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1, 2011

뜨거운 교미도 DNA가 시킨 일이다


뜨거운 교미도 DNA가 시킨 일이다

  • 김수혜 기자
  • 입력 : 2011.11.12 02:59

    노랑과실파리, 복잡한 교미 과정순서대로 진행
    "DNA는 결정한다… 육체적 특징은 물론 행위·취향까지…"

     corbis/토픽이미지
    행동은 어디까지 유전될까?

    야마모토 다이스케 지음|이지윤 옮김
    바다출판사|205쪽|1만2000원
    결론부터 얘기하면 솔직히 저자도 답은 모른다. 알았으면 책 제목이 물음표로 끝나지 않았다. 요컨대 '답이 없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흥미롭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현한 지 20만년이 됐지만 진화론과 유전학을 깨친 건 길게 잡아도 두 세기 안팎의 일이다. 인간은 이제 막 자신이 누구이며 왜, 어떻게 이 땅에 존재하게 됐는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세계 최초로 파리 유전자에서 '게이 유전자'를 찾아냈던 행동유전학자다. 과학을 모르는 일반 독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자연선택을 주장한 찰스 다윈(1809~1882), 유전법칙을 발견한 그레고어 멘델(1822~1884), 돌연변이를 확인한 휘고 드브리스(1848~1935)에서 출발한다. 진화론과 유전학이 어떻게 발달해왔고, 어디까지 알아냈는지 일반인 눈높이로 쉽게 풀어나간다.

    책의 앞쪽 절반은 교양을 위한 독서로 좋다. 본격적으로 독자의 마음에 궁금증이 샘솟는 건 뒷부분 절반이다. 각종 동물 연구를 통해 육체적 특징은 물론 행위와 취향까지 상당 부분 DNA에 적혀 있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고 저자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가령 노랑과실파리는 교미할 때 ①수컷이 암컷을 쫓아간 다음 ②앞다리로 암컷을 애무하며 좌우 날개를 차례로 한쪽씩 부들부들 떨어 독특한 '왱' 소리를 내고 ③암컷이 이에 혹해 멈춰섰을 때 ④농밀한 애무를 거쳐 20분간 짝짓기한다. 미물이 수행하기엔 꽤 복잡한 행동 패턴이건만 노랑과실파리는 일체의 학습 없이 매번 정확하게 같은 순서로 교미를 완수한다. 노랑과실파리의 DNA에 들어있는 '피리어드(period) 유전자'가 이런 패턴을 작동시킨다.

    노랑과실파리와 가까운 친척 중에 노랑초파리가 있다. 외양이 흡사해 학자들도 왕왕 헷갈린다. 자기네끼리 드물게 야생에서 잡종이 생기긴 하지만, 대다수 암컷은 따로 학습하지 않아도 동종(同種) 수컷의 구애 소리를 식별해 선택적으로 교미에 응한다. 노랑과실파리 수컷과 노랑초파리 수컷은 '왱' 소리의 음파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도 피리어드 유전자의 작동이다.

    실제로 미국 브랜다이스대학 연구팀이 노랑과실파리와 노랑초파리의 해당 유전자 일부를 바꿔치기한 결과 노랑과실파리 수컷이 흡사 노랑초파리 수컷처럼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핀란드 연구팀이 '아침형 인간'이 유독 많은 가계(家系)를 대상으로 아침형 인간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DNA를 비교해보니 아침형 인간은 피리어드 유전자 일부가 보통사람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노랑초파리 수컷의 유전자를 조작해 돌연변이 수컷을 만들어냈다. 이 수컷은 겉보기에 기운이 넘치는데도 암컷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성욕이 없는 수컷을 만들어낸 줄 알고 일본말로 '사토리'(깨달음)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추가 연구 결과 해당 수컷은 깨달은 게 아니라 단순히 '다른 대상'에 꽂힌 것뿐이었다. 암컷은 본척만척하던 사토리가 다른 수컷을 보자 노랑초파리 수컷 특유의 구애 행동을 명확하게 보인 것이다.

    오스트리아 연구팀이 바통을 이어받아 같은 방식으로 노랑초파리 암컷의 유전자를 조작해봤다. 해당 암컷은 마치 수컷처럼 다른 암컷을 향해 구애 행동을 보였다. 이후 네덜란드에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는 뇌 신경세포 구성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멈춰선다. 아직 우리는 인간에 대해 밝혀내지 못한 게 많다. 유전자 수준에서 행동원리를 밝혀내는 '분자생물학'이 학문으로 정립된 건 극히 최근이다. 분자생물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1990년에 처음 쓰였다. 인간의 DNA 속에는 아데닌·구아닌·시토신·티민 등 네 종류의 염기성 물질이 30억개 들어있다. 일렬로 늘어놓으면 2m 길이다. DNA 속 염기성 물질이 배열되는 순서야말로 유전 정보 그 자체다. 인간의 행위와 취향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유전이라고 그 속에 적혀 있는지 우리는 조금씩 파악해가는 과정에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