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예수 이름으로 기도만 하면 다 응답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응답 받지 못했다고 판단될 때 화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입장을 바꿔서, 행치 않으실 수 있는 권리가 예수께 있는가를 질문해 보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이름으로...해주실줄로 될 줄로 믿~습니다!”라고 기도한다. 마치 예수께는 “행치 않으실 권리가 없다”고 믿는 듯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응답 받지 못하면 “나를 차별대우 하신다”고 푸념한다.
마태복음 13장 53-58절은 예수께서 자기 고향을 방문했을 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능력을 행치 않았다”고 특별히 덧붙였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보다 더 많은 능력 고향에서 행하실 것으로 기대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향 사람들이 실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태는 그들의 “믿음” 탓이라고 설명하지만, 단지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나? 그들은 심지어 예수를 배척하기까지 했다. 누가복음 4장 16-30절은 이 사건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를 언급했을 때 그들이 예수에 대해 분노했다고 한다. 배척한 정도가 아니라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고향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줬어야만 할까?
예수의 고향 사람들이 분노한 이유를 보면, 열심히 믿었는데 응답 없다고 화내는 그리스도인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우리가 당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당신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인 역시 예수와 자신이 동급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그래서 사람을 판단하듯 똑같이 예수를 판단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한 그들은 “당신의 능력의 근원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창조주이심을, 그의 능력이 창조주의 능력임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나? 이런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여 마치 종 부리듯 하며 자기 뜻대로 이뤄주지 않는다하여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나사렛 사람들은 “특혜는 고사하고, 감히 우리를 비난하다니”라고 생각하여 고향 사람인 예수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예수와 한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아 마땅할까?
그러한 나사렛 사람들에 대해 예수께서도 믿음이 없다고 판단하셨을 것이다. 능력을 행치 않으심은 그들 자신의 책임이었고 분노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든 “내 기도는 당연히 응답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예수께 강요한다면 부끄러운 믿음이 될 수밖에 없다. 진실한 기도에 응답 받지 못한 것에 화난다면 누구에게 문제가 있을까? 예수에게서 원인을 찾으면 실망하여 또 죽이려 하지 않겠나? 반면에 자신에게서 찾을 때 해답을 발견하게 된다. 나사렛 사람들처럼 선민의식과 특혜를 주장하는 한 예수를 배척하는 죄가 더해질 것이다.
응답하지 않으실 권리가 예수께 있음을 먼저 인정해야만 한다. 응답되지 않는 원인이 예수께 있는 것 아니라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사렛 사람들이 올바른 믿음과 신앙의 태도를 가졌더라면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하게 됐을까...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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