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31, 2011

제155편 갈릴리 북부를 거쳐서 도피함

제154편 가버나움에서 마지막 날들 ∥ 제156편 두로와 시돈에 체류함

155

갈릴리 북부를 거쳐서 도피함

 

155:0.1 사건이 많았던 일요일에, 예수 스물  사람, 케레사 근처에 배를 뒤에 북쪽으로 올라갔고, 벳새다_유리아 남쪽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공원에서 밤을 보냈다. 그들은 전에 여기서 며칠 지낸 적이 있었으므로, 야영지를 알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님 추종자들을 주위에 부르고, 바타니아 북부 갈릴리 거쳐서 페니키아 해변까지 가려고 예정한 여행에 관해 그들과 의논했다.
 
 
1. 어찌하여 이교도가 분노하나?
 
155:1.1 예수께서 말씀했다: “너희는 모두 시편 기자가 시대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기억해야하는데,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이교도가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가? 세상의 왕들이 나서고 민족의 통치자들이 함께 꾀하여, {}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대적하면서, 자비의 끈을 끊어버리고 사랑의 계율을 던져버리자고 말한다.
155:1.2 “너희는 오늘 이것이 너희 눈앞에 이뤄졌음을 본다. 그러나 시편 기자의 나머지 예언들이 이뤄지는 것은 보지 못할 것인데, 그가 사람의 아들 대하여, 그리고 땅에서 이룰 그의 사명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자비로 선포되고, 이타적 봉사로 확립된다. 아버지, 이교도를 비웃으면서 하늘에 앉아계신 분이 아니다. 기분 나쁘다고 격노하는 분이 아니다. 아들 소위 이교도를(실제로는 무식하고 배우지 못한 형제들을) 유산으로 받으리라는 약속은 사실이다. 나는 자비와 애정의 팔을 벌려서 이교도를 받아들일 것이다. 승리한 아들 ‘이교도를 쇠막대기로 쳐서 질그릇처럼 산산조각으로 깨뜨릴 것이라’고 암시하는 불행한 선언이 있었음에도, 사랑의_자비가 소위 이교도들 위에 임할 것이다. 시편 기자는 너희에게 두려움으로 섬기라’고 훈계했으나--나는 너희에게 신앙으로 신성한 아들신분이 되는 고귀한 특전을 받으라고 명하며; 기자는 너희에게 떨며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확신을 갖고 즐거워하라고 명한다. 그는 말하기를 아들에게 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그의 진노에 불이 붙어 너희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나와 함께 생활해 너희는, 분노와 노여움은 사람의 마음 속에서 하늘 나라를 설립하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안다. 그러나 시편 기자도 훈계를 끝내면서, ‘이 아들 신뢰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을 , 빛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155:1.3 예수께서는 스물네 사람 계속 가르치면서 말씀했다: “이교도는 아무 이유 없이 우리에게 화내지 않는다. 이교도는 소견이 좁고 편협하므로, 자신의 에너지를 열심히 집중시킬 있다. 그들의 목표는, 가까이 있고 대체로 눈에 보이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용감하게 효과적으로 처리하려고 애쓴다. 하늘 나라로 들어간다고 고백한 너희가 가르치는 행동은, 전체적으로 우유부단하고 불분명하다. 이교도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정면으로 도전하는데; 너희는 너무 만성적으로 동경만 하는 잘못을 범한다. 너희가 천국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치 이교도가 포위한 도시를 점령하는 것처럼, 영적 기습공격으로 천국을 차지하지 않느냐? 대체로 과거를 후회하고  상황을 푸념하면서 부질없이 미래를 희망하는 태도로 봉사한다면, 너희는 도저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어찌하여 이교도가 분노하는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어찌하여 쓸데없는 동경으로 번민하는가? 진리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동경을 그만두고, 용감하게 나가서 천국 건설에 관계되는 일을 행하라.
155:1.4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지나치게_전문화되지 않게 하라.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바리새인, 자신도 하나님 일을 하고 있다고 진정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전통에 너무 얽매여서편견으로 눈이 멀었고 두려움으로 굳어졌다. 그리스인 보라, 유대인 과학 없는 종교를 믿는 동안, 그들은 종교 없는 과학을 신봉했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 인도되어, 사람들이 편협하고 혼란스런 와해된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희망은 진리와_조화되는 -- 개심하는 --뿐이다.
155:1.5 “이 영원한 진리를 강조하여 이야기해보자: 진리에 조화됨으로써, 너희 삶에 정의의 아름다운 온전함을 모범으로 보여주기를 너희가 배운다면, 동료들도 너희가 그렇게 획득한 그것을 얻으려고 너희를 따라가려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마음이 끌리는 만큼, 너희는 부여받은 진리, 의로움을 보여주고 . 메시지를 들어줄 사람을 찾아서 멀리까지 가야한다면, 어떤 면에서 이것은 온전하거나 의로운 , 진리와_조화된 삶을 너희가 얼마나 살지 못했는가를 재는 척도다.
155:1.6 그리고 제자들과 전도자들이 그에게 인사를 하고 잠자러 가기 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른 많은 것을 가르쳤다.
 
 
2. 고라신에서 전도자들
 
155:2.1 5 23 월요일 아침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열두 명의 전도자를 데리고 고라신으로 가도록 명하고, 자신은 나머지 열한 명의 사도와 함께 가이사랴_빌립보 향해 떠났는데, 요단강 경유하여 다마섹_가버나움 길로 가다가 북동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가이사랴_빌립보 가는 교차로를 지나 도시로 들어갔고, 거기서 2주간 머물면서 가르쳤다. 예수 일행이 도착한 때는 5 24 화요일 오후였다.
155:2.2 베드로 전도자들은 고라신 2 동안 머물렀고, 작지만 진지한 무리의 신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나 그들은 개종자를 많이 얻지 못했다. 갈릴리 어느 도시에서도, 고라신 만큼 천국을 갈망하는 혼이 거의 없었던 곳은 없었다. 베드로 지시에 따라, 열두 전도자는 --육체적인-- 치유에 대해 말이 적었던 반면, 하늘 나라의 영적 진리를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전파했다. 고라신에서 주는, 이때까지의 경력 중에서 가장 어렵고 비생산적인 기간이었다는 점에서, 열두 전도자들에게는 틀림없이 역경으로 정화{淨化}되는 기간이었다. 천국을 갈망하는 혼을 거둬들이는 만족감을 이렇게 빼앗겼기 때문에, 그들은 각자 자신의 혼을, 그리고 새로운 삶의 영적 진로에서 혼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진지하고 진솔하게 살펴봤다.
155:2.3 천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이상 없는 듯이 보이자, 6 7 화요일에 베드로 동역자들을 모두 소집했고, 예수사도들과 합류하려고 가이사랴_빌립보 지방으로 떠났다. 수요일 정오쯤 거기에 도착하여, 고라신 비신자들 사이에서 겪었던 체험담을 저녁 내내 이야기하면서 보냈다. 이날 저녁 토론 중에, 예수께서는 뿌리는 자의 비유와 관련하여 이야기했고, 인생살이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많이 가르쳤다.
 
 
3. 가이사랴_빌립보에서
 
155:3.1 예수께서 가이사랴_빌립보 지방 근처에 머문 2 동안에 공적 업무는 행하지 않았더라도, 사도들은 도시에서 수많은 집회를 조용히 가졌으며, 많은 신자가 주님 이야기하려고 야영지로 찾아왔다. 방문 결과로 신자들 집단이 늘어나는 일 거의 없었.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매일 이야기했으며, 그들은 하늘 나라를 전파하는 업무가 이제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하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신성한 아들신분을 받아들임으로써 얻는 영적 기쁨을 실현하는 것”임을 납득하기 시작했다.
155:3.2 가이사랴_빌립보 체류한 것은 열한 사도들에게 진정한 시험이었으며; 주는 그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기간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의기소침했고, 베드로 열정적 인간성으로 인한 간헐적 자극을 그리워했다. 시기에 예수 믿고 따르는 것은 진정으로 크고 벅찬 모험이었다. 그들이 동안 개종자를 거의 얻지 못했어도, 주님 매일 가졌던 협의를 통해서 매우 유익한 것을 많이 배웠다.
155:3.3 사도들은, 진리를 하나의 신조{信條} 구체화시킴으로써 유대인 영적으로 침체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또한 진리가 영적 안내와 진보의 이정표로서 이바지하는 대신, 스스로_의롭게 여기는 배타적 경계선으로 굳어버릴 , 그런 교훈은 자체의 창조력과 생명_수여 능력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단지 보존되고 화석화{化石化} 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155:3.4 시간세계에서 그리고 영원 속에서, 인간의 인격을 가능성에 기초하여 바라보는 방법을, 그들은 예수에게서 점점 배우게 됐다. 먼저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하도록 많은 혼을 인도할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동료들에 대한 이타적 봉사에 관한 예수 다음과 같은 선언에도,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가 가미됐다: “너희가 형제 가운데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것이 나에게 것이다.
155:3.5 가이사랴에서 이번에 머무는 동안 얻은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종교적 전통의 기원과 연관된 , 신성하지 않은 물건, 일반 관념, 또는 일상적 사건에 신성한 느낌이 덧붙여지도록 허용하는 심각한 위험성에 연관된 것이었다. 진정한 종교란,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을 가장 고귀하고 가장 진실한 신념에 바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어느 회담에서 그들은 분명히 알게 됐다.
155:3.6 예수께서는 신자들에게, 그들의 종교적 열망이 단지 물질적일 뿐이라면, 초자연적으로 기원된다고 가정하는 것들이 점진적으로 대신 들어섬으로써, 자연에 관한 증가하는 지식이 결국 하나님 대한 신앙을 그들로부터 빼앗으리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들의 종교가 영적이라면, 영원한 실체와 신성한 가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자연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방해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했다.
155:3.7 종교가 온전히 영적 동기를 가졌을 , 모든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한편, 고귀한 목적을 부여하고, 초월적 가치로 존귀하게 하고, 훌륭한 동기로 영감을 주며, 그렇게 하면서 장엄하고 지속되는 희망으로 인간의 혼을 격려한다는 것을 그들은 배웠다. 진정한 종교는, 존재의 긴장상태를 줄여주도록 고안됐으며; 일상생활과 이타적 봉사를 위하여 신앙과 용기를 발산한다. 신앙은 영적 활력을 갖게 하고 의로운 열매를 맺도록 촉진한다.
155:3.8 예수께서는, 어떤 문명이든지 자체의 종교에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오래 지속될 없다는 것을, 사도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쳤다. 또한, 종교 체험 대신 종교의 상징과 예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열두 사도에게 지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얼어붙은 형태의 종교를 녹여서, 계몽된 아들신분이라는 막힘없는 자유 속으로 흐르게 하는 사명에, 그는 세상 생애 전부를 한결같이 바쳤다.
 
 
4. 페니키아로 가는
 
155:4.1 6 9 목요일 아침에, 벳새다 있는 다윗 심부름꾼들로부터 천국이 어떻게 진전되는지 소식을 받은 , 진리를 가르치는 스물다섯 선생 집단은, 페니키아 연안 지방으로 여행하려고 가이사랴_빌립보 떠났다. 그들은 늪지대 지역을 돌아, 루즈 거쳐서, 막달라_레바논 오솔길과 만나는 곳으로 갔고, 거기서 시돈으로 향하는 길을 가로질렀고, 금요일 오후에 거기에 도착했다.
155:4.2 루즈 근처 바위 그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쉬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와 교제했던 전체 기간 중에 사도들이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가장 특기할만한 말씀을 했다. 그들이 빵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자마자 시몬 베드로 예수 물었다: 주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땅에 하늘 나라를 건설하려는 우리를 그의 영이 후원하시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적들의 위협을 피해 도망갑니까? 어째서 진리의 원수들과 맞서 싸우지 않습니까?” 그러나 베드로 질문에 예수께서 대답하기 전에, 도마 끼어들어서 물었다: 주님, 나는 예루살렘 있는 우리 적들의 종교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들의 종교와 우리 종교에서 진정으로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 같은 하나님 예배드린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토록 다양한 믿음이 있는지요?도마 질문이 끝나자 예수께서 말씀했다: “이번에 유대인 지도자들과 공공연히 충돌하기를 내가 피한 것에 대해 얼마나 오해하기 쉬운지 알기 때문에, 베드로 질문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으나, 도마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너희에게 많은 도움을 같다. 그러니 너희가 점심 식사를 끝낸 후에 계속 진행하겠다.
 
 
5. 종교에 관한 강론
 
155:5.1 종교에 대한 기억에 남을 만한 강론을 현대 용어로 요약해서 다시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진리를 표현했다:
 
155:5.2 세상의 종교는, 어느 시대, 어느 민족 가운데서든지 이중적 기원-- 자연스런 기원과 계시적 기원-- 갖는데, 거기서 가지 뚜렷이 다른 형태의 종교적 헌신을 발견할 있다. 종교적 충동의 가지 징후는 다음과 같다:
155:5.3 1. 원시 종교. 신비한 능력을 두려워하고 초자연적 힘을 숭배하는, 약간 자연스러운 본능적 충동으로서, 주로 물질적인 자연 종교, 두려움의 종교.
155:5.4 2. 문명의 종교. 문명화하는 종족들의 발전하는 종교-- 정신의 종교-- 개념과 풍습, 확립된 종교 전통이라는 권위 있는 지적{知的} 신학.
155:5.5 3. 참된 종교 --계시 종교. 초자연적 가치를 지닌 계시, 영원한 실체에 대한 부분적 통찰력, 하늘에 계신 아버지 무한한 성품인, 선함과 아름다움을 훑어봄--인간 체험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영의 종교.
155:5.6 예수께서는 비록 꾸밈없는 사람의 육체적 감각과 미신적 두려움의 종교를 경시하지는 않았으나, 이런 원시적 경배 형태 중에서 매우 많은 부분이, 인류 가운데 총명한 축에 속하는 종족들의 종교 형태 속에서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한탄했다. 예수께서는, 정신의 종교와 영의 종교의 가장 차이는, 전자가 교회의 권위로 지탱되는 반면, 후자는 전적으로 인간 체험에 기초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155:5.7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는 몸소 가르치는 시간에 다음의 진리를 분명히 했다:
 
155:5.8 종족들이 고도로 지성적이 되고 충분하게 문명화될 때까지, 그런 유치하고 미신적인 예식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존속될 것인데, 그런 예식들은, 원시적이고 뒤떨어진 사람이 믿는 진화하는 종교 풍습의 특질이다. 인간 종족이 영적 체험의 실체를 높은 수준에서, 그리고 전체적으로 인식할 있을 때까지, 많은 남녀가 오로지 지적인 동의를 요구하는 권위의 종교를 개인적으로 계속 선호{選好} 것인데, 이와는 반대로 {} 종교에는, 진취적 인간 체험을 겪는 벅찬 현실과 맞붙어 싸우는 신앙의 모험에, 정신과 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따라온다.
155:5.9 전통적인 권위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영적 본성의 열망을 만족시키려고 애쓰는 사람의 충동에 대해 쉬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안정되고 정형화되고 확립돼있는 권위의 종교는, 사람의 심란하고 혼란스런 혼이 두려움이나 불확실성으로 괴로워할 , 피신할 있는 도피처를 재빨리 제공한다. 그런 종교는, 종교에 만족하고 확신을 갖는 것에 대해 지불해야 대가{代價}, 오직 수동적이고 순수하게 지적인 동의만을 헌신자들에게 요구한다.
155:5.10 세상에는, 소심하고 겁이 많고 우유부단한, 그래서 종교적 위로를 얻기를 좋아할 개인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존속할 것이며, 비록 그렇더라도, 그들은 권위 종교와 그렇게 운명을 같이 함으로써, 인격의 주권을 손상시키고, 자존감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며, 가능한 모든 인간 체험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고 영감 어린 것에 참여할 있는 권한을 완전히 넘겨주는데, 체험은: 개인적인 진리 추구, 지적 발견의 위험에 대처하는 유쾌함, 개인의 종교 체험이라는 실체를 탐사하려는 결심, 그리고 --사람이 혼자 힘으로 스스로 하나님 찾다가 그를 발견하는-- 모든 인간 실존의 최상의 모험에서 정직하게 성취하는 승리, 영적 신앙이 지적 의심을 이기는 것을 실제로 깨닫는 만족감, 개인적으로 승리하는 최고의 만족을 얻는 체험 등이다.
155:5.11 영의 종교는, 노력, 투쟁, 갈등, 신앙, 결정, 사랑, 충성, 진보를 의미한다. 정신의 종교는-- 권위를 내세우는 신학은-- 형식에 치우친 신자들에게,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라고 거의 또는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전통은 많고 반신반의하는 혼들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이고 쉬운 길인데, 그런 사람들은, 진취적 인간 정신이 발견하고 진화하는 인간 혼이 체험할 수도 있는, 바닷가의 영적 실체를 찾아서, 미지{未知} 진리라는 숭고한 바다에 감히 도전하는 그런 신앙의 항해와 관련된, 갈등과 정신적 불확실성을 본능적으로 피하려는 자들이다.
 
155:5.12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했다: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은, 전통적 스승 다른 시대의 선지자들이 전해 다양한 교리를, 기존의 지적 믿음 체계로, 권위의 종교로 공식화시켰다. 그런 종교는 대개 인간 정신에 호소한다. 우리는 머지않아 종교를 선언할 것이므로, 이제 우리는 그런 종교와 격렬한 싸움을 벌여야 시점에 와있다-- 종교는 단어가 오늘날 의미하는 종교가 아닌 어떤 종교, 사람의 정신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신성한 영에게 주로 호소하는 어떤 종교이며; 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맺히는 열매로부터 종교의 권위를 이끌어내게 어떤 종교인데, 열매는 이런 높은 영적 교류의 진리를 진정으로 참되게 믿는 모든 사람의 개인 체험 속에 매우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155:5.13 예수께서 스물네 사람 하나씩 지적하고 각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씀했다: “자 이제, 하늘 나라의 영원한 진리와 최고의 장엄함을 너희 스스로 몸소 생생하게 체험하는 만족감, 아름다운 실체들을 발견하는 만족감을 누리면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좋은 방법을 선포하는 사명에 수반되는 어려움과 박해를, 너희 가운데 누가 견디겠느냐? 아니면, 오히려 예루살렘 바리새인들이 옹호하는, 정형화되고 화석화{化石化} 종교를 따르는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 좋으냐? 너희는 두려움에 차있고 심약하며 쉽게_얻고자 하느냐? 진리의 하나님 손에 너희의 미래를 맡기기 두려우냐, 너희는 누구의 아들이냐? 너희는 아버지 불신하느냐, 너희는 누구의 자녀이냐? 너희는 전통적인 권위 종교의 지적 안정성과 확실성이라는 쉬운 길로 후퇴하겠느냐, 아니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하늘 나라인 영의 종교에 대한  진리를 선포하는, 불확실하고 고통스런 미래를 향해, 정신 차리고 나와 함께 앞으로 나가겠느냐?
155:5.14 이것은 예수께서 일찍이 그들에게 했던 되는 감정적 호소 가운데 하나였으며, 말씀을 듣던 스물네 사람 전체는, 모두 일어나서 일치된 충성의 반응을 표시하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손을 들어 제지하면서 말씀했다; “이제 너희끼리 따로 가서 각자 아버지 함께 홀로 있거라, 그리고 거기서 질문에 대해 냉철한 대답을 찾고, 그렇게 진실하고 진지한 혼의 입장을 발견한 후에, 대답을 아버지 너희 아버지이신 그분께 거리낌 없이 하게 말씀드려라, 사랑으로 말미암는 그분의 무한한 생명이 바로 우리가 선포하는 종교의 참뜻이다.
155:5.15 전도자와 사도들은 얼마 동안 자기들끼리 따로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한 것으로 인해 그들의 사기가 북돋았고, 정신은 무척 고무됐으며, 감정적으로 몹시 들떠있었다. 그러나 안드레 그들을 모두 모았을 , 예수께서는 단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다시 여행을 떠나도록 하자. 우리는 페니키아 가서 한동안 머물 것이며, 너희는 모두 들뜬 정신과 몸을 변화시켜서, 깊은 충성심과 만족스런 영의 체험이 이뤄지도록 아버지 기도할 것이다.
155:5.16 여행하면서 길을 가는 동안, 스물네 명은 침묵을 지켰으나 서로 말하기 시작했고, 그날 오후 시쯤 되자, 이상 없었으며; 휴식을 취하게 되자 베드로 예수 가서 말했다: 주님, 우리에게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듣기 원하며; 문제에 관해 저희에게 말씀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6. 종교에 관한 번째 강론
 
155:6.1 그래서 그들이 언덕 그늘 아래 멈춰서 쉬는 동안, 예수께서 영의 종교에 관해 계속 가르쳤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155:6.2 너희는 정신의 종교에 만족한 머물러 있기로 선택한 동료들, 안전함을 갈망하고 신봉하기를 좋아하는 너희 동료들 가운데로부터 빠져나왔다. 너희는 권위주의적 확신의 느낌을 버리고, 모험적이고 진취적인 영적 신앙의 영성{靈性} 대한 확신을 선택했다. 너희는 규격화된 종교의 엄격한 속박에 대담하게 맞서 싸워왔고, 지금 하나님 말씀이라고 여기는 전통적 기록의 권위를 과감히 거부해왔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진정으로, 모세,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선지자들의 발언이 끝난 후에도,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공급해오셨다. 아버지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세대에는 주고 다른 세대에는 거둬들임으로써 인류나 세대를 차별하는 그런 분이 아니다. 완전히 인간적인 것을 신성한 것이라고 일컫는 잘못을 범하지 말며, 또한 영감을 일으킬 것이라고 가정하는 전통적 성경을 통해서는 나올 없는,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기에 실패하지 말라.
 
155:6.3 나는 너희에게 거듭나라고, 영으로 태어나라고 호소했다. 권위라는 어둠과 전통이라는 무기력 상태로부터 너희를 불러내서, 인간의 혼이 있는 가장 위대한 발견-- 혼자 힘으로, 자신 속에서, 자기 스스로 하나님 발견하고, 자신의 개인 체험에서 하나의 사실로서 모든 것을 행하는 탁월한 체험-- 스스로 있음을 깨닫는 초월적 속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해서 너희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전통의 권위로부터 하나님 아는 체험으로 옮겨갈 것이며; 그리하여 어둠으로부터 빛으로, 물려받은 민족 신앙으로부터 실제 체험을 거쳐서 성취한 개인 신앙으로 옮길 것이며; 이로 인해, 너희는 너희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정신의 신학으로부터, 영원한 재산으로서 너희 속에 세워지게 참된 영의 종교로 진보할 것이다.
155:6.4 너희의 종교는, 전통적 권위를 따르는 단순한 지적 믿음으로부터, 살아있는 신앙의 실제 체험으로 바뀔 것인데, 신앙은, 하나님 실체를 파악하고, 아버지 신성한 영에 관계하는 모든 것을 파악할 있다. 정신의 종교는 너희를 희망도 없이 과거에 얽매이게 하며; 영의 종교는 점진적인 계시에 있고, 영적 이상{理想} 영원한 실체들로부터 높은 쪽으로, 그리고 고귀한 쪽으로 항상 너희를 손짓해 부른다.
155:6.5 권위의 종교는 즉석에서 처리된 안정감을 줄지 모르지만, 그렇게 잠깐 만족 대가{代價} 너희는 영적 자유와 종교적 해방감을 상실한다.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대가로, 영적으로 거슬리고 불경스럽고 진실성 없는 것들에 대한 어떤 믿음에 너희 자신을 붙들어 매라고 강요하지 않으신다. 또한 퇴색한 종교 형식과 예식에 복종함으로써, 자비와 정의와 진리에 대한 너희 자신의 감각이 침해당하도록, 너희에게 요구하지도 않으신다. 영의 종교는, 영이 너희를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지, 너희가 진리를 영원히 자유롭게 따라가도록 내버려둔다. 그리고 누가 심판할 있는가?--아마 영은, 다른 세대들은 듣기를 거부했던 어떤 것을 세대에게 나눠줄지도 모른다.
155:6.6 굶주린 혼들을 어둡고 멀리 떨어진 과거로 끌고 가서 거기에 방치하는, 거짓 종교 선생들에게 부끄러움이 있을 지어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은,  것이 발견될 때마다 깜짝 놀랄 운명에 처했고, 한편 진리에 대한  계시가 있을 때마다 당황하고 있다. “정신이 하나님 머물러 있는 자는 완전한 평강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 선지자는, 권위의 신학을 단순히 지적으로 신봉한 자가 아니었다. 진리를_알던 사람은 하나님 찾아냈으며; 하나님 대하여 그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155:6.7 너희에게 훈계하는데, 선지자들의 말을 항상 인용하고 이스라엘 영웅들을 찬양하는 습관을 버리는 대신, 지고자 살아있는 선지자가 되고, 다가오는 천국의 영적 영웅이 되기를 열망하라. 과거에 하나님_알던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정말로 가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서 어찌하여 너희는 인간 실존에서 최상의 체험: 스스로 하나님 찾고 자기 속에서 하나님 아는 체험을 희생시켜야하느냐?
155:6.8 인류의 종족마다 인간 실존에 대한 자체의 관념적 견해를 가지며; 그러므로 정신의 종교는 종족의 다양한 견해에 충실해야한다. 권위의 종교는 결코 통합에 도달할 없다. 인간의 통일과 필사자의 형제관계는 오직 영의 종교가 주는 초월_재능으로 인해, 그리고 재능을 통해서만 이뤄질 있다. 인종 정신은 다를 있으나, 똑같이 신성하고 영원한 영이  인류에게 내주한다. 인간이 형제관계를 이루는 희망은, 오직 다양한 권위의 정신 종교가, 통합하고 고귀하게 하는 영의 종교-- 개인적인 영적 체험의 종교-- 주입되고, 영의 종교에 압도됨으로써만 실현될 있다.
155:6.9 권위의 종교는 단지 사람을 분열시키고, 그들을 의도적으로 서로 반목시키게 뿐이지만; 영의 종교는, 사람을 점진적으로 함께 모아서, 서로 이해심을 갖고 공감하게 되도록 것이다. 권위의 종교는 사람에게 획일적인 믿음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세상 상태로는 실현될 없다. 영의 종교는, 믿음의 다양성을 충분히 허락하면서, 단지 체험의 통일-- 운명의 획일성-- 요구할 뿐이다. 영의 종교는, 견해와 전망의 획일성이 아닌, 오직 통찰력의 획일성만 요구한다. 영의 종교는, 지적 견해들의 획일성이 아니라, 오직 느낌의 통일만 요구한다. 권위의 종교는, 생명 없는 신경{信經}으로 정형화시키지만; 영의 종교는, 사랑으로 봉사하고 선행과 자비로 보살피는 행위, 즉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증가하는 기쁨과 자유 속으로 자라간다.
155:6.10 그러나 너희는, 아브라함 자손이 전통을 고집하여 열매 맺지 못하는 이런 악한 시대에 처해있다고 해서 저희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조심해라. 우리 조상은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 찾으려고 헌신했으며, 아담 시대 이후로 다른 어떤 종족도, 저희가 찾아낸 만큼 하나님 알지 못했는데, 아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므로 이를 대부분 알았다. 아버지께서는, 모세 시대 이래, 하나님 찾고 하나님 알고자 하는, 길고 지칠 모르는 이스라엘 투쟁과정을 아셨다. 유대인 여러 세대동안 계속 애쓰고 땀을 흘리고 슬퍼하고 고생하면서 고통을 참아왔으며, 사람들로부터 오해받고 경멸당하는 슬픔을 감수해왔는데, 그것은 모두, 그들이 하나님 관한 진리를 발견하기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갖 실패와 비틀거림에도, 모세로부터 아모스 호세아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는 더욱 분명하고 진실된 영원한 하나님 모습을 세상에 점차 드러냈다. 그리하여, 아버지 대한 더욱 계시를 위한 길이 준비됐고, 너희는 계시를 나눠주라고 부름 받았다.
155:6.11 살아 계신 아버지 뜻을 발견하려는 시도보다 만족스럽고 감동적인 모험은, 오직 신의 뜻을 행하고자 정직하게 시도하는 최상의 체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또한 세상에서 어떤 직업을 갖든지, 하나님 뜻을 행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거룩하지 않은 직업이 있고 세속적인 직업도 있다. 영으로 인도되는 사람의 삶에서는 모든 직업이 신성시되는데; 다시 말해서 그것은 진리에 복종하게 되고, 사랑으로 고귀하게 되고, 자비심이 풍만해지고, 공정함으로-- 공의로-- 행동을 절제하게 된다. 아버지 내가 세상에 보낼 영은 진리의 일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영이기도 하다.
155:6.12 너희는 신학적 권위가 있는 기록에서만 하나님 말씀을 찾으려하기를 멈춰야한다. 하나님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어떤 출처에서 나왔든지 말씀을 알아본다. 증여 경로가 외견상 인간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신성한 진리가 평가절하 돼서는 된다. 너희 형제 가운데 다수는, 하나님 대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정신을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현존을 영적으로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진지한 어린아이의 태도를 갖는 것이 하늘 나라를 실현할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그렇게 자주 가르쳤던 이유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정신적 미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_믿고 완전히_신뢰하는 그런 영적 단순성이다. 너희가 하나님 관한 사실을 알아야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점점 많이 하나님 현존을 느낄 있는 역량이 자라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155:6.13 일단 너희의 혼에서 하나님 찾기 시작하면, 너희는 다른 사람의 혼에서도 하나님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 결국 거대한 우주의 모든 피조물과 창조물에서도 하나님 발견하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영원한 실체들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혼에, 아버지 최상으로 충실하고 신성한 이상적{理想的} 하나님으로서 나타나실만한 무슨 가망이 있을까? 정신은 영적 본성의 중심지가 아닌 반면, 정말로 그곳으로 가는 통로다.
155:6.14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 찾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해보이려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해라; 너희가 그렇게 타당한 증명을 의식적으로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님 알고 있음을 나타내는 긍정적이고 강력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55:6.15 1. 너의 일상생활에서 날마다 나타나는 하나님 영의 열매.
155:6.16 2. 영원하신 하나님 찾겠다는 소망을 추구하면서, 죽음 이후에 생존하는 모험에 너의 존재 전체와 너의 소유 전부를 아낌없이 걸었다는 분명한 증거를, 너의 전체 생애 계획이 제공한다는 사실, 하나님 현존하심을 너는 때에 맞춰 미리 경험해왔다.
155:6.17 그러니, 실수하지 말라, 아버지께서는 아주 희미하게 깜박이는 신앙에도 항상 반응하신다. 원시인의 물질적이고 미신적인 감정까지도 알아보신다. 그리고 신앙이 너무 약해서 권위의 종교에 수동적 태도로 동의하는, 지적 동의에 지나지 않는 신앙을 지닌, 정직하지만 두려움에 그런 혼들에게도, 아버지께서는 자신에게 도달하려는 그런 모든 미약한 시도를 언제나 존중하고 격려하신다. 그러나 어둠에 있다가 가운데로 불려나온 너희가 전심으로 믿으리라고 기대되며; 육체정신과 , 셋의 통합된 태도를, 너희의 신앙이 지배해야 한다.
155:6.18 너희는 나의 사도이니, 너희에게는 종교가, 영적 진보와 이상적 모험에 따르는 모진 현실에 맞서기 두려워서 피신하고 싶은 신학적 피난처가 돼서는 되며; 오히려 너희의 종교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찾으셨고, 높여주셨고, 이상화시키셨고, 고귀하게 하셨고, 영성화{靈性化}시키셨음을 증명해주고, 그렇게 너희를 찾아서 아들로 맞이하신 하나님 찾으려고 영원한 모험에 참여했음을 증명해주는, 실제 체험의 사건이 돼야.
 
155:6.19 말씀을 마치고 나서, 예수께서는 안드레 부르고 페니키아 있는 서쪽을 가리키면서 말씀했다: “우리가 가야 곳으로 떠나자.



제154편 가버나움에서 마지막 날들 ∥ 제156편 두로와 시돈에 체류함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