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우연'
세상에는 사람에게 완전하게 이해되지는 않은 많은 현상들 또는 사건들이 있다. 과학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인간 나름대로의 해석 노력의 결과이다. 원시시대에는 신비한 모든 것들을 미신적인 근원들 탓으로 돌렸지만, 지성의 발달과 함께 열매로 나타난 과학의 힘에 의하여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신비한 것"이 아닌, 원인과 과정이 밝혀진 "사실"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들 중 하나에 '진화론'이라는 것이 있다. 신비한 '생명의 근원'을 밝혀보려는 인간의 노력의 결과이다. 과학자들은 지층과 화석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나름대로 자료들을 많이 수집하고 그를 근거로 하여 모든 "생명체는 진화된 결과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문제는, '진화론'이 근본을 두고 있는 그 자료들이 '진리'가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 하나가 '우연'이라는 단어이다. '진화론'은 이 '우연'이라는 말 없이는 결단코 성립될 수 없다. '우연'이란, 국어사전에서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라고 정의하는 것처럼,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우연'이라는 단어를 "인과 관계를 밝히려는 어떤 논거"에 적용하려 한다면, 그것보다 더 모순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충분한 자료나 확실한 논리를 바탕으로 설명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에 대하여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생명이 단백질에 어떤 강력한 전기 충격이 주어지면서 "우연히" 어떤 생명이 생기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원초동물에 해당하는 아메바의 모양이나 생명 유지 방식이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진화의 단계들을 설명하면서 중간의 잃어버린 고리들(엄청난 단계를 뛰어넘는)에 대하여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도 "우연히" 또는 "돌연변이"에 의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을 설명하는 "우연"이라는 단어를 근거 또는 자료들보다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이 세상 만물이 그 "우연히"라는 것 때문에 이렇게 존재하게 되었단 말인가? 그러면 이 우주는 왜 "우연히" 서로 부딪혀 산산조각나지 않고 그토록 조화 있게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그러면 그 "우연히"라는 것이 바로 '전능한 어떤 신'이 아닌가?
또 어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모순을 "적응"이라는 말로 설명하였다. 환경에 대해 적응한 생명체들만이 살아남아서 오늘날 지구가 이러한 모습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적응의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과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말 그대로 인정해보자. 그러면 그 "적응"이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적응"하기 전에 이미 그 생명체 속에 "적응할 수 있는 어떤 힘 또는 메카니즘"이 없다면, 그 생명체는 절대로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켜서 그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없다. 해바라기는 왜 해를 따라 그 얼굴을 돌리는가? 다른 꽃들과는 달리, 그 속에 이미 그러한 메카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보호색을 바꾸는 그 동물들은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는가? 그 동물들 특유의 메카니즘이 이미 그 속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힘" 또는 "메카니즘"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분명한 의도나 목적에 의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어떤 능력"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력"이다.
인간의 눈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깊이 따지고 보면 그 속에는 이 "생명력"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콩 심은 데에서는 왜 팥이 나오지 않고 반드시 콩이 나오는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수많은 콩들이 심어질 때 우연히 콩으로부터 팥이 나와야만 되지 않겠는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우연"이라는 말 뒷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창조주의 어떤 섭리"가 있는 것이다. 분명한 의도와 목적에 따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어떤 생명력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해석할 수 없으므로 그저 "우연"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회칠을 하는 것뿐이다. 논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우연"이라는 말은 원시적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사람을 속이는 단어이다. 하나님 앞에 "우연"이라는 말은 없다. 그 하나님을 믿고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 영원토록 진보해 갈 부활의 신앙인들,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진리 탐구자들에게도 "우연"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김)
세상에는 사람에게 완전하게 이해되지는 않은 많은 현상들 또는 사건들이 있다. 과학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인간 나름대로의 해석 노력의 결과이다. 원시시대에는 신비한 모든 것들을 미신적인 근원들 탓으로 돌렸지만, 지성의 발달과 함께 열매로 나타난 과학의 힘에 의하여 많은 것들이 더 이상 "신비한 것"이 아닌, 원인과 과정이 밝혀진 "사실"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노력들 중 하나에 '진화론'이라는 것이 있다. 신비한 '생명의 근원'을 밝혀보려는 인간의 노력의 결과이다. 과학자들은 지층과 화석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나름대로 자료들을 많이 수집하고 그를 근거로 하여 모든 "생명체는 진화된 결과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문제는, '진화론'이 근본을 두고 있는 그 자료들이 '진리'가 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 하나가 '우연'이라는 단어이다. '진화론'은 이 '우연'이라는 말 없이는 결단코 성립될 수 없다. '우연'이란, 국어사전에서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라고 정의하는 것처럼,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우연'이라는 단어를 "인과 관계를 밝히려는 어떤 논거"에 적용하려 한다면, 그것보다 더 모순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충분한 자료나 확실한 논리를 바탕으로 설명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에 대하여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최초의 생명이 단백질에 어떤 강력한 전기 충격이 주어지면서 "우연히" 어떤 생명이 생기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원초동물에 해당하는 아메바의 모양이나 생명 유지 방식이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진화의 단계들을 설명하면서 중간의 잃어버린 고리들(엄청난 단계를 뛰어넘는)에 대하여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도 "우연히" 또는 "돌연변이"에 의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을 설명하는 "우연"이라는 단어를 근거 또는 자료들보다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이 세상 만물이 그 "우연히"라는 것 때문에 이렇게 존재하게 되었단 말인가? 그러면 이 우주는 왜 "우연히" 서로 부딪혀 산산조각나지 않고 그토록 조화 있게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그러면 그 "우연히"라는 것이 바로 '전능한 어떤 신'이 아닌가?
또 어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모순을 "적응"이라는 말로 설명하였다. 환경에 대해 적응한 생명체들만이 살아남아서 오늘날 지구가 이러한 모습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적응의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과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말 그대로 인정해보자. 그러면 그 "적응"이라는 것은 과연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적응"하기 전에 이미 그 생명체 속에 "적응할 수 있는 어떤 힘 또는 메카니즘"이 없다면, 그 생명체는 절대로 스스로 자신을 변화시켜서 그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없다. 해바라기는 왜 해를 따라 그 얼굴을 돌리는가? 다른 꽃들과는 달리, 그 속에 이미 그러한 메카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보호색을 바꾸는 그 동물들은 어떻게 그러한 능력을 갖고 있는가? 그 동물들 특유의 메카니즘이 이미 그 속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 "힘" 또는 "메카니즘"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분명한 의도나 목적에 의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진 어떤 능력"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력"이다.
인간의 눈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깊이 따지고 보면 그 속에는 이 "생명력"이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콩 심은 데에서는 왜 팥이 나오지 않고 반드시 콩이 나오는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수많은 콩들이 심어질 때 우연히 콩으로부터 팥이 나와야만 되지 않겠는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우연"이라는 말 뒷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창조주의 어떤 섭리"가 있는 것이다. 분명한 의도와 목적에 따라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어떤 생명력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해석할 수 없으므로 그저 "우연"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회칠을 하는 것뿐이다. 논리를 설명함에 있어서 "우연"이라는 말은 원시적 정신을 가진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사람을 속이는 단어이다. 하나님 앞에 "우연"이라는 말은 없다. 그 하나님을 믿고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 영원토록 진보해 갈 부활의 신앙인들,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진리 탐구자들에게도 "우연"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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