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Introduction to Some Concepts of God as Used in The Urantia Book
유란시아서에서 사용된 하나님에 대한 개념들의 소개
David Kantor
이 문서의 내용:
1. 왜 유란시아서를 연구하나?
2. “우주 틀들” 개념 틀들의 상대성
--유란시아서의 거부자
3. 신격, 신성 및 하나님
4. 칠중 하나님에 대한 소개
참조: [중괄호: 우버사 출판물 참조를 의미] (괄호: 최초 인쇄본 참조를 의미)
1. 왜 유란시아서를 연구하나?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 즉 그의 본성에 대한 지성적 이해 그리고 그것의 구분과 내부적 관계들이 실체를 구성하는 그 방법에 대한 소개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는 다르다. 왜 이것을 연구하는가?
현대 세계에 있어서, 지식은 종종 하나의 상품 즉 물질적 대상물과 같이 획득되고 “소유”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경제적 성공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 유란시아서의 시각에서 보면, 지식은 가치들의 발견을 위해 기본적인 의미들의 파악에 관련된다. 우리가 그 가치들을 인격화시킬 때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의 상호인격적 관계들 속으로 통합시키고, 그 다음에는 추가적인 새 의미들의 파악을 위해 무대를 설정한다. 그 과정이 계속되고 실제 성장의 구조를 구성한다.
그러면 유란시아서를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빌 새들러의 “총괄우주의 연구”에 대한 소개서에서 보면:
“유란시아서는 교과서처럼 씌어지지 않았으며;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교향곡처럼 씌어졌다. 드러나는 진리의 개념과 활동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줄거리들이 긴 이야기가 전개되듯이 나타나고 다시 나타난다. 이 이야기의 부분들은 매우 음악적이다. 그 선율은 독자들이 마음을 사로잡힐 정도의 그러한 매력적인 단순성을 가지고 발전한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이와 같은데, 인간들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계시가 되기까지 성장하였던 인간들 중의 인간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 책에 있는 문서들 중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며; 진리의 조화들의 활동들은 더욱 복잡하며; 그 선율은 파악하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그것의 명백함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기에 있다. 유란시아 문서들 안에 있는 복잡한 선율 활동들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 자료를 주의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는데, 복잡하고 불분명하며 “멀리 떨어진”듯이 보이는 그 문서들 대부분은 생생한 진리의 초상화 속에 세련된 개념의 움직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만약에 이 구절들의 복잡한 아름다움 속에서 진리가 파악된다면, 우리는 이 생애와 이 세상의 물체들을 평가하는 것에 반대되는 어떤 새로운 수평선을 획득할 것이며-그렇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투시도 즉, 우리의 정신이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투시도에 대한 더 큰 통찰력으로 이 물체들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이 계획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너무나도 모험적이고, 너무나도 도전적이고,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아무리 희미하더라도, 이 계획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감사하는 법을 우리가 배우는 것이 중요하게 보인다. 이 도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도전의 중대함과 복잡함이다.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밝혀지는 모험여행의 광대함이다. 우리의 상상하는 바들을 동요시키는 것은 영원한 미래의 망망함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란시아서에 있는 총괄우주의 개념의 교향곡 안에 담겨 있다.
“하나님의 계획들은 총괄우주 안에 부분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이 계획들을 조금이라도 더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그 장엄한 모험여행의 웅장함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받으며, 심지어는 영감을 얻기까지 할 것이다. 만약에, 우연히, 우리의 연구가 하나님의 계획들을 우리의 이해력에 다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확장하는 성장의 살아있는 진리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 더 가까이, 고도의 모험여행의 전율하는 아름다움에 더 가까이, 그리고 지성적 사랑의 보상하는 선함에 더 가까이-- 가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수고에 대한 가치가 충분히 있게 될 것이다.”
유란시아서의 해설:
[0:0.2](1) 계시자들은 이 책이 “우주적 의식을 확장시키고 영적 인지력을 증대시키게 될 것...”을 희망한다.
[115:2.2](1261) -- “경험적인 우주들에게는 신적인 가치들조차도 실체 의미들에 대한 확장된 이해에 의해 실체로서 증가된다.”
[196:3.2](2094-#1) “우주적 실체 속에는 세 가지의 요소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실체들을 물질과 의미 그리고 가치로써 나타내고자 한다.”
[100:1.3](1094-#5) “참다운 교육적 성장은 이상(理想)들의 향상과 가치들에 대한 증대된 이해와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의미들 그리고 최고의 가치들에 대한 증가된 충성심에 의해 표시된다.”
[100:3.6](1097-#3) “실제적인 것들과 잠재적인 것들의 연합은 성장 즉 가치들에 대한 경험적 깨달음과 동일하다. 그러나 성장은 단순한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반드시 의미를 갖지만, 성장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무가치하다. 인간 생애의 최고 가치는 가치들의 성장과 의미들의 진보 그리고 이 두 경험들의 우주적 상호관계 실현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하나님-인식에 상응한다. 그러한 인간은 초자연적이지 않은 반면 정말로 초인간적인 존재가 되며; 불멸(不滅)의 혼(魂)은 진화한다.”
[101:1.3](1105-#0)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너희의 느낌들이 아니라 너희의 사고(思考)들이다. 신적인 본성은 오직 그 정신의 눈으로만 감지될 수 있다... 그러한 모든 내적이고 영적인 교제를 영적인 통찰력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종교적 경험들은, 섭리사와 진리의 영이 하나님의 진화하는 아들들의 개념들과 이상향들과 통찰력 그리고 영적인 분투들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작용할 때 그들의 연합된 작용들에 의해서 인간 정신 위에 형성된 감동으로부터 기인된다.
[156:5.2](1738-#1) “...개인의 정신과 도덕은 그것으로부터 인간적 발달과 신적인 운명의 좀 더 높은 이 현상들이 솟아나게 될 토양이다. 진화하는 혼의 그 토양은 인간적이고 물질적이지만, 정신과 영이 합쳐진 피조물의 운명은 영적이고 신적이다.”
[196:3.3](2094-#2) “실체에 대한 발전적 이해는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에 상응한다.”
[196:3.10](2094-#9) “인간의 정신은 참된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며; 인간의 경험은 우주적 통찰력을 주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들을 인식하고 영적 의미들을 식별하는 통찰력에 관해서, 인간의 정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발견하고 인식하며 해석하고 선택하는 것이 전부이다.”
[196:3.14](2095-#1) “인간의 구원은 영적 가치 분류자--내주하는 해석자이며 통합자--에 의해 선정된 그러한 가치들을 선택하는 일에 인간의 의지를 바치는 것에 상당히 많이 의존한다. 개인적인 종교 경험은 두 단계로 구성되는데: 인간 정신 속에서의 발견과 내재하는 신적인 영에 의한 계시이다.”
[13:4.4](150-#3) “물리적 권세와 현존과 기능은 크고 작은 모든 우주들에서 동일하다. 영적 현존 또는 반응에 있어서 다른 요소는 의지적 피조물들에 의한 그것의 이해 및 수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절대적이고 존재론적인 신격의 영적 현존이, 피조된 존재들의 일부분에서 충성의 태도 또는 불충성의 태도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든지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 반(半)절대적이고 경험적인 신격의 기능적 현존이 그러한 유한 피조 존재들의 결정과 선택 그리고 의지-태도에 의해--개별 존재, 행성, 체계, 성운, 또는 우주의 충성과 헌신에 의해-- 확실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도 동시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신성의 이 영적 현존은 변덕스럽지도 않고 독단적이지도 않으며; 그것의 경험적 변화는 인격적 피조물들의 자유의지 재능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다.”
[13:4.5](150-#4) “영적 현존의 다양성을 결정하는 것은 너희들 자신의 마음과 정신 속에 있고 너희 자신의 선택의 방법 안에, 너희 정신의 결정에, 그리고 너희 자신의 의지의 결정 속에 들어 있다. 이 다양성은 지성적 인격 존재들의 자유의지 반응 속에 선천적으로 들어있는데, 우주적 아버지가 정한 존재들은 이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격들은 피조물 선택의 이 다양성의 조건들과 요구들을 맞추고 만족시킴에 있어서 그들의 영들의 밀물과 썰물에 항상 진실한데, 지금은 신적으로 증여된 그들의 선택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서 그들의 피조물들이 불리하게 결정하는 장면으로부터 다시 한 번 자신들을 물러나게 하려는 진지한 욕구에 반응하여 그들의 현존을 더욱 증여한다. 그리하여 신성을 갖는 그 영은 그 영역의 피조물들의 선택에 겸손하게 순종한다.”
[56:6.3](641-#4) “존재의[기능적 현존의] 어떤 차원에서든지 하나님은 그러한 차원에서 사는 그 존재들의 개념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2. 우주 틀들(유란시아서의 큰 거부자(拒否者))
모든 철학적, 신학적 및 형이상학적 체계들은 실체의 근본적 연합을, 비교하고 평가하며 그리하여 이해하는 쪽으로 안내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 범주들 속으로 나누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게 선택된 그 범주들은 그 후에 맡은 일의 지성적 뼈대를 준비하고 그것으로부터 도출되지도 모르는 결론들을 조절한다. 더욱이, 모든 정보는 이전에 획득한 정보에 대한 각 개인의 태도의 상황 속에서 해석된다. 유란시아서는 이 문제들을 “우주 틀들”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에게 경고한다.
[115:1.1](1260-#2)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며 진화하는 지성체들은, 만약에 생각하는 우주 틀을 형성하기에 모든 정신의 선천적인 능력이 너무 높거나 또는 낮다면 총괄우주에서는 무기력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최초의 이성적 사고 원형(原型)을 형성할 수 없게 될 것임을 뜻한다. 만약에 정신이 결말을 추론할 수 없다면 즉, 만약에 그것이 참된 근원들에 이를 수 없다면, 그러한 정신은 반드시 결말들을 가정할 것이며 정신이 창조한 이 가정들의 틀 안에서 논리적인 사고의 의미들을 그것이 갖게 될 근원들을 창안해 낼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 사고를 위한 그러한 우주적 틀들이 이성적인 지성 작용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반면, 그들은 예외 없이 어떤 더욱 큰 또는 더욱 작은 정도로 잘못되어 있다.
[115:1.2](1260-#3) “우주에 대한 개념적인 틀들은 오직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며; 그들은 확장되는 우주 이해의 확대 앞에 결국 반드시 길을 내주게 되는 유용한 발판들이다.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선함, 도덕성, 윤리, 의무, 사랑, 신성, 근원, 존재, 목적, 운명, 시간, 공간, 심지어는 신격에 대한 이해도 오직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하나님은 아버지 개념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지만, 아버지는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개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피조물 관계를 보여주는 아버지-아들 관계는, 오르본톤에서, 하보나에서, 그리고 낙원에서 성취될 신격에 대한 그 초인간적 개념들에 의해 증대될 것이다. 인간은 필사적 우주 틀 속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이 그 속에 사고가 자리잡을 수 있는 다른 더 높은 틀들을 상상할 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18:6.7](1300-#3) “선택의 행동인 의지 작용은 보다 높고 보다 전에 있었던 선택에 반응하여 실현되어 온 우주 구조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3. 신격, 신성 그리고 하나님 (중요한 용어들에 대한 고찰)
“총괄우주에 대한 연구”로부터:
“존재론적이라는 단어는 그 문서들에서 특별하게 사용된다. 그것은 시작이나 끝이 없는 영원한 어떤 덧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없다. 존재론적 존재는 어떤 경험이든지 그 이전에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존재론적이다. 따라서 ”존재론적“이라는 단어는 경험적이라는 말의 반대말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기원을 갖는 존재들 밀 사물들을 가리킨다. 또한 그것은 경험에 의해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존재들을 가리킨다. 어떤 존재론적 실체들까지도 더 높은 차원들을 향한 경험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 다른 실체들은 전적으로 (경험적이며; 인간은 그의 성장에 있어서 전적으로 경험적이다.)”
신격과 신성:
서문에서 볼 수 있는 정의들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것들을 기억하여 유란시아서에 대한 너희의 연구에 있어서 너희가 그것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것들을 참조하라--너희의 이해는 단순한 이 도구의 활용에 의해 의미심장하게 증대될 것이다.
[0:1.2](3) 신격은 하나님으로서 인격화될 수 있다...신격은 연합의 질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연합시키는 이 특성은 피조물들에 의해 신성으로 가장 잘 이해된다.
[0:1.6-17](3)
신성은 신격의 성격적, 통일시키는, 그리고 조화시키는 특성이다.
신성은 피조물에게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으로 이해될 수 있고...
신성은 인격체들 안에서 사랑과 자비 그리고 사역으로 상호 관련되고...
[0:1.14](3) “신격은
유란시아서에서 사용된 하나님에 대한 개념들의 소개
David Kantor
이 문서의 내용:
1. 왜 유란시아서를 연구하나?
2. “우주 틀들” 개념 틀들의 상대성
--유란시아서의 거부자
3. 신격, 신성 및 하나님
4. 칠중 하나님에 대한 소개
참조: [중괄호: 우버사 출판물 참조를 의미] (괄호: 최초 인쇄본 참조를 의미)
1. 왜 유란시아서를 연구하나?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 즉 그의 본성에 대한 지성적 이해 그리고 그것의 구분과 내부적 관계들이 실체를 구성하는 그 방법에 대한 소개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는 다르다. 왜 이것을 연구하는가?
현대 세계에 있어서, 지식은 종종 하나의 상품 즉 물질적 대상물과 같이 획득되고 “소유”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경제적 성공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 유란시아서의 시각에서 보면, 지식은 가치들의 발견을 위해 기본적인 의미들의 파악에 관련된다. 우리가 그 가치들을 인격화시킬 때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의 상호인격적 관계들 속으로 통합시키고, 그 다음에는 추가적인 새 의미들의 파악을 위해 무대를 설정한다. 그 과정이 계속되고 실제 성장의 구조를 구성한다.
그러면 유란시아서를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빌 새들러의 “총괄우주의 연구”에 대한 소개서에서 보면:
“유란시아서는 교과서처럼 씌어지지 않았으며;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교향곡처럼 씌어졌다. 드러나는 진리의 개념과 활동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줄거리들이 긴 이야기가 전개되듯이 나타나고 다시 나타난다. 이 이야기의 부분들은 매우 음악적이다. 그 선율은 독자들이 마음을 사로잡힐 정도의 그러한 매력적인 단순성을 가지고 발전한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이와 같은데, 인간들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계시가 되기까지 성장하였던 인간들 중의 인간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 책에 있는 문서들 중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며; 진리의 조화들의 활동들은 더욱 복잡하며; 그 선율은 파악하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그것의 명백함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기에 있다. 유란시아 문서들 안에 있는 복잡한 선율 활동들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 자료를 주의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는데, 복잡하고 불분명하며 “멀리 떨어진”듯이 보이는 그 문서들 대부분은 생생한 진리의 초상화 속에 세련된 개념의 움직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만약에 이 구절들의 복잡한 아름다움 속에서 진리가 파악된다면, 우리는 이 생애와 이 세상의 물체들을 평가하는 것에 반대되는 어떤 새로운 수평선을 획득할 것이며-그렇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투시도 즉, 우리의 정신이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투시도에 대한 더 큰 통찰력으로 이 물체들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이 계획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너무나도 모험적이고, 너무나도 도전적이고, 그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아무리 희미하더라도, 이 계획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감사하는 법을 우리가 배우는 것이 중요하게 보인다. 이 도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모호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도전의 중대함과 복잡함이다.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밝혀지는 모험여행의 광대함이다. 우리의 상상하는 바들을 동요시키는 것은 영원한 미래의 망망함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유란시아서에 있는 총괄우주의 개념의 교향곡 안에 담겨 있다.
“하나님의 계획들은 총괄우주 안에 부분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이 계획들을 조금이라도 더 깨닫는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그 장엄한 모험여행의 웅장함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받으며, 심지어는 영감을 얻기까지 할 것이다. 만약에, 우연히, 우리의 연구가 하나님의 계획들을 우리의 이해력에 다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확장하는 성장의 살아있는 진리에 대한 우리의 느낌에 더 가까이, 고도의 모험여행의 전율하는 아름다움에 더 가까이, 그리고 지성적 사랑의 보상하는 선함에 더 가까이-- 가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수고에 대한 가치가 충분히 있게 될 것이다.”
유란시아서의 해설:
[0:0.2](1) 계시자들은 이 책이 “우주적 의식을 확장시키고 영적 인지력을 증대시키게 될 것...”을 희망한다.
[115:2.2](1261) -- “경험적인 우주들에게는 신적인 가치들조차도 실체 의미들에 대한 확장된 이해에 의해 실체로서 증가된다.”
[196:3.2](2094-#1) “우주적 실체 속에는 세 가지의 요소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실체들을 물질과 의미 그리고 가치로써 나타내고자 한다.”
[100:1.3](1094-#5) “참다운 교육적 성장은 이상(理想)들의 향상과 가치들에 대한 증대된 이해와 가치들에 대한 새로운 의미들 그리고 최고의 가치들에 대한 증가된 충성심에 의해 표시된다.”
[100:3.6](1097-#3) “실제적인 것들과 잠재적인 것들의 연합은 성장 즉 가치들에 대한 경험적 깨달음과 동일하다. 그러나 성장은 단순한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반드시 의미를 갖지만, 성장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무가치하다. 인간 생애의 최고 가치는 가치들의 성장과 의미들의 진보 그리고 이 두 경험들의 우주적 상호관계 실현에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하나님-인식에 상응한다. 그러한 인간은 초자연적이지 않은 반면 정말로 초인간적인 존재가 되며; 불멸(不滅)의 혼(魂)은 진화한다.”
[101:1.3](1105-#0)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너희의 느낌들이 아니라 너희의 사고(思考)들이다. 신적인 본성은 오직 그 정신의 눈으로만 감지될 수 있다... 그러한 모든 내적이고 영적인 교제를 영적인 통찰력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종교적 경험들은, 섭리사와 진리의 영이 하나님의 진화하는 아들들의 개념들과 이상향들과 통찰력 그리고 영적인 분투들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그것들 위에 작용할 때 그들의 연합된 작용들에 의해서 인간 정신 위에 형성된 감동으로부터 기인된다.
[156:5.2](1738-#1) “...개인의 정신과 도덕은 그것으로부터 인간적 발달과 신적인 운명의 좀 더 높은 이 현상들이 솟아나게 될 토양이다. 진화하는 혼의 그 토양은 인간적이고 물질적이지만, 정신과 영이 합쳐진 피조물의 운명은 영적이고 신적이다.”
[196:3.3](2094-#2) “실체에 대한 발전적 이해는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에 상응한다.”
[196:3.10](2094-#9) “인간의 정신은 참된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며; 인간의 경험은 우주적 통찰력을 주지 않는다. 도덕적 가치들을 인식하고 영적 의미들을 식별하는 통찰력에 관해서, 인간의 정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발견하고 인식하며 해석하고 선택하는 것이 전부이다.”
[196:3.14](2095-#1) “인간의 구원은 영적 가치 분류자--내주하는 해석자이며 통합자--에 의해 선정된 그러한 가치들을 선택하는 일에 인간의 의지를 바치는 것에 상당히 많이 의존한다. 개인적인 종교 경험은 두 단계로 구성되는데: 인간 정신 속에서의 발견과 내재하는 신적인 영에 의한 계시이다.”
[13:4.4](150-#3) “물리적 권세와 현존과 기능은 크고 작은 모든 우주들에서 동일하다. 영적 현존 또는 반응에 있어서 다른 요소는 의지적 피조물들에 의한 그것의 이해 및 수용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절대적이고 존재론적인 신격의 영적 현존이, 피조된 존재들의 일부분에서 충성의 태도 또는 불충성의 태도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든지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 반(半)절대적이고 경험적인 신격의 기능적 현존이 그러한 유한 피조 존재들의 결정과 선택 그리고 의지-태도에 의해--개별 존재, 행성, 체계, 성운, 또는 우주의 충성과 헌신에 의해-- 확실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도 동시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신성의 이 영적 현존은 변덕스럽지도 않고 독단적이지도 않으며; 그것의 경험적 변화는 인격적 피조물들의 자유의지 재능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다.”
[13:4.5](150-#4) “영적 현존의 다양성을 결정하는 것은 너희들 자신의 마음과 정신 속에 있고 너희 자신의 선택의 방법 안에, 너희 정신의 결정에, 그리고 너희 자신의 의지의 결정 속에 들어 있다. 이 다양성은 지성적 인격 존재들의 자유의지 반응 속에 선천적으로 들어있는데, 우주적 아버지가 정한 존재들은 이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격들은 피조물 선택의 이 다양성의 조건들과 요구들을 맞추고 만족시킴에 있어서 그들의 영들의 밀물과 썰물에 항상 진실한데, 지금은 신적으로 증여된 그들의 선택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서 그들의 피조물들이 불리하게 결정하는 장면으로부터 다시 한 번 자신들을 물러나게 하려는 진지한 욕구에 반응하여 그들의 현존을 더욱 증여한다. 그리하여 신성을 갖는 그 영은 그 영역의 피조물들의 선택에 겸손하게 순종한다.”
[56:6.3](641-#4) “존재의[기능적 현존의] 어떤 차원에서든지 하나님은 그러한 차원에서 사는 그 존재들의 개념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2. 우주 틀들(유란시아서의 큰 거부자(拒否者))
모든 철학적, 신학적 및 형이상학적 체계들은 실체의 근본적 연합을, 비교하고 평가하며 그리하여 이해하는 쪽으로 안내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 범주들 속으로 나누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게 선택된 그 범주들은 그 후에 맡은 일의 지성적 뼈대를 준비하고 그것으로부터 도출되지도 모르는 결론들을 조절한다. 더욱이, 모든 정보는 이전에 획득한 정보에 대한 각 개인의 태도의 상황 속에서 해석된다. 유란시아서는 이 문제들을 “우주 틀들”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에게 경고한다.
[115:1.1](1260-#2)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며 진화하는 지성체들은, 만약에 생각하는 우주 틀을 형성하기에 모든 정신의 선천적인 능력이 너무 높거나 또는 낮다면 총괄우주에서는 무기력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최초의 이성적 사고 원형(原型)을 형성할 수 없게 될 것임을 뜻한다. 만약에 정신이 결말을 추론할 수 없다면 즉, 만약에 그것이 참된 근원들에 이를 수 없다면, 그러한 정신은 반드시 결말들을 가정할 것이며 정신이 창조한 이 가정들의 틀 안에서 논리적인 사고의 의미들을 그것이 갖게 될 근원들을 창안해 낼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 사고를 위한 그러한 우주적 틀들이 이성적인 지성 작용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반면, 그들은 예외 없이 어떤 더욱 큰 또는 더욱 작은 정도로 잘못되어 있다.
[115:1.2](1260-#3) “우주에 대한 개념적인 틀들은 오직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며; 그들은 확장되는 우주 이해의 확대 앞에 결국 반드시 길을 내주게 되는 유용한 발판들이다.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선함, 도덕성, 윤리, 의무, 사랑, 신성, 근원, 존재, 목적, 운명, 시간, 공간, 심지어는 신격에 대한 이해도 오직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하나님은 아버지 개념보다 훨씬 더 크신 분이지만, 아버지는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개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주-피조물 관계를 보여주는 아버지-아들 관계는, 오르본톤에서, 하보나에서, 그리고 낙원에서 성취될 신격에 대한 그 초인간적 개념들에 의해 증대될 것이다. 인간은 필사적 우주 틀 속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이 그 속에 사고가 자리잡을 수 있는 다른 더 높은 틀들을 상상할 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18:6.7](1300-#3) “선택의 행동인 의지 작용은 보다 높고 보다 전에 있었던 선택에 반응하여 실현되어 온 우주 구조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3. 신격, 신성 그리고 하나님 (중요한 용어들에 대한 고찰)
“총괄우주에 대한 연구”로부터:
“존재론적이라는 단어는 그 문서들에서 특별하게 사용된다. 그것은 시작이나 끝이 없는 영원한 어떤 덧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없다. 존재론적 존재는 어떤 경험이든지 그 이전에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존재론적이다. 따라서 ”존재론적“이라는 단어는 경험적이라는 말의 반대말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기원을 갖는 존재들 밀 사물들을 가리킨다. 또한 그것은 경험에 의해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존재들을 가리킨다. 어떤 존재론적 실체들까지도 더 높은 차원들을 향한 경험적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 다른 실체들은 전적으로 (경험적이며; 인간은 그의 성장에 있어서 전적으로 경험적이다.)”
신격과 신성:
서문에서 볼 수 있는 정의들에 주의를 집중하고; 그것들을 기억하여 유란시아서에 대한 너희의 연구에 있어서 너희가 그것들을 마주칠 때마다 그것들을 참조하라--너희의 이해는 단순한 이 도구의 활용에 의해 의미심장하게 증대될 것이다.
[0:1.2](3) 신격은 하나님으로서 인격화될 수 있다...신격은 연합의 질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연합시키는 이 특성은 피조물들에 의해 신성으로 가장 잘 이해된다.
[0:1.6-17](3)
신성은 신격의 성격적, 통일시키는, 그리고 조화시키는 특성이다.
신성은 피조물에게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으로 이해될 수 있고...
신성은 인격체들 안에서 사랑과 자비 그리고 사역으로 상호 관련되고...
[0:1.14](3) “신격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