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 2019

예수의 행동 - "세리와 죄인의 친구"

요한복음 1513-15절에서 예수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친구라고 했다. 인간이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친구 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을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예수의 친구가 되는 것인가? 예수의 행동에 그 해답이 있다.
 
예수에 대한 유대인의 평가는 예수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며 될 수 없다였다. 왜 그렇게 평가했을까?
 
부자라 함은 물질만 아니라 지식, 혈통 등 어떤 면에서든 많이 소유하거나 특혜를 누리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그들만의 특성이 있다. 첫째, 부자는 자기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싶어 한다. 둘째, 부자는 자신의 소유 또는 기득권을 뺏기기 싫어하며 누구든 뺏으려는 자를 원수로 여긴다. 셋째, 부자는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거나 멀리한다. 예수는 이 3가지 특성과 정 반대였다. 심지어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예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업신여김을 받았으며,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귀신 들렸다는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마태복음 11:12-19 참조)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없었으며, “부자는 천국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의 주인공이 되었다.
 
요한복음 15:13-15절은 예수가 원하는 친구를 3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1)예수의 명대로 행하는 사람 (2)주인의 하는 것을 알고 싶은 사람 (3)아버지의 뜻을 받고 따르는 사람. 마태복음 22장과 누가복음 14장의 혼인잔치 비유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을 친구로 초청했다. 예수께서는 원래부터 세리와 죄인들만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었다. 공생애 중에 부자들과도 교류하신 것이 분명하다(아리마대 요셉, 부자 청년관원, 회당장, 안드레와 베드로-야고보와 요한 등). 그러나 자칭의인 즉 부자들은 초청 거부했으며, 비난하고 공격하기까지 했다. 스스로 예수의 원수가 됐다. 반면에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의 초청에 응답하고 진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예수의 친구가 됐다.
 
친구는 오직 양방의 관계에서 성립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무리 원해도 인간 자신이 거부하면 친구 관계가 성립될 수 없다.
 
초청받았음에도 예수의 친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복음 14:7-14절은 예수를 청한 자와 그의 청함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청하는 자가 자기 벗, 형제, 친척, 또는 부유한 이웃만 청하면 청함 받은 사람이 되갚기 때문에 주님과는 무관하게 된다. 또한 청함 받은 사람도 스스로 높아지려 하다가는 강제로 낮아지게 되므로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없음을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예수의 친구가 되는 비결은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대로 스스로 낮아지는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행하셨으며, 그 결과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난을 들었다. 누가복음 1410절에서는 말석에 앉으라고 권면하며, 13절에서는 가난한 자, 병신, 저는 자, 소경들을 청하라고 권면하신다. 그러면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예수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친구로 초청하신다. 그러나 스스로 낮아지는 자만이 예수의 친구 될 수 있다. 누가 창조주 예수님의 영원한 친구 되는 영광을 누릴 것인가?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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