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17, 2011

서양 윤리사상의 흐름

▶서양의 윤리 사상




01. 서양 윤리 사상의 연원




02. 주의주의(住意主義)




03.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德論)




04. 헤레니즘(Hellenism)의 윤리 사상




05. 스토아 학파의 사상




06. 자연법(自然法)




07. 범신론(汎神論)




08. 에피쿠로스의 윤리학(Detet F. Druker)




09. 경험론




10. 근세 경험 중심의 윤리 사상




11. 공리주의 윤리설




12. 실용주의(實用主義) 윤리설




13. 실천 이성




14. 헤겔의 윤리설




15. 현대 윤리 사상




16. 슈바이쳐의 생명외경(生命畏敬) 사상




17. 목적론적 윤리설




18. 의무론적 윤리설




01. 서양 윤리 사상의 연원




<소피스트(Sophist)의 사상>

기원전 5세기 후반 도시 국가의 경제적 발전으로 민주정이 완성되어 시민의 정치 활동이 활발해지자 지혜(Sophia)가 있는 사람, 즉 현자, 지자라는 사람들은 궤변을 구사하여 사람들에게 지식, 처세술, 정치적 기술 등을 가르쳐 주고 보수를 받아 생활하는 소피스트(Sophist)들도 등장하였다. 이 소피스트들은 이 세상에는 보편 타당한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모든 지식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일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주관주의, 상대주의 윤리관에 따르면, 도덕과 법률이란 인간 생활의 편의상 생긴 것이기 때문에,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 내용과 기준이 다르지 않을 수 없으며,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하여 주관적·상대적 진리관을 내세운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 C. 481~411)가 그 대표자이다. 소피스트는 이제까지의 자연계에 대한 관심을 인간계에 돌려, 인간의 문제 특히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규범의 문제를 중시하여 개인을 절대시하는 인간 사상의 선구가 되기도 하였으나, 주관적으로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절대적 권리나, 절대적 윤리를 부정하여 윤리적·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기도 하였다.




<소크라테스(Socrates)의 사상>

소크라테스(Socrates ; B. C. 407?~399)는 소피스트들의 주관적·상대적 가치관에 반대하고 인간 중심주의 철학을 깊이 탐구하여 객관적·보편적 가치관에 의한 윤리 사상을 확립하려 하였다. 즉, 그는 인간성의 탐구를 철학의 중심 과제로 삼았으며, 인간의 본질을 이성적인 측면에서 파악했다.

그가 외친 “너 자신을 알라”란 말은 주관적·상대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절대적·보편적· 객관적 진리에 대한 자각을 강조하고 그 자각을 바탕으로 하여 참다운 지식을 획득할 수 있고, 올바르게 행위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위의 말은 자신의 본질은 정신이고, 정신의 본질은 이성을 자각할 것을 일깨운 말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진리에 대한 자각을 일깨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직접 전하지 않고 대화나 문답을 통해서 스스로의 무지와 편견을 자각하게 하는 귀납적 방법과 상대방의 주장을 일단 승인해 놓고 자가 당착에 빠지게 하여 무지를 자각시키는 반어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부덕(不德)은 무지에서 생김으로 참된 지식이 있는 곳에 덕(德)이 있다”고 보아 지덕합일설(知德合一說)을 주장하였다. 또 지식과 실천을 동일시하여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장하였고, 덕이 이루어지면 행복도 이루어진다고 하여 지덕일치(知德一致),덕복일치(덕복일치) (德福一致),지행일치(知行一致)를 주장하였다. 또 그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여 시민의 준법 정신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청년들을 깨우쳐 주기 위해 광장에 나가 청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마음속의 신인 ‘다이몬(daimon)’의 소리를 듣고, 양심에 따른 행동을 하라고 외치면서 다녔다. 그 결과 그는, 폴리스의 신을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기소되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 때, 친구인 크리톤(Kriton)과 많은 제자들이 탈옥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독배를 들고 숨을 거두었다. 아무리 악법이라도 그것은 일단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의 판결을 준수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국법의 준엄성을 지키고, 정의를 몸소 실천한 것이며, 평소 주장했던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스스로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악법은 법으로서의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폐지되든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플라톤(Platon)의 사상>

플라톤(Platon ; B. C. 427?~347)은 소크라테스 사상의 전통적 후계자로 모든 변화를 초월 하는 불멸, 불변의 본질 세계를 이데아(Idea)의 세계라고 부르고, 이를 중심으로 끈질기게 이상을 추구하면서, 선의 이데아가 최고의 이데아라고 하는 이상주의의 개조였다.

이데아론에는 첫째, 이원론, 둘째, 선의 이데아, 셋째, 에로스(Eros)가 있다. 즉 그는 생성· 감각·경험의 세계를 현상계라 부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영원불변, 완전무결한 참다운 본질의 세계를 이데아라 하여 이원론을 주장하고 이데아가 사물의 본질이며, 영구불변하는 진리이고, 참된 실재라고 보았다. 또 사물과 현상만큼이나 뒤에는 그 본질이 되는 이데아가 있기 마련인데 이데아의 수는 현실 사물이나 현상만이 존재하고 이 가운데서도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이야말로 우주 일체를 통할하고 지배하는 궁극적인 본질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상을 최고의 이데아인 선의 이데아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 보고, 그를 동경하고 그리워하며 그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려 하는 이러한 충동 또는 정열을 에로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즉 플라톤에 있어서 진리 파악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에로스인 것이다.

또 그는 네 가지 주요 덕목으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로 보았다. 그런데 이 정의란,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신체의 모든 부분이 제각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여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구실을 다하듯이, 모든 국민이 제각기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함으로써 국가 전체로서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사상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사상>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주의 철학을 발전시켜 그리스 철학을 완성시킨 사람으로 현실주의 입장에서 정의와 행복에 관하여 체계적인 사고를 전개하였다. 그는 플라톤의 이성에 중시하는 유심설(唯心說)과 데모크리토스(Demokritos)의 감정을 중시하는 유물설(唯物說)의 2대 경향을 종합화하고 체계화한 학자이다.

플라톤이 이상주의 철학자였음에 반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 철학자였다. 그는 일상 생활에서 행위의 목적이 되는 것을 선이라고 보고, 다른 목적의 수단이 되지 않고 그 자체가 다른 목적의 궁극 목적이 되는 것을 최고선이라고 보았으며, 행복이야말로 목적 중의 목적이요, 선(善) 중의 선으로서 최고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행복은 순수한 이성의 활동을 덕(德)이라고 할 때, 덕이 쌓여서 인생의 최고 목표인 최고의 선이 되는 바, 즉 행복 = 최고선이 된다. 그는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였는데, 플라톤이 추상적인 수학을 중시하였는데 비하여 그는 구체적인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플라톤이 참다운 실제는 이데아 세계이고 현실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적 일원론의 입장에서 이데아를 개체에 내재하는 것으로 보아 개체주의, 내재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서구에서 처음으로 실천 도덕의 중심이 되는 기준으로서의 중용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시켜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마땅히 취할 바 도리라고 판단된 이성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좇는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중용 →순수한 이성적 활동 →덕의 성립 →최대의 정신적 만족 → 행복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예를 들면 욕망에 있어서의 과욕(過慾)과 무욕(無慾)의 중간인 절제를 취하라는 중용을 말한다.

그의 정의론은 전체적 정의와 부분적 정의로 대변되는데, 전자(前者)는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옳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고 그것만을 바라게 하며, 또 모든 사람에게 정당한 자기의 몫이 제대로 주어질 수 있는 상태를 말하고, 후자(後者)는 배분적 정의와 평균적 정의 및 교환적인 정의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그의 정체 6분설은 올바른 정치 형태로는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가 있고, 타락된 정치 형태로는 전제, 과두, 중우제가 있다고 분류하였다.

또 그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고, 따라서 질서 있는 공동생활 속에서 행복하고 유덕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02. 주의주의(住意主義)




주지주의(主知主義)에 대립된 용어로, 의지를 우주·존재·인식·행위의 근본 원리로 하고, 이성(理性)보다 상위에 놓는 형이상학적·윤리적·신학적 입장이다. 비합리적·합리적 견해로 나눌 수 있다.

비합리적 주의주의(非合理的 主意主義)는 쇼펜하워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에 의하면 만물은 동일의지(同一意志)의 발현이며, 이와 같은 존재 근저(根抵)로서 의지는 비이성적인 맹목적 생활 의지이며, 의지에는 자유란 없다고 한다. 하르트먼은 무의식 의지를 심리 현상 및 자연의 원동력이라 하였다. 니체의 권력 의지는 오히려 초이성적이다.

합리적 주의주의(合理的 主意主義)는 피히테가 대표적이다. 그에 의하면 의지는 이성과 결합하여 또 이성에 내재(內在)하여 목적을 설정하며 이성질서(理性秩序)의 실현에 노력한다고 한다. 또한 칸트는 실천 이성의 우위를 전개하여 도덕적 의지를 세계의 근본 원리라 본다.








03.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德論)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을 얻는 것이고, 행복을 얻는 길은 이성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조화적으로 발휘함에 있다. 이성적 활동에 따라 생기는 습관을 덕(德)이라 한다. 이성의 작용에는 두 가지 활동이 있다. 하나는 이론적(진리의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적(욕망의 억제)이다. 이에 대응하는 덕(德)은 지덕(知德)과 행덕(行德)이다. 지덕(知德)은 이성의 적정한 활동에 따른 덕이며, 행덕(行德)은 이성이 정욕(情欲)을 억제하는 곳에서 생기는 덕이다. 정욕은 극단으로 치닫기 쉬운데, 이성이 적절하게 정욕을 지도할 때에 생기는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중용(中庸)의 습관을 행덕(行德)이라 한다.

덕(德)은 중용(中庸)이 어느 정도 실현되는가에 따라 나타난다. 예컨대 용기의 덕은 비겁과 만용의 중용(中庸)이고, 관후는 인색과 낭비와의 중용이며, 유정(有情)은 무정(無情) 아첨과의 중용이며, 정의(正義)의 덕은 타인에 대한 방자한 무시와 소심한 굴복과의 중용, 온순의 덕은 냉담과 화급(火急)과의 중용의 덕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용의 덕은 성취하기가 쉽지 않다. 실로 그것은 강력한 습관을 형성하게 될 만큼 장구한 훈련과 실천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어떤 특수한 경우에 뜻하지 않는 우연이나 일시적 충동으로 중용에 적중한 행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세련되고 몸에 젖은 행동의 습관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항구적으로 믿음성 있게 중용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피리를 불어 보아야만 피리를 잘 불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이, 실제로 용감하게 행동해 봄으로써 용감해질 수 있다. 시종일관 유덕한 행동을 거듭함으로써 덕의 습관을 얻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윤리학’에서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해서 봄이 되는 것이 아니며, 하루의 실천으로써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04. 헤레니즘(Hellenism)의 윤리 사상




헬레니즘 시대의 사상은 戰亂과 불안정한 사회가 계속되어 안심입명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 개인주의적이고 처세주의적인 윤리 사상이 특색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의 대표적인 학파로는 쾌락주의를 주장한 에피쿠로스학파와 금욕주의 및 세계 시민주의를 주장한 스토아학파를 들 수 있다.










05. 스토아 학파의 사상




스토아 학파의 사상가들은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인 통일 원리를 로고스(Logos)라고 했으며, 이를 우주 이성, 세계 이성이라고 불렀다. 스토아시즘의 주요 내용은, 우주의 일부로서의 인간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로고스의 분신인 이성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우주 자연의 이법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이성과 우주의 통일 원리인 로고스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보았다.

스토아시즘은 이성을 극히 존중하였고, 이성에 좇아서 생활할 것을 강조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을 지니고 있는 한 평등하고, 전세계 인류는 형제이며 동포이자 같은 시민이라고 주장하였다. 스토아 학파는 우주의 자연은 욕심이 없고, 그 지배 원리인 로고스의 분신을 본성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은 마땅히 욕구나 유혹에 동요되어서는 안 되며, 이성에서 비롯되는 양심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철저한 극기와 금욕 및 준엄한 도덕주의를 강조하였다. 스토아시즘은,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편타당성을 갖는 자연 이법에 절대로 순응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근대 자연법사상의 원천이 되었으며, 로마의 만민법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또 외부의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통에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초연한 무감동의 경지, 즉 이성 적인 극기와 금욕에 의하여 감정과 욕구를 억누를 부동심의 상태를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규정하여, 그것이 현자의 생활 이상이요. 인간의 최고선이며 덕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이 스토아시즘의 창시자이자 철저한 금욕주의자는 제논(Zenon ; B. C. 376~264)이었다.

아우렐리우스는 금욕주의의 윤리설을 발전시켰고, 그 후 로마의 만민법과, 중세 및 근대의 자연법사상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전체적으로는 범신론적 윤리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06. 자연법(自然法)




단순히 관습, 입법, 기타의 제도에 의하지 않고 사회 또는 인간의 본성에 근거한 법칙 또는 규범을 말한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진정한 법은 자연과 조화된 바른 이성(理性)이며, 보편적·영구적이라 주장하였고, 그것은 로마의 법학과 결합하여 사회적 기초를 얻어 법의 보편적 체계를 쌓는 기준이 되었다. 중세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 속에 중세 자연법사상의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그는 신의 세계 지배의 하부로서 도덕의 기초 신분제의 변증(辨證), 그리고 제도의 기준을 자연법에서 구한 것이다.

그 후 종교 개혁에 의한 기독교 세계의 분열은 자연법의 세속화를 결정적으로 하였고, 법의 보편성 회복은 ‘인간의 본성’에서 출발하여 법의 근원을 인간 이성과 일치하는 사회 질서에서 구하는 그로티우스에 의하여 시도되었다. 이리하여 독일에서 전개된 자연 법학은 사회 관계를 법적으로 정서(整序)하고, 신권설에 대항하여 절대 왕정의 합리적 법률 제도를 정립하였다.

한편, 절대 왕정에 대항하는 개인주의의 입장에서는 자연법의 중점은 무엇보다도 평등한 개인의 행복 추구, 자유의 자연권에 놓여 있다. 합의에 의한 구속을 자연법으로 정립하는 사회 계약 설은 17, 18세기에 있어 시민 혁명의 이론이 되었다.








07. 범신론(汎神論)




유신론처럼 신과 자연과의 인간 관계를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 보지 않고 자연의 모든 것을 神이라 하고, 그 속에 대립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말한다.

종교적 속성이 갖고 있는 신비적 경향을 이론화하려 할 때에는 범신론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자연이나 세계를 보편적 신이라는 원리로서 통일하려는 그리스 사상이나 불교와 같은 형태와는 달리 모든 것에 통하는 것이 신이라 하고, 자아(自我)와 신(神)의 일치를 주장하는 베다(Veda)나 브라만(Brahman)의 종교와 같은 두 형태가 있다. 범신론은 한쪽에서는 일체의 모든 것에 신성(神性)이 있어 구별이 없다는 낙관적 형태를 취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체의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를 좋다고 하여 도덕적인 노력은 필요치 않다고 하는 비관적인 형태를 취한다.

모든 것이 신이라면 많음과의 차별이 부정되어 무세계론이 되며, 선악진위(善惡眞僞)의 구별이 없어지고 가치의 실현을 지향하는 인격의 자유로운 활동도 무의미하게 되나, 주로 인간의 내면적·신비적 생활을 강조하여 스피노자, 괴테, 셸링 등의 관념론적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08. 에피쿠로스의 윤리학(Detet F. Druker)




에피쿠로스는 인류를 죽음의 공포와 신이나 초자연력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하였다. 재악(災惡)은 그것이 감지되는 경우에만 재악(災惡)이 되나, 죽음은 그 감지하는 힘을 빼앗는 것이므로 하등 나쁜 것이 아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있어서 무관계(無關係)이다. 왜냐 하면, 우리들이 현재할 때에 죽음은 현재하지 않으며, 죽음이 현재할 때에 우리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적인 생활은 죽음이나 신의 공포와 마찬가지로 행복과 생활을 교란하는 것이므로 이에 관여하지 말도록 하라고 주장한다.

쾌락은 유일 최고 선이며 인간 생활의 목적이나 그 쾌락이란 이른바 ‘방탕자의 쾌락’이아니라 차라리 고통과 혼란으로부터 소극적 해방, 말하자면 ‘번뇌가 없는 평정(平靜, ataraxia)’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체의 건강과 마음의 평정이며, 다른 사물에 의존치 않는 자유로운 정신 상태이다.

키레네학파도 쾌락을 행복 유덕한 생활의 최고 원리로 삼았지만 에피쿠로스는 특히 정신적인‘조용한 쾌락’을 가치 있는 아타락시아로 삼았다








09. 경험론




인식론에 있어서 지식의 기원을 경험에 두는 학설. 역사적으로는 고대의 소피스트, 키레네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가 있으며 합리론에 대립할 수 있는 확고한 지반은 18세기에 이르러서 확립되었다. 17세기 합리론의 이성주의(理性主義) 철학이 종교적, 절대적 이성의 입장인데 반하여 18세기 경험론 철학은 인간적, 상대적 입장의 이성을 중시했다. 이 경향의 선구를 이룬 것은 17세기 후반의 로크이다. 그의 사상은 영국의 버클리와 흄에 의하여 발전되어 영국의 경험론을 형성하고, 그 영향을 받은 프랑스에서는 콩디약, 달랑베르의 실증론, 돌바크의 유물론이 생겼다. 현대 미국에서 제임스를 대표로 하는 프래그머티즘도 경험론에서 파생된 유파이다.








10. 근세 경험 중심의 윤리 사상




<베이컨의 우상론>

베이컨은 《Novum Organum》(1620) 낡은 우상(idola)의 파괴 및 낡은 스콜라식 삼단 논법을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4개의 우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종래의 철학은 이들 우상 밑에서 형식적인 삼단 논법을 구사하여 추상적 思辨에 탐닉하고 있다 하여 그가 새로이 제창한 것은 ‘실험’에 의한 개개의 사례의 비교 및 고찰에서 자연의 일반 법칙을 찾아내는 방법, 즉 과학적 귀납법을 제시했다. 그가 말한 네 가지 우상은 다음과 같다.

종족의 우상: 인류의 모든 종족에게 고유한 것으로 사람을 오류로 이끄는 위험한 충동을 통틀어 일컫는다.

동굴의 우상: 어느 정도 각 개인의 특수성에서 오는 오류로의 특별한 경험을 말한다.

시장의 우상: 우리가 언어에 의하여 기만 당하기 쉬운 경향을 말한다.

극장의 우상: 사람의 판단을 잘못되게 하고 사람을 편파적으로 만들게 하는 역사적 전통에 대한 충성을 말한다.




<홉스의 윤리설>

영국 경험론 철학자로서 그 발전상에서 보면 베이컨의 신비적·직관적 자연관을 홉스의 기하학적 논리가 초월하고, 그것이 다시 보일의 실험적 자연 과학에 의해 극복된다고 볼 수 있다.

정치 사상으로는 주권의 절대성의 기초를 시민의 자기 보존권(자연권)에 둔 점에서, 절대주의내의 부르주아적 발전이 그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부르주아 혁명 직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평등한 개인의 불가침의 자기 보존권에서 출발하면서, 인간의 자연 상태가 만인 대 만인의 생존 투쟁이라 하여 여기에서 벗어나 자연권을 합리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 계약에 의한 절대 주권의 설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주권은 시민 상호의 계약에 의하여 성립함으로 시민의 자기 보존권을 침범할 수 없으며, 시민을 보호할 능력이 없어지면 권위를 잃게 되는 것 이라 하였다.




<흄의 승인설(承認說)>

도덕 문제에 있어서 흄은 감정에 기초를 두는 주정주의자이다. 도덕적 판단은 결국 시인과 비난의 감정에 기초를 둔다. 도덕은 이성의 대상이 아니다. 미덕이나 악덕은 감정으로 느끼는 것으로 이 감정은 극히 온화한 것이다. 이 감정은 특수한 쾌, 불쾌의 감정이다. 이것은 찬양이 나 비난의 정념을 만들어 내는 도덕적 감각이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 나를 기쁘게 한다고 해도 그 대상이 그대로 미덕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사심 없이 그 성격을 볼 때, 즉 공평무사한 것이 될 때 미덕이 된다. 관찰자의 공평무사한 반응 감정이 미덕 혹은 악덕을 판정한다. 이 도덕 감정은 생득적,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 경험적인 것이다.

이는 어느 개인이나 국민에게 나타나는 자연적인 것으로서 우리의 체질과 기질에 뿌리 박혀 있는 것이다. 공감에 의해 이러한 후천적 감정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 될 수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