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9-26절을 보면,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정탐꾼을 보내 예수를 넘어뜨리려고 세금과 관련된 질문을 했을 때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남께 드리라”고 대답함으로써 그들의 간계를 물리치셨다. 그러면 이 말씀이 오직 세금 또는 돈 문제였을까? 예수의 행동에서 추측 가능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권세에 대해 어떻게 처세할 것인가?에 대한 교훈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두 가지 차원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구분치 못하면 문제에 봉착할 때 교만해지거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르게 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의 권세가 주관하는 평면이고 세상 지배하는 규칙과 법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권세가 주관하는 평면이고 영혼, 구원, 천국, 영생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가이사에게”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에 의한 세상 규칙과 법도를 따르라”는 말과 같으며, “하나님께”란 “영혼구원은 하나님 고유의 권세임을 인정하고 순종하라”는 말과 같다. 창조된 모든 것이 원래 하나님의 것이지만, 물질세계의 관리와 운영은 가이사에게 위임됐다. 가이사의 권세는 오직 이 세상에서만 유효한 반면 하나님 권세는 영원히 유효하다.
예수의 공생애는 온전히 하나님의 평면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한 예수의 행동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순교자라도 하나님 평면에서만 행동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것을 찾아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만 몰두했다.
반면에 유대인의 메시야관은 “하나님이 가이사의 것에 직접 개입한다”고 믿고 고대했다. 그래서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가이사의 권세에 도전하게 하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가이사의 것에는 전혀 개입치 않으셨다. 왜? 위임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기간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마태복음 25장 14-30절의 달란트 비유(“1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19.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 말씀처럼 가이사에게 오직 결산만 요구하신다.
예수께서는 성도의 삶이 이중적일 수밖에 없음을 아시기에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모든 영혼 관련 문제는 오직 하나님 법도만 따르라”는 말씀이며 예수의 행동이 이 원칙의 완전한 최상의 모범이며, 성도는 닮아갈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된다. (2)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이사가 정한 법칙 따르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무조건 복종하라는 말씀인가? 누가복음 3:7-17에 의하면, 권한을 위임받은 가이사에게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이 있는데 “하나님께 위임 받은 권위 내에서 하나님 뜻대로 역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 속에서 거의 모든 가이사들은 불순종했고 자기 야망에 눈이 어두워 불법과 불의를 일삼으면서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게 했으며 예수의 추종자들을 고난 속에 몰아넣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것은 가이사에게 뺏기지 말고 지키되, 예수께서 보여준 행동처럼 무저항 즉 십자가와 순교의 정신을 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는 말씀을 예수님 자신이 먼저 완전히 행하셨음을 기억하면서, 천국 들어가는 날까지 가이사의 위임받은 권세를 인정하고 따르되 영혼 문제는 오직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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