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0, 2011

시간과 공간(2)

이것은 제118편의 다음 문장과 연결된다.




“하나님들은 영원성에 있어서의 경험으로써 시간에 관계된다. 진화적 우주에서 영원성은 일시적 영속됨--영속되는 지금--이다.”(*1295)




Fred Wolf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시간을 관측하기 위하여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불교인들이 ‘존재-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관측하는 것이다. 있는 모든 것은 지금 있고 과거에 있었고 앞으로 있을 것이다. 모든 순간은 움직임이 없고 멈춘 상태로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모두를-보는 존재-시간을 음미하기 위한 일람표를 나타낸다.”




이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하였을 때, 그는 나에게 시간에 대한 이러한 정의를 주었다:




시간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보호하는 재료이다.

--작자불명




David Bohm이 관측한 것으로 돌아가서, 그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의 관점들을 비교하면서 글을 썼다:




상대성 이론은 시간-공간을 절대적 인과 법칙에 의해 관련된 무차원 지점까지 아래쪽으로 완전히 분석할 수 있응 것으로 설명하는데 거기에는 ‘지금’이라는 순간에 의미를 부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반면에, 양자 이론은 공간과 시간 안에 확장과 존속으로 겹쳐지는, 더 넓은 상황 속에 묻혀 있는, 그리고 양자-기계적 파동 작용에 의해 지배되는 순간들에 대한 어떤 개념을 제시한다.




따라서, 움직이는 그림의 경우처럼, 우리의 경험은 움직임 또는 되어가는 것에 대한 어떤 개념을 갖고 있다. Bohm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의 되어감을 [우리가 납득하고], 반면에 ‘무시간’의 면에서 볼 때, 되어감의 존재를 [우리가 납득한다].




제118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전능의 사자가 말한 것을 보면: 우리는




분석에 의해 시간을 감지한다.(*1297)




종합에 의해 공간을 [감지한다].(*1297)




간단히 말해서, 이 단어들은 이러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분석--전체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해 그 전체를 부분으로 나눔; 알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아는 것 쪽으로 작업함.




종합--전체를 구성하기 위해 부분들을 결합시킴; 아는 것으로부터 알지 못하는 것 쪽으로 작업함.




지금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과 관련된 더 발전된 어떤 개념들을 고려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제106편에 이렇게 씌어있다:




필사자(必死者)들과 다른 많은 우주적 피조물들은 잠재성들을 공간 속에 현실화되는 것으로 그리고 시간 속에 결실을 향하여 진화하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발견하지만, 이러한 전체 과정은 낙원에서 그리고 영원성 안에서 실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시간-공간 현상이다. 절대적인 차원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잠재성들은 실제적인 것들로 인식되어 거기에 존재할 것이다.(*1173)




낙원에 관한 이 정보와 함께, 유란시아서에서 나에게 가장 흥미를 주는 것들 중 하나인 이 구절을 보자:




에너지의 최초 측정 가능 형태인 궁극체는 낙원을 그 핵으로 삼는다.(*467)




그 다음에, 물론, 우리는 서론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안다:




낙원 섬은 우주 위치는 갖고 있지만 공간 안에 장소를 갖고 있지는 않다.(*7)




그리고 제11편, “낙원의 영원한 섬”에서:




낙원은 시간 없이 존재하고 공간 안에서는 위치가 없다.(*120)




이 유란시아서 자료를 뒷받침하는 어떤 발견들을 David Bohm이 어떻게 이룩하였는지 고려해 보라. 그가 물리학에 대해 쓴 것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하였다:




원자 구조는 전자들, 양성자들, 중성자들, 쿼크들, 하위-쿼크들 등으로 분리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어디든지-충만하고 우주적인 여러 장들 속에서 역동적 형태 변화들을 이룬다. 이 장들이 양자-기계적으로 취급될 때, 물질로 간주되는 어떤 것 속에 포함된 것을 크게 초월하는 어떤 에너지를 ‘빈 공간’에 제공하면서, ‘영점(零點)’ 부동(浮動)들이 소위 진공이라 부르는 거기에도 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또한,




진공 상태에서 ‘상태 기능’(공간과 시간 전체를 대변하는)은 빈도에 있어서 너무 높이 균일하게 진동하기 때문에 어떤 알려진 물리적 해석도 완전히 벗어난다. 더욱이, “우리는, 적어도 현재 알려진, 측정된, 그리고 경험된 시간으로 볼 때, 어떤 의미에서, 그 진공 상태가 ‘무시간’ 또는 ‘사간을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 과학이 양자 차원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에 관하여 혼동하고 있음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L. Beynam은 1978년에 개정된 그의 논문 “과학에 있어서 떠오르는 범례”에서, 잘 알려진 벨의 공리를 제시하였다.:




양자 이론의 기본 원칙들은 실체의 공간적으로 분리된 부분들은 독립적이지 않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공간과 시간에 대한 고전적 개념들이 거의 전적으로 쓸모없고 무의미함을 증명하는 과학적 발전의 통로를 이것이 열었다.”




Paul Davies는 1982년 “하나님과 새 물리학”에서 파리에 있는 이론 및 적용 광학 연구소에서 Aspect와 Dalibard 그리고 Roger에 의한 실험에 대해 보고하였다:




객관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관측자의 정신을 초월하는 어떤 실체를 갖는 것으로 사물들 또는 물체들을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 및 과거와의 빛보다-빠른 통신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최근에 시간--친숙한 이방인--이라고 불리는 책에서 J.T. Fraster는 이렇게 쓰고 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광자(光子)에게 시간이라는 말은 실체가 아니다. 광자의 “생애”에 있어서, 모든 사건들은 동시에 일어나고 모든 거리들은 영으로 줄어든다.




낙원으로 잠깐 돌아가서, 제11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원한 섬은 하나의 물질화 형태--실체의 고정 체계들--로 구성된다. 낙원의 이 순전한 재료는 공간 잠재성(소위) 절대체의 균질한 조직이다.(*120)




공간 잠재성은 정의가 어려운 단어이다--그것의 의미는 공간 안에 있는 가능성들과 잠재성들에 대한 개념을 수반해야 한다.(*126)




David Bohm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이 내용들을 따라 이론들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함축된 순서가 대수(代數) 관계들을 나타내는 말로 표현된 공간-이전(以前)에 대한 개념으로 인도하는데, 그것으로부터 평범한 공간-시간이 특별한 경우로 떠오른다.




공간과 시간의 신비들 속을 잠시 들여다 본 다른 것들을 여기에 언급해야 할 것이다. 제9편 “우주에 대한 무하한 영의 관계”에서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볼 수 있다:




무한 정신은 시간을 무시하고, 궁극적 정신은 시간을 초월하며, 우주적 정신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리고 공간도 그러하다: 무한 정신은 공간으로부터 독립되지만, 무한 세계로부터 정신의 보조 차원들로 강하할 때, 지성은 공간의 사건과 제한들을 점점 더 계산하지 않으면 안된다.(*102)




그리고 제 12편에서:




시간과 공간은 시간-공간 창조계 즉 일곱 연방우주들 안에서만 분리될 수 없다. 현세적이 아닌 공간(시간이 없는 공간)이 이론적으로 존재하지만, 진정으로 현세적이지 않은 장소는 오직 낙원 지역뿐이다. 비공간 시간(공간이 없는 시간)은 낙원 차원의 기능을 갖는 정신 안에 존재한다.(*135)




우리의 시간-공간 경력 동안에, 많은 분야들의 연구가 열매를 맺고 있다. 아마도 시간은 개인 경험에 가장 가깝게 관계된 개념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제12편에서 우리에게 “시간 인식의 세 차원들”이 제시되었다.




1. 정신으로 인식된 시간--연속, 동작에 대한 인식 그리고 기간에 대한 감각.




2. 영으로 인식된 시간--하나님을 향해 움직이는 통찰력 그리고 점증하는 신성의 차원들을 향한 움직임에 대한 인식.




3. 인격체는 통찰력으로부터 실체 속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시간 감각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서 현재에 대한 인식과 기간에 대한 자각을 창조한다.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유란시아서는 진보를 종종 “안쪽으로” 그리고 “위쪽으로” 가는 것으로 표현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 논의에 비추어볼 때, 이 용어들에 대한 하나의 의미 해석을 하자면 이러하다:




안쪽/시간의 내부 공간 초월




위쪽/공간의 외부 공간 초월




이제, 이 말을 예수의 강론으로부터 고려해 보자:

시간에 의해 조건지워짐에 따라 공간에 대한 일곱 가지 다른 내념들이 있다.(*1439)




나는 이 추측과 함께 마감하고자 한다: 아마도 “안쪽”과 “위쪽”은 더 높은 공간 차원들이며; 우리들 각각은 이 차원들을 향한 독립적, 개인적 시간 단위를 갖는다.













참고도서

1. Beynam, Laurence M. "The Emergent Paradigm in Science," Revision, Spring, 1978.

2. Bohm, David. Wholeness and the Implicate Order.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80.

3. Davies, Paul. The Cosmic Blueprint.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88.

4. Flood, Raymond and Lockwood, Michael (Editors). The Nature of Time. New York: Basil Blackwell, Inc., 1986.

5. Fraser, J.T. Time, The Familiar Stranger. Amherst: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87.

6. Griffin, David R. (Editor). Physics and the Ultimate Significance of Time.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6.

7. Ramsey, Norman F. "Precise Measurement of Time," American Scientist, Vol. 76, pages 42-49, January-February, 1988.

8. Talbot, Michael. Beyond the Quantum. New York: Macmillan, 1986.

9. The URANTIA Book. Uversa Press, Chicago, 1996.

10. Wolf, Fred Alan. Star Wave. New York: Macmillan,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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