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모습은 남자답지 못하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감정표현을 자제한다. 이성주의로 포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냉혹하고 비정한 인간성에 빠지게 된다. 또 한편에서는 “감정은 선한 것이다. 감정에 충실하라”고 주장하면서 감성주의와 이성비하를 부추긴다. 우는 모습은 약함의 결과인가? 감정에 충실한 것이 무조건 좋은가? 예수의 눈물은 분명한 감정 표현일텐데 우리는 이런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슬픔이나 고통 또는 후회스런 일을 겪을 때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격한 감동이나 기쁨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 인자이신 예수의 눈물은 어떤 경우였을까? 우리는 예수님도 “참 인간이라서” 인간적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다는 설교를 많이 들어 왔다.
그렇다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 눈물 흘리신 모습은 어떤 경우였을까? 유대인의 생각처럼 사랑하는 자가 죽었기 때문에 또는 헤어짐이 인간적으로 슬퍼서 우셨나? 예수님은 나사로를 부활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다. 곧 살아날 것인데 왜 슬퍼해야 하나? 아니면, 유대인들의 비난이 억울해서 우셨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는데? 그것도 아니면, 나사로를 부활시키게 된 것이 기뻐서였을까? 나사로가 부활한다 해도 곧 핍박당하다 죽을 것인데 , 그것을 아시면서도 기뻐하실 수 있을까? 예수께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만의 감정이 있었다.” 그것이 예수의 눈물로 표현된 것이다. 예수의 감정 표현을 인간 입장에서만 해석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도 눈물이 있을까?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감동, 감격, 기쁨, 환희 등등의 순간에...
인간은 자기 입장에서 생긴 감정을 표현하지만,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의 입장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생긴 감정을 표현하신다. 인간은 남의 눈을 의식하며 자기 감정 표현을 억제하거나 과장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왜곡 없이 그대로 드러내신다. 인간은 이 세상의 삶으로 제한된 감정을 해결책 없이 쏟아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전제된 감정을 소유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감정의 발생과 표현 역시 하나님 나라 성취와 일치한다.
감정은 무조건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성도의 감정은 예수님처럼 느끼는 대로 왜곡 없이 표현돼야 한다. 다만, 자기 위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전제된 감정이어야 한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에만 가능하며, 이것이 진전한 신앙인의 모습이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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