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0, 2011

시간과 공간(1)

시간과 공간

by Bob Hunt, Ph.D.

Scientific Symposium-I, 1988







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유란시아서의 해설에 의해 항상 흥미를 느끼고 도전을 받아 왔다. 이 글은 나로 하여금 이 주제들에 관한 서적들과 논문들을 찾아보게 하였다. 그것들 대부분은 유란시아서에 있는 정보와 일치하였고, 유란시아서의 여러 부분들에서 제시된 때로는 흥미를 돋우는 가능성들에 더욱 통찰력을 제공하는 본보기들 또는 이론들을 제공한다. 나는 이것을 설명하는 어떤 예들을 이 글의 기초로 선택하였다.




나는 유란시아서와, 최근의 다양한 자료들로부터의 관련된 해설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것인데, 그것들 대부분은 참고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동시에, 나는 그 자료를 선택하고 조직함으로써 연관된 개념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여기에서 시도하고자 한다. 나는 유란시아서 및 다른 경우로부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어떤 설명들을 검토함으로써 시작할 것이다. 쪽 번호가 있고 다른 설명이 없는 모든 인용문은 유란시아서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어떤 경우에, 이것들은 완전한 문장이 아니고 오직 문구들일 수도 있다.




시간--영원성의 움직이는 모습(*2021)




공간--낙원 실체들의 지나가는 그림자(*2021)




이것들은 시적(詩的)이지만, 명확성이 부족하다.




시간--순간들의 연속(*1297)




공간--결합된 점들의 체계(*1297)




이것들은 좀 더 명확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시간--사건들이 감지되고 구별되게 하는 연속-배열(*1439)




공간--어떤 물체가 공간을 통해 음직일 때 모든 물질적 물체들의 자산, 그것은 또한 그것의 모든 자산들과 함께, 심지어는 움직이는 그러한 몸체 안에 있는 그리고 그것에 속한 공간까지도 함께 운반한다.(*1297)




약 3세기 정도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가정하고 17세기 독일인 수학자인 라이프니쯔가 쓴 것을 주목해 보라.




공간이 공존의 질서인 반면 시간은 연속적 실존의 질서이다. (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유란시아서의 두 가지 참고사항들이 시간과 공간의 결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제106편 “실체의 우주 차원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 실체 인식에 있어서 인간에게 가장 큰 도구가 되지만, 실체 인식을 완성함에 있어서 그에게 가장 무서운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1173)




제118편, 지존자와 궁극자--시간과 공간:




시간과 공간은 총괄우주의 연합적 기계 작용이다. 그것들은 유한된 피조물들로 하여금 무한자와 함께 우주 안에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기계 작용들이다. 유한 피조물들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절대적 차원들로부터 효과적으로 격리된다. (*1303)




물리학자들의 최근 논문들과 “시간”에 잠시 집중해 보자. Fred Wolf는 1984년에 “별의 파동”이라는 책을 썼는데, “정신, 의식 그리고 양자 물리학”이라는 부제를 달았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타당한 정의나 분명한 상징 또는 훌륭한 물리적 사진조차도 전혀 없다. 그는 계속하여 “양자 역학에 있어서, 시간은 관측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며; 그것은 오직 이질적인 순위 상수일 뿐이다.”




Paul Davies는 올해에 출판된 그의 책 “우주의 설계도” 중에서 “시간에게 무엇이 일어났는가?”라고 하는 장에서 이러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시간은 사건들 사이의 간격을 재기 위한 하나의 상수로서 존재할 뿐이다.




David R. Griffin은, 1986년에 출판된 “물리학 서론과 시간의 궁극적 의미”라는 수필과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물리학은 어떤 근본적 의미에서 ‘무시간(無時間)’이라는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공간의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양자 물리학에서 통하는 의미에서의 시간 간격을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시간의 가장 짧은 의미 있는 기간:




Planck Time = 5.36x10(-44승)초




Chronon = 10(-23승)초




빛이 전자를 횡단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잠깐 동안, 그러나 약간 더 길게, 시간 간격으로부터 공간으로 돌아선다고 가정하라. 우선, Fred Wolf가 말한 다른 내용들을 보고, 그 다음에는 제12편 “우주들의 우주”를 살펴보자:




양자 역학에서는, 공간이 관측 가능하다. 공간을 관측하려면, 우리는 관측자와 관측 대상이 필요하다. 그들을 구분시키는 것이 ‘공간’이다.




공간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무(無)--부정적--이며; 그것은 오직 긍정적이고 공간적이지 않은 어떤 것과 관련될 때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공간은 실제적이다.(*133)




칼타고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간은 우주 물체들의 관계성에 있어서의 변동에 대한 단순한 지성적 개념이 아니다.(*1439)




그 다음으로, 제118장 지존자와 궁극자--시간과 공간:




물질적 차원의 공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실제적 어려움은, 물질적 몸체들이 공간 속에 존재하는 동시에, 공간이 또한 이 동일한 물질적 몸체들의 속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1297)




공간에 대한 개념은 범위와 단위를 포함한다. 양자 차원에 대하여 우리는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짧은 의미있는 공간 측정:




Planck 길이 = 1.61x10(33승)cm




(10의 21승 근은 원자 핵의 지름보다 작다)




아무튼, Planck는 Max Planck인데, 1899년 Planck 상수를 발견하였고, 그것은 빛의 속도와 뉴톤의 중력 상수가 합쳐졌을 때 양자 중력을 위한 척도가 되는 단위 체계를 형성한다.




Planck의 상수, /h




뉴톤의 중력 상수, g




빛의 속도, c




양자 중력을 위한 단위체계




이 척도에 관하여, Bryce DeWitt는 1983년 12월에 출판된 “양자 중력”이라는 제목의 글에 이것을 기록하였다.




거리와 시간에 대한 이 척도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현재의 기술로 만들어진 도구를 사용하면, 성운 크기 만한 입자 가속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1980년에 출판된 “양자 이론과 중력”이라는 책에서 John Wheeler는 이렇게 말한다:




Planck 길이에 있어서, 양자 중력의 효과는 무의미 ‘이전’과 ‘이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성립시킨다.




Planck 길이에 있어서, 연결성과 견제와 발생지 그리고 특별히 조직을 포함하는 모든 기하학적 개념들이 해체되며,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기하학 이전에 가정들을 세우도록 강요된다.




이제 시간과 공간 사이의 어떤 연결성들에 대해 고찰해 보자.

제106편 “실체의 우주 차원들”에서 이런 내용을 볼 수 있다:




시간 감각 없이는, 어떤 진화적 피조물도 연속에 대한 관계성을 감지할 수 없다.(1173) 그리고 공간 감각 없이는, 어떤 피조물도 동시성의 관계들을 알 수 없다.(*1173)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인데, “동시성”이란 기본적으로 “동일한 시간에”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Fred Wolf로부터의 인용문이 도움이 된다. “우리가 공간을 재고 있다고 우리가 말할 때, 우리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위치들을 동시에 재고 있다. 어떤 물체의 한 쪽 끝이 정오에 있고 다른 쪽 끝이 한밤중에 있는 어떤 점 사이의 거리를 잰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공간의 측정은 단 하나의 순간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Wolf는 이러한 관련성들을 제시한다:




지금 = 공간 = 관측된 것들




여기 = 시간 = 관측자




또한 그는 이러한 기하학적 유추를 제시한다:




지금은 선이다, 표면 또는 입방체.




여기는 어떤 점이다.




모든 선들, 표면들 그리고 입방체들은 점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공간은 시간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앞의 말은 예수가 시간과 공간에 대해 강론할 때 했던 것과 일치한다:




공간은 시간에 의해 측정되지만, 시간은 공간에 의해 측정되지 않는다.(*1439)




예수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과학자의 혼동은 공간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1439)




움직임에 대한 개념은 시간과 공간 사이의 연결이다. 제12편에서:




시간은 움직임의 덕분으로 생기는데 왜냐하면 정신이 연속성을 선천적으로 알기 때문이다.(*134)




Wolf는 “우리는 시간을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관측하는데 우리는 움직임들을 지나가는 초침과 비교함으로써 시간을 추정하며; 그것은 주기적으로 공간을 지나간다.”고 썼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시간의 지나감을 관측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 과정을 관측하고 있는 것이다.




제12편으로부터의 두 가지 추가적 인용문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시간에 대한 관계성은 공간 속에서의 움직임 없이는 존재하지 않지만, 시간에 대한 의식은 그렇지 않다. 연속성은 움직임이 없는 속에서도 시간을 의식할 수 있다.(*135)




인간의 정신은 시간-속박보다는 공간-속박에 해당하는데 정신의 선천적 본성 때문이다.(*135)




시간의 분석과 관련된 어려움들 중 일부가 물리학자 David Bohm의 “전체성 및 관련 질서”라는 책에서 그리고 최근의 논문 “시간, 관련된 질서, 그리고 공간-이전”이라는 논문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나는 Bohm을 이 주제 및 관련 주제들에 있어서 앞장서는 이론가라고 생각한다. 그의 개념들은 유란시아서의 정보 및 제안들과 일치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구분을 생각해 보라. 일반적으로, 우리가 현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1초의 몇 분의 1이라 하더라도 이미 과거이다. 그러므로 순간에 대한 인식 내용은 과거와 지나가버린 것에 속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는 그것이 과거로 흘러들어가는 것 없이는 단어나 생각으로 표현될 수 없다. 미래 순간이 올 때 비슷한 상황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껏해야 현재의 과거로부터 미래의 과거를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실제적인 즉시적 현재는 항상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모든 예상 가능성은 움직임이 충분히 느리고 규칙적이며 그 다음에 오는 것과 명백하게 관련된다는, 우리의 인식과 지식이 실제적으로 주목하는 그 시간과 현재 사이의 차이가 어떤 의미 있는 차이도 이루지 못한다는 가정에 명백하게 의존한다.




[아무튼]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미세-처리는 매우 빠르고 불규칙적이며 그 다음에 오는 것과 모호하게 연결된다. 정말로, 식별할 수 있는 정보 내용을 그 다음 사건들에게 명백하게 관련시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능하지 않다(이것은 Heisenberg 불확실성 관계들에 대한 정확한 기본 의미이다). 시간의 통상적 동작들에 대한 관련성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제기되리라고 보이는 것은, 상대성 이론의 “순간 사건”이 일반적으로는 명백한 의미를 가질 수 없음을 우리가 안다는 점이다.




시간의 개념과 경험 둘 다에 확장하기 위하여, 예수의 강론으로부터의 이 인용문을 검토해 보자:




인간에게 시간이 사건들의 연속으로 나타나지만; 그러나 인간이 상승함에 따라 즉, 좀 더 안쪽으로 깊이 들어감에 따라, 이 사건의 진행에 대한 넓어지는 시야는, 그것의 전체성 속에서 그것이 점점 더 구분되는 그러한 것이다. 이전에는 사건들의 연속체로 나타난 것이 그 다음에는 전체적이고 완전하게 연관된 순환(循環)으로 보여질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한 때 사건들을 일직선적인 연속으로 의식하였던 것은 점점 더 순환적인 동시성으로 바뀌어질 것이다.(*1439)




이것은 제118편의 다음 문장과 연결된다.




“하나님들은 영원성에 있어서의 경험으로써 시간에 관계된다. 진화적 우주에서 영원성은 일시적 영속됨--영속되는 지금--이다.”(*1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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