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의 목적
'예언'이란 하나님의 청사진을 인간으로 하여금 미리 알게 하는 특별한 은사이다. '개인 예언'은 특정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이다. '예언'의 주권은 온전히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언'을 허락하실까?
많은 성도들이 '예언'은사를 사모한다. 직접 그 능력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능력자로부터 '예언'을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지극히 조심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 참 '예언'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인간의 소유물 또는 인간의 능력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언한다고 해도, 그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예언이 주어지는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나오지 않는 예언은 다 잘못될 수 있다. 예언 은사자가 원한다고 해서, 예언 받고자 하는 자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무조건 준비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교만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든지 예언의 주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돌려드려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받고, 주시지 않으면 받지 않을 수 있는 겸손한 자세가 우선되어야만 한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향할 때, 성령께서 '예언'을 허락하셨다. 바울을 아는 사람들 또는 그의 제자들도 바울의 예정된 여행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성령님으로부터 직접 자신에게 장차 벌어질 가능성 있는 일들에 대해 예언을 받았다. 바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자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도록 간절하게 요헝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그 길을 걸어갔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예언이 두 부류에게 잘못 증거된 것처럼, 또는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억지로 로마 행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신 예언은 양쪽 다 정확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반드시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심각한 질문을 해야 한다: '예언'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개인 예언'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왜 '개인 예언'을 원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고난을 미리 알고 피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또는 자신 앞에 일어나게 될 좋은 징조들을 미리 알고 자신을 위로하거나 현 상황을 정당화 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로 본다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막으려고 하였던 사람들이 옳았고 바울은 틀렸다. 바울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종이었다. 그러나, '예언'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고난을 미리 알고 그것을 어떻게든지 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길로 가면 고난이 있겠지만, 미리 대비하고 마음을 준비하여 담대히 맞서서 싸워 이기라"는 것이면, 바울을 말리려고 하였던 사람들이 틀렸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며, 바울이 옳았고 하나님께 순종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종이 된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그 길을 담대하게 그리고 기쁘게 감사함으로 걸어갔다.
과연 어느 쪽이 하나님의 목적일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나거나 음성을 들려주실 때마다 "담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고난이나 핍박에 굴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예수님의 경우에 십자가가 바로 그 주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높이셔서 만물이 다 그의 발 아래 무릎 꿇게 하셨다. 왜?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루셨으며 모든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예언'을 어떤 자세로 사모할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가? 분명한 대답이 이미 주어져 있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 영광이 더 완전하게 나타나게 하라."(K)
'예언'이란 하나님의 청사진을 인간으로 하여금 미리 알게 하는 특별한 은사이다. '개인 예언'은 특정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이다. '예언'의 주권은 온전히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언'을 허락하실까?
많은 성도들이 '예언'은사를 사모한다. 직접 그 능력을 소유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능력자로부터 '예언'을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지극히 조심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 참 '예언'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인간의 소유물 또는 인간의 능력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언한다고 해도, 그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예언이 주어지는 순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나오지 않는 예언은 다 잘못될 수 있다. 예언 은사자가 원한다고 해서, 예언 받고자 하는 자가 준비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무조건 준비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교만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든지 예언의 주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돌려드려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면 받고, 주시지 않으면 받지 않을 수 있는 겸손한 자세가 우선되어야만 한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향할 때, 성령께서 '예언'을 허락하셨다. 바울을 아는 사람들 또는 그의 제자들도 바울의 예정된 여행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예언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성령님으로부터 직접 자신에게 장차 벌어질 가능성 있는 일들에 대해 예언을 받았다. 바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제자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도록 간절하게 요헝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그 길을 걸어갔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예언이 두 부류에게 잘못 증거된 것처럼, 또는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억지로 로마 행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신 예언은 양쪽 다 정확하였다. 그것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반드시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심각한 질문을 해야 한다: '예언'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개인 예언'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왜 '개인 예언'을 원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 앞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 고난을 미리 알고 피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또는 자신 앞에 일어나게 될 좋은 징조들을 미리 알고 자신을 위로하거나 현 상황을 정당화 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로 본다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막으려고 하였던 사람들이 옳았고 바울은 틀렸다. 바울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종이었다. 그러나, '예언'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고난을 미리 알고 그것을 어떻게든지 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길로 가면 고난이 있겠지만, 미리 대비하고 마음을 준비하여 담대히 맞서서 싸워 이기라"는 것이면, 바울을 말리려고 하였던 사람들이 틀렸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며, 바울이 옳았고 하나님께 순종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종이 된 것이다. 바울은 그것을 분명하게 알면서도 그 길을 담대하게 그리고 기쁘게 감사함으로 걸어갔다.
과연 어느 쪽이 하나님의 목적일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나타나거나 음성을 들려주실 때마다 "담대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고난이나 핍박에 굴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예수님의 경우에 십자가가 바로 그 주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높이셔서 만물이 다 그의 발 아래 무릎 꿇게 하셨다. 왜? 하나님의 뜻에 완전하게 순종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이루셨으며 모든 영광을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예언'을 어떤 자세로 사모할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가? 분명한 대답이 이미 주어져 있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그 영광이 더 완전하게 나타나게 하라."(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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