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5, 2019

예수의 행동 - "응하게 하려 하사"

인생의 전체 과정에서 죽음만큼 심각하고 중요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 죽음이 임하는 경우를 (1)급사 (2)질병/사고 (3)노환 등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각 경우마다, 죽음이 다가옴을 인식한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어떤 상태로 살아갈까? 첫째, 사고(事故) 또는 기능정지에 의한 급사(急死)는 순간적이거나 수 분 내지 수 시간에 이뤄진다. 둘째, 질병 또는 사고 후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수 일 내지 수 년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불치 암 판정 후 환자의 심리단계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끝으로 노환의 경우는 수 년 내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고, 기억력과 판단력 그리고 집중력이 급감하게 된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 받았다는 성도의 경우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까?
 
사람들은 대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어한다. 그래서 미리 대처하지 못하고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우에 따라 불신자와 동일한 모습 또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 앞에서 어떤 모습과 행동을 하셨을까?
 
예수의 죽으심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신 때부터 운명하시기까지 대략 12시간 정도 걸린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짧은 시간을 통해 인간의 죽음 과정 전체를 직접 체험하셨다. 요한복음 1923-30절이 비교적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 예수께서는 죽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최고 상태로 의식을 유지하셨고 완전한 신앙을 간직하셨다. 하나님 말씀이 자동으로 응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렇게 했기에 가능했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당연했을까? 쉽게 대처하셨을까? 아니다! 미리 완벽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인자(人子)로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행동을 살펴보면, 첫째로 예수님은 영혼을 아버지께 완전하게 의탁했다(누가복음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하게 의탁했기에 완전한 최상의 결과가 부활로 성취됐다. 아버지께 의탁하지 못하면 불신앙에 빠지게 되고 부끄러운 성도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만 하면 될까?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해주실까? 아니다! 다른 두 가지에도 집중해야만 한다.
 
둘째로 예수님은 의식이 육신을 완전하게 다스렸다. 이렇게 돼야 육신에 문제가 생길 때 대처할 방법을 의식이 능동적으로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이사야서 537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는 말씀과 똑같은 모습을 예수께서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의식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734절은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라고 증언한다. 쓸개 탄 포도주는 당대에 통용되던 진통제의 일종이다. 육신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의식을 몽롱하게 만드는 방법인데 예수께서는 이것을 거부하셨다. 고통 속에서도 의식을 완전하게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육신의 고통이 의식을 지배하도록 허용하면 부끄러운 성도의 모습이 되기 쉽다. 비교적 약하고 짧은 고통에도 진통제에 의지하게 되면 약물에 중독되어 무기력과 무감각 그리고 환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육신이 건강하고 자주적 의식이 가능할 때 자신의 의식을 습관화 시켜야 무의식 중에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행동을 이어갈 수 있다.
 
셋째로 예수님은 의식을 아버지께 완전하게 집중시켰다. 그리하여 성도들도 천국과 영생 성취를 최고 기준으로 삼을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주셨다. 육신이 죽어가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태복음 27:46/시편 22:1)”라고 외치셨다. 세상이 의식을 지배하도록 허용하면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죽음의 때는 순서 없이 예고 없이 임한다. 영생을 성취한 성도다운 죽음은 예수께서 육신의 죽음의 과정에서 보여주신 모습과 행동을 본받음으로써만 가능하다. 죽는 순간까지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가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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