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21, 2011

"받고자 하는 대로"

"받고자 하는 대로"

세상의 상식과 법칙은: "내 것을 주면 손해이고 남의 것을 받으면 이익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선포하신 황금률은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태복음 7:12)

어느 쪽이 맞는 말일까?

사람들 중에는 "받기만 좋아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가깝게 지내기 전에는 그에게 그러한 성향이 있든지 없든지 별로 상관이 없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인하여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사정일 때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처음 한 두 번은 "그저 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가 고맙게 받을 때 상당한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받기만 하고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게 되면 섭섭한 마음 또는 나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마음이 슬그머니 생기기 시작한다. 농담 비슷하게 구박도 해보지만 상대방은 전혀 눈치 채지 않는 듯이 보인다. 어쩌면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든다. 언제부턴가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상대방이 "얌체족"으로 분류되기 시작한다. 주고 싶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다 사라진다. 차라리 쓰레기통에 버릴지언정, "얌체족"인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누가 손해를 보게 된 것인가?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적어도 "받은 만큼 돌려준다." 혹시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고마운 생각에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으로 돌려준다." 이것은 돌려받은 그 사람에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몇 십배 또는 몇 백배의 큰 감동을 주게 된다. 아마도 돌려받은 사람은 그날부터 다시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큰 감동을 선사한 저분에게 무엇으로 대접하여 기쁨을 줄 수 있을까?" 이제는 자기 생각에 따라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는 무엇이 부족한지를 열심히 살펴봄으로써 자신이 받은 감동에 보답하려고 할 것이다. 당연히 처음 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한 것으로 서로 나누는 관계가 되어 갈 것이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누가 이익을 보게 된 것인가?




내가 필요로 하는 또는 원하는 그것을 얻으려고만 생각하면 결국에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내게 있는 것조차 빼앗기게 될 것이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것을 채워주려고 노력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필요로 하거나 원하던 그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가르치신 교훈이요 또한 세상에서도 적용되는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예수를 믿고 따라간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여전히 자신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받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께 날마다 요구만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것도 잠시 뿐,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더 뻔뻔해지는 "얌체족들"이다. 조금이라도 응답이 늦어지거나 자기 욕심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얼마나 불평불만이 많은지... "하나님이 도대체 살아계시는 것인지, 능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으시는지, 왜 나보다 저 사람들이 더 많이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둥 하면서 원망하기까지 한다. 혹은 받은 것을 즐기는 데 빠져서 아예 세상으로 돌아가 버리고 하나님은 헌신짝처럼 내다버리는 못된 인간들도 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자세인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이 진리라면, 인간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만 한다. 바로 앞에 있는 7절부터 11절 말씀이 이것을 뒷받침 한다: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절은 결론적인 말씀이고, 그 말씀이 적용되는 구체적인 정황들을 보면 바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예수께서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12절 말씀에서 "남"이라는 단어 대신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넣었을 때에도 똑같이 진리의 말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하나님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사람들로부터 대접 받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대접 받는 것을 훨씬 더 귀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긍휼과 자비 그리고 용서와 복 주심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긍휼과 자비 그리고 용서와 축복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이것들을 드릴 수 있단 말인가?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소자 즉 약한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께 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 한 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한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람들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시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일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내가 먼저 말씀에 충성해야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기 원한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자 하는 결단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남편의 권위로 말미암는 혜택을 원하는가? 그러면 남편의 권위가 세워지도록 '자기희생'의 투자를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아내의 내조와 사랑을 받고 싶은가? 그러면 아내가 내조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먼저 그녀의 마음을 보살피는 정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부모의 권위와 사랑으로 말미암는 혜택을 받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고 사랑에 감사하는 자녀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자녀로 인하여 기쁨과 보람을 누리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육하는 아픔을 맛보아야만 할 것이다. 국가의 강력한 보호와 복지 혜택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먼저 국가의 능력에 자신의 힘을 보태야만 할 것이다. 담임목사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듣고 바른 신앙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훈련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얌체족들"은 받은 것에 보답하는 것도 싫어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기가 받은 만큼" 돌려준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라면 "자기가 받은 것보다 2~3배로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돌려줌으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신가? 100배로 돌려주신다. 아무리 적어도 60배 혹은 30배로 돌려주신다. "영원한 생명/하나님의 나라"라는 엄청난 선물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고자 하는가? 바로 그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려보라. 그리고 무엇으로 돌려주시는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그리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보라.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실 것이다.(K)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