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인간이란 습관들이기 나름”이라고 했다. “인생은 습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습관”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고정화 된 개인 행위를 의미하며, 대개 무의식중에 행동하게 된다, 따라서 잘못된 습관은 매우 위험할 수 있는데, 심지어 신앙조차 무력화시킴으로써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2장 39-46절에 의하면 예수께도 습관이 있었다. 제자들의 눈에 띌 정도로 분명했다. 이 장면은 예수의 공생애 중 가장 긴박하고 위중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다른 곳에서 하면 안 되므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서 기도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위기의 때에 습관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때 제자들의 습관은 무엇이었나? 예수의 뜻에 동참할만한 습관이 갖춰져 있었을까? 누가복음 22장 45절은 그들이 슬픔 때문에 잠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슬프면 잠들게 되나? 혹시 진술자들의 변명은 아닐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저희 눈이 피곤하여”라고 기록돼 있다. 그들은 이 때 심각한 상황을 인식 못했고 그저 예수가 습관에 따라 감람산으로 가신다고 생각했다. 예수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따라다니기만 했음을 짐작케 한다.
예수는 습관 때문만 아니라 분명한 목적을 이루려고 그곳으로 갔음이 분명하다. 가룟 유다는 예수가 어디 있을지 알고 그곳으로 군병을 이끌고 온 것, 절박한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던 곳, 기도 직후 붙잡혀 십자가 지시게 될 때 당당함과 평정심 그리고 침묵하는 모습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제자들이 예수의 습관을 제대로 이해하고 본받았다면 3번 씩이나 잠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습관은 위기의 순간, 결정적인 순간에 더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잘못된 습관은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만 하며, 신앙에 유익한 습관은 힘 있고 정신이 온전한 평상시에 만들어져야만 한다.
잘못된 습관을 바로잡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좋은 습관을 지키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옛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습관은 습관으로 고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속담에 “습관을 바꾸기보다 산을 옮기기가 쉽고 욕심을 채우기보다 바다를 메꾸기가 쉽다”는 말이 있다. 제자들은 3년 이상 예수를 따라다니며 보고, 듣고, 배웠지만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있었다. 보혜사 성령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변화되기 시작했다. 사람은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습관을 고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잘못 형성된 습관을 고치려면 그것을 의식하면서 기도와 함께 반복해야만 한다.
습관 형성 기간 이론에 “21일 설” “66일 설” 등이 있지만 아무튼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습관 길들이기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한 반복”이다. 습관 길들이기 또는 어떤 행위의 숙달을 위해서는 한 번에 많은 시간을 노력하는 것보다 주기적으로 자주 실시했을 때 더 큰 효과를 보게 된다. 실험상으로는 하루에 4번 4일 이상 연습하게 되면 다른 자극에 비해 뇌속의 장기(長期) 기억률이 높다고 한다.
좋은 습관은 성공적인 신앙생활에 꼭 필요하다. 좋은 습관은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할 것이다.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쁜 습관은 바로잡고 좋은 습관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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