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편 천국 사자의 훈련 ∥ 제140편 열두 사도의 임직식▶
열두 사도
139:0.1 예수께서 사도들의 희망을 반복해서 산산조각내고, 그들이 개인적으로 높아지려는 모든 야망을 갈기갈기 찢었음에도, 한 사람만 그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그의 이 세상 생애가 매력 있고 의로웠음을 웅변하듯이 증언한다.
139:0.2 사도들은 하늘 나라에 대하여 예수로부터 배웠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나라, 즉 유란시아에 살고 있는,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서 진화하는 다른 세계들에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그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이 열두 사람은, 다양한 유형의 인간 기질을 대표했고, 학교교육을 받아 서로 비슷하게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100년 전에 갈릴리의 이방인 주민을 강제로 개종시킨 결과로, 이 갈릴리 어부 가운데 다수는 이방인의 핏줄을 상당히 지니고 있었다.
139:0.3 사도들 전체가 무식하고 교육받지 못했다고 간주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 알패오 쌍둥이를 제외한 그들 모두가 회당 학교를 졸업했으므로, 히브리 성서에 대해 그리고 그 당시 통용되는 대부분의 지식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훈련돼있었다. 일곱 명이 가버나움 회당 학교를 졸업했고, 갈릴리 전체에서 더 좋은 유대인 학교는 없었다.
139:0.4 이 천국 사자{使者}들을 “무식하고 교육받지 못했다”고 너희의 기록들이 언급하는데, 이는 그들이 랍비의 학문에 대해 무지하고, 율법학자의 성서 해석 방법을 훈련받지 않은 평신도였다는 관념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그들은 소위 고등교육이 결여돼있었다. 오늘날로 볼 때, 그들은 확실히 교육받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고, 심지어 어떤 사회 집단에서는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 모두, 경직되고 편견에 치우친, 똑같은 교육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소년기부터 줄곧, 그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각자 체험으로 터득했다.
1. 안드레, 처음 선택된 사도
139:1.1 천국 사도 단체의 우두머리인 안드레는 가버나움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아이--곧 본인, 남동생 시몬, 그리고 세 여동생--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았다. 이미 고인{故人}이 된 그의 아버지는, 가버나움의 고기잡이 항구인 벳새다에서 고기를 말려 파는 일에 종사하는 세베대의 동업자였다. 안드레는 사도가 됐을 때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지만, 결혼한 동생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둘 다 어부였고,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동업자였다.
139:1.2 안드레는 사도로 뽑힌 서기 26년에 예수보다 한 살 많은 서른세 살이었고, 사도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는 훌륭한 선조를 둔 혈통에서 태어났고, 열두 사도 중에서 가장 유능했다. 웅변술을 제외하면, 모든 동료가 가질만한 역량을 거의 다 가졌다. 예수께서 안드레에게는 애칭, 즉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을 지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들이 곧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듯이, 또한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지닌 명칭으로 안드레를 불렀다.
139:1.3 안드레는 훌륭한 조직가이기도 했으나, 오히려 경영자로서 더 훌륭했다. 그는 네 사도로 구성된 핵심 요원 가운데 하나였지만, 예수께서 그를 사도 집단의 우두머리로 임명했으므로 형제들과 함께 근무해야했고, 한편 나머지 세 사람이 주님과 매우 긴밀하게 교류하는 특권을 누렸다. 안드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도 단체의 책임자로 남아있었다.
139:1.4 안드레가 효과적인 설교자였던 적은 없었으나, 개인을 상대로 유능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처음 선택된 사도로서 즉시 동생 시몬을 예수께 데려왔다는 점에서, 천국의 선구적인 선교사 역할을 했으며, 시몬은 나중에 가장 훌륭한 천국 설교자 가운데 하나가 됐다. 안드레는, 열두 사도를 천국 사자로 훈련시키는 수단으로, 개인 업무 계획표를 활용하는 예수의 방침에 최고의 후원자였다.
139:1.5 예수께서 사도들을 사적{私的}으로 가르칠 때든지, 군중에게 전도할 때든지, 안드레는 대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능통했으며; 이해심 많은 실행가였고 능률적인 경영자였다. 자기 권한 밖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그것을 바로 예수께 가져갔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알게 된 모든 문제를 신속히 결정했다.
139:1.6 안드레와 베드로는, 성품과 기질에서 많이 달랐으나, 훌륭하게 같이 지냈다는 점은 그들에게 명예가 되도록 영원히 기록에 남겨야 할 것이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웅변술을 전혀 질투하지 않았다. 연장자인 안드레 같은 유형의 사람이 자기보다 어린 재주 있는 형제에게, 그렇게 충심에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을 보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안드레와 베드로는, 각자의 역량이나 업적에 대해 조금도 질투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다. 오순절 늦은 밤에, 주로 베드로의 열광적이고 영감 있는 설교를 통해서 2천 명의 혼이 천국에 더 들어오게 되자, 안드레가 동생에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동생을 둬서 기쁘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했다: “형님이 나를 주님께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나를 주님 옆에 꾸준히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일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안드레와 베드로는 통례에 해당되지 않았는데, 형제간에도 함께 평화롭게 살고 효과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139:1.7 오순절 이후에는 베드로가 유명해졌지만,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 불리면서 나머지 생애를 지내는 것이, 형 안드레를 한 번도 초조하게 만든 적이 없었다.
139:1.8 모든 사도들 가운데, 안드레가 사람을 가장 잘 판단했다. 회계에게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때에도, 그는 가룟 유다의 심정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자신이 염려하는 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안드레의 위대한 천국 봉사는, 복음을 선포하도록 내보낼 첫 선교사들을 선정하는 문제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충고한 것, 또한 천국을 경영하는 직무의 조직에 대해 이 초기 지도자들에게 조언한 것이었다. 안드레는 젊은이들의 숨겨진 자원과 잠재된 재주를 발견하는 데 큰 은사를 갖고 있었다.
139:1.9 예수께서 높은 곳으로 상승한 후에 곧바로, 안드레는 떠나간 주님의 말씀과 행적들 가운데 많은 것을 손수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안드레가 죽은 후에, 이 개인기록의 다른 사본들이 만들어졌고, 그리스도교 교회의 초기 선생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회람{回覽}됐다. 안드레의 이런 비공식 기록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생애에 관하여 사람들이 상당히 일관적인 이야기로 만들 때까지, 훗날에 편집되고 개정되고 바뀌고 첨부됐다. 이런 바뀌고 개정된 약간의 사본들 가운데 마지막 사본은, 열두 사도 중에서 처음 선택된 이 사도가 원본을 쓴 후 100년이 지났을 즈음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불에 타버렸다.
139:1.10 안드레는, 명석한 통찰력, 논리적 사고, 확고한 판단력의 사람이었는데, 그의 중요한 성격상 장점은 비할 바 없는 안정감이었다. 그의 기질의 단점은 열정이 부족한 것이었으며; 현명하게 칭찬하여 동역자들을 북돋아 주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가치 있는 업적에 대해 그가 이렇게 칭찬에 인색했던 것은, 아첨이나 위선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었다. 안드레는, 다재다능하고, 침착하고, 자립적이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성공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139:1.11 사도들 모두가 예수를 사랑했지만, 열두 사도 각자가 그에게 이끌린 것은, 각 사도에게 특별히 호감을 주는 몇몇 특정한 인격 특징 때문이었음이 사실이다. 안드레는, 일관적인 신중함과 변치 않는 위엄 때문에 예수를 존경했다. 일단 예수를 알게 되면, 사람들은 친구에게도 예수를 알게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됐으며; 진정으로 모든 세상 사람이 예수를 알게 되기 원했다.
139:1.12 후일의 박해로 인해 결국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게 됐을 때, 안드레는,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마게도니아를 지나 여행했고, 수천 명을 천국으로 인도한 후에, 결국 아가야의 파트레에서 체포되어 십자가형을 당했다. 이 건장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만 이틀이나 걸렸고, 이런 비극적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하늘 나라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효율적으로 선포하기를 계속했다.
2. 시몬 베드로
139:2.1 사도로 가입했을 때, 시몬은 서른 살이었다. 결혼해서 세 아이가 있었고, 가버나움 근처 벳새다에서 살았다. 형 안드레와 장모가 함께 살았다. 베드로와 안드레, 둘 다 세베대의 아들들과 동업하는 어부였다.
139:2.2 주님은, 안드레가 시몬을 둘째 사도로 소개하기 전부터 그를 알았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줄 때,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했으며; 그것은 일종의 별명이었다. 시몬은 모든 친구에게 엉뚱하고 충동적인 사람으로 유명했다. 이렇게 가볍게 지어준 별명에, 나중에는 예수께서 새롭고 뜻 깊은 의미를 덧붙였던 것이 사실이다.
139:2.3 시몬 베드로는 충동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격한 감정에 제멋대로 빠지면서 자라왔으며; 생각 없이 계속 말을 내뱉었으므로, 빈번하게 곤경에 처했다. 이런 종류의 경솔함은, 친구와 동역자들 모두에게도 끊임없는 곤경을 일으켰고, 주님으로부터 가벼운 꾸중을 많이 듣게 된 원인이었다. 생각 없이 하는 그의 말로 인해 더 많은 곤경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많은 계획과 개요를 공공연히 털어놓기 전에, 형 안드레와 먼저 상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터득했기 때문이다.
139:2.4 베드로는 감동적이고 극적인 유창한 웅변가였다. 또한 천부적이고 영감 주는 지도자였고 생각이 빨랐으나, 깊이 추론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모든 사도의 질문을 전부 합한 것보다 더 많이 질문했고, 대부분의 질문이 선하고 적절했지만, 다수는 생각 없이 나온 어리석은 것이었다. 베드로는 심지{心地}가 깊지 못했으나, 자기 마음을 잘 알았다. 따라서 결정을 빨리 하고 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호숫가에서 예수를 보고 놀라서 떠드는 동안,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려고 물에 뛰어 들어 해변으로 헤엄쳐 나갔다.
139:2.5 베드로가 예수를 가장 존경하게 됐던 하나의 특징은, 그의 탁월한 온화함이었다. 베드로는 예수의 관용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잘못을 저지른 자를 일곱 번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교훈을 결코 잊지 못했다. 대제사장의 정원에서 마음에도 없이 예수를 부인한 직후에, 그 어둡고 우울했던 날들 동안, 주님의 용서하는 성품으로부터 받았던 이 인상을 많이 회상했다.
139:2.6 시몬 베드로는 비참할 정도로 변덕스러웠는데;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갑자기 옮겨가곤 했다. 처음에는 예수께 자기 발을 씻기지 못하게 했다가, 주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는, 온 몸을 씻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국 베드로의 약점이 머리에 있고, 마음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용기와 비겁함을 동시에 지닌 가장 희한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성품 중에서 가장 큰 장점은 충성심과 우애였다. 베드로는 정말로 진실하게 예수를 사랑했다. 그러나 이런 타오르는 격렬한 헌신에도, 너무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어서, 주이신 주님을 부인하게 되기까지, 한 여종이 자기를 놀리도록 내버려뒀다. 베드로는 박해나 다른 형태의 직접 공격은 잘 견뎠지만, 조롱 앞에서는 기운이 빠지고 위축됐다. 정면 공격 앞에서는 용감한 병사였으나, 후면 습격으로 놀랄 때에는 두려움에 떠는 겁쟁이였다.
139:2.7 베드로는, 사마리아인 가운데서 빌립의 업무와, 이방인 가운데서 바울의 업무에 대해, 예수의 사도들 중에서 맨 먼저 두둔하고 나섰는데; 나중에는 안디옥에서 조롱하는 유대교전향자들에게 공격을 받게 되자, 태도를 바꿔 이방인에게서 잠시 떠나 있었는데, 바울로부터 대담한 비난을 받게 됐을 뿐이다.
139:2.8 그는 사도들 중에서 처음으로, 예수의 혼합된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에 대해 진심으로 고백했고, 또한 --유다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예수를 부인한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그렇게 심한 공상가는 아니었지만, 환희의 구름을 타고 극적으로 몰입하는 열정에 빠졌다가, 평범하고 단조로운 세상적인 현실로 내려오기를 싫어했다.
139:2.9 예수를 따르면서, 글자 그대로 그리고 비유로 말하자면, 그는 앞에서 이끌던가 아니면 뒤에 쳐졌다--“아주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갔다”. 그러나 열두 사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자였으며; 바울을 제외하고는, 한 세대동안 다른 어떤 개인보다 더 많이 천국을 설립했고, 천국 사자들을 온 세상 끝까지 보냈다.
139:2.10 그는 주님을 경솔하게 부인한 후에 자아를 발견했고, 안드레의 동정심 있고 이해심 많은 안내를 받아서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가는 데 앞장섰으며, 한편 사도들은 십자가형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보려고 기다렸다. 예수께 용서받았음을 완전히 확신했을 때, 주님의 양떼에 다시 받아들여졌음을 깨달았을 때, 천국의 불이 그의 혼 속에서 아주 밝게 타올라서, 어둠 속에 앉아있던 수천 명에게 구원의 큰 빛이 됐다.
139:2.11 예루살렘을 떠난 후, 그리고 바울이 이방인의 그리스도교 교회들 가운데서 정신적 지도자가 되기 전에, 베드로는 바벨론으로부터 고린도까지 모든 교회를 방문하면서 널리 여행했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 가운데 여러 교회도 방문하고 보살피기까지 했다. 비록 베드로와 바울이, 기질이나 교육 수준, 그리고 신학에서도 서로 많이 달랐지만, 나이가 든 후에는 교회를 발전시키는 일에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일했다.
139:2.12 베드로의 방식과 가르침 중에서 어느 정도는, 누가가 기록한 설교와 마가복음에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박력 있는 태도는, 베드로 전서로 알려진 그의 편지에 더 잘 나타나 있는데; 적어도 바울의 제자가 나중에 그 편지를 고치기 전에는 정말로 그랬다.
139:2.13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결국 실제로 그리고 진정으로 유대인 메시야였다고 유대인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과오를 계속 범했다. 죽는 날까지, 시몬 베드로의 마음 속에서는,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야라는 개념,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원자라는 개념,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 즉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계시라는 개념, 이 세 가지 사이에서 계속 갈팡질팡했다.
139:2.14 베드로의 아내는 대단히 능력 있는 여자였다. 여러 해 동안 여자 단체 회원으로서 일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자, 그의 선교여행은 물론 교회 방문에도 동행했다. 그리고 저명한 남편이 목숨을 바치던 날, 그 아내도 로마 경기장 안에서 맹수들에게 던져졌다.
139:2.15 이렇게 예수와 친숙했던 사람, 핵심 집단 가운데 하나였던 사람 베드로는, 자신의 직무가 완수될 때까지, 권세와 영광으로 천국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떠났으며; 그 역시 그의 주님처럼--곧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야한다고 그를 체포한 자가 알려줬을 때, 그는 그것을 최고의 명예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3. 야고보 세베대
139:3.1 예수께서 세베대의 두 아들에게 “우뢰{雨雷}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는데, 두 사도 중에 형인 야고보는 사도가 됐을 때 서른 살이었다. 결혼해서 네 아이가 있었고, 가버나움 근교의 벳새다에서 부모의 집 가까이에 살았다. 그는 어부였고, 동생 요한과 함께, 그리고 안드레
및 시몬과 공동으로 생업에 힘썼다. 야고보와 동생 요한은, 다른 어떤 사도보다 더 오랫동안 예수를 알았다는 이점{利點}을 갖고 있었다.
139:3.2 유능한 이 사도는, 상반되는 기질을 소유했으며; 실제로 두 가지 본성을 소유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둘 다 격한 감정에 자극받았다. 분노가 일단 차오르면 현저하게 과격했다. 성질이 한번 자극되면 불같은 성질을 나타냈고, 폭풍이 일단 지나가고 나면, 그것이 완전히 의로움의 분개였다고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분노를 언제나 정당화시키고 변명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주기적인 분노 표출을 제외하면, 야고보의 인간성은 안드레의 인간성과 비슷했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안드레의 식별력이나 통찰력은 갖지 못했으나, 안드레보다 훨씬 우월한 대중 연설가였다. 마태가 없었다면, 야고보가 열두 사도 중에서 베드로 다음으로 가장 우수한 대중 웅변가였다.
139:3.3 야고보는 어떤 면에서도 기분파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하루는 조용하고 과묵하다가 이튿날에는 말 많은 수다쟁이가 되곤 했다. 대개 예수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잘 했으나, 열두 사도 중에서는 한 번에 며칠씩 가장 말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이런 한동안의 기묘한 침묵이었다.
139:3.4 야고보의 인격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한 가지 주장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역량이었다. 열두 사도 전체 가운데서, 그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실제 취지와 의미를 가장 근접되게 파악했다. 그 역시 처음에는 주님께서 의미하는 바를 더디게 납득했지만, 그들이 훈련을 모두 마치기 전에, 예수의 메시지에 담긴 탁월한 개념을 알아들었다. 야고보는 인간 본성의 넓은 범위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다재다능한 안드레, 충동적인 베드로, 그리고 말없는 동생 요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39:3.5 야고보와 요한은 문제가 있음에도 함께 일하려고 애썼는데 , 두 사람이 서로 어떻게 잘 지내는지 관찰하는 일은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만큼 그렇게 성공적으로 잘 지내지는 못했으나, 특히 그렇게 고집 세고 단호한 형제들에게 보통 기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잘 해 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 세베대의 두 아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보다는 서로에게 더 많은 참을성을 베풀었다. 그들은 서로 무척 다정했고, 언제나 좋은 놀이 동무가 됐다. 주님께 불경스럽게 대했다고 여겨지는 사마리아인을 없애기 위해, 하늘로부터 불을 불러 내리기를 원했던 사람이, 바로 이 “우뢰의 아들들”이었다. 그러나 야고보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해, 동생 요한의 격렬한 기질이 많이 고쳐졌다.
139:3.6 야고보가 가장 감탄했던 예수의 특질은 주님의 호의적인 애정이었다. 작은 자와 위대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예수의 이해심 많은 관심이 그에게 큰 호감을 줬다.
139:3.7 야고보 세베대는 균형 잡힌 사색가이자 계획가였다. 안드레와 함께 사도 집단에서 비교적 안정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격렬한 사람이었지만 절대로 성급하지 않았다. 베드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139:3.8 그는 겸손했고, 극적이지 않았고, 매일의 일에 충실한, 잘난 체 하지 않는 일꾼이었고, 일단 천국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자, 특별한 보상을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아들들이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예수께 요청했다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어머니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책임을 스스로 맡을 준비가 됐다고 표명했을 때, 주님이 로마 권력에 대항해서 반란 일으킬 것으로 상상되는 그 일에 위험이 수반될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과, 그들 역시 그 값을 기꺼이 치르려했다는 것을 꼭 알아야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잔을 마실 준비가 됐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야고보에게는 그것이 글자 그대로 사실이었다--그는 일찍이 헤롯 아그리빠의 칼에 죽임을 당해서 순교를 체험하는 첫 사도가 됐고, 주님과 함께 잔을 마셨다. 그렇게 해서, 야고보는 천국의 새 싸움터에서 열두 사도 가운데 처음으로 생명을 바쳤다. 헤롯 아그리빠는 다른 모든 사도보다 야고보를 특히 두려워했다. 그는 정말로 종종 조용하고 말이 없었지만, 그의 신념이 자극되고 도전 받으면 용감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139:3.9 야고보는 일생을 충실히 살았고, 자신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우아함과 불굴의 정신으로 대처했으므로, 재판과 처형장에 참석했던, 그를 비난하고 고발한 사람조차 깊은 감명을 받아서, 야고보의 처형장에서 급히 뛰쳐나가 예수의 제자들과 합류했다.
4. 요한 세베대
139:4.1 요한은 사도가 됐을 때 스물네 살이었고,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어렸다. 아직 결혼 전이었고, 벳새다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으며; 어부였고, 형 야고보와 함께 안드레
및 베드로와 동업했다. 요한은 사도가 되기 전이나 후 언제나, 주님의 가족과 관계되는 일에서 예수의 개인적 대리인 역할을 했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줄곧 이 책임을 맡았다.
139:4.2 요한은, 열두 사도 중에서 제일 어리고, 예수의 가족 문제에서 그와 무척 긴밀하게 연관돼있었으므로,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솔직히 그가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너희가 보기에도 예수처럼 도량 넓은 인물이, 사도들 중에서 다른 사람보다 어느 한 사람을 편애{偏愛}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요한이 형 야고보와 함께 예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알아왔음은 물론, 그가 예수의 개인 측근 보조원 세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 이런 잘못된 생각을 심화시켰다.
139:4.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사도가 된 후 곧 예수의 개인 보조원으로 임명됐다. 열두 사도가 선택된 직후 그리고 안드레를 그 집단의 지휘관으로 임명할 때, 예수께서 안드레에게 말씀했다: “이제 너의 동역자 중에서 나와 함께 있고 내 곁에 남아 나를 보살피고 일상적인 일을 도와줄 두 세 사람을 네가 선택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안드레는, 이 특별한 임무에 자기 다음으로 뽑힌 세 사도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토록 복된 봉사에 자신이 자원하고 싶었으나, 주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위탁임무를 맡겼으므로; 예수 곁에서 시중들도록, 베드로, 야고보, 및 요한을 즉시 임명했다.
139:4.4 요한 세베대는 많은 매력적인 성품을 지녔으나,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한 가지는, 그의 과도하지만 대개 잘 숨겨진 자만심이었다. 예수와 오랫동안 교제한 기간이 그의 성품에 커다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자만심이 크게 줄어들기는 했으나, 노후에 다소 유치해지기 시작한 다음에, 이 자긍심이 다시 고개 들기 시작했으며, 그리하여 지금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복음서를 쓰도록 나단에게 지시할 때, 나이 많은 이 사도는,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로 계속 호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요한이 이 세상의 어떤 필사자보다 더 가까운 예수의 단짝, 즉 그가 그토록 많은 문제의 경우에 예수께서 택하신 그의 개인 대표자였다는 사실을 간주할 때,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로 여긴 것은 이상하지 않은데, 자신이야말로 예수께서 그토록 빈번히 일을 맡겼던 제자임을 가장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139:4.5 요한의 성품에서 가장 강한 특징은 그의 신빙성이었는데; 그는 신속했고 용감했으며, 신실했고 헌신적이었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특유한 이 자만심이었다. 그는 자기 집안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고, 사도 집단에서도 가장 어렸다. 아마 좀 버릇없었는지 모르며; 아마 좀 지나치게 비위가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후의 요한은, 예수의 사도들 반열에 참가했던 스물네 살 당시의, 자기를_찬미하고 멋대로 행동하던 젊은이와는 무척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139:4.6 요한이 가장 좋아했던 예수의 특질은, 주님의 사랑과 애타심{愛他心}이었는데; 이런 특징이 그에게 큰 감명을 줬기 때문에, 그 후의 그의 전 생애는 사랑의 감정과 형제로서의 헌신으로 지배됐다. 그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랑에 관해 기록했다. 이 “우뢰의 아들”은 “사랑의 사도”가 됐으며; 에베소에서 이 연로한 감독이 더 이상 설교단에 서서 설교할 수 없게 되어, 의자에 앉은 채 교회로 옮겨져야 했을 때, 그리고 예배를 마치면서 신도들에게 몇 마디 말씀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여러 해 동안 그는 오직, “어린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말했다.
139:4.7 요한은 감정이 격한 경우 외에는,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을 많이 했으나, 말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기질이 많이 양순해졌고 더 잘 통제됐지만, 말하기를 꺼리는 이런 성격은 결코 개선되지 않았으며; 이 과묵함을 완전히 극복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놀랄만한 창조적 상상력을 타고났었다.
139:4.8 요한에게는, 이런 조용하고 내성적인 유형의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는 다른 면이 있었다. 다소 옹졸했고, 지나칠 정도로 참을성이 없었다. 이 면에서 그와 야고보는 매우 비슷했다--곧 그 두 사람은 하늘로부터 불을 불러서, 무례한 사마리아인의 머리에 떨어뜨리기 원했다. 요한은, 어떤 낯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을 보자, 즉시 그들을 제지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자긍심과 우월감 의식을 지닌 사람이, 열두 사도 가운데 요한 뿐만은 아니었다.
139:4.9 요한의 생애는, 예수께서 얼마나 성실하게 어머니와 가족을 돌보기 위한 대책을 세워 놨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집 없이 다니는 광경으로 인해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또한 요한은, 예수의 가족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연유로 그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알았으므로, 예수를 가슴속 깊이 동정했다. 예수께서 자신의 조그마한 소망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늘 양보하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뚜렷하게 보여주는 신뢰와 함께, 이 모든 상황이 요한에게 깊은 인상을 줬으며, 그래서 이것은 훗날에 그의 온 생애를 통해서 나타난 바와 같이, 그의 성품에 뚜렷하고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139:4.10 요한은, 다른 사도들에게는 거의 없는, 냉철하고 대담한 용기를 지녔다. 예수께서 체포되던 날 밤에도 즉시 예수를 따라 갔고, 바로 죽음의 문턱까지 감히 주님과 동행했던 유일한 사도였다. 항상 예수와 함께 있었고, 이 세상의 마지막 시간까지도 예수의 곁을 지켰고, 예수의 어머니에 관한 그의 신뢰를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았고, 주님이 필사자로서 실존하던 마지막 순간에도, 주어질지도 모를 추가 지시를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곁에 있었다. 요한이 굉장히 믿을 만했다는 그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열두 사도가 식사할 때, 요한은 대개 예수의 오른 편에 앉았다. 열두 사도 중에서 그가 처음으로 진지하고 완전하게 부활을 믿었고, 부활한 예수께서 해변에서 그들에게 가까이 왔을 때, 제일 먼저 주님을 알아 본 사람도 그였다.139:4.11 이 세베대의 아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이 전개될 때 베드로와 아주 가깝게 관련돼있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후원자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는 오순절 날에 베드로의 오른 팔 역할을 했다.
139:4.12 요한은, 야고보가 순교한 후 몇 년 뒤에,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했다. 여생에 마지막 20년 동안, 사랑스런 손녀{孫女}의 보살핌을 받았다.
139:4.13 요한은 여러 차례 감옥에 갇혔고, 다른 황제가 로마에서 정권을 잡기 전까지, 4년 동안 밧모 섬에 유배됐다. 요한이 약삭빠르고 영리하지 못했더라면, 더 거침없이 말하는 형 야고보처럼 그 역시 분명히 처형됐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님의 동생 야고보와 더불어 정부의 고관들 앞에 불려 나갔을 때, 현명하게 회유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부드러운 대답이 화를 물리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교회가 “하늘 나라”라기보다 오히려 “인류의 사회적 봉사에 헌신하는 영적 형제관계”라고 설명하는 것도 배웠다. 그들은 지배하는 힘보다--곧 왕국과 왕보다--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가르쳤다.139:4.14 요한은 밧모 섬에 잠시 유배됐을 때 계시록을 썼는데, 너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은 많이 단축되고 왜곡돼있다. 이 계시록은 어떤 엄청난 계시 중에서 남아있는 여러 조각을 포함하고 있는데, 요한이 이것을 기록한 후에, 많은 부분이 누락됐고, 어떤 부분들은 삭제되기도 했다. 그것은 단지 부분적이고, 다른 것이 섞인 형태로 보존됐다.
139:4.15 요한은 여행을 많이 했고, 쉬지 않고 일했으며, 아시아 교회들의 감독이 된 후에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었다. 아흔아홉 살 때 에베소에서 동역자 나단에게 “요한에 의한 복음서”라고 불리는 글을 쓰도록 지시했다. 열두 사도 전체 중에서, 결국에는 요한 세베대가 가장 탁월한 신학자가 됐다. 그는 에베소에서 103년에 자연사했는데, 그때 나이는 101세었다.
5. 호기심 많은 빌립
139:5.1 빌립은 다섯째로 뽑힌 사도였는데, 예수와 처음 네 사도가 요단에서 요한을 만난 후 갈릴리 가나로 가는 도중에 부름 받았다. 빌립은 벳새다에서 살았으므로 예수와 이미 아는 사이였지만, 요단 계곡에서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기 전에는, 예수를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빌립은 또한, 안드레와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예수를 구원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로 인해 다소 영향을 받았다.
139:5.2 빌립은 사도로 참여했을 때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최근에 결혼했고, 아이는 아직 없었다. 사도들은 그에게, “호기심”이라는 뜻의 단어로 별명을 붙여 줬다. 빌립은 언제나 눈으로 보기를 원했다. 어떤 계획에서든지 결코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듯 했다. 둔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상상력이 부족했다. 이 상상력 결핍은 그의 성격상 큰 단점이었다. 그는 평범하고 사무적인 사람이었다.
139:5.3 사도들이 봉사하려고 조직을 갖췄을 때, 빌립은 사무장의 일을 맡았는데; 그들에게 양식이 항상 원활하게 공급되는지 살피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리고 훌륭한 사무장이었다. 그의 가장 강한 특질은 조직적인 꼼꼼함이었으며; 수학적이고 체계적이었다.
139:5.4 빌립은 아들 셋과 딸 넷의 일곱 자녀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둘째였고, 주님의 부활이 있은 후에, 그의 온 가족에게 세례를 줘서 천국에 들어오도록 했다. 빌립의 친척은 모두 어부였다. 그의 아버지는 무척 능력 있고 생각이 깊었으나,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다. 빌립은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사소한 일을 큰 일처럼 할 수 있었고, 매우 적절하게 잘 처리했다. 4년 동안, 모든 사람을 먹일 만큼의 충분한 음식을 준비하는 데 실패한 것은 몇 번뿐이었다. 그들이 지내는 동안 겪었던 여러 차례의 비상시{非常時}에도, 그가 준비를 제대로 못한 적이 거의 없었다. 사도 일행의 물자조달 부서는, 지적으로 효과 있게 관리됐다.
139:5.5 빌립의 강점은 조직적인 확실성에 있었으며; 그의 성질의 약점은 상상력이 전혀 없는 것, 둘에 둘을 더하여 넷을 얻는 역량이 없는 것이었다. 이론적인 것에서는 수학적이었지만,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했다. 어떤 유형의 상상력에서는 거의 완전히 결핍돼있었다. 그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보통 사람의 전형이었다. 예수의 가르침과 설교를 듣기 위하여 온 대중 가운데는 그런 남녀가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주님의 협의회에서 명예로운 지위까지 높임 받은 것을 봄으로써 큰 위안을 얻었으며; 그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이미 천국의 직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용기를 줬다. 예수께서는 빌립의 우둔한 질문에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였고, “보여 달라”는 사무장의 요구에 그토록 여러 번 응하면서, 일부 인간의 정신이 이 사람처럼 작용하는 방식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
139:5.6 빌립이 그토록 계속해서 존경했던 예수의 한 가지 특성은, 주님의 무한한 관대함이었다. 빌립은 예수로부터, 옹졸하거나 인색하거나 또는 쩨쩨한 어떤 것도 결코 볼 수 없었고, 항상_나타나는 지칠 줄 모르는 이런 너그러움을 존경했다.139:5.7 빌립의 인간성에는 감탄할만한 점이 거의 없었다. 때때로 “안드레와 베드로가 사는 성읍 벳새다의 빌립”이라고 불렸다. 분별하는 선견지명이 거의 없었으며; 주어진 환경에서 극적인 가능성을 포착하지 못했다. 비관적이지 않았고; 그저 단조로웠다. 또한 영적 통찰력이 매우 부족했다. 명백하게 우둔한 질문을 묻기 위해, 주님의 가장 심각한 강론 중간에 예수를 중단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경솔함에 대해 결코 책망하지 않았으며; 인내심으로 대했고, 가르침의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그의 무능함을 배려했다. 예수께서는, 이런 방해되는 질문에 대해 한 번이라도 빌립을 책망한다면, 이 정직한 혼에 상처를 줄뿐 아니라, 그런 비난이 빌립을 너무 아프게 해서, 그가 다시는 자유롭게 질문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지은 공간의 세계들에는, 비슷하게 생각이_더딘 필사자가 셀 수 없이 많음을 알았고, 모두가 자기를 의지하고, 질문이나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편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가져오도록 용기를 주고자 했다. 아무튼, 예수께서는 자기가 전하려던 설교보다 빌립의 우둔한 질문에 진정으로 더 관심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뒀다.
139:5.8 사무장인 이 사도는 훌륭한 대중 웅변가는 아니었지만, 개인을 상대할 때 매우 설득력 있고 성공적인 일꾼이었다. 쉽게 용기를 잃지 않았으며; 자기가 맡은 어떤 것에서든지 꾸준하고 매우 끈기 있었다. 그는 “오라”고 말하는 훌륭하고 보기 드문 은사를 갖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개종시킨 나다니엘이 나사렛과 예수의 장단점에 대해 논쟁하려했을 때, 빌립의 효과적인 대답은 “와서 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청중에게 “가라”--곧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고 훈계하는 독단적 설교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서, “오라”는 말로--곧 “나와 함께 가자; 내가 그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겠다”는 말로-- 대처했다. 그리고 이것은 가르침의 모든 형식과 국면에서 항상 효과적인 기법이다. 부모들도 자녀에게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는 대신, 오히려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너에게 더 나은 길을 보여주고 함께 나누겠다”고 말하는, 더 훌륭한 방법을 빌립에게서 배울 수 있다.
139:5.9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하는 빌립의 무능력은, 예루살렘에 있을 때 그리스인이 그에게 와서: “선생님, 우리는 예수를 만나기 원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잘 나타났다. 빌립은 어떤 유대인이든지 그런 질문을 했다면, “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외국인이었고, 빌립은 상급자로부터 그런 문제에 대해 지시받은 기억이 없었으므로; 그가 생각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우두머리 안드레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고, 그런 후에 둘이서 그리스인을 예수께 데려갔다. 마찬가지로, 그는 주님의 지시에 따라서 신자{信者}들에게 전도하고 세례를 주려고 사마리아로 갔을 때, 개종자들이 진리의 영을 받았다는 표시로 그들에게 안수{按手}하는 것을 삼갔다. 베드로와 요한이 이 일을 했는데, 이들은 그때 모{母}교회를 대표해서 그의 일을 관찰하려고, 예루살렘에서 즉시 내려왔다.
139:5.10 빌립은 주님이 돌아가시는 시험 기간을 잘 견뎠고, 열두 사도를 재조직하는 데 참여했으며, 천국을 위하여 혼들을 구하려고 유대인 직계 계층 바깥에서 전진한 첫 사도였는데, 사마리아인을 위한 그의 활동에서,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그의 훗날의 모든 수고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139:5.11 빌립의 아내는 여자 단체 중에서 유능한 회원이었고,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서 급히 도망친 후에, 남편의 복음전파와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의 아내는 두려움 없는 여자였다. 그 여자는 빌립의 십자가 밑에 서서, 그를 죽이는 자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그를 격려했고, 그의 힘이 다하자, 그 여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이야기를 외치기 시작했으며, 성난 유대인이 그 여자에게 달려와 돌로 죽였을 때에야 비로소 잠잠했다. 그들의 맏딸 레아가 그들의 일을 이어받았고, 나중에는 히에라폴리스의 저명한 여{女}선지자가 됐다.
139:5.12 한때 열두 사도의 사무장이었던 빌립은, 가는 곳마다 혼을 구제한, 천국에서 유능한 사람이었으며; 마지막에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달렸고, 히에라폴리스에 묻혔다.
6. 정직한 나다니엘
139:6.1 나다니엘은, 주님께서 직접 뽑은 여섯째이자 마지막 사도였고, 친구 빌립에게 이끌려서 예수께 안내됐다. 그는 여러 가지 사업관계로 빌립과 친분을 맺어왔었는데, 그와 함께 세례 요한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예수를 만났다.
139:6.2 나다니엘은 사도로서 참여했을 때 스물다섯 살이었고, 그 집단에서 둘째로 나이가 어렸다. 일곱 가족 가운데 막내였고 미혼이었으며, 가나에서 함께 사는, 나이 많고 허약한 부모의 유일한 부양자였는데; 그의 형과 누나들은 결혼 했거나 죽었으므로, 거기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나다니엘과 가룟 유다는 열두 사도 가운데 교육수준이 가장 높았다. 나다니엘은 상인이 되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139:6.3 예수께서 나다니엘에게 별명을 직접 지어 준 일은 없었지만, 열두 사도는 곧,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교활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큰 장점이었으며; 정직할 뿐만 아니라 진지했다. 그의 성격상 약점은 자존심이었는데; 자신의 가족과 도시와 명성 그리고 민족에 대해 매우 자만심을 가졌고, 그 모든 것은 지나치지만 않았다면 칭찬받을 만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자신의 개인적 편견을 극단까지 끌고 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 견해에 따라서 사람마다 미리 판단하는 습관이 있었다. 예수를 만나기도 전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라고 주저함 없이 질문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자존심이 강했음에도, 완고하지는 않았다. 예수의 얼굴을 일단 살폈을 때, 그는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139:6.4 열두 사도 중에서 나다니엘은 여러 면에서 색다른 천재였다. 그는 사도들 가운데 철학자요 공상가였지만, 매우 실질적인 공상가였다. 한때는 철학에 깊이 빠졌다가, 다음에는 희귀하고 익살스런 농담을 하곤 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에는, 그가 아마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유능한 이야기꾼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심각한 일은 물론 사소한 일에 대해 나다니엘이 연설하는 것을 듣기를 대단히 좋아했다. 나다니엘은 날이 갈수록, 예수와 천국은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나, 자신은 결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39:6.5 사도들 모두가 나다니엘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며, 그는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사도와 아주 잘 지냈다. 유다는, 나다니엘이 사도 직분을 충분히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한 번은 무모하게도 예수께 몰래 가서 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놨다. 예수께서 말씀했다: “유다야, 신중히 행동해라; 너의 직분을 너무 크게 여기지 말아라. 우리 가운데 누가 형제를 판단하는 권한을 가졌겠느냐? 아버지의 자녀들이 인생의 심각한 일만 함께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하는데: 나는 육신 속의 내 형제들에게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삶을 더 풍성케 하려고 왔다. 유다야, 이제 가서 너에게 맡겨진 일을 잘하고, 너의 형제 나다니엘이 자기 문제를 하나님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둬라.”
그리고 이 기억은, 다른 많은 비슷한 체험과 함께, 자신을_속이는 가룟 유다의 심정에 오래 남아있었다.
139:6.6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께서 여러 번 산으로 멀리 떠나고, 사도들 사이에서 일이 긴박해지고 복잡하게 됐을 때, 그리고 심지어 안드레까지도 그의 울적한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을 갖지 못할 때, 나다니엘이 약간의 철학 혹은 번쩍이는 유머; 또한 재미있는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주곤 했다.
139:6.7 나다니엘의 의무는 열두 사도의 가족을 돌보는 일이었다. 사도 회의에 자주 결석했는데, 그가 맡고 있는 가족 중에서 병자가 생기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면, 지체하지 않고 그 가족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열두 사도는, 자기 가족의 안녕이 나다니엘의 손에 안전하게 맡겨져 있음을 알았기에, 안심하면서 지냈다.
139:6.8 나다니엘이 예수를 가장 존경한 점은 그의 아량이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의 넓은 도량과 관대한 동정심을 생각할 때마다 기운이 솟았다.
139:6.9 나다니엘의 아버지(바돌로메오)가 오순절 직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사도는 그 후에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떠났다. 그의 형제들은, 한때 그들의 철학가요 시인이며 익살꾼이었던 그가 어떻게 됐는지, 다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또한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이었으며, 비록 나중에 생긴 그리스도교 교회의 조직에는 참여하지 않았어도, 주님의 교훈을 멀리 퍼뜨리는 일을 많이 했다. 나다니엘은 인도에서 죽었다.
7. 레위 마태
139:7.1 일곱째 사도인 마태는 안드레에게 선택받았다. 마태는, 세금 징수원, 즉 세리{稅吏}의 집안에 속했지만, 자기가 살던 가버나움에서 관세를 거두는 일을 했다. 서른한 살이었고 결혼했고 네 자녀를 뒀다. 사도 단체에 속해있는 자로서는 유일하게 재산이 있는, 상당히 부유한 사람이었다. 훌륭한 사업가였고, 사교술이 좋았고, 여러 종류의 사람과 친구가 되고, 원만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은사가 있었다.
139:7.2 안드레는 마태를 사도들의 재정 대표로 임명했다. 어떤 면에서는 사도들의 재무 대리인이었고, 공식 대변인이었다.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판단했고 매우 효과적인 선전원이었다.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지만, 매우 열성적인 제자였고, 예수의 사명과 천국의 확실성을 점점 더 믿는 자였다. 예수께서는 레위에게 별명을 주지 않았지만, 동료 사도들은 흔히 그를 “돈_거두는 자”라는 말로 칭했다.
139:7.3 레위의 장점은 대의{大義}에 전심으로 헌신하는 것이었다. 세리였던 그를 예수와 사도들이 받아들인 점은, 지난날에 세금을 거뒀던 사람 편에서 볼 때 넘치도록 감사할 일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도들, 특히 열심당
시몬과 가룟 유다가, 자기네 중에 세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마태의 약점은 안목이 짧은 것과 삶에 대한 물질적 관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문제에서 세월이 갈수록 많은 진전을 보였다. 물론 금고를 계속 채우는 것이 그의 임무였으므로, 가장 귀중한 학습 시간에 많이 참석하지 못했다.
139:7.4 마태가 가장 소중히 여긴 것은 주님의 용서하는 경향이었다. 신앙이란 단지 하나님을 찾는 일에만 필요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하곤 했다. 그는 천국에 대해 “하나님을 발견하는 이 일”이라고 말하기를 항상 좋아했다.
139:7.5 마태는 과거가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훌륭하게 처신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동역자들도 세리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광범하게 받아 적은 사도 가운데 하나로서, 이 기록은 나중에 이사도르가 만든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서술문의 기초로 사용됐는데, 마태에 의한 복음서로 알려지게 됐다.
139:7.6 사업가이자 가버나움의 세관 징수원이었던 마태의 위대하고 유용한 생애는, 다음에 오는 여러 세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다른 사업가와 공공 관리와 정치가를,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도록 인도하는 매개체가 됐다. 마태는 진정으로 명석한 정치가였지만, 예수께 지극히 충성스러웠고, 도래하는 천국의 사자{使者}들이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지 않도록 살피는 과제에 더할 나위 없이 헌신했다.
139:7.7 열두 사도 가운데 마태가 끼어있다는 점은, 자신들에게는 종교적 위안의 혜택이 없다고 오래 전부터 여겨왔던 다수의 기죽고 버림받은 혼들에게, 천국 문을 계속 활짝 열어 놓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버림받고 절망에 빠진 남녀가 예수께 귀를 기울이려고 모여들었으며, 예수께서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139:7.8 마태는, 주님의 교훈을 직접 들은 사람과 신도들로부터 들어오는 헌금을 기꺼이 받았으나, 대중에게 기금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재정 업무를 조용하고 개인적인 방법으로 했고, 대부분의 돈을 비교적 부유한 계층의 관심 있는 신도들로부터 모금했다. 그는 실제로 주님과 사도들의 일을 위하여 자신의 온당한 재산을 사용했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예수를 제외하고, 그들은 그의 이런 관용을 알지 못했다. 마태는, 예수와 동역자들이 자기 돈을 오염된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사도들의 기금으로 공공연하게 헌금하지 못했으며; 다른 신도들의 이름으로 많이 기부했다. 초기에 여러 달 동안, 마태는 그들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가 다소 시험거리가 됐을 때, 자기 돈으로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종종 공급했음을 그들에게 알리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세리를 경멸하는 증거가 나타났을 때, 레위는 자신이 후하게 기부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불탔으나, 항상 잠자코 있도록 자신을 잘 다스렸다.
139:7.9 일주일 동안에 필요한 기금이 예산보다 모자랄 때, 레위는 자기 개인 재산에서 많이 빼서 쓰곤 했다. 또한 때때로 예수의 가르침에 대단히 흥미를 느꼈을 때, 필요한 기금이 걷히지 않아서 자기가 대신 개인적으로 그 기금을 충당해야했음에도, 남아서 그 설명을 듣기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레위는, 많은 돈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을 예수께서 알아주셨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주님께서 그것에 관해 전부 알고 있음을 그는 거의 깨닫지 못했다. 박해가 시작된 후 천국 복음을 전파하러 나갔을 때, 마태에게 실질적으로 동전 하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마태가 그들의 후원자였음을, 사도들은 죽을 때까지 몰랐다.
139:7.10 이런 박해로 인해 신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됐을 때, 마태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북쪽으로 여행했다. 그는 옛 사도 동역자들과 연락이 끊어졌지만, 전도하고 세례를 주면서, 시리아, 갑바도기아, 갈라디아, 비두니아, 드레이스를 지나갔다. 리시마키아의 드레이스에서는, 어떤 비신자 유대인이 로마 병정과 공모하여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다시 태어난 이 세리는, 얼마 전에 주님이 이 세상에 머물렀을 때 그의 교훈으로부터 아주 확실히 배운 구원의 신앙 안에서, 승리의 죽음을 맞이했다.
8. 도마 디두모
139:8.1 도마는 여덟째 사도였고, 빌립에게 선택받았다. 그는 후일에 “의심하는 도마”로 알려지게 됐으나, 동료 사도들이 그를 상습적으로 의심하는 자라고 여기는 일은 결코 없었다. 정말로 논리적이고 회의적인 유형의 정신을 지녔지만, 그의 용기 있는 충성심 때문에, 그를 잘 아는 사람들도 그를 어리석은 회의론자로 여기지 못했다.
139:8.2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됐을 때, 도마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결혼해서 네 자녀가 있었다. 전에는 목수와 석공 일을 했으나, 나중에는 어부 일을 하면서 다리키아에 거주했는데, 그곳은 갈릴리해로 흘러가는 요단강 서쪽 비탈에 있었고, 이 작은 마을에서 지도자층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예리하고 이성적인 정신을 소유했으며, 디베랴에서 사는 훌륭한 부모를 뒀다. 도마는 열두 사도 중에서 진정으로 분석하는 정신을 소유한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사도 집단에서 참된 과학자였다.
139:8.3 도마의 초기 가정생활은 불행했으며; 그의 부모는 결혼 생활이 원만치 못했고, 이것이 도마의 성년기 체험에 반영됐다. 그는 몹시 사귀기 힘들고 다투기 잘하는 성질을 지니면서 자랐다. 그의 부인도 그가 사도들과 합류하게 된 것을 기뻐했으며; 비관적인 남편이 대체로 집을 비우게 됐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도마는 또한 의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와 평화롭게 지내기가 힘들었다. 베드로는 처음에 도마로 인해 매우 화가 나서, 도마는 “비열하고 불쾌하고 항상 의심하는 자”라고, 형 안드레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동역자들은, 도마를 잘 알아갈수록 더 좋아하게 됐다. 그들은 그가 매우 정직하고 단호하게 충성스럽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할 나위 없이 진지했고, 분명히 진실했지만, 날 때부터 헐뜯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비관주의자로서 자라왔다. 그의 분석적인 정신은 의심으로 끔찍해졌다. 열두 사도를 알아가게 되면서 동료 남자들로부터 급속도로 신뢰를 잃게 됐으나, 이처럼 예수의 고상한 성품과 접촉하게 됐다. 주님과 나눈 이런 교제는 도마의 전반적인 기질을 즉시 바꾸기 시작했고, 동료 사람들에 대한 그의 정신적 반응에도 많은 변화가 오도록 영향을 미쳤다.
139:8.4 도마의 큰 강점은 --일단 마음을 정했을 때-- 굽힐 줄 모르는 용기와 함께, 굉장히 분석적인 정신을 가진 것이었다. 그의 큰 약점은 의심스러운 불신감이었는데, 이것은 육신 속의 생애 동안에는 결코 완전히 극복되지 못했다.
139:8.5 열두 사도 조직에서, 도마는 일정을 세우고 관리하는 일에 배정됐고, 사도 단체의 업무와 활동을 유능하게 지휘하는 자였다. 그는 훌륭한 행정가였고 우수한 사업가였지만, 자신의 변화무쌍한 기분으로 인하여 손해를 많이 봤는데; 하루는 이런 사람이었다가 이튿날은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사도들의 일원이 됐을 때, 그는 시무룩하게 우울해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예수 및 사도들과 접촉한 것이, 이 과민한 내성적 성격의 그를 많이 치료해줬다.
139:8.6 예수께서는 도마와 무척 즐겁게 지냈고, 개인적인 대화를 여러 번 길게 나눴다. 그가 사도들 가운데 있음은, 솔직하게 의심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됐으며, 고심하는 허다한 인물이, 비록 예수의 가르침의 영적이고 철학적인 국면에 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더라도, 그들도 천국으로 들어오도록 용기를 줬다. 열두 사도 가운데 도마가 들어있음은, 솔직하게 의심하는 자들도 예수께서 사랑한다는, 변함없는 선언이었다.
139:8.7 다른 사도들은 예수의 충만한 인격에서 어떤 특별하고 탁월한 특징 때문에 그를 존경했으나, 도마는 비할 바 없이 균형을 갖춘 주님의 성품 때문에 존경했다. 도마는, 사랑스럽고 자비로우면서도 확고하게 공정하고 공평한; 단호하지만 결코 고집스럽지 않은; 침착하지만 결코 무관심하지 않은; 돕고자 하고 동정심이 많지만 결코 간섭하거나 독재적이지 않은; 강하지만 동시에 온화한; 긍정적이지만 거칠거나 무례하지 않은; 부드럽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순수하고 순결하지만 동시에 씩씩하고 적극적이고,강인한; 진정으로 용감하지만 결코 성급하거나 경솔하지 않은; 자연을 사랑하지만 자연을 숭배하는 모든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운; 해학적이고 쾌활하지만 경솔함과 천박함이 없는 예수를, 점점 더 존경하고 받들었다. 도마를 매료시킨 것은, 이렇게 비길 데 없이 균형 잡힌 인품이었다. 그는 아마 열두 사도 가운데 누구보다도, 예수를 최고로 지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인격을 감상했을 것이다.
139:8.8 열두 사도가 회의하는 중에 도마는 언제나 신중했고, 안전한 정책을 첫째로 옹호했으나, 그의 보수적 의견이 투표로 부결되거나 거부되면, 결정된 계획표를 이행하는 데, 그가 항상 제일 먼저 두려움 없이 뛰어들었다. 그는 무모하고 외람된 어떤 기획에 대해서는 계속 반복하여 반대하려고 했으며; 격렬한 가운데 끝날 때까지 논쟁하곤 했지만, 안드레가 그 제안을 표결에 부쳐서, 그가 그렇게 격렬하게 반대했던 안건을 열두 사도가 통과시키고 나면, 도마가 제일 먼저 “갑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훌륭한 패자였다. 상처받은 감상에 붙잡혀있지도, 더 키우지도 않았다. 예수께서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여러 번 반대했지만, 주님께서 그런 모험을 택하기로 결정하면, “동지들, 어서 갑시다. 가서 그와 함께 죽읍시다”라는 용기 있는 말을 제일 먼저 하면서 사도들을 집결시키는 사람은 항상 도마였다.
139:8.9 도마는 어떤 면에서는 빌립과 비슷했는데; 그 역시 “보여주기”를 원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의 의심스런 표현은, 전혀 다른 지적{知的} 작용에 근거했다. 도마는 단순하게 회의적{懷疑的}이 아닌, 분석적인 사람이었다. 개인의 육체적 용기에 관한 한, 열두 사도 중에서 그가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다.
139:8.10 도마는 매우 힘든 날들을 어느 정도 겪었는데; 종종 우울했고 풀죽어있었다. 아홉 살 때 쌍둥이 여동생을 잃은 것이, 어린 시절에 많은 슬픔을 줬고, 그것이 후반기 생애의 변덕스런 성격상 문제를 악화시켰다. 도마가 낙심하게 되면, 어떤 때에는 나다니엘이, 어떤 때에는 베드로가, 그리고 알패오 쌍둥이 가운데 하나가, 그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데 자주 도움을 줬다. 가장 억눌렸을 때, 그는 불행하게도 예수와 직접 대면하지 않도록 피하려고 항상 애썼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알았고, 이 사도가 그렇게 우울증으로 고난당하고 의심으로 지쳤을 때, 그에 대해 이해심 있는 연민의 정을 가졌다.
139:8.11 도마는 때때로 하루나 이틀 동안 혼자 떠나 있을 수 있도록 안드레에게 허락을 받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행로가 현명치 않다는 것을 곧 알았으며; 자신이 낙심했을 때에는 일하면서 동역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남아있는 것이 상책임을 일찍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감정적 생활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는 항상 사도로서 남아있었다.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 오면, “갑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항상 도마였다.
139:8.12 도마는, 의심을 품고, 그것에 대면하고,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한 본보기였다. 훌륭한 정신을 가졌으며; 트집 잡는 비평가가 아니었다. 논리적 사색가였으며; 예수와 동료 사도들에게는 매서운 시험거리였다. 예수와 그의 활동이 진짜가 아니었다면, 도마 같은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사실에 대한 예리하고 확실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사기나 속임수가 나타나자마자, 도마는 그들 모두를 버렸을 것이다. 예수에 관하여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서 한 일에 관하여,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진정한 과학자적 정신을 가진 한 사람은--곧 도마 디두모는-- 주님과 인간 동역자들과 함께 살았고 일했으며, 나사렛
예수를 믿었다.
139:8.13 도마는 재판과 십자가형이 진행되는 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절망의 수렁에 빠져있었지만, 용기를 되찾았고 사도들에게 합류했으며,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를 환영하는 자리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 의심으로 인한 억눌림에 한동안 굴복했으나, 결국에는 신앙과 용기를 되찾았다. 오순절
이후에 사도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했고, 박해로 신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자,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키프로스, 크레테, 북아프리카 해안, 시칠리로 갔다. 그리고 도마는, 로마 정부 대리인들에게 체포되어 말타에서 처형될 때까지, 전도하고 세례 주기를 계속했다. 죽기 불과 몇 주 전에, 그는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9. -- 10. 야고보와 유다 알패오
139:10.1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유다는 케레사 근처에 사는 쌍둥이 어부였고, 아홉째와 열째 사도였으며,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가 선택했다. 이들은 스물여섯 살이었고 결혼했으며, 야고보는 세 자녀, 유다는 두 자녀를 뒀다.
139:10.2 이 평범한 두 어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고 예수께서도 그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그의 강론을 중단시키는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동료 사도들의 철학적 토의나 신학적 논쟁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했으나, 자신들이 그렇게 막강한 사람들 집단에 속했다는 것을 무척 기뻐했다. 이 두 사람은, 겉모습, 정신적 특질, 및 영적 감지 정도에서 거의 동일했다. 한 사람을 묘사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다.
139:10.3 안드레는 그들에게 대중의 치안 유지 업무를 맡겼다. 그들은 설교 시간에 안내원들의 우두머리였고, 사실상 열두 사도 중에서 일반적인 일을 하는 하인이자 심부름꾼이었다. 물자를 공급하는 데 빌립을 도왔고, 나다니엘을 위해서는 가족에게 돈을 전달했고, 사도들 가운데 누구에게든지 도움을 줄 준비가 항상 돼있었다.
139:10.4 보통사람들로 이뤄진 대중은, 자신과 비슷한 두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서 직분을 감당하는 영광을 보고 크게 용기를 얻었다. 이 평범한 쌍둥이가 사도로 받아들여졌다는 바로 그 사실이, 마음 약한 다수의 신도를 천국으로 불러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공식 안내원들의 지시를 따르고 관리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더 편하게 받아들였다.
139:10.5 또한 다대오와 레비우스라고도 불렸던 야고보와 유다는, 강점은 물론 약점도 없었다. 제자들이 그들에게 붙인 별명은 평범함을 뜻하는 좋은 의미를 가진 용어였다. 그들은 “모든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들”이었는데; 그들도 그 사실을 알았고 또한 그것에 대해 유쾌하게 생각했다.
139:10.6 야고보 알패오는 주님의 단순함을 특별히 사랑했다. 이 쌍둥이는 예수의 정신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자신들과 주님의 마음 사이에 호의적인 연결이 있음을 납득했다. 그들의 정신은 높은 계층에 속하지 않았으며; 경건함에서는 우둔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나, 자신의 영적 본성에서는 진정한 체험을 했다. 그들은 예수를 믿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었고 천국의 동료였다.
139:10.7 유다 알패오는 주님의 허식 없는 겸손으로 인해 예수께 끌렸다. 그런 인격적 위엄을 동반한 그런 겸손이 유다에게 큰 매력을 줬다. 예수께서 자신의 비범한 행동에 관해 항상 침묵을 지키고자한다는 그 사실이, 이 단순한 본성의 자녀들에게 엄청난 감명을 줬다.
139:10.8 쌍둥이는 너그러운 단순한_정신을 지닌 도우미였고, 모두가 그들을 사랑했다. 예수께서는 재주가 하나뿐인 이 젊은이들을 천국에서 자신의 개인 참모라는 명예로운 지위에 받아들였는데, 세상에는 그런 단순하고 두려움에_지배당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혼이 있으므로, 자기가 퍼부어 줄 진리의 영 안으로, 그리고 자기와 나누는 적극적이고 신뢰하는 교제 안으로 그들을 환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소함을 경멸하지 않았고, 단지 악과 죄를 경멸했다. 야고보와 유다는 보잘것없었지만, 또한 신실했다. 그들은 단순하고 무지했지만, 또한 도량이_넓고 친절하고 관대했다.
139:10.9 그리고 주님이 어떤 한 부자에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를 도와주지 않으면 전도자{傳道者}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던 날, 이 겸손한 사람들이 얼마나 긍지를 가졌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쌍둥이가 그의 조언자들 가운데 있음을 봤을 때, 그들은 예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직 신성한 기관만이--곧 하늘 나라만이-- 그런 진부한 인간적 기초 위에 영원히 세워질 수 있었다!
139:10.10 그들은 예수와 교제하는 동안 공개석상에서 단지 한 두 번 예수께 질문했다. 주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드러내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유다가 한 번 예수께 질문한 적이 있었다. 열두 사도 가운데서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없을 것이라는 점에 조금 실망하게 되어, 그가 감히 물었다: “그렇지만 주님, 당신께서 그렇게 세상 사람에게 자신을 공표 하시면, 당신의 선하심을 어떻게 특별히 나타내서 우리에게 특권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139:10.11 쌍둥이는 끝까지, 재판과 십자가형과 절망의 어두운 날들까지 성실히 봉사했다. 그들은 중심에서 예수에 대한 신앙을 한 번도 잃지 않았으며, (요한을 제외하고) 그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의 설립을 납득할 수 없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직후에, 가족에게 돌아가서 고기잡이를 했으며; 그들의 업무는 끝났다. 그들에게는 좀 더 복잡한 천국의 전투장으로 나갈 역량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우주를 지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아들과 가깝게 개인적으로 교제한 4년을, 명예롭고 복 받은 것으로 의식하면서 살다가 죽었다.
11. 열심당 시몬
139:11.1 열심당 시몬은 열한째 사도로서, 시몬 베드로에게 선택됐다. 훌륭한 조상을 가진 유능한 사람이었고, 가버나움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사도가 됐을 때 스물여덟 살이었다. 격렬한 선동가였고, 또한 생각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열심당이라는 애국 조직에 온통 열중하기 전에는, 가버나움에서 상인{商人}이었다.
139:11.2 열심당
시몬은 사도 집단의 기분전환과 휴식을 담당했고, 열두 사도의 놀이 생활과 기분 전환 활동을 매우 효율적으로 조직한 사도였다.
139:11.3 시몬의 강점은 영감{靈感} 어린 충성심이었다. 사도들은, 천국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결정하지 못해서 머뭇거리는 남자나 여자를 발견하면 시몬을 부르곤 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부르짖는 이 열성적인 사도가, 모든 의심을 해결하고, 모든 망설임을 없애고, 새로운 혼이 “신앙으로 인한 자유와 구원의 기쁨”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도와주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139:11.4 시몬의 큰 약점은 굳어버린 물질적_경향에 있었다. 그는 유대 민족주의자로부터 영적 기질의 국제주의자로, 자신을 빨리 전환시킬 수 없었다. 그런 지적이고 감정적인 전환을 가져오기에 4년은 너무 짧았지만, 예수께서는 언제나 인내심을 갖고 그를 대했다.
139:11.5 시몬이 예수를 그토록 존경한 한 가지는, 주님의 고요함, 곧 그의 확신과 평정{平靜}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침착성이었다.
139:11.6 시몬은 과격한 혁명가였고, 동요를 일으키는 두려움 없는 선동자이기는 했으나, “땅에는 평화요, 사람들 가운데는 호의”를 외치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설교자가 되기까지, 자신의 불같은 성격을 점차 완화시켰다. 시몬은 굉장한 토론자였으며; 논쟁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학식 있는 유대인 중에서 율법을 따지는 지성인, 또는 그리스인의 지적 궤변을 상대해야 할 경우에, 그런 과제는 항상 시몬에게 배정됐다.
139:11.7 그는 타고난 반항자였고, 인습을 타파하는 자로서 훈련받았지만, 예수께서는 하늘 나라라는 더 높은 개념으로 그를 끌어 올렸다. 그는 반항적인 집단에 항상 가담했었으나, 이제는 진보하는 집단, 즉 영과 진리의 무제한적이고 영원한 진보에 참여했다. 시몬은 뜨겁게 충성하고 열심히 몸소 헌신하는 사람이었으며, 예수를 깊이 사랑했다.
139:11.8 예수께서는, 사업가, 노동자, 낙관론자, 비관론자, 철학자, 회의론자, 세리, 정치가, 및 애국자들과 한편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139:11.9 주님은 시몬과 많이 이야기했지만, 이 열렬한 유대 민족주의자를 국제주의자로 만들기에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사회, 경제, 및 정치 질서를 개선시키기 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자주 말씀했으나, 항상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덧붙였다: “그것은 하늘 나라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헌신해야한다. 우리가 할 일은, 높은 곳에 있는 영적 정부의 대사{大使}가 되는 것이며, 신성한 아버지의 뜻과 성품을 대변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우리가 당장 관여해서는 안 되는데, 아버지는 그 정부의 꼭대기에 계시고, 우리는 그의 신임장을 지니고 있다.”
시몬이 납득하기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주님의 가르침의 의미 가운데 어떤 것들을 점차 파악하기 시작했다.
139:11.10 예루살렘의 박해로 인해 분산된 후에, 시몬은 일시적 은퇴기간을 가졌다. 그는 글자 그대로 무너졌다. 민족주의적 애국자로서 예수의 교훈을 좇는 일에 빠져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잃었다. 절망에 빠졌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소망을 되찾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러 나아갔다.
139:11.11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나일강을 따라 올라가며 일한 후에, 아프리카 심장부로 들어가면서, 가는 곳마다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줬다. 이처럼 늙고 쇠약해질 때까지 수고했다. 그는 아프리카 심장부에서 죽었고 거기에 묻혔다.
12. 가룟 유다
139:12.1 가룟 유다는 열두째 사도로서, 나다니엘에게 선택됐다. 그는 남부 유대지방의 작은 도시 가룟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일 때 부모가 여리고로 이사했고, 세례 요한의 전도와 업무에 흥미를 느끼기 전에는, 거기에 살면서 아버지의 여러 사업에 종사했다. 유다의 부모는 사두개인이었으며, 그래서 아들이 요한의 제자로 참여하자, 그와 인연을 끊었다.
139:12.2 나다니엘이 유다를 다리키아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갈릴리 바다 남쪽 끝에서 생선 말리는 사업에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었다. 사도들과 합세했을 때 서른 살이었고 미혼이었다. 아마도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학식이 높았으며, 주님의 사도 일행 중에서 유일한 유대지방 사람이었다. 유다는 개인적 강점이 될 만한 탁월한 특징을 전혀 갖지 않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많은 문화적 특징 그리고 훈련으로 말미암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훌륭한 사색가였으나, 언제나 진실하게 정직한 사색가는 아니었다. 유다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신에게 정말로 진지하지 않았다.
139:12.3 안드레가 유다를 열두 사도의 회계로 임명했는데, 그에게 아주 어울리는 자리였고, 주님을 배신하기 직전까지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맡은 직무를 수행했다.
139:12.4 일반적으로 호감을 주고 절묘하게 매력적인 주님의 인격 이외에, 유다가 예수를 존경했던 유별난 특징은 없었다. 유다는, 갈릴리인 동역자들을 차별하는 유대지방의 편견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으며; 여러 면에서 예수까지도 마음 속으로 비판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으뜸 되시는 분”이라고, 열한 사도가 생각했던 완벽한 사람인 그분을, 자만심이 가득한 이 유대지방사람은 마음 속으로 감히 자주 비판했다. 정말로 그는, 예수가 겁이 많고 자신의 권능과 권위를 주장하기를 약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39:12.5 유다는 훌륭한 사업가였다. 몇몇 사도들의 허둥거리는 사업 방식을 언급하지 않고서라도, 예수 같은 그런 이상주의자의 재정문제를 관리하는 데는, 재치와 역량 그리고 각고의 헌신을 수반하는 참을성이 요구됐다. 유다는 진정으로 훌륭한 행정가, 멀리 내다보고 유능한 재정가였다. 그리고 조직에 대해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열두 사도 중에서 아무도 유다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알 수 있는 한, 가룟 유다는 비길 데 없는 회계, 학식 많은 사람, (가끔 비판적이긴 했어도) 충성스런 사도, 그리고 모든 면에서 성공적인 사람이었다. 사도들은 유다를 사랑했으며; 그는 진정으로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예수를 믿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우리는 그가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있다. 유다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말이 옳음을 잘 나타내 준다: “사람에게 바르게 보이지만 그 끝은 죽음인 길이 있다.” 죄와 죽음의 경로로 향하도록 기분 좋게 조정하는 평화스런 속임수에 희생물이 되기는 무척 쉽다. 유다는 재정적으로 주님과 동료 사도들에게 항상 충실했음을 기억하라. 돈 때문에 주님을 배반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139:12.6 유다는 현명하지 못한 부모의 외아들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지나친 풍요로움을 그에게 줬고, 응석을 다 받아줬으며; 그는 버릇없는 아이였다. 자라나면서, 자신을 지나치게 중요시했다. 불쌍한 패자였다. 공정함에 대해 산만하고 왜곡된 관념을 가졌으며; 미움과 의심을 탐닉했다. 친구들의 언행을 오해하는 데 전문가였다. 유다는 전 생애를 통해서, 자신에게 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복수하는 습관을 길렀다. 가치와 충성에 대한 그의 감각에 결함이 있었다.
139:12.7 유다는 예수께 신앙의 모험이었다. 주님은 처음부터 이 사도의 약점을 완전히 이해했고, 그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모든 창조된 존재에게, 구원과 생존의 완전하고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본성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대한 피조물의 헌신이 진지하고 전심으로 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의심이 갈 경우에, 사람의 심판자들이 의심스런 후보자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변치 않는 관례임을, 이 세상 필사자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세상의 구경꾼도 알기를 바랐다. 영원한 생명의 문은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으며; “누구든지 들어 갈 수 있으며”; 들어오는 그 사람의 신앙 외에는 어떤 제약도, 자격조건도 없다.139:12.8 예수께서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 약하고 혼동하는 사도를 변화시키고 구원하기 위한 모든 가능한 일을 하면서, 유다가 끝까지 가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빛을 정직하게 받아들여서 합당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그 빛이 혼 안에서 어둠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천국에 대한 예수의 교훈에 관해서, 유다가 지적으로는 성장했어도, 다른 사도들이 했던 것 같은, 영적 성품을 획득하는 데서는 발전하지 못했다. 그는 개인적인 영적 체험에서는 만족스런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139:12.9 유다의 개인적 실망은 점점 커졌고, 결국 분노의 희생물이 됐다. 그의 감정은 여러 번 상처 받았고, 가장 친한 친구들과 주님까지도 비정상적으로 점점 더 많이 의심하게 됐다. 이윽고, 비록 동역자들과 주님을 배신하는 것일지라도, 자기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139:12.10 그러나 이런 사악하고 위험한 생각은, 고마워하는 한 여자가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의 발에 붓기 전에는, 확실한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유다에게는 그런 행동이 낭비로 여겨졌으며, 자신의 공개적 반론을 모든 사람이 듣는 앞에서 예수가 묵살했을 때, 그것은 너무 버거웠다. 그 사건은, 축적돼온 미움, 상처, 원한, 편견, 질투, 그리고 일생 최대의 원한을 품게 했고, 그는 누구에게 할지 몰랐던 복수를 하기로 작정했으며; 그의 불행한 생애의 철저히 야비한 드라마에서, 그의 모든 악한 본성을 죄 없는 한 사람에게 나타냈는데, 그가 진취적인 빛의 나라로부터 스스로_택한 어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사건에서, 예수가 우연히 주연{主演}이 돼있었기 때문이다.
139:12.11 주님은 그가 넘어지고 있음을 개인적으로나 공개적으로 여러 번 경고했지만, 앙심 품은 인간 본성을 다룸에서는, 신{神}의 경고가 대개 아무 소용없다. 예수께서는 유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의 도덕적 자유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 큰 시험이 마침내 다가왔다. 분노의 아들은 실패했으며; 과장된 자만심의 비열한 거만함과 복수심으로 가득한 마음의 비열한 명령에 굴복해서, 빠른 속도로 혼란과 절망과 타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139:12.12 그런 후에 유다는, 주와 주님을 배신하는 비열하고 부끄러운 책략에 가담하여, 흉악한 계획을 신속하게 실행했다. 분노로_싹튼 불충한 배반의 계획을 열심히 꾸미는 동안, 그는 잠시 후회와 수치심을 체험했으며, 이렇게 제 정신이 있는 동안, 자기 정신 속에서 일종의 비겁한 변명으로, 예수께서 마지막 순간에 자기 권능을 발휘하여 자신을 구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다.
139:12.13 비열하고 죄 많은 일이 모두 수행된 후에, 오랫동안 품어온 복수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은 30을 받고 친구를 가볍게 팔아 넘겼던 이 변절자는, 필사 실존의 실체들로부터 도망치는 드라마에서, 급히 달려 나가 마지막 장면을 연출했다--즉 자살했다.
139:12.14 열한 명의 사도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수께서는 이 배반자를 오직 동정심으로 바라봤다. 세계들은 유다를 용서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의 이름은, 방대한 우주에서 두루 회피하는 이름이 됐다.
139:0.2 사도들은 하늘 나라에 대하여 예수로부터 배웠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나라, 즉 유란시아에 살고 있는,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서 진화하는 다른 세계들에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그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이 열두 사람은, 다양한 유형의 인간 기질을 대표했고, 학교교육을 받아 서로 비슷하게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100년 전에 갈릴리의 이방인 주민을 강제로 개종시킨 결과로, 이 갈릴리 어부 가운데 다수는 이방인의 핏줄을 상당히 지니고 있었다.
139:0.3 사도들 전체가 무식하고 교육받지 못했다고 간주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 알패오 쌍둥이를 제외한 그들 모두가 회당 학교를 졸업했으므로, 히브리 성서에 대해 그리고 그 당시 통용되는 대부분의 지식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훈련돼있었다. 일곱 명이 가버나움 회당 학교를 졸업했고, 갈릴리 전체에서 더 좋은 유대인 학교는 없었다.
139:0.4 이 천국 사자{使者}들을 “무식하고 교육받지 못했다”고 너희의 기록들이 언급하는데, 이는 그들이 랍비의 학문에 대해 무지하고, 율법학자의 성서 해석 방법을 훈련받지 않은 평신도였다는 관념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그들은 소위 고등교육이 결여돼있었다. 오늘날로 볼 때, 그들은 확실히 교육받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될 수 있고, 심지어 어떤 사회 집단에서는 교양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 모두, 경직되고 편견에 치우친, 똑같은 교육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소년기부터 줄곧, 그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각자 체험으로 터득했다.
1. 안드레, 처음 선택된 사도
139:1.1 천국 사도 단체의 우두머리인 안드레는 가버나움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아이--곧 본인, 남동생 시몬, 그리고 세 여동생-- 가운데 나이가 제일 많았다. 이미 고인{故人}이 된 그의 아버지는, 가버나움의 고기잡이 항구인 벳새다에서 고기를 말려 파는 일에 종사하는 세베대의 동업자였다. 안드레는 사도가 됐을 때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지만, 결혼한 동생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둘 다 어부였고,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동업자였다.
139:1.2 안드레는 사도로 뽑힌 서기 26년에 예수보다 한 살 많은 서른세 살이었고, 사도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는 훌륭한 선조를 둔 혈통에서 태어났고, 열두 사도 중에서 가장 유능했다. 웅변술을 제외하면, 모든 동료가 가질만한 역량을 거의 다 가졌다. 예수께서 안드레에게는 애칭, 즉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을 지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들이 곧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듯이, 또한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지닌 명칭으로 안드레를 불렀다.
139:1.3 안드레는 훌륭한 조직가이기도 했으나, 오히려 경영자로서 더 훌륭했다. 그는 네 사도로 구성된 핵심 요원 가운데 하나였지만, 예수께서 그를 사도 집단의 우두머리로 임명했으므로 형제들과 함께 근무해야했고, 한편 나머지 세 사람이 주님과 매우 긴밀하게 교류하는 특권을 누렸다. 안드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도 단체의 책임자로 남아있었다.
139:1.4 안드레가 효과적인 설교자였던 적은 없었으나, 개인을 상대로 유능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처음 선택된 사도로서 즉시 동생 시몬을 예수께 데려왔다는 점에서, 천국의 선구적인 선교사 역할을 했으며, 시몬은 나중에 가장 훌륭한 천국 설교자 가운데 하나가 됐다. 안드레는, 열두 사도를 천국 사자로 훈련시키는 수단으로, 개인 업무 계획표를 활용하는 예수의 방침에 최고의 후원자였다.
139:1.5 예수께서 사도들을 사적{私的}으로 가르칠 때든지, 군중에게 전도할 때든지, 안드레는 대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능통했으며; 이해심 많은 실행가였고 능률적인 경영자였다. 자기 권한 밖의 문제라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그것을 바로 예수께 가져갔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알게 된 모든 문제를 신속히 결정했다.
139:1.6 안드레와 베드로는, 성품과 기질에서 많이 달랐으나, 훌륭하게 같이 지냈다는 점은 그들에게 명예가 되도록 영원히 기록에 남겨야 할 것이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웅변술을 전혀 질투하지 않았다. 연장자인 안드레 같은 유형의 사람이 자기보다 어린 재주 있는 형제에게, 그렇게 충심에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것을 보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안드레와 베드로는, 각자의 역량이나 업적에 대해 조금도 질투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다. 오순절 늦은 밤에, 주로 베드로의 열광적이고 영감 있는 설교를 통해서 2천 명의 혼이 천국에 더 들어오게 되자, 안드레가 동생에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동생을 둬서 기쁘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했다: “형님이 나를 주님께 데려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나를 주님 옆에 꾸준히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일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안드레와 베드로는 통례에 해당되지 않았는데, 형제간에도 함께 평화롭게 살고 효과적으로 함께 일할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139:1.7 오순절 이후에는 베드로가 유명해졌지만,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 불리면서 나머지 생애를 지내는 것이, 형 안드레를 한 번도 초조하게 만든 적이 없었다.
139:1.8 모든 사도들 가운데, 안드레가 사람을 가장 잘 판단했다. 회계에게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때에도, 그는 가룟 유다의 심정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자신이 염려하는 것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안드레의 위대한 천국 봉사는, 복음을 선포하도록 내보낼 첫 선교사들을 선정하는 문제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충고한 것, 또한 천국을 경영하는 직무의 조직에 대해 이 초기 지도자들에게 조언한 것이었다. 안드레는 젊은이들의 숨겨진 자원과 잠재된 재주를 발견하는 데 큰 은사를 갖고 있었다.
139:1.9 예수께서 높은 곳으로 상승한 후에 곧바로, 안드레는 떠나간 주님의 말씀과 행적들 가운데 많은 것을 손수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안드레가 죽은 후에, 이 개인기록의 다른 사본들이 만들어졌고, 그리스도교 교회의 초기 선생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회람{回覽}됐다. 안드레의 이런 비공식 기록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생애에 관하여 사람들이 상당히 일관적인 이야기로 만들 때까지, 훗날에 편집되고 개정되고 바뀌고 첨부됐다. 이런 바뀌고 개정된 약간의 사본들 가운데 마지막 사본은, 열두 사도 중에서 처음 선택된 이 사도가 원본을 쓴 후 100년이 지났을 즈음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불에 타버렸다.
139:1.10 안드레는, 명석한 통찰력, 논리적 사고, 확고한 판단력의 사람이었는데, 그의 중요한 성격상 장점은 비할 바 없는 안정감이었다. 그의 기질의 단점은 열정이 부족한 것이었으며; 현명하게 칭찬하여 동역자들을 북돋아 주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가치 있는 업적에 대해 그가 이렇게 칭찬에 인색했던 것은, 아첨이나 위선에 대한 혐오감 때문이었다. 안드레는, 다재다능하고, 침착하고, 자립적이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성공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139:1.11 사도들 모두가 예수를 사랑했지만, 열두 사도 각자가 그에게 이끌린 것은, 각 사도에게 특별히 호감을 주는 몇몇 특정한 인격 특징 때문이었음이 사실이다. 안드레는, 일관적인 신중함과 변치 않는 위엄 때문에 예수를 존경했다. 일단 예수를 알게 되면, 사람들은 친구에게도 예수를 알게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됐으며; 진정으로 모든 세상 사람이 예수를 알게 되기 원했다.
139:1.12 후일의 박해로 인해 결국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게 됐을 때, 안드레는,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마게도니아를 지나 여행했고, 수천 명을 천국으로 인도한 후에, 결국 아가야의 파트레에서 체포되어 십자가형을 당했다. 이 건장한 사람이 십자가에 달려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만 이틀이나 걸렸고, 이런 비극적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하늘 나라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효율적으로 선포하기를 계속했다.
2. 시몬 베드로
139:2.1 사도로 가입했을 때, 시몬은 서른 살이었다. 결혼해서 세 아이가 있었고, 가버나움 근처 벳새다에서 살았다. 형 안드레와 장모가 함께 살았다. 베드로와 안드레, 둘 다 세베대의 아들들과 동업하는 어부였다.
139:2.2 주님은, 안드레가 시몬을 둘째 사도로 소개하기 전부터 그를 알았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줄 때,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했으며; 그것은 일종의 별명이었다. 시몬은 모든 친구에게 엉뚱하고 충동적인 사람으로 유명했다. 이렇게 가볍게 지어준 별명에, 나중에는 예수께서 새롭고 뜻 깊은 의미를 덧붙였던 것이 사실이다.
139:2.3 시몬 베드로는 충동적이고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격한 감정에 제멋대로 빠지면서 자라왔으며; 생각 없이 계속 말을 내뱉었으므로, 빈번하게 곤경에 처했다. 이런 종류의 경솔함은, 친구와 동역자들 모두에게도 끊임없는 곤경을 일으켰고, 주님으로부터 가벼운 꾸중을 많이 듣게 된 원인이었다. 생각 없이 하는 그의 말로 인해 더 많은 곤경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많은 계획과 개요를 공공연히 털어놓기 전에, 형 안드레와 먼저 상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터득했기 때문이다.
139:2.4 베드로는 감동적이고 극적인 유창한 웅변가였다. 또한 천부적이고 영감 주는 지도자였고 생각이 빨랐으나, 깊이 추론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모든 사도의 질문을 전부 합한 것보다 더 많이 질문했고, 대부분의 질문이 선하고 적절했지만, 다수는 생각 없이 나온 어리석은 것이었다. 베드로는 심지{心地}가 깊지 못했으나, 자기 마음을 잘 알았다. 따라서 결정을 빨리 하고 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호숫가에서 예수를 보고 놀라서 떠드는 동안,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려고 물에 뛰어 들어 해변으로 헤엄쳐 나갔다.
139:2.5 베드로가 예수를 가장 존경하게 됐던 하나의 특징은, 그의 탁월한 온화함이었다. 베드로는 예수의 관용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잘못을 저지른 자를 일곱 번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교훈을 결코 잊지 못했다. 대제사장의 정원에서 마음에도 없이 예수를 부인한 직후에, 그 어둡고 우울했던 날들 동안, 주님의 용서하는 성품으로부터 받았던 이 인상을 많이 회상했다.
139:2.6 시몬 베드로는 비참할 정도로 변덕스러웠는데;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갑자기 옮겨가곤 했다. 처음에는 예수께 자기 발을 씻기지 못하게 했다가, 주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는, 온 몸을 씻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국 베드로의 약점이 머리에 있고, 마음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용기와 비겁함을 동시에 지닌 가장 희한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성품 중에서 가장 큰 장점은 충성심과 우애였다. 베드로는 정말로 진실하게 예수를 사랑했다. 그러나 이런 타오르는 격렬한 헌신에도, 너무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어서, 주이신 주님을 부인하게 되기까지, 한 여종이 자기를 놀리도록 내버려뒀다. 베드로는 박해나 다른 형태의 직접 공격은 잘 견뎠지만, 조롱 앞에서는 기운이 빠지고 위축됐다. 정면 공격 앞에서는 용감한 병사였으나, 후면 습격으로 놀랄 때에는 두려움에 떠는 겁쟁이였다.
139:2.7 베드로는, 사마리아인 가운데서 빌립의 업무와, 이방인 가운데서 바울의 업무에 대해, 예수의 사도들 중에서 맨 먼저 두둔하고 나섰는데; 나중에는 안디옥에서 조롱하는 유대교전향자들에게 공격을 받게 되자, 태도를 바꿔 이방인에게서 잠시 떠나 있었는데, 바울로부터 대담한 비난을 받게 됐을 뿐이다.
139:2.8 그는 사도들 중에서 처음으로, 예수의 혼합된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에 대해 진심으로 고백했고, 또한 --유다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예수를 부인한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그렇게 심한 공상가는 아니었지만, 환희의 구름을 타고 극적으로 몰입하는 열정에 빠졌다가, 평범하고 단조로운 세상적인 현실로 내려오기를 싫어했다.
139:2.9 예수를 따르면서, 글자 그대로 그리고 비유로 말하자면, 그는 앞에서 이끌던가 아니면 뒤에 쳐졌다--“아주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갔다”. 그러나 열두 사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설교자였으며; 바울을 제외하고는, 한 세대동안 다른 어떤 개인보다 더 많이 천국을 설립했고, 천국 사자들을 온 세상 끝까지 보냈다.
139:2.10 그는 주님을 경솔하게 부인한 후에 자아를 발견했고, 안드레의 동정심 있고 이해심 많은 안내를 받아서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가는 데 앞장섰으며, 한편 사도들은 십자가형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보려고 기다렸다. 예수께 용서받았음을 완전히 확신했을 때, 주님의 양떼에 다시 받아들여졌음을 깨달았을 때, 천국의 불이 그의 혼 속에서 아주 밝게 타올라서, 어둠 속에 앉아있던 수천 명에게 구원의 큰 빛이 됐다.
139:2.11 예루살렘을 떠난 후, 그리고 바울이 이방인의 그리스도교 교회들 가운데서 정신적 지도자가 되기 전에, 베드로는 바벨론으로부터 고린도까지 모든 교회를 방문하면서 널리 여행했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 가운데 여러 교회도 방문하고 보살피기까지 했다. 비록 베드로와 바울이, 기질이나 교육 수준, 그리고 신학에서도 서로 많이 달랐지만, 나이가 든 후에는 교회를 발전시키는 일에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일했다.
139:2.12 베드로의 방식과 가르침 중에서 어느 정도는, 누가가 기록한 설교와 마가복음에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박력 있는 태도는, 베드로 전서로 알려진 그의 편지에 더 잘 나타나 있는데; 적어도 바울의 제자가 나중에 그 편지를 고치기 전에는 정말로 그랬다.
139:2.13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결국 실제로 그리고 진정으로 유대인 메시야였다고 유대인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과오를 계속 범했다. 죽는 날까지, 시몬 베드로의 마음 속에서는,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야라는 개념,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원자라는 개념,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 즉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계시라는 개념, 이 세 가지 사이에서 계속 갈팡질팡했다.
139:2.14 베드로의 아내는 대단히 능력 있는 여자였다. 여러 해 동안 여자 단체 회원으로서 일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자, 그의 선교여행은 물론 교회 방문에도 동행했다. 그리고 저명한 남편이 목숨을 바치던 날, 그 아내도 로마 경기장 안에서 맹수들에게 던져졌다.
139:2.15 이렇게 예수와 친숙했던 사람, 핵심 집단 가운데 하나였던 사람 베드로는, 자신의 직무가 완수될 때까지, 권세와 영광으로 천국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떠났으며; 그 역시 그의 주님처럼--곧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야한다고 그를 체포한 자가 알려줬을 때, 그는 그것을 최고의 명예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
3. 야고보 세베대
139:3.1 예수께서 세베대의 두 아들에게 “우뢰{雨雷}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는데, 두 사도 중에 형인 야고보는 사도가 됐을 때 서른 살이었다. 결혼해서 네 아이가 있었고, 가버나움 근교의 벳새다에서 부모의 집 가까이에 살았다. 그는 어부였고, 동생 요한과 함께, 그리고 안드레 및 시몬과 공동으로 생업에 힘썼다. 야고보와 동생 요한은, 다른 어떤 사도보다 더 오랫동안 예수를 알았다는 이점{利點}을 갖고 있었다.
139:3.2 유능한 이 사도는, 상반되는 기질을 소유했으며; 실제로 두 가지 본성을 소유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둘 다 격한 감정에 자극받았다. 분노가 일단 차오르면 현저하게 과격했다. 성질이 한번 자극되면 불같은 성질을 나타냈고, 폭풍이 일단 지나가고 나면, 그것이 완전히 의로움의 분개였다고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분노를 언제나 정당화시키고 변명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주기적인 분노 표출을 제외하면, 야고보의 인간성은 안드레의 인간성과 비슷했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안드레의 식별력이나 통찰력은 갖지 못했으나, 안드레보다 훨씬 우월한 대중 연설가였다. 마태가 없었다면, 야고보가 열두 사도 중에서 베드로 다음으로 가장 우수한 대중 웅변가였다.
139:3.3 야고보는 어떤 면에서도 기분파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하루는 조용하고 과묵하다가 이튿날에는 말 많은 수다쟁이가 되곤 했다. 대개 예수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잘 했으나, 열두 사도 중에서는 한 번에 며칠씩 가장 말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이런 한동안의 기묘한 침묵이었다.
139:3.4 야고보의 인격에서 눈에 띄는 점은, 한 가지 주장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역량이었다. 열두 사도 전체 가운데서, 그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실제 취지와 의미를 가장 근접되게 파악했다. 그 역시 처음에는 주님께서 의미하는 바를 더디게 납득했지만, 그들이 훈련을 모두 마치기 전에, 예수의 메시지에 담긴 탁월한 개념을 알아들었다. 야고보는 인간 본성의 넓은 범위를 이해할 수 있었으며; 다재다능한 안드레, 충동적인 베드로, 그리고 말없는 동생 요한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39:3.5 야고보와 요한은 문제가 있음에도 함께 일하려고 애썼는데 , 두 사람이 서로 어떻게 잘 지내는지 관찰하는 일은 감동적이었다. 그들은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만큼 그렇게 성공적으로 잘 지내지는 못했으나, 특히 그렇게 고집 세고 단호한 형제들에게 보통 기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잘 해 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 세베대의 두 아들은 모르는 사람에게보다는 서로에게 더 많은 참을성을 베풀었다. 그들은 서로 무척 다정했고, 언제나 좋은 놀이 동무가 됐다. 주님께 불경스럽게 대했다고 여겨지는 사마리아인을 없애기 위해, 하늘로부터 불을 불러 내리기를 원했던 사람이, 바로 이 “우뢰의 아들들”이었다. 그러나 야고보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해, 동생 요한의 격렬한 기질이 많이 고쳐졌다.
139:3.6 야고보가 가장 감탄했던 예수의 특질은 주님의 호의적인 애정이었다. 작은 자와 위대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예수의 이해심 많은 관심이 그에게 큰 호감을 줬다.
139:3.7 야고보 세베대는 균형 잡힌 사색가이자 계획가였다. 안드레와 함께 사도 집단에서 비교적 안정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격렬한 사람이었지만 절대로 성급하지 않았다. 베드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139:3.8 그는 겸손했고, 극적이지 않았고, 매일의 일에 충실한, 잘난 체 하지 않는 일꾼이었고, 일단 천국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자, 특별한 보상을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 아들들이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예수께 요청했다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어머니였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책임을 스스로 맡을 준비가 됐다고 표명했을 때, 주님이 로마 권력에 대항해서 반란 일으킬 것으로 상상되는 그 일에 위험이 수반될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과, 그들 역시 그 값을 기꺼이 치르려했다는 것을 꼭 알아야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잔을 마실 준비가 됐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야고보에게는 그것이 글자 그대로 사실이었다--그는 일찍이 헤롯 아그리빠의 칼에 죽임을 당해서 순교를 체험하는 첫 사도가 됐고, 주님과 함께 잔을 마셨다. 그렇게 해서, 야고보는 천국의 새 싸움터에서 열두 사도 가운데 처음으로 생명을 바쳤다. 헤롯 아그리빠는 다른 모든 사도보다 야고보를 특히 두려워했다. 그는 정말로 종종 조용하고 말이 없었지만, 그의 신념이 자극되고 도전 받으면 용감했고 흔들리지 않았다.
139:3.9 야고보는 일생을 충실히 살았고, 자신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우아함과 불굴의 정신으로 대처했으므로, 재판과 처형장에 참석했던, 그를 비난하고 고발한 사람조차 깊은 감명을 받아서, 야고보의 처형장에서 급히 뛰쳐나가 예수의 제자들과 합류했다.
4. 요한 세베대
139:4.1 요한은 사도가 됐을 때 스물네 살이었고,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어렸다. 아직 결혼 전이었고, 벳새다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으며; 어부였고, 형 야고보와 함께 안드레 및 베드로와 동업했다. 요한은 사도가 되기 전이나 후 언제나, 주님의 가족과 관계되는 일에서 예수의 개인적 대리인 역할을 했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줄곧 이 책임을 맡았다.
139:4.2 요한은, 열두 사도 중에서 제일 어리고, 예수의 가족 문제에서 그와 무척 긴밀하게 연관돼있었으므로,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솔직히 그가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너희가 보기에도 예수처럼 도량 넓은 인물이, 사도들 중에서 다른 사람보다 어느 한 사람을 편애{偏愛}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요한이 형 야고보와 함께 예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알아왔음은 물론, 그가 예수의 개인 측근 보조원 세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이, 이런 잘못된 생각을 심화시켰다.
139:4.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사도가 된 후 곧 예수의 개인 보조원으로 임명됐다. 열두 사도가 선택된 직후 그리고 안드레를 그 집단의 지휘관으로 임명할 때, 예수께서 안드레에게 말씀했다: “이제 너의 동역자 중에서 나와 함께 있고 내 곁에 남아 나를 보살피고 일상적인 일을 도와줄 두 세 사람을 네가 선택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안드레는, 이 특별한 임무에 자기 다음으로 뽑힌 세 사도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토록 복된 봉사에 자신이 자원하고 싶었으나, 주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위탁임무를 맡겼으므로; 예수 곁에서 시중들도록, 베드로, 야고보, 및 요한을 즉시 임명했다.
139:4.4 요한 세베대는 많은 매력적인 성품을 지녔으나,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던 한 가지는, 그의 과도하지만 대개 잘 숨겨진 자만심이었다. 예수와 오랫동안 교제한 기간이 그의 성품에 커다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자만심이 크게 줄어들기는 했으나, 노후에 다소 유치해지기 시작한 다음에, 이 자긍심이 다시 고개 들기 시작했으며, 그리하여 지금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복음서를 쓰도록 나단에게 지시할 때, 나이 많은 이 사도는,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로 계속 호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요한이 이 세상의 어떤 필사자보다 더 가까운 예수의 단짝, 즉 그가 그토록 많은 문제의 경우에 예수께서 택하신 그의 개인 대표자였다는 사실을 간주할 때,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한 제자”로 여긴 것은 이상하지 않은데, 자신이야말로 예수께서 그토록 빈번히 일을 맡겼던 제자임을 가장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139:4.6 요한이 가장 좋아했던 예수의 특질은, 주님의 사랑과 애타심{愛他心}이었는데; 이런 특징이 그에게 큰 감명을 줬기 때문에, 그 후의 그의 전 생애는 사랑의 감정과 형제로서의 헌신으로 지배됐다. 그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랑에 관해 기록했다. 이 “우뢰의 아들”은 “사랑의 사도”가 됐으며; 에베소에서 이 연로한 감독이 더 이상 설교단에 서서 설교할 수 없게 되어, 의자에 앉은 채 교회로 옮겨져야 했을 때, 그리고 예배를 마치면서 신도들에게 몇 마디 말씀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여러 해 동안 그는 오직, “어린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말했다.
139:4.7 요한은 감정이 격한 경우 외에는,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을 많이 했으나, 말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기질이 많이 양순해졌고 더 잘 통제됐지만, 말하기를 꺼리는 이런 성격은 결코 개선되지 않았으며; 이 과묵함을 완전히 극복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놀랄만한 창조적 상상력을 타고났었다.
139:4.8 요한에게는, 이런 조용하고 내성적인 유형의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는 다른 면이 있었다. 다소 옹졸했고, 지나칠 정도로 참을성이 없었다. 이 면에서 그와 야고보는 매우 비슷했다--곧 그 두 사람은 하늘로부터 불을 불러서, 무례한 사마리아인의 머리에 떨어뜨리기 원했다. 요한은, 어떤 낯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을 보자, 즉시 그들을 제지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자긍심과 우월감 의식을 지닌 사람이, 열두 사도 가운데 요한 뿐만은 아니었다.
139:4.9 요한의 생애는, 예수께서 얼마나 성실하게 어머니와 가족을 돌보기 위한 대책을 세워 놨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집 없이 다니는 광경으로 인해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또한 요한은, 예수의 가족이 그를 이해하지 못한 연유로 그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알았으므로, 예수를 가슴속 깊이 동정했다. 예수께서 자신의 조그마한 소망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늘 양보하는 것과, 일상생활에서 뚜렷하게 보여주는 신뢰와 함께, 이 모든 상황이 요한에게 깊은 인상을 줬으며, 그래서 이것은 훗날에 그의 온 생애를 통해서 나타난 바와 같이, 그의 성품에 뚜렷하고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139:4.10 요한은, 다른 사도들에게는 거의 없는, 냉철하고 대담한 용기를 지녔다. 예수께서 체포되던 날 밤에도 즉시 예수를 따라 갔고, 바로 죽음의 문턱까지 감히 주님과 동행했던 유일한 사도였다. 항상 예수와 함께 있었고, 이 세상의 마지막 시간까지도 예수의 곁을 지켰고, 예수의 어머니에 관한 그의 신뢰를 끝까지 실망시키지 않았고, 주님이 필사자로서 실존하던 마지막 순간에도, 주어질지도 모를 추가 지시를 받기 위한 준비를 하고 곁에 있었다. 요한이 굉장히 믿을 만했다는 그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열두 사도가 식사할 때, 요한은 대개 예수의 오른 편에 앉았다. 열두 사도 중에서 그가 처음으로 진지하고 완전하게 부활을 믿었고, 부활한 예수께서 해변에서 그들에게 가까이 왔을 때, 제일 먼저 주님을 알아 본 사람도 그였다.
139:4.12 요한은, 야고보가 순교한 후 몇 년 뒤에, 과부가 된 형수와 결혼했다. 여생에 마지막 20년 동안, 사랑스런 손녀{孫女}의 보살핌을 받았다.
139:4.13 요한은 여러 차례 감옥에 갇혔고, 다른 황제가 로마에서 정권을 잡기 전까지, 4년 동안 밧모 섬에 유배됐다. 요한이 약삭빠르고 영리하지 못했더라면, 더 거침없이 말하는 형 야고보처럼 그 역시 분명히 처형됐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님의 동생 야고보와 더불어 정부의 고관들 앞에 불려 나갔을 때, 현명하게 회유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부드러운 대답이 화를 물리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교회가 “하늘 나라”라기보다 오히려 “인류의 사회적 봉사에 헌신하는 영적 형제관계”라고 설명하는 것도 배웠다. 그들은 지배하는 힘보다--곧 왕국과 왕보다--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가르쳤다.
139:4.15 요한은 여행을 많이 했고, 쉬지 않고 일했으며, 아시아 교회들의 감독이 된 후에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었다. 아흔아홉 살 때 에베소에서 동역자 나단에게 “요한에 의한 복음서”라고 불리는 글을 쓰도록 지시했다. 열두 사도 전체 중에서, 결국에는 요한 세베대가 가장 탁월한 신학자가 됐다. 그는 에베소에서 103년에 자연사했는데, 그때 나이는 101세었다.
5. 호기심 많은 빌립
139:5.1 빌립은 다섯째로 뽑힌 사도였는데, 예수와 처음 네 사도가 요단에서 요한을 만난 후 갈릴리 가나로 가는 도중에 부름 받았다. 빌립은 벳새다에서 살았으므로 예수와 이미 아는 사이였지만, 요단 계곡에서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기 전에는, 예수를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빌립은 또한, 안드레와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예수를 구원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로 인해 다소 영향을 받았다.
139:5.2 빌립은 사도로 참여했을 때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최근에 결혼했고, 아이는 아직 없었다. 사도들은 그에게, “호기심”이라는 뜻의 단어로 별명을 붙여 줬다. 빌립은 언제나 눈으로 보기를 원했다. 어떤 계획에서든지 결코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듯 했다. 둔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상상력이 부족했다. 이 상상력 결핍은 그의 성격상 큰 단점이었다. 그는 평범하고 사무적인 사람이었다.
139:5.3 사도들이 봉사하려고 조직을 갖췄을 때, 빌립은 사무장의 일을 맡았는데; 그들에게 양식이 항상 원활하게 공급되는지 살피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리고 훌륭한 사무장이었다. 그의 가장 강한 특질은 조직적인 꼼꼼함이었으며; 수학적이고 체계적이었다.
139:5.4 빌립은 아들 셋과 딸 넷의 일곱 자녀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둘째였고, 주님의 부활이 있은 후에, 그의 온 가족에게 세례를 줘서 천국에 들어오도록 했다. 빌립의 친척은 모두 어부였다. 그의 아버지는 무척 능력 있고 생각이 깊었으나,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다. 빌립은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사소한 일을 큰 일처럼 할 수 있었고, 매우 적절하게 잘 처리했다. 4년 동안, 모든 사람을 먹일 만큼의 충분한 음식을 준비하는 데 실패한 것은 몇 번뿐이었다. 그들이 지내는 동안 겪었던 여러 차례의 비상시{非常時}에도, 그가 준비를 제대로 못한 적이 거의 없었다. 사도 일행의 물자조달 부서는, 지적으로 효과 있게 관리됐다.
139:5.5 빌립의 강점은 조직적인 확실성에 있었으며; 그의 성질의 약점은 상상력이 전혀 없는 것, 둘에 둘을 더하여 넷을 얻는 역량이 없는 것이었다. 이론적인 것에서는 수학적이었지만,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했다. 어떤 유형의 상상력에서는 거의 완전히 결핍돼있었다. 그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보통 사람의 전형이었다. 예수의 가르침과 설교를 듣기 위하여 온 대중 가운데는 그런 남녀가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주님의 협의회에서 명예로운 지위까지 높임 받은 것을 봄으로써 큰 위안을 얻었으며; 그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이미 천국의 직무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용기를 줬다. 예수께서는 빌립의 우둔한 질문에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였고, “보여 달라”는 사무장의 요구에 그토록 여러 번 응하면서, 일부 인간의 정신이 이 사람처럼 작용하는 방식에 대하여 많이 배웠다.
139:5.6 빌립이 그토록 계속해서 존경했던 예수의 한 가지 특성은, 주님의 무한한 관대함이었다. 빌립은 예수로부터, 옹졸하거나 인색하거나 또는 쩨쩨한 어떤 것도 결코 볼 수 없었고, 항상_나타나는 지칠 줄 모르는 이런 너그러움을 존경했다.
139:5.8 사무장인 이 사도는 훌륭한 대중 웅변가는 아니었지만, 개인을 상대할 때 매우 설득력 있고 성공적인 일꾼이었다. 쉽게 용기를 잃지 않았으며; 자기가 맡은 어떤 것에서든지 꾸준하고 매우 끈기 있었다. 그는 “오라”고 말하는 훌륭하고 보기 드문 은사를 갖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개종시킨 나다니엘이 나사렛과 예수의 장단점에 대해 논쟁하려했을 때, 빌립의 효과적인 대답은 “와서 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청중에게 “가라”--곧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고 훈계하는 독단적 설교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서, “오라”는 말로--곧 “나와 함께 가자; 내가 그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겠다”는 말로-- 대처했다. 그리고 이것은 가르침의 모든 형식과 국면에서 항상 효과적인 기법이다. 부모들도 자녀에게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는 대신, 오히려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너에게 더 나은 길을 보여주고 함께 나누겠다”고 말하는, 더 훌륭한 방법을 빌립에게서 배울 수 있다.
139:5.9 새로운 상황에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하는 빌립의 무능력은, 예루살렘에 있을 때 그리스인이 그에게 와서: “선생님, 우리는 예수를 만나기 원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잘 나타났다. 빌립은 어떤 유대인이든지 그런 질문을 했다면, “오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외국인이었고, 빌립은 상급자로부터 그런 문제에 대해 지시받은 기억이 없었으므로; 그가 생각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우두머리 안드레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고, 그런 후에 둘이서 그리스인을 예수께 데려갔다. 마찬가지로, 그는 주님의 지시에 따라서 신자{信者}들에게 전도하고 세례를 주려고 사마리아로 갔을 때, 개종자들이 진리의 영을 받았다는 표시로 그들에게 안수{按手}하는 것을 삼갔다. 베드로와 요한이 이 일을 했는데, 이들은 그때 모{母}교회를 대표해서 그의 일을 관찰하려고, 예루살렘에서 즉시 내려왔다.
139:5.10 빌립은 주님이 돌아가시는 시험 기간을 잘 견뎠고, 열두 사도를 재조직하는 데 참여했으며, 천국을 위하여 혼들을 구하려고 유대인 직계 계층 바깥에서 전진한 첫 사도였는데, 사마리아인을 위한 그의 활동에서,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그의 훗날의 모든 수고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
139:5.11 빌립의 아내는 여자 단체 중에서 유능한 회원이었고,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서 급히 도망친 후에, 남편의 복음전파와 관련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의 아내는 두려움 없는 여자였다. 그 여자는 빌립의 십자가 밑에 서서, 그를 죽이는 자들에게도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그를 격려했고, 그의 힘이 다하자, 그 여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이야기를 외치기 시작했으며, 성난 유대인이 그 여자에게 달려와 돌로 죽였을 때에야 비로소 잠잠했다. 그들의 맏딸 레아가 그들의 일을 이어받았고, 나중에는 히에라폴리스의 저명한 여{女}선지자가 됐다.
139:5.12 한때 열두 사도의 사무장이었던 빌립은, 가는 곳마다 혼을 구제한, 천국에서 유능한 사람이었으며; 마지막에는 신앙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달렸고, 히에라폴리스에 묻혔다.
6. 정직한 나다니엘
139:6.1 나다니엘은, 주님께서 직접 뽑은 여섯째이자 마지막 사도였고, 친구 빌립에게 이끌려서 예수께 안내됐다. 그는 여러 가지 사업관계로 빌립과 친분을 맺어왔었는데, 그와 함께 세례 요한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예수를 만났다.
139:6.2 나다니엘은 사도로서 참여했을 때 스물다섯 살이었고, 그 집단에서 둘째로 나이가 어렸다. 일곱 가족 가운데 막내였고 미혼이었으며, 가나에서 함께 사는, 나이 많고 허약한 부모의 유일한 부양자였는데; 그의 형과 누나들은 결혼 했거나 죽었으므로, 거기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나다니엘과 가룟 유다는 열두 사도 가운데 교육수준이 가장 높았다. 나다니엘은 상인이 되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139:6.3 예수께서 나다니엘에게 별명을 직접 지어 준 일은 없었지만, 열두 사도는 곧,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교활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큰 장점이었으며; 정직할 뿐만 아니라 진지했다. 그의 성격상 약점은 자존심이었는데; 자신의 가족과 도시와 명성 그리고 민족에 대해 매우 자만심을 가졌고, 그 모든 것은 지나치지만 않았다면 칭찬받을 만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자신의 개인적 편견을 극단까지 끌고 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 견해에 따라서 사람마다 미리 판단하는 습관이 있었다. 예수를 만나기도 전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라고 주저함 없이 질문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자존심이 강했음에도, 완고하지는 않았다. 예수의 얼굴을 일단 살폈을 때, 그는 곧바로 태도를 바꿨다.
139:6.4 열두 사도 중에서 나다니엘은 여러 면에서 색다른 천재였다. 그는 사도들 가운데 철학자요 공상가였지만, 매우 실질적인 공상가였다. 한때는 철학에 깊이 빠졌다가, 다음에는 희귀하고 익살스런 농담을 하곤 했는데;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에는, 그가 아마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유능한 이야기꾼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심각한 일은 물론 사소한 일에 대해 나다니엘이 연설하는 것을 듣기를 대단히 좋아했다. 나다니엘은 날이 갈수록, 예수와 천국은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나, 자신은 결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139:6.5 사도들 모두가 나다니엘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며, 그는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든 사도와 아주 잘 지냈다. 유다는, 나다니엘이 사도 직분을 충분히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한 번은 무모하게도 예수께 몰래 가서 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놨다. 예수께서 말씀했다: “유다야, 신중히 행동해라; 너의 직분을 너무 크게 여기지 말아라. 우리 가운데 누가 형제를 판단하는 권한을 가졌겠느냐? 아버지의 자녀들이 인생의 심각한 일만 함께하는 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하는데: 나는 육신 속의 내 형제들에게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삶을 더 풍성케 하려고 왔다. 유다야, 이제 가서 너에게 맡겨진 일을 잘하고, 너의 형제 나다니엘이 자기 문제를 하나님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둬라.” 그리고 이 기억은, 다른 많은 비슷한 체험과 함께, 자신을_속이는 가룟 유다의 심정에 오래 남아있었다.
139:6.6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께서 여러 번 산으로 멀리 떠나고, 사도들 사이에서 일이 긴박해지고 복잡하게 됐을 때, 그리고 심지어 안드레까지도 그의 울적한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을 갖지 못할 때, 나다니엘이 약간의 철학 혹은 번쩍이는 유머; 또한 재미있는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주곤 했다.
139:6.7 나다니엘의 의무는 열두 사도의 가족을 돌보는 일이었다. 사도 회의에 자주 결석했는데, 그가 맡고 있는 가족 중에서 병자가 생기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면, 지체하지 않고 그 가족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열두 사도는, 자기 가족의 안녕이 나다니엘의 손에 안전하게 맡겨져 있음을 알았기에, 안심하면서 지냈다.
139:6.8 나다니엘이 예수를 가장 존경한 점은 그의 아량이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의 넓은 도량과 관대한 동정심을 생각할 때마다 기운이 솟았다.
139:6.9 나다니엘의 아버지(바돌로메오)가 오순절 직후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사도는 그 후에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떠났다. 그의 형제들은, 한때 그들의 철학가요 시인이며 익살꾼이었던 그가 어떻게 됐는지, 다시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또한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이었으며, 비록 나중에 생긴 그리스도교 교회의 조직에는 참여하지 않았어도, 주님의 교훈을 멀리 퍼뜨리는 일을 많이 했다. 나다니엘은 인도에서 죽었다.
7. 레위 마태
139:7.1 일곱째 사도인 마태는 안드레에게 선택받았다. 마태는, 세금 징수원, 즉 세리{稅吏}의 집안에 속했지만, 자기가 살던 가버나움에서 관세를 거두는 일을 했다. 서른한 살이었고 결혼했고 네 자녀를 뒀다. 사도 단체에 속해있는 자로서는 유일하게 재산이 있는, 상당히 부유한 사람이었다. 훌륭한 사업가였고, 사교술이 좋았고, 여러 종류의 사람과 친구가 되고, 원만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은사가 있었다.
139:7.2 안드레는 마태를 사도들의 재정 대표로 임명했다. 어떤 면에서는 사도들의 재무 대리인이었고, 공식 대변인이었다. 인간의 본성을 예리하게 판단했고 매우 효과적인 선전원이었다.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지만, 매우 열성적인 제자였고, 예수의 사명과 천국의 확실성을 점점 더 믿는 자였다. 예수께서는 레위에게 별명을 주지 않았지만, 동료 사도들은 흔히 그를 “돈_거두는 자”라는 말로 칭했다.
139:7.3 레위의 장점은 대의{大義}에 전심으로 헌신하는 것이었다. 세리였던 그를 예수와 사도들이 받아들인 점은, 지난날에 세금을 거뒀던 사람 편에서 볼 때 넘치도록 감사할 일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도들, 특히 열심당 시몬과 가룟 유다가, 자기네 중에 세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마태의 약점은 안목이 짧은 것과 삶에 대한 물질적 관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문제에서 세월이 갈수록 많은 진전을 보였다. 물론 금고를 계속 채우는 것이 그의 임무였으므로, 가장 귀중한 학습 시간에 많이 참석하지 못했다.
139:7.4 마태가 가장 소중히 여긴 것은 주님의 용서하는 경향이었다. 신앙이란 단지 하나님을 찾는 일에만 필요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하곤 했다. 그는 천국에 대해 “하나님을 발견하는 이 일”이라고 말하기를 항상 좋아했다.
139:7.5 마태는 과거가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훌륭하게 처신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동역자들도 세리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그는 예수의 말씀을 광범하게 받아 적은 사도 가운데 하나로서, 이 기록은 나중에 이사도르가 만든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서술문의 기초로 사용됐는데, 마태에 의한 복음서로 알려지게 됐다.
139:7.6 사업가이자 가버나움의 세관 징수원이었던 마태의 위대하고 유용한 생애는, 다음에 오는 여러 세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다른 사업가와 공공 관리와 정치가를,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러 오도록 인도하는 매개체가 됐다. 마태는 진정으로 명석한 정치가였지만, 예수께 지극히 충성스러웠고, 도래하는 천국의 사자{使者}들이 재정적으로 곤란을 겪지 않도록 살피는 과제에 더할 나위 없이 헌신했다.
139:7.7 열두 사도 가운데 마태가 끼어있다는 점은, 자신들에게는 종교적 위안의 혜택이 없다고 오래 전부터 여겨왔던 다수의 기죽고 버림받은 혼들에게, 천국 문을 계속 활짝 열어 놓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버림받고 절망에 빠진 남녀가 예수께 귀를 기울이려고 모여들었으며, 예수께서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았다.
139:7.8 마태는, 주님의 교훈을 직접 들은 사람과 신도들로부터 들어오는 헌금을 기꺼이 받았으나, 대중에게 기금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재정 업무를 조용하고 개인적인 방법으로 했고, 대부분의 돈을 비교적 부유한 계층의 관심 있는 신도들로부터 모금했다. 그는 실제로 주님과 사도들의 일을 위하여 자신의 온당한 재산을 사용했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던 예수를 제외하고, 그들은 그의 이런 관용을 알지 못했다. 마태는, 예수와 동역자들이 자기 돈을 오염된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사도들의 기금으로 공공연하게 헌금하지 못했으며; 다른 신도들의 이름으로 많이 기부했다. 초기에 여러 달 동안, 마태는 그들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가 다소 시험거리가 됐을 때, 자기 돈으로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종종 공급했음을 그들에게 알리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세리를 경멸하는 증거가 나타났을 때, 레위는 자신이 후하게 기부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불탔으나, 항상 잠자코 있도록 자신을 잘 다스렸다.
139:7.9 일주일 동안에 필요한 기금이 예산보다 모자랄 때, 레위는 자기 개인 재산에서 많이 빼서 쓰곤 했다. 또한 때때로 예수의 가르침에 대단히 흥미를 느꼈을 때, 필요한 기금이 걷히지 않아서 자기가 대신 개인적으로 그 기금을 충당해야했음에도, 남아서 그 설명을 듣기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레위는, 많은 돈이 자기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을 예수께서 알아주셨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주님께서 그것에 관해 전부 알고 있음을 그는 거의 깨닫지 못했다. 박해가 시작된 후 천국 복음을 전파하러 나갔을 때, 마태에게 실질적으로 동전 하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마태가 그들의 후원자였음을, 사도들은 죽을 때까지 몰랐다.
139:7.10 이런 박해로 인해 신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게 됐을 때, 마태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북쪽으로 여행했다. 그는 옛 사도 동역자들과 연락이 끊어졌지만, 전도하고 세례를 주면서, 시리아, 갑바도기아, 갈라디아, 비두니아, 드레이스를 지나갔다. 리시마키아의 드레이스에서는, 어떤 비신자 유대인이 로마 병정과 공모하여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다시 태어난 이 세리는, 얼마 전에 주님이 이 세상에 머물렀을 때 그의 교훈으로부터 아주 확실히 배운 구원의 신앙 안에서, 승리의 죽음을 맞이했다.
8. 도마 디두모
139:8.1 도마는 여덟째 사도였고, 빌립에게 선택받았다. 그는 후일에 “의심하는 도마”로 알려지게 됐으나, 동료 사도들이 그를 상습적으로 의심하는 자라고 여기는 일은 결코 없었다. 정말로 논리적이고 회의적인 유형의 정신을 지녔지만, 그의 용기 있는 충성심 때문에, 그를 잘 아는 사람들도 그를 어리석은 회의론자로 여기지 못했다.
139:8.2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됐을 때, 도마는 스물아홉 살이었고, 결혼해서 네 자녀가 있었다. 전에는 목수와 석공 일을 했으나, 나중에는 어부 일을 하면서 다리키아에 거주했는데, 그곳은 갈릴리해로 흘러가는 요단강 서쪽 비탈에 있었고, 이 작은 마을에서 지도자층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예리하고 이성적인 정신을 소유했으며, 디베랴에서 사는 훌륭한 부모를 뒀다. 도마는 열두 사도 중에서 진정으로 분석하는 정신을 소유한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사도 집단에서 참된 과학자였다.
139:8.3 도마의 초기 가정생활은 불행했으며; 그의 부모는 결혼 생활이 원만치 못했고, 이것이 도마의 성년기 체험에 반영됐다. 그는 몹시 사귀기 힘들고 다투기 잘하는 성질을 지니면서 자랐다. 그의 부인도 그가 사도들과 합류하게 된 것을 기뻐했으며; 비관적인 남편이 대체로 집을 비우게 됐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도마는 또한 의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와 평화롭게 지내기가 힘들었다. 베드로는 처음에 도마로 인해 매우 화가 나서, 도마는 “비열하고 불쾌하고 항상 의심하는 자”라고, 형 안드레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동역자들은, 도마를 잘 알아갈수록 더 좋아하게 됐다. 그들은 그가 매우 정직하고 단호하게 충성스럽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할 나위 없이 진지했고, 분명히 진실했지만, 날 때부터 헐뜯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비관주의자로서 자라왔다. 그의 분석적인 정신은 의심으로 끔찍해졌다. 열두 사도를 알아가게 되면서 동료 남자들로부터 급속도로 신뢰를 잃게 됐으나, 이처럼 예수의 고상한 성품과 접촉하게 됐다. 주님과 나눈 이런 교제는 도마의 전반적인 기질을 즉시 바꾸기 시작했고, 동료 사람들에 대한 그의 정신적 반응에도 많은 변화가 오도록 영향을 미쳤다.
139:8.4 도마의 큰 강점은 --일단 마음을 정했을 때-- 굽힐 줄 모르는 용기와 함께, 굉장히 분석적인 정신을 가진 것이었다. 그의 큰 약점은 의심스러운 불신감이었는데, 이것은 육신 속의 생애 동안에는 결코 완전히 극복되지 못했다.
139:8.5 열두 사도 조직에서, 도마는 일정을 세우고 관리하는 일에 배정됐고, 사도 단체의 업무와 활동을 유능하게 지휘하는 자였다. 그는 훌륭한 행정가였고 우수한 사업가였지만, 자신의 변화무쌍한 기분으로 인하여 손해를 많이 봤는데; 하루는 이런 사람이었다가 이튿날은 다른 사람이 돼있었다. 사도들의 일원이 됐을 때, 그는 시무룩하게 우울해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예수 및 사도들과 접촉한 것이, 이 과민한 내성적 성격의 그를 많이 치료해줬다.
139:8.6 예수께서는 도마와 무척 즐겁게 지냈고, 개인적인 대화를 여러 번 길게 나눴다. 그가 사도들 가운데 있음은, 솔직하게 의심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됐으며, 고심하는 허다한 인물이, 비록 예수의 가르침의 영적이고 철학적인 국면에 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더라도, 그들도 천국으로 들어오도록 용기를 줬다. 열두 사도 가운데 도마가 들어있음은, 솔직하게 의심하는 자들도 예수께서 사랑한다는, 변함없는 선언이었다.
139:8.7 다른 사도들은 예수의 충만한 인격에서 어떤 특별하고 탁월한 특징 때문에 그를 존경했으나, 도마는 비할 바 없이 균형을 갖춘 주님의 성품 때문에 존경했다. 도마는, 사랑스럽고 자비로우면서도 확고하게 공정하고 공평한; 단호하지만 결코 고집스럽지 않은; 침착하지만 결코 무관심하지 않은; 돕고자 하고 동정심이 많지만 결코 간섭하거나 독재적이지 않은; 강하지만 동시에 온화한; 긍정적이지만 거칠거나 무례하지 않은; 부드럽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순수하고 순결하지만 동시에 씩씩하고 적극적이고,강인한; 진정으로 용감하지만 결코 성급하거나 경솔하지 않은; 자연을 사랑하지만 자연을 숭배하는 모든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운; 해학적이고 쾌활하지만 경솔함과 천박함이 없는 예수를, 점점 더 존경하고 받들었다. 도마를 매료시킨 것은, 이렇게 비길 데 없이 균형 잡힌 인품이었다. 그는 아마 열두 사도 가운데 누구보다도, 예수를 최고로 지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인격을 감상했을 것이다.
139:8.8 열두 사도가 회의하는 중에 도마는 언제나 신중했고, 안전한 정책을 첫째로 옹호했으나, 그의 보수적 의견이 투표로 부결되거나 거부되면, 결정된 계획표를 이행하는 데, 그가 항상 제일 먼저 두려움 없이 뛰어들었다. 그는 무모하고 외람된 어떤 기획에 대해서는 계속 반복하여 반대하려고 했으며; 격렬한 가운데 끝날 때까지 논쟁하곤 했지만, 안드레가 그 제안을 표결에 부쳐서, 그가 그렇게 격렬하게 반대했던 안건을 열두 사도가 통과시키고 나면, 도마가 제일 먼저 “갑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훌륭한 패자였다. 상처받은 감상에 붙잡혀있지도, 더 키우지도 않았다. 예수께서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을 여러 번 반대했지만, 주님께서 그런 모험을 택하기로 결정하면, “동지들, 어서 갑시다. 가서 그와 함께 죽읍시다”라는 용기 있는 말을 제일 먼저 하면서 사도들을 집결시키는 사람은 항상 도마였다.
139:8.9 도마는 어떤 면에서는 빌립과 비슷했는데; 그 역시 “보여주기”를 원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의 의심스런 표현은, 전혀 다른 지적{知的} 작용에 근거했다. 도마는 단순하게 회의적{懷疑的}이 아닌, 분석적인 사람이었다. 개인의 육체적 용기에 관한 한, 열두 사도 중에서 그가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다.
139:8.10 도마는 매우 힘든 날들을 어느 정도 겪었는데; 종종 우울했고 풀죽어있었다. 아홉 살 때 쌍둥이 여동생을 잃은 것이, 어린 시절에 많은 슬픔을 줬고, 그것이 후반기 생애의 변덕스런 성격상 문제를 악화시켰다. 도마가 낙심하게 되면, 어떤 때에는 나다니엘이, 어떤 때에는 베드로가, 그리고 알패오 쌍둥이 가운데 하나가, 그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데 자주 도움을 줬다. 가장 억눌렸을 때, 그는 불행하게도 예수와 직접 대면하지 않도록 피하려고 항상 애썼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알았고, 이 사도가 그렇게 우울증으로 고난당하고 의심으로 지쳤을 때, 그에 대해 이해심 있는 연민의 정을 가졌다.
139:8.11 도마는 때때로 하루나 이틀 동안 혼자 떠나 있을 수 있도록 안드레에게 허락을 받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행로가 현명치 않다는 것을 곧 알았으며; 자신이 낙심했을 때에는 일하면서 동역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남아있는 것이 상책임을 일찍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감정적 생활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는 항상 사도로서 남아있었다. 실제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 오면, “갑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항상 도마였다.
139:8.12 도마는, 의심을 품고, 그것에 대면하고,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한 본보기였다. 훌륭한 정신을 가졌으며; 트집 잡는 비평가가 아니었다. 논리적 사색가였으며; 예수와 동료 사도들에게는 매서운 시험거리였다. 예수와 그의 활동이 진짜가 아니었다면, 도마 같은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사실에 대한 예리하고 확실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사기나 속임수가 나타나자마자, 도마는 그들 모두를 버렸을 것이다. 예수에 관하여 그리고 그가 이 세상에서 한 일에 관하여, 과학자들은 모든 것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진정한 과학자적 정신을 가진 한 사람은--곧 도마 디두모는-- 주님과 인간 동역자들과 함께 살았고 일했으며, 나사렛 예수를 믿었다.
139:8.13 도마는 재판과 십자가형이 진행되는 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절망의 수렁에 빠져있었지만, 용기를 되찾았고 사도들에게 합류했으며,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를 환영하는 자리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 의심으로 인한 억눌림에 한동안 굴복했으나, 결국에는 신앙과 용기를 되찾았다. 오순절 이후에 사도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했고, 박해로 신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자, 천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키프로스, 크레테, 북아프리카 해안, 시칠리로 갔다. 그리고 도마는, 로마 정부 대리인들에게 체포되어 말타에서 처형될 때까지, 전도하고 세례 주기를 계속했다. 죽기 불과 몇 주 전에, 그는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9. -- 10. 야고보와 유다 알패오
139:10.1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유다는 케레사 근처에 사는 쌍둥이 어부였고, 아홉째와 열째 사도였으며,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가 선택했다. 이들은 스물여섯 살이었고 결혼했으며, 야고보는 세 자녀, 유다는 두 자녀를 뒀다.
139:10.2 이 평범한 두 어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고 예수께서도 그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은 그의 강론을 중단시키는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동료 사도들의 철학적 토의나 신학적 논쟁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했으나, 자신들이 그렇게 막강한 사람들 집단에 속했다는 것을 무척 기뻐했다. 이 두 사람은, 겉모습, 정신적 특질, 및 영적 감지 정도에서 거의 동일했다. 한 사람을 묘사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다.
139:10.3 안드레는 그들에게 대중의 치안 유지 업무를 맡겼다. 그들은 설교 시간에 안내원들의 우두머리였고, 사실상 열두 사도 중에서 일반적인 일을 하는 하인이자 심부름꾼이었다. 물자를 공급하는 데 빌립을 도왔고, 나다니엘을 위해서는 가족에게 돈을 전달했고, 사도들 가운데 누구에게든지 도움을 줄 준비가 항상 돼있었다.
139:10.4 보통사람들로 이뤄진 대중은, 자신과 비슷한 두 사람이 사도들 가운데서 직분을 감당하는 영광을 보고 크게 용기를 얻었다. 이 평범한 쌍둥이가 사도로 받아들여졌다는 바로 그 사실이, 마음 약한 다수의 신도를 천국으로 불러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공식 안내원들의 지시를 따르고 관리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더 편하게 받아들였다.
139:10.5 또한 다대오와 레비우스라고도 불렸던 야고보와 유다는, 강점은 물론 약점도 없었다. 제자들이 그들에게 붙인 별명은 평범함을 뜻하는 좋은 의미를 가진 용어였다. 그들은 “모든 사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들”이었는데; 그들도 그 사실을 알았고 또한 그것에 대해 유쾌하게 생각했다.
139:10.6 야고보 알패오는 주님의 단순함을 특별히 사랑했다. 이 쌍둥이는 예수의 정신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자신들과 주님의 마음 사이에 호의적인 연결이 있음을 납득했다. 그들의 정신은 높은 계층에 속하지 않았으며; 경건함에서는 우둔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으나, 자신의 영적 본성에서는 진정한 체험을 했다. 그들은 예수를 믿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었고 천국의 동료였다.
139:10.7 유다 알패오는 주님의 허식 없는 겸손으로 인해 예수께 끌렸다. 그런 인격적 위엄을 동반한 그런 겸손이 유다에게 큰 매력을 줬다. 예수께서 자신의 비범한 행동에 관해 항상 침묵을 지키고자한다는 그 사실이, 이 단순한 본성의 자녀들에게 엄청난 감명을 줬다.
139:10.8 쌍둥이는 너그러운 단순한_정신을 지닌 도우미였고, 모두가 그들을 사랑했다. 예수께서는 재주가 하나뿐인 이 젊은이들을 천국에서 자신의 개인 참모라는 명예로운 지위에 받아들였는데, 세상에는 그런 단순하고 두려움에_지배당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혼이 있으므로, 자기가 퍼부어 줄 진리의 영 안으로, 그리고 자기와 나누는 적극적이고 신뢰하는 교제 안으로 그들을 환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소함을 경멸하지 않았고, 단지 악과 죄를 경멸했다. 야고보와 유다는 보잘것없었지만, 또한 신실했다. 그들은 단순하고 무지했지만, 또한 도량이_넓고 친절하고 관대했다.
139:10.9 그리고 주님이 어떤 한 부자에게,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자를 도와주지 않으면 전도자{傳道者}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하던 날, 이 겸손한 사람들이 얼마나 긍지를 가졌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쌍둥이가 그의 조언자들 가운데 있음을 봤을 때, 그들은 예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직 신성한 기관만이--곧 하늘 나라만이-- 그런 진부한 인간적 기초 위에 영원히 세워질 수 있었다!
139:10.10 그들은 예수와 교제하는 동안 공개석상에서 단지 한 두 번 예수께 질문했다. 주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드러내겠다고 이야기했을 때, 유다가 한 번 예수께 질문한 적이 있었다. 열두 사도 가운데서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없을 것이라는 점에 조금 실망하게 되어, 그가 감히 물었다: “그렇지만 주님, 당신께서 그렇게 세상 사람에게 자신을 공표 하시면, 당신의 선하심을 어떻게 특별히 나타내서 우리에게 특권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139:10.11 쌍둥이는 끝까지, 재판과 십자가형과 절망의 어두운 날들까지 성실히 봉사했다. 그들은 중심에서 예수에 대한 신앙을 한 번도 잃지 않았으며, (요한을 제외하고) 그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의 설립을 납득할 수 없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직후에, 가족에게 돌아가서 고기잡이를 했으며; 그들의 업무는 끝났다. 그들에게는 좀 더 복잡한 천국의 전투장으로 나갈 역량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우주를 지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아들과 가깝게 개인적으로 교제한 4년을, 명예롭고 복 받은 것으로 의식하면서 살다가 죽었다.
11. 열심당 시몬
139:11.1 열심당 시몬은 열한째 사도로서, 시몬 베드로에게 선택됐다. 훌륭한 조상을 가진 유능한 사람이었고, 가버나움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다. 사도가 됐을 때 스물여덟 살이었다. 격렬한 선동가였고, 또한 생각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열심당이라는 애국 조직에 온통 열중하기 전에는, 가버나움에서 상인{商人}이었다.
139:11.2 열심당 시몬은 사도 집단의 기분전환과 휴식을 담당했고, 열두 사도의 놀이 생활과 기분 전환 활동을 매우 효율적으로 조직한 사도였다.
139:11.3 시몬의 강점은 영감{靈感} 어린 충성심이었다. 사도들은, 천국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결정하지 못해서 머뭇거리는 남자나 여자를 발견하면 시몬을 부르곤 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부르짖는 이 열성적인 사도가, 모든 의심을 해결하고, 모든 망설임을 없애고, 새로운 혼이 “신앙으로 인한 자유와 구원의 기쁨”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도와주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139:11.4 시몬의 큰 약점은 굳어버린 물질적_경향에 있었다. 그는 유대 민족주의자로부터 영적 기질의 국제주의자로, 자신을 빨리 전환시킬 수 없었다. 그런 지적이고 감정적인 전환을 가져오기에 4년은 너무 짧았지만, 예수께서는 언제나 인내심을 갖고 그를 대했다.
139:11.5 시몬이 예수를 그토록 존경한 한 가지는, 주님의 고요함, 곧 그의 확신과 평정{平靜}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침착성이었다.
139:11.6 시몬은 과격한 혁명가였고, 동요를 일으키는 두려움 없는 선동자이기는 했으나, “땅에는 평화요, 사람들 가운데는 호의”를 외치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설교자가 되기까지, 자신의 불같은 성격을 점차 완화시켰다. 시몬은 굉장한 토론자였으며; 논쟁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학식 있는 유대인 중에서 율법을 따지는 지성인, 또는 그리스인의 지적 궤변을 상대해야 할 경우에, 그런 과제는 항상 시몬에게 배정됐다.
139:11.7 그는 타고난 반항자였고, 인습을 타파하는 자로서 훈련받았지만, 예수께서는 하늘 나라라는 더 높은 개념으로 그를 끌어 올렸다. 그는 반항적인 집단에 항상 가담했었으나, 이제는 진보하는 집단, 즉 영과 진리의 무제한적이고 영원한 진보에 참여했다. 시몬은 뜨겁게 충성하고 열심히 몸소 헌신하는 사람이었으며, 예수를 깊이 사랑했다.
139:11.8 예수께서는, 사업가, 노동자, 낙관론자, 비관론자, 철학자, 회의론자, 세리, 정치가, 및 애국자들과 한편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139:11.9 주님은 시몬과 많이 이야기했지만, 이 열렬한 유대 민족주의자를 국제주의자로 만들기에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시몬에게, 사회, 경제, 및 정치 질서를 개선시키기 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자주 말씀했으나, 항상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덧붙였다: “그것은 하늘 나라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헌신해야한다. 우리가 할 일은, 높은 곳에 있는 영적 정부의 대사{大使}가 되는 것이며, 신성한 아버지의 뜻과 성품을 대변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우리가 당장 관여해서는 안 되는데, 아버지는 그 정부의 꼭대기에 계시고, 우리는 그의 신임장을 지니고 있다.” 시몬이 납득하기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주님의 가르침의 의미 가운데 어떤 것들을 점차 파악하기 시작했다.
139:11.10 예루살렘의 박해로 인해 분산된 후에, 시몬은 일시적 은퇴기간을 가졌다. 그는 글자 그대로 무너졌다. 민족주의적 애국자로서 예수의 교훈을 좇는 일에 빠져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잃었다. 절망에 빠졌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소망을 되찾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러 나아갔다.
139:11.11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나일강을 따라 올라가며 일한 후에, 아프리카 심장부로 들어가면서, 가는 곳마다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고 신도들에게 세례를 줬다. 이처럼 늙고 쇠약해질 때까지 수고했다. 그는 아프리카 심장부에서 죽었고 거기에 묻혔다.
12. 가룟 유다
139:12.1 가룟 유다는 열두째 사도로서, 나다니엘에게 선택됐다. 그는 남부 유대지방의 작은 도시 가룟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일 때 부모가 여리고로 이사했고, 세례 요한의 전도와 업무에 흥미를 느끼기 전에는, 거기에 살면서 아버지의 여러 사업에 종사했다. 유다의 부모는 사두개인이었으며, 그래서 아들이 요한의 제자로 참여하자, 그와 인연을 끊었다.
139:12.2 나다니엘이 유다를 다리키아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갈릴리 바다 남쪽 끝에서 생선 말리는 사업에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었다. 사도들과 합세했을 때 서른 살이었고 미혼이었다. 아마도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학식이 높았으며, 주님의 사도 일행 중에서 유일한 유대지방 사람이었다. 유다는 개인적 강점이 될 만한 탁월한 특징을 전혀 갖지 않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많은 문화적 특징 그리고 훈련으로 말미암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훌륭한 사색가였으나, 언제나 진실하게 정직한 사색가는 아니었다. 유다는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신에게 정말로 진지하지 않았다.
139:12.3 안드레가 유다를 열두 사도의 회계로 임명했는데, 그에게 아주 어울리는 자리였고, 주님을 배신하기 직전까지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맡은 직무를 수행했다.
139:12.4 일반적으로 호감을 주고 절묘하게 매력적인 주님의 인격 이외에, 유다가 예수를 존경했던 유별난 특징은 없었다. 유다는, 갈릴리인 동역자들을 차별하는 유대지방의 편견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으며; 여러 면에서 예수까지도 마음 속으로 비판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으뜸 되시는 분”이라고, 열한 사도가 생각했던 완벽한 사람인 그분을, 자만심이 가득한 이 유대지방사람은 마음 속으로 감히 자주 비판했다. 정말로 그는, 예수가 겁이 많고 자신의 권능과 권위를 주장하기를 약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39:12.5 유다는 훌륭한 사업가였다. 몇몇 사도들의 허둥거리는 사업 방식을 언급하지 않고서라도, 예수 같은 그런 이상주의자의 재정문제를 관리하는 데는, 재치와 역량 그리고 각고의 헌신을 수반하는 참을성이 요구됐다. 유다는 진정으로 훌륭한 행정가, 멀리 내다보고 유능한 재정가였다. 그리고 조직에 대해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열두 사도 중에서 아무도 유다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알 수 있는 한, 가룟 유다는 비길 데 없는 회계, 학식 많은 사람, (가끔 비판적이긴 했어도) 충성스런 사도, 그리고 모든 면에서 성공적인 사람이었다. 사도들은 유다를 사랑했으며; 그는 진정으로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예수를 믿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우리는 그가 온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있다. 유다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말이 옳음을 잘 나타내 준다: “사람에게 바르게 보이지만 그 끝은 죽음인 길이 있다.” 죄와 죽음의 경로로 향하도록 기분 좋게 조정하는 평화스런 속임수에 희생물이 되기는 무척 쉽다. 유다는 재정적으로 주님과 동료 사도들에게 항상 충실했음을 기억하라. 돈 때문에 주님을 배반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139:12.6 유다는 현명하지 못한 부모의 외아들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지나친 풍요로움을 그에게 줬고, 응석을 다 받아줬으며; 그는 버릇없는 아이였다. 자라나면서, 자신을 지나치게 중요시했다. 불쌍한 패자였다. 공정함에 대해 산만하고 왜곡된 관념을 가졌으며; 미움과 의심을 탐닉했다. 친구들의 언행을 오해하는 데 전문가였다. 유다는 전 생애를 통해서, 자신에게 해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복수하는 습관을 길렀다. 가치와 충성에 대한 그의 감각에 결함이 있었다.
139:12.7 유다는 예수께 신앙의 모험이었다. 주님은 처음부터 이 사도의 약점을 완전히 이해했고, 그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나 모든 창조된 존재에게, 구원과 생존의 완전하고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본성이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대한 피조물의 헌신이 진지하고 전심으로 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의심이 갈 경우에, 사람의 심판자들이 의심스런 후보자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변치 않는 관례임을, 이 세상 필사자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세상의 구경꾼도 알기를 바랐다. 영원한 생명의 문은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으며; “누구든지 들어 갈 수 있으며”; 들어오는 그 사람의 신앙 외에는 어떤 제약도, 자격조건도 없다.
139:12.9 유다의 개인적 실망은 점점 커졌고, 결국 분노의 희생물이 됐다. 그의 감정은 여러 번 상처 받았고, 가장 친한 친구들과 주님까지도 비정상적으로 점점 더 많이 의심하게 됐다. 이윽고, 비록 동역자들과 주님을 배신하는 것일지라도, 자기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139:12.10 그러나 이런 사악하고 위험한 생각은, 고마워하는 한 여자가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의 발에 붓기 전에는, 확실한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유다에게는 그런 행동이 낭비로 여겨졌으며, 자신의 공개적 반론을 모든 사람이 듣는 앞에서 예수가 묵살했을 때, 그것은 너무 버거웠다. 그 사건은, 축적돼온 미움, 상처, 원한, 편견, 질투, 그리고 일생 최대의 원한을 품게 했고, 그는 누구에게 할지 몰랐던 복수를 하기로 작정했으며; 그의 불행한 생애의 철저히 야비한 드라마에서, 그의 모든 악한 본성을 죄 없는 한 사람에게 나타냈는데, 그가 진취적인 빛의 나라로부터 스스로_택한 어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사건에서, 예수가 우연히 주연{主演}이 돼있었기 때문이다.
139:12.11 주님은 그가 넘어지고 있음을 개인적으로나 공개적으로 여러 번 경고했지만, 앙심 품은 인간 본성을 다룸에서는, 신{神}의 경고가 대개 아무 소용없다. 예수께서는 유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의 도덕적 자유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 큰 시험이 마침내 다가왔다. 분노의 아들은 실패했으며; 과장된 자만심의 비열한 거만함과 복수심으로 가득한 마음의 비열한 명령에 굴복해서, 빠른 속도로 혼란과 절망과 타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139:12.12 그런 후에 유다는, 주와 주님을 배신하는 비열하고 부끄러운 책략에 가담하여, 흉악한 계획을 신속하게 실행했다. 분노로_싹튼 불충한 배반의 계획을 열심히 꾸미는 동안, 그는 잠시 후회와 수치심을 체험했으며, 이렇게 제 정신이 있는 동안, 자기 정신 속에서 일종의 비겁한 변명으로, 예수께서 마지막 순간에 자기 권능을 발휘하여 자신을 구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다.
139:12.13 비열하고 죄 많은 일이 모두 수행된 후에, 오랫동안 품어온 복수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은 30을 받고 친구를 가볍게 팔아 넘겼던 이 변절자는, 필사 실존의 실체들로부터 도망치는 드라마에서, 급히 달려 나가 마지막 장면을 연출했다--즉 자살했다.
139:12.14 열한 명의 사도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예수께서는 이 배반자를 오직 동정심으로 바라봤다. 세계들은 유다를 용서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의 이름은, 방대한 우주에서 두루 회피하는 이름이 됐다.
◀제138편 천국 사자의 훈련 ∥ 제140편 열두 사도의 임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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