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31, 2011

제148편 벳새다에서 전도자 훈련

제147편 막간의 예루살렘 방문 ∥ 제149편 2차 전도여행

148

벳새다에서 전도자 훈련

 

148:0.1 서기 28 5 3일부터 10 3일까지, 예수 사도 일행은 벳새다에서 세베대 집에 머물렀다. 다섯 동안의 건조한 계절 내내, 세베대 근처 해변을 따라서 거대한 야영지가 형성됐고, 늘어나는 예수 일행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려고 크게 확장됐다. 진리 탐구자, 치유를 바라는 , 호기심 가득한 사람 등으로 구성된 500에서 1,500 달하는, 항상 변하는 숫자의 사람이 야영지에 있었다. 다윗 세베대 천막 도시의 전반적인 감독을 맡았고 알패오 쌍둥이 형제의 도움을 받았다. 야영지는, 전반 경영은 물론이고, 질서와 위생 면에서도 모범적이었다. 유형에 따라서 병자들이 분리됐고, 엘만이라는 시리아인 신자{信者} 의사가 관리했다.
148:0.2 기간 내내, 사도들은 적어도 매주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고, 그렇게 잡은 것을 해변 야영지에서 소비하도록 다윗에게 팔았다. 이렇게 하여 얻은 기금을 집단의 회계에게 맡겼다. 열두 사도는, 동안 가족이나 친구들과 지낼 있도록 허락됐다.
148:0.3 안드레 사도 활동을 전반적으로 계속 책임졌고, 베드로 전도자 학교를 전적으로 책임졌다. 매일 오전에는 사도들이 전도자 무리들을 가르치면서 자기 몫을 담당했고, 오후에는 선생들과 학생들 모두가 사람들을 가르쳤다. 주에 닷새 동안 저녁식사 후에사도들은 전도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질문 시간을 가졌다. 주에 번은 예수께서 질문 시간을 주재했고,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그전에 있었던 질문에 대해 대답했다.
148:0.4 다섯 동안 수천 명의 사람이 야영지를 다녀갔다. 로마 제국 전역과 유프라테스 동쪽 지역에서, 관심 있는 자들이 자주 참석했다. 이때는 주님 가르친 기간 가운데, 가장 오래 정착되고 _조직된 기간이었다. 예수 가족은, 시간의 대부분을 나사렛 또는 가나에서 지냈다.
148:0.5 야영지는 사도 일행처럼 공유 자산 공동체로 운영되지는 않았다.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았음에도, 다윗 세베대 천막 도시를 자급자족하는 기업으로 키우면서 이끌어나갔다. 항상 변화를 겪던 야영지는, 베드로 전도자 훈련 학교에 없어서는 부분이었다.
 
 
1. 선지자 학교
 
148:1.1 예수께서는, 전도자 학교에 입학하려는 신청자들의 심사 위원으로서 베드로와 야고보 안드레 임명했다. 로마 세계와 멀리 인도 이르는 동양 모든 종족과 민족이,   선지자{先知者} 학교의 학생들 가운데 있었다. 학교는 배우면서 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생들은 오전 동안 배웠고, 오후에는 그것을 해변에서 회중에게 가르쳤다. 저녁 식사 후에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오전에 배운 것과 오후의 가르침에 대해 토의했다.
148:1.2 사도 선생들은 각자 천국 복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가르쳤다. 똑같이 가르치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며; 신학적 교리를 표준화하거나 신조 형식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모두가 같은 진리 가르쳤음에도, 사도마다 주님 가르침에 대한 자신의 개인 해석을 제시했다. 예수께서는 천국 일을 하면서 얻은 개인 체험의 다양성을 이렇게 발표하는 것을 지지했고, 한편으로는 질문 시간을 통해서, 복음에 대한 그런 다양한 견해를 반드시 조화시키고 조정했다. 가르치는 문제에서는 상당한 개인적 자유가 있었음에도, 시몬 베드로 영향력이 전도자 학교의 신학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었다. 베드로 다음으로는 세베대 아들 야고보 개인 영향력을 가장 크게 발휘했다.
148:1.3 5개월 동안 해변에서 훈련받은 100 이상의 전도자가 주요 인물이라고 있었는데, (아브넬을 비롯한 요한 사도들을 제외하고) 나중의 70 복음 선생 설교자가 그들 가운데서 뽑혔다. 전도자 학교는 열두 사도가 그랬던 것만큼 그 정도로 모든 것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148:1.4 전도자들은, 직접 복음을 가르치고 설교했지만, 예수께서 나중에 70인의 천국 사자{使者} 임명하기 전에는,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다. 여기서 무렵에 치유 받았던 무리 가운데 겨우 일곱 명이 전도자 학생에 포함됐다. 가버나움 귀족의 아들도, 베드로 학교에서 복음 활동을 위하여 훈련 받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2. 벳새다 병원 
 
148:2.1 해변의 야영지와 관련하여, 시리아인 의사 엘만, 25명의 젊은 여자와 열두 명의 남자로 구성된 단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천국의 병원이라고 있는 기관을 조직하여 동안 운영했다. 그들은 천막 도시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병원에서, 기도하고 신앙으로 격려하는 영적 실행뿐 아니라, 이미 알려진 모든 물질적 방법을 동원하여 병자를 치료했다. 예수께서는 주에 이상 야영지의 병자들을 방문했고, 고생하는 자들 각자와 친히 만났다. 우리가 아는 , 고난당하고 병약했던 사람 1,000명이 호전되거나 고침을 받아서 진료소{診療所} 떠났으나, 그들 가운데서 소위 초자연적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 그렇지만 혜택을 입은 개인들 대부분은, 예수께서 자기를 치유했다고 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148:2.2 예수께서 엘만 환자들을 보살핀 것과 관련하여 효과가 있었던 여러 치유법은, 실제로 기적의 역사와 비슷한 보였지만, 치유는 신앙에_지배되고 기대감을 갖는 사람들의 체험에서 일어날 있는, 그런 정신과 기질의 변화였을 뿐이라고 우리는 배웠는데, 그들은 강하고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인격자의 즉각적이고 영감어린 영항을 받았으며, 그런 인격자의 보살핌은 두려움과 걱정을 없앤다.
148:2.3 엘만 동역자들은, “악한 영들에 사로잡힘”에 대해 병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려고 노력했으나,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에는, 고난당하는 자의 정신이나 몸속에 소위 더러운 영이 들어있음으로써, 육신의 질병과 정신 착란이 생길 있다는 믿음이 거의 보편적이었다.
148:2.4 병들어 괴로워하는 자들을 만나는 모든 경우에, 치료하는 기법 또는 질병의 알려지지 않은 원인을 밝히는 문제에 부딪칠 , 예수께서는 유란시아에서 육신화 모험에 착수{着手}하기 전에 낙원 형제 임마누엘에게서 받았던 지시를 염두에 뒀다. 그럼에도, 병자를 돌보던 그들은, 병들고 고생하는 자들의 신앙과 확신을 예수께서 어떻게 불러일으키는지 관찰하면서, 유익한 교훈을 많이 얻었다.
148:2.5 야영지는 말라리아가 증가되기 시작하는 계절 직전에 해산됐다.
 
 
3. 아버지의
 
148:3.1 기간 내내, 예수께서 야영지에서 대중 예배를 인도한 것은 열두 미만이었으며, 가버나움 회당에서는, 그들이 새로 훈련받은 전도자들과 함께 공적인 2 갈릴리 전도여행을 떠나기 번째 안식일 강연했을 뿐이다.
148:3.2 세례 받은 후로, 벳새다에서 전도자들을 훈련하는 야영지 시절만큼 주님 그토록 길게 홀로 지낸 기간은 없었다. 사도들 중에서 누구든지, 어찌하여 자신들로부터 그렇게 자주 떠나가 있느냐고 예수 물을 때마다, 그는 변함없이, 아버지 일에 관여하고 있다”고 대답하곤 했다.
148:3.3 예수께서는 이렇게 떠나 있는 동안, 사도들 가운데 사람만 대동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100 넘는  전도자 후보를 훈련하는 일에도 참여할 있도록, 개인 동무들로서의 임무에서 잠시 풀어줬다. 아버지 일과 관련하여 언덕으로 가고 싶을 , 주님 한가한 사도들 중에서 아무나 사람씩 데리고 갔다. 이렇게 해서 열두 사도는 각자, 예수 가깝게 지내면서 친밀히 교제하는 기회를 가질 있었다.
148:3.4 기록을 위한 목적으로는 계시되지 않았지만, 언덕에서 그렇게 혼자 지내던 여러 기간에, 주님 우주 직무에 관여하는 주요 지휘관들과 직접 행정적인 연합을 이뤘던 것으로 우리는 추측해왔다. 대략 그가 세례 받았던 시기 이후로 줄곧, 우리 우주의 육신화된 주권자, 특정한 국면의 우주 경영을 지시하는데 더욱 의도적으로 적극 참여하게 됐다. 그가 세상 직무에 적게 참여 했던 기간에, 항상 측근 동역자들에게는 드러나지 않는 어떤 방식으로, 광대한 우주의 운영을 책임 맡은 높은 지성체들을 지시하는 일로 바빴다고 우리는 생각해왔으며, 인간 예수께서는 그런 활동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아버지 일을 돌본다”고 표명하기로 선택했다는 의견을 유지해왔다.
148:3.5 예수께서 사도만 데리고 홀로 여러 시간 보내던 시절에, 가까이 있던 그들은, 그가 말씀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으나 빠르고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모습을 여러 목격했다. 또한 그들은, 천상{天上} 존재들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것도 도무지 보지 못했는데, 그들 중에서 사람이 나중에 목격했던 바와 같이, 존재들은 주님 교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4. , , 죄악
 
148:4.1 이틀 저녁은 세베대 정원에서, 외지고 아늑한 어느 구석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개인들과 특별히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예수 습관이었다. 이런 어느 저녁 대화 시간에, 도마 은밀히 주님 질문했다: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이 영으로 태어나야 합니까?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악한 자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필요합니까? 주님, 악이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을 듣고 예수께서 도마에게 대답했다:
 
148:4.2 악한 , 분명히 말하면 죄악을 범한 혼동하지 말라. 네가 악한 자라고 부르는 그는, 이기적인 아들, 아버지 그의 충성된 아들들의 통치에 대항하여, 알면서 고의로 반역을 일으킨 고위 경영자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이런 많은 반역자들을 이겼다. 아버지 우주에 대하여 상반된 이런 여러 가지 태도를 정신 속에서 분명히 해둬라. 아버지 뜻에 관계되는 이런 법칙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
148:4.3 “악{}, 신성한 율법, 무의식적으로 또는 뜻하지 않게 하나님 뜻을 위반하는 것이다. 악은 아버지 뜻에 얼마나 불완전하게 순종하는가를 재는 척도다.
148:4.4 “죄는, 신성한 율법, 아버지 뜻을 의식적으로, 알면서, 고의로 위반하는 것이다. 죄는, 신성하게 인도되고 영적으로 지시받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재는 척도다.
148:4.5 “죄악은, 신성한 율법, 의지를 갖고, 완고하게, 계속해서 하나님 뜻을 위반하는 것이다. 죄악은, 사랑으로 인격을 생존하게 하는 아버지 계획과, 아들 베푸는 자비로운 구원을, 얼마나 계속 거부하는지를 재는 척도다.
148:4.6 “본래, 영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선천적으로 악한 경향에 필사적 사람이 지배되지만, 행실이 자연스럽게 불완전한 그런 것은 죄가 아니고 죄악도 아니다. 필사적 사람은, 낙원 계신 아버지 완전함에 이르는 오르막길을 내딛고 있다. 타고난 재능에서 불완전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죄가 아니다. 사람은 정말로 악에 굴복하기 쉽지만, 알면서도 고의로 죄의 길과 죄악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 , 어떤 의미에서도 악한 존재의 자녀가 아니다. 악은 세상의 자연 질서에 내재적이지만, 죄는 영적인 빛으로부터 짙은 어둠 속으로 빠진 자들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온, 의식하면서 반역하는 태도다.
148:4.7 도마, 너는 그리스인 교리와 페르시아인 오류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완벽한 아담으로서 세상에서 시작하여, 죄로 말미암아 신속하게 타락하여 현재의 한심스런 상태에 이르게 됐다고 보기 때문에, 악과 죄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너는, 아담 아들 가인 어떻게 해서 땅으로 들어가, 거기서 아내를 얻었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의 의미를 납득하기를 거부하느냐? 그리고 하나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 중에서 자기 아내를 삼았다는 기록의 의미에 대해 해석하기를 거부하느냐?
148:4.8 “사람은 정말로 본래 악하지만, 그들에게 반드시 죄가 있다고 수는 없다. 새로 태어남-- 영으로 세례 받음-- 악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 조건이며, 하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중에 아무 것도, 사람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없다. 잠재적 악이 이렇게 선천적으로 현존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사람이 어떤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떨어져나가서, 외계인이나 외래인 또는 양자로서 아버지 합법적으로 입양되기를, 어떤 방법으로든지 추구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런 모든 의견은, 첫째로 네가 아버지 오해한 데서, 둘째로 사람의 기원과 본성과 운명을 몰라서 생긴다.
148:4.9 그리스인 다른 이들은, 사람이 {}처럼 완전한 처지로부터, 망각 또는 파멸을 향해 꾸준히 타락했다고 너희에게 가르쳤으나; 이제 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감으로써, 하나님 신성한 완전성을 향해 확실히 올라가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왔다. 영원한 아버지 뜻의 신성하고 영적인 이상{理想} 어떤 면에서든지 도달하지 못하는 존재는 누구든지 잠재적으로 악하지만, 그런 존재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죄악은커녕 죄를 범한 것도 아니다.
148:4.10 도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자녀다.’ ‘내가 그의 아버지 되겠고, 그는 아들이 것이다.’ ‘내가 그를 아들로 택했으며, 내가 그의 아버지 것이다.’ ‘내 아들들을 곳에서 데려오고, 딸들을 끝에서 오게 하며; 이름으로 부름 받는 자들도 오게 것이니, 이것은 내가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다.’ ‘하나님 영을 가진 자는 진정으로 하나님 아들이라’는 기록을 성서에서 읽어보지 못했느냐? 친자식에게는 인간 아버지를 닮은 물질 부분이 있는 반면, 천국의 신앙 아들마다 하늘 아버지 닮은 영적 부분이 안에 있다.
 
148:4.11 모든 것은 물론, 많은 것을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했고, 그는 대부분을 납득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이런 문제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도마, 주님 세상에서 떠나기 전에는 대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5. 고난의 목적
 
148:5.1 정원에서 다른 개인 면담이 있었는데, 나다니엘 예수 물었다: 주님, 당신께서 치유를 베풀기를 절제하시는지 비로소 이해하지만, 하늘에 계신 사랑의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허다한 자녀들이 그토록 많은 고난을 겪도록 허용하시는지, 여전히 이해할 없습니다.주님 나다니엘에게 대답했다:
 
148:5.2 나다니엘, 너는 물론 다른 많은 사람이 그렇게 혼란을 겪는 것은, 아버지 뜻을 거역한 어떤 반역자들이 많은 모험을 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자연 질서가 얼마나 여러 격동돼왔는지, 네가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비로소 바로 잡으려고 내가 왔다. 그러나 우주의 부분을 경로로 회복시키고, 그리하여 죄와 반역으로 추가된 괴로움에서 사람의 자녀들을 풀어주려면, 여러 시대가 필요할 것이다. 악이 현존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상승하기에 충분한 시험이다--죄는 생존에 필수가 아니다.
148:5.3 “그러나 얘야, 너는 아버지께서 일부러 자녀들을 괴롭히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사람은 신의 뜻을 따라서 나은 길로 걸어가기를 끊임없이 거절한 결과로, 불필요한 고난을 자초한다. 고난이 악에 잠재돼 있으나, 대부분의 고난은 죄와 죄악으로 인해 생겼다. 많은 유별난 사건이 세상에 일어났고, 분별 있는 모든 사람이, 고통과 고난의 장면들을 목격함으로 당황하게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다음 가지를 네가 확신해도 좋은데: 아버지께서는 잘못된 행위에 대한 독단적 형벌로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 악에 속한 불완전함과 불리한 조건은 내재적이며; 죄에 대한 벌은 피할 없으며; 파괴시키는 죄악의 영향력은 변경될 없다.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 삶의 자연스런 결과인 그런 고난에 대해, 하나님 탓해서는 되며; 또한 세상에서 살아갈 삶의 부분인 그런 체험을 불평해서도  된. 필사적 사람은 세상에서 자기 신분을 개선하는 쪽으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 뜻이다. 총명하게 머리를 씀으로써, 사람은 세상에서 겪는 많은 불행을 극복할 있을 것이다.
148:5.4 나다니엘, 사람들이 저희의 영적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도와주는 , 그리고 다양한 물질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기 위하여 저희가 준비되고 영감을 받도록 이렇게 그들의 정신을 자극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다. 네가 성서 읽으면서 혼동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무지한 사람이, 이해할 없는 모든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너무 흔히 만연돼왔다. 네가 납득하지 못하는 모든 것이 아버지 직접 책임은 아니다. 네가 몰라서 또는 고의로 그런 신성한 법령을 어긴 까닭에, 아버지께서 제정한 의롭고 현명한 어떤 율법이 어쩌다가 너를 괴롭혔다는 바로 이유로, 아버지 사랑을 의심해서는 된다.
148:5.5 “그러나 나다니엘, 네가 분별하면서 읽기만 했어도, 성서에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이렇게 기록된 글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내 아들아, 징계를 경멸하지 말며; 그의 처벌을 싫어하지도 말, 이는 아버지가 기뻐하는 아들을 꾸짖는 같이, 께서 꾸짖는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께서는 괴롭히기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했지만, 이제는 법을 지킵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나에게 유익한데, 이로 인해 내가 신성한 법령을 배울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의 슬픔을 안다. 영원하신 하나님 너의 피난처가 되시니, 영원하신 팔이 아래 있다.’ ‘ 또한 압박당하는 자의 피난처시요, 환난 때의 쉼터시다.’ ‘께서 고난의 병상에서 그를 강건하게 하시며; 께서는 병자를 잊지 않으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너의 체질을 아시며; 네가 티끌임을 기억하신다.’ ‘상심한 자를 치유하시고, 상처를 싸매신다.’ ‘그는 가난한 자들의 희망이시, 고뇌 가운데에 있는 궁핍한 자들의 힘이시, 폭풍을 피하는 피난처시며, 강력한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신다.’ ‘약한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하신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 연기 나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 ‘네가 고난의 가운데로 지나갈 ,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며, 역경의 강물이 너에게 넘칠 때에도,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를 보내서 상심한 자들을 감싸며, 포로 자들에게 자유를, 슬픈 자들에게 위로를 주게 하셨다.’ ‘고통 속에는 꾸지람이 있으며; 고난은 티끌에서 솟아나지 않는다.’”
 
 
6. 고통에 대한 오해--욥에 대한 강론

148:6.1
같은 저녁 벳새다에서, 겉보기에 선량한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많은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많은 고난을 체험하는지에 대하여
요한 예수 물었다. 요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다른 여러 가지 가운데 주님 이렇게 말씀했다:
 
148:6.2 “얘야, 너는 역경의 의미 또는 고통의 역할을 납득하지 못한다. 너는 셈족속 문학작품의 걸작을-- 고난이라는 성서 이야기를-- 읽지 못했느냐? 훌륭한 비유가, 종의 물질적 번영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하는 것을 읽지 못했느냐? 자식, 재산, 명예, 지위, 건강 , 사람이 현세의 삶에서 가치를 두는 모든 것에서 이 복을 받았음을 너는 기억할 것이다. 아브라함 자녀들의 유서 깊은 교훈에 의하면, 그런 물질적 번영은 {} 은총을 받았다는 아주_충분한 증거였다. 그러나 그런 물질 소유물이나 그런 현세의 번영이 하나님 은총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부자와 가난한 자를 똑같이 사랑하는 분이시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148:6.3 “신성한 법을 어기면 처벌이라는 결과가 언젠가는 따라오게 마련이고, 사람은 자신이 뿌린 것을 결국 확실히 거두겠으나, 그래도 인간의 고통이 반드시 그전에 있었던 죄에 대한 처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의 친구들은, 저희의 난처한 문제에 대한 참된 해답을 찾기에 실패했다. 그리고 네가 지금 갖고 있는 관점에 비추어, 독특한 비유에서 사탄 하나님 행하는 일을, 너는 도저히 사탄이나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 못할 것이다. , 자신의 지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 또는 자신의 철학적인 어려움의 해결책을, 고난을 통해서는 찾지 못했어도, 승리를 거뒀는데; 자신의 신학적 방어가 붕괴되는 바로 앞에서도, ‘나 자신을 혐오합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할 있는 영적 경지로 자신을 끌어 올렸으며; 그렇게 되자 하나님 환상 보는 구원을 받았다. 그리하여 , 고난을 받는지 오해했음에도 도덕적 이해와 영적 통찰력을 얻는, 초인적 경지로 올라갔다. 고난 받는 종이 하나님 환상을 보게 됐을 , 어떤 인간도 도저히 이해할 없는 혼의 평화가 따라왔다.
148:6.4 첫째 친구 엘리바스 고난당하는 자에게, 그가 번성했을 당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권했던 동일한 꿋꿋함을 자신의 역경 속에서 보이라고 훈계했다. 거짓 위안자가 말했다: 이여, 너의 종교를 신뢰하라; 사악한 자가 고통당하는 것이지, 의인은 고통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너는 벌을 받을 일을 했음에 틀림없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고통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울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너는 안다. 사악한 자는 절대로 번성할 없다는 것도 너는 안다. 아무튼, 사람은 고생이 예정된 것처럼 보이며, 아마 께서 너를 좋게 하려고 벌하시는지도 모른다.’ 인간적 고난의 문제에 대한 그런 해석에서, 불쌍한 크게 위로받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148:6.5 “그러나 둘째 친구 빌닷 조언은, 당시에 받아들여지던 신학 관점에서는 정당하게 들리더라도, 더욱 낙담하게 만들었다. 빌닷 말했다: 하나님 불공정하실 없다. 너의 자녀가 죽었으니 그들은 죄인이었음에 틀림없으며; 네가 잘못했음이 분명한데, 그렇지 않다면 네가 그렇게 고통당할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정녕 의롭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너를 고통에서 건지실 것이다. 전능자께서는 단지 사악한 자들만 죽이신다는 것을, 너는 하나님 사람을 다루신 역사에서 배워야할 것이다.
148:6.6 “그리고 나서 친구들에게 어떻게 대답했는지 너는 기억한다. 그가 말했다: ‘도와달라는 나의 외침을 하나님 듣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 하나님 의로우신 동시에 어떻게 그토록 철저히 나의 결백을 무시하실 있는가? 내가 전능자에게 호소해도 아무 만족도 얻을 없음을 배우고 있다. 사악한 자가 선한 자를 괴롭히도록 하나님께서 묵인하심을 너희는 분별할 없는가? 사람이 그토록 약하니, 전능하신 하나님 손에서 대체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런 나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고, 그렇게 나를 버리신 분도 하나님이니, 나는 어쩔 없다. 어찌하여 하나님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고난당하도록 나를 만드셨단 말인가?
148:6.7 “친구들의 조언, 그리고 그의 정신을 차지하던 하나님 대한 잘못된 관념에 비춰볼 , 누가 태도에 도전할 있겠는가? 인간다운 하나님 열망했다는 ,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의 정황을 알고 또한 낙원으로 올라가는 여행 중에서, 생애의 일부분으로서 올바른 자들이 종종 억울하게 고생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그런 신성한 존재 대화하기를 몹시 원했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겠는가? 그래서, 견딘 고난을 견디라고 요청받을 모든 사람을 이제부터 위로하고 구원할 있도록, 사람의 아들 육신을 입고 인생을 살려고 아버지로부터 왔다.
148:6.8 셋째 친구 소발 그보다 위로가 되는 말을 했다: ‘네가 그렇게 고난당하면서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러나 하나님 방식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시인한다. 너의 비극에는 어떤 숨겨진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목숨이 길지 않고, 근심이 가득하나이다’라는 사실을 탄원하면서, 하나님 도와달라고 직접 간청했다.
148:6.9 “그다음에 그의 친구들과 번째 상담이 시작됐다. 엘리바스 더욱 단호해졌고, 그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친구들을 경멸하자 빌닷 분개했고, 소발 우울한 조언을 되풀이했다. 무렵에 친구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됐고, 하나님 다시 호소했으며, 이제 그는, 친구들의 철학에 유형화되고 자신의 종교적 태도에도 소중히 간직했던 불공평한 하나님 맞서서, 공정하신 하나님 탄원했다. 그다음에 , 필사자 실존에서 생기는 불공평함이 공정하게 수정될까 싶은 미래의 속에 피난처를 마련하고자 했다. 사람에게서 도움 받지 못했으므로, 하나님 향하게 됐다. 그러자 그것이 그의 마음 속에서 신앙과 의심 사이에 갈등을 일으켰다. 마침내, 인간 수난자는 생명의 빛을 보기 시작했으며; 괴롭힘을 받던 그의 혼이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는 높은 경지로 올라갔으며; 계속 고생하다가 죽을지도 몰랐지만, 그의 깨달은 혼은 이제, ‘나의 옹호자 살아계신다!’는 승리의 외침을 부르짖었다.
148:6.10 하나님 부모를 벌하려고 그들의 자녀를 괴롭힌다는 교리에 이의를 제기했을 , 참으로 옳았다. 하나님 의로우시다는 것을 시인할 준비가 언제든 돼있었으나, 영원자 인격적 성품에 대하여 혼을_만족시키는 어떤 계시를 갈구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서 우리의 사명이다. 어떤 고통 받는 필사자든지, 하나님 사랑을 알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자비를 이해함으로 위로받을 있다는 것이, 이상 부인돼서는 된다. 하나님 회오리바람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것이 기록되던 당시에 훌륭한 개념이었지만, 너희는 이미 아버지께서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지 않으시며; 오히려 인간의 마음 속에서,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로: ‘이것이 길이니, 길로 걸으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님께서 안에 거하심을, 너를 그분처럼 만들려고 그가 너와 같은 모습으로 오셨음을, 너는 납득하지 못한단 말이냐!
148:6.11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 끝으로 이렇게 말씀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자녀를 고의로 괴롭히지 않으신다. 첫째로, 사람은 시간세계의 사건들로 인해, 그리고 미숙한 육체적 실존의 {} 불완전함으로 인해 고생한다. 그다음에, 사람은 --생명과 빛의 법을 어긴-- 냉혹한 죄의 결과로 고생한다. 끝으로, 사람은 세상에서 하늘의 의로운 규율에 대항하는 반역에 스스로 간악하게 집착했던 것에 대한 결실을 거둔다. 그러나 사람의 곤경은, 신의 심판이 개인에게 불시에 도래함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현세의 고통을 훨씬 감소시킬 있고, 또한 그렇게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악한 자가 부추기는 바람에 하나님 사람을 괴롭히신다는 미신으로부터 단호히 벗어나라. 욥기 읽어 보고, 하나님 대한 얼마나 많은 잘못된 생각이 선한 사람에게도 정직하게 받아들여졌는지 발견하라; 그리고 나서 그런 잘못된 교훈에도, 심지어 심하게 고난당하던 어떻게 위안과 구원의 하나님 발견했는지 유의하라. 마침내 그의 신앙은 고통의 구름을 꿰뚫었고, 아버지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생명의 빛이 치유하는 자비요 영원한 의로움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148:6.12 요한 마음 속으로 말씀을 여러 숙고했다. 그의 남은 생애 전체는, 정원에서 주님 가진 대화의 결과로 현저히 변화됐으며; 나중에 다른 사도들에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인간의 고난의 근원본질과 목적에 대하여 그들의 견해를 바꾸는 많이 기여했다. 그러나 요한 주님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회담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았다.
 
 
7. 마른 사람 
 
148:7.1 사도들과 전도자 단체가 2 갈릴리 전도여행을 떠나기 둘째 안식일, 예수께서는 의로운 삶의 기쁨”에 대해 가버나움 회당에서 설교했다. 예수께서 말씀을 끝냈을 , 불구된 , 절름발이, 병자, 그리고 고난당하는 자들의 무리가, 치유 받으려고 그를 둘러싸면서 모여 들었다. 또한 무리에는, 사도들, 전도자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 정탐꾼들도 섞여있었다. (아버지 일을 하러 언덕으로 갔을 때를 제외하고) 예수께서 가는 곳은 어디든지, 여섯 명의 예루살렘 정탐꾼도 반드시 따라왔다.
148:7.2 예수께서 서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바리새인 정탐꾼 우두머리가 마른 사람에게, 예수 가까이 가서 안식일 치료 받는 것이 율법적인지, 아니면 다른 날에 치유 받기를 구해야하는지 물어보라고 시켰다. 예수께서 사람을 보고, 그의 말을 듣고, 바리새인 보냈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말씀했다: “너에게 물어 것이 있으니, 앞으로 나와라. 너에게 마리가 있고 안식일 구덩이에 빠졌으면, 네가 손을 아래로 뻗어 그것을 건져내지 않겠느냐? 안식일 그런 하는 것이 정당하냐?” 그리고 사람이 대답했다: “예, 주님, 안식일 좋은 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 모두에게 말씀했다: “너희가 사람을 앞에 보냈는지 나는 안다. 너희는, 내가 안식일 자비를 베풀도록 만들어서 나를 공격할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너희 모두가 속으로는, 안식일이라도 양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림이 정당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너희에게 증거하는데, 동물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안식일 사랑과_친절을 베푸는 것이 정당하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귀하냐! 내가 선포하는데, 안식일 선을 행하는 것이 정당하다.” 그리고 앞에 모두 조용히 있자, 예수께서 마른 사람을 향해서 말씀했다: “모두가 너를 있도록 옆으로 와서 여기 서라. 안식일 선을 행하는 것이 아버지 뜻임을 이제 너희가 알게 것이다. 너에게 치유 받을 만한 신앙이 있으면, 내가 명하노니, 손을 내밀어라.
148:7.3 사람이 마른 손을 내밀자, 손이 회복됐다. 사람들이 바리새인 혼내주려는 마음을 품었지만, 예수께서는 조용히 있으라고 명하면서 말씀했다: 안식일 선을 행하는 ,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내가 방금 너희에게 말했다. 그러나 해를 가하거나 죽이고 싶은 욕심에 굴복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화가 바리새인들이 떠났다. 안식일이었음에도, 그들은 디베랴까지 서둘러 가서 헤롯 의논했고, 예수 배척하는 헤롯 집안이 가담하도록 헤롯에게 편견을 일으킬 만한 일을 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헤롯, 예루살렘으로 가서 불평하라고 충고하면서, 예수 대한 어떤 조치든지 취하기를 거절했다.
148:7.4 이것은 예수께서 적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행한 기적이었다. 그리고 기적이라고 불리는 일을 주님 행한 것은, 자신의 치유 권능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교적인 안식일 휴식을 무의미하게 제한시키는, 명백한 굴레를 전체 인류에게 씌우려하는 것에 대해, 효과적으로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은 자기 직업인 석공의 일로 돌아갔고, 치유 받은 것에 감사하면서 의로운 생애를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됐다.
 
 
8. 벳새다에서 마지막 주간
 
148:8.1 벳새다 머물던 마지막 주에, 예루살렘 정탐꾼들은 예수 그의 교훈에 대한 관점에서 크게 나뉘게 됐다. 바리새인 가운데 사람은 직접 보고 들은 것에 굉장히 감명 받았다. 한편 예루살렘에서는, 젊고 영향력 있는 산헤드린 의원인 아브라함 공개적으로 예수 교훈을 받아들였고, 실로암 연못에서 아브넬에게 세례 받았다. 예루살렘 사건으로 떠들썩해졌고, 여섯 명의 바리새인 정탐꾼을 불러들이기 위해, 심부름꾼들이 벳새다 파견됐다.
 
148:8.2 전에 있었던 갈릴리 여행에서 천국을 받아들인 그리스인 철학자가, 알렉산드리아 어떤 부자 유대인들과 함께 돌아왔다. 그들은 병자를 위한 병원은 물론이고, 철학과 종교를 공통으로 가르치는 학교를 세울 목적으로 자기네 도시에 오라고, 다시 예수 초청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초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148:8.3 최면에 빠지는 커메쓰 선지자가,  무렵에 바그다드로부터 벳새다 야영지에 도착했다. 선지자라고 소문난 사람은, 최면에 빠져서 꿈꾸다가 이상한 환상들을 봤고, 잠자다가 교란될 환상적인 꿈을 꿨다. 그는 야영지에서 상당한 소동을 일으켰고, 그래서 스스로_현혹되는 위선자를 열심당 시몬 다소 엄히 다스리려고 했지만, 예수께서 중재하여 그가 며칠 동안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갖도록 허락했다. 그의 설교를 들었던 모든 사람은, 가르침을 천국 복음에 비춰 판단할 건전치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바그다드 돌아갔는데, 단지 여섯 명의 불안정하고 엉뚱한 사람만 데리고 갔다. 바그다드 선지자를 위하여 예수께서 중재에 나서기 전에, 다윗 세베대, 자청하는 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커메쓰 호수로 데리고 가서 여러 물속에 넣은 , 여기를 떠나라고-- 스스로 야영지를 조직하고 건설하라고-- 충고했다.
 
148:8.4 바로 그날, 페니키아 여자 _마리온 너무나 열광해서 정신을 잃었고, 위를 걸으려고 시도하다가 거의 물에 빠져서 죽을 뒤에, 친구들이 여자를 쫓아냈다.
 
148:8.5 예루살렘에서 개종한 바리새인 아브라함 자신의 세상 재물 전체를 사도 기금으로 바쳤으며, 헌금은 그들이 새로 훈련받은 전도자 100명을 즉시 파견할 있도록 하는 많이 기여했다. 야영지를 폐쇄한다고 안드레 이미 발표했고, 모든 사람은 집으로 가거나 전도자들을 따라서 갈릴리 가려고 준비했다.
 
 
9. 중풍 병자를 치유함 
 
148:9.1 10 1 금요일 오후에, 예수께서 사도, 전도자, 그리고 흩어지는 야영지{野營地}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세베대 집에서 마지막 회의를 하고 있을 , 예루살렘에서 여섯 바리새인, 넓고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 앞자리에 함께 있었으며, 예수 전체 지상 생애에서 가장 이상하고 특이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주님, 우기{雨期} 이런 모임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방에 서서 말씀하고 있었다. 예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으려고 기울이던 수많은 사람이, 집을 온통 에워싸고 있었다.
148:9.2 집이 이렇게 사람들로 가득차고, 열성적인 경청자들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는 동안, 중풍병으로 오래 고난당하던 사람이, 침상에 누운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버나움에서 실려 왔다. 중풍 병자는, 예수께서 벳새다 떠나려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주 최근에 온전하게 됐던 석공{石工} 아론 이야기한 후에, 치유를 간구할 있도록 예수 앞에 실려 가기로 작정했다. 그의 친구들은 앞문과 뒷문을 통해서 세베대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사람들로 너무 많이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중풍 병자는 실패를 용납하려하지 않았으며; 사다리를 가져오라고 친구들에게 지시했고,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고 있는 방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긴 후에 대담하게 병자를 침상채로 줄에 매달아 주님 바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예수께서 그들의 행동을 보고 말씀을 중단했으며, 한편 방안에 그와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은 병자와 친구들의 인내심에 감탄했다. 중풍 병자가 말했다: 주님, 당신의 가르침을 방해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낫게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치유 받은 후에 바로 당신의 가르침을 잊어버리는 저들과는 다릅니다. 하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할 있도록 내가 온전해지기 원합니다.” 스스로 인생을 잘못 살아옴으로 인해 사람의 고통이 생겼음에도, 이제 그의 신앙을 예수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했다: “얘야, 두려워 말라; 네가 사함을 받았다. 너의 신앙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148:9.3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이, 그들과 함께 앉아있던 서기관 율법사들과 함께 예수 이런 선언을 듣자,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렇게 말하는가? 이런 말이 신성모독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모르는가?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있단 말인가?” 그들이 마음 속으로 그리고 자기들끼리 그렇게 따지는 것을 예수께서 영으로 감지하고 말씀했다: “너희 심정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너희가 누구기에 나를 비판하는 자리에 앉느냐? 내가 중풍 병자에게, 너의 죄가 용서 받았다고 하는 말과, 일어나서 너의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하는 말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 그러나 사람의 아들 세상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갖고 있음을 너희가 마침내 알도록, 내가 병자에게 말하겠다: 일어나서 너의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예수께서 그렇게 말하자, 중풍 병자가 일어났고, 사람들이 그에게 길을 비켜주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걸어 나갔다. 일을 구경하던 모든 사람이 놀랐다. 베드로 무리를 해산시켰고, 한편 많은 사람이 기도하고 하나님 영광을 돌리면서, 이렇게 기이한 일을 전에는 결코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148:9.4 그리고 무렵에, 산헤드린 심부름꾼들이 여섯 정탐꾼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명령하려고 도착했다. 소식을 듣자, 자기들끼리 심각하게 토론했는데, 토의가 끝난 후에, 우두머리와 동역자는 심부름꾼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정탐하던 바리새인 예수 대한 신앙을 고백했으며, 바로 호수로 가서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천국의 자녀가 되어 사도들과 친교를 나눴다.



제147편 막간의 예루살렘 방문 ∥ 제149편 2차 전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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