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6, 2019

예수의 행동 -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마가복음 1013-16절에서 두 가지 핵심 단어를 꼽는다면 어린아이들안아주심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느냐 못하느냐의 조건 그리고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건이 마태복음 19:13-15 누가복음 18:15-17에 기록돼 있지만 마가복음과는 달리 어린 아이들을 안아주신 예수의 행동이 빠져있다. 아이들이 예수 앞으로 오는 것을 제자들이 막았는데 이것은 어린아이들을 인구조사에서 제외할 정도로 경시한 유대인 정서 때문이었다. 당시에 마가 역시 소년이었으므로 어린아이들을 안아주시는 예수의 행동에 감격하여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어른인 제자들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예수께서는 오히려 분노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게다가 아이들을 품에 안아주기까지 했다.
 
안아주심은 용납, 보호, 공유, 그리고 하나 됨 등을 의미할 수 있다. 대상은 어른 또는 제자들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이었다. 왜 그랬을까? 단지 어리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천국 소유자이기 때문이었다. 역으로, 천국 소유자가 되려면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어린아이 같은 제자가 돼야만 한다. 그리고 천국 소유자는 창조주 예수님이 직접 안아주신다. 얼마나 대단한 영광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은 나는 예수께 어린아이 같은 참 제자인가? 아니면 어른 즉 명목상 제자인가?”하는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참 제자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첫째 순수함이다. 세상의 야망과 권모술수 등의 때가 묻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아이 같은 제자란 자기 야망과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예수 또는 천국복음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1310-11(“10.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을 보면, 예수께서 직접 택하신 사도들 중에도 순수하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다.
 
둘째, 어린아이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지한다. 따라서 어린아이 같은 제자란 자기 능력을 과시하지 않는 즉 교만하지 않은 겸손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6: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셋째, 어린아이는 자신의 참 부모 또는 보호자를 알아보고 오직 그에게만 의존한다. 어린아이 같은 제자란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자신의 영원한 참 아버지이심을 알고 의존하며 세상의 피조물이나 체제에 의존치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962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라고 선언한다.
 
넷째, 어린아이는 받은 은혜에 만족하고 기억하며 감사한다. 그러므로 어린아이 같은 제자는 끝없는 요구, 욕심과 야망, 불만족, 불평, 원망, 배반 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누가복음 1817절에서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한다.
 
천국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는 인생 되지 말아야만 할 것을 예수께서 행동으로 어린아이들을 안아줌으로 보여주셨다. 누구든 천국을 소망한다면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돼야 할 것이다. 순교 당하던 스데반이 봤던 것처럼(사도행전 7:55-56), 품에 안아주시려 두 팔 벌리고 있는 창조주를 바라보자!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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