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31, 2011

제124편 예수의 유년기 후기

제123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 제125편 예루살렘에서 예수

124

예수의 유년기 후기

 

124:0.1 갈릴리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학교 교육을 받는 기회가 좋았을지 모르지만, 예수 최소한으로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토록 훌륭한 환경을 누리는 동시에, 문명화된 세계의 모든 지역으로부터 몰려오는, 모든 계층의 그런 수많은 남녀와 빈번하게 접촉할 있는 엄청난 유익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남아있었다면,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오직 유대 계통의 교육만 받았을 것이다. 나사렛에서 받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이방인을 이해할 있도록 준비됐고, 히브리 신학에 대한, 동방, 바빌로니아 시각과, 서방, 헬라 시각이 어떤 상대적 장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뛰어나고 균형 잡힌 관념을 가질 있게 됐다.
 
 
1. 예수가 아홉 되던 (서기 3)
 
124:1.1 예수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해에 남동생과 아기 여동생과 함께, 어린아이들이 흔히 앓는 사소한 병을 조금 앓기도 했다.
124:1.2 학교 교육은 계속됐고, 그는 여전히 달에 주일 가량은 자유로울 있는 혜택을 누리는 학생이었으며, 아버지와 함께 이웃 도시로 여행하기, 나사렛 남쪽에 있는 삼촌의 농장에 머물기, 그리고 막달라에서 낚시 여행 나가기에, 계속해서 여가 시간을 똑같이 할애했다.
 
124:1.3 가장 심각한 사건이 늦겨울에 학교에서 발생하게 됐는데, 형상이나 초상화나 그림은 모두 본질적으로 우상이라는 카잔의 가르침에 대하여, 예수 감히 이견을 제시했다. 예수, 도공의 진흙으로 다양한 물체 만들기뿐 아니라, 풍경화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런 종류는 무엇이든지 유대인 법률로 엄격히 금지됐으나, 그는 이때까지 이런 활동을 계속할 있도록 용납할 정도로, 부모의 반대를 곧잘 무마시켜왔다.
124:1.4 그러나 예수 목탄으로 학교 마루에 선생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비교적 뒤쳐진 학생 가운데 하나가 발견하자, 문제가 다시 학교에서 터졌다. 그것이 그대로 있었고, 여러 장로가 그것을 후에, 담당 위원회가 요셉 방문하여, 맏아들이 불법을 저지르지 못하게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요셉 마리아, 다재다능하고 활동적인 아들의 행동에 대해 처음 듣는 불평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에게 쏟아졌던 모든 비난 중에서 가장 심각했다. 예수 뒷문 바로 밖에 있는 바위에 앉아서, 자신의 예술 작품에 대한 비난에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비행이라도 저지른 듯이 취급받는 자신의 행위 때문에 아버지가 그들에게 책망 받는 것에 분개했으며; 그래서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가, 비난하는 자들 앞에 대담하게 마주 섰다. 장로들은 크게 당황했다. 몇몇 사람은 일을 적당히 웃어넘기려 했으나, 사람은 소년을 불경스럽거나 아니면 무엄한 아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요셉 당황했고, 마리아 화를 냈지만, 예수 들어보라고 고집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자기 관점을 용감하게 옹호했으며, 최고의 자제심으로, 이것뿐 아니라 논쟁의 대상인 다른 모든 일에서도 아버지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장로 위원회는 조용히 떠났다.
124:1.5 마리아, 예수 학교에서 이런 어떤 미심쩍은 활동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집에서는 흙으로 모형을 만들 있게 허락하도록 요셉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요셉 2 계명에 대한 율법학자들의 해석을 따라야한다고 고집했다. 그래서 예수, 이날 이후로 아버지 집에 사는 동안에는 어떤 비슷한 모양도 만들거나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일이 틀렸다는 것을 납득할 없었으며, 그런 좋아하는 놀이를 포기하는 것은 어린 시절의 시련 가운데 하나였다.
 
124:1.6 6 하순에, 예수 아버지와 함께 다볼산 정상에 처음으로 올랐다. 맑은 날씨였고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아홉 소년에게는, 이것이 인도 아프리카 그리고 로마 제외한, 정말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124:1.7 예수 둘째 여동생인 마르다 9 13 목요일 밤에 태어났다. 한동안 집에 머물렀던 요셉, 마르다 태어난 3 지난 후에, 작업장 침실을 집에 덧붙여 짓기 시작했다. 예수 위하여 작은 작업대를 만들었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연장들을 갖게 됐다. 그는 여러 동안 틈나는 대로 작업대에서 일했고, 멍에 만드는 일에 상당한 기술자가 됐다.
 
124:1.8 겨울과 다음 겨울은 나사렛에서 수십 만에 가장 추운 날씨였다. 예수 위에 덮인 눈을 적이 있었고, 나사렛에도 눈이 오기는 했으나, 땅위에 오래 남아있지 않았는데; 겨울에 처음으로 얼음을 보게 됐다. 물이 고체나 액체 또는 기체가 있다는 사실은, 소년으로 하여금 물리적인 세계와 구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토록 했지만--끓는 주전자에서 증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했었지만--; 광범한 우주 전반에 걸쳐서 모든 것의 실제 창조자이자 조직자였던 인격은, 성장 과정의 소년에게 있는 동안에는 아직 정도였다.
124:1.9 나사렛 기후는 혹독하지 않았다. 1월에 가장 추웠는데, 평균 기온은 화씨 50 정도였다. 7월과 8월에 가장 더웠고, 평균 기온은 화씨 75도에서 90도까지 변했다. 산으로부터 요단 사해 계곡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틴 기후는 한대와 열대기후가 두루 분포돼있었다. 따라서, 유대인 어떤 면에서  세계의 다양한 모든 기후 조건에서도 있는 준비가 돼있었다.
124:1.10 가장 무더운 여름철에도, 오전 시부터 시까지 시원한 바닷바람이 서쪽으로부터 불었다. 그러나 때때로 동쪽 사막으로부터, 대단히 뜨거운 바람이 팔레스틴 지역으로 불기도 했다. 뜨거운 바람은 대개, 우기{雨期} 끝날 무렵인 2월과 3월에 불었다. 우기에 해당하는 11월부터 4 사이에는 시원한 소나기가 내렸으나, 비가 지속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었다. 팔레스틴에는 여름과 겨울, 건기{乾期} 우기 계절만 있었다. 1월에는 꽃이 피기 시작했고, 4월말이 되면 땅은 하나의 방대한 꽃밭이었다.
 
124:1.11 5월에, 예수 삼촌의 농장에서 처음으로 곡물 거두는 일을 도왔다. 열세 살이 되기 전에, 그는 다루는 일을 제외하고, 나사렛 주변에서 남녀가 종사하는 일에 대해 실질적인 모든 것을 어느 정도 터득하게 됐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동안 대장간에서 일하기도 했다.
124:1.12 예수 작업이 없거나 대상 행렬이 드물 멀지 않은 가나, 엔도르, 나인 등으로 아버지를 따라서 여러 차례 취미 여행 또는 출장을 다녔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나사렛에서 서북쪽으로 3마일 남짓 떨어진 세포리 자주 갔고, 그곳은 기원전 4년부터 서기 25년까지 갈릴리 수도이자 헤롯 안티파스 거처 가운데 하나였다.
124:1.13 예수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계속 성장했다. 그는 집을 떠나 여행함으로써 가족을 깊이 이해할 있게 됐고, 이때부터는 부모마저도 그를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에게서 배우기 시작했다. 예수 어린 시절부터 이미 독창적인 사색가였고, 능숙한 선생이었다. 소위 “구전{口傳} 율법”과 부단히 충돌했지만, 언제나 가족의 규율에 자신을 맞추려고 애썼다.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도 지냈으나, 그들 정신의 느린_반응 때문에 자주 실망하곤 했다. 살이 되기 전에, 그는 일곱 명의 소년 집단의 우두머리가 됐는데, 그들은 성인으로서 --육체적, 지적, 종교적-- 학식을 증진시키려고 모임을 만들었다. 예수 많은 새로운 놀이와 개선된 다양한 육체적 오락 방법을 소년들에게 소개하는 성공했다.
 
 
2. 살이 되던 (서기 4)
 
124:2.1 7 5, 그달 안식일, 아버지와 함께 시골길을 산책하던 예수, 자기 생애의 사명의 색다른 본질에 대하여 자각하게 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느낌과 관념을 처음으로 표현했다. 요셉 아들의 비상한 말을 주의 깊게 들었지만, 거의 입을 열지 않았으며; 아무 정보도 자진해서 제공하지 않았다. 이튿날 예수 어머니와 오랫동안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마리아 마찬가지로 소년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들었으나, 역시 어떤 정보도 자진해서 제공하지 않았다. 예수 자기 인격의 본질과 세상에서 이뤄야 사명의 특성에 관해서, 자신의 의식 속에서 점점 증가되는 계시에 대해 부모에게 다시 언급한 것은 거의 2년이 지난 후였다.
 
124:2.2 8월에 예수 회당에 소속된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학교에서 질문을 그치지 않음으로써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나사렛 동네에 다소간의 소동이 점점 일어나게 했다. 그의 부모는 걱정스럽게 하는 질문을 그치도록 하기에 지쳤으며, 담임선생은 소년의 호기심과 통찰력, 그리고 지식을 향한 열망에 크게 흥미를 갖게 됐다.
124:2.3 예수 놀이동무들은 그의 행동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는 어떤 면에서든지 그들과 똑같았다. 학업에 대한 그의 관심은 평균이상이었으나, 아주 특출나지는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자기 반의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질문했다.
 
124:2.4 그의 가장 특이하고 눈에 띄는 특징은, 아마 자신의 권리를 위해서는 싸움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나이에 비해서 _발육된 아이였으므로, 자신이 불의를 당하거나 개인적인 모독을 당하는 경우에도 자신을 방어하 않으려는 것은그의 놀이 동무들에게 이상하게 보였다. 그런 일이 벌어질 , 예수 이런 특성으로 인한 곤란을 크게 겪지 않았는데, 자기보다 많은 이웃 친구 야곱 덕분이었다. 그는 요셉 사업상 동료인 석공{石工} 아들이었다. 야곱 예수 무척 존경했고, 예수 몸으로 싸우기 싫어한다는 것을 이용해서 그를 괴롭히려는 아이들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기를 자기 일처럼 여겼다. 나이 많고 거친 아이들이 예수 온순하다는 평판을 믿고 여러 공격했지만, 그의 보호자로 자처하면서 언제든지 준비가 돼있는 석공의 아들 야곱 재빠르고 정확한 반격에, 그들이 오히려 항상 당하곤 했다.
124:2.5 당시의 또래들보다 비교적 높은 이상을 지닌 예수, 나사렛 아이들의 지도자로서 널리 인정받았다. 그의 또래 동료들은 진정으로 그를 사랑했는데, 그가 공정했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을 드러내는, 그리고 분별 있는 동정심에 가까운, 드물고도 사려 깊은 호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124:2.6 해부터 그는 연장자들과 어울리기를 현저히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문화, 교육, 사회, 경제, 정치, 그리고 종교적인 사항들에 대해, 연상{年上}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고, 그의 깊은 추리력과 예리한 관찰력에 어른 친지들이 매료되어 언제든지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가정을 부양할 책임을 갖게 되기까지, 예수 자기보다 나이 많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을 선호하는 성향을 보였는데, 그의 부모는, 이런 사람들보다, 나이가 같거나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려고 꾸준히 애썼다.
124:2.7 같은 말쯤에, 그는 삼촌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동안 고기 잡는 체험을 했고, 아주 훌륭히 해냈다. 그는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이미 능숙한 어부가 돼있었다.
124:2.8 그의 육체적 성장은 계속됐으며; 학교에서는 남들보다 앞서고 특전을 누리는 학생이었으며; 동생 야고보보다 반이나 많은 우월성에도, 어린 동생들과 집에서 아주 어울려 지냈다. 몇몇 우둔한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건방지다는 , 아이답지 않고 겸손한 구석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사렛에서 좋은 평을 듣고 있었다. 자기 또래의 놀이 활동을, 진지하고 사려 깊은 경로로 유도해보려는 경향을 점점 나타냈다. 그는 타고난 선생이었으며,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조차, 그런 역할을 억제하지 못했을 뿐이다.
124:2.9 요셉, 산업이나 무역에 비해서 농업이 유리하다는 점을 일찍부터 예수에게 설명하면서,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갈릴리 유대지방보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었으며, 생활비는 예루살렘이나 유대지방보다 4분의 1정도면 충분했다. 그곳은 농업에 종사하는 마을과, 날로 번창하는 산업 도시들이 있는 지역이었는데, 5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가 200 이상이었고, 1 5 넘는 도시도 30 이상 있었다.
124:2.10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갈릴리 호수의 어업{漁業} 현장을 관찰하러 왔을 , 예수 어부가 되겠다고 마음먹으려했지만; 아버지의 직업에 가까이 종사한 영향으로 목수가 됐고, 후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영향력이, 새로운 질서를 가르치는 종교 선생이 되는 최종 선택을 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3. 열한 되던 (서기 5)
 
124:3.1 해에,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집을 떠나서 여러 차례 여행했으나, 삼촌의 농장도 자주 방문했고, 때로는 막달라 가서, 도시 근처에 본거지를 삼촌과 함께 고기잡이도 했다.
124:3.2 요셉 마리아, 특별히 사랑하고 있다는 어떤 표시를 예수에게 보여주고 싶은 유혹, 아니면 그가 언약의 아이, 운명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누설하고 싶은 유혹에 자주 빠졌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이런 모든 문제에서 매우 현명하고 영리하게 처신했다. 아주 미약한 정도였지만,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를 편애{偏愛}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을 때마다, 소년은 이런 특별한 배려를 즉각 거절했다.
124:3.3 예수, 대상{隊商}에게 필수품을 파는 상점에서 제법 시간을 보냈고,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여행자들과 대화함으로써, 그의 나이로서는 기이하게 보일만한 국제 정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해는, 그가 무척 자유롭게 놀면서 아이다운 즐거움을 만끽할 있었던 마지막 해였다. 이때부터 소년의 생애에는 많은 어려움과 책임이 급속도로 배가{倍加}됐다.
 
124:3.4 서기 5 6 24, 수요일 저녁에, 유다 태어났다. 일곱째 아이의 탄생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이 생겼다. 마리아 동안 몹시 아팠으므로, 요셉 집에 머물러 있었다. 예수 아버지가 시키는 심부름과 어머니의 심각한 때문에 생기는 많은 일로 몹시 바빴다. 소년은, 다시는 어린 시절의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돌아갈 없게 됐다. 그는 어머니가 아팠던 때부터-- 그가 열한 살이 되기 직전부터-- 맏아들로서 의무를 떠맡을 수밖에 없었고, 일반적으로 이런 무거운 짐이 부여되는 시기보다, {滿} 1 내지 2 전에 모든 것을 수밖에 없었다.
124:3.5 매주 하루 저녁은 카잔이 예수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예수 히브리 성서를 숙지하도록 도왔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의 발전에 매우 흥미를 가졌으며; 그런 까닭에 다방면으로 그를 기꺼이 도왔다. 유대인 교육자는 젊은이의 정신에 영향을 줬으나, 예루살렘으로 가서, 박식한 랍비들 밑에서 학업을 계속할 있다는 전망에 관한 온갖 권고에 대해서는 예수 그토록 냉담한지, 전혀 납득할 없었다.
 
124:3.6 5 중순경에, 예수 사업차 여행하는 아버지를 따라서 스키토폴리스 갔는데, 이곳은 데가볼리 지방의 주요 그리스 도시였고, _ 지역의 고대 히브리 도시였다. 여행 중에 요셉 예수에게 사울 필리스티아인{블레셋 족속}, 그리고 이어지는 이스라엘 험난한 역사의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다. 예수 소위 이방 도시의 깨끗한 모습과 정돈된 배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노천극장을 보고 놀랐으며, “이방” 신들에 대한 숭배에 바쳐진 아름다운 대리석 신전들을 보고 감탄했다. 요셉 아이가 이것들을 이토록 좋아하는 것에 당혹했고, 예루살렘 있는 유대인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칭찬함으로써, 예수 이런 감정을 바꿔 보려고 했다. 예수 이미 나사렛 언덕에서 그리스 도시들을 호기심 있게 바라본 적이 종종 있었고, 그것을 짓기 위한 거대한 토목공사와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에 대해 여러 질문했었지만, 아버지는 이런 질문에 대해 항상 대답을 피하려고 했다. 그들은 이제 이방도시의 아름다움을 직접 목격하게 됐고, 요셉 예수 질문을 이상 점잖게 무시할 없었다.
124:3.7 바로 이때, 데가볼리 지방의 그리스 도시들이 연례적으로 대중 앞에서 서로 육체적인 용맹을 뽐내고 경쟁하는 시합이, 스키토폴리스 원형극장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예수 아버지께 시합을 보자고 졸랐으며, 너무 끈질기게 우겼기 때문에, 요셉 그의 말을 거절할 없었다. 소년은 시합에 몹시 감동됐고, 육체적인 발달과 경기 솜씨를 시범으로 보여주는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됐다. 요셉, “이방”의 허영심으로 들떠 있는 이런 시범경기를 아들이 열광적으로 관람하는 것을 보고, 무척 충격을 받았다. 모든 시합이 끝난 후에, 예수 그것들을 용납할 뿐만 아니라, 나사렛에서도 사정이 허락한다면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건전한 야외 육체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요셉 기절할 정도로 놀랬다. 요셉 이런 활동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에 대해 예수 오랫동안 진지하게 이야기했으나, 아이가 설득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124:3.8 예수 아버지가 자기에게 화내는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됐는데, 그날 여관에서 토론하던 중에, 유대인 사고방식을 아주 까맣게 잊고 있던 소년이, 집으로 돌아가면 나사렛 원형극장을 짓자고 제의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요셉 맏아들이 이렇게 _유대 감상에 젖어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의 온순한 성품을 잊은 예수 어깨를 움켜잡고 화난 목소리로, “아들아, 네가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그런 악한 생각을 앞에서 말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예수 아버지가 흥분된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깜짝 놀랐으며; 전에는 아버지가 화내는 것으로 인하여 개인적인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었으므로, 말문이 막힐 정도로 몹시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단지“아버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후로 요셉 살아있는 동안에는, 소년이 시합이나 다른 운동 경기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124:3.9 나중에, 예수 예루살렘에서 그리스 식으로 지은 원형극장을 봤고, 이런 것들이 유대인 관점에서 그토록 혐오스러운 것인지 배우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 생애 동안 건전한 오락 관념을 자신의 개인적인 계획에 도입해보려고 시도했으며, 유대 관습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열두 사도를 위한 후기{後期} 정규 활동 계획표에 이것을 포함시키려고 애썼다.
124:3.10 열한 살이던 해가 끝날 무렵까지, 예수 생기 있고, _발육되고, 적당히 유머 있고, 상당히 밝은 심성을 지닌 소년이었지만, 후부터는 깊은 명상과 진지한 묵상에 점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는 가족에 대한 책무를 이행하는 동시에, 세상을 향한 자신의 소명{召命} 충실할 있는 방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으며; 자신의 사명이 유대 민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제한돼있지 않음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4. 열두 되던 (서기 6)
 
124:4.1 해는 예수 생애에서 다사한 해였다. 학교에서 학업을 계속 했고, 자연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점점 공부하게 됐다. 집에 있는 목공소에서 정기적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수입을 직접 관리할 있게 됐는데, 유대인 가정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같은 해에, 그는 또한 그런 문제들에 관해 가정 안에서 비밀을 지키는 지혜를 터득하게 됐다. 자신이 전에 마을에서 분란이 일어나도록 만들었 방식에 대해 인식하게 됐고, 따라서 그는 동료들과 다르게 보일 있는 모든 일을 숨기면서 점점 사려 깊은 사람이 돼갔다.
124:4.2 동안 내내, 그는 자기 사명의 본질을 실제로 의심한 것은 아니었으나, 오랫동안 불확실성을 체험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성장한 그의 인간 정신으로는, 자신의 이중적 본성의 실체를 충분히 파악할 없었다. 그가 단일 인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인격과 관련된 본질의 구성 요소들이 이중적으로 기원됐음을, 그의 의식이 알아보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124:4.3 이때부터 그는 형제자매들과 지낼 있게 됐다. 점점 재치 있는 사람이 됐고, 그들의 번영과 행복에 대하여 항상 관심을 갖고 특별히 배려했으며, 공식적인 직무를 시작할 때까지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설명하면: 야고보, 미리암,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 동생인 아모스 친하게 지냈다. 마르다와는 언제나 지냈다. 그가 집에서 가졌던 분란은 주로 요셉 유다,특히 유다 마찰이 있었기 때문에 발생됐.
 
124:4.4 신성{神性} 인성{人性} 복합적으로 갖춘, 전례 없는 이런 아이를 양육할 책임을 지는 일은, 요셉 마리아에게 괴로운 체험이기는 했어도, 그들은 부모로서의 의무를 매우 성실하고 성공적으로 이행할 있음을 크게 인정받을 했다. 예수 부모는, 맏아들 속에 초인적인 어떤 존재가 들어있음을 점점 인식하게 됐으나, 약속의 아이가 정말로, 진실로, 지방우주의 사물과 존재를 창조한 실제 창조자라는 사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요셉 마리아, 아들 예수 정말로 필사자 속에 육신화한 우주 창조주임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죽었다.
124:4.5 같은 해에, 예수 음악에 전보다 많은 관심을 보였고, 집안에서는 남동생들과 여동생들을 계속 가르쳤다. 그의 사명의 본질에 관해, 요셉 마리아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그가 예민하게 알아챈 것은 무렵이었다. 부모의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했고, 자기가 깊이 잠든 줄로 생각하면서 이야기하는 부모의 대화를 종종 듣기도 했다. 그는 점점 아버지의 관점을 따르게 됐고, 따라서 어머니는, 아들이 일생을 통해 체험해야 문제들에서, 자신의 지시를 점점 거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상처를 받게 돼있었다. 그리고 해가 거듭될수록, 그들의 이해의 차이는 벌어졌다. 마리아 예수 사명의 의미심장함에 대하여 더욱 납득하지 못하게 됐고, 훌륭한 어머니는 자신의 맹신적 기대를, 총애하는 아들이 만족시켜주지 않는 것으로 인해 더욱 상처받게 됐다.
124:4.6 요셉 예수 사명의 영적 본질에 대해 점점 확신하게 됐다. 그러나 중요한 다른 이유로 인해, 불운하게도 요셉 예수 세상 증여에 대한 자신의 개념이 실현되는 것을 때까지 살아있지 못했다.
 
124:4.7 학교에 다니던 마지막 , 예수 열두 됐을 , 그는 문설주에 못으로 박아 놓은 양피지 문서에 집안을 드나들 때마다 손끝을 대고, 양피지를 만진 손가락에 입을 맞추는 유대인 관습에 대해 아버지에게 항의했다. 이런 제례식의 일부분으로서, 께서 우리가 드나드는 것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보호해주시리라”고 말하는 것이 관례였다. 아무것도 그리거나 만들지 말아야하는 이유를 전에 예수에게 여러 가르치면서, 요셉 마리아, 그런 작품은 우상을 숭배하는 목적에 사용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예수, 그들이 형상이나 그림을 만드는 것을 금지시키는지 완전히 수는 없었으나, 모순되지 않는 하나의 높은 개념을 갖고 있었으므로, 문설주의 양피지 문서에 습관적으로 경의를 표하는 행위에도 근본적으로 우상숭배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지적했다. 그리고 요셉 예수 이런 항의를 받은 후에 문설주에서 양피지 문서를 제거했다.
124:4.8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수 가족 공동 기도 다른 여러 관례 같은 종교 형식의 습관을 많이 변경시켰다. 그리고 이런 많은 일은 그곳이 나사렛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거기에 있는 회당이, 나사렛 유명한 선생 호세 같은 개방적 학풍을 따르는 랍비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124:4.9 해와 2 동안, 종교적 관례나 사회적 풍습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부모의 이미 확립된 신앙과 조화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로, 예수 심한 정신적 고통을 체험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려는 충동과,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순종해야한다는 양심의 경고 사이의 충돌로 인해 혼란돼있었으며; 그의 가장 심한 갈등은, 어린 마음 속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가지 명령 때문이었다. 하나는, “진실과 {} 대한 자신의 가장 숭고한 신념이 주는 명령에 충실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에게 생명을 줬고 길러줬으니, 그들을 공경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는, 자신의 개인적 신념에 충실해야하는 것과 가족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순간마다 조정해야하는 의무를 기피한 적이 전혀 없었으며, 충성심공정성 아량 그리고 사랑에 바탕을 집단적 일체감의 뛰어난 개념 속으로, 개인적 신념과 가족에 대한 책무를 조화롭게 융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만족감을 성취했다.
 
 
5. 열세 되던 (서기 7)
 
124:5.1 해에, 나사렛 소년은 소년기를 지나서 청년기에 들어갔으며;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했고, 몸과 마음의 다른 특색도 어른이 돼간다는 증거를 보여줬다.
124:5.2 서기 7 1 9 일요일 밤에, 남동생 아모스 태어났다. 유다 살이 되지 않았고, 여동생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며; 이는 아버지가 사고로 그다음 해에 갑자기 죽게 됐을 , 예수 돌봐야 아이들이 많은, 가족이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124:5.3 세상에서 사람을 계몽시키고 하나님 계시하기 위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숙명임을, 예수 인간으로서 확신하게 것은 2 중순 무렵이었다. 원대한 계획과 함께 중대한 결정들이 젊은이의 마음 속에 형성되고 있었지만, 겉모습은 나사렛 사는 보통 유대인 소년이었다. 모든 것이, 이제 청년기를 맞이한 목수의 아들의 생각과 행동에서 드러나기 시작하자, 네바돈 지성 생명체는 넋을 잃고 경탄하면서 지켜봤다.
 
124:5.4 {} 첫날인 서기 7 3 20일에, 예수 나사렛 회당과 연계돼있는 지역 학교 훈련 과정을 졸업했다. 이것은 꿈을 지닌 모든 유대인 가정생활에서 가슴 벅찬 날이었는데, 이날은 바로 맏아들이 “계명의 아들”로서, 그리고 이스라엘 {} 하나님 대속함을 받은 아들, 지고자{至高者} 아이”인 동시에 세상 전체의 종으로서 선포되는 날이었다.
124:5.5 지난 금요일에, 요셉 기쁜 행사에 참여하려고, 공공건물을 짓는 책임을 맡고 있던 세포리에서 돌아왔다. 예수 가르친 선생은, 눈에 띌만한 어떤 경력, 어떤 출중한 사명을, 주의 깊고 부지런한 제자가 수행하게 것이라고 확고히 믿었다. 관습을 따르지 않는 예수 경향 때문에 온갖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장로들은 소년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서, 유명한 히브리 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게 계획을 이미 세우기 시작했다.
124:5.6 예수 이런 계획을 토론하는 것을 때때로 들으면서, 랍비들 밑에서 공부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더욱 확고히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게 비극적인 사건을 꿈도 꾸지 못했는데, 그것은 당시에 어머니와 자신뿐 아니라, 다섯 남동생과 여동생으로 구성된, 대가족을 부양하고 이끌어 책임을 맡아야 됐기 때문에, 그런 모든 계획을 포기하도록 확인시켜주는 사건이었다. 가족을 부양하는 동안, 예수 아버지 요셉에게 부과됐던 것보다 힘들고 체험을 했으며, 자신이 나중에 스스로 부과한 기준, : 갑자기 슬픔이 몰아닥치고 예기치 않았던 죽음을 당하게 가족-- 자기 가족--에게, 현명하고 참을성 있고 이해심 있는 효과적인 선생인 동시에 맏아들이 되기에 적합했다.
 
 
6.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 
 
124:6.1 이제 청년기의 문턱에 이르렀고 공식적으로 회당 학교를 졸업했으므로, 예수 유월절 기념식에 처음 참여하기 위하여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있는 자격이 됐다. 해의 유월절 축제는 서기 7 4 9, 토요일에 있었다. 여행에 동행할 (103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4 4 월요일 이른 아침에 예루살렘 향해 나사렛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들은 사마리아 향해 남쪽으로 여행했지만, 제즈리얼 당도했을 , 사마리아 통과하는 것을 피하려고, 동쪽으로 길을 바꿔서 길보아산 돌아 요단 계곡으로 내려갔다. 요셉 가족은, 야곱 우물과 베델 지나서 사마리아 통과하고 싶었으나, 유대인 사마리아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이웃과 함께 요단 계곡으로 지나가는 길을 택했다.
124:6.2 대단히 무서워했던 아켈라오 이미 물러났으므로, 그들은 예수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았다. 헤롯 1세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들을 모두 죽이려했던 때로부터 12년이 지났고, 나사렛 무명의 아이가 사건과 연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124:6.3 제즈리얼 교차로에 도달하기 전에, 그리고 그들이 여행을 계속한 후에, 왼편에 있는 고대{古代} 마을 수넴 지나가게 됐고, 예수, 이곳에 살았던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처녀 이야기와, 엘리사 여기서 행했던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됐다. 제즈리얼 지나가면서 예수 부모는, 아합 이세벨, 그리고 착취자 예후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길보아산 지나갈 , 그들은 언덕에서 죽은 사울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다윗 역사적 장소와 연관된 이야기들을 했다.
124:6.4 길보아산 밑을 돌아가면서, 순례자들은 오른쪽에 있는 스키토폴리스라는 그리스 도시를 있었다. 이방도시의 대리석 건축물들을 멀리서 바라봤지만 가까이 가지는 않았는데, 이로써 자신을 더럽히면,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있을 유월절 축제의 엄숙하고 신성시되는 예식에 참여할 없었기 때문이다. 마리아 요셉 예수 스키토폴리스 대해 말하지 않으려하는 것을 이해할 없었다. 지난해에 있었던 그들의 언쟁에 대하여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으므로, 마리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24:6.5 길은 이제 열대성 기후의 요단 계곡으로 곧장 접어들었으며, 사해{死海} 흘러 내려가면서 반짝거리는 잔잔한 시냇물과 함께, 굽어져있고 항상 바람이 부는 요단 지역을, 예수 감탄하면서 바라보게 됐다. 그들은 열대 기후의 계곡을 따라서 남쪽으로 여행할 때에는 겉옷을 벗었고, 북쪽으로 멀리 서있는 덮인 웅장한 모습의 헤르몬 , 역사적인 계곡을 위엄 있게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만발한 분홍색 꽃을 달고 있는 협죽도{夾竹桃}나무와 곡물이 맺힌 아름다운 들판을 보면서 즐겼다. 그들은 스키토폴리스 건너편으로부터 시간 남짓 여행한 후에, 넘쳐흐르는 어느 샘에 도착했고, 별이 빛나는 하늘을 지붕 삼아 거기서 하룻밤 지냈다.
 
124:6.6 여행을 시작한 둘째 날에, 그들은 얍복강 동쪽으로부터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역을 지났고, 강이 있는 계곡의 동쪽을 바라보면서, 미디안족속 지역을 침략하여 땅을 차지하려 했던, 기드온 시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둘째 날의 여정이 끝날 무렵에, 그들은 요단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사르타바산 아래 부근에서 하루 묵었으며, 정상에는 알렉산드리아 요새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헤롯 자기 아내 가운데 사람을 가둔 곳이었, 졸라 죽인 아들이 매장된 곳이었다.
124:6.7 셋째 날에, 그들은 헤롯 최근에 건설한 마을을 지나갔고, 훌륭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야자수 정원들을 있었다. 밤이 무렵에 여리고 도착했고, 이튿날까지 거기에 머물렀다. 그날 저녁에, 요셉 마리아 예수 고대 여리고 지역으로 1마일 반을 걸어갔으며, 그곳은 유대 전통에 따라서 예수라는 이름을 따온 예슈아 유명한 업적을 이룩한 장소였다.
124:6.8 여행을 떠난 넷째 날인 마지막 날에는, 이어지는 순례자 행렬이 길을 메웠다. 그들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꼭대기에 다가가면서, 너머로 요단 지역을 있었고, 남쪽으로는 잔잔한 사해 물을 있었다. 예루살렘 반쯤 왔을 , 예수 (그의 후반부 생애의 많은 부분을 보내게 지역인) 감람산 처음 보게 됐으며, 바로 산마루 너머에 거룩한 {} 있다고 요셉 그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소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성과 집을 있게 됐다는 기쁜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124:6.9 그들은 감람원 동쪽 비탈에 있는 베다니 불리는 작은 마을 입구에서 쉬기 위하여 멈췄다. 호의적인 마을 사람들이 순례자를 보살피려고 몰려 나왔으며, 요셉 마리아 예수 시몬이라는 사람의 근처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에게는 예수 비슷한 또래의 아이--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있었다. 그들은 나사렛 가족이 쉬어갈 있도록 초대했고, 가족 사이에 평생의 우정이 여기서 싹트게 됐다. 후로, 예수 다사{多事} 생애 동안, 집에 여러 머물렀다.
124:6.10 그들은 길을 재촉하여, 잠시 후에 감람원 경계선에 도착했고, 예수 (그의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거룩한 웅장한 저택들, 그리고 경외심을 자아내는 아버지 성전을 봤다. 예수, 자신의 삶에서, 4월의 이날 오후에 감람산 위에 서서 예루살렘 처음 바라보게 됐을 , 그토록 완전하게 자신을 매혹시킨, 그런 순전히 인간적인 감격을 전에는 체험한 적이 없었다. 여러 후에, 예수 같은 지점에 서서, 다른 선지자, 하늘에서 보낸 선생들 가운데 마지막이자 가장 위대한 선생을 거부하려는 성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124:6.11 그러나 그들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갔다. 이제 목요일 오후가 됐다. 성에 도착하자, 그들은 성전{聖殿} 지나갔으며, 예수 이처럼 많은 군중을 적이 없었다. 그는, 알려진 세계 도처에서 이런 유대인 어떻게 이곳으로 몰려드는지 곰곰이 숙고했다.
124:6.12 이윽고 그들은 유월절 주간에 머물기로 미리 정해놓은 곳에 도착했으며, 집은 마리아 부유한 친척집이었고, 사가랴 통해서 요한 예수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었다. 이튿날은 예비일{豫備日}이었는데, 그들은 유월절 안식일 합당한 축하행사를 위하여 준비했다.
124:6.13 예루살렘 유월절 준비로 들떠있었으나, 요셉 틈을 내서 예수 데리고, 2 후에 예수 15세가 되어 자격을 갖추게 되자마자 학업을 계속할 있도록, 이미 조치가 취해진 학교를 방문했다. 이렇게 세심하 마련한 계획에 대해 예수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봤을 , 요셉은 정말로 당황했다.
124:6.14 예수 성전 이와 관련된 모든 예배, 그리고 다른 행사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처음으로, 그는 많은 질문을 하려고 홀로 사색하는 무척 열중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는 아버지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없고 힘없는 동물을 이토록 많이 죽이도록 요구하시는가 하는 등의, (전에도 여러 차례 했던 것처럼) 가지 황당한 질문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의 대답과 설명으로는, 깊이 생각하고 예리하게 추론하는 아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들의 얼굴 표정에서 쉽게 읽을 있었다.
 
124:6.15 유월절 안식일 전날에, 영적 광채의 물결이 홍수처럼 예수 필사 정신을 휩쓸고 지나갔으며, 그의 인간적 마음은, 고대의 유월절 기념행사를 축하하려고 모여든, 영적으로 눈멀고 도덕적으로 무지한 대중에 대한 자애로운 동정심으로 차고 넘치게 됐다. 이날은 하나님의 아들 육신을 입고 지내던 가운데 가장 특이한 날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날 , 그의 세상 행적 중에서 처음으로, 임마누엘 명령을 받아 살빙톤으로부터 파견된 사자{使者} 그에게 나타나서 말했다: “때가 이르렀습니다. 이제 당신이 아버지 일을 위하여 활동할 시기가 됐습니다.
124:6.16 그리하여, 나사렛 가족을 돌보는 무거운 책임이 나이 어린 그의 어깨 위에 지워지기도 전에, 이제 열세 살도 안된 소년에게 천상{天上} 사자가 파견되어, 우주에 대한 책임을 재개해야 시간이 도래했음을 주지시켰다. 이것은, 아들 유란시아 증여를 완료하고, 인간이자_신인 그의 어깨 위에 우주 정부를” 되돌려주는 것으로 마침내 절 도달하는, 길게 이어지는 무대의 서막{序幕}이었.
124:6.17 시간이 지나면서, 육신화의 신비는 우리 모두에게, 갈수록 깊이를 헤아릴 없는 것이 됐다. 나사렛 소년이 네바돈 창조주임을, 우리는 거의 납득할 없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바로 창조주 아들 영과 낙원 아버지 영이 인간의 혼과 어떻게 해서 연합될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육신으로는 자기 인생을 살지만, 영으로는 어깨 위에 우주에 대한 책임이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그의 인간 정신이 더욱 뚜렷이 분별하고 있음을 우리는 있었다.
 
124:6.18 그리하여 나사렛 소년의 경력은 이것으로 끝나고, 이제는 --신성한 인간을 점점 자각하는-- 청년기에 접어든 젊은이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는 가족 당대{當代} 사회에 대한 책무와 부모의 기대를, 자신의 확대되는 일생의 목적과 연합시키려고 애쓰면서, 이제 세상에서 보낼 생애에 대해 깊이 묵상하기 시작했다.



제123편 예수의 유년기 초기 ∥ 제125편 예루살렘에서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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