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7, 2016

한국인은 말을 소통 도구로 다루기보다 억압 도구로 다뤄

한국인은 말을 소통 도구로 다루기보다 억압 도구로 다뤄

학생들은 어려운 한자 안 배우게 되자 대충 ‘그러한 뜻’ 짐작에 그쳐

말을 배우고 쓸 때, 한자로 된 낱말의 뜻을 어떻게 푸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자로 이뤄진 숱한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반드시 익혀야 할 한자의 숫자를 정해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런 한자를 익힐 때에는 한자를 새기는 한국말의 뜻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 | 최봉영 한국항공대(한국학) 교수
20세기초 한자로 적힌 음식점 간판. 한국인은 오랜 시절 언문일치 없이 생활해 왔다.
  한국인은 사람이 말에 마음을 담아서 생각을 주고받는 것을 소통이라고 말한다. 소통(疏通)은 ‘트일 소’와 ‘이를 통’이 어우러진 한자 낱말이다. ‘사람이 마음을 열고 막힘이 없는 상태에서 서로 뜻이 사무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소통을 바탕으로 모두가 하나의 우리를 이뤄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된다.
  
  사람이 말로써 생각을 소통하는 일은 그냥 아무렇게나 이뤄지지 않는다. 사람이 소통을 잘하려면 뜻을 사무치는 일에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내가 남과 소통을 잘하려면 다음과 같은 것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첫째, 나와 남을 같게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나를 임자로 여기듯이 남을 임자로 여겨서 나와 남이 같은 임자로서 함께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나만 임자이고 남은 대상에 지나지 않아서, 내가 남을 대상으로써 부리는 방식으로 생각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되면 나와 남이 함께 하나의 우리로서 마음을 같이할 수 없다.
  
  둘째는 남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해야 한다.
  
  사람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쉬운 말이고, 그렇지 못한 말은 어려운 말이다. 내가 남에게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은 남을 소통의 맞수로 삼는 것이 아니라, 누르고 부리는 대상으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나와 남이 하나의 우리로서 뜻을 같이할 수 없다.
  
  셋째, 남에게 믿음이 가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와 남을 같게 여기는 바탕 위에 남이 알아듣기 쉬운 말을 써서 말을 하더라도, 믿음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말을 하게 되면 소통이 잘 이뤄질 수 없다. 사람은 말에 믿음이 가지 않으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모두가 쓸모없는 말이 되고 만다.
  
  넷째, 남에게 나의 참한 마음이 담겨 있는 말을 해야 한다.
  
  내가 나와 남을 같게 여기는 바탕 위에서 남이 알아듣기 쉬운 말을 써서 믿음이 가는 말을 하더라도, 참한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면 소통이 잘 이뤄질 수가 없다. 말에 참한 마음이 담겨 있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참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간절한 말을 남에게 들려줄 수 있어야 나와 남이 하나의 우리로서 마음을 함께하고 뜻을 같이할 수 있다.
 
  한국인과 소통, 그리고 화백제도
  
1968년 12월 21일 정부의 한글전용 정책에 부응해 한글학회가 조직한 ‘한글전용 국민실천회’의 창립총회 모습.
  한국인은 모두가 하나의 우리를 이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한국인은 모든 것을 우리에 담아서 우리 애인, 우리 마누라, 우리 아들, 우리 누나, 우리 가족,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나라 따위로 부른다.
  
  한국인이 하나의 우리를 이루는 바탕은 말로써 생각을 주고받는 소통에 있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에게 소통은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소통이 잘 이뤄지면 후련하고 시원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몹시 즐거워하는 반면에 그렇지 못하면 답답하고 갑갑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몹시 괴로워한다.
  
  오늘날 한국인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하게 소통을 바란다. 모두가 다 같이 나라의 주인으로 함께 어울려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국민의 뜻에 따라서 이뤄지는 까닭으로 소통이 잘돼 뜻이 서로 맞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있다. 이러니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소통을 말한다.
  
  오늘날 한국인은 소통을 무엇보다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인이 이렇게 된 것은 여러 가지 까닭이 있다. 가장 큰 것은 말을 다루는 태도에 있다. 한국인은 말을 소통을 위한 도구로 다루기보다 억압을 위한 도구로 다루는 일이 많다. 걸핏하면 남을 기죽이는 유식한 말, 남을 얕잡아보는 낮춤말, 남을 업신여기는 상스러운 말 따위를 써서 남을 누르고 부리고자 한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말로써 남을 누르고 부리는 일을 버릇처럼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 처음부터 말로써 남을 누르고 부리는 일을 버릇처럼 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은 글말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입말만 가지고 살던 때에는 말을 모두가 함께하는 소통의 도구로 썼다. 누구나 같은 말을 배우고 썼기 때문에 유식한 말과 무식한 말, 높임말과 낮춤말, 점잖은 말과 상스러운 말이 따로 있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이 말을 가지고 남을 누르고 부리는 일을 하기 어려웠다. 이때에 사람들은 말이라는 공공의 자원을 누구나 함께 고루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을 잘 말해 주는 것이 바로 신라의 화백제도이다. 화백제도는 말로써 생각을 주고받는 이들이 ‘함께 고루(和) 말하는(白) 제도’를 말한다.
    
  언문과 한문
  
  한국인은 2000년 전쯤부터 중국에서 한문을 가져다가 글말로 쓰기 시작했다. 이때에는 한문을 전문적으로 배운 극소수만이 글말을 쓸 수 있었다.
  
  한국인은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한국말을 적는 이두(吏讀)를 만들고 썼지만, 한국말을 제대로 적기에는 모자라는 점이 매우 많았다. 이런 까닭에 한문을 가지고 한국말을 그대로 적는 일은 그만두고, 한문에 토를 달아서 읽고 푸는 구결(口訣)만 계속 썼다.
  
  한국인 가운데 한문을 배운 소수의 지식인들이 관리로 출세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한문이 지배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됐다. 지식인들은 한문을 모든 사람을 위한 공공의 자원으로 쓰기보다는 저들의 이익을 위한 사사로운 자원으로 쓰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에 따라서 한문을 배운 유식한 이들이 그렇지 못한 무식한 이들을 누르고 부리는 일이 예사처럼 일어나게 됐다.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은 한국인이 한국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를 갖지 못해 빚어지는 일들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그는 한문을 배운 사람들이 한문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글로써 누르고 부리는 일을 크게 불쌍히 여겼다. 그는 모든 백성이 다 함께 한국말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새로운 글자를 만들고자 했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한 마음에서 한국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려고 하자, 관리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세종대왕의 뜻에 반대했다. 세종대왕은 이를 무릅쓰고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어 널리 알렸다. 이때부터 한국인은 입말과 글말을 모두 갖춘 한국말을 배우고 쓸 수 있게 됐다. 한국인은 그냥 소리로 흘러가 버리는 말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글을 써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나아가게 됐다.
  
  한국인은 훈민정음을 갖게 되자, 생각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글로써 이르고, 읊고, 노래하고, 기록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됐다. 그러나 지배층은 한문으로 누르고 부리던 버릇에 빠져서 계속 한문을 쓰는 일에 매달렸다. 그들은 한문으로 쓴 글을 진서(眞書)로 높여 부르면서, 훈민정음으로 쓴 글을 언문으로 낮춰 불렀다. 한국인이 한국말로써 새로운 세상을 펼쳐 가는 일은 매우 늦어졌다.
    
  언문일치와 국문의 갈래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 발음 기관을 본떠 만든 과학적인 글자가 한글이다. 표현할 수 있는 소리 영역이 세계 어느 문자보다 넓고 다양하다.
  19세기 말엽 조선왕조가 외세 침략으로 위기를 맞게 됐다. 지배층은 나라를 지키려면 모든 백성이 다 함께 힘을 길러 부강하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백성의 힘을 기르기 위해 글을 읽고 쓰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언문을 국가의 공식문자로 삼고자 했다. 이때부터 한국인은 입말과 글말을 같게 하는 일, 곧 언문일치(言文一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됐다.
  
  한국인은 언문일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한문에 젖어서 살아오던 버릇 때문에 이리저리 헷갈리는 일이 많았다. 사람들은 언문일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서 여러 가지로 생각을 달리했다. 이런 까닭에 한국말을 적어 놓은 글을 국문이라고 불렀지만, 실제에서는 다른 것들이 많았다.
  
  첫째, 어떤 이들은 한문투에 바탕을 둔 국문을 썼다. 이런 국문은 한국인이 한문에 한국말로 토를 붙여 배우고 쓰던 것에서 비롯한 국문투를 말한다. 이런 국문에는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것과 오로지 한글만으로 쓴 것이 있었다.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한문투 국문은, 예컨대 ‘發行後數日에 懷思切切이라 未諳間者에 客況이 安過하고 課工도 浪遊의 弊가 無하냐. 爲念不淺이라 吾는 渾眷이 無警하니 幸일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국문은 한문과 한글을 모두 아는 사람만이 읽거나 쓸 수 있다.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한문투 국문에서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면 한글로 쓴 한문투 국문이 된다. 예컨대 ‘발행후수일에 회사절절이라 미암간자에 객황이 안과하고 과공도 랑유의 폐가 무하냐. 위념불천이라 오는 혼권이 무경하니 행일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국문은 한문투 문장에 아주 익숙한 사람만이 대충 뜻을 알 수 있다. 한글만 아는 사람은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을 알 수는 없다.
  
  둘째, 어떤 사람은 언해투에 바탕을 둔 국문을 썼다. 이런 국문은 한국인이 한문을 언문으로 풀어 내는 것에서 비롯한 국문투를 말한다. 이런 국문에는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것과 오로지 한글만으로 쓴 것이 있다.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언해투 국문은, 예컨대 ‘發行한 後로 數日에 懷思가 切切이라 그동안에 客地의 情況이 安寧했는지 그리고 하는 일도 虛費하는 弊端이 없었는지. 생각하는 마음이 깊구나. 우리는 모두 특별한 일이 없으니 多幸이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국문은 한자와 한글을 모두 아는 사람만이 읽거나 쓸 수 있다.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언해투 국문에서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면 한글로 쓴 언해투 국문이 된다. 예컨대 ‘발행한 후로 수일에 회사가 절절이라 그동안에 객지의 정황이 안녕한지 그리고 하는 일도 허비하는 폐단이 없는지. 생각하는 마음이 깊구나. 우리는 모두 특별한 일이 없으니 다행이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국문은 한글을 아는 사람은 글을 읽으면 대충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한자 낱말이 들어가 있는 경우에는 읽어도 뜻을 알 수가 없다.
  
  셋째, 어떤 사람은 일상투에 바탕을 둔 국문을 썼다. 이런 국문은 한국인이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을 글로 옮기는 것에서 비롯한 국문투를 말한다. 이런 국문에는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것과 오로지 한글만으로 쓴 것이 있다.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일상투 국문은 ‘떠난 뒤로 數日에 생각이 切切하구나. 그동안에 客地에서 安寧히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하는 일도 時間만 虛費하는 弊端이 없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구나. 우리는 모두 별일 없이 지내고 있으니 多幸이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국문은 한글과 한자를 모두 아는 사람만이 읽고 쓸 수 있다.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 쓴 일상투 국문에서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면 한글로 쓴 일상투 국문이 된다. 예컨대 ‘떠난 뒤로 수일에 생각이 절절하구나. 그동안에 객지에서 안녕히 지내고 있는지, 하는 일도 시간만 허비하는 폐단이 없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구나. 우리는 모두 별일 없이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다’와 같은 것이다. 이런 국문은 한글을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다.
   
  한국인과 국문논쟁
  
활자본으로 찍어낸 문헌 중 최초의 한글 전용으로 1755년 간행된 《천의소감언해》.
  한국인은 문자 생활을 국문으로써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국문에 갈래가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국문을 쓸 것인지를 놓고서 논란을 벌였다. 한국인은 이런 논란을 빨리 마무리하고 모두가 함께 정상적인 문자 생활을 할 필요가 있었으나, 문자를 바라보는 차이가 너무 커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논란은 20세기를 거쳐서 21세기에 이른 오늘에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인 가운데 어떤 이들은 문자를 사사로운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에 더욱 힘을 쏟는다. 예컨대 한문으로 된 교과서로 공부해 지배층으로 구실하던 이들은 거의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문자를 배우고 쓰는 일로써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을 갈라놓은 상태에서, 스스로 유식한 사람이 돼서 무식한 사람을 누르고 부리는 일을 하고자 했다.
 
이들은 문자로써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을 가르기 쉽도록 하기 위해, 배우기 어려운 문자인 한문을 배우고 쓰고자 했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이 어려운 문자를 배우고 쓰는 일을 오로지 가문의 힘에 맡겨 둠으로써 지배층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까닭으로 이들은 한문을 버리고 국문을 쓴다고 하더라도, 한자가 많이 들어간 한문투나 언해투 국문을 쓰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인 가운데 어떤 이들은 문자를 공공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에 힘을 더욱 쏟는다. 예컨대 나라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모든 백성이 다 같이 힘을 길러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은 아주 적었다. 이들은 문자의 공공성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한국인은 한문이 아닌 국문으로 문자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문자를 공공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문자를 배우고 쓰는 일을 국가가 앞장을 서서 끌어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까닭으로 이들은 모든 사람이 누구나 글을 쉽게 읽고 쓸 수 있도록 일상투 국문을 쓰고자 했다.
  
  서재필이 주동이 돼서 1896년에 국문으로 된 《독립신문》이 간행됐다. 그는 창간호 논설에서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국문 가운데서도 한글로 된 국문으로 글을 썼다. 이를 위해서 한문투나 언해투로 된 국문 대신에 일상투로 된 국문을 많이 쓰고, 그냥 한글로 쓰면 뜻을 알기 어려운 한자 낱말은 알기 쉬운 낱말로 바꾸어 쓰고, 뜻을 알기 쉬운 한자 낱말이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터박이 낱말로 바꾸어 쓰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독립신문》 창간을 계기로 한국인은 문자 생활에 큰 변화를 맞게 됐다. 한국인은 오로지 한문을 가지고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을 갈라서 차별하는 일을 넘어설 수 있게 됐다. 서재필은 이에 대해서 ‘한문을 못한다고 그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국문만 잘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한문만 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없는 사람보다 유식하고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국문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부르고, 읊고, 풀어내고, 이야기할 수 있음을 또렷이 깨닫는 상황에서 쉬운 국문을 두고서 어려운 한문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할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한문에 젖어 살아오던 지식인들은 한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 한문과 언문을 아울러 쓰는 국한문 혼용체로 국문을 쓰고자 했다. 이 때문에 공문서와 교과서는 물론이고 신문, 잡지, 학술 서적 따위가 거의 모두 국한문 혼용체로 씌었다. 그런데 한국인이 이러한 글을 읽고 쓰기 위해서는 한글과 함께 한자를 배워야 했다. 한글만 배운 사람은 이런 글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국한문 혼용체 국문과 한국의 문자 교육
  
《두시언해》는 한글과 한자를 혼용해 만든 책이다.
  이미 한문에 익숙한 사람에게 국한문 혼용체는 매우 편리한 글이었다. 신채호, 장지연, 최남선처럼 이런 국문에 맛을 들인 이들은 신나게 글을 썼다. 이들은 취향에 따라서 한문투나 언해투나 일상투를 골라서 국문을 썼다. 그런데 글을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 이런 국문을 읽고 쓰려면 어려운 한자를 제대로 익혀야 했다. 한글을 완전히 깨쳤더라도 한자에 막히면 이런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국한문 혼용체 국문은 소수의 사람들만 읽고 쓰는 얼치기 국문이 되고 말았다.
  
  한국인은 국한문 혼용체 국문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의 식민지가 됐다. 이때부터 한국인은 일본인이 일본말로 쓰는 국한문 혼용체 문장을 국어로서 배우게 됐다. 한국인은 학교에서 일본말 교육을 받음으로써 국한문 혼용체 문장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됐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인은 겨레의 독립을 주장하는 글을 쓰면서도 1%의 사람들도 읽기 어려운 이상한 글을 쓰게 됐다. 최남선은 1919년에 〈3·1 독립선언서〉를 국문으로 썼지만 매우 어려운 한문투로 썼기 때문에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이 獨立國임을 宣言하노라’와 같은 모양새를 갖게 됐다.
 
그는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노라’라고 말하면 될 것을 우리를 吾等으로 바꾸고, 이를 玆로 바꾸고, 우리 조선을 我 朝鮮으로 바꾸어서 한껏 유식함을 뽐내고자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쓴 〈독립선언서〉는 한자를 아주 많이 배우지 않은 사람은 읽을 수조차 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이 글은 모두가 독립을 위해서 함께 떨쳐 일어나자고 쓴 글인지 아니면 유식한 사람들이 무식한 사람들에게 유세를 떠는 글인지 알기 어렵게 돼 있다.
  
  한국인은 1945년 광복을 맞아 새로운 국가를 세워 나가는 과정에 국민의 문자 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크게 논란을 벌였다.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힘을 가져야 새로운 지식과 기술과 정보를 갖는 일을 더욱 잘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논란의 핵심은 주로 학교에서 학생에게 어떤 방식으로 문자 교육을 할 것이냐에 집중됐다. 어떤 이들은 학생이 배우는 교과서에 한문과 한글을 아울러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어떤 이들은 오로지 한글만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모든 학생이 교과서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글만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더 큰 힘을 얻게 됐다.
  
  1945년 12월에 군정청 학무국의 자문기구인 조선교육심의회에서 ‘한자 폐지에 대한 결의’를 함으로써 초중등교육에서 한글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됐다. 이러한 원칙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돼 1948년 10월에 공포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때부터 학생들은 선악, 제거, 윤리, 기하, 함수와 같은 한자 낱말을 단지 소리로만 배우게 됐다. 이와 같은 한자 낱말의 뜻을 잘 알기 위해 한자를 배우는 일은 저마다 알아서 하는 일이 됐다. 학생들이 굳이 어려운 한자를 배우려고 하지 않게 되자, 한자 낱말의 뜻을 아는 것은 대충 그러한 뜻으로 짐작하는 것에 그치게 됐다.
  
    한국인과 한자 그리고 한문
  
《능엄경언해》는 한글과 한자를 쓰되 한자의 아래에 한자음을 부기했다.
  한국인에게 한자와 한문은 이제나 저제나 골칫덩어리이다. 한국인은 중국 문자를 가져다 쓴 뒤로 문자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오늘날 한국인이 한자와 한문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면서 골머리를 앓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까닭이다. 하나는 한국인이 나날이 쓰고 있는 한자 낱말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옛날에 선조들이 글로써 적어 놓은 한문 문서에 관한 것이다.
  
  첫째, 한국인이 한자를 배우는 일로써 골머리를 앓는 것은 나날이 쓰는 낱말 가운데에 한문에서 가져온 낱말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는 한국말 낱말 가운데 한자로 된 낱말이 70%가 넘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자 낱말은 편지, 서간, 서신, 서찰, 서한처럼 비슷한 뜻을 가진 것이 매우 많아서 실제로는 50%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한자 낱말은 이보다도 적다.
  
  한국인이 이러한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고 쓰려면 한자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 한자를 배우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중국인도 한자를 배우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으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일상으로 쓰는 한자의 수를 크게 줄였고, 한자의 모양도 매우 간단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이 한자 낱말의 뜻을 잘 알기 위해서 한자를 배우는 일은 큰 문제가 된다.
  
  한국인이 한자 낱말의 뜻을 잘 알기 위해 한자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로 어디까지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잘 따져야 한다. 그래야 배우는 일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까지 중고등학교에서 한문 시간을 따로 두어 한자 교육을 하고 있음에도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것은 대충 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한자 교육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고쳐 나가야 한다.
  
  둘째, 한국인이 한문을 배우는 일로써 골머리를 앓는 것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문서들이 거의 모두가 한문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서를 제대로 읽으려면 한문을 넓고 깊게 알아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인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갖가지 문서를 마주할 때마다, 눈뜬장님이 돼서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른다.
  
  한국인은 선조들이 남겨 놓은 문서를 정리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모두가 한문을 배울 필요는 없다. 이런 일은 한문을 전공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맡아서 하면 된다. 이들이 중요한 문서를 모두 한국말로 번역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것은 이미 번역본이 인터넷에 공개돼 있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도 찾아서 읽을 수 있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한문에 능통한 전문가를 기르는 일과 문서를 번역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한글 전용과 한자 겸용
  
‘언문 반절표(諺文反切表)’는 한글을 배우기 위한 교재였다. 초성글자와 받침으로 쓰였던 자음과 모음을 결합한 글자들을 배열했다.
  한국인이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가려면 누구나 한국말을 잘 알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말이 되는 말을 가지고, 말의 뜻을 제대로 주고받으며 함께할 수 있다.
  
  한국인은 한국말을 잘 알고 쓰는 일을 놓고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쪽과 한자 겸용을 주장하는 쪽이 편을 갈라 끊임없이 다투어 왔다. 이들은 저들의 주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문제점만 들춰내고 있다. 국민들은 이들 사이에 끼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헷갈리고 있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쪽을 따라서 한국인이 한글로만 글을 배우고 쓰게 되면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총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달이 안 걸려 한글로 된 모든 글을 읽고 쓸 수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러한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 한글로만 글을 배우고 쓰게 되면 한자로 된 낱말의 뜻을 잘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예컨대 한자를 모르는 경우에는 교육이 ‘가르쳐서(敎) 기르는(育) 일’을 뜻하고, 교습이 ‘가르쳐서(敎) 익히게(習) 하는 일’을 뜻하고, 교사가 ‘가르치는(敎) 스승(師)’을 뜻하는 낱말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냥 따라서 배우고 쓴다. 이처럼 사람들이 글을 배우고 쓸 때에 말의 뜻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이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이들도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한글 전용만을 주장하기 때문에 매우 답답하다.
  
  한자 겸용을 주장하는 쪽을 따라서 한국인이 한자와 한글을 아울러서 글을 배우고 쓰게 되면 한자 낱말의 뜻을 잘 알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컨대 한자를 아는 경우에는 교육이 ‘가르쳐서(敎) 기르는(育) 일’을 뜻하고, 교습이 ‘가르쳐서(敎) 익히게(習) 하는 일’을 뜻하고, 교사가 ‘가르치는(敎) 스승(師)’을 뜻하는 낱말인지 아는 상태에서 배우고 쓰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이 한자를 배워서 낱말의 뜻을 잘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자를 배우는 일이 매우 힘들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사람들이 어려운 한자를 힘들게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되면, 한자를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으로 나뉘어서 따로 노는 상황이 생겨난다. 이런 까닭에 어려운 한자를 힘들여 배워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이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으로 나뉘어서 따로 노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한자 겸용을 주장하는 이들도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않아 답답하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쪽과 한자 겸용을 주장하는 쪽이 다투는 것만 지켜보면, 한국인이 한국말을 잘 배우고 쓰는 일이 오로지 글자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한국말을 어떤 글자로 적을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한국말이 가진 본래의 뜻을 제대로 아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배우다’와 ‘깨치다’의 차이
  
1896년에 국문으로 간행된 《독립신문》. 서재필은 창간호 논설에서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고 했다.
  한국인이 함께 잘 어울려 살아가려면 생각을 잘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열고 뜻을 꿰뚫어 가슴에 사무치는 소통을 할 수 있다. 사람은 이를 위해서 생각을 펼치는 바탕인 낱말의 뜻을 잘 알고 써야 한다. 그런데도 이 일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국인은 낱말의 뜻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하더라도 끝내 헷갈리고 만다. 예컨대 한국인은 학습이라는 한자 낱말을 쓰는 경우에,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학습을 그냥 그러한 낱말로서 알고 쓰면 된다고 주장하고, 한자 겸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학습을 배울 학과 익힐 습으로 이뤄진 낱말로서 알고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자 겸용을 주장하는 쪽이 낱말의 뜻을 좀 더 또렷이 알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쪽이나 저쪽이 모두 낱말의 뜻을 아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쪽과 한자 겸용을 주장하는 쪽이 모두 학과 습을 새기는 ‘배우다’와 ‘익히다’가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아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배우다’와 ‘익히다’가 어떤 때에 쓰이는 낱말인지만 아는 상태에서 그냥 따라서 쓴다. 이들은 그러한 말을 쓰게 된 바탕에 대해서는 깜깜하다. 이들은 ‘배우다’와 ‘익히다’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학습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국인이 쓰는 학습이라는 낱말은 《논어》의 첫 구절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悅乎’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낱말이다. ‘學而時習之’에 나오는 학(學)과 습(習)을 어울러서 학습이라는 낱말을 만들었다. 이때 앞에 나오는 학은 깨치는 일을 뜻하고, 뒤에 나오는 습은 익히는 일을 뜻하는 까닭으로 이 문장의 뜻은 ‘깨치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이렇게 풀지 않는다. 그들은 학을 ‘배우다’로 새겨서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풀고 있다. 그들은 한국말에서 ‘배우다’와 한자에서 ‘학’이 무엇을 뜻하는 낱말인지 깊이 따져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學)이라는 한자는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이다. 학은 깨치다, 본받다, 배우다와 같은 뜻을 갖고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학을 각(覺)으로, 《전운옥편(全韻玉篇)》에는 학을 효(效)와 각오(覺悟)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학이 들어가 있는 학습, 학업, 학생, 학교, 학문, 학자와 같은 낱말의 뜻을 새길 때에는 학이 어떠한 뜻으로 쓰이는지 잘 알고서 해야 한다.
 
학습(學習)이나 학자(學者)처럼 학을 ‘깨치는’ 일로 새겨야 하는 상황에서 ‘배우는’ 일로 새기게 되면 뜻이 이상해진다. 예컨대 학자와 학생의 학을 모두 ‘배우다’로 새기게 되면 학자와 학생의 뜻이 같아지는 일이 일어난다. 학자는 깨치는 사람으로 풀고, 학생은 배우는 사람으로 다르게 풀어야 뜻이 옳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학을 ‘배우다’로 새기는 것만을 알고 있어서, 학을 모두 ‘배우다’로 새긴다. 그들은 ‘배우다’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더라도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한국말에서 ‘배우다’는 ‘배’와 ‘배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낱말이다. ‘배’와 ‘배다’를 바탕으로 배(腹), 배(舟, 船), 배다(孕, 姙), 배이다(染, 霑), 배우다(學, 習), 버릇(慣), 뱀(蛇) 따위가 하나의 무리를 이뤄 뜻을 펼쳐내고 있다.
  
  한국말에서 배는 속이나 안에 담거나 실을 수 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배에는 염소나 돼지의 배(腹)가 있고, 물에 떠다니는 나룻배나 돛단배의 배(舟, 船)가 있다. 한국말에서 ‘배다’는 물감, 일, 속, 알, 아이와 같은 것이 어떤 것의 배에서 자리를 잡고 있거나 자라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옷에 물감이 배다’, ‘장단지에 알이 배다’, ‘배추에 속이 배다’, ‘물고기가 알을 배다’, ‘어미가 새끼를 배다’라고 말할 때의 ‘배다’가 그것이다. 한국인은 이러한 ‘배다’를 ‘배이다’와 같이 쓰기도 한다. 한국인은 ‘옷에 물감이 배다’를 ‘옷에 물감이 배이다’라고도 말한다.
    
  한국말의 뜻을 잘 알아야
  
  한국말에서 ‘배우다’는 지각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임자가 어떤 것을 깨치고 익혀서 몸이나 마음에 배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이 몸이나 마음에 배게 되면 버릇이 돼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예컨대 개가 탁구공을 물고 오는 것을 배우거나 사람이 글씨를 쓰는 것을 배우게 되면, 배운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이런 까닭으로 옛말에서는 ‘버릇’을 ‘배ㅎ·ㅅ’으로 말했다. ‘배ㅎ·ㅅ’은 어떤 것이 몸이나 마음에 배어서 절로 이뤄질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한국말에서 ‘배우다’는 어떤 것을 깨치고 익혀서 버릇처럼 배게 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학습의 학을 ‘배우다’로 새기면 뜻이 이상하게 된다. 학습은 이미 배어 있는 것을 거듭해서 익히는 일이 아니라 새롭게 깨친 것을 거듭해서 익히는 일을 말한다. 이미 버릇처럼 배어 있는 것은 거듭해서 익히는 일은 바보도 하지 않는 일이다.
  
  주자(朱子)는 《논어》에 나오는 ‘學而時習之’의 학(學)을 효(效)로 풀었다. 주자가 학을 각(覺)으로 풀지 않고 효(效)로 푼 것은 학문의 핵심을 도통(道統)의 이어짐으로 보기 때문이다. 주자는 공자를 앞서 살았던 성인(聖人)의 학문을 이어서 뒤에 올 사람의 학문을 열어 주는 사람으로 보았다. 조선시대에 선비들은 효(效)를 ‘본받을 효’로 새겨서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를 ‘본을 받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풀었다. 그런데 한국인은 언제부터인가 학(學)을 ‘배울 학’으로 새겨서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풀었다.
  
  한국인이 학(學)을 ‘배우다’로 새기는 것은 매우 특수한 사정에서 생겨난 일이다. 한국인 가운데서 중국에서 가져온 한문을 배우는 이들은 수십 년에 걸쳐서 한자와 한문이 몸과 마음에 완전히 배도록 외우고 익히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들에게 글을 배우는 일, 곧 학문(學文)은 남의 나라의 글인 한문을 외우고 익히는 일을 거듭하고 거듭해서 몸과 마음에 완전히 배이게 하는 일과 같았기 때문에 학(學)을 ‘배울 학’으로 새기게 됐다. 이런 까닭으로 《석봉천자문》보다 먼저 나온 《광주천자문》에는 학(學)을 ‘배울 학’으로 새기는 것과 함께 습(習)도 ‘배울 습’으로 새기고 있다. 한국인이 학과 습을 모두 ‘배우다’로 새기는 것은 중국에서 가져온 한문을 외우고 익히던 일을 공부로 삼던 일에서 빚어진 일이다.
  
  한국인은 ‘배우다’와 ‘익히다’의 뜻을 잘 알지 못하면, 학과 습을 ‘배울 학’과 ‘익힐 습’으로 외워서, 학습을 ‘배우고 익히는 일’로 풀게 돼서 낱말의 뜻을 또렷이 아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한국인은 한자의 뜻을 새기는 깨치다, 배우다, 익히다와 같은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학습을 ‘배워서 익히는 일’로 풀지 않고 ‘깨쳐서 익히는 일’로 풀어 낼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한자를 열심히 배워도 한국말을 잘 아는 일과는 관계가 없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인과 한국말은 하나를 이루고 있다. 한국인은 한국말을 함께 쓰는 사람이고, 한국말은 한국인이 함께 쓰는 말이다. 고려의 강감찬과 조선의 이순신과 대한의 안중근을 모두 한국인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이 한국말을 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한국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인이 한국말을 잘 살려 쓰면 무엇이든 신나게 이뤄 갈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면 맥없이 주저앉는다. 한국인은 한국말을 잘 살려 쓰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학자들은 한글 전용과 한자 겸용으로 편이 갈리어 백 년이 넘도록 다투고 있다. 국민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함께하는 무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정치인들이 보수와 진보로 편이 갈리어 국민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함께하는 무리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일과 같다.
  
  한국인에게 한글 전용과 한자 겸용은 이미 방향과 결론이 뚜렷하게 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완전히 버릇으로 굳어 있는 한글 전용을 거슬러서 한자 겸용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한글 전용에서 비롯하는 문제는 하나하나 잘 따져서 풀어 가면 된다. 한국인이 참으로 힘을 쏟아야 할 일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있다.
  
  첫째, 말을 주고받을 때, 말로써 상대를 누르고 부리려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 그래야 말을 공공의 자원으로써 올바르게 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말로써 상대를 누르고 부리려는 버릇 때문에 말을 소통의 도구가 아닌 지배의 도구로 만드는 일이 많다. 이렇게 되면 말로써 뜻을 소통하는 일은 처음부터 빗나가게 된다.
  
  둘째, 말을 주고받을 때,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을 써야 한다. 그래야 말로써 뜻을 소통하는 일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상대를 말로써 누르고 부리려는 경우에는 일부러 상대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써서 상대를 곤란에 빠뜨리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말의 뜻을 눈치로 헤아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셋째, 말을 주고받을 때, 말로써 상대의 인격을 높이거나 낮추는 일을 그쳐야 한다. 그래야 대등한 인격체로서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말은 나이나 지위에 따라서 말을 높이거나 낮추는 높낮이말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 이런 말을 쓰게 되면 말이 소통의 도구가 아닌 신분의 도구처럼 돼 버린다. 사람들은 말의 뜻을 잘 아는 일보다 말의 꼴을 신분에 맞추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넷째, 말을 배우고 쓸 때, 말의 뜻을 또렷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주고받는 말의 뜻이 제대로 오고갈 수 있다. 한국인은 깨치다, 깨닫다, 배우다, 익히다와 같은 낱말을 어떻게 쓰는지만 알아서 대충 쓴다. 이런 낱말이 어떤 바탕에서 어떻게 생겨나고 쓰이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치다와 깨닫다, 배우다와 익히다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되는대로 쓰고 있다.
  
  다섯째, 말을 배우고 쓸 때, 한자로 된 낱말의 뜻을 어떻게 푸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자로 이뤄진 숱한 낱말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반드시 익혀야 할 한자의 숫자를 정해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런 한자를 익힐 때에는 한자를 새기는 한국말의 뜻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생각을 글로 쓸 때, 입으로 하는 말을 글로 옮기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말로 하는 말과 글로 적는 말이 하나가 돼서 언문일치를 이룰 수 있다. 사람들이 입으로 하는 말과 다르게 글을 적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긴다. 입으로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는 것을 글로 ‘大韓民國’이라고 적고, 입으로 ‘편지를 주고받다’라고 말하는 것을 글로 ‘서간을 왕래하다’라고 적기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거나 글을 읽어도 뜻을 알지 못하는 일이 생겨나게 된다.
  
  일곱째, 한국말을 바라볼 때, 한국말을 얕보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한국말이 갖고 있는 갖가지 가능성을 살려 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학자들은 걸핏하면 ‘한국말은 논리성이 떨어진다’, ‘한국말로는 개념을 다듬는 데 어려움이 많다’, ‘한국말로써 학술용어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한국말을 깊이 묻고 따지고 푸는 일을 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문이나 서양말을 아주 대단한 것으로 말한다. 참으로 그러한지는 한국말을 묻고 따지고 풀어 보면 절로 알게 될 일이다. 나는 그들이 한국말이 갖고 있는 엄청난 가능성에 크게 눈을 뜨고 놀라자빠지는 그날을 기다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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