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6, 2017

밥과 밥그릇

밥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밥그릇이 더 중요한가?

이 질문에 당연히 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겠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이 중요하다. 밥그릇이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멋지고 값비싼 그릇이라도 아무 관심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부른 자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밥에는 관심 없다. 배부르니까... 자연스레 밥그릇에 관심이 간다. 얼마나 화려하고 비싼 그릇을 갖고 있는지가 자랑거리다. 서로 자기 밥그릇을 비교하면서 음미하고 자랑하는 여유도 있다. 밥을 담을 수 있는 그릇도 물론 필요하지만, 필수적이지는 않다. 배고픈 사람은 그릇이 남루해도 괜찮다. 심지어 손에 들고 먹는 주먹밥이라도, 자신의 배고픔을 해결할 정도만 있으면 만족하고 행복하다.

지식은 밥일까 아니면 밥그릇일까? 언뜻 생각하면 당연히 밥그릇이 아니라 밥 즉 내용물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밥이 아니라 밥그릇이다. 그 지식에 담겨있는 의미와 가치가 밥이고 내용물이다.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와 가치를 깨닫지 못해 자기 삶에는 전혀 적용하지 못하고 변화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서로 자기 지식을 자랑한다. 누가 더 희한하고 그럴듯한 지식을 갖고 있는지 뽐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지식을 소유해보려고, 더 많은 사람을 자기 지식으로 지배해 보려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것도 일종의 희생이겠다. 그런 희생에 대해 보상을 얻으려는 심리는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 희생이 컸던 사람일수록 절대로 남이 나보다 낫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시기와 질투, 논쟁과 분열, 미움과 갈등이 끊어질 수 없다.

지식에 담겨진 의미와 가치가 밥이고 내용물이다. 의미와 가치는 앎의 대상이 아니라 체험의 대상이다. 그 의미와 가치를 터득하고 삶에 적용하게 될 때 비로소 영적 배부름을 체험케 된다. 그런 배부름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지식의 많고 적음 또는 새 지식과 옛 지식의 차이가 별로 중요치 않다. 터득한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삶 속에 녹여낼 것인가에 온통 정신이 팔리게 된다. 먼저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변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식으로 끝나면서 영적 체험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여 자기 가슴을 치며 외치게 된다.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겠는가!" 하면서 한탄하게 된다. 비로소, 지식으로 전달받는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체험하는 만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되어간다. 변화의 확신과 체험을 통해 큰 기쁨과 감동을 맛보게 된다. 지식을 처음 얻었을 때 느꼈던 기쁨과 감동과는 그 크기와 넓이와 깊이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지식에 담긴 의미와 가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 한, 그 지식 자체는 사람을 진보시킬 수 없다. 더욱 교만하게는 만들어 퇴보시킬 수는 있을지언정...

산을 올라갈 때, 처음에는 올라가기에 급급하여 앞에 있는 사람들만 보이지만, 어느 정도 올라간 후에는 뒤에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아, 나는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가! 저기 올라오는 사람들도 지금 얼마나 힘들까. 나는 어려운 길로 올라왔지만, 저 사람들도 똑같은 길로 올라오고 있는데 저 길 말고 옆에 있는 오솔길로 올라오면 훨씬 쉬울텐데..." 그래서 소리치고 싶어진다. "여보시오들, 나도 그 길로 올라오느라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여기서 보니, 당신들 오른편에 아주 쉽고 빠른 오솔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올라오시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그 외침에 관심 없다. 그저 올라오기에 바쁘다. 그러나 올라오고 나면 그제서야 그 오솔길이 보일 것이다. 또 똑같이 외칠 것이다. 올라오기 힘들다고 중간에 멈춰버리든지 또는 아예 내려가 버리는 사람들은 제외하고...(ㅌ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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