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28-35절에 따르면, 예수의 행동 중에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모습도 있었다. 마치 “게걸스럽게 먹고 술에 취해 지냈다”는 말처럼 들린다. 정말 그러셨을까?
스토아학파가 금욕주의를 제창한 것 같지만, 실상은 원시시대부터 금욕주의가 있었는데, 풍요할 때 저장해 둘 수 없는 연고로 항상 음식 부족 사태를 심각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욕주의의 영향 때문에, 탐욕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수에 맞게 살아갈 경우에도, 의식주를 즐기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왔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도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율법사 등의 지도 계층이 금욕주의를 주도했고 높이 숭앙하기까지 했다. 특히 유대교 중 레위인이 중심된 에세네파가 최고의 금욕생활을 했고 세례 요한이 대표적인 경우였는데, 일반적으로 금욕생활을 신앙의 척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서, 금욕생활을 못하면 죄 짓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따라서 복잡한 식사 규례를 만들고 철저히 준수했고, 고의로 어기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비난하고 정죄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이 만든 전통에 스스로 매임으로써 전통의 노예가 됐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는 맛있게 먹고 즐겁게 마셨으니, 유대인 지도자들의 기준에 의하면 예수는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예수의 행동의 근거는 두 가지다: (1)예수는 유대인 전통에 매이지 않고 창조 질서에 따라 먹었다. 맛을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므로 유익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감사하는 것이 창조 질서에 맞다. 배부름을 느끼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만족할 만큼 먹으면서 감사하는 것이 창조 질서에 맞다. (2)예수는 유대인 전통에 어긋나더라도 창조 질서에 따라 마셨다. 육신의 원기회복과 건강 그리고 즐거움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탐닉하지 않는 범위에서 육신의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도록 마시며 감사하는 것이 창조 질서에 합당하다.
예수님의 행동과 유대인 지도자들의 행동 중 누가 옳은가? 옳고 그름은 열매 즉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고린도전서 3:6-7, 마태복음 23:15 참조). 육신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예수의 행동인가 아니면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인가? 영혼을 더 선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예수의 행동인가 아니면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인가? 천국에 가까이 가도록 하는 것은 예수의 행동인가 아니면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인가?
요한복음 8장 32절(“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처럼, 진리(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감이 옳다. 그러려면 진리가 아닌 세상의 비난에 대해 담대해야만 한다. 창조 질서에 따라 육신과 영혼에 유익함을 공급하고 천국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예수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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