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염려하여) 자신들도 극히 조심하던, 얼마 남지 않고 이미 나이가 많아진 사도들은 복음서 기록의 문제로 인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복음서를 기록하고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용기의 결단이었을 것이며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굉장한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었다면 많은 사실들과 진실들이 마치 꺼져가는 등불처럼 사라져버리거나 크게 왜곡되어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모여서 기도하며 '그 때'를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예수의 생애'에 대한 정보와 '예수의 가르침'을 지식으로 배우는 일이 시급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는 자연히 지식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다. 많은 이견들과 주장들을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복음과 진리를 전달할 수 있는 어떤 틀로서의 '신학'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이제는 직접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고, 그 뒤를 이은 교부들이 여러 세대들에 걸쳐 '복음과 진리의 횃불'을 후세대에 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들과 변론들이 이어졌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정해지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덧 교회는 '복음과 진리의 핵심 또는 내용물'보다는 그것들을 전달해주는 '그릇 또는 형식'에 더 중점을 두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100% 모든 성도들이 오직 지식에만 집착하고 매달린 것은 아니다. 보혜사 성령의 역사의 불씨는 항상 그 이면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때를 기다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중세의 기나긴 '암흑의 시대' 속에서도...

문예부흥기를 거쳐 지식의 자유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후에, 신학 역시 많은 발전을 거듭하였고 신/구교 교회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기여하였다. 기독교 역사에도 '지식의 황금기'가 도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교'는 지식의 테두리 속에만 갇혀 있을 수 없다. 보혜사 성령의 역사하심에 목말라 있던 성도들이 깨어나기 시작하였고, 성령의 역사가 온 세계로 확산되면서 '선교의 황금기'가 이루어지고 많은 나라들과 백성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되었다.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복음을 담는 그릇과 형식, 보혜사 성령의 역사와 체험,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완전하게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오늘날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만 어느 하나에 중점을 두거나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시대들이 반복적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기독교의 위기의 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나름대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혹은 지식을, 혹은 형식을, 혹은 성령과 회개를 외친다. 그러나 어느 하나에 치중하게 된다면 과거의 행태를 반복하게 될 뿐임이 자명하다.

우리는 이제, '참 진리' 그 자체로 돌아가야만 할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지식도, 형식도, 성령도 그 '참 진리'의 큰 경기장 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더욱 우리 주님과 하나님께로 접근해 들어가는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만 한다. '회개'도 '참 진리'의 입장에서, '십자가의 도'도 '참 진리'의 방향에서, '기적과 체험'도 '참 진리'를 위하여, 종파들과 교권의 문제 또는 타종교들과의 문제도 '참 진리'에 입각하여, '과학'과의 반목과 투쟁도 '참 진리' 발견을 위하여 다시 해석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참 진리'는 '오직 지식'이 결코 아니다. '오직 성령'도 아니다. '오직 예배'도 아니다. '오직 자비'도 아니다. '오직 사회 참여'도 아니다. '오직 회개'도 아니다. '오직 능력'도 아니다. '오직 선교'도 아니다. '오직 제자훈련'도 아니다. '오직 성전'도 아니다. '오직 authority'도 아니다. '오직 성경'도 아니다. '오직 십자가'도 아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의 총합이요 조화이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전적인 주관이며 진리를 따르는 자들의 실행과 변화됨 그 자체이다. 이제는 '참 진리' 발견과 실행에 온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이 '올인'할 때가 아닌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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