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날 때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했던 예수께서는 땅을 향해서도 기도하셨다고 마태복음 26장 36-46절에 기록돼 있다. 마가복음 14장 35절과 누가복음 22장 41절에서도 예수의 기도하는 동일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지만 마태복음서가 가장 자세하다(“...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마치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는 듯한 자세였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22장 43-44절의 추가적인 상황 설명(“43.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으로 비춰볼 때 대단히 간절한 마음과 절박함 그리고 위기감을 보여주는 행동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실 때는 이미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반면, 겟세마네에서는 아직 아버지의 뜻을 확증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도 혼란스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이 때 예수의 기도 내용을 3가지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첫째, “이 잔”은 진노의 잔(시75:8,사51:22-23,렘25:15,겔5:13,7:8-9,9:8-9,23:31)인 동시에 구원의 잔(시116:13)을 의미한다. 둘째, “마심”이란 홀로 감당함 그리고 완결지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자면, 이 잔을 마심으로써 가룟 유다의 구원 가능성을 종결되고 그의 배반으로 말미암는 멸망이 확정되는 것이며 온 인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가 완성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크게 고민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셋째, “지나감”은 다른 때 또는 다른 방법을 기다릴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행해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한탄하실 정도로, 선택된 제자들마저 전혀 준비되지 않은 현실 때문에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자신의 세상 만족이나 성공이 아니라 심판과 구원의 완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단코! 인자로서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예수처럼 이렇게 기도하고 있고 또한 기도해야 한다. 우리도 하늘을 보며 기도하고 땅을 행해서도 기도한다. 그런데 하늘을 보며 기도할 때, 예수가 하시던 것처럼 믿고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있나? 빌립보서 4장 6-7절(“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처럼,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면 이미 응답 받은 것과 마찬가지이니, 하늘을 우러러 감사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이 때에도 의심하며 떼를 쓰듯 욕심으로 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도 무릎 꿇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가 기도하셨던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알기 위해 그리고 구원의 완결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아버지의 뜻을 확신하지 못하는 기도는 이방인의 기도 또는 중언부언하는 기도일 수밖에 없다(마태복음 6장 7절 참조). 그러나 아직 확신 없이 기도하더라도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가 그 기도의 결론이고 진심이라면 어떤 기도든 아버지께서 기뻐 받으실 것이다. 예수처럼 그렇게 기도하면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방법으로 반드시 더 좋은 결과를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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