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편 문명의 태동 ∥ 제70편 인간 정부의 진화▶
원시 인간 제도
69:0.1 감정적으로, 유머와
예술과 종교를 인식할 수 있는 역량에서 사람은 동물 조상을 능가한다. 사회적으로, 사람은 연장을 만들고 대화하고 제도를 만드는 면에서 우수성을 보여준다.
69:0.2 인간이 사회 집단을 오랫동안 유지했을 때, 그런 집합체는 반드시, 제도화를 이룩하는 특정 활동 경향을 창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의 제도 대부분은, 노동을 절약하고, 동시에 집단 안전의 증진에 무언가 공헌한다는 것이 입증돼왔다.
69:0.3 문명화된 사람은, 자신이 확립한 제도의 특성과 안정성과 연속성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지만, 인간 제도 전체는, 금기들이 보존하고 종교가 품위를 부여하면서 축적된 과거의 사회관행에 불과하다. 그런 유산{遺産}은 전통으로 변하고, 전통은 결국 관례로 변형된다.
69:1.1 개성이 빛을 잃고 독창력이 퇴보하기 때문에, 제도의 과도한 발달은 반드시 개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데, 그럼에도, 인간의 제도는 모두 과거 또는 현재의 어떤 사회적 필요를 보살핀다. 사람은 발전하는 문명이 산출하는 이런 것들에 자신이 지배당하도록 내버려두기보다, 그 제도를 통제해야한다.
69:1.2 인간의 제도는 일반적으로 세 종류로 구분 된다:
69:1.3 1. 자아_유지에 해당되는 제도. 이런 제도는 식욕{食慾}과 이에 관련된 자아_보존 본능에서 발생되는 풍습을 받아들인다. 이런 제도는 산업, 재산, 이익을 위한 투쟁, 그리고 사회의 통제 기관 전체를 포함한다. 오래지 않아서 두려움의 본능이, 금기와 관례와 종교적 제재를 수단으로 해서, 생존을 위한 이런 제도의 확립을 촉진시킨다. 그러나 두려움과 무지와 미신은, 모든 인간 제도가 초기에 기원되도록, 그리고 후일에 발전하도록, 탁월한 역할을 감당했다.
69:1.4 2. 자아_영속에 해당되는 제도. 이것은, 성욕과 모성{母性} 본능 그리고 인종들의 고상한 부드러운 감정에서 생겨나는 공동체가 확립한 제도다. 이것은 가정과 학교에 대한, 즉 가족생활, 교육, 윤리, 및 종교를 보호하는 사회적 조치를 포함한다. 이런 제도에는, 결혼 관습과 방어를 위한 전쟁과 주택 건설 등이 포함된다.
69:1.5 3. 자아_만족에 해당되는 제도. 이것은 허영심의 성향과 자존심의 감정들로부터 자라난 풍습이며; 옷을 입고 겉모습을 치장하는 관습, 사회 관례, 영광을 얻기 위한 전쟁, 춤, 오락, 놀이, 그리고 관능적 만족을 위한 다른 국면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문명은, 자아_만족에 해당되는 뚜렷한 제도를 발전시킨 적이 전혀 없었다.
69:1.6 이런 세 가지 사회 풍습 집단은 긴밀하게 서로 관련돼있고, 끊임없이 서로 의존한다. 유란시아에서 이 제도들은 단일 사회 기구로서 작용하는 복잡한 조직에 해당된다.
69:2.1 원시산업은 끔찍한 굶주림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 서서히 자라났다. 초기에 살았던 사람은, 식량난이 닥치는 때를 대비하여, 풍부한 수확이 있는 동안 양식을 저장하는 방법을 일부 동물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69:2.2 초기의 검소함과 원시산업이 태동되기 전에는, 보통 수준의 많은 부족{部族}이 궁핍과 현실적인 고통을 겪었다. 초기의 사람은 양식을 얻기 위하여 전체 동물 세계와 경쟁해야 했다. 경쟁의_무게가 사람을 짐승 수준으로 계속 끌어내리며; 빈곤은 사람의 선천적이고 강압적인 유산이다. 재산은 당연한 선물이 아니며; 노동과 지식과 조직체에서 비롯된다.
69:2.3 원시인은 연합의 이점{利點}을 재빨리 깨닫게 됐다. 연합은 조직체를 형성했고, 조직체로 말미암은 처음 결과는, 노동의 분화{分化}와, 그로 인한 시간과 물질의 직접적인 절약이었다. 노동의 이런 전문화는 곤경에 적응함으로써--곧 저항이 약한 길을 추구함으로써-- 형성됐다. 원시 미개인은 무엇이든지 실제 일을 할 때 기쁘게, 즉 자발적으로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순응한 것은 어쩔 수 없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69:2.4 원시인은 힘든 일을 싫어했고, 심각한 위험에 닥치지 않는 한, 서두는 법이 없었다. 노동에서 시간 요소, 즉 특정한 시간 한도 내에서 주어진 과제를 이행한다는 관념은, 전적으로 현대의 성향이다. 고대의 사람들은 전혀 서둘지 않았다. 초기 사람 가운데서 천부적으로 게으른 인종들을 산업 수단이 되도록 몰아붙인 것은, 살기 위한 격렬한 투쟁과 계속 발전되는 생활 규범의 이중적 요구였다.
69:0.2 인간이 사회 집단을 오랫동안 유지했을 때, 그런 집합체는 반드시, 제도화를 이룩하는 특정 활동 경향을 창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의 제도 대부분은, 노동을 절약하고, 동시에 집단 안전의 증진에 무언가 공헌한다는 것이 입증돼왔다.
69:0.3 문명화된 사람은, 자신이 확립한 제도의 특성과 안정성과 연속성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지만, 인간 제도 전체는, 금기들이 보존하고 종교가 품위를 부여하면서 축적된 과거의 사회관행에 불과하다. 그런 유산{遺産}은 전통으로 변하고, 전통은 결국 관례로 변형된다.
1. 기본 인간 제도
69:1.1 개성이 빛을 잃고 독창력이 퇴보하기 때문에, 제도의 과도한 발달은 반드시 개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데, 그럼에도, 인간의 제도는 모두 과거 또는 현재의 어떤 사회적 필요를 보살핀다. 사람은 발전하는 문명이 산출하는 이런 것들에 자신이 지배당하도록 내버려두기보다, 그 제도를 통제해야한다.
69:1.2 인간의 제도는 일반적으로 세 종류로 구분 된다:
69:1.3 1. 자아_유지에 해당되는 제도. 이런 제도는 식욕{食慾}과 이에 관련된 자아_보존 본능에서 발생되는 풍습을 받아들인다. 이런 제도는 산업, 재산, 이익을 위한 투쟁, 그리고 사회의 통제 기관 전체를 포함한다. 오래지 않아서 두려움의 본능이, 금기와 관례와 종교적 제재를 수단으로 해서, 생존을 위한 이런 제도의 확립을 촉진시킨다. 그러나 두려움과 무지와 미신은, 모든 인간 제도가 초기에 기원되도록, 그리고 후일에 발전하도록, 탁월한 역할을 감당했다.
69:1.4 2. 자아_영속에 해당되는 제도. 이것은, 성욕과 모성{母性} 본능 그리고 인종들의 고상한 부드러운 감정에서 생겨나는 공동체가 확립한 제도다. 이것은 가정과 학교에 대한, 즉 가족생활, 교육, 윤리, 및 종교를 보호하는 사회적 조치를 포함한다. 이런 제도에는, 결혼 관습과 방어를 위한 전쟁과 주택 건설 등이 포함된다.
69:1.5 3. 자아_만족에 해당되는 제도. 이것은 허영심의 성향과 자존심의 감정들로부터 자라난 풍습이며; 옷을 입고 겉모습을 치장하는 관습, 사회 관례, 영광을 얻기 위한 전쟁, 춤, 오락, 놀이, 그리고 관능적 만족을 위한 다른 국면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문명은, 자아_만족에 해당되는 뚜렷한 제도를 발전시킨 적이 전혀 없었다.
69:1.6 이런 세 가지 사회 풍습 집단은 긴밀하게 서로 관련돼있고, 끊임없이 서로 의존한다. 유란시아에서 이 제도들은 단일 사회 기구로서 작용하는 복잡한 조직에 해당된다.
2. 산업의 태동
69:2.1 원시산업은 끔찍한 굶주림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 서서히 자라났다. 초기에 살았던 사람은, 식량난이 닥치는 때를 대비하여, 풍부한 수확이 있는 동안 양식을 저장하는 방법을 일부 동물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69:2.2 초기의 검소함과 원시산업이 태동되기 전에는, 보통 수준의 많은 부족{部族}이 궁핍과 현실적인 고통을 겪었다. 초기의 사람은 양식을 얻기 위하여 전체 동물 세계와 경쟁해야 했다. 경쟁의_무게가 사람을 짐승 수준으로 계속 끌어내리며; 빈곤은 사람의 선천적이고 강압적인 유산이다. 재산은 당연한 선물이 아니며; 노동과 지식과 조직체에서 비롯된다.
69:2.3 원시인은 연합의 이점{利點}을 재빨리 깨닫게 됐다. 연합은 조직체를 형성했고, 조직체로 말미암은 처음 결과는, 노동의 분화{分化}와, 그로 인한 시간과 물질의 직접적인 절약이었다. 노동의 이런 전문화는 곤경에 적응함으로써--곧 저항이 약한 길을 추구함으로써-- 형성됐다. 원시 미개인은 무엇이든지 실제 일을 할 때 기쁘게, 즉 자발적으로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순응한 것은 어쩔 수 없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69:2.4 원시인은 힘든 일을 싫어했고, 심각한 위험에 닥치지 않는 한, 서두는 법이 없었다. 노동에서 시간 요소, 즉 특정한 시간 한도 내에서 주어진 과제를 이행한다는 관념은, 전적으로 현대의 성향이다. 고대의 사람들은 전혀 서둘지 않았다. 초기 사람 가운데서 천부적으로 게으른 인종들을 산업 수단이 되도록 몰아붙인 것은, 살기 위한 격렬한 투쟁과 계속 발전되는 생활 규범의 이중적 요구였다.
69:2.5 노동, 즉 의도된 노력이 사람을 짐승과 구별하는데, 짐승의 노력은 주로 본능적이다. 노동의 필요성은 사람에게 최고의 축복이다. 왕자의 참모진은 모두 일했고; 유란시아에서 육체 노동을 고상하게 만들기 위해 많이 활약했다. 아담은 채소를 가꾸는 자였으며; 히브리인의 하나님도 일했다--그는 창조자였고 만유{萬有}의 유지자였다. 히브리인은 근면을 최고로 평가한 첫 부족이었는데,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수 없다”고 처음으로 선언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종교들 가운데 다수는 놀고 지내는 초기 개념으로 되돌아갔다. 주피터는 술꾼이었고, 부다는 한가하게 묵상하는 자로 바뀌었다.
69:2.6 상익 부족들은, 열대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됐을 때, 제법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술을 신봉하는 게으른 자들과, 일하기를 주장하는 자들--곧 장래를 대비했던 자들-- 사이에는 아주 오랜 세월 갈등이 있었다.
69:2.7 인간은, 불이나 물이나 양식을 저장하는 데 처음으로 선견{先見}을 이용했다. 그러나 원시인은 천부적으로_타고난 도박꾼이었으며; 항상 공짜로 무엇을 얻으려했고, 이런 초기 시절에, 근면한 풍습에서 생긴 성과를 모두 마법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마술은, 통찰력과 금욕과 산업에게 길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69:3.1 원시 사회에서 노동의 분업은, 처음에 자연 환경에 따라서, 그 후에는 사회 환경에 따라서 결정됐다. 초기에 노동이 전문화된 체제는 다음과 같았다:
69:3.2 1. 남녀 구별에 따른 전문화. 여자의 일은 자녀에 대한 선택적 태도에서 유래됐으며; 천부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많이 아기를 사랑했다. 그리하여 여자는 일상적인 일을 하게 됐고, 한편 남자는 사냥꾼과 전사{戰士}가 됐는데, 집중적으로 일하고 나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69:3.3 시대가 변천하는 내내, 여자는 금기로 인해서 자기 분야의 일만 하도록 엄격하게 제한됐다. 남자는 아주 이기적인 태도로 더 마음에 드는 일을 택했고, 일상적인 고된 일은 여자에게 맡겼다. 남자는 여자의 일을 하기를 항상 부끄러워했지만, 여자는 남자의 일을 하는 데서 조금도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정을 꾸미고 돌보는 일에는 언제나 남녀가 함께 일했다.
69:3.4 2. 나이와 질병의 결과로 발생된 변경. 이런 차이가 그다음 노동 분업을 결정했다. 노인과 장애인은 일찍부터 연장과 무기를 만드는 일에 배치됐다. 나중에는 물 대는 일이 그들에게 할당됐다.
69:3.5 3. 종교에 근거한 분화. 주술사{呪術師}는 육체노동을 면제받은 첫 인간이었으며; 전문 계층의 선구자였다. 대장장이는 주술사에 필적할 만큼 요술쟁이로 취급되는 작은 집단이었다. 금속을 다루는 그들의 솜씨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흰 대장장이”와 “검은 대장장이”로 인해서, 백색 마술과 흑색 마술에 대한 초기 믿음이 기원됐다. 그리고 나중에 이 믿음은, 선한 유령과 악한 유령, 즉 선한 영과 악한 영에 대한 미신과 결부됐다.
69:3.6 대장장이는 특혜를 누린 첫 비종교 집단이었다. 그들은 전쟁 중에 중립을 지키는 자로서 간주됐고, 이런 특별대우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의 계층, 즉 원시 사회의 정치꾼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이 특권을 야비하게 남용함으로써, 대장장이는 널리 미움 받는 대상이 됐고, 주술사는 지체하지 않고 경쟁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품었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 있었던 첫 시합에서 종교가(곧 미신이) 승리했다. 대장장이는 마을에서 쫓겨난 후에, 주거지역 외곽에서, 최초의 여인숙{旅人宿}, 즉 일반인을 위한 숙박소를 운영하게 됐다.
69:3.7 4. 주인과 노예. 노동에서 그다음 분화는 정복자와 피정복자 관계에서 발생됐고, 인간 노예제도의 시작을 의미했다.
69:3.8 5. 다양한 육체적 재능과 정신적 재능에 근거한 분화. 사람의 타고난 차이가, 노동의 더 많은 분업을 조장했는데; 모든 인간이 똑같이 태어나지 않는다.
69:3.9 산업에서 초기의 전문가는 부싯돌 가공자와 석공{石工}이었고; 그다음에 대장장이가 출현했다. 나중에는 집단적 전문화가 이뤄졌으며; 전체 가족과 씨족이 특정한 종류의 노동에 전념했다. 가장 오래된 사제 신분계층 가운데 하나는, 부족의 주술사와는 별도로, 능숙한 칼 제작자의 가족을 미신적으로 우러러 받든 것 때문에 생겼다.
69:3.10 산업에서 첫 전문가 집단은 암염{巖鹽} 수출업자와 도공{陶工}이었다. 여자는 단순한 질그릇을 만들었고, 남자는 화려한 것을 만들었다. 어떤 부족 가운데서는 여자가 바느질과 천 짜는 일을 맡았고, 다른 부족에서는 남자가 그 일을 했다.
69:3.11 초기 상인{商人}은 여자였는데; 그들은 첩자{諜者}로서 고용됐고, 거래하는 일은 덤이었다. 마침내 무역이 확장되자, 여자는 중개인--곧 도매상--으로서 활동했다. 이렇게 되자 상인계층이 형성되어, 자신의 역할에 대한 수수료와 이익금을 부과했다. 물물교환을 하는 무리가 늘어나게 되자 상업으로 발전됐으며; 상품 교환에 뒤이어, 숙련된 노동의 교환이 이뤄졌다.
69:4.1 생포{生捕}함으로 결혼하는 것 다음에 계약 결혼이 이뤄진 것과 마찬가지로, 습격하여 약탈하는 것 다음에는 물물 교환이 뒤따랐다. 그러나 무언{無言}으로 물물교환 하는 초기 풍습과 현대의 교환 방식 사이에는, 오랜 동안 탈취행위{奪取行爲}가 있었다.
69:4.2 첫 물물교환은, 무장{武裝}한 상인들이 중간 지점에 상품을 남겨둠으로써 이뤄졌다. 여자가 최초의 시장{市場}을 차렸으며; 최초의 상인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는 역할을 한 반면; 남자는 전사{戰士}였기 때문이다. 거래하는 판매대가 매우 일찍부터 개발됐는데, 이것은 상인들이 무기를 갖고 상대방에게 갈 수 없도록 막기에 충분할 만큼 넓은 벽이었다.
69:4.3 무언의 물물교환을 위해 맡겨진 물건을 지키는 일에 주물{呪物}이 사용됐다. 그런 시장은 도둑맞을 염려가 없었고, 물물교환이나 구매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옮길 수 없었으며; 주물이 보호하면, 물건은 항상 안전했다. 초기 상인들은 자기 부족에게 철저히 정직했으나,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을 속이는 것은 정당하게 여겼다. 초기 히브리인도, 이방인과 거래할 때 별도의 윤리 규범을 인정했다.
69:4.4 무언의 물물교환이 오래 계속된 후에, 사람들은 무장하지 않고, 신성시되는 시장에서 만나게 됐다. 바로 이런 장터가, 신전{神殿}이 세워진 처음 장소가 됐고, 어떤 나라들에서는 나중에 “도피성{逃避城}”으로 알려지게 됐다. 어떤 도피자든지 시장에 들어가면 안전했고 공격받을 염려가 없었다.
69:4.5 최초의 저울추는 소맥이나 기타 곡식들이었다. 최초의 교환 수단은 물고기 또는 염소였다. 나중에는 암소가 물물교환 단위가 됐다.
69:4.6 현대의 필기{筆記}는 초기 거래 기록에서 기원됐고; 사람의 최초 문서는 거래를_선전하는 문서, 즉 소금 선전문이었다. 초기 전쟁 가운데 다수는, 부싯돌이나 소금이나 금속 같은 천연 매장물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부족들 간의 첫 공식 조약{條約}은, 매장된 소금의 공동 사용과 관련됐다. 조약을 맺은 이 장소는, 서로 친근하고, 평화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다양한 부족이 상호_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69:2.6 상익 부족들은, 열대지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살게 됐을 때, 제법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술을 신봉하는 게으른 자들과, 일하기를 주장하는 자들--곧 장래를 대비했던 자들-- 사이에는 아주 오랜 세월 갈등이 있었다.
69:2.7 인간은, 불이나 물이나 양식을 저장하는 데 처음으로 선견{先見}을 이용했다. 그러나 원시인은 천부적으로_타고난 도박꾼이었으며; 항상 공짜로 무엇을 얻으려했고, 이런 초기 시절에, 근면한 풍습에서 생긴 성과를 모두 마법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마술은, 통찰력과 금욕과 산업에게 길을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3. 노동의 전문화
69:3.1 원시 사회에서 노동의 분업은, 처음에 자연 환경에 따라서, 그 후에는 사회 환경에 따라서 결정됐다. 초기에 노동이 전문화된 체제는 다음과 같았다:
69:3.2 1. 남녀 구별에 따른 전문화. 여자의 일은 자녀에 대한 선택적 태도에서 유래됐으며; 천부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많이 아기를 사랑했다. 그리하여 여자는 일상적인 일을 하게 됐고, 한편 남자는 사냥꾼과 전사{戰士}가 됐는데, 집중적으로 일하고 나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69:3.3 시대가 변천하는 내내, 여자는 금기로 인해서 자기 분야의 일만 하도록 엄격하게 제한됐다. 남자는 아주 이기적인 태도로 더 마음에 드는 일을 택했고, 일상적인 고된 일은 여자에게 맡겼다. 남자는 여자의 일을 하기를 항상 부끄러워했지만, 여자는 남자의 일을 하는 데서 조금도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정을 꾸미고 돌보는 일에는 언제나 남녀가 함께 일했다.
69:3.4 2. 나이와 질병의 결과로 발생된 변경. 이런 차이가 그다음 노동 분업을 결정했다. 노인과 장애인은 일찍부터 연장과 무기를 만드는 일에 배치됐다. 나중에는 물 대는 일이 그들에게 할당됐다.
69:3.5 3. 종교에 근거한 분화. 주술사{呪術師}는 육체노동을 면제받은 첫 인간이었으며; 전문 계층의 선구자였다. 대장장이는 주술사에 필적할 만큼 요술쟁이로 취급되는 작은 집단이었다. 금속을 다루는 그들의 솜씨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흰 대장장이”와 “검은 대장장이”로 인해서, 백색 마술과 흑색 마술에 대한 초기 믿음이 기원됐다. 그리고 나중에 이 믿음은, 선한 유령과 악한 유령, 즉 선한 영과 악한 영에 대한 미신과 결부됐다.
69:3.6 대장장이는 특혜를 누린 첫 비종교 집단이었다. 그들은 전쟁 중에 중립을 지키는 자로서 간주됐고, 이런 특별대우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의 계층, 즉 원시 사회의 정치꾼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이 특권을 야비하게 남용함으로써, 대장장이는 널리 미움 받는 대상이 됐고, 주술사는 지체하지 않고 경쟁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품었다. 과학과 종교 사이에 있었던 첫 시합에서 종교가(곧 미신이) 승리했다. 대장장이는 마을에서 쫓겨난 후에, 주거지역 외곽에서, 최초의 여인숙{旅人宿}, 즉 일반인을 위한 숙박소를 운영하게 됐다.
69:3.7 4. 주인과 노예. 노동에서 그다음 분화는 정복자와 피정복자 관계에서 발생됐고, 인간 노예제도의 시작을 의미했다.
69:3.8 5. 다양한 육체적 재능과 정신적 재능에 근거한 분화. 사람의 타고난 차이가, 노동의 더 많은 분업을 조장했는데; 모든 인간이 똑같이 태어나지 않는다.
69:3.9 산업에서 초기의 전문가는 부싯돌 가공자와 석공{石工}이었고; 그다음에 대장장이가 출현했다. 나중에는 집단적 전문화가 이뤄졌으며; 전체 가족과 씨족이 특정한 종류의 노동에 전념했다. 가장 오래된 사제 신분계층 가운데 하나는, 부족의 주술사와는 별도로, 능숙한 칼 제작자의 가족을 미신적으로 우러러 받든 것 때문에 생겼다.
69:3.10 산업에서 첫 전문가 집단은 암염{巖鹽} 수출업자와 도공{陶工}이었다. 여자는 단순한 질그릇을 만들었고, 남자는 화려한 것을 만들었다. 어떤 부족 가운데서는 여자가 바느질과 천 짜는 일을 맡았고, 다른 부족에서는 남자가 그 일을 했다.
69:3.11 초기 상인{商人}은 여자였는데; 그들은 첩자{諜者}로서 고용됐고, 거래하는 일은 덤이었다. 마침내 무역이 확장되자, 여자는 중개인--곧 도매상--으로서 활동했다. 이렇게 되자 상인계층이 형성되어, 자신의 역할에 대한 수수료와 이익금을 부과했다. 물물교환을 하는 무리가 늘어나게 되자 상업으로 발전됐으며; 상품 교환에 뒤이어, 숙련된 노동의 교환이 이뤄졌다.
4. 거래의 발단
69:4.1 생포{生捕}함으로 결혼하는 것 다음에 계약 결혼이 이뤄진 것과 마찬가지로, 습격하여 약탈하는 것 다음에는 물물 교환이 뒤따랐다. 그러나 무언{無言}으로 물물교환 하는 초기 풍습과 현대의 교환 방식 사이에는, 오랜 동안 탈취행위{奪取行爲}가 있었다.
69:4.2 첫 물물교환은, 무장{武裝}한 상인들이 중간 지점에 상품을 남겨둠으로써 이뤄졌다. 여자가 최초의 시장{市場}을 차렸으며; 최초의 상인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는 역할을 한 반면; 남자는 전사{戰士}였기 때문이다. 거래하는 판매대가 매우 일찍부터 개발됐는데, 이것은 상인들이 무기를 갖고 상대방에게 갈 수 없도록 막기에 충분할 만큼 넓은 벽이었다.
69:4.3 무언의 물물교환을 위해 맡겨진 물건을 지키는 일에 주물{呪物}이 사용됐다. 그런 시장은 도둑맞을 염려가 없었고, 물물교환이나 구매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옮길 수 없었으며; 주물이 보호하면, 물건은 항상 안전했다. 초기 상인들은 자기 부족에게 철저히 정직했으나,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을 속이는 것은 정당하게 여겼다. 초기 히브리인도, 이방인과 거래할 때 별도의 윤리 규범을 인정했다.
69:4.4 무언의 물물교환이 오래 계속된 후에, 사람들은 무장하지 않고, 신성시되는 시장에서 만나게 됐다. 바로 이런 장터가, 신전{神殿}이 세워진 처음 장소가 됐고, 어떤 나라들에서는 나중에 “도피성{逃避城}”으로 알려지게 됐다. 어떤 도피자든지 시장에 들어가면 안전했고 공격받을 염려가 없었다.
69:4.5 최초의 저울추는 소맥이나 기타 곡식들이었다. 최초의 교환 수단은 물고기 또는 염소였다. 나중에는 암소가 물물교환 단위가 됐다.
69:4.6 현대의 필기{筆記}는 초기 거래 기록에서 기원됐고; 사람의 최초 문서는 거래를_선전하는 문서, 즉 소금 선전문이었다. 초기 전쟁 가운데 다수는, 부싯돌이나 소금이나 금속 같은 천연 매장물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부족들 간의 첫 공식 조약{條約}은, 매장된 소금의 공동 사용과 관련됐다. 조약을 맺은 이 장소는, 서로 친근하고, 평화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다양한 부족이 상호_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69:4.7 필기는, “통신용 막대기”, 매듭진 끈, 그림으로 쓰기, 상형문자, 그리고 조가비를 구슬로 엮은 띠를 거쳐서, 초기의 기호화된 문자로 발전됐다.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은 연기로 신호를 보내는 원시 형태에서, 달려가는 사람, 동물 타는 사람, 철도, 비행기뿐 아니라, 전보, 전화, 무선 통신에 이르기까지 진화됐다.
69:4.8 고대의 상인이, 새로운 착상과 개량된 방법을, 사람 사는 모든 세계로 퍼뜨렸다. 상업에 모험심이 결합되자, 탐험과 발견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운송수단이 생겨나게 됐다. 상업은 문화의 상호_교류 증진을 통해서, 문명의 발달에 크게 공헌했다.
69:5.1 자본{資本}은 현재를 체념하여 미래를 보장하려는 진통이다. 저축은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양식 저장은 자아_통제를 개발했고, 자본과 노동으로 인한 첫 문제를 야기했다. 양식을 소유한 자는, 그것을 약탈자로부터 보호할 수만 있다면, 양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보다 뚜렷한 이점{利點}을 지녔다.
69:5.2 초기 은행가는 그 부족 중에서 용감한 남자였다. 그는 그 집단의 보물을 보관했고, 공격 받을 경우에 씨족{氏族} 전체가 그의 집을 방어하곤 했다. 그리하여 각 개인의 자본과 집단의 재산이 곧 군대 조직을 조성하게 했다. 처음에는 외부 침입자로부터 재산을 보호하려고 그런 예방조치들을 고안했지만, 나중에는 이웃 부족들의 토지와 재산을 탈취하는 시대가 시작됨으로써, 군대 조직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69:5.3 자본 축적을 발생시킨 근본 충동은 다음과 같았다:
69:5.4 1. 굶주림 --예지력과 관련됨. 양식의 절약과 저장은, 충분한 예지력을 가짐으로써 장래의 필요시에 대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권력과 안락함을 의미했다. 양식의 저장은 굶주림과 재난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원시 형태의 사회관행 전체 줄거리는, 사람이 현재보다 미래를 중요시하도록 도와주려고 고안됐던 것이 사실이다.
69:5.5 2. 가족에 대한 사랑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고 싶어 함. 자본은, 오늘 당장 필요하다는 압박감에도, 미래의 수요{需要}에 대비하여 재산을 저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미래의 필요 가운데 일부는 사람의 자손과 상관있을 수도 있다.
69:5.6 3. 허영심 --자기 재산 축적을 과시하고자 함. 여분의 옷은 탁월성에 대한 최고 상징물 가운데 하나였다. 수집하는 허영심이 일찍부터 사람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69:5.7 4. 지위 --사회적 또는 정치적 명성을 얻으려는 열망. 상업화된 귀족 신분이 일찍부터 생겨났는데, 귀족 신분을 얻는 것은, 왕족에게 어떤 특별한 봉사를 해주는 데 달려있기도 하고, 또는 노골적으로 돈을 낸 대가{代價}로 허락되기도 했다.
69:5.8 5. 권력 --주인이 되려는 열망. 재산을 빌려주는 행위, 즉 이런 옛 시대에 통용된 매년 100퍼센트의 대부 이자율이, 노예를 만드는 수단으로서 자행됐다. 돈을 빌려준 자는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상비군으로 조직함으로써 스스로 왕이 됐다. 노예화된 종들은 아주 초기 형태의 축적된 재산이었으며, 고대에는 빚 때문에 생긴 노예 신분이 연장돼서 시체까지도 통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69:5.9 6. 죽은 자의 유령에 대한 두려움 --보호 받으려고 사제에게 주는 사례금. 사람들은 자신이 다음 생애로 쉽게 나아가도록 만드는 일에 자기 재산이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일찍부터 죽음에 대한 예물을 사제에게 바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제계층은 큰 부자가 됐으며; 고대의 자본가들 가운데 우두머리였다.
69:5.10 7. 성욕{性慾} --하나 또는 여러 아내를 차지하려는 열망. 인간의 최초 거래 형태는 여자 교환이었으며; 말{馬}을 매매하는 것보다 훨씬 앞섰다. 그러나 성적 노예의 교환은 사회를 전혀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그런 거래 행위는 과거나 지금이나 인종적 치욕인데, 이는 그 행위가 한꺼번에 가족생활의 발전을 저해하고, 우수한 민족의 생물학적 적합성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69:5.11 8. 여러 형태의 자아_만족. 더러는 부{富}가 권력을 가져오기 때문에 추구하고, 더러는 재산이 안락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애써 얻으려고 한다. 초기 사람은 (그리고 어느 정도 후대의 사람들도) 사치하는 데 자산을 탕진하는 경향이 있었다. 취하게 만드는 것과 마약{痲藥}이 원시 종족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69:5.12 문명이 발달하자, 사람은 저축하도록 새롭게 자극받았으며; 새로운 욕구들이 원래의 식욕에 신속하게 덧붙여졌다. 가난을 무척 싫어하게 됐기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되면 오직 부자들만 곧바로 하늘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재산을 아주 귀중히 여겼으므로, 허세부리는 잔치를 베풀어서, 자기 이름에서 불명예를 씻으려고 했다.
69:5.13 재산 축적은 일찍부터 사회적 영예{榮譽}의 상징이 됐다. 어떤 부족에서는, 개인이 어느 축제일에 자기 재물을 태우거나, 동료 부족원들에게 공짜로 나눠줌으로써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재물을 여러 해 모으기도 했다. 이런 행위가 그들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현대인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절제하게 나눠줌으로써 흥청대고 있으며, 한편 부자들은 자선 단체나 교육 기관에 기부금을 낸다. 사람의 기법은 변하지만, 이런 성향은 거의 변함없이 남아있다.
69:5.14 그러나 고대의 많은 부자는 자기 재물을 탐내는 사람에게 살해당할까 두려워서 재물을 많이 나눠줬다는 사실을 밝혀야 공정할 것이다. 부자들은 일반적으로 재산에 대한 거드름을 피우기 위해서, 다수의 노예를 제물로 바쳤다.
69:5.15 자본은 사람을 해방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가 소속된 사회 체제와 산업 체제를 크게 복잡하게 만들었다. 공정하지 못한 자본가들이 자본을 악용하는 것도, 자본이 현대 산업 사회의 기초라는 사실을 파기시키지는 못한다. 오늘날 세대는 자본과 발명을 통해서, 이 세상에 지금까지 있었던 어느 시대보다 뛰어난 범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경솔하고 이기적인 관리인들이 자본을 여러 번 오용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로서, 이것을 기록한다.
69:6.1 네 분야--곧 산업, 규범, 종교, 및 군사--로 구성된 원시 사회는, 불, 동물, 노예, 및 재산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발생됐다.
69:6.2 불을 피운 것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사람을 동물로부터 영원히 구분시켰으며; 이는 근본적인 발명, 즉 발견이었다. 불은, 모든 동물이 불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람이 밤에도 땅에 머물 수 있게 했다. 불은 황혼 무렵의 사교{社交}를 촉진시켰으며; 추위와 맹수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유령에 대항하는 안전책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열보다 빛을 밝히려고 불을 사용했으며; 대부분의 퇴보한 부족은, 밤새 불꽃이 타지 않으면 잠을 자려하지 않았다.
69:6.3 불은 문명화에 크게 기여했는데, 아직 불이 살아있는 숯을 이웃에게 제공할 수 있게 하여, 아무 손해 없이 남에게 유익을 주는 최초의 수단이 됐다. 한 집안의 불은 어머니 또는 맏딸이 보존했는데, 방심하지 않는 태도와 믿음직스런 태도를 요구하는, 최초의 교육자였다. 초기의 가정은 건물을 갖추지 못했지만, 가족 화로{火爐}인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었다. 새 가정을 꾸민 아들은, 가족 화로에서 불씨를 옮겨갔다.
69:6.4 불을 처음 발견한 안돈은 그것을 경배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나, 그의 자손 가운데 다수는 불꽃을 주물{呪物} 또는 영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쓰레기 태우기를 싫어했으므로, 청결하게 만드는 불의 효용가치를 이용하지 못했다. 원시인은 불을 두려워했고, 그것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서 냄새가 적게 나도록 하려고 항상 애썼다. 고대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 속에 침을 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타오르는 불과 사람 사이를 결코 지나가지 않았다. 초기 인류는 심지어 불을 붙이는 데 사용된 황철광과 부싯돌도 신성하게 여겼다.
69:6.5 불을 꺼뜨리는 것은 죄였으며; 집이 불에 타면 그대로 뒀다. 신전{神殿}과 제단의 불은 신성시됐고, 해마다 또는 어떤 재난이 있은 후에 새로 불을 붙이는 것을 관례로 행하는 경우 외에는, 그 불을 절대 밖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여자들이 사제로서 선택됐는데, 그들이 집에 있는 불을 보호하기 때문이었다.
69:6.6 불이 어떻게 해서 신들로부터 내려왔는지를 기록한 초기 신화는, 번갯불에 불이 붙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시작됐다. 초자연적으로 기원된 이 관념이, 불을 숭배하도록 직접 작용했고, 불에 대한 숭배가 “불을 통과하는” 풍습을 낳았고, 그 풍습은 모세 시대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죽은 후에 불을 통과하게 된다는 관념이 여전히 존속한다. 불에 관한 신화는, 초기 시대에 엄청난 속박의 도구였고, 파시교도의 기호 체계 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69:6.7 불로 말미암아 조리법이 생겼고, “생식{生食}”은 조롱하는 말이 됐다. 그리고 양식을 익힘으로 인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가 음식 소화에 소모되는 것을 줄였고, 그리하여 초기 사람은 사회 문화를 누릴 어느 정도의 힘을 갖게 됐으며, 한편 목축업은, 양식 확보에 필요한 노력을 줄임으로써,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69:6.8 불이 금속 가공의 문을 열었고, 나중에는 증기력{蒸氣力}을 발견하게 했고, 오늘날에는 전기를 이용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69:7.1 처음에는, 동물계 전체가 사람의 적{敵}이었고, 인간은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워야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동물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동물을 길들이고 사람을 위하여 일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69:7.2 동물 길들이기는 우연히 시작됐다. 미개인은, 마치 아메리카 인디언이 들소를 사냥했던 것과 흡사한 방법으로 동물을 사냥했다. 떼를 포위함으로써 그 동물을 계속 통제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양식에 필요한 대로 그것들을 죽일 수 있었다. 나중에는 울타리가 세워졌고, 동물 떼 전체를 사로잡곤 했다.
69:7.3 어떤 동물은 길들이기가 용이했으나, 많은 동물은 코끼리처럼 속박된 상태에서는 새끼를 낳지 않으려고 했다. 더 후일에는, 특정한 종류의 동물이 사람에게 복종하고, 포획 된 상태에서도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하여 동물 길들이기는, 골라서 번식시키는, 달라마시아 시대 이후로 크게 진보된 기술로 인해 촉진됐다.
69:7.4 개는 처음으로 길들여진 동물이었고, 개를 유순하게 만드는 어려운 체험은, 어떤 개가 하루 종일 사냥꾼 주변을 맴돌다가 그를 따라서 정말로 집에까지 오게 됐을 때 시작됐다. 개는 오랫동안, 양식, 사냥, 운반 수단, 그리고 반려동물로서 활용됐다. 처음에는 개들이 길게 뽑듯이 소리 냈지만, 나중에는 짖는 법을 배우게 됐다. 개의 날카로운 냄새 감각 때문에, 개가 영을 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됐고, 개를_숭배하는 종파{宗派 cult}가 생기기도 했다. 감시하는 개를 활용하여, 처음으로 씨족 전체가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그 후에는 눈에 보이는 적뿐만 아니라 영{靈}으로부터 집을 보호하는 데 감시견을 이용하는 것이 관습이 됐다. 개가 짖을 때에는 사람이나 짐승이, 길게 울부짖을 때에는 영이 접근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개가 밤에 길게 울부짖는 것은 죽음의 전조라고 믿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69:7.5 사냥하던 시절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제법 친절했지만, 동물을 길들인 후에는, 캘리개스챠가 일으킨 혼란이 가중되어, 많은 부족이 자기네 여자들을 고약스럽게 취급했다. 그들은 대체로 동물을 다루듯이 여자를 대했다. 남자가 여자를 무자비하게 대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69:8.1 원시인은 망설임 없이 동료들을 노예로 삼았다. 여자가 최초의 노예, 즉 가정의 노예였다. 목축하는 남자는 여자를 노예화해서 자기보다 열등한 성{性} 대상자로 삼았다. 이런 종류의 성 노예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의존도가 줄어든 결과로 곧 생겨났다.
69:8.2 바로 얼마 전까지도, 정복자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전쟁 포로는 노예가 될 운명이었다. 더 먼 옛날에는, 포로를 잡아먹거나, 죽도록 고문하거나, 서로 싸우게 하거나, 영들에게 제물로 바치거나, 아니면 노예로 삼았다. 노예제도는 대량학살이나 식인{食人}보다는 엄청나게 진보된 것이었다.
69:8.3 노예제도는 전쟁 포로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에 한 단계 발전한 것이었다. 아이 성{城} 복병들이, 남녀는 물론 어린아이까지 모두 학살하면서, 정복자로서 자만심을 만족시키려고 왕만 살려뒀던 것은, 문명인으로 여겨지는 민족들까지도 야만적 대량학살을 일삼았음을 잘 보여준다. 바산의 왕 옥을 습격한 것은 잔인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히브리인은 적을 “완전히 섬멸했고”, 그들의 모든 재산을 못 쓰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남자가 멸절되는” 고통 대신, 모든 도시가 조공{租貢}을 바치게 했다. 그러나 당대의 부족들 가운데 다수는 부족 이기주의가 훨씬 덜했고, 유능한 포로를 양자로 받아들이는 관례가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69:8.4 아메리카 홍색인이 그랬듯이, 사냥꾼은 노예를 만들지 않았다. 포로를 양자로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였다. 목축하는 민족들 가운데서는 노예제도가 유행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노동인력이 별로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날 때 목자{牧者}들은,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만 노예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 모세의 법전{法典}은, 이 여자 포로를 아내 삼는 일에 대해서 특별히 지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히브리인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 돌려보낼 수 있었지만, 배우자가 되지 못한 그들을 노예로 파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이는 문명화에서 적어도 한 걸음 진보였다. 히브리인의 사회 규범은, 미숙하기는 했지만 주변에 있는 부족들보다 훨씬 앞섰다.
69:8.5 목자는 최초의 자본가였으며; 그들의 가축 떼는 자본금이었고, 이자로--곧 자연 증가분으로-- 생활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재산을 노예나 여자에게 맡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들이 남자 포로를 거느렸고 포로들로 하여금 땅을 일구도록 했다. 이것이 농노{農奴}--곧 토지에 부속된 사람--의 초기 기원이다. 아프리카인은 땅을 일구는 방법을 쉽게 배웠고; 그리하여 그들은 탁월한 노예 인종이 됐다.
69:8.6 노예제도는 인간 문명의 연결고리에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고리였다. 그것은 혼돈과 게으름의 상태로부터 질서와 문명화된 활동으로 옮아가는 다리였으며; 진보가 느리고 나태한 사람들에게 일하도록 강요했고, 그리하여 그들보다 우수한 사람들이 사회를 진흥시키도록 재산과 여가 시간을 제공했다.
69:8.7 노예제도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시 사회의 통제 장치를 창안하도록 강요했으며; 정부가 시작되게 했다. 노예제도는 강력한 규칙을 필요로 했고, 봉건 군주들이 노예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럽의 중세시대에 거의 사라졌다. 고대의 뒤떨어진 부족들은, 오늘날 오스트랄리아 원주민처럼, 노예를 소유한 적이 없었다.
69:8.8 사실, 노예제도가 억압적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산업을 배운 것은 억압이라는 학교에서였다. 노예들은 상류 사회가 생기는 것을 아주 마지못해서 도왔으나, 결국 그 사회의 축복을 공유하게 됐다. 노예제도는 문화 체제와 사회 진보를 이룩함에도, 모르는 사이에 곧, 모든 파괴적 사회 병폐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되어, 사회를 내부에서 공격한다.
69:8.9 현대의 기계 발명이 노예를 쓸모없게 만들었다. 노예제도는 일부다처제처럼, 수지가 맞지 않으므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숫자의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은 반드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며; 점진적으로 해방될 때 문제가 적게 발생된다.
69:8.10 오늘날, 사람은 사회적인 노예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야심 때문에 빚의 노예로 전락한다. 무심결에 형성된 노예제도가, 새롭고 개선된 형태의 변경된 산업 노동을 형성했다.
69:8.11 보편적 자유가 이상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게으름이 묵인돼서는 결코 안 된다. 건강한 육체를 가진 사람은, 적어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강제로라도 해야 한다.
69:8.12 현대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노예는 거의 사라졌으며; 길들여진 동물이 사라지고 있다. 문명은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불--곧 무기물{無機物} 세계--에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사람은 불과 동물과 노예제도를 거쳐서 미개한 상태로부터 벗어났으며; 오늘날에는 노예의 도움과 동물의 보조가 폐기되는 것을 돌이켜보면서, 자연이라는 본질적인 창고에서, 부와 권력의 새로운 비결과 출처를 강제로 꺼내려고 애쓴다.
69:4.8 고대의 상인이, 새로운 착상과 개량된 방법을, 사람 사는 모든 세계로 퍼뜨렸다. 상업에 모험심이 결합되자, 탐험과 발견이 이뤄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운송수단이 생겨나게 됐다. 상업은 문화의 상호_교류 증진을 통해서, 문명의 발달에 크게 공헌했다.
5. 자본의 발단
69:5.1 자본{資本}은 현재를 체념하여 미래를 보장하려는 진통이다. 저축은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양식 저장은 자아_통제를 개발했고, 자본과 노동으로 인한 첫 문제를 야기했다. 양식을 소유한 자는, 그것을 약탈자로부터 보호할 수만 있다면, 양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보다 뚜렷한 이점{利點}을 지녔다.
69:5.2 초기 은행가는 그 부족 중에서 용감한 남자였다. 그는 그 집단의 보물을 보관했고, 공격 받을 경우에 씨족{氏族} 전체가 그의 집을 방어하곤 했다. 그리하여 각 개인의 자본과 집단의 재산이 곧 군대 조직을 조성하게 했다. 처음에는 외부 침입자로부터 재산을 보호하려고 그런 예방조치들을 고안했지만, 나중에는 이웃 부족들의 토지와 재산을 탈취하는 시대가 시작됨으로써, 군대 조직을 항상 유지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69:5.3 자본 축적을 발생시킨 근본 충동은 다음과 같았다:
69:5.4 1. 굶주림 --예지력과 관련됨. 양식의 절약과 저장은, 충분한 예지력을 가짐으로써 장래의 필요시에 대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권력과 안락함을 의미했다. 양식의 저장은 굶주림과 재난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원시 형태의 사회관행 전체 줄거리는, 사람이 현재보다 미래를 중요시하도록 도와주려고 고안됐던 것이 사실이다.
69:5.5 2. 가족에 대한 사랑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고 싶어 함. 자본은, 오늘 당장 필요하다는 압박감에도, 미래의 수요{需要}에 대비하여 재산을 저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미래의 필요 가운데 일부는 사람의 자손과 상관있을 수도 있다.
69:5.6 3. 허영심 --자기 재산 축적을 과시하고자 함. 여분의 옷은 탁월성에 대한 최고 상징물 가운데 하나였다. 수집하는 허영심이 일찍부터 사람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69:5.7 4. 지위 --사회적 또는 정치적 명성을 얻으려는 열망. 상업화된 귀족 신분이 일찍부터 생겨났는데, 귀족 신분을 얻는 것은, 왕족에게 어떤 특별한 봉사를 해주는 데 달려있기도 하고, 또는 노골적으로 돈을 낸 대가{代價}로 허락되기도 했다.
69:5.8 5. 권력 --주인이 되려는 열망. 재산을 빌려주는 행위, 즉 이런 옛 시대에 통용된 매년 100퍼센트의 대부 이자율이, 노예를 만드는 수단으로서 자행됐다. 돈을 빌려준 자는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상비군으로 조직함으로써 스스로 왕이 됐다. 노예화된 종들은 아주 초기 형태의 축적된 재산이었으며, 고대에는 빚 때문에 생긴 노예 신분이 연장돼서 시체까지도 통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69:5.9 6. 죽은 자의 유령에 대한 두려움 --보호 받으려고 사제에게 주는 사례금. 사람들은 자신이 다음 생애로 쉽게 나아가도록 만드는 일에 자기 재산이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일찍부터 죽음에 대한 예물을 사제에게 바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제계층은 큰 부자가 됐으며; 고대의 자본가들 가운데 우두머리였다.
69:5.10 7. 성욕{性慾} --하나 또는 여러 아내를 차지하려는 열망. 인간의 최초 거래 형태는 여자 교환이었으며; 말{馬}을 매매하는 것보다 훨씬 앞섰다. 그러나 성적 노예의 교환은 사회를 전혀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그런 거래 행위는 과거나 지금이나 인종적 치욕인데, 이는 그 행위가 한꺼번에 가족생활의 발전을 저해하고, 우수한 민족의 생물학적 적합성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69:5.11 8. 여러 형태의 자아_만족. 더러는 부{富}가 권력을 가져오기 때문에 추구하고, 더러는 재산이 안락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애써 얻으려고 한다. 초기 사람은 (그리고 어느 정도 후대의 사람들도) 사치하는 데 자산을 탕진하는 경향이 있었다. 취하게 만드는 것과 마약{痲藥}이 원시 종족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69:5.12 문명이 발달하자, 사람은 저축하도록 새롭게 자극받았으며; 새로운 욕구들이 원래의 식욕에 신속하게 덧붙여졌다. 가난을 무척 싫어하게 됐기 때문에, 사람이 죽게 되면 오직 부자들만 곧바로 하늘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재산을 아주 귀중히 여겼으므로, 허세부리는 잔치를 베풀어서, 자기 이름에서 불명예를 씻으려고 했다.
69:5.13 재산 축적은 일찍부터 사회적 영예{榮譽}의 상징이 됐다. 어떤 부족에서는, 개인이 어느 축제일에 자기 재물을 태우거나, 동료 부족원들에게 공짜로 나눠줌으로써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려고, 재물을 여러 해 모으기도 했다. 이런 행위가 그들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현대인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절제하게 나눠줌으로써 흥청대고 있으며, 한편 부자들은 자선 단체나 교육 기관에 기부금을 낸다. 사람의 기법은 변하지만, 이런 성향은 거의 변함없이 남아있다.
69:5.14 그러나 고대의 많은 부자는 자기 재물을 탐내는 사람에게 살해당할까 두려워서 재물을 많이 나눠줬다는 사실을 밝혀야 공정할 것이다. 부자들은 일반적으로 재산에 대한 거드름을 피우기 위해서, 다수의 노예를 제물로 바쳤다.
69:5.15 자본은 사람을 해방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가 소속된 사회 체제와 산업 체제를 크게 복잡하게 만들었다. 공정하지 못한 자본가들이 자본을 악용하는 것도, 자본이 현대 산업 사회의 기초라는 사실을 파기시키지는 못한다. 오늘날 세대는 자본과 발명을 통해서, 이 세상에 지금까지 있었던 어느 시대보다 뛰어난 범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경솔하고 이기적인 관리인들이 자본을 여러 번 오용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로서, 이것을 기록한다.
6. 불과 문명의 관계
69:6.1 네 분야--곧 산업, 규범, 종교, 및 군사--로 구성된 원시 사회는, 불, 동물, 노예, 및 재산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발생됐다.
69:6.2 불을 피운 것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사람을 동물로부터 영원히 구분시켰으며; 이는 근본적인 발명, 즉 발견이었다. 불은, 모든 동물이 불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람이 밤에도 땅에 머물 수 있게 했다. 불은 황혼 무렵의 사교{社交}를 촉진시켰으며; 추위와 맹수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유령에 대항하는 안전책이 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열보다 빛을 밝히려고 불을 사용했으며; 대부분의 퇴보한 부족은, 밤새 불꽃이 타지 않으면 잠을 자려하지 않았다.
69:6.3 불은 문명화에 크게 기여했는데, 아직 불이 살아있는 숯을 이웃에게 제공할 수 있게 하여, 아무 손해 없이 남에게 유익을 주는 최초의 수단이 됐다. 한 집안의 불은 어머니 또는 맏딸이 보존했는데, 방심하지 않는 태도와 믿음직스런 태도를 요구하는, 최초의 교육자였다. 초기의 가정은 건물을 갖추지 못했지만, 가족 화로{火爐}인 모닥불 주위에 모여 있었다. 새 가정을 꾸민 아들은, 가족 화로에서 불씨를 옮겨갔다.
69:6.4 불을 처음 발견한 안돈은 그것을 경배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나, 그의 자손 가운데 다수는 불꽃을 주물{呪物} 또는 영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쓰레기 태우기를 싫어했으므로, 청결하게 만드는 불의 효용가치를 이용하지 못했다. 원시인은 불을 두려워했고, 그것을 좋은 상태로 유지해서 냄새가 적게 나도록 하려고 항상 애썼다. 고대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 속에 침을 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타오르는 불과 사람 사이를 결코 지나가지 않았다. 초기 인류는 심지어 불을 붙이는 데 사용된 황철광과 부싯돌도 신성하게 여겼다.
69:6.5 불을 꺼뜨리는 것은 죄였으며; 집이 불에 타면 그대로 뒀다. 신전{神殿}과 제단의 불은 신성시됐고, 해마다 또는 어떤 재난이 있은 후에 새로 불을 붙이는 것을 관례로 행하는 경우 외에는, 그 불을 절대 밖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여자들이 사제로서 선택됐는데, 그들이 집에 있는 불을 보호하기 때문이었다.
69:6.6 불이 어떻게 해서 신들로부터 내려왔는지를 기록한 초기 신화는, 번갯불에 불이 붙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시작됐다. 초자연적으로 기원된 이 관념이, 불을 숭배하도록 직접 작용했고, 불에 대한 숭배가 “불을 통과하는” 풍습을 낳았고, 그 풍습은 모세 시대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죽은 후에 불을 통과하게 된다는 관념이 여전히 존속한다. 불에 관한 신화는, 초기 시대에 엄청난 속박의 도구였고, 파시교도의 기호 체계 속에 아직도 남아있다.
69:6.7 불로 말미암아 조리법이 생겼고, “생식{生食}”은 조롱하는 말이 됐다. 그리고 양식을 익힘으로 인해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가 음식 소화에 소모되는 것을 줄였고, 그리하여 초기 사람은 사회 문화를 누릴 어느 정도의 힘을 갖게 됐으며, 한편 목축업은, 양식 확보에 필요한 노력을 줄임으로써,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69:6.8 불이 금속 가공의 문을 열었고, 나중에는 증기력{蒸氣力}을 발견하게 했고, 오늘날에는 전기를 이용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7. 동물의 활용
69:7.1 처음에는, 동물계 전체가 사람의 적{敵}이었고, 인간은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배워야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동물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동물을 길들이고 사람을 위하여 일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69:7.2 동물 길들이기는 우연히 시작됐다. 미개인은, 마치 아메리카 인디언이 들소를 사냥했던 것과 흡사한 방법으로 동물을 사냥했다. 떼를 포위함으로써 그 동물을 계속 통제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양식에 필요한 대로 그것들을 죽일 수 있었다. 나중에는 울타리가 세워졌고, 동물 떼 전체를 사로잡곤 했다.
69:7.3 어떤 동물은 길들이기가 용이했으나, 많은 동물은 코끼리처럼 속박된 상태에서는 새끼를 낳지 않으려고 했다. 더 후일에는, 특정한 종류의 동물이 사람에게 복종하고, 포획 된 상태에서도 새끼를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하여 동물 길들이기는, 골라서 번식시키는, 달라마시아 시대 이후로 크게 진보된 기술로 인해 촉진됐다.
69:7.4 개는 처음으로 길들여진 동물이었고, 개를 유순하게 만드는 어려운 체험은, 어떤 개가 하루 종일 사냥꾼 주변을 맴돌다가 그를 따라서 정말로 집에까지 오게 됐을 때 시작됐다. 개는 오랫동안, 양식, 사냥, 운반 수단, 그리고 반려동물로서 활용됐다. 처음에는 개들이 길게 뽑듯이 소리 냈지만, 나중에는 짖는 법을 배우게 됐다. 개의 날카로운 냄새 감각 때문에, 개가 영을 볼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됐고, 개를_숭배하는 종파{宗派 cult}가 생기기도 했다. 감시하는 개를 활용하여, 처음으로 씨족 전체가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그 후에는 눈에 보이는 적뿐만 아니라 영{靈}으로부터 집을 보호하는 데 감시견을 이용하는 것이 관습이 됐다. 개가 짖을 때에는 사람이나 짐승이, 길게 울부짖을 때에는 영이 접근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개가 밤에 길게 울부짖는 것은 죽음의 전조라고 믿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69:7.5 사냥하던 시절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제법 친절했지만, 동물을 길들인 후에는, 캘리개스챠가 일으킨 혼란이 가중되어, 많은 부족이 자기네 여자들을 고약스럽게 취급했다. 그들은 대체로 동물을 다루듯이 여자를 대했다. 남자가 여자를 무자비하게 대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8. 문명의 한 요소로서의 노예제도
69:8.1 원시인은 망설임 없이 동료들을 노예로 삼았다. 여자가 최초의 노예, 즉 가정의 노예였다. 목축하는 남자는 여자를 노예화해서 자기보다 열등한 성{性} 대상자로 삼았다. 이런 종류의 성 노예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의존도가 줄어든 결과로 곧 생겨났다.
69:8.2 바로 얼마 전까지도, 정복자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전쟁 포로는 노예가 될 운명이었다. 더 먼 옛날에는, 포로를 잡아먹거나, 죽도록 고문하거나, 서로 싸우게 하거나, 영들에게 제물로 바치거나, 아니면 노예로 삼았다. 노예제도는 대량학살이나 식인{食人}보다는 엄청나게 진보된 것이었다.
69:8.3 노예제도는 전쟁 포로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에 한 단계 발전한 것이었다. 아이 성{城} 복병들이, 남녀는 물론 어린아이까지 모두 학살하면서, 정복자로서 자만심을 만족시키려고 왕만 살려뒀던 것은, 문명인으로 여겨지는 민족들까지도 야만적 대량학살을 일삼았음을 잘 보여준다. 바산의 왕 옥을 습격한 것은 잔인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히브리인은 적을 “완전히 섬멸했고”, 그들의 모든 재산을 못 쓰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남자가 멸절되는” 고통 대신, 모든 도시가 조공{租貢}을 바치게 했다. 그러나 당대의 부족들 가운데 다수는 부족 이기주의가 훨씬 덜했고, 유능한 포로를 양자로 받아들이는 관례가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69:8.4 아메리카 홍색인이 그랬듯이, 사냥꾼은 노예를 만들지 않았다. 포로를 양자로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였다. 목축하는 민족들 가운데서는 노예제도가 유행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노동인력이 별로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날 때 목자{牧者}들은,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만 노예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 모세의 법전{法典}은, 이 여자 포로를 아내 삼는 일에 대해서 특별히 지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히브리인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 돌려보낼 수 있었지만, 배우자가 되지 못한 그들을 노예로 파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이는 문명화에서 적어도 한 걸음 진보였다. 히브리인의 사회 규범은, 미숙하기는 했지만 주변에 있는 부족들보다 훨씬 앞섰다.
69:8.5 목자는 최초의 자본가였으며; 그들의 가축 떼는 자본금이었고, 이자로--곧 자연 증가분으로-- 생활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재산을 노예나 여자에게 맡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들이 남자 포로를 거느렸고 포로들로 하여금 땅을 일구도록 했다. 이것이 농노{農奴}--곧 토지에 부속된 사람--의 초기 기원이다. 아프리카인은 땅을 일구는 방법을 쉽게 배웠고; 그리하여 그들은 탁월한 노예 인종이 됐다.
69:8.6 노예제도는 인간 문명의 연결고리에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고리였다. 그것은 혼돈과 게으름의 상태로부터 질서와 문명화된 활동으로 옮아가는 다리였으며; 진보가 느리고 나태한 사람들에게 일하도록 강요했고, 그리하여 그들보다 우수한 사람들이 사회를 진흥시키도록 재산과 여가 시간을 제공했다.
69:8.7 노예제도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시 사회의 통제 장치를 창안하도록 강요했으며; 정부가 시작되게 했다. 노예제도는 강력한 규칙을 필요로 했고, 봉건 군주들이 노예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럽의 중세시대에 거의 사라졌다. 고대의 뒤떨어진 부족들은, 오늘날 오스트랄리아 원주민처럼, 노예를 소유한 적이 없었다.
69:8.8 사실, 노예제도가 억압적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산업을 배운 것은 억압이라는 학교에서였다. 노예들은 상류 사회가 생기는 것을 아주 마지못해서 도왔으나, 결국 그 사회의 축복을 공유하게 됐다. 노예제도는 문화 체제와 사회 진보를 이룩함에도, 모르는 사이에 곧, 모든 파괴적 사회 병폐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되어, 사회를 내부에서 공격한다.
69:8.9 현대의 기계 발명이 노예를 쓸모없게 만들었다. 노예제도는 일부다처제처럼, 수지가 맞지 않으므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숫자의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은 반드시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며; 점진적으로 해방될 때 문제가 적게 발생된다.
69:8.10 오늘날, 사람은 사회적인 노예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야심 때문에 빚의 노예로 전락한다. 무심결에 형성된 노예제도가, 새롭고 개선된 형태의 변경된 산업 노동을 형성했다.
69:8.11 보편적 자유가 이상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지만, 게으름이 묵인돼서는 결코 안 된다. 건강한 육체를 가진 사람은, 적어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강제로라도 해야 한다.
69:8.12 현대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노예는 거의 사라졌으며; 길들여진 동물이 사라지고 있다. 문명은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불--곧 무기물{無機物} 세계--에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사람은 불과 동물과 노예제도를 거쳐서 미개한 상태로부터 벗어났으며; 오늘날에는 노예의 도움과 동물의 보조가 폐기되는 것을 돌이켜보면서, 자연이라는 본질적인 창고에서, 부와 권력의 새로운 비결과 출처를 강제로 꺼내려고 애쓴다.
9. 사유재산
69:9.1 원시 사회는 사실상 공동사회였지만, 원시인은 현대 공산주의 학설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이런 초기 시대의 공산체제는 단순한 이론이나 사회 정책이 아니었으며; 간단하고 실용적인 자동 조절이었다. 공산체제가 빈곤한 상태와 결핍을 방지했으며; 고대의 이 부족들은 구걸이나 매춘을 거의 알지 못했다.
69:9.2 원시 공산체제는, 사람의 수준을 유별나게 낮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부함을 높여주지도 않았지만, 게으름과 나태함을 장려했고, 산업을 억제했고, 야망을 소멸시켰다. 공산체제는 원시 사회의 성장에 필수적 발판이기는 했으나, 강력한 네 가지 인간 성향에 거슬렸으므로, 더 높은 사회 체제로 진화하도록 길을 내주게 됐다:
69:9.3 1. 가족. 사람은 재산 축적을 갈망할 뿐만 아니라; 재물을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초기 공산 사회에서 사람의 자산은 즉시 소비됐고, 아니면 그가 죽었을 때 무리들에게 분배됐다. 증여되는 재산은 없었다--곧 증여세{贈與稅}가 100퍼센트였다. 후대에 자본을_축적하고 재산을_증여하는 사회관행은, 뚜렷한 사회적 진보였다. 그리고 자본을 잘못 사용함에 따라서 지나친 남용이 뒤따랐음에도,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69:9.4 2. 종교적 성향. 원시인은 저 세상의 생애를 시작할 때를 위한 토대로서 재산을 모으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런 동기는, 사람을 매장할 때 그의 개인 소장품을 함께 묻는 풍습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됐는지 설명한다. 옛 사람들은 죽은 후에 부자들만 기쁨과 위엄을 갖춘 상태로 살아난다고 믿었다. 계시된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 특히 그리스도교 선생들은, 가난한 사람도 부자와 똑같은 조건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처음으로 선포했다.
69:9.5 3. 자유와 여가 시간을 갖고 싶은 욕망. 사회가 진화하던 초기 시대에, 개인의 소득을 집단이 나누는 것은 실제로 노예제도의 한 형태였으며; 일하는 자는 게으른 자에게 노예가 됐다. 공산체제가 자멸하게 된 약점은: 대비하지 않는 사람이, 절약하는 사람에게 습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현대에도, 대비하지 않는 사람이, 국가로 하여금(곧 절약하는 세금 납부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보도록 의존하고 있다. 자산이 없는 사람은,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를 먹여주기를 여전히 바란다.
69:9.6 4. 안전과 권력에 대한 열망. 진취적이고 성공적인 개인들의 속이는 버릇 때문에 공산체제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는데, 그들은 자기 부족{部族} 가운데 무기력한 게으름뱅이들에게 예속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다양한 구실을 내세웠다. 그러나 처음에는 모든 것을 비밀리에 저축했고; 원시적 불안감 때문에 자본을 공개적으로 축적하지 못했다. 그리고 심지어 후대에도, 너무 많은 재산을 모으는 일은 매우 위험했으며; 왕은 부자의 재산을 압수하려고 어떤 혐의를 반드시 꾸며냈고, 부자가 죽었을 때 그 가족이 공공복지를 위하여, 또는 왕에게 많은 돈을 상속세로 바칠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도록 막았다.
69:9.7 아주 먼 옛날에 여자는 그 공동체의 재산이었고, 어머니가 가족을 지배했다. 초기에는 족장이 모든 땅을 소유했고, 모든 여자의 주인이었으며; 결혼은 부족 통치자의 허락을 얻어야했다. 공산체제가 지나가자, 여자는 개인별로 소유됐고, 차츰 아버지가 가정의 통제권을 행사하게 됐다. 그리하여 가정이 시작됐고, 널리 행해지던 일부다처제 관습은 점차 일부일처제로 바뀌었다. (일부다처제는 결혼에서 여자_노예제도 요소가 남아있는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가정의 설립, 자녀 양육, 공동 문화, 그리고 자아_수양이라는 절묘한 계획사업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노예삼지_않는 비길 데 없이 이상적인 결합이다.)
69:9.8 처음에는, 연장과 무기를 포함해서 모든 재산이 부족의 공동 소유였다. 개인 재산은 직접 손을 댄 모든 물건으로 먼저 이뤄졌다. 낯선 사람이 어떤 그릇에 있는 물을 마셨다면, 그 그릇은 그때부터 그의 소유가 됐다. 그다음에는, 피를 흘린 장소는 어디든지, 상처를 입은 사람 또는 그 집단의 재산이 됐다.
69:9.9 그렇게 해서 사유재산은 원래 높이 평가됐는데, 그것이 소유주의 인격의 일부분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미신을 토대로 하여 재산에 대한 정직성이 안전하게 형성됐으므로, 개인의 소유물을 지킬 필요가 전혀 없었다. 집단 내에서는 훔치는 일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다른 부족의 재물 빼앗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재산과의 관계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처음에는 개인의 물건을 불에 태웠고, 그다음에는 시체와 함께 묻었고, 후대에는 남아있는 가족이나 부족에게 물려줬다.
69:9.10 장신구 유형의 개인 소지품은, 부적{符籍}을 몸에 지닌 것에서 비롯됐다. 허영심과 함께 유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초기의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부적을 뺏으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게 됐고, 그런 소유물을 생활필수품보다 훨씬 귀하게 여겼다.
69:9.11 잠자는 공간은 사람의 초기 재산 가운데 하나였다. 나중에는 부족의 추장이 집터를 결정했고, 추장은 그 집단을 위하여 모든 부동산을 관리했다. 이윽고 불 피우는 자리가 소유권을 부여했으며; 더 후기에는 우물이 주변 땅에 대한 재산권을 성립시켰다.
69:9.12 물웅덩이와 우물은 최초의 개인 소유지에 속했다. 주물숭배 풍습 전체가, 물웅덩이, 우물, 나무, 농작물, 그리고 꿀을 보호하는 데 이용됐다. 주물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후에는, 개인에게 소속된 것을 지키기 위해 법규가 발달했다. 그러나 수렵법{狩獵法}, 즉 사냥할 수 있는 권리가 토지법보다 훨씬 전에 생겼다. 아메리카 홍색인은 땅의 개인 소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며; 백색인의 관점을 납득할 수 없었다.
69:9.13 개인 사유지는 일찍부터 가족 표지{標識}로 표시됐고, 이것은 가족 문장{紋章}의 효시{嚆矢}가 됐다. 부동산 역시 영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제가 땅을 “신성하게” 할 수 있었고, 그 위에 세워진 마술적 금기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금기의 소유주는 “사제의 권리증서”를 가졌다고 말하게 됐다. 히브리인은 이런 가족 경계표{境界標}를 무척 존중했는데: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적혀있었다. 돌로 만든 이런 표지 위에는 사제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름이 새겨질 때에는 나무조차 사유 재산이 됐다.
69:9.14 초기 시대에는 오직 농작물만 사유{私有}됐으나, 연속해서 거둬들이는 농작물에 소유권을 부여했으며; 그리하여 농업은 개인 토지 소유권의 기원이 됐다. 각 개인은 살아있는 동안에만 땅의 소유권을 가졌고, 죽은 후에는 부족의 소유로 되돌려졌다. 땅의 소유권이 개인에게 수여된 가장 최초의 경우는 무덤이었다--곧 가족 공동묘지였다. 후대에 이르러서, 땅은 담을 세운 사람에게 소속됐다. 그러나 성읍은 포위 공격을 받을 때 사용하려고, 일정한 땅을 공동 목초지로 예비해 뒀으며; 이런 “공동 토지”는 초기 형태의 공동 소유권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예다.
69:9.15 결국, 세금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국가가 소유지를 개인에게 나눠주게 됐다. 땅 임자는, 이 소유권을 보장받으면서, 땅을 빌려준 삯을 받을 수 있었고, 땅은 소득의 근원--곧 자본--이 됐다. 마침내, 판매, 이전, 저당, 및 담보소유권 상실 등과 함께, 정당하게 땅을 양도할 수 있게 됐다.
69:9.16 사유 재산권이 자유를 증대시켰고, 안정성을 증진시켰지만; 토지 소유권은 오직 공동 사회의 통제와 지도가 실패했을 경우에만 사회의 인정을 받았고, 곧 그 뒤를 이어서, 노예, 농노{農奴}, 그리고 땅 없는 계층이 연속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개선된 기계류가, 일에 노예 된 상태에서 인간을 점차 벗어나게 하고 있다.
69:9.17 재산에 대한 권리는 절대적이지 않고; 순전히 사회적이다. 그러나 현대인이 누리고 있는 정부, 법, 질서, 시민권, 사회적 자유, 관례, 평화, 및 행복 등 전체는, 재산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상황에서 발생돼왔다.
69:9.18 현재의 사회 체제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곧 신성하지도 신성시되지도 않지만--, 인류는 변화를 서서히 이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희가 지금 지닌 체계는, 너희 조상이 알았던 어떤 체계보다 대단히 월등하다. 너희가 사회 질서의 변화를 시도할 때에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는지 확인해라. 너희의 조상이 폐기시켰던 상투적인 방식을 다시 시도하려고 하지 말라. 후퇴하지 말고 전진해라! 진화가 계속되도록 노력해라! 뒷걸음질 치지 말라.
69:9.19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제시했음]
◀제68편 문명의 태동 ∥ 제70편 인간 정부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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