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 2019

예수의 행동 - "나아가 가라사대"

요한복음 18장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체포되실 때 나아가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무 특별한 의미도 없는 행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목적과 의도로 그렇게 했다면 주목해 봐야만 할 것이다. “나아가는행동이 선한 의도였는가 아니면 사악한 의도였는가? “가라사대가 선한 의도에서였는가 아니면 사악한 의도에서였는가?
 
선함과 사악함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자신의 유익 위해 남을 이용하려는 목적과 의도인가? 자신의 희생 예상되더라도 공의와 공익을 이루려는 목적과 의도인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무시하고 넘어갈 예수의 행동과 말씀이 아니다. 예수는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갖고 있었을까? 우리는 어떤 목적과 의도로 행동하고 말하고 있나?
 
예수의 행동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스스로 나아가 말씀했다는 사실에 있다. 깜깜한 밤중이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수 있는데도 예수는 자신을 밝히심으로써 군병들에게 체포되었고 저항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첫째, “당할 일을 다 아셨다는 말씀에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심이 자발적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대개 환경에 떠밀려서, 부지불식간에, 의무감에서, 또는 사명이니 마지못해서 그렇게 한다. 사명을 받은 요나가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사명을 감당하게 됐던 모습이 좋은 예다.
 
둘째, 친구를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제자들이 주님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기 전에 예수께서 군병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면 여럿이 목숨을 잃거나 다칠 수 있었다. 마태복음 2652(“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이 이를 잘 말해준다. 사람들은 약자들의 희생을 자신의 욕심과 야망 성취에 이용하려 하지만 예수는 요한복음 1513절 말씀(“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을 몸소 보여줬다.
 
셋째, 가룟 유다에게 배반을 돌이킬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누가복음 22:47-50 참조). 가룟 유다가 입 맞춤으로 예수를 지목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군병들 앞으로 나감으로써 그의 배반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사람들은 자기 주변 사람을 그의 실수나 잘못으로부터 구원하기보다 심판하기를 더 좋아한다. 유대인 지도자들과 추종자들이 그러했고, 비교적 머리가 비상한 한국사람 중에도 그러한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이 있다. 예수님은 유다조차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신 것으로 보인다. 유다의 멸망은 유다 자신이 자초했다.
 
예수 믿는 자로서 예수의 행동을 본받기 원한다면 예수님과 같은 목적과 의도를 갖고 행동하고 말하려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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