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31, 2011

제143편 사마리아를 지나감

제142편 유월절 예루살렘에서 ∥ 제144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143

사마리아를 지나감

 

143:0.1 서기 27 6 말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이 점점 심해졌으므로, 예수 열두 사도는 베다니에서 나사로 집에 천막과 개인 물건을 맡기고 예루살렘 떠났다. 사마리아 들어가려고 북쪽으로 가면서, 벧엘에서 안식일 지냈다. 그들은 여기서, 곱나 에브라임에서 사람들에게 여러 전도했다. 아리마대 탐나에서 무리의 사람들이, 자기네 동네를 방문해 달라고 예수 초청했다. 주님 사도들은 지역에서 유대인 사마리아인 2 이상 가르쳤는데, 그들 가운데 여러 사람은 천국의 기쁜 소식을 들으려고 멀리 안티파트리에서 왔다.
143:0.2 남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가룟 유다 이외의 사도들은 사마리아인 대한 많은 편견을 극복할 있었다. 유다 사마리아인 사랑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7 마지막 주간에, 예수 동역자들은 요단에서 가까운 그리스 도시 파새리 아켈라이 떠날 준비를 했다.
 
 
1. 아켈라이에서 전도함
 
143:1.1 8 전반부에, 사도 일행은 그리스 도시 아켈라이 파새리 본부를 뒀고, 거기서 거의 이방인만으로-- 그리스인, 로마인, 시리아인으로-- 이뤄진 모임을 상대로는 처음 전도하는 체험을 가졌는데, 도시에는 유대인 거의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로마 시민과 접촉하면서, 도래하는 나라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에  어려움에 부딪쳤고, 예수 교훈에 대한 새로운 반대에 봉착하게 됐다. 사도들과 여러 차례 가졌던 저녁 회담 가운데 하나에서, 열두 사도가 개인적으로 수고하여 얻은 사람들과 겪은 체험담을 되풀이하는 동안,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에 대한 이런 장애물에 대해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143:1.2 그들이 겪는 가장 대표적인 어려움에 대해 빌립 질문했다. 빌립 말했다: 주님, 그리스인 로마인, 그런 교훈이 오직 약한 자나 노예에게 어울린다고 하면서, 우리 메시지를 가볍게 여깁니다. 이방인의 종교가 강력하고 확고하고 적극적인 성품을 획득하게 해주기 때문에, 우리의 가르침보다 우월하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약하고 수동적인 비저항자로 만들어서, 세상에서 사라지게 것이라고 그들은 확언합니다. 주님,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의 가르침이 신성하고 이상적이라고 기꺼이 시인하지만,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당신의 종교는 세상에 맞지 않는다고 하며;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는 사람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주님, 이제 이방인들에게 우리가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143:1.3 도마와 나다니엘과 열심당 시몬  마태로부터, 천국 복음에 대한 비슷한 반대에 대해 듣고 후에, 예수께서 열두 사도에게 말씀했다:
143:1.4 “내 아버지 뜻을 행하고, 그의 사랑하는 성품을 전체 인류에게 계시하려고, 내가 세상에 왔다. 형제들아, 그것이 사명이다. 그래서 나는 가지만 이행할 것인데, 교훈이 시대 또는 다른 세대의 유대인이나 이방인들로부터 오해받는 것에 괘념치 않는다. 그러나 너희는, 신성한 사랑에도 엄격한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경시해서는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경솔한 자식의 현명치 못한 행위를 억제하라고, 아버지에게 종종 재촉한다. 아버지의 자제시키는 훈련의 현명함과 사랑의 동기를, 자녀가 반드시 납득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낙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억제할 없는 사랑의 권능으로 온갖 우주를 지배하신다. 모든 실체 중에서 사랑이 최고다. 진리는 자유하게 하는 계시이지만, 사랑은 최상의 관계다. 그리고 너희의 동료 사람들이 오늘날 세계를 관리하면서 어떤 실수를 하든지 상관없이, 앞으로 오는 세대에는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는 복음이 바로 세상을 이끌어갈 것이다. 인간이 진보하는 궁극의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경건하게 깨닫는 것과, 사람이 형제관계임을 사랑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143:1.5 “그러나 누가 너희에게, 복음이 단지 노예와 약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했느냐? 내가 택한 사도들이 약한 자처럼 보이느냐? 요한 약한 자처럼 보였느냐? 너희는 내가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을 봤느냐? 세대의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이 복음을 전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세상 종교는 가난한 자들을 무시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게다가, 회개하고 아들신분을 받아들이라는 초청에, 시대의 가난한 자들이 제일 먼저 관심을 보였다. 천국 복음은 모든 사람-- 유대인 이방인, 그리스인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에게, 그리고 젊은이나 노인, 남자나 여자에게 똑같이 전파될 것이다.
143:1.6 “내 아버지 사랑의 하나님이고, 자비 베풀기를 기뻐하신다고 해서, 천국의 봉사가 단조롭고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낙원으로 상승하는 것은 언제나 최상의 모험이요, 영원에 이르는 험난한 길이다. 세상에서 천국을 위하여 봉사하려면, 너희와 너희 동업자들이 불러일으킬 있는 용감한 남자다움을 전부 요구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천국 복음에 충성을 바침으로써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함께 싸우는 전우{戰友} 있음으로 용기를 얻을 육체의 전쟁터에서 죽는 것은 쉽지만, 필사자의 마음 속에 소중히 여기는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온전히 홀로 생명을 버리는 데는, 높고 심오한 형태의 인간적 용기와 헌신이 요구된다.
143:1.7 “오늘날, 무저항의 복음을 전파하고 비폭력의 인생을 사는 너희를, 믿지 않는 자들이 비난할지 모르지만, 너희는 천국 복음을 믿는 진지한 신자들의 행렬에서 처음으로 자원한 자이며, 교훈에 영웅적으로 헌신하여 모든 인류를 놀라게 것이다. 기쁜 소식--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사람이 형제관계인 -- 전파하면서, 너희와 너희의 충성스런 계승자들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데, 저희가 보여줄 보다 용기와 대담함을, 세상의 어떤 군대도 보여 적이 이제까지 없었다. 육신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감함이다. 정신의 용감함이 높은 유형의 인간적 용기이지만, 심오한 영적 실체를 깨우친 신념에 단호하게 충성하는 것이, 가장 높고 대단한 용기다. 그런 용기가, 하나님_아는 사람의 영웅적 자질에 해당한다. 너희는 모두 하나님_아는 사람이며; 정말로 사람의 아들 친밀한 동역자다.
 
143:1.8 이것이 경우에 예수께서 말씀했던 전부는 아니지만, 그의 연설의 서두였고, 그는 계속해서 발표에 대해 장시간 설명하고 예를 들었다. 이것은 예수께서 열두 사도에게 말씀했던 가장 열렬한 강연 가운데 하나였다. 주님 뜨거운 감정이 드러날 정도로 사도들에게 말씀한 적이 거의 없었으나, 이것은 깊은 감정과 함께 열성으로 말씀했던, 드문 경우 가운데 하나였다.
 
143:1.9 사도들의 공중 전도와 개인 사역에서 결과가 즉시 나타났는데; 바로 이날부터, 그들의 메시지는 용기로 지배되는 새로운 내용을 포함했다. 열두 사도는  천국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하는 기풍을 계속 습득했다. 이날 이후로 계속하여, 주님 다채로운 가르침 중에서 부정적 효력과 수동적 금지명령을 전파하는 일에, 그들은 그렇게 많이 휩쓸리지 않았다.
 
 
2. 자아_정복에 대한 수업
 
143:2.1 주님 인간의 자아_통제를 완성시킨 표본이었다. 그는 자신이 욕먹을 때에도 욕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고통당할 , 고통 주는 자에게 아무 위협도 하지 않았으며; 적들이 고발하면, 단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정의로운 심판에 자신을 맡겼다.
 
143:2.2 어느 저녁 회담에서 안드레 예수 물었다: 주님, 요한 가르친 것처럼 우리도 금욕을 실행해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의 가르침처럼 자아_통제를 행하도록 힘써야 합니까? 당신의 가르침과 요한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 다릅니까?예수께서 대답했다: 요한 진실로 선조의 빛과 율법에 의거해서 의의 길을 너희에게 가르쳤는데, 그것은 자아_반성과 금욕의 종교였다. 그러나 나는 자아_망각과 자아_통제라는 메시지를 갖고 왔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나에 드러내신 대로, 생명의 길을 너희에게 보여주고 있다.
143:2.3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성을 빼앗는 자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자가 크다. 자아_정복은 사람의 도덕적 본성의 척도이고, 그의 영적 발전의 지표{指標}. 규율에서는 너희가 금식하고 기도했지만; 영으로 다시 태어난 너희는  피조물로서 믿고 기뻐하라고 배운다. 너희는 아버지 나라에서  피조물이 것이며; 옛것은 지나갔으며; 보라, 모든 것이 어떻게 새롭게 되는지 내가 너희에게 보여주고 있다. 속박으로부터 자유로, 죽음으로부터 영생{永生}으로 너희가 옮겨갔음을, 너희는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에 확신시키게 것이다.
143:2.4 “옛 방법을 따르면, 너는 참고, 복종하고, 삶의 규정들에 순응하기를 추구하지만; 방법을 따르면, 먼저 진리의 너를 바꾸고, 이렇게 함으로 너의 정신을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만들면서, 안에 있는 혼을 강건하게 하며, 그리하여 우아하고 마음에 들고 완전한 하나님 뜻을 확실하고 기쁘게 실행하는 권능을 부여받게 된다. 잊지 말라--하나님 지극히 위대하고 귀중한 약속에 대한 너의 개인 신앙이, 네가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보증한다. 그렇게 해서 너는, 너의 신앙으로 인해, 그리고 너의 영이 바뀜으로 인해 실제로 하나님 성전이 되며, 그의 영이 실제로 안에 거하신다. 영이 안에 거한다면, 너는 이상 육신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롭고 해방된 영의 자녀다. 자아를_속박하는 두려움과 금욕 노예가 되 율법 대신, 자아_정복으로 말미암는 해방을, 영의 율법이 너희에게 준다.
143:2.5 “너희가 악을 행했을 , 너희 행동을 악한 세력의 영향 탓으로 돌리려고 생각한 적이 여러 있었으나, 실제로는 너희 자신의 선천적 경향들로 인해 길을 잃었을 뿐이다. 오래 전에 선지자 예레미야 너희에게,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보다 기만적이고 지독하게 사악하기까지 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스스로_속고, 그리하여 어리석은 두려움, 여러 가지 욕망, 쾌락에 사로잡힘, 악의, 시기, 그리고 심지어 복수심에 불타는 증오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143:2.6 “스스로_의로운 육신의 행위가 아니라, {} 갱생함으로 구원을 얻는다. 너희는 두려움과 육신의 금욕이 아니라, 신앙으로 정당화되고 은혜로 교제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영으로 태어난 아버지 자녀는, 언제나 육신의 욕망에 속하는 모든 것과 자아를 다스리는 주인이다. 너희가 신앙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 하나님 더불어 진정한 평화를 소유한다. 그리고 하늘의 평화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는 자는 누구든지, 영원하신 하나님 _진보하는 자녀로서, 영원히 봉사하는 일에 헌신하게 돼있다. 따라서, 하나님 사랑 안에서 너희가 완전성을 추구하는 동안, 스스로 정신과 육체의 모든 악을 씻어내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고귀한 특권이다.
143:2.7 “너희의 아들신분은 신앙에 근거하니, 너희는 두려움으로 흔들리지 않아야한다. 너희의 기쁨은 신성한 말씀을 신뢰함에서 나오며, 그러므로 너희는 아버지 사랑과 자비의 실체를 의심하도록 이끌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참되고 진정한 회개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선하심이다. 자아를 정복하는 비결은 내주하는 영에 대한 너희의 신앙에 달려 있는데, 영은 언제나 사랑으로 일한다. 구원하는 신앙조차, 너희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며; 그것 역시 하나님 선물이다. 그리고 너희가 살아있는 신앙의 자녀라면, 너희는 이상 자아에 묶인_노예가 아니고, 오히려 너희 자신을 다스리는 승리한 주인이요, 하나님 해방된 자녀다.
143:2.8 “얘들아, 너희가 영으로 태어나면, 금욕하면서 육신의 욕망을 경계하는 생활에 자아_의식으로 속박되는 처지에서 영원히 구출되고, 즐거운 영의 나라로 옮겨지고, 너희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영의 열매를 맺게 되며; 또한 영의 열매는, 즐길만하고 고상하게 하는 자아_통제 중에서 가장 높은 유형의 핵심, 심지어 세상에서 필사자가 도달하는 최고봉이다-- 진정한 자아_정복이다.
 
 
3. 기분전환과 휴식
 
143:3.1 무렵에, 신경과민과 감정적 긴장 상태가, 사도들 직속 제자인 동역자들 가운데 발생했다. 그들은 함께 살아가면서 일하는 것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요한 제자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체험했다. 이방인 사마리아인 접촉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시련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외에도, 최근의 예수 발언이 그들의 어지러운 정신 상태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안드레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으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자신의 문제와 난처한 일을 주님 가져갔다. 사도들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문제와 관련해 말하는 것을 들은 후에, 예수께서 말씀했다: 안드레, 그들이 그런 분규에 그렇게 연루되고, 그토록 많은 사람의 느낌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때에는, 그들과 일을 논의할 없다. 나는 네가 요청한 일을 없지만-- 이런 개인적인 사교상 분규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지만--너희와 함께 3일간의 휴식과 기분 전환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너의 형제들에게 가서, 모두 나와 함께 사르타바 으로 올라가자고 전해라, 거기서 나는 하루나 이틀 쉬기 원한다.
143:3.2 “지금 가서 열한 명의 형제 각자에게 사적{私的}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라: 주님 면서 휴식을 취하려고, 우리와 함께 잠시 떠나 있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가 최근에 심령을 많이 괴롭히고 정신의 압박감을 체험했으므로, 휴가 동안에는, 우리 시련과 걱정거리에 대해 아무도 언급하지 않기를 제안한다. 문제에 네가 협조할 것을 기대해도 되겠는가?’ 이런 식으로 사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형제들 각자에게 접근하라.” 그리고 안드레 주님 지시한 대로 했다.
 
143:3.3 이것은 그들 각자의 체험에서 놀라운 기회였으며; 산에 올라갔던 그날을 결코 잊지 못했다. 전체 여행 기간에, 그들의 걱정거리에 대해서는 거의 말이 없었다. 정상에 오르자, 예수께서는 그들을 자기 주위에 앉히고 말씀했다: “형제들아, 휴식의 소중함과 기분전환의 효능에 대해 너희 모두 알아야한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 방법은, 그것을 잠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휴식이나 경배의 시간을 가진 후에 신선한 상태로 돌아가면, 너희는 단호한 마음은 물론이고, 분명해진 머리와 안정된 손으로 걱정거리를 해결할 있게 된다. 게다가, 너희가 심신{心身} 쉬게 하는 동안에 문제의 크기와 비중이 줄어든 것을 거듭해서 발견할 것이다.
143:3.4 예수께서는 이튿날 열두 사도 각자에게 토의할 제목을 나눠줬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고, 그들의 종교 업무와 관계되지 않는 문제를 토의하면서 그날을 보냈다. 예수께서 정오에 점심 식사를 하면서 --소리 내어-- 감사드리는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깜짝 놀랐다. 그가 그런 형식을 무시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봤다.
143:3.5 산으로 올라갔을 , 안드레 머리는 문제들로 가득 있었다. 요한 마음 속에서 지나칠 정도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야고보 혼은 비통하게 어수선했다. 이방인 가운데 머물고 있었으므로, 마태 기금이 모자라서 애를 태우고 있었다. 베드로 과로했고, 최근에는 보통 때보다 변덕이 심했다. 유다 주기적 신경과민과 이기심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시몬 자신의 애국심과, 사람을 형제관계로 사랑하는 것을 절충하려고 애쓰면서, 보통 이상으로 혼란스러워했다. 빌립 일이 진행돼나가는 방식에 점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다니엘 이방인들과 접촉하게 이래 유머가 줄었고, 도마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쌍둥이 형제만이 정상이었고 평온했다. 요한 제자들과 어떻게 평안하게 지낼 있는지, 그들 모두 매우 난처했다.
143:3.6 셋째 날에 그들이 산에서 내려와 야영지로 돌아왔을 , 그들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적인 많은 난처한 일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많은 힘든 걱정거리가 과장된 두려움의 결과이고, 우려가 확대돼서 생겨난 결과라는 중대한 발견을 했다. 그런 모든 난처한 일은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배웠으며; 그런 문제들에서 떠나감으로써 그것들이 저절로 해결되도록 내버려뒀다.
143:3.7 휴가에서 돌아온 것이, 그들과 요한 추종자들 사이의 관계를 많이 개선시키는 계기가 됐다. 일상적 삶의 의무에서 떠나 3일간 휴가를 가진 결과로, 열두 사도 가운데 다수는 모든 사람의 정신 상태가 바뀐 것을 봤고, 신경과민에서 해방됐음을 알게 되자 진정으로 기뻐했다. 인간의 접촉이 단조로울 , 분규를 크게 부풀리고 어려움을 확대시키는 위험이 항상 있다.
 
143:3.8 아켈라이 파새리라는 그리스 도시에서는 별로 많지 않은 이방인이 복음을 믿게 됐으나, 열두 사도는 순전히 이방인만 상대로 해서는 처음 일하면서 귀중한 체험을 했다. 중순경 어느 월요일 아침에, 예수께서 안드레에게 말씀했다: 사마리아 들어가자.” 그래서 그들은 야곱 우물 근처 수가라는 성읍을 향해 즉시 떠났다.
 
 
4.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143:4.1 600년이 넘도록, 유대지방 유대인, 그리고 나중에는 갈릴리 유대인 역시, 사마리아인 반목했다. 유대인 사마리아인 간의 악감정은 이렇게 연유됐다: 기원전 700년경에, 앗수르 사르곤 팔레스틴 중부{中部}에서 일어난 폭동을 진압하면서, 왕국 이스라엘에서 2 5 이상의 유대인 포로로 잡아가는 대신, 거의 비슷한 숫자의 큐타이트, 세파바이트, 하마타이트 후손으로 자리를 채웠다. 나아가 뒤에는, 아쉬르바니팔 다른 거류민을 보내서 사마리아 살게 했다.
143:4.2 유대인 사마리아인 사이의 종교적 적개심은, 유대인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날부터 시작됐는데, 그때 사마리아인 예루살렘 재건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나중에 그들은, 알렉산더 군대를 호의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유대인 화나게 했다. 알렉산더 그들의 우호에 보답하려고 사마리아인에게 그리심산 성전을 짓도록 허락했는데, 거기서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 예배의 많은 부분을 본떠서, 야훼 자기 부족 신들에게 경배 드렸고 제물을 바쳤다. 적어도 마카비 시대까지 경배를 계속했는데, 요한 힐카누스 그리심산 있는 그들의 성전을 파괴했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에, 사도 빌립 사마리아인 위하여 일하면서 사마리아 성전 터에서 모임을 많이 가졌다.
143:4.3 유대인 사마리아인 사이의 적대감정은 유서_깊고 역사적이었으며; 그들은 알렉산더 시절 이후로, 서로를 점점 상대하지 않았다. 열두 사도는, 그리스 또는 다른 이방 도시인 데가볼리 시리아에서 전도하기를 싫어하지 않았으나, 주님 사마리아 가자”고 말씀했을 , 그것은 주님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엄중히 시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넘게 예수 함께 있으면서, 그들은 일종의 개인적 충성심을 키웠는데, 이것은 그의 교훈을 믿는 신앙과 사마리아인 대한 편견까지도 뛰어넘었다.
 
 
5. 수가의 여자 
 
143:5.1 주님 열두 사도가 야곱 우물에 도착했을 , 음식물과 천막을 수가에서 가져오는 일에 도움을 받으려고 빌립 다른 사도들을 데리고 떠나있는 동안, 여행으로 지친 예수께서는 우물가에 남아있었는데, 그들이 근처에서 당분간 머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 세베대 아들이 예수 함께 남아있으려고 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도 다른 형제들과 함께 가도록 권했다: “나를 걱정하지 말아라;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며, 우리 형제 유대인만이 우리를 해치려고 꾀한다.예수께서 우물가에 앉아서 사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때는, 여름철 저녁 거의 여섯 시쯤이었다.
143:5.2 야곱 우물은 수가 우물들보다 광물질이 적었으므로, 식수로 매우 소중히 여겨졌다. 예수께서는 목이 말랐으나, 우물에서 물을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수가 여자가 물동이와 함께 물을 길을 있는 준비를 하고 왔을 , 예수께서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말씀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 모습과 복장을 보고 그가 유대인임을 알았으며, 그의 억양에서 갈릴리 유대인 것이라고 추측했다. 여자의 이름은 날다였고, 미모의 여자였다. 여자는 유대인 남자가 우물가에서 그렇게 자기에게 말하면서 물을 청하는 것에 매우 놀랐는데, 당시에 자존감_있는 남자가 공개적으로 여자에게 말을 거는 일은 온당히 여겨지지 않았고, 유대인 사마리아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더욱 그랬다. 따라서 날다 예수 물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예수께서 대답했다: “내가 너에게 물을 달라고 것이 사실이지만, 네가 이해할 수만 있었다면, 너는 나에게 생수{生水} 모금을 구했을 것이다.” 그러자 날다 말했다: “그러나 선생님, 당신은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으시겠습니까? 우리 조상 야곱 우물을 우리에게 줬고,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가축도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위대합니까?
143:5.3 예수께서 대답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겠지만, 살아있는 영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든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생수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사람 속에서 솟아나는 원기 회복의 우물이 것이다.” 그러자 날다 말했다: “그 물을 나에게 주셔서, 목마르지 않고 이제부터는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더욱이, 사마리아 여자가 그토록 훌륭한 유대인으로부터 받을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기쁨이 것입니다.
143:5.4 날다 예수께서 거리낌 없이 자기와 이야기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주님 얼굴에서 고결하고 거룩한 사람임을 있었으나, 친절함을 상투적인 치근덕거림으로 오해했고, 그의 말투를 자기에게 접근하려는 태도로 잘못 해석했다. 그리고 여자는 도덕적으로 방종한 여자였으므로, 공공연하게 유혹해보기로 마음먹었을 , 예수께서 여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여자여, 가서 남편을 찾아 여기로 데려오라”고 말씀했다. 명령으로 인해 날다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주님 친절을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으며; 그의 말투를 오해했음을 알아차렸다. 깜짝 놀랐으며; 자신이 어떤 비범한 사람 앞에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고, 적당한 대답을 마음 속에서 찾지 못하여 크게 당황하면서 말했다: “나는 남편이 없으므로 남편을 불러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했다: “네 말이 맞다. 한때는 남편이 있었으나,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자는 너의 남편이 아니다.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오늘 내가 너에게 제시했던 생수를 구한다면, 너에게 좋을 것이다.
143:5.5 이때 날다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들었다. 여자는 전적으로 자신이 선택해서 부도덕한 여자가 되지는 않았다. 남편에게 무자비하고 부당하게 버림받았고, 끔찍한 곤경에 빠져서, 어떤 그리스인 아내가 되어 그와 함께 살기로 동의했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날다 이제 그토록 생각 없이 예수 이야기한 것에 대단히 부끄러움을 느꼈고, 아주 뉘우치면서 주님 말했다: “내 , 당신에게 말투를 회개하는데, 당신은 내가 보기에 거룩한 사람 또는 선지자인 같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직접 개인적인 도움을 주님 구하려는 순간, 많은 사람이 그전에 그리고 그후에도 행했던 -- 신학과 철학적 토론으로 바꿈으로써 개인의 구원 문제를 비켜가는 -- 여자도 행했다. 여자는 자신의 필요성으로부터 신학 논쟁으로 대화를 재빨리 돌렸다. 그리심산 가리키면서 말을 계속했다: “우리 선조는 산에서 경배 드렸는데, 당신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경배 드려야한다고 하니, 과연 어느 곳이 하나님 경배하는 올바른 장소입니까?
143:5.6 예수께서는 여자의 혼이 창조주 직접 면밀하게 접촉하는 것을 피하려 함을 감지했지만, 나은 삶의 길을 알고 싶어 하는 바램이 혼에 있는 또한 봤다. 결국, 생수에 대한 진정한 갈망이 날다 마음 속에 있었으므로, 참을성 있게 대하면서 말씀했다: “여자여, 내가 말하는데,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너희가 아버지 경배드릴 날이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여러 이교적 {} 모시는 종교와 이방인 철학이 혼합된,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 유대인 적어도 경배 드리는 대상을 알고 있으며; 유일하신 나님, 야훼에게만 경배를 집중시킴으로써 모든 혼란을 제거했다. 그러나 진지한 모든 경배자가 영으로 그리고 진리로 아버지 경배할 때가 것이라고 --지금이 그런 때라고-- 내가 하는 말을 네가 믿어야만 것인데, 아버지께서 바로 그런 경배자를 찾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영이시며, 그에게 경배 드리는 자는 영으로 그리고 진리로 경배해야한다. 너의 구원은, 다른 자들이 어떻게 혹은 어디서 경배 드리는지를 앎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너에게 주는 생수를 자신의 마음 속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온다.
143:5.7 그러나 날다, 세상에서 자신의 개인 생활과, 하나님 앞에서 자기 혼의 처지에 대한 당황스런 질문을 논의하지 않으려고, 피하려했다. 다시 일반적인 종교에 대해 질문했다: “예, 선생님, 개종시키는 와서 자신을 구원주라고 칭할 것이라는 요한 설교와,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언하실 줄을 내가 압니다”--그러자 예수께서 날다 말을 중단시키면서 깜짝 놀라게 하는 확신으로 말씀했다,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사람이다.
 
143:5.8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신성한 본성과, 세상에 이미 설립한 아들신분에 대해 발표한, 최초의 직접적이고 긍정적이고 숨김없는 선언이었으며; 그것도 여자, 사마리아 여자,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의심스런 성품의 여자에게 선언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신의 눈으로 , 여자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죄짓는 것보다 많이 죄에 빠졌고, 지금은 구원을 바라면서 그것을 진지하게 전심으로 원하는 인간 혼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143:5.9 날다 나은 것들과 고상한 삶의 방법에 대한 진실하고 개인적인 갈망을 말하려고 , 마음 속의 진정한 소망을 말할 준비가 됐을 , 열두 사도가 수가에서 돌아왔으며, 예수께서 여자와-- 사마리아 여자와 둘이서-- 친근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물건을 재빨리 내려놓고 아무도 감히 예수 비난하지는 못한 옆으로 다가갔을 , 예수께서 날다에게 말씀했다: “여자여, 너의 길을 가거라; 하나님께서 너를 용서하셨다. 이제부터는 삶을 살도록 해라. 네가 생수를 받았으니, 새로운 기쁨이 너의 속에서 솟아오를 것이고, 너는 지고자 딸이 것이다.” 사도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아채고,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도망갔다.
143:5.10 동네로 들어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외쳤다: 야곱 우물로 빨리 가시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나에게 말한 사람을 거기서 보게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개종시키는 아니겠습니까?” 해가 지기 전에 무리가 예수 말씀을 들으러 야곱 우물에 모였다. 그리고 주님, 생수, 내주하는 영의 선물에 대해 그들에게 말씀했다.
143:5.11 사도들은 예수께서 여자들과, 그것도 미심쩍은 성품의 여자들, 심지어 부도덕한 여자들과도 기꺼이 말씀하는 때문에 받은 충격에서 결코 벗어날 없었다. 예수께서는 여자들, 소위 부도덕한 여자들까지도 하나님 아버지 선택하고, 그리하여 하나님 딸이 되고 영원한 삶을 위한 후보자가 있는 혼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들에게 가르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19세기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주님 교훈을 파악하기를 꺼려하는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리스도교조차, 그리스도 생애라는 진리 대신 죽음이라는 사실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확립돼왔다. 세상은, 그의 비극적이고 슬픈 죽음보다, 그의 행복하고 하나님_드러내는 생애에 관심 뒀어야했다.
143:5.12 날다 이튿날 모든 이야기를 사도 요한에게 말했지만, 다른 사도들에게는 말하지 않았고, 예수께서도 그것에 대한 자세한 말씀을 열두 사도에게 하지 않았다.
143:5.13 날다, 예수께서 자기에게, “내가 일찍이 행한 모든 것”을 말씀했다고 요한에게 말했다. 요한 날다 나눈 교제에 대해 예수 여러 물어보려고 했으나, 실행하지는 못했다. 예수께서는 여자 자신에 대해 가지 사실만 말씀했지만,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하는 그의 태도로 말미암아, 여자의 정신 속에는 자신의 변화무쌍한 인생이 잠시 주마등처럼 떠올랐는데, 자신의 과거 인생에 대한 이런 자기_계시를, 주님 표정과 말씀에 관련시켰다. 예수께서는 여자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다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여자를 버린 이래 또 다른  남자와 동거했고, 예수께서 하나님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 모든 과거와 함께 이것이 정신 속에 선명하게 나타났으므로, 나중에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모든 행적을 정말로 말씀했다고 요한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6. 사마리아의 부흥 
 
143:6.1 예수 만나라고, 날다 무리를 수가에서 이끌어내던 저녁에, 열두 사도가 음식을 가지고 돌아 왔으며, 하루 종일 굶어 시장했으므로,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대신 자기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두워질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그들을 돌려보내기 전에 그들과 이야기하기로 작정했다. 무리에게 말씀하기 전에 무엇을 드시라고 안드레 설득하려고 하자, 예수께서 말씀했다: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사도들은 이것을 듣고 자기들끼리 말했다: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여자가 마실 것뿐 아니라 음식도 드렸는가?예수께서는 그들끼리 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말씀하기 전에 열두 사도를 돌아보면서 말씀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그분 뜻을 행하고 그분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추수하기 전까지 이러 저러한 시간이 남았다고 이상 말하지 말라. 사마리아 마을에서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들으려고 나오는 것을 보라; 너희에게 이르겠는데, 밭이 이미 희어져서 추수할 때가 됐다. 수확하는 자가 삯을 받고, 영생에 이르도록 열매를 모으는데; 이는 결과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는 말이 옳다. 내가 지금 너희로 노력하지 않은 것을 거두러 보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수고했고, 너희는 그들이 하던 일을 시작하려한다.” 그는 이것을 세례 요한 전도에 관련시켜서 말씀했다.
143:6.2 예수 사도들은 수가 들어갔고, 그리심산 야영지를 세우기 전까지 이틀 동안 전도했다. 수가 거주민 가운데 다수가 복음을 믿었고 세례받기를 원했으나, 예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다.
 
143:6.3 그리심산에서 야영하던 밤에, 사도들은 야곱 우물가에서 여자를 대한 자신들의 태도를 예수께서 꾸중하리라고 예상했으나, 예수께서는 문제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 중심 되는 실체들”에 대해, 기억에 남을 만한 말씀을 그들에게 했다. 어떤 종교에서든지, 가치가 한쪽으로 치우치도록 내버려두고, 사람의 신학에서 진리 대신에 사실이 자리를 차지하도록 내버려두기가 매우 쉽다. 십자가의 사건이 나중의 그리스도교에서 바로 핵심을 이루게 됐으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 생애와 교훈에서 연유될만한 종교의 중심 진리는 아니다.
143:6.4 그리심산에서 예수 가르침의 주제는 이랬다: 그는 자기( 예수) 형제이자_친구인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이자_친구로 여기기 원했다. 신성한 관계들을 주목하라는 가장 위대한 선언이 진리임과 똑같이, 사랑이 세상에서--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관계임을, 반복하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143:6.5 예수께서는 자신을 그렇게 완전하게 사마리아인에게 선포했는데, 그렇게 해도 상관없기 때문이었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러 사마리아 중심부를 다시는 방문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143:6.6 예수 열두 사도는 8월말까지 그리심산에서 야영했다. 그들은 낮에는 도시에서 사마리아인에게 천국의 기쁜 소식-- 하나님 아버지이심-- 전파했고 밤에는 야영지에서 지냈다. 예수 열두 사도가 사마리아 성읍들에서 일은, 많은 혼을 천국으로 들어오게 하는 열매를 맺었으며, 예수 죽음과 부활이 있은 ,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에 대한 비참한 처형이 일어남으로써 사도들이 나중에 끝까지 흩어지게 뒤에, 지역에서 빌립 훌륭한 업적을 남기도록 길을 예비하는 역할을 했다.
 
 
7. 기도와 경배에 대한 교훈
 
143:7.1 예수께서는 그리심산 저녁 회담에서 위대한 진리를 많이 가르쳤는데, 특히 다음을 강조했다:
 
143:7.2 종교는, 창조주 자아_의식하는 관계를 가지면서 생기는 개별 {} 행동이며; 조직된 종교는, 개별 종교인들의 경배를 사회화시키려고, 사람이 시도하는 것이다.
 
143:7.3 경배는-- 영적 세계에 대한 묵상은-- 물질 실체와 접촉하는 봉사와 번갈아 이뤄져야한다. 일과 기분 전환을 번갈아 해야하며; 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이뤄야. 심오한 철학은 운율 있는 시로 완화돼야한다. 삶의 긴장-- 시간 속에서 인격이 느끼는 긴장감-- 경배가 주는 휴식으로 풀어야. 우주에서 인격이 고립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기는 불안감은, 아버지 대한 신앙의 묵상으로, 그리고 지존자 대한 시도된 깨달음으로 해독{解毒}돼야.
 
143:7.4 기도는 사람에게 생각을 하게 하는 반면, 깨닫도록 고안됐으며; 지식을 증가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찰력을 확장하도록 고안됐다.
 
143:7.5 경배는 앞날에 나은 삶을 기대하도록, 그리고 그다음에는 새로운 영적 의미를  상태의 삶에 반영하도록 의도됐다. 기도는 영적으로 유익하지만, 경배는 신성하게 창조적이다.
 
143:7.6 경배는 여러 사람에게 봉사하고 싶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려고, 에게 주목하는 기법이다. 경배는, 물질 우주로부터 혼이 분리되는 정도를 재고, 또한 혼이 모든 창조물의 영적 실체에 얼마나 동시에 안전하게 애착을 갖고 있는지를 재는 척도다.
 
143:7.7 기도는 자아를_일깨우며-- 탁월한 사고이며; 경배는 자아를_잊게한다-- 초월적 사고{思考}. 경배는 힘들지 않는 집중이며, 참되고 이상적인 혼의 휴식이며, 편안함을 주는 일종의 영적 노력이다.
 
143:7.8 경배는, 부분이 전체; 유한자가 무한자; 자녀가 아버지 하나 되는 행위이며; 시간이 영원과 발걸음을 맞추는 행위다. 경배는, 자녀가 신성한 아버지 개인적으로 교류하는 행위요, 인간의 혼과_영이, 신선하고 창조적이고 우애  열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143:7.9 사도들은 야영지에서 그의 교훈 가운데 가지밖에 파악하지 못했지만, 다른 세계들은 그의 교훈을 파악했고, 세상의 다른 세대들도 파악하게 것이다.


제142편 유월절 예루살렘에서 ∥ 제144편 길보아와 데가볼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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