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 1-11절은 예수께서 배 위에서 가르친 후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 때 호숫가에는 배가 두 척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시몬의 배를 선택하여 타신 것으로 돼 있다. 예수께서 선택하지 않은 다른 배는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배였던 것으로 보인다.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예수의 행동을 볼 때, 베드로가 택함 받고 동업자들은 버림 받은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 차별하는 행동을 하신 것일까? 베드로의 신앙이 더 좋아서? 아니면 베드로를 더 사랑해서? 결말 부분을 보면 두 배 모두 동일한 혜택을 입었고 그들 모두 동일한 결단을 하고 사명자가 됐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을 때 베드로가 그것을 자랑했다면 어땠을까? 야고보와 요한이 시기 질투하여 예수께 항의하거나 미워했다면 어떤 결과가 이뤄졌을까?
성도의 실제 신앙생활을 비교하게 되면 예수께서 공정치 않은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됨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열심히 믿을수록 “내가 하나님께 차별당한 것 같다” 또는 “내가 택하심 받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을까? 유대인은 선민의식에 젖어 자화자찬하고 이방인을 멸시한 반면 이방인은 패배의식과 시기질투 때문에 인본주의와 불신앙에 휩쓸리고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과 공격을 멈추지 않은 역사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때 예수께서 보여주신 행동과 제자들의 반응에서 깨달아야 할 교훈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의 규칙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공평한 기회와 공정한 대가가 반드시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는 불공평한 기회 제공과 획일적인 또는 불공정한 대가로 인해 많은 사람이 불행해진다. 사람들은 “똑같은 분배하고 똑같은 혜택을 누리는 것이 공평과 공정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만 이것은 공산주의의 허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헌신하고 희생하며 투자한 입장에서는 온전한 불공정이고 불공평함이고, 게으르거나 가난한 자들의 환상이며, 이것을 부추기는 자들은 악의 세력임에 틀림없다.
둘째는 택하심의 조건이다. 베드로가 더 훌륭해서 그의 배가 선택됐을까? 요한3서 1장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는데, 범사가 잘됐다고 해서 반드시 영혼이 잘 된 것은 아님을 알아야만 한다. 오히려 베드로의 영혼이 더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예수의 행동에서, 택함 받았던 베드로나 택함 받지 못한 야고보와 요한이나 똑같은 혜택의 주인공이 됐다. 더 훌륭하기 때문에 택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택함 받음을 자랑해서도, 택함 받지 못함을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셋째는 택하심의 혜택인데 본인의 결단과 행동만큼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뜻에 따른 “온전한 공평과 공정”이다.
넷째는 부르심의 대상인데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는 누구든지 해당된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특별대우를 받을 수 없고 차별대우도 결코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완전하게 공평하고 공정하신 분이며, 투자한 만큼 돌려받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거나 “나를 더 사랑하신다”고 느끼는 것은 오해와 착각이다. 예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함 역시 인간의 욕심과 무지 때문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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