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거나 부러워하기도 한다.
누가복음 18장 18-30에는 어떤 부자 청년 관원이 예수께 와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이 관원은 “예수께로 나아온 사람”, “영생에 관심 깊은 사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해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그는 매우 도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의 삶을 사는 청년이었다. 오늘날로 하면 매우 성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원에 대한 예수의 반응 즉 행동은 첫째, 조건 없이 만나주셨다. 누구든지, 심지어 죄인조차 예수 앞으로 나아가 만날 수 있다. 둘째, 그의 고백을 끝까지 들어주셨다. 강청하는 기도에, 심지어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내용이라도 끝까지 들어주실 것이다. 셋째,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해법을 말씀하셨다. 기도자가 자신이 응답 받았음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예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 응답을 주실 수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수님의 반응을 보면 이 관원은 대단히 성공적이고 믿음 좋은 유대인 아닌가? 이런 체험을 직접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존경스럽지 않은가?
관원이 예수로부터 떠난 후 예수님의 평가는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였다. 이 관원의 인생이 끝날 때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류의 그리스도인이라면 그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평가하시지 않겠나? 인생이 끝날 때 그러한 그리스도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의 관점에서 이 관원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 관원은 어째서 천국 들어가기 심히 어렵다는 평가 받게 됐을까? 다만 물질적 부자라서? 그렇다면 부자 그리스도인은 다 지옥행이 돼야만 할 것이다. 그 관원의 문제의 핵심은, 자신도 잘못될 수 있음, 틀릴 수 있음을 인식하지 못함에 있다. 그래서 남의 말을 무조건 경시하다가 예수께서 제시한 진리조차 거부하게 된 것이다. 심히 근심하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강제로 이끈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착각과 오해로 인해 영생 스스로 잃게 된 것이다. 그의 고백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렇다: “나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으니 내 돈도 의롭다. 내 권력도 의롭다. 내 명예도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조언이나 권면도 우습게 여길 수밖에 없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 중에 이런 사람이 없을까?
“들으시고 가라사대”라는 예수의 행동이 주는 교훈은 첫째, 주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해서 천국행이 보장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둘째, 심판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 해서 그리스도인이 이미 의인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셋째,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바로잡아가지 않으면 누구든 영생을 얻기가 매우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네게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예수님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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