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광풍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예수는 태평하게 주무셨다. 무슨 의미일까? 단지 피곤해서였을까? 제자들의 형편에 무심해서? 아니면 고생해보라고 일부터?
결국, 예수께서 제자들의 요구대로 광풍을 잔잔케 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광풍을 잔잔케 한 예수를 두려워했다고 기록돼 있다. 오늘날 성도들 역시 예수의 능력 또는 기적에 열광하지만,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목적인가?
인간에게는 두 가지 바다와 광풍이 있다. 첫째는 육의 바다와 광풍이다. 육의 바다가 잠잠하다는 것은 육신이 건강하고 환경이 평화로우며 하는 일마다 형통할 때 즉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육의 바다에 광풍이 불면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하는 일마다 어그러지거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둘째는 영혼의 바다와 광풍이다. 영혼의 바다에 광풍이 불면 육의 바다가 잠잠해도 아무 소용 없다. 결국 육의 바다에도 반드시 광풍이 불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의 바다가 잠잠하다"는 말은 "육의 바다에 광풍이 불어도 영혼은 영향 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광풍 속에서 잠드신 예수께서 이것을 보여주셨다. 예수의 영혼의 바다가 완전히 잠잠했으므로 육의 바다가 광풍으로 요란했음에도 평안히 잠들어 계실 수 있었다.
영혼의 바다가 잠잠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며 감사가 끊이지 않아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반면에 영혼의 바다에 바람이 불면 마음에 두려움이나 불안 또는 허무감이 가득하여 육체의 열매 즉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를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과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생기게 돼 있다.
영혼의 바다가 잠잠하고 영혼이 육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육의 바다 를 잠잠케 할 수 있다. 영혼의 바다가 요동치는데 육의 광풍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령할 수 있을까? “영혼의 바다가 바람에 시달린다”는 말은 “신앙이 흔들린다”는 말과 같다. 신앙이 흔들리면 육의 바다를 다스릴 수 없게 된다.
인간의 문제는 태생적으로 영혼이 육의 지배를 받음에 있다. 그러므로 육의 바다가 잠잠하면 영혼의 바다도 잠잠할 수 있는 반면, 육의 바다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영혼의 바다에는 반드시 광풍이 불어 두려움과 좌절감에 사로잡히게 돼 있다. 영혼의 평안 즉 성공적인 신앙보다 육의 평안 즉 세상의 성공에 우선순위를 두는 한, 그의 영혼에는 "바람 잘 날" 없게 된다.
육의 광풍을 제어하려면 먼저 영혼의 바다를 다스려야만 한다. 예수의 능력은 어떤 육의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혼의 평안함이었다! 광풍을 잠잠케 한 능력에 탄복하기 전에 자신의 영혼의 바다를 잠잠케 하자! 그것은 오직 참된 깊은 신앙으로만 가능하다!t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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