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10, 2017

유대인의 복과 화

유대인은 하느님의 복을 받은 민족인가? 아니면 화를 당한 민족인가?

결론은 둘 다에 해당한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을 둔 덕분으로 하느님의 복을 받는 민족이 됐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민족이라 하겠다. 그들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여호와 하느님을 알고 태어난다. 어느 민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철저한 가정교육 아래서 진짜 유대인이 돼간다.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수 천년 나라 잃고 세계를 떠돌았지만, 그들의 민족성과 종교 지식의 내용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을 정도였다. 유란시아서도 유대인의 가정교육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그들의 의식 구조 속에서 여호와 하느님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정서를 깊이 이해한다고 감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고 또한 해서도 안 된다. 하느님과의 관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견지에서 보면 유대인은 하느님으로부터 최고의 복을 받고 태어난 민족이라 할 수밖에 없다.

여러 해 전에는 우리 나라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도 입학시험이 있었다. 일부 고급 사립 유치원과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도 입학시험이 있었다는, 남의 나라 이야기같은 말을 듣기도 했지만... 입학시험을 치러서 제일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는 사실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사람 자체가 정말로 그런 최고 수준의 사람이 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최고의 중학교에 들어간 사람은 전부 최고의 고등학교에 들어가야만 한다. 최고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 중에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준비를 잘 한 사람들은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주 뒤쳐지는 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는 것은 비교적 더 앞선 출발선에 서 있다는 것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 비교적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증명한 종도라고나 할까...

간혹, 자신의 학벌을 은근히 자랑삼고 목에 힘주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마치 그런 특별한 능력의 사람이라도 된 듯 착각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유대인이 바로 이 함정에 빠졌다. 유대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 앞선 출발선에 서 있음을 자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앞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 했는데, 그리고 뒤쳐진 사람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끌어줘야 했는데, 그들은 자신이 유대인으로 태어났음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마치 이미 대단한 존재로 변화된 것처럼 착각했다. 당연히, 그들의 눈에는 이방인이 하찮은 동물 수준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들의 민족적 자존심, 자부심, 자만심 등 종합선물세트 같은 교만함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예수님은 그런 유대 민족으로 보면서 "화 있을진저"라고 하면서 한탄했다. 만약에 유대인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런 겸손한 민족의 모습을 보였다면, 과연 예수님의 평가는 어땠을까? "복 있도다. 유대인들이여! 너희로 인해 모든 민족이 아버지께 복된 자들이 됐으니, 너희를 위해 예비된 상을 받으리라." 이런 축복의 말씀을 하면서 예수님은 얼마나 행복해 하셨을까? 유대인은 분명히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어른이 돼서도, 노년에 이르러서도 그 금수저를 입에 물고 다니면서 자랑하는 사람처럼 모든 타민족을 업수이 여기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그것을 출발선으로 삼는, 어린 아이 같은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을 품지 않은 것이 문제의 근원이었고 화를 자초한 원인이 됐다.

오늘날, 유란시아서를 만난 독자들은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어떤 입장인가? 유란시아서를 읽었으니, 많은 지식을 습득했으니, 하느님 앞에 이미 대단한 존재로 변화된 것인가? 아니면,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유대인처럼, 엄청난 하늘 비밀을 알게 됐으니, 남들보다 조금 앞선 출발선에 서서, 아득히 먼 저 결승점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며 체험으로 얻은 신앙에 힘입어, 뒤 따라 달려오는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줘야 할 사람인가? 예수님은 죽을 힘을 다해 하느님 뜻을 이루면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권면했다.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고? 정말로? 예! 정말로! 광우주 밖에 있는 아직도 조성 중에 있는 저 광활한 외부 우주들을 향한 우리의 사명에 눈을 뜨고, 오늘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하려는 어린아이가 된다면, 예수님의 그 외침은 반드시 누구에게나 성취될 것이다. 금수저의 복을 계속 복으로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금수저를 화로 바꿀 것인지, 그것은 우리 각자의 판단과 결단의 몫이다.(ㅌ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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