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31, 2011

제169편 펠라에서 마지막 가르침

제168편 나사로의 부활 ∥ 제170편 하늘 나라

169

펠라에서 마지막 가르침

 

169:0.1 예수  사도는, 3 6 월요일 늦은 저녁에 펠라 야영지에 도착했다. 이것은 예수께서 거기에 머문 마지막 주가 됐으며, 대중을 가르치고 사도들에게 설명하sms ep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는 매일 오후에 무리에게 설교했고, 매일 밤에는, 야영지에 머무는 사도들 비교적 진보된 어떤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169:0.2 나사로 부활에 관한 소식이, 주님께서 도착하기 이틀 전에 야영지에도 전해졌고,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흥분했다. 5 명을 먹인 사건 이후로, 사람의 상상력을 이처럼 자극하는 어떤 것도 발생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공공연한 천국 사역에서 둘째 단계가 한창일 때, 펠라에서 이렇게 짧은 동안 가르친 다음,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주간{週間} 비극적인 마지막 체험으로 바로 이어지는 남부 베레아 여행을 시작할 계획이었.
 
169:0.3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여러 혐의를 입안하고 기소내용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주님 교훈을 배척했다:
169:0.4 1. 그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며; 믿음 없는 자들을 용납하고 그들과 함께 먹기까지 한다.
169:0.5 2. 그는 신성을 모독하는 자이며; 하나님 자기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169:0.6 3. 그는 법을 어기는 자다. 안식일 병을 치유하고, 이스라엘 신성시되는 율법을 다른 여러 방법으로 조롱했다.
169:0.7 4. 그는 마귀들과 결탁했다. 마귀들의 두목인 바알세불 능력으로 이적을 행하고 그럴듯한 기적을 행한다.
 
 
1. 잃어버린 아들 비유 
 
169:1.1 목요일 오후에, 예수께서는 “구원의 은혜”에 관하여 대중에게 말씀했다. 설교 도중에, 주님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했고, 자신이 좋아하는방탕한 아들에 관한 비유를 더했다. 예수께서 말씀했다:
 
169:1.2 사무엘로부터 요한 이르기까지, 선지자들이 너희에게 하나님 찾으라고-- 진리를 탐구하라고-- 훈계해왔다. 그들은 항상 ‘만날 있는 동안에 찾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가르침을 마음에 담아둬야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 찾으려고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찾으려고 하신다는 것을 너희에게 보여주려고 내가 왔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두고, 잃어버린 마리를 찾으러 나가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발견하자, 그것을 친절하게 어깨에 메어 데리고 돌아와서 속으로 다시 넣어줬다는, 선한 목자 이야기를 너희에게 여러 했다. 그리고 잃었던 양이 무리 속으로 들어가자, 선한 목자가 친구들을 부르면서, 잃었던 양을 발견한 것에 대해 함께 즐기자고 초대했다는 것을 너희가 기억할 것이다. 내가 다시 말하는데, 하늘에서는 회개할 없는 아흔 아홉 명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죄인을 기뻐한다. 혼들이 길을 잃었다 사실은, 하늘 아버지 관심을 많이 뿐이다. 나는 아버지 분부대로 하려고 세상에 왔으며, 사람의 아들 자신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임을 진심으로 말해왔다.
169:1.3 “너희가 회개한 후에, 그리고 너희가 희생 제물을 드리고 참회한 행위의 결과로서, {} 너희를 받아들인다고 배웠지만, 내가 너희에게 보증하는데,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회개하기도 전에 너희를 용납하시며, 너희를 찾아내어 다시 무리에게로, 영적 진보가 있는 아들신분의 천국으로 기뻐하면서 데려오라고, 아들 동역자들을 보내신다. 너희는 모두 잃은 같으며, 잃은 자들을 찾아서 구원하려고 내가 왔다.
169:1.4 “그리고 너희는, 장식용 목걸이를 만들려고 은으로 개의 동전을 갖고 있다가 하나를 잃어버려서, 등을 밝히고 집안을 열심히 쓸면서잃어버린 동전이 발견될 때까지 쉬지 않고 찾은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해야한다. 여자는 잃었던 동전을 발견하자마자, 친구와 이웃을 부르고, ‘내가 잃었던 동전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기뻐하자’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아버지 양떼로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천사들 앞에는 늘 기쁨이 있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버지 아들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나서신다는 것을 너희에게 깊이 새겨두기 위해서이며, 구원을 필요로 하면서 있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내려고 우리가 부지런히 애쓸 , 우리는 이렇게 찾아내는 도움 만한 모든 권세를 활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아들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찾으려고 광야로 나가, 또한 안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도 한다. 양은 부지불식간에 길을 잃었으며; 동전은 시간이라는 먼지로 덮이고, 사람들의 물건이 위에 쌓임으로써 감춰졌다.
169:1.5 “그리고 이제, 어느 부자 농부의 철없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너희에게 들려주겠는데, 아들은 고의로 아버지 집을 떠나서 다른 나라 땅으로 , 거기서 고난당하게 됐다. 양들은 아무 의도 없이 방황하게 됐지만, 젊은이는 미리 계획하고 자기 집을 떠났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야기는 이렇다:
 
169:1.6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동생은 근심 걱정이 없고 무책임해서 항상 즐거운 시간만 찾고 책임은 회피하는 반면, 형은 진지하고 침착하고 열심히 일하고 책임을 기꺼이 지는 사람이었다. 이윽고 형제가 서로 지낼 없게 됐는데; 그들은 항상 다투고 언쟁했다. 작은 아들은, 명랑하고 활발했으나 게으르고 신뢰성이 없었으며; 아들은, 침착하고 부지런한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무뚝뚝하고 교만했다. 작은 아들은, 놀기를 좋아했지만 일하기는 피했으며; 아들은, 일에 열심이었지만 놀지 않았다. 형제의 불화가 너무 심해지자,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아버지, 나에게 상속될 당신의 소유물 가운데 3분의 1 저에게 주시고, 세상에 나가서 출세 길을 찾도록 허락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요청을 들은 아버지는, 작은 아들이 집에 있으면 때문에 얼마나 불만스러워하는지 알기에, 재산을 나눠서 작은 아들의 몫을 떼어 줬다.
169:1.7 “이 젊은이는 후에 자기 돈을 모아서 나라로 여행을 떠났지만, 재미있으면서 돈을 벌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유산을 전부 탕진했다. 모든 것을 허비했을 , 지방에 오랫동안 기근이 닥쳤고, 그는 곤궁한 신세가 됐다. 그리하여 배고픔을 참다가 도저히 견딜 없게 되자, 지방에 사는 사람 가운데 하나에게 고용됐는데, 그를 돼지 키우는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젊은이는 돼지가 먹는 옥수수 껍질로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에게 아무 것이든지 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169:1.8 “어느 , 매우 배고프게 됐을 , 그는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했다: ‘내 아버지께 고용된 많은 종에게는 배부르게 먹고 남을 만큼 빵이 풍성한데, 나는 이국땅에서 돼지나 키우다가 굶주려 죽게 됐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렇게 말하리라: 아버지여, 내가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이제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 받을 자격이 없으니; 다만 나를 고용된 종들 가운데 하나처럼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젊은이는 이렇게 결단하게 되자, 일어나서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169:1.9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로 인해 몹시 슬퍼해왔으며; 경솔하지만 명랑한 아들을 무척 보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을 사랑했고, 그가 돌아오기만을 항상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던 , 그가 아직도 멀리 있는데, 아버지는 그를 알아보고, 사랑과 연민으로 감동되어 그를 만나러 뛰어 나갔으며, 자애롭게 환영하면서 그를 안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인사가 끝나자, 아들은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아버지! 내가 하늘에 대해 그리고 당신 앞에 죄를 지었으니; 나는 이상 아들이라고 일컬음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지만--아들은 고백을 마칠 수도 없었는데, 너무 기뻐하는 아버지가, 달려오고 있는 종들에게, ‘내가 보관해 가장 좋은 옷을 빨리 가져와서 그에게 입히고, 아들을 상징하는 반지를 그의 손에 끼워주고, 그가 신을 신발을 가져오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169:1.10 그리고 나서, 행복한 아버지는, 발이 부르트고 기진맥진한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하인들을 불렀다: ‘나의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살찐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먹으면서 흥겹게 즐기자.’ 저희는 아버지 곁에 모여서, 아들을 되찾은 것에 대해 그와 함께 기뻐했다.
169:1.11 “이 무렵에, 저희가 축하하고 있는 동안, 아들이 들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서 집에 가까이 왔을 , 음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뒷문으로 가서, 하인 가운데 하나를 불러내고, 모든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종이 말했다: ‘오래도록 잃었던 당신의 동생이 집으로 돌아왔으며, 당신의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고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당신도 들어와서 동생을 환영하시고 아버지 집으로 맞아들이십시오.
169:1.12 “그러나 형은 말을 듣자, 너무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동생을 환영한 것에 대해 아들이 분개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서 그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의 설득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내가 여러 동안 아버지를 위하여 일했고,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한 적이 없었는데도,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새끼 염소 마리도 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여러 동안 아버지 곁에 남아서 보살펴드렸는데, 나의 충성스런 봉사에는 전혀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아버지의 소유를 창기들과 함께 탕진해버린 아들이 돌아오자, 서둘러 살진 송아지를 잡으시고 그놈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169:1.13 “이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얘야, 너는 나와 함께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아니냐. 너는 언제라도 새끼 양을 잡아서 너의 친구들과 흥겹게 지낼 있었다. 그러나 너의 동생이 돌아왔으니, 네가 나와 함께 들어가서 기뻐하고 흥겹게 즐기는 것이 마땅하다. 얘야, 너의 동생을 잃었다가 찾은 것과; 그가 살아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을 생각해 봐라!’”
 
169:1.14 이것은, 하늘 나라로 들어오려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버지 뜻임을 청중에게 심어주려고 예수께서 제시한, 가장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모든 비유 가운데 하나였다.
169:1.15 예수께서는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말씀하기를 대단히 좋아했다. 잃어버린 이야기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생명의 길에서 멀어졌을 , 아버지께서는 그런 잃어버린 자를 잊지 않으시며, 양떼의 목자인 아들 함께 나가셔서, 잃은 양을 찾으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말씀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잃어버린 동전 이야기는, 혼동되거나, 좌절당하거나, 인생의 물질적 염려와 축적물로 인해 영적으로 눈이 모든 사람을 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찾으시는지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잃어버린 아들, 돌아오는 탕자를 환영하는 비유의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는데, 잃어버렸던 아들의 지위가 아버지 집과 마음 속에서 얼마나 완전하게 회복되는가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169:1.16 가르치던 여러 동안, 예수께서 방탕한 아들 이야기를 얼마나 여러 반복했는지 모른다. 예수께서는 비유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아버지 사랑과 사람의 이웃됨을 가르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가장 좋아했다.
 
 
2. 영리한 청지기 비유 
 
169:2.1 어느 저녁에, 열심당 시몬 예수 어떤 말씀에 대해 논평했다: 주님, 세상의 자녀 가운데 다수가 불의한 재물로 친구 사귀기에 능숙하므로, 세대의 천국 자녀들보다 현명하다고 오늘 말씀하셨는데, 의미가 무엇입니까?예수께서 대답했다:
 
169:2.2 “너희 가운데 더러는, 천국에 들어오기 전에 사업상 동역자들과 거래하는 매우 영리했다. 너희가 불의했고 때로는 불공정했더라도,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안전에 열중하여 사업을 운영했으므로, 너희는 신중했고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기쁨을 고려하는 동시에 또한 하늘에 쌓아 놓은 보물을 장차 즐길 있도록, 너희는 이제 천국 안에서 너희의 삶을 정리해야 것이다. 자신을 위하여 일했을 ,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너희가 그토록 부지런했거든, 이제는 사람의 형제단체의 일꾼이요 하나님 청지기인데도, 너희는 어찌하여 천국을 위하여 혼을 얻는 일에 열심을 보이지 않느냐?
169:2.3 “너희는 모두, 영리하지만 불의한 청지기를 어떤 부자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청지기는, 주인의 손님을 위협해서 자기 몫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자산을 자기가 사용하고 허비했다. 모든 사실이 마침내 주인의 귀에까지 들리자, 청지기를 앞에 불러 소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으면서, 즉시 청지기직의 회계장부를 제출하고, 주인의 직무를 다른 이에게 넘겨줄 준비를 하라고 요구했다.
169:2.4 “그러자 불충한 청지기가 속으로 말했다: ‘내가 청지기직을 잃게 됐으니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구걸하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청지기직을 그만뒀을 , 나의 주인과 거래했던 모든 사람이 나를 자기 집으로 환영할 있도록,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겠다.’ 그리고 나서, 주인에게 빚진 자를 하나씩 불러서, 사람에게,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름 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청지기는, ‘기록된 증서를 가져다가 빨리 앉아서 오십이라고 고치라’고 했다. 다른 빚진 자에게 말하기를 ‘너는 얼마나 빚을 졌느냐?’ 그는 ‘밀 가마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청지기는, ‘네 증서를 가져다가 팔십이라고 쓰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빚진 자에게도 이렇게 했다.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는, 청지기직에서 물러난 후에 자기를 위한 친구들을 만들려고 애썼다. 그의 , 주인조차, 나중에 이것을 알고 나서, 불충한 청지기가 장차의 빈곤과 불운에 대비한, 적어도 태도에서는 현명함을 보여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69:2.5 “그리고 세상 자녀들은, 이런 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면서, 때로는 빛의 자녀보다 현명함을 보여준다. 하늘에서 보화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너희에게 말하겠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귄 사람에게서 교훈을 받고, 마찬가지로 너희도 삶에 처신하여, 의로운 세력들과 영원한 친구관계를 맺음으로써, 땅의 모든 것이 끊어질 , 너희가 영원한 거처{居處}에서 기쁘게 영접 받을 있게 하라.
169:2.6 “내가 단언하는데, 적은 것에 충실한 사람은 많은 것에도 충실할 것이, 적은 것에 불의한 자는 많은 것에도 불의할 것이다. 세상 일에서 선견지명과 성실함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하늘 나라의 참된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 직분을  만큼 너희가 충실하고 신중하기를 어떻게 바랄 있겠느냐? 너희가 선한 청지기도 아니고 충실한 은행가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어떤 바보가 너희 이름으로 많은 재물을 맡기겠느냐?
169:2.7 “다시 분명히 말하는데, 아무도 주인을 섬기지 못하나니; 하나를 미워하고 다른 하나를 좋아하든지, 아니면 하나에 집착하고 다른 하나를 소홀히 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 재물을 함께 섬길 없다.
169:2.8 거기 있던 바리새인들이 말을 들었을 , 그들은 재산 획득에 혈안이 돼있었으므로, 비웃으면서 조롱하기 시작했다. 대적하는 청중은 예수 쓸데없는 논쟁에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는 대적들과 토의하기를 거절했다. 바리새인들끼리 말다툼을 벌이자, 그들의 소리 때문에 많은 대중이 호기심으로 모여들었으며; 그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하자, 예수께서는 물러나서, 잠을 자려고 자기 천막으로 돌아갔다.
 
 
3. 부자와 거지 
 
169:3.1 모임이 너무 시끄러워지자, 시몬 베드로 일어서서 주도권을 잡고 말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끼리 논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은 말씀을 숙고해보십시오. 오늘 여러분에게 선포하신 것은 전혀 새로운 교리가 아닙니다. 부자와 거지에 대한 나실인 우화를 듣지 못했습니까? 재물을 사랑하고 정직하지 못한 재산을 탐내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비유를 세례 요한 외치는 것을, 우리 중에도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 비유는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과는 상관없지만, 하늘 나라의  빛을 납득할 때까지, 여러분은 모두 교훈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례 요한 말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169:3.2 디브스라는 이름의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자주색과 고운 세마포 옷을 입고, 매일 화려하게 꾸미면서 환락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나사로라는 부스럼투성이의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부자의 출입문 곁에 머물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했으며; 심지어 개들도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다. 이윽고 거지가 죽게 됐고, 천사들이 그를 데려가 아브라함 품에서 쉬게 했다. 그런데 이제는, 부자도 죽어서 화려하고 호화롭게 매장됐다. 세상을 떠나자 부자는 지옥에서 깨어났고, 고통당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눈을 들어보니 멀리 아브라함 있고, 그의 품에 안긴 나사로 보였다. 그러자 디브스 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가 형벌로 크게 고통당하고 있으니,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사로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다가 혀를 시원하게 주십시오.’ 그러자 아브라함 대답했다: ‘얘야, 너는 살았을 좋은 것들로 즐겼지만, 나사로 한결같이 불행을 체험했음을 기억해야한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바뀌어, 너는 고통을 받으나 나사로 위로를 받는다. 게다가, 너와 우리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서 우리가 네게로 없고, 네가 우리에게 수도 없다.’ 그러자 디브스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나에게 형제가 다섯 있으니, 고통스런 장소에 오지 않게 증언하도록 제발 나사로 아버지 집으로 돌려보내주십시오.’ 그러나 아브라함 말했다: ‘얘야저희에게는 모세 선지자들이 있으니저희에게서 들으면 된다.’ 그러자 디브스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죽었던 자가 살아나서 저희에게 간다면 저희가 회개할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 말했다: 저희가 모세 듣지 않고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죽었던 자가 살아난다 할지라도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169:3.3 예로부터 내려오는 나실인 동우회의 우화를 베드로 마치자, 인파가 조용해졌으므로, 안드레 일어나서 그들을 잠자리에 들도록 해산시켰다. 사도와 제자들이 디브스 나사로 우화에 관해 종종 질문했지만, 예수께서는 그것에 대해 결코 언급하지 않았다.
 
 
4. 아버지와 그의 나라
 
169:4.1 그들이 하나님 나라 확립을 선포하는 동안,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왕이 아니라 것을 사도들에게 설명하기에 힘들어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땅에 살면서 가르칠 , 유란시아 사람들은 대개 여러 나라 정부의 왕과 황제에 익숙했으며, 유대인 하나님 왕국의 도래를 고대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주님 사람의 영적 형제관계를 하늘 나라라고, 형제관계의 우두머리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왕으로 표현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가 사도들과 가깝게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 또는 그들의 형님으로 표현했다. 그는 추종자 전부를 인류의 봉사자로, 그리고 천국 복음의 사자{使者} 묘사했다.
169:4.2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인격과 속성들에 대해 사도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사람에게 아버지 믿으라고 요청한 적이 없으며; 그들이 당연히 해야 되는 것으로 여겼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실체임을 증명하느라 논쟁을 일으킴으로 자기의 품위를 떨어뜨린 적이 결코 없었다. 아버지 관한 그의 가르침은 모두, 그와 아버지 하나임을 선포하기; 아들 사람은 아버지 것이라고 선포하기; 아버지 아들처럼 모든 것을 아신다고 선포하기; 아들만이, 그리고 아들로부터 아버지 계시 받을 자만이 참으로 아버지 안다고 선포하기; 아들 아는 자는 또한 아버지 안다고 선포하기; 그리고 그들의 통합된 본성을 나타내고 공동 업무를 보여주시려고 아버지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선포하기에 집중됐다. 야곱 우물에서 만난 여자에게 하나님 영이시라”고 선포한 외에는, 아버지 대해 다르게 언급한 적이 없었다.
 
169:4.3 너희는 예수 교훈에 의존함으로써가 아니라, 그의 삶이 신성하다는 것을 관찰함으로써, 하나님 관해 배운다. 너희는 각자 주님 일생으로부터 하나님 개념을 흡수할 수도 있는데, 개념은 영적이고 신성한 실체, 실제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깨달을 있는 너희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낸다. 나사렛 예수 인생에서 유한한 체험을 겪은 _공간 인격 안에 무한자 집중된 경우를 제외하고, 유한자는 무한자 납득하기를 결코 바랄 없다.
169:4.4 예수께서는, 하나님 오직 체험 실체로써만 알려지실 있다는 것과; 정신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 이해할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이 충분히 하나님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람의 아들 대하여 아는 만큼, 하나님 아주 확실히 있다고 가르쳤다. 너희는, 예수께서 말씀한 것을 이해함으로써가 아니라, 예수께서 어떤 분이었는지 깨달음으로써 하나님 있다. 예수 하나님 계시였다.
 
169:4.5 히브리 성서를 인용한 경우 외에,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라는 오직 가지 이름으로만 신격 언급했다. 그리고 주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를 , 유대인 부족{部族} 하나님이라는 진취적 개념작용을 뜻하는 야훼라는 단어가 아니라, 복수{複數} (삼위일체) 하나님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를 대개 사용했다.
169:4.6 예수께서는 아버지 왕이라고 부른 적이 전혀 없었으며, 왕국을 재건하리라는 유대인 희망과, 왕국이 다가온다는 요한 선포로 말미암아, 자신이 제시하는 영적 형제관계를 하늘 나라라고 불러야 필요성이 생겼음에 대해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번의 예외-- 하나님 영이시라”는 선포-- 제외하고, 낙원 1 근원 중심 자신 사이의 개인적 관계를 설명하는 표현 이외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신격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169:4.7 예수께서는 신격 관념 나타내려고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아버지라는 단어는 하나님 아는 체험 나타내려고 사용했다. 하나님 의미하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가능한 가장 의미로 이해돼야한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정의될 없고, 따라서 아버지 대한 무한한 개념을 대표하며, 한편 아버지라는 용어는 부분적인 정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필사자 실존 과정에서 사람과 관련되는 신성한 아버지 대한 인간 개념을 대표하는 사용될 있다.
169:4.8 유대인에게, 엘로힘 모든 {} 하나님이었고, 야훼 이스라엘 하나님이었다. 예수께서는 엘로힘 개념을 받아들였고, 최고 집단의 존재들을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종족의 신격인 야훼 개념 대신에, 하나님 아버지시요, 인간은 _세계적 형제관계라는 관념을 소개했다. 그는 종족의 신격화된 아버지 개념을, 전체 인류 자녀의 아버지, 개별 신자의 신성한 아버지라는 관념으로 증대시켰다. 나아가, 우주들의 하나님 전체 인류의 아버지 완전히 동일한 낙원 신격이라고 가르쳤다.
169:4.9 예수께서는 결코 자기가 육신을 입고 나타난 엘로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세계들에게 엘로힘( 하나님) 계시하는 자라고 선포하지 않았다. 그를 사람은 엘로힘( 하나님) 것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반면에 자신은 육체를 입고 아버지 계시하는 존재라고 선언하고, 자신을 자는 누구나 아버지 봤다고 말씀했다. 그는  아들로서 오직 아버지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169:4.10 그는 정말로 엘로힘 하나님 아들이기도 했지만; 필사자 육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하나님 필사 아들들에게, 그런 계시를 필사적 사람이 납득할 있는 , 자신의 삶을 통한 계시를, 아버지 성품을 묘사하는 데 국한시키기로 결정했다. 낙원 삼위일체 다른 인격자들의 성품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그들이 전체적으로 아버지 동일하다는 가르침으로 만족해야 것이고, 아버지 육신화한 아들, 나사렛 예수 생애에서 인간적으로 묘사되어 드러났다.
 
169:4.11 세상에서 일생을 살면서 하늘 아버지 참된 본성을 드러내기는 했어도, 예수께서 아버지 관해 가르친 것은 거의 없었다. 사실, 오직 가지만 가르쳤는데: 자신 속에 계신 하나님 영이시라는 것과, 피조물과 갖는 모든 관계성에서 그가 아버지시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날 저녁에, “나는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으며; 세상을 떠나서 다시 아버지께로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신과 하나님 관계에 대한 최종 선언을 했다.
169:4.12 그러나 명심하라! 예수께서는, “내 음성을 들은 자는 하나님 음성을 들은 것이라”고 말씀한 적이 전혀 없는 반면, “나를 자는 아버지 봤다”고 말씀했다. 예수 가르침을 듣는 것은 하나님 아는 것과 같지 않지만, 예수 것은, 자체로, 아버지 혼에게 계시하는 어떤 체험이다. 우주들의 하나님 방대한 창조물을 다스리지만, 너희 정신 속에 거하도록 자신의 영을 보내는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다.
169:4.13 예수께서는 인간의 모습을 지닌 영적 렌즈인데, 렌즈는 없는 그분 물질 피조물이 있게 해준다. 그는 천상의 무리도 온전히 이해할 없는 무한한 속성의 어떤 존재, 육신 속에서 너희에게 알려주는 너희의 형님이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개별 신자 몸소 겪는 체험에 있을 수밖에 없다영적으로 체험함으로만,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 영적 영역들을 다스리는  아들, 하나님 오직 아버지로서만 물질세계의 유한한 아들들에게 드러낼 있다. 너희는 영원자 아버지이심을 있으며; 그분을, 우주들의 하나님, 만유의 무한하신 창조주 경배할 있다.



제168편 나사로의 부활 ∥ 제170편 하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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