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장 5-13절에는 로마 군인 백부장의 요청으로 그의 하인이 예수께 치유 받은 이야기가 기록돼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상당히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이 누가복음 7장 1-10절과 요한복음 4장 43-54절에도 기록돼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의 두 가지 행동을 발견케 된다. 첫째는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는 말에서 보듯 예수께서 직접 가서 고쳐주는 행동을 하고자 했다. 둘째는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라는 말씀에서 보듯 예수께서는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말씀만 했는데 가려던 분명한 계획을 멈췄으니 이것 역시 예수의 행동에 해당한다. 여러분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면 이 두 가지 행동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나? 대개 예수님이 직접 와서 고쳐주는 쪽이 더 큰 은혜와 영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면 예수의 두 가지 행동에 따른 결과를 살펴보자. 첫째,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는 약속대로 직접 가서 고쳐주셨다면 치유 받은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명백히, 백부장과 하인의 믿음(신앙)보다는 예수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치유 받은 결과로 그들에게 믿음(신앙)이 생기지 않았다면 죽은 후 그들 자신에게 남는 것은 없다. 둘째, 가시지 않고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가 치유 받았는데, 그것은 백부장의 믿음(신앙) 때문에 일어난 결과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죽은 후에도 그 믿음(신앙)은 그들에게 영원히 남게 되고, 그것이 바로 구원과 영생 및 천국성취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여러분에게 더 좋은가? 어느 쪽을 더 원하나? 어느 쪽이 구원과 영생에 가까운가?
이제 예수의 은혜와 예수의 바램을 예수의 행동에서 찾아보자. 먼저, 예수의 바램은 모든 인간이 올바른 믿음(신앙)의 주인공 되어 구원받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신앙이 확고할 때만 성취된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백부장에게 이런 믿음(신앙)이 이미 있음을 보셨기에, 그 잘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놀라고 기뻐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의 은혜는 직접 가서라도 그리고 믿음이 없더라도 고쳐주시기 원하는 것이다. 이 은혜 때문에 우리의 믿음(신앙)이 연약할 때에도 주님이 영으로 직접 와서 은혜를 베푸셨고 믿음과 신앙이 생겼으니 예수의 은혜 역시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비결은 예수의 은혜보다 예수의 바램 즉 내 믿음(신앙)으로 문제를 해결함(은혜 체험)에 있다.
백부장의 신앙이 주는 교훈에서 우리는 주님을 놀라실 만큼 기쁘시게 하는 비결을 배울 수 있다. 첫째, 그는 제자로 부름 받지 못했음에도 예수를 “주님”으로 모셨다. 백부장이지만 “부하”를 대하듯 요청하지 않았다. 둘째, 그는 “주님”께 간구했다. 강요하거나 원망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셋째, 그는 “말씀”의 능력을 믿었다. 오직 눈에 보이는 물질적 방법에 의존하려는 오늘날 그리스도인과는 달랐다. 넷째, 그는 “의심” 없이 믿었다. 입으로만 믿거나 반신반의하며 믿지 않았다. 마태복음 14장 22-33절에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께로 가다 물에 빠지게 될 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 받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 예수님이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하는 순간에 백부장 마음속에 의심이 있었다면 그 의심대로 됐을 것이며 치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성도에게 “주님의 은혜”는 정말로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천국 성취 즉 구원 성취이며 예수님과의 만남이므로, “주님의 은혜”보다 “주님의 바램”에 더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주님의 바램은 우리 신앙의 확고함을 보시는 것이며, 직접 보실 때마다 놀라고 기뻐하실 것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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