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31, 2011

제160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로단

제159편 데가볼리 여행 ∥ 제161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160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단

 

160:0.1 9 18 일요일 아침에, 안드레 앞으로 동안 아무런 업무도 계획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다니엘 도마 제외한 모든 사도는, 가족을 만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집으로 갔다. 예수께서는 동안 거의 완전한 휴식을 취했지만, 나다니엘 도마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단이라는 어떤 그리스 철학자와 토론하느라 무척 바빴다. 그리스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명을 감당했던 아브넬 동역자 가운데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서 최근에 예수 제자가 됐다. 로단 이때, 자신의 인생 철학과 예수 종교 교훈을 조화시키는 과제에 진지하게 매달렸고, 문제에 대해 주님 대화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마가단 왔다. 또한 그는, 예수 또는 사도 가운데 하나로부터 권위 있는 복음 해설을 직접 듣고 확인하려했다. 주님께서는 로단 그런 협의를 시작하기를 사양했음에도 그를 정중히 맞아들이고, 나다니엘 도마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듣고 나서, 대답으로 복음에 대해 그에게 설명해주라고 즉시 지시했다.
 
 
1. 로단의 그리스 철학
 
160:1.1 월요일 이른 아침에 로단, 나다니엘과 도마 그리고 마침 마가단 있던 스물네 명가량의 신자 무리에게 번의 연속된 강연을 했다. 말을 압축해서 종합하고 현대의 문체로 다시 서술하면, 다음과 같은 사상을 고찰할 있다:
 
160:1.2 사람의 삶에는 --충동욕망과 매혹이라는-- 가지 본능적 욕구가 있다. 강한 성품, 위풍당당한 인간성은, 오직 생명의 자연스런 충동을 사회에서 살아가는 기술로 전환시킴으로써, 영구히 달성할 수 있  높은 수준의 열망에 이르도록 현재의 욕망을 변형시킴으로써 획득될 있으며, 동시에 실존의 평범한 매혹은, 사람의 진부하고 만성적인 관념으로부터, 탐구되지 않은 관념과 발견되지 않은 이상{理想}이라는 높은 영역으로 전환돼야한다.
160:1.3 문명이 복잡해질수록, 살아가는 기술은 어려워질 것이다. 사회관습의 변화가 빨라질수록, 성품을 계발하는 과제도 복잡해질 것이다. 진보가 계속된다면, 인류는 살아가는 방식을 세대마다 다시 배워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아주 영리해져서 사회의 복잡성을 조속히 가중시킨다면, 살아가는 기술을 다시 습득해야하는 기간은 짧아져서, 세대마다 그래야 될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기술의 진화가, 실존하는 기법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인성{人性} 다시 단순한 삶의 충동-- 현재의 욕망을 만족시킴--으로 조속히 돌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인성은 미성숙 상태에 머물 것이며; 사회는 온전한 성숙에 이르도록 자라지 못할 것이다.
160:1.4 사회는, 사람이 단지 일시적이고 당면한 욕망의 충족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뛰어난 열망을 품는 정도까지 성숙해지며, 그런 열망을 달성하려는 노력은, 영원한 목표를 향해 점진적으로 진보하여 얻는, 풍성한 만족을 낳는다. 그러나 사회가 성숙했다는 진정한 증표{證票}, 확립된 믿음과 전통적인 관념이 지닌 매력의 안일함을_장려하는 기준 아래서, 민족이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있는 권한을 기꺼이 버리고, 아직 찾지 못한 이상적인 영적 실체라는 목표를 달성할 있게 하는 매혹, 아직 살펴보지 않은 가능성을 추구할 불안하게 만들고 에너지를_소모하게 하는 매혹을 택하는 것이다.
160:1.5 동물도 생명의 충동에 훌륭히 반응하지만, 오직 사람만이 살아가는 기술을 달성할 있으며, 그럴지라도 대부분의 인류는 겨우 살고자 하는 동물적 충동 밖에 체험하지 못한다. 동물은 다만 맹목적이고 본능적인 충동만 알뿐이며;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충동을, 사람은 뛰어넘을 있다. 사람은 지성적 예술의 높은 경지, 심지어 초월적 기쁨과 영적 황홀경의 경지에서 살고자 선택하기도 한다. 동물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걱정이라는 것이 없고, 자살하지도 않는다.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런 사람이 순전히 동물적인 실존 단계에서 벗어났음을 입증, 나아가 필사자 체험에서 멋들어진 수준을 달성하려는 그런 인간의 탐구적 노력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동물은 삶의 의미를 모르지만; 사람은 의미를 납득하고 가치를 인식할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의미도 의식한다-- 통찰력을 가졌음을 스스로_의식한다.
160:1.6 사람들이 자연스런 욕구에 따라서 사는 인생을 대담하게 포기하고, 위험이 많은 기술과 불확실한 논리에 따라서 인생을 , 적어도 어느 정도 지적 성숙과 감정적 성숙을 달성할 때까지, 감정적인 불상사-- 갈등불행과 불확실성-- 결과로 일어나는 위험에 직면할 것을 예상해야한다. 낙심, 염려, 나태함 등은 도덕적으로 미성숙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다. 인간 사회는 가지 문제에 부딪치는데: 개인의 성숙을 달성하는 문제와, 종족의 성숙을 달성하는 문제다. 성숙한 인간은, 모든 다른 필사자를 대할 , 부드러운 느낌과 너그러운 감정을 갖기 시작한다. 성숙한 사람은, 아직 미성숙한 세상 사람을 대할 , 부모가 자녀를 향해 품는 그런 사랑과 동정심을 갖고 바라본다.
160:1.7 성공적인 삶이란,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신뢰할만한 기법을 통달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는, 어려움을 알아내고, 문제를 분리시키고, 본질과 위험성을 명백히 아는 것이다. 중대한 실수는, 인생의 문제가 우리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자극할 , 그것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왔던 자부심을 축소시키거나, 질투심을 용납하거나, 또는 깊숙이 위치한 편견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 보통 사람은 안전에 대한 오래된 망상이나 오랫동안 간직해 거짓된 안정감에 매달리기를 좋아한다. 진지하고 논리적인 정신이 발견할 있는 것에 대해, 오직 용감한 사람만이 솔직하게 용납하고 두려움 없이 대처한다.
160:1.8 어떤 문제를 현명하게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결하도록 드러나는 문제를 구성하는 실제 요소들을 공평하게 조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도 있는, 편견이나 열중 또는 순전히 개인적인 어떤 다른 선입견에도 정신이 매이지 않아야한다. 인생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용기와 성실성이 필요하다. 오직 정직하고 용감한 개인만이, 당황하게 하고 혼돈을 일으키는 삶의 미로를 용감하게 통과하면서, 두려움 없는 정신의 논리가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갈 있다. 그리고 정신과 혼의 이런 해방은, 종교적 열의에 가까운 지성적 의욕이라는 추진력 없이는 이뤄질 없다. 어려운 물질 문제들로 둘러싸이고 많은 지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어떤 목표를 추구하도록 사람을 몰아붙이는 데는, 매력 있는 훌륭한 이상{理想} 요구된다.
160:1.9 여러분은 인생의 어려운 환경에 대처할 있도록 효과적으로 무장됐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난 지지와 동료의 협동을 쟁취하게 하는, 정신적 지혜와 인격적 매력으로 무장돼있지 않는 , 성공을 도저히 기대할 없다. 여러분이 동료를 어떻게 설득하고, 사람을 어떻게 설복시킬 있는지 배울 없다면, 세속적이든지 종교적이든지, 아무 일에도 크게 성공할 희망이 없다. 여러분은 다만 재치와 아량을 가져야한다.
 
160:1.10 그러나 나는, 여러분의 주님이신 예수로부터 가장 훌륭한 문제 해결 방법을 배웠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예수께서 행하고 여러분에게도 엄중하게 가르치셨던 것인데, 경건하게 묵상하려고 격리되는 것이다. 자주 홀로 떠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교류하는, 예수 이런 습관에서 기법을 발견할 있는데, 이것은 일상적 삶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힘과 지혜를 모으는 기법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본질에 속하는 높은 수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정확하더라도, 인간성의 타고난 결함을 보충하지는 않으며, 참된 정의에 대한 배고픔과 목마름이 없음을 보상하지도 않는다.
160:1.11 삶의 문제를 홀로 살펴보는 기간에 몰두하기 위해; 사회적 봉사에 대한 다양한 요구에 대처할 있도록, 지혜와 에너지를 새롭게 비축하기 위해; 신성{神性} 접촉함을 의식하도록, {} 인격을 실제로 복종시킴으로써, 인생 최고의 목적을 활성화하고 심화시키기 위해; 살아있는 실존의 항상_변화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는, 새롭고 나은 방법을 소유하려고 매달리기 위해; 보람되고 실제적인 모든 것에 대한 통찰을 강화하기에 필수적인, 사람의 인간적 자세에 대한 생생한 재조정과 재조성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그리고 오직 하나님 영광에만 주목하면서 모든 것을 하기 위해-- “내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는 여러분의 주님께서 즐겨하시는 기도를 진지하게 드리기 위해-- 홀로 떨어져있는 예수 습관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160:1.12 여러분의 주님 이런 경건한 습관은, 정신이 새로워지도록 긴장을 풀어주며; 혼이 고무되도록 빛을 비추며; 자신의 문제에 과감히 대처하도록 용기를 주며; 쇠약하게 하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자기_이해를 가져오며; 사람이 감히 하나님처럼 있다는 확신으로 무장시켜주는, 신성{神性} 합동하는 것을 의식하게 한다. 경배의 긴장 완화 또는 주님 하시는 같은 영적 친교는 긴장감을 해소시키고, 갈등을 없애고, 인격의 전체 자원을 대단히 증대시킨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기로는, 모든 철학과 천국 복음을 합치면  종교가 된다.
 
160:1.13 선입견은 혼이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동료를 온전히_받아들이고 전부_포함하는 대의명분을 동경하기에 혼을 진지하게 바침으로써만 선입견을 제거할 있다. 선입견은 이기주의와 분리될 없을 정도로 연결돼있다. 오직 자기_본위를 버림으로써만, 그리고 자아보다 뿐만 아니라 인류보다 훨씬 대의명분에 봉사하는 만족을 추구하는 것으로-- 하나님 찾기, 신성을 달성하는 것으로-- 자리를 대치함으로써만 선입견을 없앨 있다. 인격이 성숙했다는 증거는, 가장 높고 가장 신성하게 참된 그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계속 추구하도록, 인간의 욕구를 전환시키는 있다.
160:1.14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사회 질서가 한창 진화하는 중에, 확립되고 고정된 운명의 목표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무한히 달성하는 영원한 목적지로서 살아계신 하나님 발견하고 환영했던 사람들만이, 인격의 안정성을 체험할 있다. 그래서 사람의 목적지를 일시적 시간에서 영원성으로, 세상에서 낙원으로, 인간적인 것에서 신성한 것으로 옮기는 데는, 그의 개심{改心}, 전환, 다시 태어남이 요구되며; 신성한 영의 자녀로서 다시_창조돼야하며; 하늘 나라의 형제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런 이상이 부족한 모든 철학과 종교는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 있다. 내가 가르치는 철학은 여러분이 전파하는 복음과 연결되며, 장차 모든 세대의 이상{理想}, 성숙된 종교의 표본이다. 이런 설명이 참된 것은, 우리의 이상이 궁극적이고 결코 잘못이 없고, 영원하고, 보편적이고, 절대적이고, 무한하기 때문이다.
160:1.15 나의 철학은, 참으로 달성할 실체, 성숙이라는 목적지를 찾도록 나를 재촉했다. 그러나 나를 충동하는 힘은 약했으며; 나의 탐구는 추진력이 부족했으며; 나의 추구는 방향 설정에 확실성이 없음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예수 복음이, 통찰력을 향상시키고, 이상을 높이고, 목표를 확립함과 함께, 부족함을 풍성하게 채워줬다. 나는 이제 의심이나 불안함 없이 전심으로 영원한 탐험에 참여할 있다.
 
 
2. 살아가는 기술
 
160:2.1 필사자들이 함께 사는 방법은 가지밖에 없는데: 하나는 물질적 방법, 동물적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 방법, 인간다운 방법이다. 동물도 제한된 한도 내에서 어떤 신호나 소리를 사용하여 서로 대화할 있다. 그러나 그런 대화 형태는, 의미가치나 관념을 전달하지 못한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가지 차이점은, 사람만이 의미가치관념 그리고 심지어 이상{理想}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는 상징 수단으로 하여 동료와 대화할 있다는 것이다.
160:2.2 동물은 서로 관념을 주고받을 없으므로 인격을 발전시킬 없다. 사람은, 관념뿐 아니라 이상을 동료들과 그렇게 주고받을 있기 때문에 인격을 발전시킨다.
160:2.3 인간의 문화를 구성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적 연합을 통해서 문명을 이룩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의미를 나누고 대화할 있게 하는 역량이다. 지식과 지혜는 누적될 있는데, 대화를 통해서 이것들을 다음 세대에 넘겨줄 있는 사람의 역량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민족의 문화 활동, : 예술, 과학, 종교, 철학이 발생한다.
160:2.4 상징을 통한 인간 사이의 소통이, 사회 집단들의 출현을 미리 결정한다. 모든 사회 집단 가운데 가장 실제적인 것은 가족인데, 그중에도 특히 부모. 개인적인 애정이, 물질적 연합을 함께 묶어주는 영적 결합력이다. 효과적인 그런 관계는, 참된 우정으로 인한 헌신에서 아주 풍성하게 설명되듯이, 동성{同性} 사람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160:2.5 우정과 상호간 애정으로 이뤄지는 이런 교제는, 살아가는 기술을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하는, 다음과 같은 기본 요소를 조장하고 촉진하기 때문에, 사회화돼가고 고상하게 돼간다:
 
 
160:2.6 1. 상호적인 자기_표현과 자기_이해. 인간의 기품 있는 여러 추진력이, 표현에 기울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죽어버린다. 정말로, 혼자 있는 것은 사람에게 좋지 않다. 어느 정도 인정받고 다소 존중받는 것이, 인간 성품 개발에 필수다. 집에서 참된 사랑을 받지 못하면어린이들은 정상적인 성품 계발을 온전히 성취할 없다. 성품은 단순한 정신과 도덕 이상{以上} 무엇이다. 성품을 계발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회관계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이상적인 것은, 남자와 여자가 영리한 결혼생활을 서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루는, 애정 깊고 이해심 있는 친구관계다. 여러 관계를 동반하는 결혼은, 강한 성품 계발에 있어야하는, 높은 동기와 귀중한 추진력을 가져오도록 가장 설계돼있다.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가족생활을 찬미하는데, 여러분의 주님께서,   천국 복음의 바로 주춧돌로서 아버지_자녀의 관계를 현명하게 채택하셨기 때문이다. 시간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상{理想} 다정하게 받아들이는 남자와 여자, 무엇에도 비길 없는 그런 관계의 공동체는, 아주 가치 있고 체험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에, 이를 소유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이나 희생이나 대가{代價}든지 지불해야한다.
 
 
160:2.7 2. 혼들의 합동 --지혜를 동원함. 세상 개념과 다음 세상에 대한 어떤 예견을, 인간마다 조만간 획득한다. 이제는 일시적 실존의 이런 관점과 영원한 전망을 결합하는 것이, 인격 연합체를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하여 사람의 정신은, 다른 사람의 통찰력을 많이 얻음으로써 영적 가치를 증대시킨다. 사람은 이런 방법으로 각각의 영적 재산을 모음으로써 혼을 풍성케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똑같은 방법으로, 왜곡된 예견과 선입견을 지닌 관점과 편협한 판단 피해자가 되는, 항상_존재하는 그런 경향을 피할 있다. 두려움, 질투, 자만은, 다른 지성인들과의 친밀한 접촉을 통해서만 예방될 있다. 나는, 주님께서 천국 확장을 위한 일에 여러분을 내보내실 절대로 혼자 가지 않도록 하신 사실에,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며; 주님 항상 여러분을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 그리고 지혜는 지식을 초월하므로, 사회 집단이 작든지 크든지, 지혜와 합동하여, 모든 지식을 서로 나누게 된다.
 
 
160:2.8 3. 살고자 하는 열의. 고립은 혼에 채워진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경향이 있다. 동료들과 연합하는 것은, 인생의 열정을 새롭게 하기에 필요하고, 인간의 삶이 높은 수준으로 상승할 따라오는 투쟁에서 싸울 있는 용기를 유지하기에 필수다. 우정은 기쁨을 향상시키고 인생의 승리를 영화롭게 한다. 인간의 사랑스럽고 친밀한 교제가, 인생의 쓰라린 체험의 슬픔과 학대로 인한 고통을 없애주는 경향이 있다. 친구와 함께 있음으로 인해, 모든 아름다움은 심화되고, 모든 선은 고상하게 된다. 사람은 지능적 상징으로 친구의 진가를 알아보는 능력이 활성화될 있고 확대될 있다. 인간의 우정에서 최고 영광 가운데 하나는, 이렇게 상상력을 서로 자극할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다. 엄청난 영적 능력이, 공통되는 대의명분에 전심으로 헌신함, 시공우주 신격에게 공동으로 충성함을 의식하는 내재한다.
 
 
160:2.9 4. 모든 악에 대항하는 강화된 방어. 인격의 연합과 상호 애정이, 악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대비책이다. 어려움이나 슬픔이나 실망 또는 패배를 혼자 견딜 때에는 고통스럽고 낙담된다. 연합 자체가 악을 의로 바꾸지는 못하나, 괴로움을 크게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 여러분의 주님께서는 --위로할 친구가 옆에 있다면-- “애통하는 자는 행복하다”고 말씀한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복지를 위하여 살고, 사람도 마찬가지로 당신의 복지와 발전을 위하여 산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확실히 힘을 얻을 것이다. 사람은 고립될 괴로워한다. 인간은 시간의 덧없는 흐름을 관찰할 수밖에 없을 반드시 낙담하게 돼있다. 과거와 미래로부터 분리될 현재는 짜증날 정도로 하찮게 된다. 사람은 영원성 궤도를 어렴풋이 감지하기만 해도 최선을 다할 마음을 품게 되며, 자신에게 있는 최선의 자질이 최대로 일하도록 도전할 것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할 , 사람은 다른 사람들, 시간과 영원 속에서 함께 사는 동료의 유익을 위하여 가장 사심 없이 살아간다.
 
160:2.10 다시 말하지만, 영감을 주고 고상하게 하는 그런 연합은, 인간의 결혼 관계에서 이상적인 가능성을 발견한다. 정말로, 많은 것이 결혼을 통해서 얻어지는데, 그럼에도 많은, 매우 많은 부부가 결혼 생활에서 이런 도덕적이고 영적인 열매를 맺기에 완전히 실패한다. 사람들이, 인간의 성숙을 가져오는 이런 뛰어난 부속물보다, 다른 낮은 가치들을 찾으려고 결혼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상적 결혼은 오르내리는 감정과 변하기 쉬운 성욕{性慾}보다는, 안정된 어떤 위에 세워져야하며; 진실하고 상호적인 개인 헌신에 기초해야한다. 그리하여, 그런 신뢰할만하고 효과적인 인간 연합체의 작은 단위들을 여러분이 조성할 있다면, 이것들이 모여서 집단을 이룰 , 세상은 장엄하고 영화로운 사회 구조, 인간의 성숙된 문명을 보게 것이다. 그런 민족은, “땅에는 평화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는 선한 뜻”이라는 여러분의 주님 가진 이상{理想}, 어느 정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사회가 완전하거나 악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성숙으로 인한 안정에 도달할 것이다.
 
 
3. 성숙으로 이끄는 매력
 
160:3.1 성숙을 향한 노력에는 노동이 필요하고, 노동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모든 것을 성취할 있는 힘이 어디서 오는가? 물질적인 것들이 당연히 생각되겠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없다”고 말씀했다. 정상적인 육체와 상당히 좋은 건강을 받았더라도, 우리는 또한 사람의 잠자는 영적 힘을 깨우도록 자극할, 그런 매력을 찾아야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람 속에 살아계신다고 우리에게 가르쳤는데;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설득해서, 혼에 묶여있는 신성과 무한한 능력을 풀어줄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하면, 바로 우리의 혼이 바깥쪽으로 전환하는 동안 우리의 혼을 새롭게 하시고, 그다음에는 없이 많은 다른 혼을 깨우치고 향상시키고 축복하는 우리의 혼의 목적을 도와주시도록, 하나님 놓아드릴 있겠는가? 너희의 속에 동면하고 있는 선을 향한 잠재능력을, 내가 어떻게 하면 최선으로 일깨울 있는가? 내가 확신할 있는 가지는: 감정적 흥분은 영을 자극하기에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흥분은 에너지를 증대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정신은 물론 육체의 능력을 소모시킨다. 그렇다면 일을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여러분의 주님 바라보자. 우리가 여기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언덕에 올라가서 능을 취하고 계신다. 모든 문제의 비밀은, 영적 교류, 경배 속에 감춰져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 그것은 묵상과 기분전환을 어떻게 병합{倂合}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묵상은 정신과 영이 만나게 하며; 기분전환은 영적 감수성의 수용력을 결정한다. 약함 대신 힘으로, 두려움 대신 용기로, 자기중심적 정신 대신 하나님 뜻으로, 이렇게 교환하는 것이 경배의 구성요소다. 적어도 그것이 철학자가 바라보는 방법이다.
160:3.2 체험이 자주 반복되면, 습관, 힘을_주는 경건한 습관으로 굳어지고, 그런 습관은 결국 그에게 영적 성품을 조성하고, 그런 성품은 동료들로부터 성숙한 인간성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훈련은 처음에는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면, 편안해지고 시간을 절약하게 된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질수록, 그리고 문명의 매력이 배가될수록, 하나님_아는 개인들은, 자신의 영적 에너지를 보호하고 증대시키도록 고안된, 그런 보호하는 습관적 관례를 형성할 필요성이 다급해질 것이다.
160:3.3 성숙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요구사항은, 계속_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사회 집단들이 협동해서 적응하는 것이다. 성숙하지 않은 사람은 동료에 대해 적대감을 키우며; 성숙한 사람은, 동역자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협동을 함으로써, 일생의 노력에 대한 여러 배의 결실을 얻는다.
160:3.4 나의 철학은, 나의 정의 개념을 방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싸워야 때가 있다고 말하지만, 주님, 성숙된 유형의 인간성으로, 재치와 아량이라는 탁월하고 매력 있는 기법으로, 쉽고 은혜롭게 똑같은 승리를 얻으시리라는 점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의를 위하여 싸울 , 너무 많은 경우에, 승리자와 패배자 좌절을 체험한다. 나는 주님 바로 어제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잠긴 문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을 , 현명한 자는 문을 부수기보다 문을 있는 열쇠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것이다.” 다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우리 스스로 확신하기 위하여 싸움에 말려드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160:3.5   천국 복음은, 고귀한 삶을 위하여 새롭고 풍부한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살아가는 기술에 크게 기여한다. 복음은 새롭고 고귀한 운명의 목적지, 지고한 삶의 목적을 제공한다. 그리고 실존의 영원하고 신성한 목적에 대한 이런 새로운 개념은 원래 초월적 자극인데, 사람의 높은 본성에 자리잡은 최선의 반응을 야기한다. 지적 사고가 정점{頂点} 이를 때마다, 정신을 위한 휴양, 혼을 위한 , 그리고 영을 위한 교류가 있다. 고귀한 삶의 그런 유리한 지점으로부터, 사람은 낮은 수준의 생각-- 염려, 질투, 시기, 원한, 그리고 미숙한 인격의 자존심--으로 인한 물질적 염증을 초월할 있다. 이처럼 높이_올라가는 혼들은, 삶에서 사소한 일들이 수없이 상반되는 충돌이 일어날 자신을 구원하고, 그리하여 개념과 천상{天上} 대화라는, 높은 흐름을 자유롭게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쉽고 일시적인 달성을 추구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인생의 목적이 세심하게 보호돼야하며; 마찬가지로 인생의 목적은, 광신적인 위험한 조짐에 영향 받지 않도록 보살핌을 받아야한다.
 
 
4. 균형을 이루는 성숙
 
160:4.1 여러분은 영원한 실체를 성실히 달성함과 동시에, 현세의 삶에 필수적인 것도 제공해야한다. 영이 우리의 목적지인 반면, 육체는 실상이다. 생활필수품이 우연히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경우도 가끔 으나,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영리하게 일해야 한다. 삶에서 가지 주요 문제는: 현세의 삶을 사는 것과, 영원한 생존을 성취하는 것이다. 삶을 영위하는 문제를 이상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도 종교가 필요하다. 가지 모두 매우 개인적인 문제다. 사실상 종교는 개인으로부터 분리되어 작용하지 않는다.
 
160:4.2 내가 보는 견지에서 현세적 삶의 본질 요소는 다음과 같다:
160:4.3 1. 양호한 신체 건강.
160:4.4 2. 분명하고 깨끗한 생각.
160:4.5 3. 역량과 솜씨.
160:4.6 4. 재산 --삶에 필요한 물품.
160:4.7 5. 좌절을 견디는 역량.
160:4.8 6. 문화 --교육과 지혜.
 
160:4.9 몸의 건강과 능률에 관한 육체적 문제일지라도, 이를 우리 주님 가르치신 종교적 관점에서 고려할 가장 해결될 있는데: 사람의 몸과 정신은, 하나님들의 선물, 하나님 영이 사람의 영이 되어 거주하는 장소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은, 물질적인 것들과 영적 실체들 사이의 중재자{仲裁者} 된다.
 
160:4.10 사람이 인생에 바람직한 것들을 자기 몫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능이 필요하다. 사람이 일상 활동에 충실하기만 하면 번영이라는 상급{賞給} 보장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틀렸다. 이따금 우연히 재산을 획득하는 것을 제외하면, 현세의 생애에서 물질적 보상은 조직된 어떤 경로를 통해서 발견되며, 경로에 접근하는 자들만이, 현세에 기울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할 있다. 고립되고 개별적인 경로에서 풍요를 찾으려는 사람은 누구나 항상 가난할 운명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계획이, 세상 성공에 필수적인 가지가 된다. 성공하려면 자기 일에 헌신할 뿐만 아니라, 물질적 풍요가 흐르는 어떤 경로의 일부가 되어 활동해야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현명하지 못하면, 일생동안 삶을 헌신해도 물질 보상을 받지 못할 있으며; 여러분이 풍요의 흐름의 우연한 수혜자가 됐다면, 여러분은 동료들에게 가치 있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사치 속에 빈둥거리면서 살지도 모른다.
160:4.11 역량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요, 솜씨는 획득하는 것이다. 어떤 가지를 전문적으로 잘할 없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현실적이지 못하다. 솜씨는 만족한 삶의 실제 근원 가운데 하나다. 역량에는 선견{先見} 은사, 선견지명의 통찰력이 포함된다. 정직하지 못한 성취가 유혹하는 보상에 속지 말며; 정직한 노력의 결과로 나중에 일어날 보상을 위하여 기꺼이 수고하라. 현명한 자는 수단과 목적을 구분할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때때로 과도하게 계획하여, 자신의 높은 목적을 좌절시킨다. 만족을 추구하는 자로서, 여러분은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가 되려고 항상 애써야한다.
160:4.12 인생에서용기를_주고 보람_있는 단편사건들을 신성하게 간직하도록, 여러분의 기억력을 훈련시켜라, 그러면, 사건들을 기쁨과 계발을 위하여 뜻대로 기억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단련시키고, 여러분 자신 속에, 아름다움선함과 예술적인 위엄을 확보하도록 하라. 그러나 모든 기억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은, 훌륭한 친구관계를 가졌던 중요한 순간을 소중히 간직해 추억이다. 그리고 영적 경배의 풀어주는 손길 아래서, 기억 속의 모든 보화가 가장 귀중하고 높여주는 영향력을 발산한다.
160:4.13 그러나 여러분이 실패를 은혜롭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인생은 실존에서 짐이 것이다. 실패 속에는 고귀한 혼들이 항상 획득하는 어떤 기술이 있으며; 여러분은 기분 좋게 잃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야하며; 실망을 두려워하지 않아야한다. 실패를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속이는 미소와 낙천적 태도로, 애써 실패를 감추려하지 말라. 성공을 주장하는 소리는 항상 요란하지만, 마지막 결과는 소름끼치게 한다. 그런 기법은 필연적으로, 비현실 세계를 지어내고, 궁극적 환멸이라는 파멸로 직접 이끈다.
160:4.14 성공이 용기를 낳고 자신감을 증대시키겠으나, 지혜는 오직 사람이 자신의 실패 결과에 적응해 가는 체험에서 나온다. 실체보다 낙천적 환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현명해질 없다. 사실에 직면하면서 이상에 맞게 사실을 맞춰 가는 자만이 지혜를 획득할 있다. 지혜는 사실과 이상을 모두 포함하며, 그리하여 철학의 메마른 양극단{兩極端}으로부터-- 사실을 거부하는 이상주의자와, 영적 전망이 결여된 유물론자로부터--, 지혜에 열중하는 자들을 구해준다. 성공한다는 계속된 거짓 환상의 도움으로 인생의 고뇌를 겨우 유지할 있을 뿐인 소심한 혼은, 자신이 상상하는 꿈의 세계에서 궁극적으로 깨어날 , 결국 실패를 경험하고 패배를 체험하게 돼있다.
160:4.15 그리고 실패에 대처하고 패배에 적응하는 일에는, 멀리까지_미치는 종교적 통찰력이 최상의 영향을 미친다. 우주를 탐구하는 영원한 탐험에 동참한, 하나님_찾는 사람의 체험에서, 실패는 다만 하나의 교육적 사건-- 지혜 습득을 연마하는 실험-- 불과하다. 그런 사람에게 패배는, 다만 우주 실체의 높은 수준을 획득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에 불과하다.
160:4.16 현세의_인생 계획 전체가 불가항력적 실패로 보인다 할지라도, 인생의 실패 하나하나가 지혜로운 교양과 영적 성취를 가져온다면, 하나님_찾는 사람의 삶은 영원성의 견지에서 크게 성공했다고 판명될 것이다. 지식문화와 지혜를 혼동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이것들은 인생과 관련되기는 하지만, 방대하게 다른 가치를 나타내며; 지혜가 언제나 지식을 지배하고 문화를 항상 영화롭게 한다.
 
 
5. 이상주의자의 종교
 
160:5.1 여러분의 주님, 순수한 인간 종교를 개인의 영적 실체 체험으로 간주하신다고, 여러분이 나에게 일러줬다. 나는 종교를, 인류가 충성과 헌신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중요시하는 어떤 것에 대해 반응하는, 사람의 체험으로 간주해왔다. 이런 점에서 종교는, 실체의 이상에 대한 우리의 최고 개념, 그리고 영적 달성의 영원한 가능성을 향해 우리 정신이 가장 멀리 도달한 상태, 가지를 대표하는 것에 우리가 최상으로 헌신함을 상징한다.
160:5.2 부족이나 민족 또는 종족의 의미에서 사람이 종교에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집단 밖에 있는 자들을 진정 인간답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종교적으로 충성하는 대상에 대해 모든 사람이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종교는 단순히 지적 믿음이나 철학적 이론의 문제일 없으며; 종교는 항상 그리고 영원히, 인생의 상황에 대한 반응 양식이며; 행위의 형식이다. 종교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실체를 향해, 겸손히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것을 포함한다.
160:5.3 여러분이 체험한 바에 따라서 어떤 것이 종교가 됐다면, 여러분 자신이 이미 종교의 능동적 전도자가 됐음이 자명한데, 여러분의 종교에 대한 최상의 개념에 대해, 인류, 우주의 지성체들이 경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자신의 종교를 적극적으로 퍼뜨리고 선교하는 전도자가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종교라고 부르는 그것이, 오직 전통적 믿음이거나 단순한 지적 철학 체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여러분은 스스로 속고 있다. 여러분의 종교가 영적 체험이라면, 여러분이 경배 드리는 대상은 보편적 영이라는 실체여야하며, 여러분의 모든 영적 개념의 이상{理想}이어야한다. 두려움감정전통 그리고 철학에 기초하는 모든 종교를, 나는 지적 종교라고 부르는 한편, 참된 체험에 기초하는 종교를 종교라고 부르려한다. 종교적 헌신 대상은, 물질적이거나 영적이거나, 참되거나 거짓되거나, 실제적이거나 비실제적이거나, 인간답거나 신성할 있다. 그러므로 종교는 선하거나 악할 있다.
160:5.4 도덕과 종교가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다. 도덕 체계는 경배 대상을 터득함으로써 종교가 있다. 종교는, 충실함과 최상의 헌신을 요구하는 보편적 호소력을 잃음으로써, 철학 체계 또는 도덕규범으로 변할 있다. 종교적 충성을 받을 최고 이상을 구성하고, 경배하는 자들의 종교적 헌신을 받는, 실존하거나 달성 가능한 사물이나 존재 상태 또는 체제가 하나님이다. 실체의 이상{理想} 어떤 이름이 적용되든지 상관없이,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160:5.5 종교의 사회적 특질은, 그것이 개인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모시키기를 변함없이 추구한다는 사실에 있다. 종교는, 발견되지 않은 이상이 실존한다는 것을 암시하며, 문명 세계에서 가장 성숙된 제도의 최고 사회 관례에도 포함된, 그런 윤리와 도덕의 이미 알려진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종교는, 발견되지 않은 이상, 아직 탐구되지 않은 실체, 초인적 가치, 신성한 지혜, 그리고 참된 달성을 추구한다. 종교는 모든 것을 실행하지만; 다른 모든 믿음은 이름만큼의 가치가 없다.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최상의 숭고한 이상{理想} 없이는, 여러분이 진짜 영적 종교를 가질 없다. 하나님 없는 종교는 사람의 창작물, 생명 없는 지적 믿음과 의미 없는 감정적 예식으로 이뤄진 인간 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이상이 숭배 받을만한 대상이라고, 종교가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재하지 않는 그런 이상은 달성될 없으며; 그런 개념은 착각이다. 인간이 달성할 있는 이상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영적 사실에 내재하는, 무한히 가치 있는 신성한 실체들뿐이다.
160:5.6 하나님이라는 단어, 하나님이라는 이상 대비되는 하나님 관념, 종교가 미숙할 가능성 또는 잘못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지에 상관없이, 어떤 종교에서든지 부분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 관념은, 신봉하는 자들이 선택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있다. 저급한 종교는, 인간 심성의 자연스런 상태에 대처하려고 자체의 하나님 관념을 꾸미며; 높은 수준의 종교는, 종교의 이상이 요구하는 것에 맞춰지도록 인간의 심성이 바뀌기를 원한다.
 
160:5.7 예수 종교는, 경배 관념에 대해 우리가 전에 가졌던 개념을 초월하는데, 이는 예수께서 아버지 무한한 실체라는 이상{理想}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로 땅에서 선택하고 그리하여 하나님 아들신분과 사람의 형제관계를 수락하기로 동의한 모든 필사{必死} 피조물이, 신성한 가치 근원과 영원한 우주 중심을 진정으로 몸소 달성할 있다고 적극적으로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진술하는 그것은, 세상에 알려진 것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종교 개념이고, 높은 것은 결코 있을 없다고 단언하는데, 무한한 실체신성한 가치와 영원한 보편적 달성을 복음이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런 개념은, 지존{至尊} 궁극{窮極}이라는 이상주의를, 체험함으로 성취하게 한다.
160:5.8 나는 여러분의 주님 지닌, 종교의 더할 나위 없는 이상{理想} 흥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실체라는 이상을 달성할 있다는 그의 선포를 믿으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낙원 입구에 확실히 도달할 것이라는 그의 보증을 받아들이고, 여러분과 내가 길고 영원한 탐험에 참여할 있다고 이렇게 고백하도록 강하게 감동받는다. 형제들이여, 나도 믿는다. 나도 같은 배를 탔다. 영원한 모험에 여러분과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주님,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 진리를 말씀하심을 온전히 믿는다. 나는 결국 영원하신 만유의 아버지 상관없이 달성할 있는 완전한 가치 또는 실재하는 이상은 없다고 확신한다.
160:5.9 그래서 나는, 그저 이미 있는 실존들의 하나님 아니라, 미래에 실존 가능한 모든 존재의 하나님 경배하러 왔다. 그러므로 최상의 이상을 향한 여러분의 헌신은, 이상{理想} 실제라면, 물질과 존재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우주들의 하나님 대한 헌신이어야한다. 그리고 어떤 다른 하나님 있을 없으므로, 다른 하나님 없다. 다른 모든 {} 상상의 산물이고, 필사 정신의 환상이고, 잘못된 논리의 왜곡이고, 그런 것을 창작하는 자들의 자기_기만적 우상이다. 물론, 여러분은 하나님 없이도 종교를 가질 있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이상의 실체 대신,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여러분이 추구하려한다면, 이상, 신성한 실체가 있어야 자리에 생각을 집어넣음으로써 여러분 스스로를 속이게 뿐이다. 그런 믿음은 단지 희망에 의거하여 공상하는 종교에 불과하다.
160:5.10 나는 예수 교훈에서 최상의 종교를 발견한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 추구하고 그분을 찾을 있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 나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값을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는가? 우리가 다시 태어나고, 다시 만들어지려고 하는가? 자아를 버리고 혼을 다시 세워가는 혹독하고 어려운 과정에, 우리가 기꺼이 복종할 것인가? 주님: “자기 생명을 구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잃을 것이다. 내가 평안을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말며, 오히려 혼이 투쟁하게 하러 왔다고 생각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렇다, 우리가 아버지 뜻에 헌신하기 위한 값을 지불한 후에야, 성별된 삶의 영적 경로를 계속 걷도록 만드는 엄청난 평화를 체험한다.
160:5.11 우리는 이제, 실존하는 알려진 종류의 유혹을 정말로 배척하고 있으며, 한편 신성한 실체라는 높은 이상주의의 세계들에서 탐험하는 미래적 삶이 실존한다는, 알려지지 않고 탐험되지 않은 종류의 매력을 우리가 탐구하기로 했음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종교라는 이상주의의 실체에 대한 개념들을 우리 동료에게 전달할 있는, 의미 있는 상징을 찾고 있으며, 인류가 이런 최상의 진리를 공동으로 목격함으로써 감격할 그날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할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 마음 속에 간직된 바와 같이, 초점이 맞춰진 우리의 아버지 개념은, 하나님 영이시라는 것이며; 우리 동료에게 전한 바와 같이, 하나님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160:5.12 예수 종교는, 생생하고 영적인 체험을 요구한다. 다른 종교들은, 전통적 신념, 감정적 느낌, 철학적 의식{意識}, 그리고 모든 것일 있지만, 주님 가르침은 영의 참된 진보를 실제 수준에서 달성할 것을 요구한다.
160:5.13 하나님처럼 되려는 충동을 의식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 경배하려는 감정적 느낌도 종교가 아니다.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 섬기기로 확신하는 지식도 종교가 아니다. 종교가 모든 중에 최고라고 추론하는 지혜는, 개인적 영적 체험으로서의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전심으로 신앙으로 받아들인 것의 실체와 이상주의뿐 아니라, 달성할 운명 실체와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진리의 계시함으로, 모두가 우리에게 몸소 겪는 것이 돼야한다.
 
160:5.14 이렇게 해서, 예수 복음을 믿게 그리스 철학자이자, 종족 중에서 가장 위대한 가운데 사람의 논설이 끝났다.



제159편 데가볼리 여행 ∥ 제161편 이어진 로단과의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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