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및 미래 기독교와 우주관(3) -21세기 충격과 신학적 대응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예측을 불허하는 수많은 물결들이 몰아치고 있다. 한 편에서는 전자 혁명에 의한 문명이기들의 급속 발전과, 생명 공학으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 난치병들이 퇴치, 유전자 연구결과로 예상되는 인간 수명연장, 세계적 정보 통신망과 교통의 개발로 인한 세계의 일일 생활권 등 좋은 물결들이 일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고도의 산업화로 인한 부작용들, 생태계 파괴, UFO 출현에 대한 공포, 핵무기로 인한 인류 존폐의 위기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암울한 물결들이 몰아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고도의 과학 기술과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문명 수준의 차이가 극과 극에 달하고 있는 현실로부터 엄청난 심리적 불안감과 압박감이 팽배되고 있다.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서 오늘날도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수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거의 변함없는 원시적 삶을 누리고 있으나, 비행기로 한 시간도 못되는 거리에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21세기 첨단의 문명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명 수준의 차이는 날로 심화될 것이며, 같은 도시, 같은 민족속에서도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도태되어가는 사람들이 증가될 것이다. ‘FUTURIST’ 잡지에서 미래학자들이 예상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까지 공상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신비의 비행체가 21세기 초에 실용화될 전망이라고 한다. 또한 광 케이블에 의한 통신 체제는 세계의 정보 통신망을 하나로 묶어서 그야말로 세계의 지구촌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과거의 수십세기 동안에 이룩하지 못할 엄청난 변화를 단지 몇 십년 동안에 체험하였던 20세기를 마무리짓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턱에서 인류는 어느 때 보다도 깊은 회의와 불확실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교회가 모든 권한을 쥐고 억누르며 세력을 잡아오던 중세기 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하였던 문제들이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방향이 옳게가고 있는것인지, 잘못된 것이라면 어떤 대안으로 그 수정을 제안할 것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세기가 바뀔 때마다 세상의 종말을 외치는 사이비 종교들과 이단들이 판을 쳐 왔는지도 모른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그 불안감의 정도가 너무나도 극심하다는 것과, 어느 시대보다도 그 해결책이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그 위기감은 가장 고조되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면서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그 해답을 찾을 것인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그들이 위기감으로 팽배해 있을 때, 그 원인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에 있었다고 과감하게 외쳤던 선지자들의 음성이 어느 시대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지 않은가? 과연 그들은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은 언제까지 침묵만을 하실것인가? 이러한 현대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이제는 신학이 대답해 주어야 할 때이다. 시대를 이끌어가며, 영원한 세계로 인도해야 할 현대 교회의 과제인 것이다. 과학이 신앙의 세계와 대립된다는 극단적인 태도로써 그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신학계는 이제 눈을 뜨고 저들에게 선지자적 역할을 과감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1) 자본주의 경제의 위험 신호
산업 혁명이후로 세계의 경제를 장악해가는 자본주의로 인하여, 과거의 귀족과 천민의 사회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파생시키면서, 많은 이론가들이 그 위험성을 예고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공산주의였으나, 노동자 혁명을 주도한 세력들에 의해 무력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그 목적은 왜곡되었고, 인류를 전쟁에 몰아넣었으며 동서 양대 진영의 냉전으로 말미암아 많은 부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어떤면에서는 자본주의의 해독으로 인하여 예상되는 극단적인 이기적 소모를 줄여주는데 기여하였는지도 모른다. 구 소련의 체제 붕괴이후에 세계에 불고 있는 자본주의적 물결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내는 자본주의 이념은 끝없는 성장을 강요하고 있으며, 살아남기를 원하는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들은 그 강요로부터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성장에로의 강요는 자본의 팽창을 제한하는 모든 조건들, 즉 경제와 문화 그리고 종교의 경계들을 허물어 버리며, 여러가지 개념과 관념들을 허물어 버린다. 또한 성장에로의 강요는 성장을 자기 목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끝없는 인간의 욕구에 따라 제한없이 발전되어 가고자 한다. 따라서 지구 전체에 미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는 한정된 지구 자원을 마구 소모하고 있으며, 결국 인류의 존폐 위기로 몰고 갈 것이며, 사용되지 못하고 축적되어 재고화되는 공산품들과, 사용 후 재생되지 못하는 2차 산업 물품들과 폐기물들은 지구를 온통 뒤덮어 버릴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전 세계가 하나의 촌락과 같이 되어버리는 21세기에, 자본주의는 인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이다. 세계의 경제 문제가 이제는 인류 존망의 문제가 될 것이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2) 세계 질서와 세계 정부
원자 폭탄을 최초로 발명하여 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멸망 위험성을 바라보면서 과학자로서의 큰 도덕적 갈등에 빠졌다. 독일과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항하고 아까운 생명들이 전쟁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위하여 개발된 핵무기가 만일 세계의 여러 나라들 간에 경쟁적으로 소유되고, 자기 국가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그 피해가 엄청날 것임을 확실하게 내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 정부를 주창하였다. 핵무기를 제한하고 핵 에너지를 선한 뜻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반 세기가 지나가는 오늘날 까지는 다행히도 그 위험성이 심각하게 대두되지 않았지만, 세계의 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현상이 발발한다면, 미국과 러시아 뿐만아니라 십 여개 이상의 국가들에서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로 인한 피해가 언제 발생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정부의 필요성은 다만 핵무기의 문제때문에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고속 정보 통신망으로 묶여져, 과거에 한 촌락과 같이 되어버린 세계가 공동의 안녕과 질서 그리고 균형된 인류 전체의 복지를 위해서 세계 정부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으며, 군사적인 목적만을 위한 UN보다 더 강력하고 확대된 세계의 정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의 처지와 요구에 대하여 21세기에는 어떤 대답이 나와야 한다.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적 그리스도가 바로 그러한 세계 정부라고 확고하게 주장하여 어떤 다른 대응책을 제시하든지, 아니면 다른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3)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
오늘날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문제는 어느 나라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에 확대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각 나라 정부들과 산업계에서는 심각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적인 해결 노력에 있어서는 추상적인 개념을 동원하여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 지구의 온난화, 산성비, 오존층 파괴 등의 기사가 신문에 자주 보도되고는 있으나, 아직 관심도가 적으며, 남의 일로 간과하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공장이나 오락 시설을 건설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으며, 특히 신흥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산업화를 추진함으로써, 지구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인류의 복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한정된 지구 환경과 자원을 어떻게 규모 있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21세기에는 가장 크게 부각될 것이며, 세계 정부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과 함께 신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문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4) 우주 과학과 생명 공학
문예 부흥이후 인간의 지성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되면서, 학자의 관심은 양 극단으로 쏠렸다. 하나는 끝없이 펼쳐진 우주밖의 무한대(無限大) 세계로 나가보려는 욕망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사물을 쪼개고 또 쪼개어 무한소(無限小) 세계의 모든 비밀을 캐고자 하는 것이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 두 가지의 영역은 인류에게 어느 정도 만족을 줄 정도로까지 발전하였다. 사람들이 대기권 밖으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인간 세포와 생명의 신비인 DNA 구조가 밝혀지고 있다. 모든것이 인간의 뜻대로 되어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제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과학자들은 큰 벽에 부딪혔다. 우연히 발생되었으리라고 가정하였던 우주속에서는 신비한 어떤 법칙과 질서 그리고 뚜렷한 목적성이 발견되고 있으며, 생명이라도 창출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덤벼들었던 생명 공학자들은 생명의 신비앞에서 두 손을 들어버렸다.
인류의 영원한 복지와 무한한 발전성을 약속하였던 과학의 한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인간은 스스로 피조물임과 동시에 창조주가 분명히 계시다는 확실한 결론에 도달해 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이러한 의미에서 엄청난 불확실성의 시대가 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화려한 계시의 시대가 될 것이다. 감추어졌던 비밀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존재 확신과 천국 세계 추구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을 희망하게 될 것이다. 그 일은 과학자들, 신학자들, 선지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추구하고 발견해 나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적 사명라고 본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해있으며, 그것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과학에 의해 시도되고 있으나, 그것은 자연 과학 분야들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며, 오히려 더 복잡한 결과를 낳고있기도 하다.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더욱 관심을 갖고 주도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21세기 신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주관의 확대와 함께, 과학 문명의 발달과 함께 확장되어가는 인간의 지성과 지식을 수용하고, 그에 따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광대한 이 우주 전체를 다스리시고 오늘도 살아계셔서 일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충격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하나님의 개념, 확대된 새로운 포괄적 신학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예측을 불허하는 수많은 물결들이 몰아치고 있다. 한 편에서는 전자 혁명에 의한 문명이기들의 급속 발전과, 생명 공학으로 말미암은 여러 가지 난치병들이 퇴치, 유전자 연구결과로 예상되는 인간 수명연장, 세계적 정보 통신망과 교통의 개발로 인한 세계의 일일 생활권 등 좋은 물결들이 일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고도의 산업화로 인한 부작용들, 생태계 파괴, UFO 출현에 대한 공포, 핵무기로 인한 인류 존폐의 위기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암울한 물결들이 몰아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고도의 과학 기술과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문명 수준의 차이가 극과 극에 달하고 있는 현실로부터 엄청난 심리적 불안감과 압박감이 팽배되고 있다.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서 오늘날도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수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거의 변함없는 원시적 삶을 누리고 있으나, 비행기로 한 시간도 못되는 거리에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21세기 첨단의 문명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명 수준의 차이는 날로 심화될 것이며, 같은 도시, 같은 민족속에서도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도태되어가는 사람들이 증가될 것이다. ‘FUTURIST’ 잡지에서 미래학자들이 예상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까지 공상 만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신비의 비행체가 21세기 초에 실용화될 전망이라고 한다. 또한 광 케이블에 의한 통신 체제는 세계의 정보 통신망을 하나로 묶어서 그야말로 세계의 지구촌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과거의 수십세기 동안에 이룩하지 못할 엄청난 변화를 단지 몇 십년 동안에 체험하였던 20세기를 마무리짓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문턱에서 인류는 어느 때 보다도 깊은 회의와 불확실성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교회가 모든 권한을 쥐고 억누르며 세력을 잡아오던 중세기 시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하였던 문제들이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방향이 옳게가고 있는것인지, 잘못된 것이라면 어떤 대안으로 그 수정을 제안할 것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기에 세기가 바뀔 때마다 세상의 종말을 외치는 사이비 종교들과 이단들이 판을 쳐 왔는지도 모른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그 불안감의 정도가 너무나도 극심하다는 것과, 어느 시대보다도 그 해결책이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그 위기감은 가장 고조되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시대를 맞이하면서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그 해답을 찾을 것인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그들이 위기감으로 팽배해 있을 때, 그 원인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에 있었다고 과감하게 외쳤던 선지자들의 음성이 어느 시대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지 않은가? 과연 그들은 어디에 있으며, 하나님은 언제까지 침묵만을 하실것인가? 이러한 현대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이제는 신학이 대답해 주어야 할 때이다. 시대를 이끌어가며, 영원한 세계로 인도해야 할 현대 교회의 과제인 것이다. 과학이 신앙의 세계와 대립된다는 극단적인 태도로써 그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신학계는 이제 눈을 뜨고 저들에게 선지자적 역할을 과감하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1) 자본주의 경제의 위험 신호
산업 혁명이후로 세계의 경제를 장악해가는 자본주의로 인하여, 과거의 귀족과 천민의 사회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파생시키면서, 많은 이론가들이 그 위험성을 예고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공산주의였으나, 노동자 혁명을 주도한 세력들에 의해 무력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그 목적은 왜곡되었고, 인류를 전쟁에 몰아넣었으며 동서 양대 진영의 냉전으로 말미암아 많은 부작용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어떤면에서는 자본주의의 해독으로 인하여 예상되는 극단적인 이기적 소모를 줄여주는데 기여하였는지도 모른다. 구 소련의 체제 붕괴이후에 세계에 불고 있는 자본주의적 물결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내는 자본주의 이념은 끝없는 성장을 강요하고 있으며, 살아남기를 원하는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들은 그 강요로부터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성장에로의 강요는 자본의 팽창을 제한하는 모든 조건들, 즉 경제와 문화 그리고 종교의 경계들을 허물어 버리며, 여러가지 개념과 관념들을 허물어 버린다. 또한 성장에로의 강요는 성장을 자기 목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끝없는 인간의 욕구에 따라 제한없이 발전되어 가고자 한다. 따라서 지구 전체에 미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는 한정된 지구 자원을 마구 소모하고 있으며, 결국 인류의 존폐 위기로 몰고 갈 것이며, 사용되지 못하고 축적되어 재고화되는 공산품들과, 사용 후 재생되지 못하는 2차 산업 물품들과 폐기물들은 지구를 온통 뒤덮어 버릴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전 세계가 하나의 촌락과 같이 되어버리는 21세기에, 자본주의는 인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이다. 세계의 경제 문제가 이제는 인류 존망의 문제가 될 것이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2) 세계 질서와 세계 정부
원자 폭탄을 최초로 발명하여 세계를 공포에 몰아 넣었던 아인슈타인은, 인류의 멸망 위험성을 바라보면서 과학자로서의 큰 도덕적 갈등에 빠졌다. 독일과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항하고 아까운 생명들이 전쟁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위하여 개발된 핵무기가 만일 세계의 여러 나라들 간에 경쟁적으로 소유되고, 자기 국가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그 피해가 엄청날 것임을 확실하게 내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인슈타인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 정부를 주창하였다. 핵무기를 제한하고 핵 에너지를 선한 뜻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반 세기가 지나가는 오늘날 까지는 다행히도 그 위험성이 심각하게 대두되지 않았지만, 세계의 질서가 크게 흔들리는 현상이 발발한다면, 미국과 러시아 뿐만아니라 십 여개 이상의 국가들에서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로 인한 피해가 언제 발생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 정부의 필요성은 다만 핵무기의 문제때문에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가 고속 정보 통신망으로 묶여져, 과거에 한 촌락과 같이 되어버린 세계가 공동의 안녕과 질서 그리고 균형된 인류 전체의 복지를 위해서 세계 정부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으며, 군사적인 목적만을 위한 UN보다 더 강력하고 확대된 세계의 정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의 처지와 요구에 대하여 21세기에는 어떤 대답이 나와야 한다.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적 그리스도가 바로 그러한 세계 정부라고 확고하게 주장하여 어떤 다른 대응책을 제시하든지, 아니면 다른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3)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
오늘날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문제는 어느 나라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에 확대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각 나라 정부들과 산업계에서는 심각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적인 해결 노력에 있어서는 추상적인 개념을 동원하여 그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 지구의 온난화, 산성비, 오존층 파괴 등의 기사가 신문에 자주 보도되고는 있으나, 아직 관심도가 적으며, 남의 일로 간과하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공장이나 오락 시설을 건설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돈을 벌고 있으며, 특히 신흥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산업화를 추진함으로써, 지구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인류의 복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한정된 지구 환경과 자원을 어떻게 규모 있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21세기에는 가장 크게 부각될 것이며, 세계 정부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과 함께 신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문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4) 우주 과학과 생명 공학
문예 부흥이후 인간의 지성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되면서, 학자의 관심은 양 극단으로 쏠렸다. 하나는 끝없이 펼쳐진 우주밖의 무한대(無限大) 세계로 나가보려는 욕망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사물을 쪼개고 또 쪼개어 무한소(無限小) 세계의 모든 비밀을 캐고자 하는 것이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 두 가지의 영역은 인류에게 어느 정도 만족을 줄 정도로까지 발전하였다. 사람들이 대기권 밖으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으며, 인간 세포와 생명의 신비인 DNA 구조가 밝혀지고 있다. 모든것이 인간의 뜻대로 되어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제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과학자들은 큰 벽에 부딪혔다. 우연히 발생되었으리라고 가정하였던 우주속에서는 신비한 어떤 법칙과 질서 그리고 뚜렷한 목적성이 발견되고 있으며, 생명이라도 창출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며 덤벼들었던 생명 공학자들은 생명의 신비앞에서 두 손을 들어버렸다.
인류의 영원한 복지와 무한한 발전성을 약속하였던 과학의 한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인간은 스스로 피조물임과 동시에 창조주가 분명히 계시다는 확실한 결론에 도달해 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이러한 의미에서 엄청난 불확실성의 시대가 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화려한 계시의 시대가 될 것이다. 감추어졌던 비밀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존재 확신과 천국 세계 추구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을 희망하게 될 것이다. 그 일은 과학자들, 신학자들, 선지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추구하고 발견해 나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적 사명라고 본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해있으며, 그것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과학에 의해 시도되고 있으나, 그것은 자연 과학 분야들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며, 오히려 더 복잡한 결과를 낳고있기도 하다.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더욱 관심을 갖고 주도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21세기 신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주관의 확대와 함께, 과학 문명의 발달과 함께 확장되어가는 인간의 지성과 지식을 수용하고, 그에 따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광대한 이 우주 전체를 다스리시고 오늘도 살아계셔서 일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1세기의 충격을 소화해 낼 수 있는 하나님의 개념, 확대된 새로운 포괄적 신학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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