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1, 2019

예수의 행동 - "성전에서 외쳐 가라사대"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의 뜻과는 다르게 길들여져 있지는 않은가? 예수께서 인간 육신 속에 있는 동안의 행동을 면밀히 들여다보자.
 
요한복음 7장에서 보면,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의 관념은,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였음에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혹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오는지 알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혹은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임이 성경에 기록돼 있다고 주장했다. 43절은 이 문제로 인해 무리 중에서 쟁론이 일어나기까지 했다고 한다. 당파마다 또는 지역이나 지파마다 주장이 달랐던 것 같다.
 
반면에 예수가 전하고자 하는 명백한 진리는 내가 그 존재다.”라는 것이었으며 유대인의 여러 주장과는 완전히 달랐다. 유대인의 주장은 우리에게 맞추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완고했다. 그럼에도 유대인 전통과 상식에 예수가 억지로 맞춰야 했나?
 
예수는 진리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헬라어 원어성경은 크라조라는 단어로 기록돼 있는데, “울부짖다. 고함치다. 소리 지르다.”라는 의미의 단어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 가라사대또는 말씀하셨다는 분위기와는 매우 다르다. 예수가 외친 내용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 앞에서 고함치듯 외쳐야만 했을까? 간단하고 단순한 것 같은 이 몇 마디 내용이, 예수께서 전파한 그 천국복음의 핵심이요 기초임을 깨닫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더구나 그 장소가 어디였는가? 성전이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다. 유대인의 상식에서도, 그곳은 누구나 조용하고 침착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예수는 요한복음 216절 말씀에서 보듯이 자신의 아버지의 집에서 그렇게 했다. 왜 하필 성전에서 그래야만 했을까? 아버지 하나님의 집이야말로 진리가 최고로 빛나야 할 곳이며 그 진리가 세상으로 퍼져나갈 중심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아들의 권리로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었다.
 
예수의 이 행동이 당시 유력한 유대인의 모든 전통과 상식 그리고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 분명했지만, 하나님 아버지 뜻에는 100%일치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세상의 요구는 무엇인가? 교회와 그리스도인 자신의 보편적 전통과 상식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도 그러한가? 만일 세상의 요구와 하나님의 뜻이 서로 다르다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맞춰 행동할 것인가?
 
예수는 가르치기만 한 것 아니라 행동하셨다. 행동이 더 중요하고 더 의미심장할 수 있다. 예수의 행동에서 그리스도인이 깨달아야 할 교훈은 세상의 요구보다 아버지의 뜻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그렇게 행동했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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