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14, 2011

제111편 조율사와 혼

제110편 조율사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 제112편 인격의 생존

111

조율사와

 

111:0.1 신성한 조율사가 인간 정신 속에 현존함이, 과학이나 철학이 인간 인격의 진화하는 혼을 만족스럽게 납득하는 것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든다. 모론시아 혼은 우주의 산물이며, 오직 시공우주 통찰력 영적{靈的} 발견을 통해서만 정말로 혼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111:0.2 혼이 있고 혼에 내주하는 영이 있다는 개념은, 유란시아 새롭지 않으며; 개념은 행성의 다양한 믿음 체계에 자주 출현했다. 어떤 서양 신앙뿐 아니라 동양 여러 신앙도, 사람이 인간적 재산을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신성한 유산을 가졌음을 감지했다. 신격 바깥에 두루 계실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현존하신다는 느낌이, 오랫동안 여러 유란시아 종교의 부분을 형성했다. 인간 본성 안에서 무언가, 짧은 현세 생애의 저편에서 계속할 운명을 지닌 어떤 생명원천이 자라고 있음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믿어왔다.
111:0.3 신성한 영이 사람의 진화하는 혼을 낳았다는 것을 사람이 깨닫기 전에는, 혼이 육신의 다른 기관에-- , , 콩팥, 심장에, 그리고 나중에는 뇌에-- 거한다고 생각했다. 미개인은 혼을, , 숨결, 그림자, 물에 비친 자기 모습과 연결시켰다.
111:0.4 힌두교 선생들은 대아{大我} 생각함으로써 조율사 본성과 현존을 이해하는 정말로 접근했으나, 진화하면서 불멸의 잠재성을 갖는 혼이 공존한다는 것을 식별하지는 못했다. 반면에, 중국인 인간의 가지 , ‘양{} ‘음{}, 혼과 영을 인식했다. 이집트인 여러 아프리카 부족도, 요소, ‘카’ ‘바’ 믿었으며; 혼은 선재하지 않고, {} 그렇다고 대개 믿었다.
111:0.5 나일 유역에 거주하던 자들은, 은총을 얻은 개인이 태어날 , 또는 바로 후에, 보호하는 영이 증여된다고 믿었고, 이것을 ‘카’라고 불렀다. 그들은 수호 영이 일생동안 필사 상대자와 함께 남아 있다가, 상대자보다 먼저 미래의 생애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룩소 있는 신전 벽에는 아멘호텝 3세의 탄생이 그려져 있는데, 어린 왕자가 나일 {} 위에 그려져 있으며, 그의 곁에는 왕자와 똑같은 모습의 다른 아이가 있는데, 이것은 이집트인 ‘카’라고 부르는 실재의 상징이다. 조각은 기원전 15세기에 완성됐다.
111:0.6 ‘카’는 관련된 필사자의 혼을 현세의 삶에서 나은 길로 안내하기를 바라지만, 특별히 다음 세상에서 인간 상대자의 행운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뛰어난 천재 영이라고 생각됐다. 시대에 살던 이집트인 자신이 죽으면, 자기 ‘카’가 저편에서 자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처음에는, 왕들만 ‘카’를 소유하리라고 생각했으나, 모든 의인이 ‘카’를 소유한다고 믿게 됐다. 어느 이집트 통치자는, 자기 마음 속의 ‘카’를 언급하며 말했다: “나는 ‘카’가 말하는 것을 무시하지 않았으며; ‘카’의 인도를 어기지 않을까 두려웠. 나는 ‘카’로 인해 번영했으며; ‘카’가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게 했으므로 이렇게 성공했으며; 나는 ‘카’의 안내를 받아 저명하게 됐다.” ‘카’가 “모든 사람 속에 하나님 내린 신탁{神託}”이라고 많은 사람이 믿었다. 많은 사람이, “너희 안에 계신 하나님 은혜 속에서 즐겁게 영원을 보내리라”고 믿었다.
111:0.7 진화하는 유란시아 필사자 종족마다, 개념에 해당하는 어떤 단어를 갖고 있다. 미개한 여러 민족은 혼이 인간의 눈을 통하여 세상을 본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증오심에 흉안{凶眼} 몹시 무서워했다. “사람의 영은 주님 등불이라”고 그들은 오랫동안 믿었다. 리그_베다에는: “나의 정신이 나의 마음에게 말한다”고 씌어있다.
 
 
1. 선택하는 정신 경기장
 
111:1.1 조율사 활동이 본질적으로는 영적이더라도, 그들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지적 기초 위에서 모든 활동을 해야 한다. 정신은 인간의 토양이요, 토양으로부터, 관찰자 자신이 내주하는 인격체의 협조를 얻어서 모론시아 혼을 증진시켜야한다.
111:1.2 온갖 우주에 있는 여러 정신 수준에는 시공우주의 통일성이 있다. 마치 성운{星雲} 우주 공간에 있는 시공우주 에너지에서 기원되는 것처럼, 지적 자아는 시공우주 정신에서 기원된다. 지적 자아의 인간적인 수준에서 (따라서 인격있는 수준에서), 필사 정신이 동의함에 따라 영의 진화 잠재력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런 인간 자아 안에 있는 절대 가치의 실재_접촉점이 창조적 현존과 함께하는, 인간 인격의 영적 재능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물질 정신의 지배는 가지 체험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정신은 일곱 보조 정신_영의 섬김을 통해서 진화했어야하며, 물질적 (인격적) 자아는, 모론시아 자아, 진화하고 불멸의 잠재력이 있는 혼을 창조하고 돌보면서 내주하는 조율사 협동하는 쪽으로, 반드시 선택해야한다.
 
111:1.3 물질 정신은 인간의 인격이 사는 경기장인데, 인격은 자아를_의식하고, 결정하고, 하나님 택하거나 저버리고, 자신을 영원하게 만들거나 파괴한다.
111:1.4 생명 장치인 육신을 물질 진화가 너에게 제공했고, 우주에 알려진 실체 중에서 가장 순수한 실체인 사고 조율사, 아버지께서 직접 너에게 부여하셨다. 그러나 바로 너의 결정에 따라서, 너의 손에 정신이 주어졌으며, 네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정신에 달렸다. 너는 정신 속에서  정신으로, 너를 조율사처럼 만들 있는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데, 조율사처럼 되는 것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
111:1.5 필사자의 정신은, 물질적 일생 동안에 사용하도록 인간에게 대여된 일시적 지능 체계이며, 인간은 정신을 사용함으로써, 영원히 실존할 잠재성을 수락하거나 거절한다. 우주 실체 중에서 너의 뜻에 지배되는 것은 네가 가진 정신이 전부이며, 혼은-- 모론시아 자아는-- 필사 자아가 현세에 내리는 결정들이 거두는 수확을 충실히 묘사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은, 아래로 전기화학 장치 위에 살며시 놓여있고, 위로는 _모론시아 에너지 체계에 정교하게 닿아있다. 인간은, 필사 생애 중에, 체계 가운데 어떤 것도 결코 완전하게 의식하지 못하며; 따라서 자신이 의식하는 정신 속에서 일해야 한다. 그리고 정신이 무엇을 납득하는가 하는 것보다, 정신이 무엇을 납득하고 싶어 하는가, 이것이 생존을 보증하며; 정신이 무엇과 비슷한가보다, 무엇처럼 되려고 애쓰는가, 이것이 영의 신분을 증명한다. 사람이 하나님 의식하는 것보다 하나님 갈망하는 것이, 우주에서 상승하는 결과를 낳는다. 네가 지금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날마다, 영원 속에서, 네가 어떤 존재가 돼가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111:1.6 정신은, 인간 의지가 파멸의 불협화음을 연주하든지, 아니면 바로 인간 의지가 하나님 존재를 확인하고, 결과로 사람을 영원히 생존시키는 아름다운 곡조를 연주할 있는, 시공우주 악기다. 결국, 사람에게 증여된 조율사, 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죄를 범할 없지만, 필사 정신은 사악하고 사리를_꾀하는 인간 의지의 많은 음모로 인해, 실제로 비틀리고, 일그러지고, 악하고비열하게 될 있다. 마찬가지로 정신은, 하나님 아는 인간의 의지, 영의 빛을 받은 의지에 따라서, 고결하고 아름답고 참되고 선하게--정말로 위대하게-- 있다.
 
111:1.7 진화하는 정신은, 시공우주의 지적성향의 극단에-- 온전히 기계화된 것과 완전히 영성화된 것에-- 스스로 나타날 때에만 전적으로 안정되고 신뢰할 만하다. 순전히 기계적인 통제와 참된 본성, 지적인 양극단 사이에는 거대한 집단의 진화하고 상승하는 정신들이 개입하는데, 정신들의 안정성과 차분함은 인격의 선택과 영의 일체감에 달려있다.
111:1.8 그러나 사람은 수동적으로, 노예처럼, 자기 의지를 조율사에게 굴복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조율사 인도가 자연스런 필사 정신의 욕구 충동과 다르다는 것을 의식할 , 그렇게 의식하면서 능동적으로, 긍정적으로, 그리고 협조적으로 조율사 인도를 따르기로 결심한다. 조율사,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지만, 그의 뜻에 어긋나게 지배하지는 않으며; 인간의 뜻이 조율사에게 최고 권위를 갖는다. 그리고 그들은, 진화하는 인간 지능이라는 거의 한없는 경기장에서, 사고를 조절하고 성품을 변화시키는 영적 목표를 달성하려고 애쓰는 동안, 인간의 뜻을 그렇게 고려하고 존중한다.
 
111:1.9 정신은 너의 , 조율사 너의 도선사{導船士}, 인간의 의지는 선장이다. 필사적 배의 주인은, 상승하는 혼을 영원한 생존의 모론시아 항구로 안내하는 신성한 도선사를 신뢰하는 지혜를 가져야한다. 오직 이기심나태함 범죄만이, 사람의 의지로 하여금 그런 사랑하는 도선사의 안내를 거부하게 있고, 결국에는 거부된 자비라는 해로운 모래톱을 만나거나 죄를 품은 바위를 만나서 필사자의 생애가 파멸하게 된다. 신실한 도선사는, 네가 동의함에 따라서, 시간의 장벽과 공간의 불리한 조건을 지나서 신성한 정신의 바로 근원까지, 그리고 이를 지나서 계속, 심지어 조율사들의 낙원 아버지 이르기까지, 너를 안전하게 데려다 것이다.
 
 
2. 혼의 본성
 
111:2.1 시공우주 지성의 정신 기능 전반에 걸쳐서, 전체 정신이 지적 활동의 부분들을 지배한다. 정신은, 본질에 있어서는 기능적 단일체이며; 따라서 잘못 인도된 자아가 현명치 못하게 행동하고 선택함으로써 훼방 받고 저지당할 때조차, 정신은 어김없이 이런 구조적 통일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정신의 통일성은, 의지의 존엄성과 상승 특권을 지닌 자아들과 관련되는 모든 수준에서, 영의 협조를 추구한다.
111:2.2 필사적 사람의 물질 정신은, 모론시아 원단을 걸어놓은 시공우주 방직기계와 같은데, 내주하는 사고 조율사 원단 위에, 영속적 가치와 신성한 의미를 지닌 우주 성품-- 궁극적 운명과 무궁한 생애를 지닌 생존하는 , 잠재적 완결성취자-- {} 무늬를 수놓는다.
111:2.3 인간의 인격은, 물질 육신 속에 있는 생명으로 인한 기능적 관계에 함께 묶여있는 정신 영과 동일시된다. 그런 정신과 영이 작용하는 관계는, 정신과 영의 특성 또는 속성의 어떤 배합을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히 지속할 잠재력이 있는, 전혀 새롭고 독창적이고 독특한 우주 가치, 낳는다.
111:2.4 그런 불멸의 혼을 진화로 창조하는 데는 둘이 아니라 요소가 있다. 모론시아 인간 혼의 가지 선행조건은 다음과 같다:
111:2.5 1. 인간의 정신, 그리고 그것에 선행하고 그것에 영향을 주는 모든 시공우주 영향.
111:2.6 2. 인간 정신에 내주하는 신성한 , 그리고 인생에 관련된 모든 영적 영향 요소와 함께, 절대 영성{靈性} 그런 단편 속에 타고난 모든 잠재성.
111:2.7 3. 물질 정신과 신성한 사이의 관계인데, 그런 연합에 기여하는 어느 요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가치를 뜻하고 의미를 지닌다. 독특한 관계의 실체는, 물질적이지 않고 영적이지도 않으나, 모론시아다. 그것이 혼이다.
111:2.8 중도 피조물은, 사람의 진화하는 혼을, 하급, 물질적인 정신과 구별되고, 상급, 시공우주 정신과 구별되도록, 중간_정신이라고 오랫동안 불러왔다. 중간_정신은 진정으로 모론시아 현상인데, 이것이 물질계와 영계 사이의 영역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론시아로 진화하는 잠재성은, 정신의 보편적 충동에 타고 나는데: 하나님 알고 창조주 신성을 획득하려는 피조물의 유한한 정신의 욕구이고, 사람을 알고 피조물의 체험 획득하려는 창조주 무한한 정신의 욕구다.
111:2.9 진화하는 불멸의 혼의 숭고한 처리사항은, 인간 정신이 첫째로 인격을 지녔기 때문에, 그리고 둘째로는 초동물적 실체들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며; 그 정신은 시공우주에서 섬기는 초물질적 재능을 소유하는데, 이것은 도덕적 결정을 내릴 있는 도덕적 본성이 진화하는 것을 보장하고, 그럼으로써 관련된 영적 섬김과, 그리고 내주하는 사고 조율사, 진정한 독창적 접촉을 이루게 한다.
111:2.10 인간 정신이 접촉하여 그렇게 영성화된 필연적 결과는, 혼이 점진적으로 탄생되는 것인데, 혼은, 하나님 몹시 알고 싶어 하는 인간 의지에 지배되는 보조 정신이, 우주의 영적 세력들과 접촉하면서 일함으로써 공동으로 만든 산물이며, 영적 세력들은,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하나님 실제 단편-- 신비 관찰자-- 통제권한 아래에 있다. 그리하여 자아의 물질적이고 필사적인 실체는, 육체의_삶을 영위하는 기관의 일시적 한계를 초월하고, 자아성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진화하는 매개체 속에서 새로운 표현과 새로운 일체감을 달성하는데, 매개체가 불멸의 모론시아 혼이다.
 
 
3. 진화하는
 
111:3.1 필사 정신의 실수와 인간의 잘못된 행위가 혼의 진화를 심히 늦출지 모르지만, 이런 것들은, 피조물 의지가 동의함에 따라서, 내주하는 조율사 혼의 진화를 일단 시작하면, 그런 모론시아 현상을 억제할 없다. 그러나 필사자가 죽기 전에는 언제든지, 바로 물질적 인간 의지는, 그런 선택을 취소하거나 생존하기를 거부할 힘이 있다. 상승하는 필사자는, 심지어 생존한 후에도, 영원한 생명을 거부할 있는 특권을 여전히 지니며; 조율사 융합되기 전에는 언제든지, 진화하면서 상승하는 피조물이 낙원 아버지 뜻을 저버리는 선택을 있다. 조율사 융합하는 것은, 상승하는 필사자가 영원히 무제한으로 아버지 뜻을 행하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표시한다.
111:3.2 육신 속에 사는 동안, 진화하는 혼은 필사 정신의 초물질적 결정을 강화할 있게 된다. 초물질이므로, 혼은 인간이 체험하는 물질 수준에서 저절로 작용하지 않는다. 영적이지 못한 혼은, 신격 어떤 , 조율사 같은 그런 존재의 협조 없이는, 모론시아보다 높은 수준에서 작용할 수도 없다. 물질 정신이, 관련된 기능을 지닌 그런 모론시아 혼에게 아낌없이 기꺼이 그런 권한을 위임할 , 그리고 그러는 동안 외에는, 죽음이나 전환이 필사 정신과 물질적으로 연합된 상태로부터 혼을 분리할 때까지, 혼은 최종 결정을 내리지도 않는다. 생애 동안에, 필사자의 의지, 결정하고_선택하는 인격의 능력은 물질 정신 회로에 거하며; 땅에서 필사자의 성장이 진행됨에 따라서, 자아는, 귀중한 선택 능력과 함께, 떠오르는 모론시아_ 실재와 점차 동일시되며; 죽고 나서 맨션 세계에서 부활한 다음에, 인간의 인격은 모론시아 자아와 완전히 동일시된다. 이처럼 혼은, 인격의 정체성을 지닌, 미래에 모론시아 운송수단이 되는 새싹이다.
111:3.3 불멸의 혼은, 처음에 전적으로 모론시아 본성을 지니지만, 발전할 있는 능력을 소유하기 때문에, 신격 영들과 융합할 가치가 있는 참된 수준까지 반드시 올라가며, 대개는 피조물의 정신 속에 그런 독창적 현상을 일으켰던, 바로 만유의 아버지 영과 융합한다.
111:3.4 인간 정신과 신성한 조율사, 둘은 --조율사 전체적으로, 정신은 부분적으로--, 진화하는 혼의 실재와 특이한 본성을 의식한다. 혼은, 자체의 진화 성장에 비례해서, 정신과 조율사 양쪽을 점점 연합된 정체성으로서 의식하게 된다. 혼은, 인간 정신과 신성한 , 둘의 특성을 함께 띄지만, 정신 기능의 육성을 통하여, 통제와 신성한 지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데, 정신 기능이 의미하는 것들은 참된 가치와 일치되기를 추구한다.
111:3.5 혼이 진화하는 생애, 즉 필사자의 생애는, 보호관찰기간이라기보다는 교육기간이다. 최상의 가치가 살아남는 것을 믿는 신앙이 종교의 중심이며; 참된 종교 체험은, 최상의 가치와 시공우주 의미가 있는 것들이 합쳐져서 우주 실체로 실현되는 있다.
111:3.6 정신은, 실체와 의미를 안다. 그러나 {}-- 가치는-- 느껴진다. 느끼는 주체는, 아는 정신 실체화하는 관련된 영이 공동으로 창작한 것이다.
111:3.7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은 하나님_의식하는 가치_실현이며, 진리와 아름다움과 선함이 사람의 진화하는 모론시아 혼에 스며들어있는 , 결과로 생기는 그런 존재는 파괴될 없다. 사람의 진화하는 속에 생존할만한 영원한 가치가 없으면, 필사자의 실존은 의미가 없으며, 자체가 비극적 망상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말은 영원한 진리다: 너희가 시간세계에서 시작한 것은 --마무리할 가치가 있다면-- 너희는 영원 속에서 확실히 마무리할 것이다.
 
4. 내면생활
 
111:4.1 인식한다는 것은, 바깥 세계로부터 받아들인 감각적 느낌을, 개인의 기억 양식 속으로 맞춰 넣는 지적 과정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인식된 감각적 느낌과 그에 관련된 기억 양식이, 역동적 원칙들의 연락망 속으로 합쳐지고 조직됐음을 의미한다.
111:4.2 의미는 인식과 이해의 조합에서 파생된다. 의미는, 전적으로 감각적이거나 물질적인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와 가치는, 오직 인간 체험의 내면, 초물질 영역에서만 감지된다.
 
111:4.3 문명의 진보는 모두, 인류의 이런 내면세계에서 탄생된다. 참으로 독창적인 것은 내면생활뿐이다. 어떤 세대든지, 대다수의 젊은이가 자신의 흥미와 에너지를 감각 또는 바깥 세계에 대한 유물론적 추구에 쏟을 때에는, 문명이 도저히 진보할 없다.
111:4.4 내면세계와 바깥세계는 서로 다른 일련의 가치를 갖는다. 어떤 문명이든지, 젊은이 가운데 4분의 3 유물론적 직업에 종사하고, 바깥세계의 감각적 활동 추구에 몰두할 때에는 위태롭다. 윤리학, 사회학, 우생학, 철학, 순수 예술, 종교, 우주론 등에 젊은이가 흥미를 두지 않을 , 문명은 위험에 봉착한다.
111:4.5 너희는 오직 초의식 정신의 높은 수준에서, 인간이 체험하는 영역에 초의식 정신이 접속함에 따라서, 낫고 영구적인 문명을 건설하는 기여할, 효과적인 지배적 모형과 관련된 그런 높은 개념을 발견할 있다. 인격은 본질적으로 창의적이지만, 오직 개인의 내면생활에서만 그렇게 작용한다.
 
111:4.6 {} 결정체는 항상 6각형 형태를 갖지만 어떤 것도 서로 똑같지 않다. 자녀들이 어떤 유형을 이루기는 하지만, 둘이 똑같은 경우는 전혀 없으며, 쌍둥이인 경우라도 그렇다. 인격도 유형을 따르기는 하지만, 항상 독특하다.
 
111:4.7 행복과 즐거움은 내면생활에서 기원된다. 너희는 혼자 힘으로 진정한 즐거움을 체험할 없다. 외로운 삶은 행복에 치명적이다. 심지어 가족이나 나라들조차, 삶을 서로 나눌 삶을 즐길 것이다.
 
111:4.8 너희는 바깥세계를--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없다. 너의 방향 설정에 가장 필요한 것은 내면세계의 창조성인데, 거기서 너의 인격이, 전에 인과{因果} 법칙에 구속됐던 상태로부터 대체로 해방되기 때문이다. 인격에는 의지의 제한된 주권이 관련돼있다.
111:4.9 사람의 내면생활이 진실로 창조적이기 때문에, 창조성이 자발적이고 전혀 우연한 것이 되든지, 아니면 통제되고, 지시되고, 구조적인 것이 되든지, 선택의 책임이 사람에게 주어져있다. 창조적 상상력이 작용하는 무대가, 선입관, 미움, 두려움, 분노, 복수심, 편협함으로 이미 가득 있다면, 상상력이 어떻게 훌륭한 열매를 맺을 있겠는가?
111:4.10 생각은 바깥세계의 자극에서 발단이 될지 몰라도, 이상{理想} 오직 내면세계의 창조적 영역에서만 탄생된다. 많은 관념을 소유한 사람들이 오늘날 세계의 나라들을 지도하고 있으나, 그들의 이상{理想} 가난에_시달리고 있다. 바로 것이, 가난이나 이혼이나 전쟁 또는 종족 증오가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111:4.11 문제는 바로: 자유의지를 지닌 사람이 내면에 창조성의 능력을 타고난다면, 자유의지적 창조성이 자유의지적 파괴 능력의 가능성도 포함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창조성이 파괴성으로 바뀔 때에는, 너희가 죄와 -- 억압전쟁파괴-- 참상에 직면한다. 악은 창조성이 치우친 것이고, 그것은 분열을 획책하고 결국 파괴로 향한다. 모든 대립은 내면생활의 창조 기능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악하다--대립은 인격 안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내란{內亂}이다.
 
111:4.12 내면의 창조성은, 인격을 종합하고 개성을 통합함으로써, 성품을 고상하게 만들도록 기여한다. 영원히 참된 것은: 과거는 바꿀 없으며; 오직 내면의 자아의 현재 창조성이 수고함으로써 앞날을 바꿀 있다는 사실이다.
 
 
5. 선택을 성별함
 
111:5.1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내면의 의미와_가치가 있는 그런 피조물 생활을 가능하게 하신 바로 하나님-- 내면생활을 기꺼이 공유하겠다는 표현일 뿐이다. 나눔은 하나님답다--신성하다. 하나님 만유를 영원한 아들 무한한 공유하시며, 그분들은 우주들의 신성한 아들 들과 차례로 만유를 공유하신다.
111:5.2 하나님 본받는 것이 완전성에 이르는 열쇠이며;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 생존하는 비결이고, 생존하여 완성에 이르는 비결이다.
111:5.3 필사자는 하나님 안에서 살며, 그래서 하나님 필사자 속에서 살기로 작정하셨다. 사람이 자신을 그분께 맡기듯이, 그분도 --그리고 먼저-- 자신의 부분을 사람과 함께 있도록 맡기셨으며; 인간의 뜻에 맞춰서 사람 안에 살고, 사람에게 내주하기로 동의하셨다.
111:5.4 피조물 인격 피조물 의지를 아버지 뜻에 맡기기로 동의할 -- 선택할 --, 생애에서 평화를 얻고, 죽음에서 생존하고, 다음 생애에서 완전하게 되고, 영원 속에서 봉사하는 것이-- 모든 것이-- 이제 ( 속에서) 성취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이미, 자신의 단편이 피조물의 인격 의지에 지배되도록 하는 선택을 하셨다.
111:5.5 그런 피조물의 선택은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지의 성별{聖別}, 의지의 확대, 의지의 찬미, 의지의 완성이며; 그런 선택은 피조물의 의지를 현세 의미 수준으로부터, 피조물 아들의 인격이 아버지 인격과 교류하는 높은 신분으로 올려준다.
111:5.6 피조물 아들이 낙원에서 하나님 사실적 현존 앞에 서기 전에 비록 세대가 지나가야 할지라도, 아버지 뜻을 이처럼 선택하는 것은, 필사적 사람이 아버지 영적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선택은 피조물의 의지를 부인하는 --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뤄지이다”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피조물의 긍정적 단언-- 당신의 뜻이 이뤄짐이 뜻입니다”-- 있다. 그리고 만일 선택이 이뤄지고 나면, 하나님_선택한 아들은 , 내주하는 하나님 단편과 내면에서 합동( 융합) 것을 발견할 것이며, 한편 완전하게 되는 바로 아들은, 사람의 인격이 조물주 인격과 경건한 친교를 나누면서 최상의 인격 만족감을 발견할 것인데, 인격의 창조적 속성은, 스스로_작정한 공동 표현에서 영원히 결합했다--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 하나의 영원한 동반자적 관계가 탄생됐다.
 
 
6. 인간의 역설
 
111:6.1 필사적 사람이 세상에서 겪는 많은 고난은, 시공우주에 대하여 그가 갖는 이중적 관계에서 파생된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 속에 존재하며--, 그럼에도 자연을 초월할 있다. 사람은 유한하지만, 무한의 불꽃이 그에게 내주한다 이중적 상황이, 악의 잠재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많은 불확실성과 적지 않은 불안을 내포하는 허다한 사회적 도덕적 상황을 발생시킨다.
111:6.2 천성{天性} 정복하고 사람의 자아를 초월하는 필요한 용기는, 자만{自慢} 유혹에 굴복할 있는 그런 용기다. 자아를 초월할 있는 필사자는, 자신의 자아_의식을 신격화하려는 유혹에 굴복할지도 모른다. 필사자의 진퇴양난은, 그가 자연에 묶여있는 동시에, 독특한 자유-- 영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자유--소유한다는, 이중적 사실에 있다. 사람은, 물질 수준에서 자연에 예속된 자신을 발견하는 반면, 영적 수준에서는 자연에 대하여, 그리고 모든 일시적이고 유한한 것에 대하여 승리한다. 그런 역설{逆說}, 유혹이나 잠재적 이나 결정상의 실책에서 분리될 없으며, 자아가 교만해지고 오만해질  죄가 깊어질 것이다.
 
111:6.3 죄의 문제는 유한한 세계에서 스스로_실존하지 않는다. 유한이라는 사실은 악하거나 죄스런 것이 아니다. 유한한 세계는 무한한 창조주에게 지음 받았으며-- 그의 신성한 아들들의 작품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틀림없이 하다. 유한한 것을 오용하고 왜곡하고 남용함으로써 악과 죄가 발생한다.
 
111:6.4 영은 정신을 지배할 있으며; 마찬가지로, 정신은 에너지를 통제할 있다. 그러나 정신은, 물리적 영역에서 인과법칙이라는 엄밀한 수준에 내재된 변질 가능성을, 지성 자체가 솜씨 있게 처리함으로써만 에너지를 통제할 있다. 피조물의 정신은 선천적으로 에너지를 통제하지 않으며; 그것은 신격 특권이다. 그러나 피조물의 정신은, 물리적 우주의 에너지 비밀을 정복하는 한도 내에서만 에너지를 조종할 있다.
111:6.5 사람은, 물리적 실체를 변경하고 싶을 , 그것이 자신이든지 환경이든지, 물질을 통제하고 에너지를 관리하는 수단과 방법을 발견한 정도까지 성공한다. 도움 받지 않는 정신은, 불가피하게 연결돼있는 자신의 물리적 장치를 제외하고, 어떤 물질에든지 영향을 미칠 힘이 없다. 그러나 정신은, 몸의 짜임새를 총명하게 사용함으로써, 다른 구조들, 심지어 에너지 관계들 삶의 관계들까지 창조할 있는데, 정신은 이것들을 활용함으로써 우주에서 물리적 수준을 점점 통제하고, 심지어 지배할 수도 있다.
111:6.6 과학은 사실의 근원이며, 정신은 사실 없이 작용할 없다. 사실은 지혜를 건축하는 벽돌과 같은데, 인생 체험으로 인해 함께 접착된다. 사람은 사실 없이도 하나님 사랑을 발견할 있고, 사랑 없이도 하나님 법칙을 발견할 있으나, 신성한 법칙과 신성한 사랑을 발견하고, 자신의 진화하는 시공우주 철학 안에서 이것들을 체험으로 통합하기 전에는, 결코 1 근원 중심 포괄적인 본성의 무한한 균형숭고한 조화절묘한 충만함을 헤아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111:6.7 물질적 지식의 확장은, 생각의 의미와 이상의 가치를 훨씬 지적으로 헤아릴 있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의 내적 체험에서 진리를 발견할 있으나, 개인적으로 발견한 진리를 일상생활의 냉혹한 실질적 요구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지식이 필요하다.
 
111:6.8 일시적이고 유한한 모든 것을 완전히 초월하는 영적 능력을 소유하는 한편, 자연에 묶여서 탈출할 없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필사적 사람이 불확실성으로 인해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 어렵고 복잡한 문제 속에서, 오직 종교적 확신-- 살아있는 신앙--사람을 지탱해 있다.
111:6.9 사람의 인간 본성에 붙어서 괴롭히고 그의 영적 성실성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위험 중에서, 교만이 가장 위험하다. 용기는 씩씩함을 주지만, 자기중심은 허영심을 주며 자멸적이다. 합리적 자신감을 유감으로 여겨서는 된다. 사람이 자신을 초월할 있는 역량이야말로사람 동물계로부터 구별시킨다.
 
111:6.10 교만은, 개인, 단체, 인종, 또는 국가를 막론하고 어디서 발견되든지 기만적이고, 도취시키고, 죄를_잉태하도록 만든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先鋒}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틀림없다.
 
 
7. 조율사의 과제
 
111:7.1 안전함이 동반되는 불확실성-- 시간적 및 정신적 불확실성, 낙원으로 상승하면서 펼쳐지는 사건에 관한 불확실성; 영 속에서 그리고 영원 속에서 안전함, 만유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신성한 연민에 대한 피조물 아들의 무제한 신뢰에서 오는 안전함; 체험하지 못한 우주 시민으로서의 불확실성; 전적으로-강력하시고, 온전히-지혜로우시고, 만유를-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우주 맨션들에서 상승하는 아들로서 안전함-- 낙원으로 가는 모험의 본질이.
 
111:7.2 너의 혼을 향해서 조율사 충실하게 외치는 어렴풋한 반사음에 주의하라고, 너에게 충고해도 되겠는가? 내주하는 조율사, 시간세계에서 분투하는 너의 생애를 중지시킬 없고, 실질적으로 바꿀 수조차 없으며; 조율사, 네가 가혹한 세상에서 보내는 인생의 고난을 줄여줄 수도 없다. 신성한 내주자는, 네가 행성에 살면서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에, 오직 인내심으로 참아낼 뿐이지만; 네가 마음만 먹으면, --네가 일하고 고민하는 동안, 싸우면서 수고하는 동안-- 용맹스런 조율사 너와 함께 그리고 너를 위하여 싸우도록 허용할 있다. 네가 물질계의 평범한 문제들과 어렵고 힘든 모든 씨름을 하는 실제 동기와, 최종 목표와, 영원한 목적에 대한 묘사를 조율사 끊임없이 발표하도록 허용하기만 한다면, 너는 무척 위로받고 영감 받을 있다.
111:7.3 조율사 모든 불굴의 물질적 노력에 대한 영적 대응물을 너에게 보여주는 과제를 수행하는데, 너는 조율사 돕지 않는가? 네가 피조 실존으로서 일시적 어려움과 씨름하는 동안, 조율사 시공우주의 능력을 지닌 영적 진리로 너를 강화하도록, 너는 허용하지 않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네가 당혹스럽게 바라보면서도, 우주 생애의 영원한 전망에 대한 확실한 통찰력으로 하늘의 협조자가 너를 응원하도록, 너는 격려하지 못하는가? 인생 여정을 에워싼 불확실성의 미로에서 네가 허우적거리면서 시간의 불리한 조건 한복판에서 수고하는 동안, 너는 우주 관점으로 깨우침과 영감을 받으려하지 않는가? 너의 발이 땅에서 수고하는 물질 통로를 걸어가야 하더라도, 조율사 너의 생각을 영성화하도록, 너는 허용하지 않는가?
111:7.4 유란시아 상류 인간 종족들은 복잡하게 섞여있으며; 여러 인종과 서로 다른 기원을 갖는 혈통들의 혼합이다. 이런 복합 본성은, 관찰자들이 일생동안 효과적으로 일하는 엄청난 어려움을 주며, 죽은 뒤에 조율사 안내 스라빔에게 문제를 확실히 더해준다. 나는 살빙톤 갔다가, 운명 안내자가 필사 상대자를 섬기는 동안 겪은 어려움에 대하여, 정상을 참작하라는 공식 성명서를 제시하는 것을 들은 얼마 됐다. 스라빔은 이렇게 말했다:
 
111:7.5 “내가 겪은 어려움 가운데 대부분은, 나의 상대자가 가지 본성 사이에서 끊임없 갈등하는 것 때문이었는데, 갈등은: 뜻을 이루려는 충동이 동물적 나태함으로 방해받음; 우수한 민족들의 이상{理想} 열등한 인종의 본능과 뒤섞임; 탁월한 정신의 고상한 목적이 원시 유전형질의 충동으로 상쇄됨; 관찰자 멀리_내다보는 장거리 전망이 시간세계의 근시안적 피조물 속성으로 인해 훼방 받음; 상승하는 존재의 점진적 계획이 물질 본성의 욕구와 갈망 때문에 변경됨; 우주 지성의 섬광이, 진화하는 인종의 화학_에너지 명령으로 삭제됨; 천사들의 권고가 동물적 감정으로 인해 반대에 부딪침; 단련된 지능이 본능적 성향 때문에 소멸됨; 개인 체험이 인종의 누적된 경향으로 인해 방해받음; 최선의 목적이 최악의 경향으로 빛을 잃음; 천재성의 약동이, 평범함을 중히 여김으로써 상쇄됨; 선한 것들의 진보가 부정한 것의 타성으로 인해 지연됨; 뛰어난 자의 예술이 악의 현존으로 인해 손상됨; 건강의 회복력이 질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중화됨; 신앙의 우물이 두려움이라는 독약으로 오염됨; 기쁨의 샘이 슬픔의 강물로 인해 맛으로 변함; 예견된 기쁨이 비통한 현실로 인해 환멸을 느낌; 삶의 즐거움이 죽음의 슬픔에 위협받음, 등이었다. 그런 행성에서 그런 인생이라니! 그럼에도 혼은, 사고 조율사 _현존하는 재촉과 도움 때문에, 상당한 정도의 행복과 성공을 성취했고, 지금도 모론시아 법정을 향하여 상승하고 있다.
 
 
111:7.6 [오르본톤 단독 사자 제시했음]



제110편 조율사와 개별 필사자의 관계 ∥ 제112편 인격의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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