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14, 2011

제89편 죄, 제물, 속죄

제88편 주물, 마법, 요술 ∥ 제90편 무속신앙--주술사와 사제

89

, 제물, 속죄

 

89:0.1 원시인은, 자신이 영들에게 빚지고 있다고, 속전{贖錢} 내야 위치에 있다고 간주했다. 그렇게 판단하자 미개인은, 영들이 설령 훨씬 많은 불행을 자신에게 줬더라도, 공정하다고 여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개념은 죄와 구원의 교리로 발전했다. {} 상실된 상태에서-- 원죄{原罪} 지니고-- 세상에 나온 것으로 간주됐다. 혼은 반드시 값을 지불해야 했는데; 속죄양을 바쳐야했다. 사람_사냥꾼은, 해골 예찬집단을 따르고, 외에 자기 목숨을 대신하여 속죄인간을 바칠 있었다.
89:0.2 미개인은, 인간이 비참함이나 고난이나 굴욕을 당하는 장면에서 영들이 최고의 만족을 얻을 것이라는 개념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직 저지른 죄만 고려했지만, 나중에는 태만에 대한 죄를 적용하게 됐다. 그리고 제물을 바치는 차후의 전체 체계가,   개념을 중심으로 자라났다. 이런  제례식은, 제물로 위로하는 예식을 준수하는 것과 관계있었다. 원시인은, {}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진보된 문명만이, 시종일관 한결같이_침착하고 인자하신 하나님 인식한다. 속죄는, 미래의 행복을 위한 투자라기보다, 당면한 불행을 물리치기 위한 대비책이었다. 그리고 회피, 쫓아내기, 강압, 달래기 같은 제례식이 모두 서로 뒤섞여서 합쳐졌다.
 
 
1. 금기
 
89:1.1 금기{禁忌} 준수는, 사람이 불운을 피하려는, 어떤 것을 회피함으로써영적인 유령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금기가 처음에는 종교적이지 않았지만, 일찍부터 유령 또는 영의 허락을 받고자 했으며, 그렇게 강화됐을 , 금기는 법과 제도를 제정하게 됐다. 금기는 예식 표준의 근원이고, 원시적 자아_통제의 선조다. 그것은 사회 규제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였고, 매우 오랫동안 유일한 규제였으며; 여전히 사회를 규제하는 구조의 기본 단위다.
89:1.2 미개인의 정신 속에서 이런 금지조항들이 강요하는 존경심은, 금지조항들을 집행한다고 추측되는 자의 권력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똑같았다. 금기는 처음에 불행을 우연히 체험했기 때문에 생겨났으며; 나중에는 족장과 무당-- 유령의 지시, 심지어 {} 지시를 받는 것으로 생각되는 주물 사람들-- 금기를 제안했다. 영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원시인의 정신에 너무 크게 자리잡았으므로, 자신이 금기 사항을 위반했을 소스라치게 놀라서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런 극적인 사건은, 생존자의 정신에 미치는 금기의 영향력을 엄청나게 강화시켰다.
89:1.3 가장 오래된 금지조항들 가운데, 여자와 기타 재산을 훔치지 말라는 제한이 있었다. 종교가 금기의 진화에서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하자, 금지된 물건은 더러운 것으로 간주됐고, 나중에는 부정한 것으로 간주됐다. 히브리인 기록은, 정한 것과 부정한 ,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하지만, 이런 계통에 따른 그들의 믿음은, 여러 다른 민족의 관념보다 훨씬 복잡하고 범위가 좁았다.
89:1.4 히브리인 가지 명령뿐만 아니라, 달라마시아 에덴 일곱 계명은, 명확한 금기였고, 가장 오래된 금지조항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동일한 부정적 형태로 표현됐다. 그러나 비교적 새로운 법전은, 선재{先在}하던 수천 가지 금기를 대체시키면서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후대의 계명들이 순종에 대한 대가로 무언가 명확하게 약속했다는 점이다.
89:1.5 초기의 음식 금기는 주물숭배체계와 토템숭배체계에서 기원됐다. 페니키아인에게는 돼지가, 힌두인에게는 소가 신성시됐다.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집트인 금기가 히브리 신앙과 이슬람 신앙에 계승됐다. 음식 금기에서 변형된 형태는, 임신한 여자가 어떤 특정한 음식을 너무 많이 생각하게 되면, 태어난 아이도 음식을 좋아하게 된다는 믿음이었다. 그런 음식물은 아이에게 금기가 되곤 했다.
89:1.6 먹는 방식이 금기가 됐고, 그리하여 고대와 현대의 식탁 예절이 생겨났다. 신분계층 체계와 사회의 표준은, 금지조항이 남아있는 흔적이다. 금기는 사회를 조직하는 데서 매우 유효했으나, 몹시 부담됐으며; 부정적_금지 체계는 유용하고 건설적인 규칙들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진부하고 케케묵고 쓸모없는 금기들도 유지했다.
89:1.7 그러나, 이런 광범하고 잡다한 금기를 제외하면, 어떤 문명화된 사회도 원시인을 비판할 자격이 없을 것이며, 원시 종교가 지지하는 제재규약이 없었다면, 금기는 결코 지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진화에서 다수의 근본 요소는 매우 값이 비쌌는데, 노력과 제물과 금욕에 막대한 대가{代價} 치렀지만, 자아_통제라는 이런 업적은, 사람이 밟고 올라간 문명의 사다리에서 진정한 발판 역할을 했다.
 
 
2. 죄의 개념
 
89:2.1 운수{運數} 대한 두려움과 불행에 대한 공포는, 이런 재난을 막는 대비책이라고 여겨진 원시 종교를 창안하도록, 글자 그대로 인간을 내몰았다. 종교는, 마술과 유령으로부터, {} 주물을 거쳐서, 금기 사항으로 진화했다. 원시 부족마다, 금지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었고, 이것은 사실상 사과나무였으나, 수천 개의 가지에 온갖 종류의 금기가 무겁게 달려있었다. 그리고 금단의 나무는, 언제나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89:2.2 미개인 정신이 선한 영과 악한 영을 모두 상상하는 단계까지 진화하게 되고, 진화하는 종교로부터 금기가 진지한 지지를 받게 되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출현할 있는 무대가 모두 마련됐다. 죄의 관념은, 계시된 종교가 미처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확립됐다. 오직 죄의 개념으로 말미암아, 자연사가 원시 정신에게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죄는 금기 사항을 어기는 것이었고, 죽음은 죄에 대한 벌이었다.
89:2.3 죄는 이성적이 아니라 제례적이었으며;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죄에 대한 이런 전체 개념은, 딜문 전통과, 땅에 있었던 작은 낙원 시절과 관련하여 남아있는 전통 때문에 조성됐다. 에덴 동산 아담 전통 역시, 인종의 여명기에 한때 “황금기”가 있었다는 몽상에 신빙성을 더했다. 모든 것이, 사람이 특별한 창조에서 기원됐다는 믿음, 완전한 상태에서 생애를 시작했다는 믿음, 그리고 금기를 어김이-- 죄가-- 그를 나중에 비참한 처지에 빠뜨렸다는 믿음으로 후대에 표현된 관념을 입증했다.
89:2.4 금기를 습관적으로 어기는 것은 악덕이 됐으며; 원시 법률은 악덕을 범죄로 규정했으며; 종교는 그것을 죄라고 했다. 초기 부족들 가운데서, 금기를 어기는 것은 위법과 죄가 혼합된 의미였다. 공동체가 겪는 재난은 항상 부족의 죄에 대한 응징으로 간주됐다. 의로움과 번영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사악한 자의 외견상 번영이 너무 괴로웠으므로, 금기 사항을 어긴 자들을 위한 지옥 개념을 창안할 수밖에 없었으며; 장차 형벌을 내리는  장소의 숫자는 하나에서 다섯까지 다양했다.
89:2.5 자백과 용서의 관념은 원시 종교에서 일찍부터 출현했다. 사람들은 다음 주에 저지르려고 하는 죄를 위하여, 공개회의에서 용서를 미리 부탁하곤 했다. 자백은 단순히 용서를 위한 제례에 불과했으며, 죄를 범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통고하고, “불결하다, 불결하다!”라고 외치는 예식에 불과했다. 그다음에는 정결 제례식 순서가 이어졌다. 무의미한 예식을 고대의 모든 민족이 행했다. 외견상 위생적인 부족들의 관습 대부분이 주로 예식절차였다.
 
 
3. 체념과 굴종
 
89:3.1 체념이 종교 진화에서 다음 단계로 발생됐으며; 금식이 일반 풍습이었다. 여러 형태의 육체적 쾌락, 특히 성적{性的} 본성을 지닌 쾌락을 삼가는 것이 관습으로 굳어졌다. 금식하는 제례식은, 고대의 여러 종교에 깊이 뿌리 내렸고, 실질적으로 현대의 모든 신학 사고 체계에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89:3.2 죽은 사람과 함께 재산을 태우고 속에 묻는 낭비하는 풍습에서 야만인이 벗어날 무렵이 되어, 인종들의 경제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할 , 체념에 대한 이런  종교 교리가 모습을 드러냈고, 진지한 혼을 지닌 수많은 사람이 가난을 자초하기 시작했다. 재산은 영적 불이익으로 간주됐다. 물질 소유가 영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필로 바울 시대에 널리 유행했고, 유럽 사상에 유례없는 두드러진 영향을 미쳤다.
89:3.3 가난은 육신의 극기{克己} 속하는 제례식의 일부였고, 불행하게도 여러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문헌과 교훈에 삽입됐다. 참회는, 체념이라는, 흔히 어리석은 제례식이 부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미개인에게 자아_통제 가르쳤고, 이는 사회 진화에서 상당한 발전이었다. 금욕과 자아_통제는 초기 진화 종교에서 얻은 가지 가장 사회적 소득이었다. 자아_통제는 인생철학을 사람에게 제공했으며; 이기적 만족이라는 분자{分子} 증대시키려고 항상 애쓰는 대신, 개인적 욕구라는 분모를 낮춤으로써 인생의 분수{分數} 증대시키는 기술을 사람에게 가르쳤다.
89:3.4 자아_훈련에 속하는 이런 관념은, 모든 종류의 육체적 고문과 매질을 포함했다. 어머니 예찬집단의 사제들이 특히 육체적 고통의 미덕을 적극적으로 가르쳤는데, 스스로 거세{去勢}함으로써 본을 보이려고 했다. 히브리인과 힌두인 불교도들은, 육체적 굴종에 속하는 교리를 진지하게 신봉했다.
89:3.5 이런 식으로 {}들의 금욕 장부책에서 여분의 신용을 얻을 있다고,  시절 내내 모든 사람이 생각했다. 어떤 감정적 압박을 당할 , 금욕과 고행을 실천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이 한때의 관습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런 맹세는 들과 계약을 맺는 형태를 취했으며, 그런 의미로, 이런 고행과 극기에 대한 대가{代價} 신들이 확실히 무언가 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면에서, 진화에서 참된 발전이었다. 맹세는 부정적이기도 했고 긍정적이기도 했다. 해롭고 극단적 특성을 갖는 맹세를, 인도 어떤 집단들이 오늘날 가장 준수한다.
 
89:3.6 체념과 굴종을 요구하는 종파가 성적 만족에 눈을 돌린 것은 그저 자연스러웠다. 군인들 가운데서, 전투에 참여하기 전에 절제하는 종파가 제례식으로서 생겨났으며; 나중에는 “성자”라는 풍습이 됐다. 종파는 결혼을 간음보다 약간 악한 것으로 묵인했다. 세상의 종교 가운데 다수는 이런 고대 예찬집단으로부터 해로운 영향을 받아왔지만, 어떤 것도 그리스도교보다 뚜렷이 영향 받지는 않았다. 사도 바울 종파를 신봉했고, 그의 개인적 견해는, 그가 그리스도교 신학으로 확정 시켰던 교훈에 반영됐다. “남자가 여자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모든 남자가 나처럼 되기 원한다.” “그러므로 결혼하지 않은 자와 과부에게 말하는데, 나처럼 홀로 사는 것이 저희에게 좋을 것이다.바울 그런 교훈이 예수 복음의 일부가 아님을 알았고, 이런 그의 고백은, “내가 이렇게 말함은 명령이 아니라 허용하는 것이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예찬이, 바울 하여금 여자를 무시하도록 만들었다. 무엇보다 유감스런 것은, 그의 개인 의견이 위대한 세계 종교의 교훈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천막 만드는 선생의 충고를 글자 그대로 보편적으로 지켰다면, 인간 종족은 갑작스럽게 불명예스런 종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더욱이, 고대의 절제하는 종파에 종교가 휩쓸려 들어가면, 인간 진화의 기본 제도이고 참된 사회적 기초에 해당하는 가정과 결혼에 항거하는 전쟁이 직접 발생된다. 그런 모든 신념이, 다양한 민족의 여러 종교에서 독신자 사제계층 형성을 조장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89:3.7 방종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방법, 폭식하지 않고 자양분을 섭취하는 방법, 그리고 방탕하지 않고 기쁨을 누리는 방법을, 언젠가는 사람이 배워야한다. 자아_통제는, 극단적 금욕보다 뛰어난, 인간의 습성을 규제하는 방침이다. 또한 예수께서 이런 비이성적 견해를 추종자들에게 가르친 적이 결코 없었다.
 
 
4. 제물의 기원
 
89:4.1 종교적 헌신의 일부분으로서 제물은, 다른 여러 경건한 제례식처럼, 단순하고 간단하게 기원된 것이 아니다. 권력자 앞에 허리 숙이고 신비적 존재 앞에 경건한 동경을 드리면서 엎드리려는 경향은, 주인 앞에 아양 떠는 개의 태도에서 예시된다. 숭배하려는 충동으로부터 제물을 바치는 행동까지는 겨우 걸음에 불과하다. 원시인은 자기가 당하는 고통의 크기로 제물의 값을 판단했다. 제물 관념이 처음으로 종교 예식절차에 덧붙여졌을 때에는,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제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최초의 제물은 머리카락을 뽑거나, 살을 도려내거나, 수족을 절단하거나, 이를 뽑아내거나, 손가락을 자르는 등의 행위였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이런 거친 제물 개념은 자기_희생, 고행, 금식, 궁핍의 제례식 수준으로 향상됐고, 나중에는 슬픔이나 고난이나 육체의 극기를 통해서 성화{聖化}된다는 그리스도교 교리로 발전했다.
89:4.2 종교의 진화에서, 초기에는 제물에 대한 가지 생각이 존재했는데: 선물을 바치는 관념은 감사드리는 태도를 암시했고, 갚는 제물은 값을 치른다는 관념을 포함했다. 나중에는 값을 대신 치른다는 개념이 발전했다.
89:4.3 후에 사람은, 어떤 성질의 제물이든지, 제물이 신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으며; 향기로운 냄새로 신격을 만족시킬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제물을 바치는 제례식에 향과 기타 미적{美的} 특색을 더했고, 제례식은 제물을 바치는 축제로 발전됐으며, 시간이 지나자, 축제는 더욱 정교하고 화려하게 됐다.
 
89:4.4 종교가 진화함에 따라서, 화해하고 달래는 제물 제례가, 옛날의 도피하기와 달래기와 쫓아내기 등의 방법을 대신했다.
89:4.5 최초의 제물 관념은, 조상의 영들이 균형 있게 부과금을 징수한다는 관념이었으며; 후대에 이르러서야 속죄 관념이 개발됐다. 인종이 진화로 기원됐다는 개념이 사람에게서 사라지면서, 행성 왕자 시대와 아담 머물던 시대의 전통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점차 제거되면서, 죄와 원죄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됐고, 그리하여 우발적이고 개인적인 죄에 대한 제물은, 종족의 죄에 대한 값을 치르는 제물 교리로 진화했다. 제물을 바침으로 값을 치르는 것은, 알지 못하는 어떤 {} 분노와 질투심까지도 해결할 있는, 총체적인 대비책이었다.
89:4.6 신경질적인 허다한 영과 욕심 많은 신들로 둘러싸인 , 원시인은 수많은 빚쟁이 신격과 대면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영적 빚을 평생토록 갚기 위해서, 사제와 제례식과 제물이 모두 필요했다. 원죄 교리, 인종 전체에게 죄가 있다는 교리는, 사람마다 권력자들에게 무거운 빚을 상태에서 인생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89:4.7 선물과 뇌물을 사람에게 주지만; 신들에게 바칠 때에는, 헌납됐다거나 신성시 됐다고 이야기하든지, 또는 제물이라고 불렀다. 체념은 소극적 형태로 달래는 것이었으며; 제물은 적극적 형태가 됐다. 신을 달래는 행위에는, 찬양, 찬미, 아첨하는 , 그리고 심지어 연회를 베푸는 것까지 포함됐다. 신을 달래던 종파의 이런 적극적 관습의 잔재가, 현대의 신성한 경배 형태를 구성한다. 오늘날의 경배 형태는, 적극적으로 신을 달래는 제물의 이런 기법을 제례식으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89:4.8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현대의 종족들에게 의미할 있는 것보다 원시인에게 훨씬 많은 것을 의미했다. 이런 야만인은 동물을 가까운 실제 친척으로 여겼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은 제물을 바치는 약삭빨라져서, 일을 돕는 동물은 바치지 않게 됐다. 처음에는 길들여진 동물을 포함하여 모든 가운데 최고의 으로 제물을 바쳤다.
89:4.9 이집트 어떤 통치자가: 113,433명의 노예, 493,386마리의 가축, 88척의 , 2,756개의 금으로 형상, 331,702병의 꿀과 기름, 228,380병의 포도주, 680,714마리의 거위, 6,744,428덩어리의 , 5,740,352자루의 동전을 제물로 바쳤다고 공표했을 , 그것은 빈말로 자랑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하려고, 그는 고생하는 백성들로부터 무거운 세금을 거둬들였음에 틀림없다.
89:4.10 심각한 궁핍이 이런 반미개인으로 하여금 결국 제물로 바친 것들 중에서 고기를 먹게 했는데, 신들은 제물에서 떠난 혼을 즐겼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습은, 옛날에는 신성시되는 식사, 현대의 관례에서는 성찬식이라는 구실로 정당화됐다.
 
 
5. 제물과 식인 풍습
 
89:5.1 초기의 식인{食人} 풍습에 대한 현대 개념은 아주 잘못됐는데; 그것은 초기 공동체의 사회관행 가운데 일부였다. 현대 문명은 식인 풍습을 끔찍한 전통이라고 인식하지만, 원시 사회에서는 사회 구조와 종교 구조의 일부였다. 식인 풍습을 실행하도록 집단의 유익이 강요했다. 궁핍의 압박감에서 발생됐고, 미신과 무지에 노예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 유지됐다. 그것은,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군사적 관습이었다.
89:5.2 초기의 사람은 사람을 먹는 자였으며; 인간의 살을 즐겼고, 따라서 영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원시적 신들에게 먹는 선물로서 인간의 살을 바쳤다. 유령이 영들은 단순히 변경된 사람으로 여겨졌고, 음식은 사람에게 가장 중대한 필수품이었으므로, 영들에게도 음식이 가장 중요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89:5.3 식인 풍습은, 진화하는 인종들 가운데서 한때 거의 보편적이었다. 상익 인종들은 모두 식인 풍습을 갖고 있었지만, 안돈족속 원래부터 그렇지 않았고, 놋족속 아담족속 그렇지 않았으며; 안드족속 진화 인종들과 많이 섞이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89:5.4 인간의 살을 점점 좋아하게 됐다. 배고픔, 우정, 복수심, 또는 종교 제례식을 통해서 시작됐지만, 인간의 살을 먹는 것은 습관적 식인 풍습으로 변했다. 사람을 먹는 것은 양식 부족 때문에 발생했으나, 이것이 근본적인 이유였던 적은 드물다. 그러나, 에스키모 초기 안돈족속, 굶어 죽게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식인 풍습이 없었다. 홍색인, 특히 중앙 아메리카 있던 그들은 식인이었다. 분만하면서 잃은 기운을 되찾으려고 자기 아이를 죽여서 먹는 것이 원시 어머니들에게 한때 일반 풍습이었고, 퀸즈랜드{오스트랄리아 지역}에서는 아이를 죽여서 먹는 일이 아직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서 식인 풍습은, 아프리카 여러 부족이 전쟁을 벌이는 방법, 이웃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일종의 소름끼치는 짓으로서, 고의로 이용됐다.
89:5.5 어떤 식인 풍습은, 한때 우세했던 혈통이 퇴화함으로 생겼지만, 대체로 진화 인종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사람을_먹는 것은, 적에 대해 격렬하고 냉혹한 감정을 체험했을 발생됐다. 사람의 살을 먹는 것이 엄숙한 복수{復讐} 예식의 일부가 됐으며; 이렇게 함으로, 적의 유령이 파괴되거나 먹는 사람의 유령과 결합된다고 믿었다. 요술쟁이들이 인간의 살을 먹음으로써 능력을 얻는다는 믿음이 한때 널리 퍼졌다.
89:5.6 사람을_먹는 어떤 집단은 오직 자기 부족원만 먹곤 했는데, 거짓된 영적 근친 교배가 부족의 단결을 강화시켜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적의 힘을 뺏는다는 관념에서, 원수를 갚으려고 적을 잡아먹었다. 친구 부족 또는 벗의 시체를 먹는 것이 혼에게 영광스런 일로 간주된 반면, 그렇게 먹는 것이 적에게는 다만 확실한 형벌이 뿐이었다. 미개한 정신은 일관성을 유지하겠다고 허세부리지 않았다.
89:5.7 어떤 부족 가운데서는, 늙은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게 먹히기를 원했으며; 어떤 부족 가운데서는, 가까운 친척은 먹지 못하도록 금지되는 관습이 있었으며; 그들의 시체를 팔거나 낯선 사람의 것과 교환했다. 도살하기 위해 살찌게 , 여자와 아이를 거래하는 일도 상당히 있었다. 질병이나 전쟁이 인구를 통제하지 못할 , 과잉된 숫자를 허물없이 잡아먹었다.
 
89:5.8 식인 풍습이 점차 사라진 것은 다음과 같은 영향 때문이었다:
89:5.9 1. 식인 풍습이, 때로는 공동 사회의 예식, 동료 부족원에게 사형을 부과한 것에 대해 집단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전체, 공동체가 참여할 때에는, 살인이 범죄로 간주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식인 풍습은, 이처럼 사형 집행된 죄수를 먹는 것이었다.
89:5.10 2. 식인 풍습은 아주 일찍부터 종교 제례식으로 바뀌었지만, 유령에 대한 증대되는 두려움이, 사람을_먹는 일을 줄여주도록 항상 작용하지는 않았다.
89:5.11 3. 결국 시체의 특정 부위 또는 기관들만 먹는 상황으로 발전했는데, 부위들은 또는 영의 일부분을 내포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피를 마시는 것이 일반화됐고, 육신 중에서 “먹을 있는” 부분을 약품과 섞는 것이 관습이었다.
89:5.12 4. 식인 풍습이 남자에게 국한됐고; 여자는 사람의 살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됐다.
89:5.13 5. 그다음에는, 족장사제와 무당만 먹을 있도록 제한됐다.
89:5.14 6. 후에는, 식인 풍습이 상류 부족들 가운데서 금기가 됐다. 사람을 먹지 못하게 하는 금기는 달라마시아에서 기원됐고, 서서히 세계에 퍼졌다. 땅에 묻은 시체를 다시 파내서 먹는 것이 한때 일반 풍습이었기 때문에, 놋족속 식인 풍습에 대항하기 위하여 화장{火葬} 권장했다.
89:5.15 7.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식인 풍습에 종말을 고했다. 인간의 살은, 우세한 사람, 우두머리의 음식이었고, 결국 우세한 영들을 위하여 그것을 남겨뒀으며, 그리하여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식인 풍습을 효과적으로 멈추게 했으나, 가장 열등한 부족들의 경우에는 예외였다.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완전히 자리잡게 되자, 사람을_먹는 것은 금기가 됐으며; 인간의 살은 오직 신들의 음식이 됐으며; 사람은 예식적인 작은 조각, 성찬만 먹을 있었다.
 
89:5.16 마침내 제물을 바치는 목적에 동물을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됐고, 뒤떨어진 부족들 가운데서도, 개를_먹음으로써 사람을_먹는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개는 최초로 길들여진 동물이었고, 자체로서, 그리고 양식으로서 가장 존중됐다.
 
 
6. 인간 제물의 진화
 
89:6.1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식인 풍습을 고치는 처방일 뿐만 아니라, 간접 결과였다. 영을 호위해서 영의 나라에 안전하게 이르게 하려는 노력 역시 사람을_먹는 일을 줄여줬는데, 제물로 바쳐졌던 시체를 먹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지 어느 때든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에서 완전히 벗어난 종족은 없었으나, 안돈족속과 놋족속 아담족속 식인 풍습에 가장 적게 물들었다.
89:6.2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사실상 보편적이었으며; 중국인, 힌두인, 이집트인, 히브리인, 메소포타미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기타 여러 민족의 종교 관습에서 지속됐고, 오늘날에도, 뒤떨어진 아프리카인 오스트랄리아 부족들 가운데서 자행되고 있다. 후대의 아메리카 인디언 식인 풍습에서 벗어난 문명을 소유했고, 따라서 인간 제물에 몰두했는데, 특히 중앙 아메리카 아메리카에서 그랬다. 갈대아인 평범한 경우에 인간 제물 바치기를 처음으로 거부한 사람에 속했고, 동물로 대체시켰다. 2 전에, 일본에서는 어느 인정 많은 황제가, 인간 제물 대신 진흙으로 만든 형상을 바치도록 가르쳤지만, 북부 유럽에서는 이런 제물이 사라진 1,000년이 됐다. 뒤쳐진 어떤 부족 가운데서는, 인간 제물이 지원자들, 일종의 종교적 또는 제례적 자살 행위로 여전히 수행된다. 한때 어느 무당이 어떤 부족에서 매우 존경 받는 노인을 제물로 바치라고 시켰다.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복종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노인은 자기 아들을 시켜서 자신을 죽이도록 했으며; 고대인은 관습을 진지하게 믿었다.
 
89:6.3 기록된 사건 가운데, 입다 그의 외동딸에 대한 히브리인 이야기보다 비극적이고 애처로운 일은 없을 것인데, 고대의 전통적 관습과 진취적 문명의 상반되는 요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슴을 찢는 듯한 갈등을 보여준다. 일반 관습대로, 마음씨 좋은 사람은 어리석은 맹세를 했고, “전쟁의 신”과 흥정하여, 적을 물리치게 주는 어떤 대가{代價} 지불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대가는 자기가 집으로 돌아갈 , 집에서 제일 먼저 나와서 자신을 맞이하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입다 믿을만한 종들 중에서 사람이 그렇게 자기를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일은 자기 딸에게 벌어졌고, 유일한 자식이 뛰어나와서 그를 집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리하여, 심지어 그런 후기 시대에도, 그리고 문명화됐으리라고 생각되는 민족 가운데서도, 동안 자신의 운명을 슬퍼한 , 동료 부족민의 동의하에, 아버지가 아름다운 소녀를 실제로 인간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모든 것은, 인간 제물을 철저히 금지한 모세 엄중한 판결문에도 아랑곳없이 자행됐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들은 어리석고 쓸데없는 맹세를 하는 빠지며, 사람은 그런 모든 서약을 무척 신성하게 여겼다.
 
89:6.4 옛날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건물이 지어질 , 사람을 죽여서 “기초{基礎} 제물”로 바치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것은 유령이 영으로 하여금 건물을 감시하고 보호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중국인 {} 주조할 준비가 됐을 , 종소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관습에 따라 적어도 이상의 소녀를 제물로 바치게 돼있었으며; 선택된 소녀는 용해된 쇳물 속에 산채로 던져졌다.
89:6.5 중요한 성벽 속에 노예를 산채로 집어넣는 것이, 여러 집단의 오랫동안의 풍습이었다. 후대에 이르러서, 북부 유럽 부족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건물 속에 매장하는 이런 관습 대신, 지나가는 사람의 흔적을 속에 넣었다. 중국인 건물을 짓다가 죽은 인부를 속에 묻었다.
89:6.6 팔레스틴 어떤 옹졸한 왕은 여리고 성벽을 지으면서, “그 기초를 놓을 때 _아들 아비람 잃었고 성문을 세우면서 막내아들 스굽 잃었다.” 그런 후기 시대에, 아버지는 성문의 기초석 구멍에 아들을 산채로 집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은 말씀에 따라서” 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모세 기초를 위한 이런 제물을 금지했지만, 이스라엘족속 그가 죽은 직후에 이런 풍습으로 되돌아갔다.  건물의 주춧돌 속에 장신구와 기념품을 보관시키는 20세기 예식은, 기초를 위한 원시 제물의 흔적이다.
 
89:6.7 열매를 영들에게 바치는 것이 오랫동안 여러 민족의 관습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다소 상징적 의미가 이런 관례는 모두, 인간을 제물로 바치던 초기 예식의 유물이다. _태생을 제물로 바치는 관념이 고대인에게 널리 퍼졌는데, 특히 페니키아인 그것을 마지막으로 포기한 민족이었다. 제물을 바치면서 “생명에는 생명으로”라고 말하곤 했다. 이제 너희는 죽음에 이를 “티끌에서 티끌로”라고 말한다.
89:6.8 아브라함 아들 이삭 억지로 제물로 바치려던 장면은, 감수성 예민한 문명인에게는 충격적인 것이겠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새롭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심한 감정적 압박감에 짓눌린 아버지가 _태생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오랫동안 일반적으로 유행한 풍습이었다. 여러 민족이 이와 유사한 전설을 갖고 있는데, 어떤 비범하거나 비정상적인 일이 발생할 인간을 제물로 바쳐야한다는 굳건한 믿음이, 한때 세계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7. 인간 제물의 변경
 
89:7.1 모세, 인간 대신 몸값을 내게 함으로써 인간 제물을 끝내려고 애썼다. 자기 민족의 무분별하고 어리석은 맹세 때문에 발생하는 최악의 결과로부터 그들을 벗어나게 있는 체계적 명세서를 만들었다. 정해진 값으로, 이나 재산이나 자녀를 구제할 있었고, 속전을 사제들에게 지불할 있었다. _태생을 제물로 바치기를 멈추게 무리들은, 이런 잔학한 행위를 계속하는 뒤쳐진 이웃 민족들보다 엄청난 이점을 갖게 됐다. 뒤떨어진 그런 부족들 대부분은, 이렇게 하여 아들을 잃어버림으로써 크게 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지도권 계승조차 종종 끊어졌다.
89:7.2 아이를 보호하려고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관습은, 아이를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일이 사라지면서 생겨났다. 이런 일은 해의 신성시되는 축제 가운데 하나와 관련하여 종종 이뤄졌고, 예식{禮式} 한때 멕시코에서 이집트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89:7.3 아이를 죽이는 제례식을 대부분의 집단이 멈춘 후에도, 갓난아이를 혼자 있게 하는, 광야에 두거나 위에 혼자 태워서 물위에 띄워놓는 관습이 있었다. 아이가 살아남으면 {}들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개입했다고 생각했으며, 사르곤, 모세, 키루스, 로물루스 관한 전설에 나타나 있다. 그다음에는 신성시되는 존재로서 또는 제물로서  아들을바치는 풍습이 생겨나서, 그들을 자라게 뒤에, 죽이는 대신 멀리 떠나도록 허용했으며; 이것이 식민지 형성의 기원이 됐다. 로마인 식민지화 계획은 이런 관습을 고수했다.
 
89:7.4 원시적 숭배와 성적 방종이 독특하게 합쳐진 것들 가운데 다수는 인간 제물과 관련해서 기원됐다. 옛날에는, 어떤 여자가 인간_사냥꾼을 만나게 되면, 성적으로 항복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할 있었다. 후대에는,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진 소녀가, 신전에서 신성시되는 성적{性的} 봉사의 삶에 자기 몸을 바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며; 이런 식으로 보상의 돈을 벌수도 있었다. 고대인은, 그렇게 해서 자기 생명에 대한 몸값을 요구하는 여자와 성관계 맺는 것을 매우 고상하게 여겼다. 이렇게 신성시되는 여자와 동침하는 것은 종교 예식이었으며, 더욱이 이런 제례식 전체가, 진부한 성적 만족을 위한 구실을 제공했다. 이것은 처녀와 상대자가 스스로를 속이기를 즐기는, 미묘한 종류의 자아_기만이었다. 문명의 진화 발전을 사회관행이 항상 방해했으며, 진화 인종들의 오래되고 야만스러운 성적 풍습들이 그런 식으로 허용됐다.
89:7.5 신전 매춘 행위는 결국 남부 유럽 아시아에도 널리 퍼졌다. 신전 매춘 행위로 돈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신성시되는 것으로-- 신들에게 바쳐진 고귀한 선물로-- 간주됐다. 가장 고상한 유형의 여자들이 신전에서 매춘 시장에 몰려들었고, 자신이 돈을 온갖 종류의 신성시되는 예배와 공익사업에 바쳤다. 상류의 여자 가운데 많은 사람이, 신전에서 일시적인 성적 봉사를 통해서 결혼 지참금을 마련했고, 대부분의 남자는 그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기를 선호했다.
 
 
8. 구속과 언약
 
89:8.1 제물로 값을 치르는 것과 신전 매춘 행위는, 실제로는 인간 제물이 변경된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딸을 가짜로 바치는 일이 등장했다. 예식은, 평생 처녀로 지내기로 헌신하면서 피를 뿌리는 것으로 이뤄졌고, 그전에 있었던 신전 매춘에 대한 도덕적 반작용이었다. 최근에는, 신성시되는 신전 성화{聖火} 돌보는 일에 처녀들이 스스로 헌신했다.
89:8.2 사람들은 결국, 신체의 어떤 부분을 바치는 것이, 인간을 온전히 제물로 바치는 옛날의 관습을 대체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신체를 잘라내는 역시 가능한 대안으로 여겨졌다. 머리카락, 손톱, , 그리고 심지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제물로 바쳐졌다. 후대에 거의 보편적으로 퍼진, 할례{割禮} 행하는 제례는, 일부분을 제물로 바치는 종파에서 발생됐으며; 순전한 제물에 해당됐고, 거기에 첨부된 위생학적 개념은 전혀 없었다. 남자는 할례를 받았고; 여자는 귀에 구멍을 뚫었다.
89:8.3 나중에는 손가락을 자르는 대신, 그것들을 묶는 것이 관습이 됐다. 머리를 밀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역시 종교적 헌신의 비슷한 형태였다. 내시{內侍} 만드는 것은, 처음에는 인간 제물 관념이 변경된 것이었다. 코와 귀를 뚫는 행위는 여전히 아프리카에서 실행되고 있으며, 문신{文身} 행위는, 옛날에 몸에 조잡하게 상처를 내던 것이 예술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89:8.4 제물을 바치는 관습은, 발전하는 가르침의 결과로, 결국 언약 관념과 연결됐다. 마침내, 신들이 인간과 실제 계약을 맺게 것으로 이해됐으며; 이것은 종교가 안정을 이루게 되는 주요 단계였다. 율법, 언약이, 운수{運數}와 두려움과 미신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89:8.5 사람은, 그의 하나님 개념이, 우주 통제관을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신격 계약 맺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님 대한 사람의 초기 관념은 너무나 의인화됐으므로, 자신이 비교적 신뢰할 만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상태가 되기 전에는, 믿을만한 신격 생각할 없었다.
89:8.6 그러나 신들과 언약을 맺는다는 관념이 결국 조성됐다. 진화하는 사람은 마침내, 자신이 감히 자신의 신들과 협상할 있다는, 그런 도덕적 존엄성을 획득했다. 그리하여 제물이 점차 발전하여, 사람이 하나님 이성적으로 협상하는 시합을 하게 됐다. 그리고 모든 것은, 불운을 물리치는 대비책을 위한 새로운 수단을 대표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명확한 번영을 위한 발전적 방법이었다. 이런 초기 제물이, 신들에게 대가{代價} 바라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바쳐진 것이었다고 잘못 생각해서는 되며; 그것은 참된 경배의 표현이 아니었다.
 
89:8.7 원시 형태의 기도는, 영들과 협상하는 , 신들과 논쟁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물물 교환 같은 것이었고, 속에 포함된 변론과 설득은, 실체적이고 값나가는 어떤 것과 바꾸려는 것이었다. 종족들의 발전하는 교역{交易}, 매매하는 정신을 심어줬고, 영리하게 물물 교환 하도록 발달시켰으며; 그때부터 이런 기운이 인간의 경배 방식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상인{商人} 되듯이, 어떤 기도가 다른 기도들보다 나은 것으로 간주됐다. 의로운 사람의 기도는 매우 존중됐다. 의로운 사람이란, 영들에 대한 모든 계산을 마친, 신들에 대한 모든 제례적 채무{債務} 완전히 면제받은 사람이었다.
89:8.8 초기의 기도는 도저히 경배라고 없었으며; 건강이나 재산이나 생명을 위하여 거래하는 청원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기도는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읽고, 형식적으로 암송하, 바퀴에 새겨놓거나 나무에 걸어놓으려고 베껴 쓰는데, 그리하면 숨을 쉬 사람 수고를 불어오는 바람이 덜어주려나.
 
 
9. 제물과 성례
 
89:9.1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유란시아 제례식이 진화하는 과정 내내, 사람을_먹는 잔인한 거래로부터, 높고 상징적인 수준으로 진보해왔다. 제물을 바치는 초기 제례식이 후대의 성례{聖禮} 예식을 탄생시켰다. 후대에 이르러서는, 사제가 혼자서 야만적인 제물 조각을 먹거나 사람의 피를 조금 마시고, 그다음에는 모든 사람이 동물 대용품을 먹곤 했다. 몸값이나 구속{救贖}이나 언약 같은 이런 초기 관념은 후대의 성례 예배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예식의 진화는, 강력하게 사회화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89:9.2 멕시코를 비롯하여 기타 여러 곳에서는, 하나님 어머니 모시는 종파와 연결되어, 결국 떡과 포도주로 구성된 성찬식이, 옛날에 인간을 제물로 바칠 때의 살과 피를 대신하는 방법으로서 활용됐다. 히브리인 이런 제례식을 유월절 예식의 일부분으로 오랫동안 지켜왔으며, 바로 예식절차로부터, 나중에 그리스도교 성찬이 탄생됐다.
89:9.3 고대 사회의 형제관계는 피를 마시는 제례에 기초했으며; 초기 유대인 공동체는 제물의 피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바울 “영원한 언약의 피”에 기초하여  그리스도교 종파를 수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피와 제물에 관한 교훈으로 쓸데없이 그리스도교 방해 요소를 제공하기는 했어도, 인간이나 동물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구속함을 받을 있다는 교리를 단숨에 끝내버렸다. 그의 신학적 타협은, 진화의 누진적 통제에 계시조차 복종해야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 의하면, 그리스도 최종적이고 완전무결한 인간 제물이 됐으며; 신성한 재판관 이제 완전하게, 그리고 영원토록 만족하게 됐다.
89:9.4 그리하여,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제물을 바치는 종파는 성례를 행하는 종파로 진화했다. 이렇게 현대 종교의 성찬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충격적인 초기 예식과, 그전에 있었던 식인 제례식을 합리적으로 계승했다. 많은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여전히 피에 의존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비유이자 상징이자 신비가 됐다.
 
 
10. 죄의 용서
 
89:10.1 고대의 사람은, 제물을 통해서 하나님 은혜를 의식하기에 도달했을 뿐이다. 현대인은 구원에 대한 자아_의식을 획득하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해야한다. 죄의식은 필사 정신에 지속적으로 남아있으나, 거기서 나온 구원에 대한 사고{思考} 경향들은 진부하고 낡은 것이 됐다. 영적 필요라는 실체는 지속되지만, 지적 진보는 정신과 혼에게 평화와 위로를 보장하는 방식을 파괴해왔다.
 
89:10.2 죄는, 신격 대한 고의적 불충{不忠}이라고, 다시 정의돼야한다. 불충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데: 우유부단한 부분적 충성이 있으며; 갈등을 일으키는 분열된 충성이 있으며; 무관심이라는 죽어가는 충성이 으며; 신을 믿지 않는 이상{理想} 대한 헌신에서 드러나는 죽은 충성이 있다.
 
89:10.3 죄의식 또는 죄책감은 사회관행을 위반했음을 의식{意識}하는 것이며; 그것이 반드시 죄는 아니다. 자각하면서 신격에게 불충한 경우가 아니면, 진짜 죄는 아니다.
89:10.4 죄책감을 인식할 가능성은 인류에게 초월적 탁월성이 있다는 표시다. 그것은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잠재적 위대성과 영원토록_상승하는 영광스런 존재로 구별시킨다. 무가치하다는 그런 느낌은, 도덕적 숭고함 시공우주 통찰력 영적 생활이라는 최고 수준에 이르도록 전환시키는 신앙 정복으로 필사자 정신을 신속하고 분명하게 인도해야할 초기 자극이; 이처럼 인간 실존의 모든 의미는 현세의 것으로부터 영원한 것으로 바뀌고, 모든 가치는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신성한 것으로 높아진다.
89:10.5 죄의 고백은 불충을 용감하게 거절하는 것이지만, 그런 불충의 시공간 결말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그러나 고백-- 죄의 본성에 대한 진지한 인식--종교적 성장과 영적 진보에 필수 요소다.
89:10.6 신격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고의로 반역한 결과로 그런 관계가 단절됐다는 사실을 한동안 인간이 의식한 후에, 충성스런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용서를 추구할 필요는 없고, 오직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충실한 관계가 회복됨을 의식{意識}함으로써 용서를 얻는다. 그리고 하나님 충성스런 아들들은 모두 행복하고, 봉사하기를 좋아하고, 낙원 향해 상승하면서 _전진한다.
 
 
89:10.7 [네바돈 찬란한 저녁별 제시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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