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손가락으로 땅에 쓰는 것이 쉬울까? 요한복음 8장은 예수께서 후자의 행동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무 의미나 의도 또는 목적 없는 행동이었을까?
말과 글의 특징이 분명히 다르다. 말은 휘발성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없어지지만, 즉시성과 동시성이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기본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말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변하고 전파될수록 틀려지기 쉬우며 일단 말을 입 밖에 꺼내면 주워 담을 수 없다.
반면에 글의 특징은 불변성과 기록성이 뛰어나지만 순차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사전달의 2차적 수단으로 이용되나, 일관성과 보존성이 담보되고, 전파되기 전에 주워 담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간이 말씀 즉 진리를 만나면 숨겨졌던 죄가 드러나 심판 또는 정죄가 이뤄지게 되며, 거짓과 음모가 드러나게 돼 있다. 예수는 공생애 동안 어떤 개인도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가룟 유다와 빌라도까지도 시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스스로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끊임없이 노력하셨음을 복음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는 진실을 말로 전달하실 수 없는 경우들을 많이 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요한복음 8장이 소개하는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음행 중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다고 여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음행 또는 간음은 비밀리에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현장에서 잡힐 수 있을까? 미리 준비되고 계획된 연극일 가능성이 많지 않나?
아무튼, 모든 것을 아시는 창조주요 진리 자체이신 예수께서 그 사건의 진실을 말로 전달했다면 거짓과 음모가 공개되고 죄인에 대한 정죄와 심판이 즉시 이뤄졌을 것이며, 듣고 있던 무리들이 즉각 반응하여 본질을 오해하고 진실이 변질되기 쉬웠을 것이다. 군중심리가 작동됨으로써 개인의 양심이 억압되고 오히려 더 강퍅해짐으로써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로 전달한 예수의 행동의 예상되는 효력은 무엇일까? 첫째, 군중의 호기심을 유발함으로써 각자 스스로 예수께 가까이 나아가게 했을 것이다. 둘째, 비공개 정죄를 통해 각자 자기 눈으로 읽고 자기 죄를 기억하게 했을 것이다. 셋째, 개인적인 양심을 자극함으로써 강제가 아닌 자발적 회개에 이르게 함으로써 스스로 그 자리를 떠나게 했을 것이다. 넷째, 듣기는 순간적인 반면 여럿이 보기까지는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하므로 돌아선 자들이 자기성찰과 진리 발견의 기회를 갖게 됐을 것이다.
예수의 이 행동에서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교훈을 마태복음 18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7.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아무리 바른 말이라도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판단하기 전에 내 생각이 진리에 입각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개인에 대한 말이나 행동은 1:1로 직접 시작하고 하나님 뜻에 맞지 않음을 확신할 때에만 그리고 죄의 확산을 방지하는 목적이 분명할 때에만 공개해야 한다. 예수는 그렇게 하셨다.tck
예수의 행동을 본받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