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편 예수의 성년기 후반부 생애 ∥ 제131편 세계의 종교▶
로마로 가는 길에서
130:0.1 이 세상에서 예수의 생애 가운데, 스물여덟 살 되던 해 대부분과 스물아홉 살 되던 해 전체 기간이 로마 세계 여행에 사용됐다. 예수와 두 명의 인도 원주민은--곧 고노드와 아들 가니드는-- 서기 22년 4월 26일 일요일 아침에 예루살렘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일정에 맞춰 여행했고, 예수는 이듬해인 서기 23년 12월 10일에 페르시아만의 카락스 시에서 그 아버지와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130:0.2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를 경유해서 가이사랴로 갔다. 가이사랴에서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배를 탔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크레테의 라세아로 항해했다. 크레테에서 구레네를 거쳐 카르타고로 갔다. 카르타고에서 나폴리로 가는 배를 탔고, 말타와 시라큐스와 메시나를 경유했다. 그들은 나폴리로부터 카푸아로 갔고, 거기서 로마로 가는 아피아 도로를 여행했다.
130:0.3 로마에 머문 다음에 육로를 이용하여 타렌툼으로 갔고, 거기서 그리스의 아테네로 항해했으며, 니코폴리스와 고린도에 들렀다. 아덴으로부터 드로아를 경유해서 에베소에 이르렀다. 에베소에서 구브로로 항해했고, 가는 도중에 로데에 들렀다. 구브로에서 상당한 시간을 방문과 휴식으로 보냈고, 그다음으로는 시리아의 안디옥을 향해서 항해했다. 안디옥에서 시돈을 향해 남쪽으로 여행했고, 다마스커스까지 갔다. 거기서 대상로를 이용하여 메소포타미아로 갔고, 타프사커스와 라리싸를 지나갔다. 바빌론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우르와 다른 지역들을 방문하고 수싸로 갔다. 수싸에서 카락스로 갔고, 거기서 고노드와 가니드는 배를 타고 인도로 떠났다.
130:0.4 다마스커스에서 일했던 4개월 동안, 예수는 고노드와 가니드가 사용하는 언어의 기본 원리를 습득했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어를 어느 인도 언어로 번역하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 수고했는데, 고노드의 고향 지역에서 온 본국인{本國人}의 도움을 받았다.
130:0.5 이 지중해 지역 여행에서, 예수는 가니드를 가르치고 고노드의 사업상 회담과 사교 접촉이 있을 때 통역하는 일을 하면서, 매일 대략 절반의 시간을 보냈다. 날마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고, 이 시간을 동료 사람들과 긴밀하게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일에 사용했는데, 이 영역의 필사자들과 그토록 친밀하게 교제하는 일은, 공생애 직무를 시작하기 직전의 이 몇 해 동안 그의 활동의 특색이었다.
130:0.6 예수는, 직접 관찰하고 실제로 접촉함으로써, 서양과 레반트의 높은 물질문명과 지적 문명에 익숙해졌으며; 고노드와 그의 영리한 아들로부터는, 인도와 중국의 문명과 문화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는데, 고노드 자신은, 인도 시민이면서 황색 인종의 제국까지 세 번이나 두루 여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30:0.7 청년 가니드는,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이 기간에 예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서로 무척 좋아하게 됐고, 젊은이의 아버지는, 함께 인도로 가자고 예수에게 여러 번 청했지만, 예수는 언제나 팔레스틴 가족에게 돌아가야한다는 이유로 그의 청을 사양했다.
130:1.1 예수는 욥바에 머무는 동안에 가디아를 만났는데, 그는 제혁업자{製革業者} 시몬을 위하여 일하는 필리스티아인 통역자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고노드의 대리점들이 이 시몬과 많이 거래했으므로, 고노드와 그 아들은 가이사랴로 가는 길에 시몬을 방문하기로 했다. 욥바에 머무는 동안에 예수와 가디아는 다정한 친구가 됐다. 이 젊은 필리스티아인은 진리를 찾는 자였다. 예수는 진리를 수여하는 사람이었으며; 유란시아에서 그 세대의 사람들에게 진리였다. 위대한 진리를 찾는 자와 진리를 수여하는 위대한 사람이 만나면, 그 결과로 새 진리를 체험함으로써 사람을 해방시키는 큰 깨우침이 탄생된다.
130:1.2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예수와 필리스티아인 청년은 해변을 거닐었고, 가디아는 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이 히브리 전승에 정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불운한 항해를 시작하려고 승선했던 배가 정박해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수에게 그 배를 가리켰다. 설명을 마치면서, 그는 “그렇지만, 큰 물고기가 실제로 요나를 삼켰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때 예수는, 이 젊은이의 인생이 이런 전통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이를 깊이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의무를 피해보려는 시도는 어리석다고 마음에 깊이 새겼음을 감지했으며; 따라서 예수는, 실질적 생활을 하도록 가디아에게 현재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토대를 갑자기 무너뜨릴 만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여,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는 요나이며, 유혹에 빠져서 현재의 삶의 의무를 피하려고 할 때마다, 진리의 능력과 정의의 힘이 지시하지 않는 그런 영향의 통제를 즉시 받게 된다.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진리를 희생시킨다. 빛과 생명을 위한 헌신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다루기 힘든 고래와 비참하리만큼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 뿐인데, 하나님을_저버린 그런 요나들이 절망의 밑바닥에 빠져있을지라도,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과 그의 선하심을 찾지 않는다면, 이 이기심이 결국 어둠과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 그런 낙심된 혼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에는--곧 진리에 굶주리고 의에 목마를 때에는--, 아무 것도 저희를 더 이상 포로로 붙잡아 둘 수 없다. 저희가 아무리 깊은 곳에 빠져 있더라도, 전심으로 빛을 구하면,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의 영이 저희를 속박에서 구출할 것이며, 불운한 생활환경은, 새롭게 봉사하고 더 현명하게 살아갈 새 기회가 있는 마른 땅 위로 저희를 토해낼 것이다.”
130:1.3 가디아는 예수의 가르침에 크게 감동됐고, 그들은 밤이 깊도록 해변에서 이야기했으며,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서로를 위하여 함께 기도했다. 나중에 베드로의 전도를 듣고 나사렛 예수를 신실하게 믿게 된, 도르가의 집에서 어느 날 저녁에 베드로와 인상적인 토론을 벌였던 가디아가 바로 이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디아는, 부유한 가죽 무역업자 시몬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는 마지막 결심을 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130:1.4 (지중해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예수가 동료 필사자들과 함께 했던 개인 행적을 서술할 때, 우리가 허락 받은 한도 내에서, 이 문서가 제시될 당시에 사용되던 유란시아의 현대 언어로 그의 말씀을 자유롭게 번역할 것이다.)
130:1.5 가디아와 가진 마지막 만남에서, 예수는 선악{善惡}에 대해 토론했다. 이 필리스티아 청년은 세상에 악이 선과 공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김으로써 많이 괴로워했다. 그는, “하나님이 무한히 선하시다면, 어찌하여 우리가 악으로 인한 슬픔을 겪도록 내버려두실까요; 아무튼, 악은 누가 창조합니까?”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선과 악을 다 창조한다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믿었지만, 예수는 그런 오류를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이 질문에 예수가 대답했다: “형제여,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러므로 반드시 선하시고, 그의 선하심은 너무나 크고 실제적이어서, 그 선하심은 하찮은 비실제적인 것들을 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아주 명백하게 선하시기 때문에, 부정적인 악이 그분 속에 있을 자리가 절대로 없다. 악은, 선에 저항하고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진리에 불충하는 자들의 미성숙한 선택이고 경솔한 과실{過失}이다. 악은 다만 미숙하여 잘못 길들여진 것이거나, 무지하여 혼란에 빠지고 왜곡하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악은 어리석게 빛을 거부한 결과로 수반되는 필연적 어둠이다. 악은 어둡고 거짓된 어떤 것이며, 알면서 받아들이고 고의로 지지할 때, 그 악이 죄가 된다.
130:1.6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진리와 오류 사이에서 선택하는 능력을 너희에게 주심으로써, 빛과 생명이라는 긍정적 통로에 부정적 잠재성도 있게 하셨지만; 지성 있는 피조물 의지가 삶의 방식을 잘못_선택하여 악한 실책을 의도적으로 범하기 전에는, 그런 실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다음에, 강퍅하고 반역적인 피조물이 알면서 계획하여 선택함으로써, 그런 악은 나중에 죄로 발전한다. 추수하는 시기까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자연이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선과 악을 생명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다.” 가디아는 그 뒤에 이어진 토론을 통해서 이런 중요한 말의 실제 의미가 마음 속에 명쾌하게 되자, 자신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에 충분히 만족했다.
130:2.1 그들이 타고 가려던 배의 거대한 방향타{方向舵} 하나가 쪼개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에, 예수와 친구들은 계획보다 더 오래 가이사랴에 머물렀다. 선장은 새 방향타가 만들어질 동안 항구에 정박해있기로 결정했다. 이 과제를 맡아서 해결할 숙련된 목수가 부족했으므로, 예수는 자원해서 도와줬다. 저녁시간에, 예수와 친구들은 항구 주위에서 산책로로 쓰이는 아름다운 제방 위를 거닐었다. 가니드는 그 도시의 수리{水利} 체계와, 조수{潮水}를 이용하여 도로와 하수도를 씻어 내리도록 꾸민 기법에 대한 예수의 설명을 매우 재미있게 들었다. 인도에서 온 이 젊은이는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 신전은 높은 언덕에 자리잡았고, 로마 황제의 거대한 동상이 그 위에 서 있었다. 거기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오후에, 세 사람은 좌석이 2만 개나 되는 거대한 원형극장의 공연에 참석했고, 그날 밤에는 극장에서 상연되는 그리스 연극을 보러 갔다. 이런 것들은 가니드가 처음 구경하는 것이었고, 그는 이것들에 대해 예수에게 많이 질문했다. 셋째 날 아침에, 그들은 총독 관저를 공식 방문했는데, 가이사랴는 팔레스틴의 수도이자 로마 행정관의 거주지였기 때문이다.
130:2.2 그들의 숙소에 몽골에서 온 한 상인도 묵었고, 극동에서 온 이 사람은 그리스어에 유창했기 때문에, 예수는 여러 차례 긴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이 사람은 예수의 인생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특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매일 복종함으로써,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늘의 삶을 사는 것”에 관한 지혜로운 말을 결코 잊지 못했다. 이 상인은 도교 신자였는데, 이 가르침으로 인해 우주의 신격에 대한 교리를 굳게 믿는 사람이 됐다. 몽골로 돌아가자, 수준 높은 이 진리를 이웃과 사업 동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런 활동의 직접 결과로, 그의 장남은 도교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젊은이는 일생 동안 이 수준 높은 진리를 위하여 큰 영향력을 미쳤고, 그의 아들과 손자 역시 그를 따라서, 유일한 하나님--곧 하늘의 최상급 통치자--에 대한 교리에 헌신적으로 충성했다.
130:2.3 필라델피아에 본부를 둔 초기 그리스도교 동쪽 분파가, 예루살렘의 형제들보다 예수의 교훈을 더 신실하게 믿는 동안, 베드로 같은 사람이 아무도 중국에 들어간 적 없고, 바울 같은 사람이 아무도 인도에 들어간 적 없었던 것은, 매우 유감이며, 당시에 그 곳의 영적 토양은, 새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에 무척 적당했다. 필라델피아인이 간직했던 바로 이런 예수의 교훈은,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가 서방에서 이뤘던 것처럼, 영적으로 갈급했던 이 아시아 사람들의 정신에게도, 즉시 효과적으로 설득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130:2.4 예수와 함께 방향타를 만들던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가, 하루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동안에 예수가 이따금 들려주는 말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 세상 자녀들의 행복에 관심을 두신다고 예수가 넌지시 바쳤을 때, 이 젊은 그리스인 아낙산드는, “하나님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신다면, 매정하고 불공정한 이 작업장 감독을 왜 없애버리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네가 친절을 베푸는 방법을 알고 공정함을 존중하기 때문에, 어쩌면 하나님들은 네가 이 부정{不正}한 사람을 이런 더 좋은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가까이에 두셨는지도 모른다. 아마 너는, 다른 모든 사람이 이 형제를 더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소금일 것인데; 네가 맛을 잃지 않았다면 그렇다. 현재로서는, 이 사람의 악한 방식이 너에게 불리하게 영향을 주는 면에서, 그가 너의 주인이다. 선의 힘으로 악을 지배하면, 너희 두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에서 네가 주인이 될 수 있는데도, 너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너의 안에 있는 선에게 네가 공정하고 순전한 기회를 주면, 그 선이 그 사람 안에 있는 악을 압도할 것이라고 나는 예상한다. 필사자로서 실존하는 동안에, 실책과 악을 이기는 하나의 투쟁에서 얻는 영적 에너지와 신성한 진리를 가지고, 물질적 인생에서 동업자가 되는 기쁨을 맛보는 것보다 더 매혹적인 모험은 없다. 그것은 영적 어둠 속에 앉아있는 필사자에게 영적 빛의 생생한 경로가 되는, 기묘하고 변화시키는 체험이다. 네가 이 사람보다 진리로 더 많은 복을 받았다면, 너는 그의 부족한 처지에 자극을 받았어야한다. 너는, 헤엄치지 못하는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바닷가에 서 있을 겁쟁이는 분명히 아니다! 물에 빠져서 죽는 육체와 비교할 때,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는 이 사람의 혼이 얼마나 더 중요하냐!”
130:2.5 아낙산드는 예수의 말에 크게 감동받았다. 이윽고 그는 예수가 한 말을 상관에게 전했고, 그날 밤 두 사람은 자신의 혼의 행복을 위하여 예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도교의 말씀이 가이사랴에 전파됐을 때, 하나는 그리스인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인인 이 두 사람 다, 빌립의 전도를 믿고, 빌립이 설립한 교회의 훌륭한 회원이 됐다. 이 젊은 그리스인은, 후에 베드로의 봉사를 통해서 신자가 된 로마 백부장 코넬리우스의 청지기가 됐다. 아낙산드는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감옥에 갇히는 날까지, 어둠 속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빛을 비췄는데, 그때, 2만 명의 유대인 대학살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고난당하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살피다가 사고로 죽었다.
130:2.6 이 무렵에 가니드는, 선생님이 동료 사람들을 이렇게 친히 섬기는 일에 어떻게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지 알기 시작했고, 이 젊은 인도인은 예수가 이런 활동을 쉴 새 없이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은 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그토록 끊임없이 전념하십니까?”라고 그가 물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가니드야,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낯선 사람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는 체험을 하면서 너는 모든 사람이 네 형제임을 발견할 것인데, 새로 발견한 형제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느냐? 형제자매들과 사귀고, 저희의 문제를 알게 되고, 저희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인생에서 최상의 체험이다.”
130:2.7 이 논의는 밤늦도록 계속됐고, 그러는 중에 그 젊은이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라고 불리기도 하는 인간 정신의 선택 행위 사이의 차이를 말해달라고 예수께 요청했다. 예수가 말한 요지는 이랬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길이요, 어떤 잠재적 대안에 직면하든지 하나님의 선택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은, 점점 더 하나님처럼 되는 점진적 체험이며, 하나님은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모든 것의 근원이자 목표다. 사람의 뜻은 사람의 길이요, 필사자가 그렇게 되려하고, 행하려하는 그 목표의 총합이자 본질이다. 의지는 자아를_의식하는 존재의 의도적 선택인데, 지성의 반응에 기초한 결단과_실행으로 이끈다.
130:2.8 이날 오후에 예수와 가니드는 아주 영리한 양치기 개 한 마리와 즐겁게 놀았는데, 가니드는 문득, 개도 혼을 갖고 있는지, 의지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었으며, 예수는 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개는 자기 주인, 즉 물질적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정신은 갖고 있으나, 영{靈}이신 하나님을 알 수는 없으며; 따라서 개는 영적 본성을 갖고 있지 않고, 영적 체험도 누릴 수 없다. 개는, 본능에서 나오고 훈련으로 개발될 수 있는 의지를 지녔을지 모르지만, 그런 정신 능력은 영적인 힘이 아니며,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반사적이지도 않기 때문에--곧 그것은 비교적 더 고상하고 도덕적인 의미를 분별한 결과가 아니고, 영적인 영원한 가치를 선택한 결과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는 비교될 수도 없다. 영적으로 분별하고 진리를 선택하는 그런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 필사적 사람을 도덕적 존재, 즉 영적 책임을 느끼는 속성과 영원히 생존할 잠재력을 부여받은 피조물이 되게 한다.” 예수는 이어서, 동물에게는 그런 정신 능력이 없으므로, 동물계는 시간이 지나도 언어를 개발하거나 영원 속에서 인격의 생존과 비슷한 어떤 것이라도 체험하기란 영원토록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날의 가르침으로 인해, 가니드는 사람의 혼이 동물의 몸 속에 윤회{輪廻}한다는 믿음을 다시는 마음에 품지 않았다.
130:2.9 이튿날, 가니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했고, 고노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동물로서 실존하는 물질적 문제와 관계있는 현세의 결정을 내리는 데에만 완전히 몰두하는 인간의 의지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운명에 처해있습니다. 전심을 다해 도덕적으로 결정하고 제한없이 영적으로 선택하는 자는, 이처럼 내주{內住}하는 신의 영과 점진적으로 하나가 돼가며,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살아남는 가치로 점점 더 변화됩니다--즉 신성한 봉사로 끝없이 진보합니다.”
130:2.10 바로 이날, 우리는 이 중대한 진리를 처음 들었는데, 현대 용어로 표현하면 이럴 것이다: “의지란, 주관적 의식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열망의 현상을 체험하게 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서 영적 생각을 하는 인간은 누구나 창조성을 갖게 될 수 있다.
130:0.2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욥바를 경유해서 가이사랴로 갔다. 가이사랴에서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배를 탔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크레테의 라세아로 항해했다. 크레테에서 구레네를 거쳐 카르타고로 갔다. 카르타고에서 나폴리로 가는 배를 탔고, 말타와 시라큐스와 메시나를 경유했다. 그들은 나폴리로부터 카푸아로 갔고, 거기서 로마로 가는 아피아 도로를 여행했다.
130:0.3 로마에 머문 다음에 육로를 이용하여 타렌툼으로 갔고, 거기서 그리스의 아테네로 항해했으며, 니코폴리스와 고린도에 들렀다. 아덴으로부터 드로아를 경유해서 에베소에 이르렀다. 에베소에서 구브로로 항해했고, 가는 도중에 로데에 들렀다. 구브로에서 상당한 시간을 방문과 휴식으로 보냈고, 그다음으로는 시리아의 안디옥을 향해서 항해했다. 안디옥에서 시돈을 향해 남쪽으로 여행했고, 다마스커스까지 갔다. 거기서 대상로를 이용하여 메소포타미아로 갔고, 타프사커스와 라리싸를 지나갔다. 바빌론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우르와 다른 지역들을 방문하고 수싸로 갔다. 수싸에서 카락스로 갔고, 거기서 고노드와 가니드는 배를 타고 인도로 떠났다.
130:0.4 다마스커스에서 일했던 4개월 동안, 예수는 고노드와 가니드가 사용하는 언어의 기본 원리를 습득했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어를 어느 인도 언어로 번역하기에 많은 시간을 들여 수고했는데, 고노드의 고향 지역에서 온 본국인{本國人}의 도움을 받았다.
130:0.5 이 지중해 지역 여행에서, 예수는 가니드를 가르치고 고노드의 사업상 회담과 사교 접촉이 있을 때 통역하는 일을 하면서, 매일 대략 절반의 시간을 보냈다. 날마다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고, 이 시간을 동료 사람들과 긴밀하게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일에 사용했는데, 이 영역의 필사자들과 그토록 친밀하게 교제하는 일은, 공생애 직무를 시작하기 직전의 이 몇 해 동안 그의 활동의 특색이었다.
130:0.6 예수는, 직접 관찰하고 실제로 접촉함으로써, 서양과 레반트의 높은 물질문명과 지적 문명에 익숙해졌으며; 고노드와 그의 영리한 아들로부터는, 인도와 중국의 문명과 문화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는데, 고노드 자신은, 인도 시민이면서 황색 인종의 제국까지 세 번이나 두루 여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130:0.7 청년 가니드는,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던 이 기간에 예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은 서로 무척 좋아하게 됐고, 젊은이의 아버지는, 함께 인도로 가자고 예수에게 여러 번 청했지만, 예수는 언제나 팔레스틴 가족에게 돌아가야한다는 이유로 그의 청을 사양했다.
130:1.1 예수는 욥바에 머무는 동안에 가디아를 만났는데, 그는 제혁업자{製革業者} 시몬을 위하여 일하는 필리스티아인 통역자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고노드의 대리점들이 이 시몬과 많이 거래했으므로, 고노드와 그 아들은 가이사랴로 가는 길에 시몬을 방문하기로 했다. 욥바에 머무는 동안에 예수와 가디아는 다정한 친구가 됐다. 이 젊은 필리스티아인은 진리를 찾는 자였다. 예수는 진리를 수여하는 사람이었으며; 유란시아에서 그 세대의 사람들에게 진리였다. 위대한 진리를 찾는 자와 진리를 수여하는 위대한 사람이 만나면, 그 결과로 새 진리를 체험함으로써 사람을 해방시키는 큰 깨우침이 탄생된다.
130:1.2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예수와 필리스티아인 청년은 해변을 거닐었고, 가디아는 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이 히브리 전승에 정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불운한 항해를 시작하려고 승선했던 배가 정박해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수에게 그 배를 가리켰다. 설명을 마치면서, 그는 “그렇지만, 큰 물고기가 실제로 요나를 삼켰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때 예수는, 이 젊은이의 인생이 이런 전통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이를 깊이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의무를 피해보려는 시도는 어리석다고 마음에 깊이 새겼음을 감지했으며; 따라서 예수는, 실질적 생활을 하도록 가디아에게 현재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토대를 갑자기 무너뜨릴 만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친구여,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인생을 살아가는 요나이며, 유혹에 빠져서 현재의 삶의 의무를 피하려고 할 때마다, 진리의 능력과 정의의 힘이 지시하지 않는 그런 영향의 통제를 즉시 받게 된다.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진리를 희생시킨다. 빛과 생명을 위한 헌신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다루기 힘든 고래와 비참하리만큼 싸울 수밖에 없도록 만들 뿐인데, 하나님을_저버린 그런 요나들이 절망의 밑바닥에 빠져있을지라도,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과 그의 선하심을 찾지 않는다면, 이 이기심이 결국 어둠과 죽음으로 이끌 것이다. 그런 낙심된 혼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에는--곧 진리에 굶주리고 의에 목마를 때에는--, 아무 것도 저희를 더 이상 포로로 붙잡아 둘 수 없다. 저희가 아무리 깊은 곳에 빠져 있더라도, 전심으로 빛을 구하면,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의 영이 저희를 속박에서 구출할 것이며, 불운한 생활환경은, 새롭게 봉사하고 더 현명하게 살아갈 새 기회가 있는 마른 땅 위로 저희를 토해낼 것이다.”
130:1.3 가디아는 예수의 가르침에 크게 감동됐고, 그들은 밤이 깊도록 해변에서 이야기했으며,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서로를 위하여 함께 기도했다. 나중에 베드로의 전도를 듣고 나사렛 예수를 신실하게 믿게 된, 도르가의 집에서 어느 날 저녁에 베드로와 인상적인 토론을 벌였던 가디아가 바로 이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디아는, 부유한 가죽 무역업자 시몬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는 마지막 결심을 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130:1.4 (지중해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예수가 동료 필사자들과 함께 했던 개인 행적을 서술할 때, 우리가 허락 받은 한도 내에서, 이 문서가 제시될 당시에 사용되던 유란시아의 현대 언어로 그의 말씀을 자유롭게 번역할 것이다.)
130:1.5 가디아와 가진 마지막 만남에서, 예수는 선악{善惡}에 대해 토론했다. 이 필리스티아 청년은 세상에 악이 선과 공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김으로써 많이 괴로워했다. 그는, “하나님이 무한히 선하시다면, 어찌하여 우리가 악으로 인한 슬픔을 겪도록 내버려두실까요; 아무튼, 악은 누가 창조합니까?”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선과 악을 다 창조한다고,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믿었지만, 예수는 그런 오류를 결코 가르치지 않았다. 이 질문에 예수가 대답했다: “형제여,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러므로 반드시 선하시고, 그의 선하심은 너무나 크고 실제적이어서, 그 선하심은 하찮은 비실제적인 것들을 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아주 명백하게 선하시기 때문에, 부정적인 악이 그분 속에 있을 자리가 절대로 없다. 악은, 선에 저항하고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진리에 불충하는 자들의 미성숙한 선택이고 경솔한 과실{過失}이다. 악은 다만 미숙하여 잘못 길들여진 것이거나, 무지하여 혼란에 빠지고 왜곡하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악은 어리석게 빛을 거부한 결과로 수반되는 필연적 어둠이다. 악은 어둡고 거짓된 어떤 것이며, 알면서 받아들이고 고의로 지지할 때, 그 악이 죄가 된다.
130:1.6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진리와 오류 사이에서 선택하는 능력을 너희에게 주심으로써, 빛과 생명이라는 긍정적 통로에 부정적 잠재성도 있게 하셨지만; 지성 있는 피조물 의지가 삶의 방식을 잘못_선택하여 악한 실책을 의도적으로 범하기 전에는, 그런 실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다음에, 강퍅하고 반역적인 피조물이 알면서 계획하여 선택함으로써, 그런 악은 나중에 죄로 발전한다. 추수하는 시기까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자연이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선과 악을 생명이 끝날 때까지 함께 있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다.” 가디아는 그 뒤에 이어진 토론을 통해서 이런 중요한 말의 실제 의미가 마음 속에 명쾌하게 되자, 자신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에 충분히 만족했다.
130:2.1 그들이 타고 가려던 배의 거대한 방향타{方向舵} 하나가 쪼개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에, 예수와 친구들은 계획보다 더 오래 가이사랴에 머물렀다. 선장은 새 방향타가 만들어질 동안 항구에 정박해있기로 결정했다. 이 과제를 맡아서 해결할 숙련된 목수가 부족했으므로, 예수는 자원해서 도와줬다. 저녁시간에, 예수와 친구들은 항구 주위에서 산책로로 쓰이는 아름다운 제방 위를 거닐었다. 가니드는 그 도시의 수리{水利} 체계와, 조수{潮水}를 이용하여 도로와 하수도를 씻어 내리도록 꾸민 기법에 대한 예수의 설명을 매우 재미있게 들었다. 인도에서 온 이 젊은이는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 신전은 높은 언덕에 자리잡았고, 로마 황제의 거대한 동상이 그 위에 서 있었다. 거기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오후에, 세 사람은 좌석이 2만 개나 되는 거대한 원형극장의 공연에 참석했고, 그날 밤에는 극장에서 상연되는 그리스 연극을 보러 갔다. 이런 것들은 가니드가 처음 구경하는 것이었고, 그는 이것들에 대해 예수에게 많이 질문했다. 셋째 날 아침에, 그들은 총독 관저를 공식 방문했는데, 가이사랴는 팔레스틴의 수도이자 로마 행정관의 거주지였기 때문이다.
130:2.2 그들의 숙소에 몽골에서 온 한 상인도 묵었고, 극동에서 온 이 사람은 그리스어에 유창했기 때문에, 예수는 여러 차례 긴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이 사람은 예수의 인생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특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매일 복종함으로써,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늘의 삶을 사는 것”에 관한 지혜로운 말을 결코 잊지 못했다. 이 상인은 도교 신자였는데, 이 가르침으로 인해 우주의 신격에 대한 교리를 굳게 믿는 사람이 됐다. 몽골로 돌아가자, 수준 높은 이 진리를 이웃과 사업 동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런 활동의 직접 결과로, 그의 장남은 도교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젊은이는 일생 동안 이 수준 높은 진리를 위하여 큰 영향력을 미쳤고, 그의 아들과 손자 역시 그를 따라서, 유일한 하나님--곧 하늘의 최상급 통치자--에 대한 교리에 헌신적으로 충성했다.
130:2.3 필라델피아에 본부를 둔 초기 그리스도교 동쪽 분파가, 예루살렘의 형제들보다 예수의 교훈을 더 신실하게 믿는 동안, 베드로 같은 사람이 아무도 중국에 들어간 적 없고, 바울 같은 사람이 아무도 인도에 들어간 적 없었던 것은, 매우 유감이며, 당시에 그 곳의 영적 토양은, 새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에 무척 적당했다. 필라델피아인이 간직했던 바로 이런 예수의 교훈은,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가 서방에서 이뤘던 것처럼, 영적으로 갈급했던 이 아시아 사람들의 정신에게도, 즉시 효과적으로 설득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130:2.4 예수와 함께 방향타를 만들던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가, 하루는 조선소에서 일하는 동안에 예수가 이따금 들려주는 말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 세상 자녀들의 행복에 관심을 두신다고 예수가 넌지시 바쳤을 때, 이 젊은 그리스인 아낙산드는, “하나님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신다면, 매정하고 불공정한 이 작업장 감독을 왜 없애버리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대답에 깜짝 놀랐다: “네가 친절을 베푸는 방법을 알고 공정함을 존중하기 때문에, 어쩌면 하나님들은 네가 이 부정{不正}한 사람을 이런 더 좋은 길로 인도할 수 있도록 가까이에 두셨는지도 모른다. 아마 너는, 다른 모든 사람이 이 형제를 더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소금일 것인데; 네가 맛을 잃지 않았다면 그렇다. 현재로서는, 이 사람의 악한 방식이 너에게 불리하게 영향을 주는 면에서, 그가 너의 주인이다. 선의 힘으로 악을 지배하면, 너희 두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에서 네가 주인이 될 수 있는데도, 너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 너의 안에 있는 선에게 네가 공정하고 순전한 기회를 주면, 그 선이 그 사람 안에 있는 악을 압도할 것이라고 나는 예상한다. 필사자로서 실존하는 동안에, 실책과 악을 이기는 하나의 투쟁에서 얻는 영적 에너지와 신성한 진리를 가지고, 물질적 인생에서 동업자가 되는 기쁨을 맛보는 것보다 더 매혹적인 모험은 없다. 그것은 영적 어둠 속에 앉아있는 필사자에게 영적 빛의 생생한 경로가 되는, 기묘하고 변화시키는 체험이다. 네가 이 사람보다 진리로 더 많은 복을 받았다면, 너는 그의 부족한 처지에 자극을 받았어야한다. 너는, 헤엄치지 못하는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바닷가에 서 있을 겁쟁이는 분명히 아니다! 물에 빠져서 죽는 육체와 비교할 때,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는 이 사람의 혼이 얼마나 더 중요하냐!”
130:2.5 아낙산드는 예수의 말에 크게 감동받았다. 이윽고 그는 예수가 한 말을 상관에게 전했고, 그날 밤 두 사람은 자신의 혼의 행복을 위하여 예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도교의 말씀이 가이사랴에 전파됐을 때, 하나는 그리스인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인인 이 두 사람 다, 빌립의 전도를 믿고, 빌립이 설립한 교회의 훌륭한 회원이 됐다. 이 젊은 그리스인은, 후에 베드로의 봉사를 통해서 신자가 된 로마 백부장 코넬리우스의 청지기가 됐다. 아낙산드는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감옥에 갇히는 날까지, 어둠 속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빛을 비췄는데, 그때, 2만 명의 유대인 대학살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고난당하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살피다가 사고로 죽었다.
130:2.6 이 무렵에 가니드는, 선생님이 동료 사람들을 이렇게 친히 섬기는 일에 어떻게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지 알기 시작했고, 이 젊은 인도인은 예수가 이런 활동을 쉴 새 없이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은 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그토록 끊임없이 전념하십니까?”라고 그가 물었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했다: “가니드야,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아무도 낯선 사람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는 체험을 하면서 너는 모든 사람이 네 형제임을 발견할 것인데, 새로 발견한 형제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느냐? 형제자매들과 사귀고, 저희의 문제를 알게 되고, 저희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인생에서 최상의 체험이다.”
130:2.7 이 논의는 밤늦도록 계속됐고, 그러는 중에 그 젊은이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라고 불리기도 하는 인간 정신의 선택 행위 사이의 차이를 말해달라고 예수께 요청했다. 예수가 말한 요지는 이랬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길이요, 어떤 잠재적 대안에 직면하든지 하나님의 선택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은, 점점 더 하나님처럼 되는 점진적 체험이며, 하나님은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모든 것의 근원이자 목표다. 사람의 뜻은 사람의 길이요, 필사자가 그렇게 되려하고, 행하려하는 그 목표의 총합이자 본질이다. 의지는 자아를_의식하는 존재의 의도적 선택인데, 지성의 반응에 기초한 결단과_실행으로 이끈다.
130:2.8 이날 오후에 예수와 가니드는 아주 영리한 양치기 개 한 마리와 즐겁게 놀았는데, 가니드는 문득, 개도 혼을 갖고 있는지, 의지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었으며, 예수는 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개는 자기 주인, 즉 물질적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정신은 갖고 있으나, 영{靈}이신 하나님을 알 수는 없으며; 따라서 개는 영적 본성을 갖고 있지 않고, 영적 체험도 누릴 수 없다. 개는, 본능에서 나오고 훈련으로 개발될 수 있는 의지를 지녔을지 모르지만, 그런 정신 능력은 영적인 힘이 아니며,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반사적이지도 않기 때문에--곧 그것은 비교적 더 고상하고 도덕적인 의미를 분별한 결과가 아니고, 영적인 영원한 가치를 선택한 결과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는 비교될 수도 없다. 영적으로 분별하고 진리를 선택하는 그런 능력을 소유하는 것이, 필사적 사람을 도덕적 존재, 즉 영적 책임을 느끼는 속성과 영원히 생존할 잠재력을 부여받은 피조물이 되게 한다.” 예수는 이어서, 동물에게는 그런 정신 능력이 없으므로, 동물계는 시간이 지나도 언어를 개발하거나 영원 속에서 인격의 생존과 비슷한 어떤 것이라도 체험하기란 영원토록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날의 가르침으로 인해, 가니드는 사람의 혼이 동물의 몸 속에 윤회{輪廻}한다는 믿음을 다시는 마음에 품지 않았다.
130:2.9 이튿날, 가니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했고, 고노드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동물로서 실존하는 물질적 문제와 관계있는 현세의 결정을 내리는 데에만 완전히 몰두하는 인간의 의지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운명에 처해있습니다. 전심을 다해 도덕적으로 결정하고 제한없이 영적으로 선택하는 자는, 이처럼 내주{內住}하는 신의 영과 점진적으로 하나가 돼가며,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살아남는 가치로 점점 더 변화됩니다--즉 신성한 봉사로 끝없이 진보합니다.”
130:2.10 바로 이날, 우리는 이 중대한 진리를 처음 들었는데, 현대 용어로 표현하면 이럴 것이다: “의지란, 주관적 의식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열망의 현상을 체험하게 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서 영적 생각을 하는 인간은 누구나 창조성을 갖게 될 수 있다.
3. 알렉산드리아에서
130:3.1 가이사랴 방문에서는 사건이 많았고, 배가 준비되자, 예수와 두 친구는 어느 날 한낮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향해서 출발했다.
130:3.2 세 사람은 알렉산드리아까지 여행하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니드는 이 항해를 무척 즐겼고, 예수는 그의 여러 질문에 대답하느라 바빴다. 그 도시의 항구에 다가가자, 젊은이는 어느 섬에 있는 거대한 파로스 등대를 보고 흥분했는데, 알렉산더가 방파제를 만들어서 이 섬을 본토에 연결시켰으며, 또한 두 개의 큰 항구를 만들어서, 알렉산드리아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해상무역의 교차로 구실을 하게 했다. 이 거대한 등대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였고, 후대의 모든 등대의 기원이 됐다. 그들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이 장엄한 건축물을 보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났고, 가니드가 감탄사를 연발할 때 예수가 말했다: “그리고 얘야, 인도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너는 이 등대처럼 될 것이며; 그토록 원하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항구에 안전하게 도달하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어둠 속에 앉아있는 네 주위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처럼 될 것이다.” 그러자 가니드는 예수의 손을 꼭 잡고,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130:3.3 초기 그리스도교 선생들이 로마 세계의 서방 문명권에만 집중적으로 주의를 기울인 것은 큰 실수였음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지적한다. 다양한 집단의 아시아 종교인들도, 1세기에 메소포타미아의 신자들이 지켰던 것처럼, 예수의 교훈을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130:3.4 그들은 항구에 도착한 지 네 시간 후에, 길고 넓은 도로의 동쪽 끝부분 가까운 장소에 숙박 장소를 정했는데, 이 길은 폭이 30미터, 길이는 5마일 정도 되고, 1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 도시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었다. 그 도시에서 제일 볼만한 것들--곧 대학(박물관), 도서관, 알렉산더의 왕릉, 궁정, 넵튠 신전, 극장, 체육관--을 먼저 돌아본 후에, 고노드는 자신의 사업에 관계되는 일을 시작했고, 예수와 가니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으로 갔다. 거기에는 모든 문명세계: 즉 그리스, 로마, 팔레스틴, 파르티아, 인도, 중국, 그리고 심지어 일본에서 가져온, 거의 100만 권에 달하는 서적이 수집돼있었다. 이 도서관에서, 가니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집된 인도 문헌을 봤으며;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에 머무는 동안 여기서 매일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예수는 가니드에게, 히브리 성서가 여기서 그리스어로 번역됐던 것에 관하여 말해줬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모든 종교에 대해 계속 토론했으며, 그때마다 예수는 이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이 덧붙이면서, 그의 정신에 진리를 심어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야훼는 멜기세덱의 계시와 아브라함의 언약으로부터 발전된 하나님이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나중에는 멜기세덱이 살고 가르치면서 모든 세계에 선생들을 보낸 중심지였던 바로 그 땅을 차지했으며; 다른 어떤 세상 종교보다 유대인의 종교는 결국,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만유의 아버지로서 더 분명하게 인식했음을 보여줬다.”
130:3.5 가니드는 예수의 지도하에, 비록 열등한 신격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더라도 우주의 신격을 알아보는, 세상의 모든 종교 교훈을 수집했다. 많은 토론이 있은 후에 예수와 가니드는, 로마인의 종교에는 참 하나님이 없다고, 그들의 종교는 거의 황제 숭배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스인은, 철학은 갖고 있지만 인격있는 하나님을 소유한 종교는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신비 종파들은 제외했는데, 여러 종파가 있음으로 혼란되고, 그들의 다양한 신격 개념이, 더 오래된 다른 종교들로부터 파생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130:3.6 이 번역서들이 비록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졌으나, 로마 체류기간이 다 끝나갈 무렵에서야, 가니드는 이런 선별작업을 최종 마무리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결론을 덧붙였다. 세상의 신성시되는 문헌을 기록한 가장 뛰어난 저자들이 모두, 영원한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다소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성품 및 하나님과 필사적 사람의 관계에 관하여 생각이 상당히 같음을 발견하고, 가니드는 무척 놀랐다.
130:3.7 예수와 가니드는 알렉산드리아에 머무는 동안 박물관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박물관은 희귀한 물건을 소장한 곳이라기보다, 예술, 과학, 문학 등을 가르치는 대학이었다. 학식 있는 교수들이 여기서 매일 강의했고, 당시에는 이곳이 서양 세계의 지적 중심지였다. 예수는 날마다 가니드에게 강의를 해석해줬는데; 둘째 주가 되던 어느 날, 가니드가 큰소리로 외쳤다: “예슈아 선생님, 당신은 이 교수들보다 더 많이 아십니다: 당신은 나에게 말해준 위대한 것들을 그들에게도 일어나서 말해줘야 합니다: 그들은 많은 생각으로 흐려져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부탁드려서 이 일을 주선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는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너는 선생을 칭찬하는 학생이지만, 이 선생들은 너와 내가 저희를 가르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영성화되지 않은 채 학문을 배움으로써 생기는심 자만은, 인간의 체험에서 살얼음판 같은 것이다. 참된 선생은 항상 배우는 자로 남음으로써 지적 성실성을 유지한다.”
130:3.8 알렉산드리아는 모든 서양 문화가 혼합된 도시였고, 로마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격조 높은 도시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유대인 회당이 여기 있었는데, 이 회당은 알렉산드리아 산헤드린, 즉 통치하는 70인 장로의 집행부 소재지였다.
130:3.9 고노드가 사업상 거래하는 많은 사람 중에 알렉산더라는 어떤 유대인 은행가가 있었는데, 그의 형제인 필로는 당대에 가장 유명한 종교 철학자였다. 필로는, 그리스 철학과 히브리 신학을 조화시키는, 칭찬받을 만하지만 매우 어려운 과제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니드와 예수는 필로의 교훈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고, 그의 강의에 참석하려고 계획했지만, 이 유명한 헬라파 유대인은 그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머무는 동안 내내 아파서 누워있었다.
130:3.10 예수는 가니드에게 그리스 철학과 스토아학파 교리 가운데 많은 것을 칭찬했지만, 자신의 민족 중에서 일부가 준 불확실한 교훈과 마찬가지로, 이 믿음 체계들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영원자를 아는 생생한 체험을 즐기도록 사람을 인도할 때에만 종교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그 젊은이에게 가슴 깊이 새겨줬다.
4. 실체에 관한 강론
130:4.1 알렉산드리아를 떠나기 전날 밤에, 가니드와 예수는, 플라톤의 교훈에 관하여 대학에서 강의하던, 정부 소속 교수 한 사람과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예수는, 박식한 그리스인 교수의 말을 통역했지만, 그리스 철학을 반박하는 자신의 교훈은 거기에 개입시키지 않았다. 그날 밤에 고노드는 사업 관계로 다른 곳에 있었으며; 교수가 자리를 떠나자, 선생과 그의 제자는 플라톤의 학설에 관해 흉금을 털어놓고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예수는,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더 본질적인 영적 실체의 그림자라는 이론을 다루는, 그리스 철학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적합한 동의를 했던 반면, 좀 더 신뢰할만한 기초를 젊은이의 생각에 마련해주려고 애썼으며; 그리하여 그는 우주 실체의 본질에 관하여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수가 가니드에게 말했던 내용을 현대 언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130:4.2 우주 실체의 근원은 무한자다. 유한한 창조에 속하는 물질 사물은, 낙원 원형과 영원하신 하나님의 우주 정신이 시_공간에 반향{反響}한 결과다. 물리적 세계에서 인과관계, 지적 세계에서 자아_의식, 그리고 영{靈} 세계에서 진보하는 자아성--곧 우주적인 규모로 기획되고, 영원한 관련성 속에 합병되고, 완전한 자질과 신성한 가치를 체험한 이 세 가지 실체들--이 지존자의 실체를 구성한다. 그러나 늘_변하는 우주에서 원인이자 지성이요 영 체험인 원조{元祖} 인격체는, 변하지 않고 절대적이다. 절대자들, 그리고 물리적 상태나 지적 용납이나 영적 정체성을 달성한 절대적인 것들은 제외하고, 무한한 가치와 신성한 특성을 지닌 영원한 우주에서도 모든 것은 변할 수 있고 또한 종종 변한다.
130:4.3 유한한 피조물이 진보하여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은, 만유의 아버지를 인식하는 것이요 지존자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완결에 이르는 그런 존재들은, 물리 세계의 움직임과 그 물질 현상 속에서 변화를 계속 체험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영적 우주를 계속 상승하면서 자아성이 진보하는 것을 여전히 자각하고, 지적 시공우주를 더 깊이 이해하고, 또한 그런 우주에 반응하는 것을 속에서 점점 더 의식하는 것을 여전히 자각한다. 오직 의지가 완전해지고, 조화되고, 일치되는 가운데, 피조물은 창조주와 하나가 될 수 있으며, 피조물이 자신의 유한한 개인 의지를 창조주의 신성한 뜻에 항상 맞춤으로써, 시간과 영원 속에서 계속 살아감으로써만, 그런 신성의 위엄을 달성하고 유지한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욕구가, 상승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혼 속에서 언제나 주권을 가져야하고 그 정신을 지배해야한다.
130:4.4 눈이 하나 밖에 없는 사람은 결코 원근을 감지하기를 바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 눈으로만 바라보는 물질적인 과학자나 영적 신비가 또는 우화{寓話} 작가도, 우주 실체의 진정한 깊이를 정확하게 감지하거나 충분하게 납득할 수 없다. 피조물이 체험하는 모든 진정한 가치는 인식의 깊은 곳에 감춰져있다.
130:4.5 의도가 없는 인과관계는, 세련되고 복잡한 것을 조잡하고 간단한 것으로부터 진화시킬 수 없으며, 또한 영{靈}이 개재되지 않은 체험도, 영원히 생존하는 신성한 성품을 시간세계 필사자의 물질 정신으로부터 진화시킬 수 없다. 무한한 신격의 특징을 유일하게 나타내는 우주의 한 가지 속성은, 이렇게 점진적으로 신격에 도달하여 생존할 수 있는 인격을 끝없이 창조적으로 증여하는 것이다.
130:4.6 인격은, 무한한 변화와 공존할 수 있고, 동시에 그런 모든 변화가 있는 바로 그 와중에, 그리고 그 후로 언제까지나 그 정체성을 간직하는, 바로 그 시공우주 재능이요, 우주 실체의 바로 그 국면이다.
130:4.7 생명은, 우주 상황에서 생기는 요구와 가능성에 대해, 근원적인 시공우주 인과법칙이 적응하는 것이며, 우주 정신이 작용함으로 인하여, 그리고 영이신 하나님의 영 불꽃이 활성화됨으로써 생명이 존재하게 된다. 생명의 의미는 그 적응력에 있으며; 생명의 가치는 --하나님을_의식하는 높이까지-- 진보할 수 있는 그 기량에 있다.
130:4.8 자아_의식을 지닌 생명체가 우주에 잘못 적응하면 시공우주에 부조화를 일으킨다. 인격 의지가 우주의 경향으로부터 마침내 벗어나는 것은, 지적 고립, 즉 인격이 격리됨으로 종결된다. 내주하는 영 인도자를 잃어버리면, 실존이 영적으로 중지되는 결과가 발생된다. 그래서 진보하는 지성적 생명은, 그 자체로, 신성한 창조주의 뜻을 나타내는 우주, 목적 있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리고 이 생명 전체가 더 높은 가치를 향해서 분투하며, 그 최종 목표는 만유의 아버지다.
130:4.9 지성이 베푸는 높은 준{準}_영적 보살핌을 제외하면, 사람은 동물 수준보다 약간 높은 정신을 소유할 뿐이다. 그러므로 (경배를 드리지 못하고 지혜가 없는) 동물은, 의식 위의 의식인 초의식{超意識}을 체험할 수 없다. 동물의 정신은 오직 객관적 우주만 의식한다.
130:4.10 지식은 물질적 정신, 즉 사실을_분별하는 정신 영역이다. 진리는 하나님을 앎에 대하여 의식하는, 영적으로 부여받은 지성이 활동하는 영역이다. 지식은 설명될 수 있는 것이며;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다. 지식은 정신의 소유물이며; 진리는 혼, 즉 진보하는 자아의 체험이다. 지식은 비영적{非靈的} 수준의 기능이며; 진리는 우주의 정신_영 수준의 한 국면이다. 물질 정신의 눈은, 사실에 입각한 지식 세계를 감지하며; 영성화된 지능의 눈은, 참된 가치 세계를 식별한다. 이 두 눈이 보는 관점은 동시에 작용하고 조화되어 실체의 세계를 드러내는데, 그 안에서 지혜는 점진적으로 몸소 체험함으로 우주 현상을 해석한다.
130:4.11 오류는(곧 악은) 불완전함으로 인한 재앙이다. 불완전함의 특성, 즉 잘못된_적용의 실상은, 물질 수준에서 비판적 관찰과 과학적 분석으로 드러나며; 도덕 수준에서 인간의 체험으로 드러난다. 악이 현존함은, 정신이 부정확하고 진화하는 자아가 미성숙하다는 증거다. 따라서 악은, 사람이 우주를 얼마나 불완전하게 해석하는지를 가리킨다. 과오를 저지를 가능성은, 지혜를 습득함, 즉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하고 영원한 것으로, 또한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최종적이고 완벽한 것으로 나아가려는 기획에 선천적으로 내포돼있다. 오류는 상대적 불완전성의 그림자인데, 사람이 완전한 낙원을 향해 상승하는 우주 경로에서 반드시 마주치게 돼있다. 오류는(곧 악은) 실재하는 우주 특성이 아니며, 단지 불완전한 유한자들의 불완전성이 지존자와 궁극자의 상승하는 수준들에 관련됨으로써 관측되는 상대성에 불과하다.
130:4.12 예수가 비록 이 모든 것을 가니드가 납득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로 말했지만,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 되자 젊은이의 눈은 무거워졌고 곧 잠들었다. 그들은 크레테 섬의 라씨로 가는 배를 타려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러나 출발하기 전에, 젊은이는 악에 관하여 물어볼 질문이 여전히 더 있었고,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130:4.13 악은 상대성 개념이다. 무한하신 분의 영원한 실체들이 우주에 표현하는 생생한 빛을, 사물과 존재로 가득 채워진 유한한 우주가 가림에 따라서, 그런 시공우주가 드리우는 그림자 속에 나타나는 불완전함을 목격함으로 악이 생긴다.
130:4.14 잠재적 악은, 무한성과 영원성이 제한된_시_공간에 표현됨으로써 하나님의 계시가 필연적으로 불완전함에 내재한다. 완성된 것들이 있는 곳에 부분적인 것도 있다는 사실은 상대적 실체이며, 총명하게 선택할 필요성을 만들어내고, 영이 인식하고 반응하는 여러 가치 수준을 정립시킨다. 일시적이고 제한된 피조물의 정신이 간직하는, 무한자에 대한 불완전하고 유한한 개념은, 그 자체로 잠재적인 악{惡}이다. 그러나 본래부터 존재하는 이 지적 부조화와 영적 부족함을 타당한 영적 방식으로 고쳐나가는 동안, 부당하게 결함을 확대하는 잘못은, 실제 악을 실천하는 것에 해당한다.
130:4.15 고정된 개념, 즉 죽어있는 모든 개념은 잠재적으로 악하다. 상대적이고 살아있는 진리가 드리우는 유한한 그림자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고정된 개념은 언제나, 과학, 정치, 사회, 종교 등의 발달을 지체시킨다. 고정된 개념은, 어떤 지식을 나타낼지 모르지만, 지혜가 부족하고 진리가 결여돼있다. 그러나 상대성 개념에 잘못 빠져들어서, 시공우주 정신의 지도를 받으면서 우주가 조정된다는 사실과, 지존자의 영과 에너지로 말미암아 우주가 안정되도록 통제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130:5.1 그 여행자들은 단지 섬을 산보하거나 등산하면서 즐기려는 목적으로 크레테에 갔다. 당시 크레테인은 주변 민족들 사이에서 부러워할만한 아무런 평판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예수와 가니드는 많은 혼을 높은 수준의 생각과 삶으로 인도했고, 예루살렘에서 첫 설교자들이 도착했을 때, 이것이 후대의 복음 교훈을 빨리 받아들이게 하는 기초를 제공했다. 나중에 그들의 교회들을 재조직하려고 티투스{디도}를 그 섬으로 보내면서 바울이 그들에 관해 가혹한 말을 했지만, 예수는 이 크레테인을 사랑했다.
130:5.2 크레테의 산기슭에서, 예수는 종교에 관해 고노드와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는 깊은 감명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저 아이가 믿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다마스커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예루살렘에서도 그런 종교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답니다.” 바로 이 섬에 머무는 동안에, 고노드는 처음으로 예수에게 자신과 함께 인도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으며, 가니드는 예수가 그 계획에 동의하리라는 생각으로 기뻐했다.
130:5.3 어느 날 가니드가 예수에게, 어찌하여 대중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지 않는지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얘야, 모든 것은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한다. 네가 세상에 태어났지만, 아무리 걱정하고 아무리 조바심을 내도, 너를 성장하도록 돕지는 못한다. 그런 모든 문제에, 너는 때를 기다려야한다. 때가 되면, 나무에 달린 풋과일이 저절로 익는다. 시간이 흘러야 계절이 바뀌고, 해가 뜬 뒤에 해가 지는 것도 그러하다. 나는 지금 너와 너의 아버지와 함께 로마로 가는 중이고, 오늘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의 앞날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손에 온전히 달려 있다.” 그리고 나서 모세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40년에 걸친 신중한 기다림과 꾸준한 준비에 대하여 가니드에게 이야기했다.
130:5.4 페어 항구를 방문하던 날, 평생 잊지 못할 일이 가니드에게 일어났는데;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은, 그가 태어난 인도의 신분계층 체계를 바꾸기 위하여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불러 일으켰다. 어떤 술 취한 주정꾼이 공공{公共} 대로변에서 노예 소녀를 폭행하고 있었다. 그 소녀의 곤경을 보자, 예수가 즉시 달려가서 처녀를 미치광이의 공격에서 구했다. 겁에 질린 아이가 그에게 매달려 있는 동안, 그 변변치 못한 사람이 화가 나서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다가 지칠 때까지, 그는 강한 오른팔을 내뻗어서 그 격분한 남자를 안전한 거리에 붙잡아 뒀다. 가니드는 예수가 그 일을 처리하도록 돕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으나, 그의 아버지가 만류했다. 비록 언어는 달랐지만, 소녀는 그들의 자비로운 행동을 알 수 있었고,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준 세 사람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아마도, 예수가 육신을 입었던 전 생애를 통틀어서, 이처럼 동료와 몸으로 씨름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왜 술 취한 남자를 때리지 않았는지를 그날 저녁에 가니드에게 설명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가니드는, 적어도 그 남자가 소녀를 때린 만큼 그도 역시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6. 두려움에 빠진 젊은이
130:6.1 산 위에 올라가 있는 동안, 예수는 두려움이 가득하고 풀죽은 한 젊은이와 긴 시간 이야기했다. 동료들과 교제해도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없었으므로, 이 젊은이는 언덕에서 홀로 있을 곳을 찾고 있었는데; 무기력함과 열등감을 느끼면서 자라났다. 이런 천부적 성향은 소년이 자라면서 부닥쳤던 여러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악화됐는데, 열두 살 때 아버지를 잃은 것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이 만났을 때 예수가 말했다: “여보게 친구여! 이처럼 아름다운 날 어찌하여 그렇게 풀이 죽어있나? 만약 걱정거리가 있다면, 아마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나도 정말 기쁘겠구나.”
130:6.2 젊은이는 대꾸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예수는 그의 혼에게 두 번째로 접근하면서 말했다: “나는 네가 사람을 피해 이 언덕으로 올라온 것을 이해하며; 물론 네가 나와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나는 네가 이 언덕에 익숙한지 알고 싶은데; 오솔길의 방향을 안다면, 혹시 피닉스로 가기에 가장 좋은 길을 나에게 가르쳐주겠느냐?” 그때 이 젊은이는 이 산을 잘 알았고, 정말로 피닉스에 이르는 길을 예수에게 말해주고 싶은 흥미를 느꼈으며, 그래서 모든 오솔길을 땅에 그리면서 각각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예수가 작별 인사를 한 후 마치 떠나려는듯하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그는 깜짝 놀랐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네가 울적한 마음으로 홀로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피닉스에 이르는 가장 좋은 길을 안내 받는 그런 관대한 도움을 받고나서, 네가 이 산기슭에 머무는 동안 마음 속에 추구한 운명의 목표에 이르는 가장 좋은 길로 안내하고, 도와주기를 간절히 구하는 것에 대답해보지도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것은, 인정머리 없고, 공정하지도 않다. 피닉스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을 네가 잘 알고 여러 번 그 길을 지나다닌 것처럼, 나는, 네가 달성하지 못한 희망과 이루지 못한 포부의 도성에 이르는 그 길을 잘 안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을 청했으므로, 나는 너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는 거의 압도당하여 겨우 더듬거리면서, “하지만--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았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는 젊은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 얘야. 말이 아니라 간절한 표정으로 내 마음에 호소했다. 얘야, 동료를 사랑하는 자는, 도와달라는 간절한 호소를, 낙심과 절망이 가득한 너의 표정 속에서 발견한단다. 봉사하는 오솔길과 행복의 대로{大路}에 관해 말해주는 동안 나와 함께 앉아있자, 이 길은 슬픔에 빠진 자아를 사람들의 형제관계 안에서,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 애정으로 활동하는 기쁨을 맛보도록 인도할 것이다.”
130:6.3 이즈음에 젊은이는 예수와 말하고 싶은 생각이 몹시 간절했으며,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서 도와달라고, 개인적 슬픔과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 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가 말했다: “친구여, 일어나라! 남자답게 일어서라! 작은 적들에 둘러싸이고 여러 장애물 때문에 뒤처졌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과 우주의 큰 것과 실제적인 것들이 너의 편이다. 태양은 매일 아침 떠올라, 땅에서 가장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과 똑같이, 너에게도 인사하지 않느냐? 봐라, --너는 튼튼한 육체와 강인한 근육을 가졌으니-- 너의 신체 조건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낫다. 물론, 네가 이런 산기슭에 앉아서, 실제 불운이든지 상상하는 불운이든지 한탄하는 동안에는 너의 몸이 거의 쓸모가 없다. 그러나 이루어지려고 기다리는 큰 일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서 간다면, 너는 그 몸으로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너는 불행한 자신으로부터 도망가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너 자신과 너의 살아가는 문제들은 현실이며; 네가 살아있는 한, 이것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바라봐라, 너의 정신은 맑고 유능하다. 너의 강인한 몸은, 그 몸을 지휘할 총명한 정신을 갖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도록 너의 정신을 작동시키고; 너의 지능이 너를 위하여 일하게 하고; 생각 없는 동물처럼 두려움에 더 이상 지배당하지 않게 해라. 네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비참한 두려움의_노예가 되고 패배와 좌절에 하인으로_묶여있기보다, 너의 정신이 너의 용감한 동지{同志}가 되어 일생의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가치 있는, 실제로 목적을 이루게 하는 너의 잠재력은 너의 안에 있는 영인데, 만약 네가 두려움의 족쇄로부터 너의 정신을 풀어주고, 그리하여 살아있는 신앙으로 침체의 악으로부터 너의 영적 본성이 너를 비로소 해방시킨다면, 그 영은 너의 정신이 스스로 통제하도록 자극하고 영감을 줘서 육신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서, 새롭고 모든_것을_지배하는, 동료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현존함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이 신앙이 극복할 것이며, 이 사랑이 속히 너의 혼에 넘치도록 충만할 것인데, 이는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이 네 마음에 탄생됐기 때문이다.
130:6.4 “얘야, 신앙과 용기로 사람에게 헌신하여 봉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오늘 하나님을 위하여 다시 태어나고 다시_세움받을 것이다. 그리고 네 삶에 몰두하여 재조정될 때, 마찬가지로 우주에 대해서도 재조정될 것이며; 너는 다시 태어났으니--곧 영으로 탄생했으니--, 이제부터는 살아가는 내내 승리를 성취할 것이다. 근심거리는 너에게 활력소가 되며; 낙심은 너에게 격려가 되며; 난관은 너에게 도전이 되며; 장애물은 너에게 자극이 될 것이다. 젊은이여, 깨어나라! 두려움으로 쩔쩔매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 삶에 작별을 고하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즉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고귀하게 봉사하는 데 헌신하고, 영원 속에서 하나님께 영원히 훌륭하게 봉사하도록 예정된 한 필사자로서, 서둘러 너의 임무로 돌아가 육체를 입은 너의 인생을 살아가라.”
130:6.5 그리고, 이 젊은이 행운아{幸運兒}는, 나중에 크레테에서 그리스도교 지도자가 됐고, 티투스가 크레테 신자들을 일깨우려고 수고할 때 친밀한 동역자가 됐다.
130:6.6 충분한 휴식을 취하여 마음이 상쾌해진 어느 날 정오 무렵에, 여행자들은 북 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향해서 항해할 준비를 했고, 구레네에서 이틀간 머물렀다. 여기서 예수와 가니드는, 짐 실은 소달구지에 받쳐서 부상당한 루포라는 젊은이에게 응급치료를 해줬다. 그를 집으로 어머니에게 데려다 줬으며, 아버지 시몬은 후일에 로마 병사의 명령에 따라서 한 남자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됐는데, 그가 한때 자기 아들을 보살펴준 바로 그 낯선 사람이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7. 카르타고에서--시간과 공간에 대한 강론
130:7.2 어쩌다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예수에게 매료됐음을 알았으므로, 가니드가 예수에게, 친구를 사귀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자, 선생이 말했다: “동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저희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어떤 일이 처리되기를 저희가 원한다고 확신하게 되면, 그런 일을 저희에게 해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라.” 그러면서 예수는 오래된 유대인 속담을 인용했다--“친구를 사귀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우호적인 사람임을 보여줘야 한다.”
130:7.3 카르타고에서 예수는, 불멸{不滅}에 관하여, 시간과 영원에 관하여, 어느 미드라교 사제와 길고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페르시아인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을 받았고, 진심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싶어 했다. 그의 많은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을 오늘날 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130:7.4 시간은, 피조물 의식이 감지하는 현세의 사건들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흐름이다. 시간은, 인식되고 분리되는 사건들의 연속된_배열에 붙여진 이름이다. 공간의 우주는, 낙원이라는 고정된 거주지 바깥의 어떤 내부 위치에서든지 보이는, 시간과_관련된 현상이다. 시간의 움직임은 오직, 공간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어떤 것과 관련하여 시간 현상으로서만 드러난다. 온갖 우주에서, 낙원과 거기 계시는 신격들은 시간과 공간을 다 초월한다. 인간이 거주하는 세계들에서, (낙원 아버지의 영이 내주하면서 안내하는) 인간의 인격은, 현세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물질적 순서를 초월할 수 있는, 물리적으로 연관된 유일한 실체다.
130:7.5 사람과는 달리, 동물은 시간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사람에게도, 부분적이고 제한된 시야 때문에, 시간이 사건들의 연속으로 보이지만; 사람이 상승함에 따라서, 즉 더 안쪽으로 진보함에 따라서, 이런 사건 행렬을 보는 시야가 넓어져, 그 전체 모습이 점점 더 식별된다. 전에는 사건들의 연속으로 보이던 것이, 그때부터 한 덩어리로 완전하게 연관된 순환과정{循環過程}으로 보일 것이며; 이런 방식으로, 한때 일직선으로 연속되는 사건들로 인식했던 것이, 동시에 발생하는 순환으로 점점 바뀔 것이다.
130:7.6 시간 제약에 따라서 공간 개념은 일곱 가지로 달라진다. 시간으로 공간을 측정하지만, 시간은 공간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겪는 혼란은 공간의 실체가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공간은 우주 물체들 사이의 변화되는 관계를 보는 단순한 지적 개념이 아니다. 공간은 비어있지 않으며, 사람이 아는 한, 부분적으로라도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정신이다. 정신은 공간과_관련된 물체의 개념과 관계없이 작용할 수 있다. 공간은 피조물 신분의 모든 존재에게 상대적이고 비교적 유한하다. 의식이 일곱 가지 시공우주 차원을 자각함에 가까워질수록, 잠재적 공간 개념은 궁극{窮極}에 더욱 가까워진다. 그러나 공간 잠재성은 절대 수준에서만 진정으로 궁극이다.
130:7.7 사람이 상승하고 완전해지는, 시공우주의 여러 수준에서, 우주의 실체는 확장되는 의미와 항상 상대적인 의미를 가졌음이 명백하다. 궁극적으로, 생존하는 필사자는 일곱_차원의 우주에서 정체성을 성취한다.
130:7.8 물질에서 기원되는 정신의 시_공간 개념은, 의식하고 상상하는 인격체가 우주 수준들로 상승함에 따라서, 연달아 확장되도록 정해져있다. 실존의 물질 차원과 영적 차원 사이에 개재하는 정신에 사람이 도달할 때, 그의 시_공간 관념은, 질적 감지{感知}와 양적 체험에서 모두 엄청나게 확장될 것이다. 진보하는 영 인격체의 시공우주 개념이 확장되는 것은, 통찰력의 깊이와 의식의 범위, 이 두 가지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격이 위로 안쪽으로 계속 신격과_비슷한 초월 수준에 이를 때까지 나아감에 따라서, 시_공간 개념은 절대자들의 무시간 및 무공간 개념에 점점 더 접근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리고 초월적 달성에 따라서, 궁극적 운명의 자녀들은 절대 수준의 이 개념들을 선망{羨望}하게 될 것이다.
8. 나폴리와 로마로 가는 길에서
130:8.1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머문 곳은 말타 섬이었다. 예수는 여기서, 기가 죽고 낙심한 클라우더스라는 이름의 청년과 길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은 자살할 생각을 깊이 해왔지만, 다마스커스 서기관과 이야기를 마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남자답게 용감히 인생에 맞설 것이며; 겁쟁이 노릇은 이제 끝났습니다. 내 친족에게 돌아가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곧 견유학파의 열렬한 설교자가 됐고, 나중에는 베드로와 손잡고 로마와 나폴리에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했고, 베드로가 죽은 뒤에는 스페인까지 가면서 계속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나, 말타에서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사람이, 그가 나중에 세상의 구원자라고 선포한 바로 그 예수였다는 사실을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130:8.2 그들은 시라큐스에서 한 주간 내내 지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일어난 주목할 만한 사건은, 종교를 저버린 유대인 에스라를 회개시킨 것이었는데, 그는 예수와 동무들이 머문 여인숙의 주인이었다. 에스라는 예수의 태도에 마음이 끌렸고, 이스라엘의 신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아브라함의 참된 아들이 되고 싶지만,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절망 상태를 표현했다. 예수가 말했다: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고 싶다면, 그 소망 자체가, 이미 네가 그를 찾았다는 증거다. 너의 문제는 네가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닌데, 아버지께서 이미 너를 찾으셨기 때문이며; 너의 문제는 단지 네가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이다. ‘너희는 어떻게든지 나를 찾아야하겠고, 전심으로 나를 찾아내려고 하면, 나를 발견할 것이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 또한 바로 이 선지자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나를 알아보는 마음, 내가 주임을 아는 마음을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인데,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리고 너는 성서에서 이런 말씀을 읽지 않았느냐?: ‘그가 사람들을 내려다보실 때, 혹시 누구든지 말하기를: 나는 죄를 지었고 옳은 것을 곡해했으며, 이것은 나에게 유익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때 하나님께서 흑암으로부터 그 사람의 혼을 구출하시겠고 그는 빛을 보리라.’” 에스라는 그의 혼에 만족할만큼 하나님을 발견했다. 후일에 이 유대인은, 어느 부자 그리스인 개종자와 연합하여, 시라큐스에 첫 그리스도교 교회를 세웠다.
130:8.3 그들은 메시나에서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으나, 과일 행상을 하는 한 어린 소년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었고, 예수는 소년에게서 과일을 산 후에 생명의 빵을 줬다. 소년은 예수의 말씀과 친절한 눈빛을 결코 잊지 않았는데, 그는 함께 걸으면서 어깨에 손을 얹고 이렇게 말했다: “잘 있어라. 얘야. 자라서 어른이 되기까지 선한 용기를 간직하고, 몸이 자란 후에는 또한 어떻게 혼을 성장시키는지를 배워라. 그리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와 항상 함께하실 것이고 너를 인도하실 것이다.” 이 소년은 미드라교 신자가 됐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돌아섰다.
130:8.4 그들은 드디어 나폴리에 도착했고, 목적지인 로마가 멀지 않음을 느꼈다. 고노드는 나폴리에서 많은 사업 일을 처리했고, 예수는 통역하는 시간 외에는 가니드와 함께 도시를 방문하고 돌아보면서 여가 시간을 보냈다. 가니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는 일에 숙달돼갔다. 그들은 도시에 사는 많은 빈곤자를 발견했고 여러 번 구제금을 나눠줬다. 그러나 거리의 한 걸인에게 동전 한 닢을 주고 나서, 예수가 그에게 위로의 말을 주려고 멈추지 않은 채 떠나면서 한 말의 의미를, 가니드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하는 말의 의미를 감지할 수 없는 사람에게 왜 말을 낭비하느냐? 아버지의 영은, 아들신분을 수용할 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을 가르쳐서 구할 수 없다.” 예수가 의미했던 것은, 그 사람이 정상적 정신을 소유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영적 인도에 반응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130:8.5 나폴리에서는 두드러진 체험이 없었으며; 예수와 그 젊은이는, 도시 전체를 누비면서 수백 명의 남녀 및 아이들에게 활짝 웃음으로써 활기를 불어넣었다.
130:8.6 그들은 이곳으로부터 카푸아를 거쳐 로마로 갔는데, 카푸아에서 사흘 동안 머물렀다. 짐 실은 동물을 이끌고 아피아의 길을 통해서 로마를 향해 계속 여행했는데, 세 사람은 모두, 제국의 여왕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이 도시를 구경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제129편 예수의 성년기 후반부 생애 ∥ 제131편 세계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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